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씻김


 다음달에 두 돌을 맞이할 딸아이가 제 아빠 발에 물을 묻힌 다음 비누를 바르고 다시 물을 뿌려 씻어 준다. 아빠랑 엄마가 갈마들며 아이를 씻기곤 하지만, 으레 아빠가 아이를 훨씬 자주 씻어 주고 있는데, 아빠 발을 아이가 씻어 주기는 오늘이 처음. 이야기를 들어 보니 엄마 발이라든지 할머니 발은 일찌감치 씻어 주었다고. 이런 우리 아이를 바라보면서, 아이 앞에서 어른들이 무엇을 하고 무슨 일을 하며 무슨 말을 늘어놓는데다가 어떤 사람을 사귀고 어떤 물건을 쓰는 가운데 어떤 매무새로 어느 곳에서 살아가는가를 제대로 따지거나 살피거나 다스리거나 곧추세우지 않는다면, 우리들 누구나 ‘어른’이 될 수 없을 뿐더러, 이 나라를 쉬 망가뜨리고 말겠다고 느낀다. 책은 한 권조차 없어도 되고, 책은 한 줄이든 열 줄이든 안 읽어도 된다. 학교는 꼭 하루뿐이어도 안 다녀도 그만이고, 학교란 곳은 아예 만들지 않아도 된다. 아이한테는 어버이와 이웃과 동무 모두 스승이다. 아이한테는 제 살림집과 마을과 골목이 바로 배움터이다. (4343.7.20.불.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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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imssim 2010-07-20 15:00   좋아요 0 | URL
뒤집어 말하면 아이도 우리 어른들의 스승이지요.
저의 그 시절을 다시 한 번 되돌아봅니다.

숲노래 2010-07-20 15:38   좋아요 0 | URL
서로서로 가르치고 배운다고 할 수 있는데,
아이랑 함께 살아가면서
그예 서로 좋은 동무로 지내며
즐겁구나 싶답니다...
 


 생협과 아줌마


 우리 나라에서 스스로 진보라 하는 분들하고 보수라 외치는 분들을 곰곰이 살펴보면, 생협에 다니지 않을 뿐더러 생협을 알고자 힘쓰지 않는데다가 생협 같은 모임을 느끼지조차 않기 일쑤입니다. 그렇다고 진보인 분들 스스로 농사를 짓는다든지, 보수인 분들 스스로 시골에 터를 마련해 조용히 농사짓기를 즐긴다든지 하지 않습니다. 오로지 아줌마들만이 왼날개나 오른날개 아닌 여느 수수한 살림꾼으로서 생협에 다니고 있습니다. (4343.7.20.불.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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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 여자를 키우는 남자, 아니 두 여자가 키우는 남자


 딸아이 백일을 며칠 앞두고, 신포시장 떡집에 백설기와 가래떡을 맡기려고 흰쌀 사십 킬로그램 남짓을 지고 안고 갑니다. 모두 해서 사십 킬로그램이 조금 넘는 무게일 텐데(어쩌면 더 나갈는지 모릅니다만), 집부터 떡집까지 걸어가는 길이 만만하지 않습니다. 그리 멀지는 않으나 썩 가깝지 않습니다. 높은 언덕을 넘어야 하지는 않으나, 인천이라는 데는 오르락내리락 골목이 끝없이 이어진 곳이다 보니 다리가 후들후들입니다.

 새벽나절 깨어나 일손을 붙잡다가 잠깐 눈을 붙인다고 했지만, 언제나 새벽같이 깨어나서 아빠 엄마랑 함께 눈 말똥말똥 뜨면서 놀아 달라고 하는 딸아이하고 씨름하노라면, 새벽잠도 낮잠도 저녁잠도 밤잠도 어영부영, 아니 대충대충 넘기게 됩니다. 어른들은 ‘아기가 잘 때 어른도 자야 한다’고 말씀하지만, 몸이 썩 좋지 않은 애 엄마는 집안일을 하나도 할 수 없는 터라, 먹고사는 일을 하는 애 아빠는 홀로 집안일까지 도맡습니다. 없는 틈을 쪼개어 집안일을 해야 하니, 아기가 자도 깨고 아기가 깨도 함께 깨는 때가 잦습니다. 한 시간 넘게 깊이 잠들기 어렵고, 조금 쉬는가 싶으면 기저귀 빨래가 밀리니 부랴부랴 언손 녹여 빨래를 하노라면 잠이 달아납니다. 잠이 달아나면서 쌀과 콩팥을 씻고 불려 놓아야 하고, 다 마른 빨래를 걷어 놓고는 잠깐 아기를 안고 어르다가 바깥 일손을 붙잡다가, 하루 밥거리를 무엇으로 마련할까를 헤아리다가 기저귀를 빨다가, 또 아기하고 애 엄마하고 함께 어울리다가 밥을 안치다가, 그러면서 찌개나 반찬거리 하나 장만하다가 아까 걷어 놓은 기저귀를 개다가 …… 하면 하루가 훌쩍 지나갑니다.

 일기를 쓸 겨를이란 없지만, 달력 귀퉁이에다가 오늘 하루 무엇을 하고 지나가는가를 적어 놓을 겨를조차 못 내고 넘어가는 날이 늘어납니다. 겨우 잠자리에 들 무렵 ‘오늘 무슨 일이 있었나?’ 하고 돌아보면 하나도 떠오르지 않습니다. 머리속이 새하얗습니다.

