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어제책 / 숨은책읽기 2024.2.14.

숨은책 910


《밥의 위기 생명의 위기》

 이병철 글

 종로서적

 1994.1.30.



  봄마다 중국에서 먼지바람이 분다고 하지만, 우리나라에 부릉부릉 물결치는 쇳덩이가 내뿜는 먼지부터 매캐합니다. 인천을 비롯한 서울곁에 세운 뚝딱터를 돌릴 적에 나오는 먼지와 구정물과 쓰레기도 대단합니다. 무엇보다 서울과 서울곁에서 쏟아지는 쓰레기가 어마어마합니다. 살림을 손수 안 지으면서 돈을 많이 버는 길로 나라틀을 바꾸면서 푸른숲이 줄고, 물하고 바람이 망가져요. 먹을거리도 마땅히 이웃나라에서 잔뜩 사들입니다. 《밥의 위기 생명의 위기》는 이런 나라틀을 걱정합니다. 그런데 먼지나라를 걱정하는 글이 썩 어려워요. 온나라는 서울에 갇혀서 쳇바퀴라면, 우리말은 ‘생명공동체운동’처럼 어렵게 씌우는 굴레에 허덕입니다. 가만 보면 ‘생명 + 공동체 + 운동’ 같은 한자말씨는 일본이 지었어요. 우리가 손수 살림을 지어야 밥도 땅도 하늘도 살아난다고 여긴다면, 마음을 담을 말도 우리가 손수 지을 노릇입니다. 글쓴이는 집안일을 도맡는 곁님을 걱정하는 글을 남기기도 하더군요. 그저 함께 일하고 함께 쉬는 하루를 새롭게 지으면서 ‘집안일 즐기는 아재’라는 새길을 노래한다면, 걱정도 겉돌이도 벗어날 텐데요.


어둔 별이 떠오를 때 / 일터에서 돌아와 / 아내는 / 부엌에서 밥을 짓고 있다 / 내가 지친 몸으로 / 벽에 기대어 있을 때 / 아내는 나보다 더 지친 몸으로 / 머리카락에 붙은 짚 검풀도 / 털어내지 못한 채 / 하루의 남아 있는 마지막 기운을 쏟아 / 밥상을 만들고 있다 (아내는 밥이다/149쪽)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우리말꽃》,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밑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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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어제책 / 숨은책읽기 2024.1.30.

숨은책 905


《三星美術文庫 70 헤겔에서 하이데거로》

 아르투르 휩셔 글

 김려수 옮김

 삼성미술문화재단

 1975.8.20.



  1994년에 인천하고 서울 사이를 날마다 오가면서 열린배움터를 다닐 무렵, ‘복학생’이란 이름을 처음 들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돈·힘·이름 셋 가운데 하나조차 없는 수수한 사내라면 모두 몇 해씩 다녀와야 하는 싸움터에서 헤매다가 돌아온 언니를 ‘복학생’이라 이르고, 다들 꺼리거나 멀리하더군요. 그러나 저는 오히려 이분들한테서 “살아온 길”을 비롯해 “나도 곧 다녀와야 할 싸움터 이야기”를 미리 들을 수 있으리라 여겨 가까이 지냈습니다. 어느 날 언니가 “야, 근데 있잖아, 군대 가서 일과 끝나고 공부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아니야. 그냥 삼 년 동안 신나게 두들겨맞고 돌대가리가 되어서 돌아와야 하더라. 아주 미치겠다.” 하고 털어놓더군요. 설마 싶었으나 이듬해 1995년에 싸움터에 들어가서 이태 남짓 지내고 보니, 그야말로 책을 쥘 틈도 없지만 책부터 둘레에 아예 없고, 새뜸(신문·방송)마저 없이 아예 바깥과 담을 쌓고 바보로 굴러야 하더군요. 싸움터에서 돌아온 뒤 헌책집에서 곧잘 ‘진중문고’를 스칠 적마다 피식 웃고 혼잣말을 했습니다. “사람이 사람일 수 없도록 가두어 짓밟으면서 시늉으로 내미는 진중문고조차 사단 급은 되어야 구경하는데, 이 무슨 헛짓인가?” 1975년에 진중문고이던 책은 한자가 새카맣습니다. 그무렵에 누가 읽으라는 주머니책이었을는지 궁금합니다.


“이 圖書는 國防部에서 將兵들의 情緖涵養을 위한 陳中文庫로 配布하는 것임.”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우리말꽃》,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밑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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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어제책 / 숨은책읽기 2024.1.30.

숨은책 906


《유시민과 함께 읽는 헝가리 문화이야기》

 유시민 글

 푸른나무

 2000.7.22.



