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어제책 / 숨은책읽기

숨은책 868


《모여라 꼬마과학자》

 박종규 외 엮음

 태창출판사

 1992.5.15.



  우리 아버지는 어린배움터(국민학교) 길잡이였기에, 아버지가 보는 ‘교사용 지도서’를 슬쩍 엿보곤 했습니다. 배움터에서 듣는 이야기가 도무지 알쏭하고 어지러우면 “참말로 뭔 소리래?” 하면서 뒤적였는데, 스무 살부터 인천을 떠나 서울에 깃들어 여러 헌책집을 다니다가 낯익은 그림이며 빛꽃(사진)을 으레 만났어요. “어? 어!” 하며 놀랐습니다. 우리나라 배움터(초·중·고등학교)에서 쓰는 웬만한 글·그림·빛꽃은 일본책을 훔쳤거나 베꼈더군요. ‘운동회 마스게임’조차도 일본에서 꾸린 틀을 고스란히 딴 줄 뒤늦게 알고는 여태까지 뭘 배운 나날인가 싶어 아찔했어요. 《모여라 꼬마과학자》는 ‘대전직할시 동구 가양2동 274-2’에 있었다는 펴냄터에서 냈고, ‘서울 신사초등학교 도서실’에 있다가 흘러나왔습니다. ‘어린이 과학’을 들려준다는 줄거리이지만, 몽땅 일본책을 훔쳤습니다. 물씬 티나는데, 이 나라 어른들은 낯빛 하나 안 바꾸면서 이런 책을 엮어서 장사를 해야 돈벌이가 된다고 여긴 마음일까요? 이런 책이 얼마나 허접한지 못 느끼면서 배움책숲(학교도서관)에 들인 길잡이는 어떤 눈길일까요? 어디부터 뜯어고쳐야 할까요. 무엇부터 갈아엎어야 하나요. 지나갔으니 없던 일로 여기거나 지울 수 없습니다.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선생님, 우리말이 뭐예요?》,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밑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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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위에서 중얼거리다 - 기형도 30주기 시전집
기형도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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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어제책 / 숨은책읽기

숨은책 865


《기형도 산문집》

 기형도 글

 살림

 1990.3.1.



  열다섯 살 무렵 글벗(펜팔)을 사귀는데, 서로 얼굴을 보고 싶다고 느껴, 인천에서 안산으로 이따금 찾아갔습니다. 종이에 글로는 주절주절 썼지만, 막상 입을 열어 말을 틔우기란 어렵더군요. 글월을 주거니받거니 하는 만큼 ‘곁에 두는 책’을 얘기했고, ‘기형도’ 글을 읽어 보았느냐 묻는 말에, 나중에 책집에 가서 읽겠다고 했습니다. 이렇게 《기형도 산문집》을 처음 만나는데, 영 뭔 글을 풀어내려는지 종잡기 어려운 술타령 같았어요. 푸름이라서 혼자 먼마실을 다닌 적이 없기도 하기에, ‘서울내기(서울에서 살며 일한) 기형도’ 씨가 전라남도 여러 고장을 퀴퀴하거나 추레한 곳으로 그린 글은 참 거북했어요. 인천 〈대한서림〉에서 읽다가 내려놓았습니다. 이분은 인천·부산·대전도 초라하다고 느껴 숨막힐 마음이겠더군요. 서울로 돌아가서야 시원하게 숨통이 트인다는 글자락을 읽고는 어쩐지 안쓰럽기까지 했습니다. 어느 곳이나 사람 사는 마을인걸요. 누구나 다르게 하루를 짓는걸요. 서슬퍼런 ‘전두환 총칼나라’에서 정호승 씨는 월간조선 기자였고, 기형도 씨는 중앙일보 기자였습니다. 이런 분들이 남긴 글을 어떻게 읽을 적에 우리 스스로 이웃하고 어깨동무를 할까요? 우리는 ‘서울로(in Seoul)’를 해야 할까요?