 더구나 오늘은 민방위훈련이 있는 날. 일은 겹쳐서 온다고, 그나마 아침잠조차 한 시간 느긋하게 잘 수 없어 퀭한 눈으로 민방위훈련 하는 곳까지 부랴부랴 종종걸음. 세 시간 동안 졸음이 쏟아지는 강의가 이어지는데, 여느 사람들 상식밖에 안 되는 구급법과 119 전화 거는 법을 그토록 오래도록 떠벌여야 하는지 궁금합니다. 교육장에서 문득 휘 둘러보니 5/6쯤 되는 우리 동네 아저씨들은 꾸벅꾸벅 졸거나 엎드려 자거나 코를 골고 있습니다. 그래도 1/6이나 되는 아저씨들은 자지 않고 깨어 있습니다. 저는 이런 때야말로 책을 읽어야 하지 않느냐 싶어 두 권을 챙겨 와 감기는 눈을 비벼 가면서 읽습니다. 세 시간 동안 이백 쪽 안팎 읽어냅니다. 그리고 마지막 넷째 시간에 비디오를 보여주는데, ‘세계 5위 군사대국 북한의 위협 가운데 화학무기가 가장 무섭다’고 하는 말머리로 ‘가정에서 화생방 대피 요령’을 연속극처럼 찍어서 틀어 줍니다.

 힘들 일은 없다고 하는 민방위훈련이기는 해도, 억지스럽게 국민의례를 하고 애국가를 부르고 ‘내 이웃이 간첩인지 아닌지 살펴보라’는 비디오까지 귀가 멍멍하도록 듣고 나서야 도장 꾹 찍히고 풀려납니다. 동사무소에서 나와 출근부(?) 도장 찍는 젊은 직원은 한손을 바지주머니에 찔러넣고 한손으로 도장을 쾅쾅 찍습니다.

 어질어질한 머리로 집으로 돌아와 그사이 밀린 기저귀를 빨다가, 애 엄마가 ‘뜨거운 물이 씻을 만큼 되느냐’고 묻기에, 넉넉하다고 이야기해 줍니다. 그러면 아기하고 함께 씻어도 되겠네 하기에, 그래도 된다고 이야기합니다. 이리하여 졸음을 꾹 참고 큰 통에 뜨거운 물을 받습니다. 기저귀 빨래를 마치고 빨래줄에 널어도 물은 더 받아야 합니다. 방을 들여다봅니다. 애 엄마도 자고 딸아이도 잡니다. 통에 2/3쯤 찼을 무렵 애 엄마를 흔들어 깨웁니다. 애 엄마도 고단한 몸이라 겨우 일어납니다. 애 엄마가 먼저 씻는방에 들어가고, 딸아이는 애 아빠가 옷을 벗겨서 나중에 들어갑니다. 물통에 들어가 앉은 애 엄마가 딸아이를 안습니다. 저는 한손으로 아기 귀를 막은 채, 한손으로 바가지에 물을 퍼서 아기 몸에 끼얹습니다. 어제까지는 작은 통에 물을 담아서 손바닥으로 끼얹으며 씻겼는데, 오늘은 처음으로 제대로 씻겨 봅니다.

 다 씻기고 나와서는 떡집으로. 이렇게 새벽 아침 낮나절을 보내고야 떡집으로 가는 길입니다. 무거운 쌀짐을 이고 가기 앞서까지 여러 가지 일이 있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몸은 몸대로 고단하면서 짐은 짐대로 무거우니 다리가 후들거릴밖에요. 게다가 아기를 낳아 기르는 동안 몸무게가 7킬로그램쯤 빠지며 힘도 많이 줄었으니 더욱 후들거리고요.

 그래도 떡집까지 가까스로 쌀을 다 지고 안고 찾아갔습니다. 안은 쌀과 진 쌀을 내려놓으니 팔과 등이 가볍습니다. 아니, 등짝이 없는 듯하고 팔이 없는 듯합니다. 문득, 군대에서 훈련 뛴다며 완전군장에다가 부대 깃발 들고 전화기를 목아지에 걸친 데다가, 탄약통까지 군장 위에 올려놓고 낑낑대던 일이 떠오릅니다. 그때 내 군장 무게도 오늘 쌀 무게에 버금갔을 텐데 그때는 어떻게 용케 버티면서 여덟 시간이고 열 시간이고 걸었을까 놀랍습니다. 낙오는커녕 낙오하는 후임병들 군장을 뒤에서 밀어 주고 앞에서 잡아당기고 하면서 산길을 타고 오르기까지 했으니 ……. 하기는, 그때는 지금과 견주면 몸무게가 십 몇 킬로그램이 더 나갔으니 힘이야 더 있었을 테고 젊기도 젊었으니까.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배고픈 애 엄마한테 밥을 먹이려고 밥을 차리고 찌개를 끓입니다. 그런데 애 엄마는 맛있게 먹기는 먹었으되 조금 많이 먹은 탓에 그만 숟가락질을 멈추지 못하고 더 먹어대어 탈이 납니다. 애 엄마한테 식사장애가 있는 줄 뻔히 알면서도 밥차림 부피를 늘 제대로 못 맞춥니다. 딱 알맞게끔, 아니면 조금 모자라게끔 해야 하는데. 탄수화물을 안 먹이든지 아주 조금만 먹이든지.

 탈이 난 애 엄마는 저녁 여덟 시부터 밤 두 시 가까이까지 힘겨워하며 게워내고 끅끅거리다가 겨우 잠이 듭니다. 애 엄마가 잠이 들 때까지 애 아빠는 팔다리와 등허리를 주무르고 안아 주고 등을 비벼 주고 합니다. 이동안 딸아이는 때맞춰 오줌을 누면서 기저귀갈이를 시킵니다. 그래도 낮에 똥 한 번 누고 저녁에는 안 누어 주니 이만 해도 고맙습니다. 오늘은 어인 일인지 잠투정도 얼마 안 하고 고이 잠들어 줍니다. 이리 귀여울 수가.

