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살아가는 말 180] 곁님

 


  몇 해 동안 ‘옆지기’라는 말을 썼습니다. 요즈음 들어 이 말 ‘옆지기’를 우리 살붙이한테는 쓰기 어렵지 않을까 하고 생각합니다. 처음에는 수수하고 투박하다 느껴 즐겁게 썼는데, ‘옆’이라는 낱말이 어떤 뜻인지를 살핀다면 한집 살붙이한테는 이 낱말을 안 쓸 때가 나으리라 생각해요. 왜냐하면, ‘옆’은 나를 한복판에 두고 왼쪽이나 오른쪽 가운데 하나를 가리킬 뿐이에요. ‘옆’과 말뜻이 같은 ‘곁’이라는 낱말이 있어요. 둘은 말뜻은 같아요. 다만 쓰임새가 달라요. ‘옆’은 자리를 가리키는 데에서만 쓰지만, ‘곁’은 내가 가까이에서 돌보거나 아끼는 사람을 가리키는 데에서도 써요. 다시 말하자면, ‘옆지기 = 이웃·동무”입니다. ‘곁지기 = 한솥밥 먹는 살붙이’입니다. 한솥밥을 먹어도 살붙이 아닐 수 있는데, 살붙이 아니면서 한솥밥을 먹는 사이라면 이러한 사람도 ‘곁지기’가 될 테지요. 그러나, 다르게 생각해 보면, ‘곁’뿐 아니라 ‘옆’이라는 낱말에도 새로운 느낌과 쓰임새 담을 만해요. ‘곁님’ 못지않게 ‘옆님’이라 쓸 수 있어요. 그런데, 말느낌을 섣불리 넓히면, 길을 가다가 문득 마주친 낯선 사람을 따사롭게 마주할 이름이 없어요. ‘옆님·옆지기’는 지구별에서 함께 살아가는 모든 이웃과 동무를 가리킬 이름이 되고, 보금자리 가꾸어 함께 살아가는 살붙이는 ‘곁님·곁지기’가 되어야 알맞겠다고 느낍니다. 4346.11.30.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우리 말 살려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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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살아가는 말 179] 얼음비

 


  자전거를 타고 면소재지 우체국 다녀오는 길에 하늘에서 갑자기 얼음이 후두둑 쏟아집니다. 해가 밝게 비추다가 갑자기 매지구름 몰려들더니 쏟아지는 얼음입니다. 눈도 아니고 비도 아닌 얼음입니다. 아이쿠 따갑네, 하면서 맞바람 실컷 쐬면서 얼음비 타타닥 얻어맞습니다. 섣달을 코앞에 두었으니 비라면 몹시 차가웠겠지요. 그나마 얼음비가 나은가 하고 생각하며 다리에 힘을 주고 발판을 구릅니다. 얼음비는 곧 그치고 해가 다시 나옵니다. 뒤죽박죽인 날씨로구나 하고 여기고는 더 힘을 내어 집에 닿습니다. 한숨을 돌립니다. 그나저나 하늘에서 떨어진 얼음은 얼음비일 테지요. 어릴 적에 어른들은 으레 ‘우박(雨雹)’이라고만 말했지 ‘얼음비’라 말한 분이 없습니다. 국어사전에는 ‘누리’라는 낱말이 있는데, 얼음이 되어 떨어지는 비를 막상 ‘누리’라 말한 어른은 못 보았습니다. 날씨를 알리는 신문이나 방송에서도, 마을에서도, 그저 ‘우박’일 뿐입니다. 때로는 굵다란 얼음덩이가 떨어지고, 때때로 얼음구슬이 떨어집니다. 아이들 데리고 자전거마실 나왔다면, 아이들은 하늘에서 얼음이 떨어진다며 까르르 웃으며 놀았을까요. 4346.11.28.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우리 말 살려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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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살아가는 말 178] 글지기, 글순이

 