  하늬녘에 깃든 헝가리라는 나라에서 나고자란 숱한 사람 가운데 둘을 곧잘 떠올리곤 합니다. 한 사람은 ‘로버트 카파’이고, 다른 한 사람은 ‘이일라(Ylla)’입니다. 두 사람은 헝가리에서 태어났지만, 두 빛그림을 헤아릴 적에 ‘헝가리스럽다’고 느끼거나 생각한 적이 없습니다. 그저 두 빛결에 서린 숨소리와 손길과 마음꽃을 읽을 뿐입니다. 《유시민과 함께 읽는 헝가리 문화이야기》라는 책이 있어서 읽었습니다. 깜짝 놀랐습니다. 어쩜 이렇게 헝가리를 비아냥에 삿대질로 깔아뭉갤 수 있는지, 눈을 비비고 다시 읽었는데, 그저 아무 말이 안 나오더군요. 어느 나라나 어수룩하거나 얼뜬 사람이 있고, 참하거나 어진 사람이 있습니다. 엉성하거나 뒤틀린 사람이 있고, 착하거나 밝은 사람이 있어요. 그렇지만 유시민 씨는 헝가리를 깎아내리고 싶은 듯하더군요. “헝가리인은 서유럽 사회에 잘 보이려고 무진장 애쓴다(10쪽).”, “헝가리인은 언제나 비관적이다(14쪽).”, “헝가리인은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파하는 종족이다(25쪽).”, “정조 관념이 높아서가 아니라 너나없이 바람을 피우기 때문이다(51쪽).”, “여자가 남자보다 내숭을 더 많이 떤다는 것을 입증하는 것일 뿐이니까(51쪽).” 같은 말이 처음부터 끝까지 쏟아집니다. 이처럼 얕고 고약하고 덜된 붓끝으로는 사람길하고 그저 멀 뿐입니다.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우리말꽃》,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밑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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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어제책 / 숨은책읽기 2024.1.30.

숨은책 907


《고양이 라면 1》

 소시니 켄지 글·그림

 오경화 옮김

 학산문화사

 2009.12.25.



  어떤 밥을 얼마나 먹어야 입이 안 짧다고 여길 만한지 잘 모릅니다. 모든 숨결은 다르기에 받아들이는 다른 숨결이 다릅니다. 해바람비만으로도 넉넉할 수 있고, 다른 목숨붙이를 고기밥으로 삼아야 할 수 있습니다. 풀 한 줌으로 넉넉할 수 있고, 닭이나 오리나 메추리가 베푸는 알을 누리고 싶을 수 있습니다. 《고양이 라면》은 모두 여섯 자락으로 나오고서 자취를 감추었습니다. 짤막짤막 끊는 줄거리로 오래 이은 그림꽃입니다. 그냥 수수하게 튀김국수를 끓일 마음이 아닌, 늘 뭔가 다르게 국수를 삶거나 튀기려고 하는 고양이가 사람들하고 어우러지는 이야기라고 할 만합니다. 고양이 손으로도 국수를 합니다. 고양이도 사람하고 말을 섞고 생각을 나눕니다. 맛이 있거나 없거나 서로 헤아리려는 마음이 흐릅니다. 터무니없다고 여겨 웃어넘길 수 있고, 이런 삶이 있겠구나 하고 곰곰이 돌아볼 수 있습니다. 어느 쪽이든 안 나빠요. 그저 밥살림을 딱 자르거나 담을 안 세우면 됩니다. 으리으리 잔칫밥이어야 푸짐하지 않아요. 놀랍게 차려내어야 즐겁지 않아요. 국수 한 그릇을 앞에 두고서 수다꽃을 펼 적에 즐겁습니다. 국 하나에 밥 한 한 그릇 놓고서 두런두런 웃음꽃을 피울 적에 하루가 넉넉해요.


#KenjiSonishi #そにしけんじ #猫ラ?メン


ㅅㄴㄹ


※ 글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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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은책 908


《소년탐정 김전일 1》

 카나리 요자부로 글

 사토 후미야 그림

 편집부 옮김

 서울문화사

 1995.11.29.



  나라를 차갑게 가둔 굴레를 걷어내려는 들물결이 한켠에 있었다면, 다른켠에는 아이들을 가두고 때리고 짓누르는 불수렁이 있던 지난날입니다. 《어깨동무》나 《새소년》에 이어 《소년중앙》이나 《보물섬》이나 《만화왕국》이 나오고, 《르네상스》와 《하이센스》가 나올 무렵만 해도, 일본 그림꽃은 아예 발을 못 디뎠습니다. 다만, 적잖은 우리 그림꽃은 일본 그림꽃을 베끼거나 훔쳤더군요. 이러다가 《아이큐 점프》가 나오면서 일본 그림꽃을 ‘그린이 이름’을 또렷이 밝히면서 거의 처음으로 선보입니다. 나라도 삶도 살림도 말도 다르니 붓끝도 다르게 마련입니다. 쉽게 받아들인 일본 붓결도 있지만, 마흔 해가 지나도록 도무지 못 받아들이는 일본 붓결도 있습니다. 이 가운데 《소년탐정 김전일》은 안 쳐다본 그림꽃 가운데 하나입니다. 첫자락부터 자주 나오는 “그, 글쎄! 난 탐정이 될 생각은 별로. 오리에, 너! 가슴이 참 크구나(27쪽)!” 같은 말이나 그림이나 얼거리는 예나 이제나 거북합니다. 일본은 요즘도 이런 응큼질을 아직 버젓이 담는 듯싶지만, 삶도 살림도 아닌 그저 꼰대질에 멍청짓일 뿐이라고 느껴요. 함께 실마리를 찾고, 나란히 삶빛을 바라보는 얼거리가 아닌 책이 너무 많이 쏟아집니다. 불수렁은 사라졌지만.


ㅅㄴㄹ


《소년탐정 김전일 1》(카나리 요자부로·사토 후미야/편집부 옮김, 서울문화사, 1995)


그 김전일을 좋아하는 건 아니겠지

→ 김전일 그놈을 좋아하진 않겠지

→ 김전일 녀석을 좋아하진 않겠지

7쪽


소도구 망가뜨리지 않도록 조심해

→ 살림 망가뜨리지 않도록 살펴

→ 연장 망가뜨리지 않도록 헤아려

45쪽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우리말꽃》,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밑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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