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살아가는 말 191] 뻐꾸기

 


  아이들과 자전거를 타고 마실을 나가는 길입니다. 마을 어귀를 벗어날 즈음, 샛자전거에 앉은 큰아이가 “아버지, 뻐꾸기 눌러 봐요, 뻐꾸기.” 하고 말합니다. “응?” 하고 살짝 고개를 갸우뚱하다가, 아하 하고 깨달으면서, 자전거 손잡이에 붙인 ‘뿡뿡’ 소리나는 나팔을 누릅니다. 딸랑딸랑 울리면 ‘딸랑이’인데, 우리 자전거에 붙인 조그마한 나팔에서 나오는 소리를 아이는 뻐꾸기 소리로 느껴 ‘뻐꾸기’라고 하는구나 싶습니다. 뿡뿡 뿡뿡 소리를 내면서 새롭게 생각해 봅니다. 일곱 살 어린이 귀에는 이 소리가 ‘뻐어꾹 뻐어꾹’처럼 들렸을까요. 곰곰이 귀를 기울이니, 이렇게 들을 수 있습니다. ‘빵빵’으로 들었으면 아이는 ‘빵빵이’라고 말했을는지 모르고, ‘뾰롱뾰롱’으로 들었으면 아이는 ‘뾰롱이’라고 말했을는지 몰라요. 듣는 대로, 느끼는 대로, 받아들이는 대로 새 이름이 태어납니다. 천천히 천천히 나팔을 누르면서 뻐어꾹 뻐어꾹 소리를 내어 봅니다. 4347.1.29.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우리 말 살려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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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살아가는 말 190] 아버지

 


  아이하고 지내면서 그림책도 읽히고 만화책도 읽힙니다. 만화영화도 보고 그냥 영화도 봅니다. 우리 집에는 텔레비전이 없으니 할머니 할아버지 계신 집에 찾아갈 적에는 그곳에 있는 텔레비전도 함께 봅니다. 이렇게 보고 저렇게 볼 적마다 아이는 영화나 방송에서 ‘아빠’라는 말을 듣습니다. ‘엄마’라는 말을 듣습니다. 우리 집 큰아이는 2014년부터 일곱 살입니다. 이제 일곱 살이 된 만큼, 큰아이더러 ‘어머니와 아버지’를 부를 적에 ‘어머니와 아버지’로 부르도록 이야기합니다. 그런데, 만화영화나 영화나 방송에 나오는 사람들은 젊거나 어리거나 늙거나 하나같이 ‘엄마와 아빠’라고만 해요. 그래서 오늘도 큰아이는 아버지한테 한 마디 묻습니다. “아버지, 왜 책이랑 컴터에선 ‘아빠’라고 불러? ‘아버지’라고 부르면 좋겠다.” 그래, 우리 예쁜 아이야, 다른 어른들이 말넋과 말빛을 한결 사랑스레 깨달을 수 있으면 참으로 좋겠다. 4347.1.26.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우리 말 살려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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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살아가는 말 189] 좋아요

 


