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살아가는 말 160] 둥근밥

 


  서울에 있는 고속버스역에서 버스를 타기 앞서 가게에 들릅니다. 이곳에서 밥 될 만한 먹을거리 있나 살피다가 둥그런 밥덩이를 봅니다. 세모김밥도 주먹밥도 아닌 ‘둥근밥’입니다. 비닐로 싼 둥근밥 겉에 ‘둥근밥볶음’이라는 이름 다섯 글자 적힙니다. 세모나게 빚어 김으로 싼 밥이니 세모김밥이고, 주먹으로 쥐어 빚은 밥이니 주먹밥이요, 볶아서 둥글게 뭉쳤으니 둥근밥볶음이 되는군요. 네모난 틀로 찍으면 네모밥이 되겠지요. 별과 같은 모양이 되도록 찍으면 별밥이 될 테고요. 꽃무늬를 담으면 꽃밥이라 하면 어울릴까요. 둥글게 빚은 밥이 보름달과 같다 하면 보름달밥이나 달밥이라 할 수 있나요. 초승달밥이나 반달밥을 빚을 수 있습니다. 능금밥이나 앵두밥을 빚을 수 있습니다. 밥에 알록달록 빛깔을 물들여 무지개밥을 빚을 수도 있어요. 4346.9.18.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우리 말 살려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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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살아가는 말 159] 손꽃

 


  손으로 실을 얻습니다. 손으로 천을 짭니다. 손으로 옷을 짓습니다. 손으로 지은 옷에 손으로 무늬를 넣습니다. 손으로 머리띠와 머리핀을 만들고, 손으로 빗을 만들며, 손으로 단추를 깎습니다. 손으로 꽃을 피웁니다. 손에서 꽃이 피어납니다. 손을 놀리면서 솜씨가 늘고, 솜씨가 늘면서 손꽃이 이루어집니다. 손꽃은 손빛으로 이루는 손꿈입니다. 손꿈 담은 옷을 입으면서 손내음을 맡습니다. 손빛 감도는 옷을 손으로 빨고 마당에 널어 해바라기를 시키면서 따사로운 햇살내음 함께 머금습니다. 두 손으로 아이들 볼을 어루만지고, 두 손을 옆지기 가슴에 대며 콩닥콩닥 싱그러이 뛰는 숨소리를 듣습니다. 4346.9.15.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우리 말 살려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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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살아가는 말 158] 짐돌이

 


  아이들 데리고 읍내로 갑니다. 군내버스를 타고 저잣거리 마실을 갑니다. 두 아이와 함께 가는 길이기에 커다란 가방을 짊어집니다. 우리 식구 먹을거리를 장만하러 가는 길입니다. 마실길에 작은아이가 잠들거나 힘들다 하면 안아야 하니, 천바구니를 챙기기는 하지만, 되도록 등에 짊어지는 큰 가방에 모든 짐을 넣으려 합니다. 무 한 뿌리 감자 한 꾸러미 양파 한 꾸러미 곤약 넷 누른보리 한 봉지 누런쌀 한 봉지 당근 몇 뿌리 가지 몇 달걀 조금 유채기름 한 병 능금 한 꾸러미, 이렁저렁 가방에 넣습니다. 육십 리터들이 큰 가방이 꽉 찹니다. 가방 주머니에는 아이들 먹일 물병이 하나. 짐을 다 넣은 큰 가방을 질끈 메면 가방이 움직이는 결에 따라 몸이 흔들흔들합니다. 큰아이는 혼자서 씩씩하게 걷고, 작은아이도 누나 따라 혼자 걸으려 하다가는 아버지 손을 잡습니다. 돌이켜보면, 아이들 자라는 동안 내 가방에는 아이들 옷가지와 기저귀가 가득했습니다. 자전거나 버스나 기차를 타며 마실을 다니니, 언제나 가방에 이것저것 꾸려 짐꾼이 됩니다. 앞으로 아이들이 무럭무럭 자라 열 살 남짓 되면 아이들 스스로 저희 옷가지쯤 챙기겠지요. 그때까지 아버지는 짐꾼이면서 짐돌이로 살아갑니다. 4346.9.8.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우리 말 살려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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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살아가는 말 157] 삶빛

