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어제책

숨은책시렁 230


《일제농림수탈상》

 미승우

 녹원

 1983.11.1.



  일본은 섬나라라 합니다만 그리 작지 않습니다. 들도 숲도 내도 꽤 크고 넓어요. 이러면서 바다를 품었지요. 지구에 있는 뭇나라도 아무리 조그맣더라도 들이며 숲이며 내이며 알맞춤하기 마련입니다. 그런데 일본은 스스로 뭔가 모자라다고 여겼어요. 아무래도 우두머리가 서면서 뭇사람을 총칼로 다스리려 할 적부터로구나 싶은데, 이때부터 옆나라를 기웃기웃합니다. 한국도 매한가지입니다. 고구려·백제·신라·가야·부여로 갈라서 우두머리가 서로 쳐들어가기 바빴는데요, 왜 자꾸 스스로 모자라다고 여겨 이웃을 윽박질러서 뭔가 빼앗으려고 했을까요? 옆나라나 옆마을을 짓밟아야 스스로 살아남는다는 생각은 누가 퍼뜨렸을까요? 《일제농림수탈상》은 한국으로서는 일제강점기에 제국주의 군홧발이 이 땅을 어떻게 얼마나 괴롭히면서 을러댔는가를 차근차근 밝힙니다. 교과서에 없는, 아니 교과서가 다루지 않은, 수수한 사람들 살림자리가 흔들리고 고달팠던 대목을 짚어요. 역사라고 한다면 이처럼 수수한 살림자리에서 사람들이 겪거나 치러야 했던 이야기를 다루어야지 싶습니다. 통계나 도표를 넘어, 살림길을 읽을 적에 비로소 역사이고 학문입니다.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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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어제책

숨은책시렁 229


《우리들 가진 것 비록 적어도》

 나보순 외

 돌베개 편집부 엮음

 돌베개

 1983.11.20.



  2001년 1월 1일부터 사전 편집장으로 일하며 모든 틀이며 길을 처음부터 새로 지어서 닦기로 했습니다. 사전에 실을 올림말이며, 벼리에 찾아보기에 보탬글이며, 비슷한말을 다루는 길이며, 뜻풀이에다가 보기글까지, 이제껏 한국에서뿐 아니라 이웃나라에서도 없던 새로운 사전이 되기를 꿈꾸었습니다. 한국뿐 아니라 이웃나라도 올림말에 붙이는 보기글은 으레 ‘이름난 어른문학’이나 ‘신문·논문 글월’에서 따기 마련입니다. 저는 이 대목이 참 못마땅했어요. 동시·동화를 비롯해서 만화책하고 ‘할머니·할아버지 말을 받아적은 구비문학’하고 ‘노동자 삶글’도 사전 보기글로 실어 마땅하다고 여겼고, 힘껏 이 보기글을 그러모았습니다. 이때에 책 하나를 통째로 보기글로 담고 싶던 ‘일하는 사람 삶글’로 《우리들 가진 것 비록 적어도》가 있어요. 먹물들 죽은 글이 아닌, 땀흘려 살림을 노래하는 일순이·일돌이 싱그러운 글이야말로 사전이라는 책에 담을 만하다고 여깁니다. 수수한 삶을, 투박한 손길을, 싱그러운 눈빛을, 씩씩한 몸짓을, 다부진 어깻짓을, 여기에 하루를 아름다이 가꾸고 싶은 마음으로 일어서는 작은 물결이 반가웠어요.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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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어제책