 애 엄마가 자리에 눕고 나서 한 시간 두 시간 세 시간이 흐릅니다. 애 아빠도 자리에 눕고 싶으나 어느새 잠이 싹 달아나 버립니다. 그러나 이동안 밀려 있는 기저귀를 빨 엄두는 못 냅니다. 팔과 팔꿈치가 너무 아프기 때문입니다. 새벽과 낮에도 기저귀를 빨고 물을 짤 때 손목과 팔꿈치가 저릿저릿해서 ‘이러다가 앞으로 어쩐담?’ 하는 소리가 ‘아이고 아이고!’ 소리와 함께 절로 튀어나왔습니다.

 이제 슬슬 몸뚱아리가 더 버티지 못하겠다는 신호를 보내니 잠자리에 들면 달게 잘 수 있을 듯한데, 새벽 다섯 시가 넘어서야 잠이 들면 언제쯤 깨어날까요. 아니, 딸아이는 새 하루에도 어김없이 새벽같이 눈 번쩍 뜨고는 까르르 웃어대면서 놀아 달라고 할 텐데, 애 아빠는 얼마나 아이 웃음을 모르는 척하면서 잠자리에서 꼼지락거릴 수 있을까요.

 속탈이 난 애 엄마 등을 어루만지면서, 애 아빠가 집일이 아닌 바깥으로 나가서 돈버는 일을 했다면, 이 모든 집살림에서 홀가분하거나 느긋할는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밖에서 돈만 벌고 들어오면 애 엄마가 혼자서 집에서 아이를 돌보는 일이 얼마나 고단하며 마음이 갑갑해지기도 하는지를 조금도 못 느끼지 않았겠느냐 싶습니다. ‘출산 우울증’에 걸릴 수밖에 없는 모습을 하나도 못 느끼면서 닦달을 하지 않았으랴 싶습니다. ‘벌 수 있을 때 밖에서 조금이라도 돈을 더 벌어야 한다’고 둘레에서 자꾸자꾸 말을 하지만, 그렇게 돈을 벌어서 어디에 쓰는가를 헤아린다면, 저로서는 돈은 조금 적게 벌더라도 딸아이가 하루하루 자라는 모습을 옆에서 지켜볼 뿐 아니라 함께 돌보고 함께 자라고 함께 놀고 함께 생각하면서 살 때가 돈으로는 도무지 살 수 없는 고마운 삶을 배우는 일이라고 느끼고 있습니다. 이렇게 딸아이 옆에 있고, 애 엄마 곁에 있는 일이, 돈으로 아기돌봄이 아줌마를 사서 쓸 때보다 훨씬 사랑 나누는 일이요, 한결 사랑 키우는 일이 아니겠느냐 싶어요.

 애 아빠는 젖을 물릴 수 없으니, 오롯이 애를 키운다고 할 수 없습니다만, 여러모로 많은 대목에서 아이를 키우는 한편, 몸과 마음이 많이 지치고 힘든 애 엄마를 키우고(돌보고) 있습니다. 흔히들, ‘엄마 한 사람이 아이와 아빠를 키운다’고 하는데요, 우리 집에서만큼은 ‘아빠 한 사람이 아이와 엄마를 키우고’ 있습니다.

 그런데 말입지요, 옆지기도 이런 말을 하고 저도 이런 생각, ‘두 여자를 키우는 한 남자’라는 생각이 들기는 합니다만, 애 아빠가 애 엄마와 딸아이를 키운다기보다, 애 아빠가 애 엄마하고 딸아이한테 배운다는 느낌이 짙게 들곤 합니다. 먹여살리지 살림하지 뒤치닥꺼리와 앞치닥꺼리 도맡지 하지만, 세상에 둘도 없이 깊은 가르침을 고마이 배우는 셈입니다. 가난이 세상에서 가장 으뜸가는 축복이라는 말씀처럼, 애 엄마와 딸아이 키우는 고단함은 오히려 애 엄마와 딸아이가 애 아빠를 키우는 첫손 꼽을 축복이지 싶습니다. 고단한 만큼 배우고, 고달픈 만큼 깨달으며, 지치는 만큼 느끼고, 벅찬 만큼 보람이 있습니다. 괴로운 만큼 기쁘고, 속썩이는 만큼 즐거우며, 애태우는 만큼 찡합니다.

 날마다 다짐합니다. 두 여자를 키우는 남자가 아닌 두 여자가 키우는 남자이고, 두 여자가 키워 주는 남자인 이 삶은 누구한테도 내주고 싶지 않다고. 가슴속에 켜켜이 묻어 놓고 싶습니다. 이 삶을. 몸뚱이에 알알이 새겨 놓고 싶습니다. 이 하루를. 마음밭에 차곡차곡 다져 놓고 싶습니다. 오늘 부대낀 온갖 일들을.

 눈물 한 줄기 눈가에 타고 흐릅니다. (4341.11.21.쇠.05:01.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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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좋다고 느끼는 책
 ― 열 해 뒤 우리 아이한테 물려주어야지



 아침에 ㅎ출판사로 전화를 건다. 얼마 앞서 읽은 책 하나가 퍽 좋았다고 느꼈기 때문에, 이 책을 읽으면서 하나하나 집어낸 잘못과 군데군데 잡아챈 오탈자를 알려주고 싶었다. 인터넷편지로 글을 갈무리해서 띄울 수 있지만, 이 책을 펴낸 사람 목소리를 듣고 싶었고, 한 군데 두 군데 잘잘못을 짚는 가운데 ‘잘못 쓰셨나요, 제가 잘못 보았나요?’ 하고 여쭙는 일이 좀더 반갑다. 나는, 그분이 몇 군데 잘못 찍힌 채 책이 나오도록 했다고 해서 꾸짖을 마음이 아니다. 이 좋은 책을 애써 엮어 내면서 몇 군데에서 아쉬운 대목이 드러나고 말았음을 알려주고 싶었다.

