간도 못 보고 끓인 미역국



  요 이레쯤 잇몸이 갑자기 부어 밥을 씹을 수 없기에 얼추 이레 동안 밥을 끊고 물이랑 우유만 마셨습니다. 어제랑 그제는 라면을 끓여서 저녁에 한 끼만 먹었습니다. 한쪽 잇몸이 부으니 씹지도 먹지도 못한다고 새삼스레 느낍니다. 예전에도 이런 일을 겪었는데, 예전에 몇 번 겪고 나서도 이 아픔을 다시 끌어들였구나 하고 뉘우칩니다. 그런데 요 이레 동안 몸이 힘들거나 아프지 않았습니다. 그저 밥을 못 먹을 뿐입니다. 밥을 못 먹더라도 물하고 우유로, 또 소금하고 사탕수수로 얼마든지 기운을 얻을 수 있었고, 이러는 사이 몸이 제법 가벼워집니다. 이러면서도 날마다 아침저녁으로 밥을 짓는데, 어제는 미역국을 끓였습니다. 다만 미역국을 끓이면서 간을 못 봅니다. 잇몸이 부을 적에는 맛을 하나도 못 느끼더군요. 반찬을 해도 볶음밥을 해도 도무지 간을 알 길이 없습니다. 그저 어림으로 눈치로 간을 볼 뿐입니다. 오늘(12/7)이 내 생일이라는데, 내 생일이라며 곁님 동생이 케익(케익값)도 보내 주고, 아이들 큰아버지가 과자 상자도 보내 주고, 아이들 음성 할머니가 김치랑 여러 장아찌랑 콩까지 보내 주시는데, 나는 오로지 물하고 우유만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곁님 동생, 그러니까 아이들로서는 이모가 “내일 아버지 생일이야” 하고 전화로 얘기하니, 큰아이가 쪼르르 달려와서 “내일 아버지 생일이래요!” 하고 말합니다. 그래서 나는 큰아이더러 “얘야, 날마다 아버지 생일이야. 너희들도 날마다 생일이야.” 하고 얘기해 줍니다. 우리는 아침마다 새로 태어나니(깨어나니) 날마다 생일인걸요. 미역국은 생일이기 때문에 끓이지 않습니다. 맛있으니까, 겨울에 따뜻한 국물을 먹이려고 끓여요. 2016.12.7.물.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살림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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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라가 좋아하는 빛깔이야



  읍내 신집에 들러 새 신을 장만합니다. 가벼우면서 발을 포근히 감싸는 신이 있으나 이 신을 큰아이가 영 안 내킨다고 합니다. 큰아이는 반짝거리는 신을 좋아합니다. 작은아이도 빛깔이 환하거나 고운 신을 좋아하지만, 가볍고 포근히 발을 감싸 주면서 빛깔이 환하거나 고운 신을 더욱 좋아합니다. 옛다, 그럼 산들보라가 이 신을 꿰면 되네. 너희 누나도 머잖아 가벼우면서 포근한 신을 좋아할 날이 올 테지. 2016.12.3.흙.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살림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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뚝딱뚝딱 쓱삭쓱삭



  아침에 밥을 짓고 빨래를 하고, 이웃님이 보내신 아이들 옷가지를 마당에 펼쳐서 해바라기를 시키고, 낮에 아이들을 이끌고 마을 샘터에 가서 신나게 샘터랑 빨래터를 치우고, 집으로 돌아와서 다 마른 옷가지를 걷고, 덜 마른 빨래는 처마 밑에서 하루 그대로 두기로 하고, 아침하고 낮에 밀린 설거지를 후다닥 하고, 쪽글을 보내야 할 곳에 보내고, 써야 할 글을 쓰고, 아이들한테 감을 썰어서 주전부리로 주고, 큰아이는 노느라 고단한 몸을 쉬도록 자리에 눕히고, 새로 장만한 스텐 살림은 뜨거운 물을 붓고 하면서 설거지를 해서 볕바라기를 시켜서 집안으로 들이고, 또 이것을 하고 저것을 하니 어느덧 해가 꼴까닥 넘어갈 무렵. 이러구러 하루가 가는구나 하고 느끼면서, 오늘도 헛간 문을 손질하지 못했다고 깨닫습니다. 끝방 창호문도 얼른 두 겹 덧발라야지 하고 생각합니다. 이튿날에는 다 해낼 수 있을 테지요. 2016.11.29.불.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살림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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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아이 신



  오늘 읍내마실을 해야겠다고 문득 느껴서 두 아이를 이끌고 읍내를 다녀옵니다. 읍내에서 볼일을 보며 걷다가 신집을 봅니다. 며칠 앞서 읍내에 올 적에 신집에 못 들렀습니다. 오늘은 들러 볼까 싶어 들어갔더니 큰아이한테 꼭 알맞겠구나 싶은 가볍고 튼튼해 보이는 신이 보입니다. 그러나 큰아이 눈이나 마음에는 이 신이 내키지 않습니다. 큰아이는 반짝거리는 무늬가 박힌 신이 마음에 듭니다. 큰아이한테 보여주는 신은 외려 작은아이가 마음에 든다고 합니다. 이리하여 큰아이는 큰아이 스스로 좋다고 하는 반짝무늬 신을 장만하고, 작은아이는 큰아이한테 골라 준 가볍고 튼튼하면서 환한 귤빛 신을 장만하며, 곁님도 덩달아 가볍고 넉넉한 신을 장만합니다. 오늘 나는 세 사람 신을 새로 장만하면서 “신에 붙은 값표는 보지 말고, 그 신이 마음에 드는가를 보자.”고 얘기합니다. 마흔 해 남짓 살며 ‘값표’를 아랑곳하지 않으며 ‘발에 맞는 신’을 생각하자고 말한 적은 오늘이 처음이었다고 문득 느낍니다. 그래 봤자 세 사람 신 값으로 십일만 원 들었어요. 2016.11.28.달.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살림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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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아이 새옷



  가방을 촐랑촐랑 메고 읍내마실을 하던 작은아이 옷이 젖었습니다. 왜 젖었지 하고 살피니, 가방에 담은 물병이 제대로 안 닫혔는지, 물병에 있던 물이 몽땅 쏟아졌습니다. 웃옷도 아랫도리도 모두 갈아입혀야 합니다. 이제 아이들이 많이 컸기에 바깥마실을 할 적에 아이들 옷을 따로 챙기지 않습니다. 그러면 읍내에 나온 길이니 옷집에 들러 작은아이 옷을 사 오면 됩니다. 웃옷 두 벌하고 바지 한 벌하고 속옷까지 갑작스레 새로 장만합니다. 겨울 앞둔 늦가을에 마실길에서 물을 쏟아 옷을 모두 적신 작은아이는 뜻밖에 새옷을 입습니다. 어쩌면 나도 어릴 적에 우리 작은아이처럼 얼결에 옷을 적셔서 추운 겨울날 저잣마실길에 옷을 새로 장만해서 입은 적이 있는지 모릅니다. 마침 주머니에 묵혀 놓은 십만 원이 있어서 아이 옷값으로 알뜰히 잘 썼습니다. 2016.11.26.흙.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살림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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