 


  한자말 ‘생활(生活)’은 이 한자말대로 쓰임새가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이 낱말은 이 낱말대로 즐겁게 쓰면 즐거운 하루 되리라 생각합니다. 다만, 나는 이 한자말을 안 씁니다. 나는 곰곰이 생각을 기울입니다. 이런 한자말이 한겨레 삶에 스며들기 앞서 옛사람은 어떤 낱말을 쓰며 하루를 일구었는지 찬찬히 돌아봅니다. 아마 예전 사람들은 “생활한다”고 말하지 않고 “산다”나 “살아간다”고 말했겠지요. 때로는 ‘살림’이라 가리켰을 테고요. 그러니까, 한자말 ‘생활’은 한국말 ‘삶’과 ‘살림’을 밀어내며 쓰이는 낱말인 셈이에요. 다시금 생각을 기울여 한국말 ‘삶’과 ‘살림’을 차근차근 짚습니다. 즐거이 누리는 삶이라면 향긋한 내음이 번집니다. ‘삶내음’입니다. 살림 알뜰살뜰 꾸리는 사람은 ‘살림꾼’입니다. 살림을 알차게 꾸려 ‘살림빛’ 이룹니다. 살림빛 이루듯, 삶에서도 ‘삶빛’ 이룰 테지요. 삶무늬를 떠올리고 삶결을 헤아립니다. 삶자락과 삶밭과 삶터와 삶꿈을 하나하나 떠올립니다. 삶을 누리는구나 싶으니 ‘삶’과 얽힌 여러 낱말이 가지를 뻗습니다. 그래요, 삶을 빛내는 ‘삶말’이요 ‘삶글’이면서 ‘삶책’이 있어요. ‘삶그림’과 ‘삶사진’과 ‘삶노래’ 또한 있겠지요. 4346.7.20.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우리 말 살려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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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살아가는 말 156] 잎빛

 


  하늘은 하늘빛입니다. 흙은 흙빛입니다. 바다는 바다빛이요, 풀은 풀빛입니다. 감은 감빛이고, 살구는 살구빛입니다. 물이라면 물빛일 테고, 땅이라면 땅빛이 되겠지요. 무지개는 무지개빛입니다. 안개는 안개빛이에요. 눈은 눈빛이고, 꿈은 꿈빛입니다. 사랑이기에 사랑빛이며, 마음이기에 마음빛입니다. 나무는 저마다 달라 나무빛입니다. 나무에 돋는 잎사귀는 나뭇줄기와는 사뭇 다른 잎빛이에요. 꽃을 볼 적에는 꽃빛을 느낍니다. 씨앗은 씨앗빛 되고, 열매는 열매빛 됩니다. 우리 둘레 모든 숨결에는 숨빛이 깃들어 다 다른 이름이 돼요. 개구리는 개구리빛이고, 벼는 벼빛입니다. 사람은 사람빛이며, 제비는 제비빛이에요. 빛을 살피고 빛을 읽습니다. 빛을 헤아리고 빛을 맞아들입니다. 글을 쓰는 사람들은 고운 글빛을 나누고 싶습니다. 말을 들려주는 사람들은 맑은 맑빛을 밝히고 싶습니다. 아이들은 어른들한테서 배움빛을 물려받아요. 어른들은 아이들한테서 놀이빛을 건네받으면서, 서로 웃음빛을 나눕니다. 나무그늘에서 그늘빛을 누리고, 책 한 권 손에 쥐어 책빛을 받아먹습니다. 내 삶을 돌아보면서 삶빛 일구는 길을 걷습니아. 이 길에는 길빛이 환합니다. 4346.7.11.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우리 말 살려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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