 사람들은 얼굴을 마주보고 말할 때와, 전화기로 목소리만 주고받으면서 말할 때, 그리고 써 놓은 글을 읽을 때 느낌이 사뭇 다르다. 나로서는 아무런 ‘싫은 마음’이나 ‘미운 마음’이 없이 수수하게 적어내려간 글을, 엉뚱하게도 ‘내가 아주 싫어하고 못마땅해서 그런 글을 쓰는 줄’ 생각하며 읽기도 한다. 너무 뜻밖이기도 하고 어이가 없는데, 거꾸로 생각하면 내가 글을 제대로 못 써서, 읽는 사람도 제대로 못 읽은 셈이 아니겠느냐면서 속을 다스린다. 앞으로는 엉뚱하게 읽어 주는 일이 없도록. 그러나 애쓰고 또 애를 써도, 어느 한 사람을 외곬로 바라보거나 비뚤어진 눈으로 바라볼 때에는, 내가 아무리 좋고 반가운 느낌으로 글을 쓴다고 해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 주지 않는 사람이 있기 마련이다. 그래서 전화를 건다. 내 돈 들여서 읽은 책을 내 돈 들여서 전화를 걸어 내 시간을 보내면서 알려준다. 그러면서 나한테 돌아오는 값은 하나도 없다. 나중에 2쇄를 찍으면, 고친 대목을 바로잡아서 알려주겠다는 소리도 없다. 이런 뒷손질을 알려주십사 하고 전화를 하지는 않으나, 내 사는 곳을 물으며 도서목록이라도 보내주겠다고 하는 분은 거의 없다(딱 한 번 있었으나 손사래를 쳤다).

 출판사로 전화를 거는 까닭은, 내가 책을 읽으면서 못 헤아린 대목이나 알아채기 어려운 대목이 있을까 싶은 생각이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리고 고맙기도 하기 때문이다. 내가 주머니를 기꺼이 털도록 해 준 책이며, 내 시간을 넉넉히 쓰면서 가까이하도록 해 준 책이다. 그러면서 내 생각이나 넋이 좋은 쪽으로 많이 거듭나기도 하고 새로워지기도 한다. 세상을 좀더 열린 눈으로 바라볼 수 있게도 되고, 우리 둘레를 좀더 깊이깊이 돌아볼 수 있도록 이끌기도 했다. 그래서, 이만큼 얻은 보람과 기쁨이 있어서, 전화삯 얼마쯤 들인다고 해도, 다른 일을 잠깐 미뤄 두고 이곳저곳 잘잘못을 알려준다고 해도, 나로서는 또다른 기쁨과 고마움을 느끼게 된다.

 오늘 아침, ㅎ출판사 편집부로 전화를 걸어 이런저런 잘잘못을 알려주고 나서, 문득 내 입에서 이런 소리가 튀어나왔다. “다 읽고서 참 좋았는데, 이 책이 2쇄를 찍을 수 있을까 없을까 걱정이 되어서, 2쇄를 못 찍게 되더라도 출판사에는 알려주고 싶어서 전화를 했습니다.”

 웬만큼 껍데기를 씌워서 내놓으면 어느 만큼 잘 팔린다고 하는 어린이책이요, 이름난 출판사 딱지를 받고 세상에 나오면 기본 부수가 나간다고 하는 어린이책이다. 그러나 이런 어린이책 가운데에서 눈길 한 번 제대로 못 받으면서 조용히 사라지는 책이 제법 많다. 우리 세상을 속깊이 들여다보는 책, 우리 삶터를 찬찬히 헤아리는 책, 우리 땅에 전쟁이 아닌 평화가 오기를 바라는 책, 우리 사회가 푸대접이나 따돌림이나 괴롭힘이 아니라 고르게 아름다울 수 있도록 꿈꾸는, 그러니까 평등과 인권을 바라는 책이 좀처럼 안 팔린다. 어렵게 배앓이를 하고 나온 책임에도 언론 눈길조차 못 받기도 하고, 언론 눈길은 제법 받아도 독자 사랑을 못 받기 일쑤이다.

 그런데 이와 같은 평화와 평등과 사랑과 믿음을 알알이 담고 있는 책 가운데, 우리와 일본 사이 문제를 다루면 어느 만큼 팔린다. 이 평화와 평등과 사랑과 믿음이 제3세계, 중남미, 아프리카 쪽으로 가면 그냥 안 팔린다. 유럽 작가가 쓴 책은 곧잘 팔리는데, 제3세계나 중남미나 아프리카 사람들이 쓴 책은 잘 안 팔린다. 모든 책이 이러하지는 않으나, 우리 흐름이 얼추 이러하다. 몽골과 티벳과 인도로 성지순례와 명상순례나 관광여행으로는 나다니지만, 몽골이 어떤 문화와 역사가 있는지, 티벳이 어떤 아픔과 고달픔으로 시달리면서 식민지보다도 못하게 무너지고 있는지, 인도 계급과 사회가 이 나라를 어떻게 휘어잡고 있는지를 돌아보려고 하지 않는다. 아니, 이러한 흐름과 얼거리를 보려는 사람이었으면, 나라밖 나들이를 나서기 앞서 이 나라 삶과 삶터 이야기를 다룬 책을 알뜰히 챙겨서 읽었을 테며, 이런 이야기 다룬 책이 쉬 판이 끊어지거나 책방 책꽂이에서 사라지는 일이란 없었으리라 본다. 전국 곳곳에 있는 도서관 책시렁에도 차곡차곡 꽂혀 있으면서 두루 읽힐 수 있었으리라 본다.