ㅅㄴㄹ


+


《기형도 산문집》(기형도, 살림, 1990)


그녀는 이제 열 살 국민학교 4학년인데

→ 아이는 열 살 어린배움터 넉걸음인데

→ 이제 열 살 씨앗배움터 넉걸음인데

28쪽


순천의 야경은 쓸쓸하고 부랑자의 그것이었다

→ 순천은 밤빛이 쓸쓸하고 떠돌이 같았다

→ 순천 밤하늘은 쓸쓸하고 나그네 같았다

→ 순천 불빛은 쓸쓸하고 뜨내기 같았다

36쪽


그들을 속물근성으로 몰아부친 것은 나의 이기(利己)이다

→ 나는 그들을 멋대로 돈벌레로 몰아붙였다

→ 나는 그들을 함부로 바보라고 몰아붙였다

64쪽


그녀는 앵무새처럼 따라하며 중심으로 잡으려 주춤거리며 승강구로 가더니

→ 그이는 따라새처럼 말하며 가운데를 잡으려 주춤거리며 어귀로 가더니

→ 아가씨는 내 말을 따라하며 밑동을 잡으려 주춤거리며 들머리로 가더니

67쪽


지금 추억만으로서도 충분히 사랑할 수 있는 상현달 같은 여자

→ 이제 옛생각만으로도 얼마든지 사랑할 수 있는 달 같은 님

→ 오늘 곱씹기만 해도 너끈히 사랑할 수 있는 오른달 같은 빛

79쪽


나는 사내의 유도심문에 빠져드는 듯한 생각이 든다

→ 나는 사내가 꼬드기는 대로 빠져들었다고 느낀다

→ 나는 사내가 홀리는 대로 빠져들었다고 생각한다

100쪽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선생님, 우리말이 뭐예요?》,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밑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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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어제책 2023.9.12.

숨은책 862


《とりぱん 26》

 とりの なん子 글·그림

 講談社

 2020.3.23.



  푸른배움터를 다니던 어느 날, 구정물터(폐수처리장)에서 흘러나오는 구정물로 범벅이면서 코를 찌르는 도랑에 내려앉은 하얀새를 자주 보았습니다. 둘레에 물으니 ‘백로(白鷺)’라 한다는데, 깃빛이 하얗다면 ‘하얀새·흰새’라 하면 될 텐데 싶더군요. 무엇보다도 끔찍한 구정물이 흐르는 저 냇물에서 저 하얀새가 걱정스러운데, 하얀새를 바라보는 저를 지켜본 동무들은 “야, 저 새는 어쩌다 내려앉았잖아? 우리는 날마다 구정물 옆을 지나다니고, 하루 내내 구정물 곁에서 살잖아?” 하더군요. 화학공장 곁에 있던 구정물터는 이제 흙이랑 잿더미(시멘트)로 묻혔고, 여기에 잿집(아파트)을 올렸더군요. 우리는 집터에 무엇이 있었는지 몰라도 될까요? 풀조차 안 돋던 죽음터를 덮으면 감쪽같이 잊힐까요? 《とりぱん 26》은 첫걸음이 나온 지 열다섯 해 만에 나왔다고 합니다. 한글판 《토리빵》은 2012년에 일곱걸음까지 나오고 끝이지만, 일본판은 2023년까지 서른한걸음이 나옵니다. 새바라기를 하면서 새를 그림꽃(만화)으로 담아내는 꾸러미는 앞으로도 오래오래 나오리라 봅니다. 인천 골목집을 떠나 전남 고흥 시골집에서 살며 하루 내내 새를 만나고 새노래를 듣는데, 새를 마주하면 마음부터 새롭고, 모든 말이 노래처럼 흐르더군요. 새를 품을 줄 알아야 사람도 사람다웁지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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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선생님, 우리말이 뭐예요?》,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밑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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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어제책 2023.9.12.