숨은책시렁 228


《미혼의 당신에게》

 다나까 미찌꼬 글

 김희은 옮김

 백산서당

 1983.1.25.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는지 모르던 1994∼2002년 무렵 늘 책에만 파고들었습니다. 나라도 싫고, 사내란 몸도 싫고, 나이 먹은 어른이란 분들 몸짓도 싫고, 출판사에 들어가서 일하지만 책마을 사람들 거짓말도 싫고, 좋은 것은 하나도 못 찾았어요. 그러나 마을마다 조그맣게 웅크린 헌책집은 가멸지게 품은 숱한 책으로 마음을 다독이면서 ‘어떻게 살아야 할는지 모르겠으면, 아직 몰라도 되니, 앞날을 걱정하기보다는 오늘 할 일을 그리면서 네 발길이 닿는 대로 가렴’ 하고 속삭였습니다. 헌책집이 속삭이는 말에 날마다 새로 기운을 차렸고, 서울 용산에 있는 〈뿌리서점〉에서 《미혼의 당신에게》를 만납니다. 이때는 판이 끊어진 지 얼추 스무 해쯤 되었는데, 이런 책이름이라면 젊은 가시내도 사내도 안 들여다볼 듯하다 싶었으나, 펴낸곳이 백산서당이기에 속은 다르리라 여겼습니다. 참말 속이 다르더군요. 젊은 아가씨더러 ‘섣불리 짝지을 생각은 말라’면서, 삶도 사람도 사랑도 슬기롭게 다스리는 길을 가라고 힘주어 밝혀요. ‘가시내도 사내도 아닌 사랑스러운 사람’이 먼저 되라는 줄거리에 크게 배웠어요. 여성학을 넘은 인생학 아름책입니다.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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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은책시렁 227


《岩波寫眞文庫 37 蚊の觀察》

 岩波書店 編集部·岩波映畵製作所

 岩波書店

 1951.7.30.



  2018년으로 접어들 무렵 고흥군은 저희를 아주 눈엣가시로 여겼어요. 고흥군에서 꾀하는 막삽질을 고흥 바깥에 알리는 글을 꾸준히 썼거든요. 고흥군은 핵발전소, 화력발전소, 폐기물발전소, 대규모 관광단지, 광주청소년수련원 대단지를 끌어들이려 무던히 애썼고, 군사드론시험장까지 밀어붙입니다. 고흥교육지원청은 우리 책숲을 쫓아내려고 폐교임대비를 터무니없이 세게 불렀는데요, 이때 목돈을 빌려주신 분이 여럿 계셨어요. 바가지 임대비를 고맙게 치르고서 남은 돈은 열일곱 해 만에 일본마실을 하면서 도쿄 〈책거리〉에서 이야기꽃을 펴는 길삯으로 삼았습니다. 도쿄 책골목에서 알뜰한 책도 큰짐으로 장만했고요. 이때에 《岩波寫眞文庫 37 蚊の觀察》을 만났는데요, 일본 ‘암파서점’은 1950년부터 ‘사진문고’를 그무렵 “100圓”이란 값으로 내놓았습니다. 대단하더군요. 일본은 그들 힘만으로 온갖 갈래를 고루고루 짚는 값싸고 가벼우면서 속깊은 사진문고를 줄줄이 내놓았거든요. 한국은 1951년에 ‘모기 사진책’을 꿈도 못 꾸었습니다. 2017년에 《모기가 궁금해?》가 비로소 나왔으니 예순여섯 해가 뒤처진 셈이로군요.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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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어제책

숨은책시렁 226


《로타와 자전거》

 아스트릿 린드그렌 글

 일론 비클란드 그림

 차미례 옮김

 문선사

 1984.6.15.



  ‘백제’란 출판사가 있었습니다. 이 출판사를 차린 분은 신문기자였다는데, 어느 날 술을 잔뜩 마신 채 택시에서 ‘박정희 개새끼’ 하고 씨부렁거린 바람에 택시일꾼이 경찰서로 바로 데려가느라 기자를 그만둬야 했고, 출판사를 차렸으며, ‘과레스끼 소설책’이 얼결에 잘 팔려서 ‘그렇다면 한국에 너무 모자란 그림책을 내자’고 생각해서 ‘현대세계그림걸작동화’ 스무 자락을 한국말로 옮깁니다. 그러나 영어 교재에 손을 대다가 쫄딱 무너졌고, 이 그림책꾸러미는 1984년에 다른 출판사로 옮겨서 나왔지요. 숱한 인문책을 옮긴 차미례 님이 그림책까지 옮긴 줄 아는 분이 있을까요? 《로타와 자전거》는 1982년, 1984년, 이렇게 한국에 나왔으나 거의 알려지지 못했습니다. 이러다가 2014년에 이르러 《난 자전거를 탈 수 있어》란 이름으로 바뀌어 새로 나왔지요. 새옷을 입고 나온 “로타와 자전거” 그림책을 곧장 장만하고 가슴에 안으면서 눈물을 흘렸습니다. 이 아름다운 그림책을 알아본 출판사가 드디어 나타났구나 하는 마음이었어요. 우리 집 아이들한테 “로타와 자전거”를 얼마나 자주 읽어 주었는지 모릅니다. 종이가 낡고 닳아 찢어지도록.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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