끈질긴 삶터, 달동네 문화의 길 11
김은형 지음 / 한겨레출판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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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동네를 가꾸고 지키는 마을사람

― 끈질긴 삶터 달동네

 김은형 글

 한겨레출판 펴냄, 2015.7.25. 13000원



  인천문화재단에서 기획에서 어느덧 열한째 권까지 나온 ‘문화의 길 총서’ 가운데 하나인 《끈질긴 삶터 달동네》(한겨레출판,2015)를 읽습니다. 이 글을 쓴 사람은 〈한겨레〉 기자로, 인천 동구 송림동에서 태어났다고 합니다. ‘문화의 길 총서’ 가운데 ‘달동네’를 다루는 이 책은 송림동수도국산박물관을 한복판에 놓으면서 이야기를 풀고, 송림동을 둘러싼 화수동과 만석동과 북성포구와 중앙시장과 배다리까지 다룹니다.


  책을 읽는 내내 ‘달동네’를 다룬다고 하는 책으로서는 줄거리가 좀 가볍네 하고 느낍니다. 인천에 있는 달동네는 수도국산달동네박물관 언저리에만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화수동하고 맞닿아서 북쪽으로 걸어가면 가좌동하고 석남동이 나오는데, 이곳도 인천에서 손꼽히는 ‘달동네’입니다. 송림동 옆에는 송현동과 배다리에서 오른쪽으로 접어들면 도화동하고 숭의동이 맞닿는데, 이곳 또한 인천에서 빼놓을 수 없는 ‘달동네’이지요. 배다리 아래쪽으로 경동과 유동과 신흥동과 율목동이 이어지고, 왼쪽으로는 내동과 중앙동, 오른쪽으로는 이내 용현동과 학익동이 나오며, 이곳도 인천에서 사람들이 아주 빼곡히 모여서 살아가는 ‘달동네’입니다.



인천은 정주의 거처가 아니라 잠시 머무르는 도시였던 것 같다. 그때 교회학교 아이들과 찍은 사진에서 맨발의 친구들 가운데 유일하게 하얀 양말을 발목까지 올리고 찍은 언니의 모습에는, 구질구질한 달동네의 무리와 어울리지 않겠다는 엄마의 ‘자존심’이 반영돼 있었을 터이다. 실은 우리 식구들이 떠나온 신당동도 서울의 달동네였는데 말이다. (5∼6쪽)



  인천 달동네는 동쪽으로 천천히 뻗어, 숭의동 옆으로 주안동이 나오고 간석동이 나옵니다. 간석동 곁으로 이제 부평구 언저리가 되면서 산곡동하고 십정동이 나오지요. 그리고 간석동 오른쪽으로 구월동하고 만수동이 나와요. 이곳도 하나같이 수많은 사람들이 아기자기하게 모여서 어우러지는 ‘달동네’입니다.


  그러면, 《끈질긴 삶터 달동네》는 인천에서 달동네라고 일컫는 곳을 차근차근 짚거나 다루어야 알맞지 싶습니다. 그렇지 않다면 어느 한 군데 달동네만을 대표로 삼아서 더욱 깊게 파고들어야지 싶어요. 이 책은 수도국산달동네박물관에서 했던 몇 가지 전시 자료를 퍽 길게 다루느라 정작 인천에 넓게 퍼진 아기자기하면서 수수하고 투박한 달동네 삶자락은 거의 못 보여준다고 느낍니다.


  그렇다고 글쓴이 김은형 님이 어릴 적에 겪거나 느낀 달동네 삶을 들려주지도 못합니다. 자율학습을 빼먹고 살짝 골목을 거닐던 이야기는 있으나, 막상 그무렵 달동네 이웃이 어떻게 살았는가 하는 이야기가 없고, 김은형 님에 식구가 달동네 살림살이를 어떻게 가꾸었는가 하는 이야기도 나타나지 않습니다.



달동네는 또 다른 달동네를 탄생시키는 방식으로 늘어났다. 정부가 도시를 정비하면서 달동네 판잣집을 철거했고, 주민들은 다른 지역으로 강제 이주하거나 쥐꼬리만 한 보상금으로 더 낙후된 지역에 판잣집을 지었다. (23쪽)


공장 도시 인천은 여공의 도시이기도 했다. 기술이나 자본을 가진 쪽이 기득권층 남성이었다면, 묵묵히 지지대 역할을 했던 것이 수많은 여공들이었다. (79쪽)



  정부나 지자체에서 재개발 정책을 펼쳐서 달동네를 다른 곳으로 옮기도록 했다는 이야기는 맞습니다. 그런데 인천에서는 그런 정책이 그리 잘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인천에서는 오래된 달동네가 그저 오래도록 그 자리를 지켰어요. 서울처럼 엄청난 재개발이 이루어지지 않은 인천입니다. 그래서 “달동네는 또 다른 달동네를 탄생시키는 방식” 같은 이야기는 인천에 있는 달동네하고는 안 맞습니다. 인천에 있는 달동네는 쉰 해 앞서도 달동네였고 일흔 해 앞서도 달동네였습니다.