 지난 8월 2일에 처음 손에 쥐었으나, 그달 16일에 아이를 낳으면서 손에서 멀어졌고, 아기 돌보기와 옆지기 챙기기가 조금 수월해지는 가운데 다시 손에 쥐면서 부지런히 읽던 책, 《잃어버린 소년들》을 지난 10월 9일 밤에 다 넘기고 덮었다. 엿새쯤 속으로 삭이면서 느낌글 하나를 엮어냈고, 이제는 마지막으로 한 번 더 책을 어루만지고 가슴에 안고 살며시 쓰다듬은 다음, 내 책꽂이 한켠 잘 보이는 자리에 꽂아 두려고 한다.

 나 혼자만 좋게 느끼고, 나 혼자만 즐겁게 읽고, 나 혼자만 눈물콧물 질질 흘리면서 읽던 책이었어도, 이 책은 나 하나 살가운 읽는이를 만나서 기뻐해 줄 수 있을까. 아무렴. 내가 좀 모자라거나 어수룩하거나 어줍잖은 읽은이였다고 해도, 살포시 집어들고 즐거이 내려놓을 수 있는 마음을 얻었으니, 나와 책 하나는 반갑게 만난 셈이다. 그리고, 나는 이 책 하나를 사랑해 주었기에, 먼 뒷날 우리 아이가 무럭무럭 자라서 열 살쯤 되는 나이에, “얘야, 네가 엄마 배에서 세상 밖으로 나오던 때 아빠가 너를 품에 안고 이 책을 하나하나 읽어 주면서 눈물을 흘렸단다.” 하고 손때 짙게 묻은 책을 건네어 줄 수 있다. (4341.10.15.물.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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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자로 아이 키우는 일이란 너무 쉽고 미안하다
 [애 아빠는 어떻게 사나 2] 쉰닷새와 쉰엿새째 육아일기



 (쉰엿새) 물장난

- 날짜 어떻게 가는지 모르는 채 하루하루를 산다. 오늘 새벽부터 이튿날 새벽까지, 발 느긋하게 뻗고 쉬는 때란 잠깐도 없다. 조금 곁을 낼 수 있을 때라면, 밀려 있는 글을 쓰고, 책을 읽고, 집안일을 한다. 쌓여 있는 기저귀가 있으면 기저귀 빨래를 한다. 기저귀 빨래를 하는 사이, 아기가 깨기라도 하면 저와 함께 놀아 달라면서 운다. 처음에는 한두 마디 짤막하게 끊어지는 낮은 소리로. 차츰차츰 길며 높아지는 목소리로.

 쉰 날을 맞이하기 앞서까지만 해도 옆지기 몸이 몹시 안 좋았다. 어쩔 수 없이 배앓이를 견디지 못하고 병원에 가서 모진 의사 손을 거쳐서 아기가 태어나느라 아기와 옆지기 모두 몸과 마음이 다치기도 했지만, 옆지기가 제 몸을 되찾는 시간은 더디기만 했다. 이를 지켜본 장모님이나 이웃 할머니나 ‘백일이 괜히 백일이 아니라, 아기와 엄마가 몸을 되찾는 시간’이라고 입을 모았다.

 그러면 이런 이야기를 진작부터 해 주었으면 좋으련만. 처음 겪어 보는 우리들로서는 이런 대목까지는 미처 헤아리지 못했다. 아니 헤아릴 수 없었다. 첫 세이레 동안 아기를 지키고 옆지기 어긋난 뼈가 제자리를 찾는 데까지 마음을 기울여야 한다는 대목쯤은 알았으나, 그토록 몸풀이가 오래 끌게 될 줄은 알 수 없었다. 어떠한 책에서도 이런 이야기는 없었고, 어느 자료에서도 이렇게 백일에 걸쳐서 아기와 애 엄마 몸풀이를 돕고 이끌어야 한다는 소리는 없었다.

 왜 육아책에는 이런 이야기가 담겨 있지 않을까. 왜 초중고등학교 성교육 때에는 이와 같은 이야기를 들려주지 않았을까. 가르쳐 주는 교사들부터 겪어 보지 못해서 못 들려주었을까. 나중에 저절로 알게 된다고 생각하며 대충 넘겼을까. 푸름이들 눈길과 생각은 ‘사랑놀이’에 맞춰질 뿐, 아기를 몸에 안고 열 달이라는 삶을 배로 품어낸 다음 세상으로 받아들여서 천천히 세상과 한몸이 되도록 하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몰랐을까.

 생각해 보면, 지난날에는 굳이 책을 읽지 않아도, 따로 책을 살피지 않아도 집안이 큰식구였기 때문에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거들어 주고 이끌어 주고 도움을 베풀었다. 그래서 크게 걱정하지 않고 집에서 아이를 낳을 수 있었고, 아이를 낳는 동안 아버지나 어머니는 아기 몸과 어머니 몸을 시나브로 다시 배우게 된다. 무엇을 해 먹이고, 어떻게 해 먹이며, 집은 어떻게 꾸미고, 집식구들은 어떻게 매무새를 다스려야 하는가를, 집안 어르신이 차근차근 가르치고 보여주었다. 그런데 이제는 시골도 도시도 큰식구로 살아가기 어려운 한편, 자식뿐 아니라 부모 스스로도 딴살림으로 뿔뿔이 흩어지면서 따로따로 산다. 모두들 제 삶을 저희끼리 홀로 이끌려고 한다. 아기를 낳는 한동안, 아기를 낳고서 얼마쯤 일손을 거들는지 모르나, 일손 거들기를 넘어서 아이 삶과 애 어머니 삶을 깊이 들여다보도록 마음을 틔워 주기까지는 못한다. 그러니 책을 찾아볼밖에 없고, 인터넷이라도 뒤져야 하는데, 이와 같은 이야기를 찾기란 너무도 고달픈 일.