  서울시 공문서에 나오는 낱말과 말투를 알맞고 올바르며 쉽게 다듬는 일을 하면서 ‘수범’이라는 말을 자주 봅니다. 어떤 뜻으로 이 말을 쓰는가 하고 고개를 갸우뚱하다가 한국말사전을 뒤적입니다. ‘垂範’은 “몸소 본보기가 되도록 함. ‘모범’으로 순화”라 나옵니다. 그렇구나 하고 고개를 끄덕이며 ‘모범(模範)’이라는 말을 다시 찾아보니, “본받아 배울 만한 대상”이라 나옵니다. 한국말사전을 덮고 어릴 적을 떠올립니다. 국민학교 때나 중·고등학교 때 학교에서는 ‘타의 모범이 되므로 이 상장을 수여함’과 같은 말투로 상장을 주곤 했어요. 중·고등학교 다닐 적에는 이 말이 무슨 뜻인지 알았지만 국민학교 다닐 적에는 ‘타의 모범’이 무슨 소리인지 몰랐어요. 어른들이 이렇게 말하니 그러려니 하고 여겼을 뿐이에요. 일제강점기 일본 말투인데, “남한테 좋은 모습을 보여주므로”라든지 “남이 배울 만한 훌륭한 모습이므로”를 가리켜요. 그러니까, 교사로서 아이들을 마주하는 어른들 가운데 이녁 스스로 어떤 말씨를 아이들한테 들려주거나 보여주거나 가르치는가를 제대로 깨달은 분이 거의 없던 셈이에요. 그무렵에 상장을 받은 아이 가운데 이 말뜻을 똑똑히 알아챈 동무가 얼마나 있었을까요. 네 몸가짐이 참 좋구나, 네 모습이 참 훌륭하구나, 네 매무새가 참 아름답구나, 네 마음씨가 참 곱구나, 하고 꾸밈없이 따사로이 이야기할 수 있을 때에 참다운 어른이리라 생각해요. 4347.1.26.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우리 말 살려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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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살아가는 말 188] 빨래터

 


  마을 어귀에 빨래터가 있습니다. 이곳은 예나 이제나 빨래터입니다. 빨래를 하는 곳이라 빨래터입니다. 저마다 빨랫감을 이고 지면서 이곳으로 찾아와요. 빨랫감은 빨래통에 담아서 가져올 테고, 손으로 복복 비벼서 빤 옷은 집집마다 빨랫줄에 널어 말립니다. 빨랫줄은 바지랑대로 받칩니다. 빨래를 하는 어버이 곁에서 아이들은 빨래놀이를 합니다. 저희도 빨래를 한다면서 조그마한 손을 꼬물꼬물 움직여 복복 비비거나 헹구는 시늉을 합니다. 그렇지만, 시골마을마다 있는 빨래터에서 빨래를 하는 사람은 거의 사라집니다. 시골집마다 빨래하는 기계인 ‘세탁기’를 둡니다. 도시에서는 빨래를 맡아서 해 주는 ‘세탁소’가 있습니다. 시골살이에서는 빨래터요 빨랫줄이지만, 도시에서는 세탁기요 세탁소입니다. 4347.1.25.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우리 말 살려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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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살아가는 말 187] 댕이꿀

 


  고흥사람은 굵고 투박하게 생긴 껍데기가 그대로 있는 굴을 불에 구워서 먹곤 합니다. 바닷가에서 줍거나 따서 구워 먹기도 하고, 읍내에서 그물주머니에 담긴 ‘댕이꿀’을 장만해서 구워 먹습니다. 껍질이 그대로 있는 굴이니 ‘껍질굴’인 셈일까요. 다른 고장에서는 ‘각굴’이라고들 말하지만, 고흥에서는 ‘댕이꿀’이라고 합니다. ‘굴’이라고도 않고 ‘꿀’이라 합니다. 바닷가에서나 읍내에서 “굴 있어요?” 하고 여쭈면 아무도 못 알아듣습니다. 서울말로는 벌이 꽃을 찾아다니며 모은 달콤한 물을 ‘꿀’이라 할 텐데, 이곳에서는 벌꿀은 ‘벌꿀’이고, 댕이꿀은 ‘댕이꿀’입니다. 시골에서 나고 자란 사람 가운데 한국말사전 들추면서 말을 배우는 사람은 없습니다. 학교나 교과서나 신문이나 방송으로 말을 배우는 사람도 없습니다. 먼먼 옛날부터 어머니와 아버지가 쓰는 말을 고이 물려받습니다. 이 말은 앞으로도 고이 물려주겠지요. 비록 오늘날 아이들은 시골에서 나고 자랐어도 시골에서 안 살고 도시로 나가지만, 시골에 남은 할매와 할배 입에서 입으로, 또 시골로 들어와서 살아가는 사람들 입에서 입으로, ‘댕이꿀’이라는 이름은 조물조물 이어가리라 느낍니다. 4347.1.12.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우리 말 살려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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