  그래서 나는 내가 태어난 옛 지번주소를 찾아서 어느 곳이 ‘내가 태어난 골목집’인가를 아직도 찾을 수 있습니다. 다만, 내가 태어나서 살던 골목집(인천 도화동)은 빌라로 바뀌었기 때문에 콕 짚어서 어느 한곳을 알 수 없으나, 지번주소는 여태 그대로입니다. 나즈막한 동산을 낀 달동네인 율목동, 이름을 한국말로 풀면 ‘밤골’이나 ‘밤나무골’인 율목동은 1990년대가 저물고 2000년대로 접어들며 갑작스레 빌라가 늘었어요. 그제서야 조금 ‘재개발’이 된 셈인데, 재개발이라고 해 보았자 마당이 있던 작은 기와집이 저마다 빌라로 바뀌어 빌라끼리 거의 맞붙듯이 서서 햇볕 한 줌 안 들어오는 ‘새로운 달동네 빌라’가 되었다뿐입니다.



자유공원 아래 고등학교에 다니던 시절, 단짝 친구와 나는 자율학습 시간에 몰래 빠져나오면 자유공원에서 중국인거리까지 어슬렁거리며 돌아다녔다. 공원과 중국인 동네를 잇는 계단에 앉아 항구에 배가 들어오는 모습을 지켜보기도 했고, 마름모나 동그라미로 창문이 뚫린 이국적이고 낡은 적산가옥 주변을 서성이며 집 안을 훔쳐보기도 했다. (99쪽)


〈파이란〉이나 〈천하장사 마돈나〉의 인천도 낡고 구질구질하기는 마찬가지다. 왜 카메라 속에 담긴 인천은 하나같이 이렇게 허름하고 칙칙한지, 아쉽게 느껴질 수도 있겠다. 그러나 만약 고층 아파트들이 즐비한 연수구나 송도 신도시에서 찍은 영화라면 누가 그 작품을 보면서 인천을 떠올릴 수 있을까. (115쪽)



  달동네란 무엇일까요? 백기완 님은 ‘달동네’라는 이름을 이녁이 지었다고 밝힙니다. 공무원이나 지식인이 ‘여느 사람들이 사는 수수한 마을’을 가리켜 자꾸 ‘빈민촌’이나 ‘빈민가’라고만 하면서 깎아내리기에, 이러한 이름은 이 작은 마을에서 오순도순 사는 사람들한테 어울리지 않다고 여겨서 ‘우리는 언제나 달을 보고 산다’고 하면서 ‘달동네’라는 이름을 1950년대부터 썼다고 밝힙니다. 가난한 사람이 모인 빈민촌이 아니라, 삶을 새롭게 가꾸려고 모인 달동네라는 이야기이지요.


  그래서, 이러한 달동네 숨결을 헤아리면서 골목마을을 돌아볼 수 있다면, 또 이 골목마을에서 골목사람(주민)으로 지낼 수 있다면, 골목마을을 바라보는 눈길은 사뭇 달라지리라 느낍니다.


  나는 인천 도화동에서 태어나 주안동과 신흥동에서 어린 나날을 보냈고, 인천을 떠나서 다른 고장에서 살다가 서른이 넘어 인천으로 돌아가서 창영동과 내동에서 살며 아이를 낳았습니다. 어릴 적을 더듬고, 나중에 아이를 낳아 함께 살던 무렵을 헤아리면, 우리 집뿐 아니라 이웃 여러 집은 모두 따사롭고 살뜰한 사람들입니다. 크게 잘나지 않으나 딱히 못나지 않습니다. 골목마을에는 커다란 집이 거의 없습니다. 아예 없지 않습니다만 높이 솟는 아파트에 대면 아무것이 아닙니다. 거의 엇비슷하다 싶은 골목집이 옹기종기 모여서 마을을 이루는데, 골목집마다 손바닥만 한 마당에 나무를 한두 그루씩 심어요. 골목마실을 할 때면 으레 이 골목나무를 바라보면서 즐겁습니다. 우리 집 나무가 아니어도 마을나무요 골목나무이기 때문에 반갑습니다.