 나라에서는, 아기를 집에서 낳으면 돈 얼마를 준다고 하고, 셋째를 낳을 때부터 몇 십만 원을 준다고 하지만, 이런 돈보다도 ‘제대로 된 아이 키우기 정보와 지식’을 물려받을 수 있도록 틀거리를 마련해야 하지 않나 싶다. 아이를 막 낳을 때를 비롯해서 아이를 낳고 집에서 고이고이 기르는 동안 어떻게 하면 좋을지, 아이가 자라는 달수와 날수에 맞추어 아이 몸을 어떻게 느끼고 받아들이면 좋을지를 찬찬히 보여주고 알려주는 ‘진짜 산모수첩’을 주어야 하지 않겠는가.





- 아기 몸씻이를 하다. 옆지기가 조금 힘들어 해서 혼자 씻기다. 내가 아기 한쪽 손을 놓쳐서 떨어뜨리지 않았으나, 아기가 한손으로 물을 튀긴다. 처음에는 그저 아기 한쪽 손이 떨어진 줄 알았으나, 아기 스스로 살짝 웃음기 띤 얼굴로 한손을 들었다 내렸다 하면서 철푸덕철푸덕 한다. 세 번 하고 그만둔다. 목을 가누려면 한참 멀었을 테지만, 지난주 무렵부터는 고개를 이리 돌리고 저리 돌리고 한다. 몸씻이를 할 때에도 지난주까지만 해도 목 뒤틀리지 않게 붙잡느라 힘겨웠는데, 쉰 날 무렵부터는 걱정이 한결 덜다. 그래도 다치지 않게 잘 붙잡고 지켜보아야지.

 이제는 목이 조금씩 보이는 듯해서 접힌 목 안쪽에 때 많이 끼고 벌겋게 붓는 일도 줄어든다. 처음 씻길 때에는 목살 접힌 안쪽까지 씻을 생각을 못했다. 접힌 다리살과 팔살도 마찬가지. 장모님이 아기 씻기는 모습을 꼼꼼히 들여다보고 나서야 비로소 깨달았다.

 몸씻이를 하면 무척 좋아한다는 느낌이다. 마음 같아서는 하루에 두 번이나 세 번도 씻겨 주면서 지가 좋아하는 물놀이를 시켜 주고 싶지만, 엄마나 아빠나 너무 고단해서 한 번도 겨우 씻긴다.

 날마다 안 씻겨도 된다고 하는 말이 들려오지만, 아기 목이 벌겋게 되기도 하는 한편, 아빠를 닮아서인지 더위를 퍽 타는 듯하다. 더욱이 예방주사 부작용 황달이생겼기 때문에 냉온욕을 꼬박꼬박 해 주어야 하는 터. 씻길 때 보면, 거의 누워만 있던 아기임에도 배냇저고리가 살짝 꼬질꼬질하다는 느낌. 아마 아기가 흘린 땀 때문일 테지. 다른 집 아기 키우는 모습과 견주면 우리 아기는 거의 풀어놓고 키우는 셈이지만, 그래도 더위를 타는 듯. 그렇다고 저녁 온도가 19도쯤까지 내려가는데 마냥 풀어놓을 수 없다.

 생각해 보면, 나나 우리 옆지기도 어릴 적에 우리들 어머니 손으로 몸씻이를 하지 않았겠는가. 옆지기 어머님은 막내아이가 하도 더워 해서 하루에 아홉 번을 씻기기도 했단다. 그 이야기를 들으면, 우리가 하루에 한두 번 겨우 씻기는 일도 아기한테는 모자란 일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쉰이레) 젖을 먹지도 자지도 않고 울기만 하면

- 밤 앙탈이 갈수록 커진다. 쉰 날을 접어들면서 몸이 많이 나아진 옆지기가 부엌일을 거들며 나를 쉬게 하고 밥을 하거나 먹을거리를 장만하는 동안, 또 내가 너무 지쳐 있으니 내가 쓰러져 잠든 동안 빨래를 하는 사이, 아기가 앙탈 부리듯 운다. 처음 세이레까지, 우리 아이는 거의 울지도 않았을 뿐더러, 쉬를 보고도 또 뭐가 있어도 가만히 기다리기만 했다. 지금도 쉬를 하건 똥을 누건 가만히 있는다. 오히려 한창 찡얼거리다가 뚝 끊은 다음 뭔가 멋쩍다는 얼굴로 ‘끄응’ 하면서 가만히 있으면 똥을 누었다는 뜻.

 밤에 앙탈을 부리니 서둘러 잠자리에 들고 새벽녘에 깨어나 기저귀 갈고 젖을 먹여야 하는 우리들로서는 몹시 괴롭다. 나만 먼저 자기도 그렇고, 옆지기는 더더구나 잘 수 없다. 우리는 우리 어머니들한테 아직 듣지 못했는데, 우리 아기였을 때에도 이렇게 어머니들을 괴롭혔을까. 궁금하다. 듣고 싶다.