  글을 쓰는 사람을 가리켜 흔히 ‘작가’라는 이름을 쓰는데, 나는 이 이름이 영 내키지 않습니다. 예전에는 이런 이름을 흔히 썼을 테지만, 이제는 새로운 넋으로 새 이름을 붙일 만하리라 생각합니다. 어느 분은 ‘글쟁이’라는 이름을 쓰기도 하고, ‘글꾼’이라는 이름을 쓰는 분도 있어요. 나도 가끔 이런 이름을 써 보았지만, ‘글쟁이’와 ‘글꾼’도 그다지 반갑지 않아요. 나는 도서관을 열어 꾸리는 일을 하는데 ‘도서관쟁이’나 ‘도서관꾼’처럼 쓸 만하지는 않거든요. 내가 쓰는 이름은 ‘도서관지기’입니다. 집에서 식구들 밥을 늘 차리니 ‘밥지기’라는 이름을 쓰기도 해요. 밥 잘 먹는 아이들한테 ‘밥순이·밥돌이’ 같은 이름을 붙이곤 하고, 책을 잘 읽는 아이들한테 ‘책순이·책돌이’ 같은 이름을 붙이기도 합니다. 문득 한 가지 떠오릅니다. 그러면, 글을 쓰는 내 삶은 ‘글지기’라 하면 되겠다고. 그림을 그릴 적에는 ‘그림지기’ 되고, 사진을 찍는 자리에서는 ‘사진지기’ 되리라 느껴요. 빨래를 할 때에는 ‘빨래지기’입니다. 집을 지키는 날은 ‘집지기’ 되겠지요. 우리 아이들이 무럭무럭 자라 이녁 삶을 스스로 쓸 수 있다면, 아이들한테 ‘글순이·글돌이’라는 이름을 주고 싶어요. 나한테도 스스로 ‘사진돌이·글돌이·도서관돌이’라는 이름을 줄 수 있습니다. 4346.11.26.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우리 말 살려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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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살아가는 말 177] 원 투 쓰리

 


  〈얼굴 찌푸리지 말아요〉라는 노래가 있어요. 나는 이 노래를 1994년인가 1995년에 처음 들었어요. 대학생들이 부르는 민중노래인데, 어느새 이 노래가 아이들이 부르는 노래로도 나옵니다. 어른들 부르던 노래에서는 “동지들이 있잖아요”가 아이들 부르는 노래에서는 “친구들이 있잖아요”로 바뀝니다. 그런데, “전진! 전진하자!”라 흐르는 대목을 “원! 투! 쓰리!”로 바꾸었어요. “가자!” 하고 말할 이야기를 “전진!”이라 말하니 아쉬웠는데, 아이들한테 이 노래를 노랫말 바꾸어 들려주는 어른들은 “하나! 둘! 셋!”이 아닌 엉뚱한 영어를 외칩니다. 아이도 어른도 노래를 영어로 불러야 맛이 나기 때문일까요. 아이도 어른도 노래뿐 아니라 어느 자리에서건 영어를 써야 그럴듯하다고 느끼기 때문일까요. 귀가 아프고 눈이 시립니다. 4346.11.22.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우리 말 살려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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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살아가는 말 176] 박 사랑꽃

 


  대만에서 태어나 살다가 한국으로 와서 살아간다는 어느 분이 텔레비전에 나옵니다. 이녁 이름은 ‘박애화’라고 합니다. 이름이 참 곱다고 생각하다가 문득, ‘애화’란 ‘사랑꽃’을 한자로 적은 말인 줄 깨닫습니다. “박 사랑꽃”이로군요. 대만에서 태어났으니 이분 어버이는 한자로 이름을 지어 주었겠지요. 대만사람이건 중국사람이건 대만말과 중국말은 한자로 적으니까요. 그러면, 이분 어버이가 한국사람이라면 어떤 이름을 지어 줄 만할까요. 사랑스러운 딸을 낳은 어버이는 아이한테 어떤 이름을 붙여서 부를 때에 즐거울까요. 첫째 아이한테 ‘사랑꽃’이라는 이름을, 둘째 아이한테 ‘마음꽃’이라는 이름을, 셋째 아이한테 ‘웃음꽃’이라는 이름을, 넷째 아이한테 ‘노래꽃’이라는 이름을 나누어 줄 수 있어요. 아이들은 이 이름을 곱게 받아들여 젊은 나날 누리고 할매 할배 되는 때에도 고운 이름에 서린 고운 넋을 둘레에 기쁘게 베풀 만합니다. ‘애화·정화·소화·가화’가 아니어도 아리땁습니다. 4346.11.15.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우리 말 살려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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