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추된장국이었는데



  아침에 된장국을 끓이려고 무를 썰고 감자를 썰고 당근을 썰고 양파를 썰고 마늘을 다지고 배춧잎을 다섯 장 뜯습니다. 소고기하고 버섯은 헹구어서 말린 뒤 물을 끓입니다. 소금은 따로 안 넣고 된장을 미리 풀어놓습니다. 국이 펄펄 끓을 즈음 소고기하고 버섯을 넣은 뒤, 큰파랑 깻잎을 썰어서 느즈막히 넣습니다. 잘 끓는 물에 미리 풀어놓은 된장을 부어서 살살 젓고 나서 간을 봅니다. 아, 맛 좋네, 누가 이렇게 된장국을 잘 끓이나, 하고 생각합니다. 무가 보글보글 끓는 물에서 속살을 말갛게 드러낼 즈음 불을 끕니다. 잘 끓였구나 하고 여기며 개수대를 치우고 뒤를 돌아보는데, 어라, 아까 뜯은 배춧잎이 그대로 있네요. 아차, 배추된장국을 끓이려 했으면서 배추를 미처 안 넣었네요. 허허, 그래도 간이 잘 맞고 맛은 좋으니 이 배춧잎은 다음에 된장국을 덥힐 적에 넣어야겠다고 생각합니다. 2016.12.21.물.ㅅㄹ


(숲노래/최종규 . 살림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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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놀이



  어제 우체국에 들러 편지를 한 통 부치다가 두 아이한테 통장을 건네면서 “자, 저기에 가서 ‘받으셔요’ 하고 얘기해 봐.” 하고 얘기했습니다. 큰아이랑 작은아이가 저마다 저희 통장에 돈을 맡기는 일을 시켜 보았어요. 아이들은 통장에 돈을 맡기는 일이 무엇인지 잘 모릅니다. 요새는 누리은행(인터넷뱅킹)이라든지 손전화 기계로 돈을 주고받는 일이 흔하니, 예전처럼 은행놀이를 할 일이 거의 사라졌다고 할 수 있어요. 그래도 아이들이 앞으로 누리은행이나 손전화를 쓸 때까지 한참 남았을 테니, 우체국(은행)에 돈을 넣고 빼는 살림을 맛보도록 해 볼까 싶습니다. 우체국에 들를 적마다 오백 원이든 천 원이든 아이 스스로 맡기도록 해 보려 합니다. 2016.12.17.흙.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살림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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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손집하고 보금자리



  길손집에서 묵으며 여관하고 어떻게 다른가를 어젯밤에 곁님하고 얘기하다가 한 가지를 미처 나누지 못하고 곯아떨어졌습니다. 이 한 가지를 얘기하지 못했네 하는 생각이 들며 꿈나라를 헤매는데, 아닌 게 아니라 꿈에서까지 ‘아, 이 얘기를 했어야 하는데 못하고 자네’ 하는 생각을 꿈에서 누구한테 말하더군요. 꿈나라를 누비다가 허허 웃었습니다. 그러니까 자면서 웃었다는 뜻입니다. 길손집은 여러모로 좋은데 꼭 한 가지가 아주 아쉬웠어요. 한 방에 함께 묵거나 이웃 방에 묵는 이웃 길손이 내는 소리가 꽤 크게 들려요. 이러다 보니 길손집에서 움직일 적에 ‘집에서도 이렇게 하지만’ 뒤꿈치를 들고 살금살금 걸었고, 쉬거나 잘 적에 노랫소리를 켤 수 없어요. 서울에서 볼일을 보고 길손집에서 묵고 전철하고 시외버스를 타고 시내를 걷고 하는 내내 소리통을 귀에 꽂고 다니느라 귀가 얼얼했습니다. 시골 보금자리로 돌아와서는 집에서 마음껏 노래를 들을 수 있으니 매우 홀가분하면서 기뻐요. 괜히 보금자리가 아니에요. 2016.12.16.쇠.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살림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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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우시금치볶음



  어깨너머로 배웁니다. 요리책을 살피면서 배웁니다. 이웃 누리집을 둘러보면서 배웁니다. 어릴 적 어머니 손끝을 떠올리면서 배웁니다. 모처럼 아이들 할머니 집에 나들이를 가서 가만히 맛을 보며 배웁니다. 때때로 바깥밥을 먹을 적에 밥집 밑반찬을 오물오물 천천히 씹으며 배웁니다. 그리고 스스로 해 보면서 배웁니다. 스스로 지은 밑반찬을 집식구가 먹으며 어떠한 얼굴을 하는가를 살피면서 배웁니다. 나 스스로 내가 지은 밥을 먹으면서 곰곰이 되새깁니다. 아침 일찍 서울로 바깥일을 보러 길을 나가기 앞서 새우시금치볶음을 합니다. 시금치를 손질하고 당근을 먼저 썰어서 익힌 뒤에 양념을 하며 볶아서 그릇에 담기까지 이십오 분쯤 걸립니다. 얼마 안 걸렸어요. 이동안 빨래는 빨래기계가 해 주었고, 이틀 동안 세 사람이 이 밑반찬을 맛있게 먹을 수 있기를 비는 마음으로 홀가분하게 집을 나섰습니다. 2016.12.14.물.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살림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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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설거지



  어제 낮 네 시에 서울을 떠난 시외버스는 고흥에 저녁 여덟 시 십삼 분에 떨어졌고, 읍내에서 저녁 여덟 시 반 군내버스를 타고 우리 보금자리로 돌아오니 저녁 아홉 시입니다. 짐을 풀고, 선물을 나누고, 빨래할 옷을 챙기고, 몸을 씻으며 갈아입고, 느즈막히 저녁을 먹고, 이야기를 나누고, 아이들이 지난 사흘 동안 재미나게 그리고 빚은 그림이랑 종이접기를 들여다보고 하니 벌써 밤 열한 시. 밤 설거지를 하려니 손이 벌벌 떨리네 하고 느꼈지만, 아주 천천히 밤 설거지를 하고는, 새로 마련한 크리스마스 물잔은 아침에 설거지를 하자고 미룹니다. 아침에 일어나서 물을 끓여 물잔을 소독하고는 남은 설거지를 마저 하고서, 파란 병에 물을 담아 햇볕 드는 평상에 내놓습니다. 싱그러운 물을 만질 수 있고, 고운 볕살을 누릴 수 있는, 이 보금자리가 더없이 사랑스럽게 하고 느낍니다. 바로 이 보금자리가 있기에 어디이든 가볍게 바깥일을 보러 다녀올 수 있구나 싶어요. 2016.12.11.해.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살림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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