 깊어가는 밤, 힘들어서 자리에 누운 옆지기가 “젖을 먹지도 자지도 않고 울기만 하면 어쩌니, 사름아.” 하면서 아기를 달랜다. 왜 그럴까. 우리 두 사람은 아기말을 알아들을 수 없으니 어찌하겠는가. 안고 어르고 달래고 젖을 물리고 효소물을 먹이고 하면서 가까스로 재우며 한숨을 돌린다. 그러나 이렇게 재우고 나면 이 녀석은 슬그머니 또 눈을 뜬다. 꼭 우리를 갖고 노는 듯하다. 자기를 재우고 밀린 일을 하고, 느긋하게 두 사람이 밥상을 마주하고 싶어도 안 된다. 녀석은 꼭 자기가 우리 곁에 있어야 한단다. 옆에 눕히면 울지 않고 가만히 있지만, 모기장 안에 뉘여 놓으면 울어댄다.


- 8월 14일 밤, 첫 배앓이가 있고, 그 이튿날 8월 15일부터 도서관 문을 닫고 있었다. 열 수 없었지. 그리고 10월 11일, 거의 두 달 만에 도서관 문을 다시 열다. 도서관 나들문에 “아기 돌보기와 옆지기 몸풀이 때문에 9월 끝무렵까지 쉬어야겠습니다” 하고 적어 놓기는 했으나, 막상 닥치고 치러 보니까 9월 끝무렵은 뭐, 말도 안 되는 소리이고, 시월도 거의 가운데무렵이 다 되어서야 잠깐 문을 열게 되었다. 그러나 문만 열고 청소만 신나게 했지, 자리를 지킬 수 없다.

 손님이 들어와서 책을 보고 있으면, 그 손님한테 마음속으로 ‘도서관 지켜 주셔요’ 하고는 사진기며 노트북이며 그대로 도서관에 있는 채로 살림집으로 후다닥 뛰어올라간다. 아기 달래고 기저귀 빨고 널고 걷어서 개고. 한숨을 돌리며 아기를 안고 내려와서 옆지기를 좀 쉬게 하면서 도서관에 내려와 있자니(이동안 옆지기는 쉬지 않고, 아기 목에 발라 줄 녹즙을 만들었다), 자리에 앉자마자 녀석은 ‘뿌지직’. 헉. 똥이냐?

 이마에 맺힌 땀이 채 식지 않았으나 부랴부랴 살림집으로 달려 올라간다. 방수천을 깔고 주전자에 물을 끓인다. 기저귀를 벗겨서 뒷똥 나올 때까지 2분쯤 기다린다. 오줌을 눈다. 똥 누고 나서 오줌 누면 더 똥을 안 누겠다는 뜻. 물 온도를 알맞게 맞춘다. 흔히들 비싼 온도계(삼만 얼마짜리) 사서 재곤 하는데, 나는 그냥 손을 담그면서 내 몸으로 느낀다. 이만한 온도가 아이한테 맞는지 안 맞는지를 느낀다. 온도계로 온도를 꼼꼼히 맞추어도 좋을 테지만, 아빠나 엄마 스스로 팔꿈치를 대어 본다든지 얼굴을 대어 본다든지 하면서 온도를 느껴도 되고, 처음부터 자기 손으로 아기 씻기기에 알맞는 온도를 손으로 알아채도록 훈련을 하면 더 좋으리라 본다. 몇 번 훈련하면 어렵지 않게 물 온도 맞출 수 있다.

 엉덩이와 발에 묻은 노란 똥은 손에 물을 묻혀서 닦는다. 밑은 손수건을 물에 담가서 닦는다. 엉덩이와 잠지를 물에 폭신 담그고 슬슬 닦기도 한다. 똥을 왕창 누어 주었기에 비누도 발라 준다. 다 씻고 기저귀 천으로 닦아 준다.

 빨래하고 씻기고 뭐 하고 한참 만에 도서관에 내려온다. 손님은 말없이 책을 읽어 준다. 고맙다.





- 오늘 저녁은 옆지기가 몸에서 밥을 잘 받는다고 해서 여러 가지를 차린다. 어제 가톨릭우리농매장에 가서 장만한 오얏과 푸성귀 몇 가지를 씻어서 날것으로 올리고, 말린묵과 버섯과 마른오징어와 양파와 감자 하나 썰어 넣고 밀싹국수를 끓인다. 나는 감자를 갈고 옆지기는 감자지짐이를 한다. 오붓하게 먹으려고 하는 때, 아기님은 어김없이 울어 주신다. 옆지기는 밥 먹으랴 아기 젖 물리랴 바쁘다. 이럴 때면, 남자로 아이 키우는 일이란 너무 쉽고 미안하다는 느낌뿐.

 배앓이도 안 하지, 몸도 안 무겁지, 입덧도 없지, 온몸이 부서지라 아기를 낳지도 않지, 아기 낳고 후들거림도 없지, 아기 낳고 나서 한 달 남짓 피내림도 없지, 물건 하나 들 수 없을 만큼 온몸에 힘빠질 일도 없지, 젖몸살도 없지, 젖 물 때 아플 일도 없지, 젖이 불어서 아프지도 않는 데다가, 젖을 짤 일도 없고, 아기가 마냥 젖을 물고 있어서 지쳐 늘어질 까닭도 없다.

 아기 아빠 된 사람으로서, 이 모든 고마움을 느끼고, 이 모든 고마움을 자기 옆지기를 돌보고 아기를 좀더 돌보는 데에 바쳐야 하지 않느냐 싶다. 그동안 집안일을 많이 했던 아기 아빠라면, 좀 힘들지 모르나 지난날보다 조금 더 힘을 쏟아 주고, 여태껏 집안일에는 담을 쌓고 있던 아기 아빠라면, 이제부터라도 집안일에 소매 걷어붙이고 나서야지 싶다.