숨은책 860


《文鳥樣と私 7》

 今市子 글·그림

 靑泉社

 2009.5.14.



  시골에서 살아가며 새를 키우지는 않습니다. 들풀이 푸르게 우거지는 뒤꼍에, 나무가 가지를 마음껏 뻗는 마당을 누립니다. 이러한 보금숲을 이루니 풀벌레가 넉넉히 깃들고, 어느새 뭇새가 신나게 찾아들거나 둥지를 틉니다. 새는 풀벌레랑 애벌레랑 거미도 즐기지만, 꽃송이하고 열매도 즐깁니다. 밥살림을 챙긴 새는 으레 노래를 남깁니다. 나뭇가지에 앉아 노래하고, 하늘을 가르며 춤추는 새입니다. 《文鳥樣と私 7》을 일본판으로 장만했습니다. 2023년까지 어느새 스물한걸음이 나오는데, 틈틈이 일본판으로 갖춥니다. 2005년까지 《문조님과 나》라는 이름으로 여섯걸음이 한글판으로 나왔으나, 더는 안 나옵니다. 새를 아끼는 사람이 늘고, 새바라기를 하는 사람이 늘지만, 어쩐지 ‘새를 다루는 책’은 썩 읽히지 않는 듯싶습니다. 그런데 새를 아낀다거나 새바라기를 하는 분은 으레 서울내기(도시인)예요. 여러 시골내기도 새를 아끼거나 새바라기를 하지만, ‘사람 먹을 열매’를 너무 쫀다며 싫어하기 일쑤입니다. 새가 살아갈 터전을 자꾸 빼앗고, 새가 스스로 먹이를 찾을 숲들바다를 자꾸 망가뜨리는 사람인데, 정작 새가 배를 곪다가 열매를 조금 쪼거나 훑어도 나무랍니다. 새를 이웃으로 두지 않으면서 사람빛을 잃어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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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선생님, 우리말이 뭐예요?》,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밑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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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어제책 2023.9.12.

숨은책 859


《나는 한국을 대표하고 있다》

 편집부 엮음

 대한공론사

 1974.7.10.



  서울 아닌 인천에서 나고자라면서 익히 듣던 ‘수도권’이라는 낱말은 썩 들을 만하지 않았습니다. ‘서울곁’이나 ‘서울밭’에서 맴도는 사람들을 뭉뚱그리는구나 싶더군요. 이 인천에는 ‘서울에 못 간 사람’이 많습니다. 어느 모로 보면 ‘쓴맛(실패)’이지만, 달리 보면 ‘조촐살림’입니다. 스무 살을 넘고서 온나라를 두루 다니는 동안 인천처럼 골목마을이 드넓은 곳을 못 봤어요. ‘서울로 못 간’ 가난하고 작은 사람들이 그야말로 널따랗게 마을을 이루는 보금자리예요. 어느 날 문득 “인천은 골목밭이네!” 하고 깨닫습니다. ‘골목나무·골목집·골목꽃·골목빛·골목고양이·골목사람·골목아이·골목할매·골목살림·골목빨래·골목하늘·골목놀이’처럼 ‘골목-’을 넣은 낱말을 끝없이 지어 보았습니다. 《나는 한국을 대표하고 있다》는 이웃나라로 마실길을 나서는 사람이 품다가 이웃사람한테 건네라고 마련한 조그마한 꾸러미입니다. ‘관광객 = 외교관’이라고 내세우는 셈인데, 수수한 사람들이 숲빛으로 수더분하게 두런두런 수다꽃을 피우는 길이 아닌, 우쭐우쭐 자랑하라는 줄거리가 가득합니다. 작은마을은 나쁠까요? 작은길은 틀렸(실패)을까요? 나는 나를 말하고, 너는 너를 밝힙니다. 우리는 다르게 사랑입니다.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선생님, 우리말이 뭐예요?》,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밑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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