 으레, 회사 나가서 돈벌어야 하니 고단하고 힘들어서 집안일을 어찌하느냐고, 아기를 어찌 어르느냐고 하지만, 아기 어머니들이 산전휴가와 산후휴가를 내듯, 아기 아버지들도 마땅히 산전산후 휴가를 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야기를 들어 보면, 대기업 일꾼이나 공무원이 아닌 바에야 산전산후 휴가는 꿈도 꿀 수 없다고 하는데, 산전산후 휴가를 꿈도 꿀 수 없이 만드는 일터라 하면, 마땅히 노동조합을 꾸려서 아기 아버지와 아기 어머니가 누려야 할 권리를 받아야 한다. 그래서 노동조합이 있지 않는가. 그러니까 노동조합에 가입을 하고 힘을 보태지 않는가. 그리하여 사회운동이 있다. 그래서 정치운동을 하고 교육운동을 하고 문화운동을 하면서 우리 삶터와 사회를 바꾸자고 한다.

 아기를 낳은 어머니가 백일도 되지 않은 아기를 집에 놓고서 회사에 나가서 돈을 벌도록 하는 나라라면 이 나라에 무슨 복지가 있고 교육이 있다고 하겠는가. 백일이 안 된 아기를 돌보기보다 분유값이든 기저귀값이든 벌어야 한다며 어머니도 돈 벌러 가고 아버지도 돈 벌러 나가게만 하는 나라요 회사라면, 노동자 복지와 권리는 무슨 꿈나라 이야기며, 세계 일류 국가라든지 국민소득 이만 달러라고 하는 이야기는 웬 귀신 봉창 두들기는 소리인가. 아기가 아기답게 어머니 사랑과 아버지 사랑을 골고루 듬뿍 받으면서 자랄 수 없다면, 이 나라 앞날이 어찌 되겠는가.

 그러나 나는 이 나라 앞날까지는 걱정하고 싶지 않다. 아니, 이 나라 앞날까지 생각할 겨를이 없다. 아기 기저귀를 빨고 널고 개고 갈고 하는 데에만도 하루해가 짧다. 밥하고 반찬 해서 옆지기를 먹이고 나도 먹는 데에만 해도 눈썹이 휘날리도록 뛰어다녀야 한다. 내 코가 석 자라서, 나라 걱정은 나라일 맡은 정치꾼 님들께서 하시라고 믿고, 나는 내가 선 이 자리에서, 이 동네에서, 아기 울음소리가 끊기는 옛 도심지 골목집에서, 우리 식구 깜냥껏 이 보금자리를 지키고 싶다.





- 옆지기가 말한다. 우리 집은 다른 건 다 나빠도, 옥상 넓게 쓰면서 빨래를 햇볕에 보송보송 말릴 수 있어서 참 좋다고. 다른 어느 집에 가더라도 이렇게 해바라기 잘할 수 있는 집은 없다고. 참말 나도 빨래를 마치고 왼 팔뚝에 걸친 다음 하나하나 옥상 빨래줄에 걸 때 얼마나 개운하고 시원한지. 집 건너편으로 쉴새없이 지나다니는 전철을 보면서 손을 흔들어 주고도 싶다. 막힌 울타리 때문에 전철에서는 우리 집에서 손 흔드는 모습은 못 볼 테지만.

 옆지기가 또 말한다. “당신, 앞으로 또 무슨 책 쓸 거 있어요?” “아이 키우는 이야기도 쓰고.” “그건 나중에 가서 해도 되고.” “왜?” “아니, 그림책이나 요새 나오는 책들을 보면 다 자료 가지고서 다시 만드는 책이라서 너무 재미가 없어. 그냥 장난 같아.”

 아이 키우는 이야기를 책으로 써야겠다는 생각은 따로 하지 않았다. 그러나 요새 들어서 이 생각을 자꾸 하게 된다. 아이 키우는 이야기를 찬찬히 다루어 주는 책이 없다고 느껴서이다. 나라안 사람들이 쓴 책도, 나라밖 사람이 쓴 책을 옮겨 놓은 책도 너무 없다. 아기를 낳기 앞서 얼마나 어떻게 몸과 마음을 갖추어 놓고, 아기를 낳을 때 어떻게 하며, 아기를 낳고 나서 어떻게 지내는가를 아이 엄마와 아기 아빠 눈높이와 눈길에 따라서 엮어 내려간 책을 찾아보기란 참 힘들다. 생생한 목소리가 없다. 눈물콧물 나는 힘겨움과 고단함을 그려낸 발자국이 없다. 무엇보다도, 아이 키우기를 거의 애 엄마 몫으로만 돌리는 사회 흐름을 거스를 만한 책, 아이 키우는 아빠가 되어 가는 삶을 담는 책이 없다. 육아책은 넘치지만 육아책이라 알뜰히 이름붙여 줄 육아책은 찾아보기 힘들다고 할까.

 지난 쉰 날까지는 생각만 했지, 수첩에 이런저런 생각과 이야기를 적을 조각 틈마저 없었다. 옆지기가 조금씩 몸이 나아지고 아기 칭얼거림에 어떻게 맞이해야 하는가를 비로소 몸으로 느낀 이즈음, 조금 숨을 돌리면서 책상 앞에 앉아서 몇 글자 끄적이게 된다. 돌이켜보면 쉰 날까지는 거의 똑같은 하루하루였다. 거의 똑같이 정신없고 바빠맞은 하루하루였다. 날마다 조금씩 바뀌기는 하는데, 이 쉰 날을 고비로 제법 크게 달라지는 모습이 있다고 느낀다. 오늘부터 하루하루 이야기를 적어 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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