(수도국산달동네박물관) 바로 아래쪽으로는 그 옛날의 좁은 골목들과, 날아갈 듯 얇은 슬레이트 지붕 위에 타이어며 온갖 잡동사니를 올려놓은 슬레이트 집들이 아직도 남아 있다. 과거이면서 현재이고 또 미래가 될 달동네의 얼굴이다. (171쪽)


관광 상품화가 그냥 버려야 할 카드인가는 개인적으로 단순명쾌하게 정리를 못 하겠다. ‘관광 상품’이라는 말 자체에서 배어 나오는 기계적 사고, 그리고 구체적 실행안에 자주 등장하는 박물관 체험관 카페 벽화 도예 공방 등, 마을 재생 운동에 단 한 번 발 들여놓지 않았던 나조차 줄줄이 읊을 수 있는 빈곤한 내용들이 ‘안 봐도 비디오’인 결말을 예상케 한다. 하지만 그런 식이 아니라면, 주민들이 직접 참여하고 보람도 느끼며 수익도 낼 수 있는 것들을 고민해 본다면, 외지인들의 발길이 가라앉는 동네에 활력이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조심스럽게 든다. (293쪽)



  골목집 사람들은 골목을 스스로 건사합니다. 청소부가 오가면서 쓰레기봉투를 가져가지만, 이밖에 여느 때에는 아침 낮 저녁으로 골목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비질을 합니다. 골목마을에서 사는 분이라면 으레 스스로 골목길을 치울 테고, 골목마실을 다니는 분이라면 으레 ‘비질을 하는 할머니나 할아버지’를 만날 만하리라 느낍니다. 더욱이 골목마을 할머니나 할아버지나 아주머니나 아저씨는 담벼락 앞쪽을 조금씩 꽃밭으로 가꾸기 마련이고, 담벼락에도 꽃그릇을 가지런히 올려놓기 일쑤입니다. 그래서 웬만한 골목길은 ‘꽃골목’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골목사람 삶자락을 헤아린다면, ‘오래된 골목마을 살리기’는 ‘관광 상품’이 아니어도 넉넉합니다. 관광 상품을 꾀한다면서 용역을 내고 이런저런 사업을 벌이느라 돈을 쓰지 말고, 골목마을 사람들한테 ‘골목집 곱고 정갈하게 가꾸는 도움삯’을 다달이 이십만 원쯤 줄 수 있어요. 골목마을에는 사람이 그리 많지 않으니 집집마다 다달이 이십만 원을 ‘골목집 가꿈삯’으로 정책을 마련해서 집행한다면, 골목사람 스스로 훨씬 아기자기하면서 더욱 아름답게 골목마을을 가꿀 테지요.


  어쩌다가 한 번 골목을 찾는 관광객이나 예술가는 ‘겉치레를 하는 벽그림’밖에 못 그리고 못 보지만, 늘 마을에서 사는 사람(주민)은 ‘속을 가꾸는 삶을 밝히는 길’을 생각합니다. 그리고 바로 마을사람 스스로 가꾸는 마을살림이 관광객한테도 더 아름다우면서 재미나고 놀라우며 새롭게 보일 테지요.



2000년대 중반 청라신도시에서 송도신도시를 곧바로 잇는 산업도로를 만든다는, 그 도로만큼이나 단순무식한 계획 아래 배다리마을은 존폐 위기에 놓였다. 계획대로라면 도로가 배다리를 관통하는 모양새였기 때문이다. 아벨서점의 곽현숙 대표와 스페이스빔의 민운기 대표 등을 중심으로 동네 주민들까지 합세해 이 계획을 저지시켰다. (204쪽)



  《끈질긴 삶터 달동네》를 읽다 보니 204쪽에 잘못된 정보가 나옵니다. 인천시 종합건설본부에서 밀어붙이려고 하던 ‘배다리 산업도로’는 2006년에 인천 동구 창영동 주민 세 사람이 알아내어 처음으로 밝혔고, 이 마을 주민 세 사람이 끝까지 앞장서서 싸우면서 2011년에 백지화까지 이끌었습니다. 인천시 종합건설본부에서 몰래 밀어붙이려던 공사 계획을 밝힌 마을 주민 세 사람 이름은 곽현숙, 박태순, 하유자입니다. 이들은 배다리에 있는 헌책방 아벨서점을 본부처럼 삼아서, 동구 송림동에 있는 송림동성당 신부님과 신자가 함께 나설 수 있도록 이끌었고, 여기에 인천에 있는 여러 단체와 지식인을 한자리에 모으는 자리를 마련했습니다. 배다리 산업도로를 막으려고 하는 사무실을 마련할 적에 아벨서점 곽현숙 님이 사무실을 손수 알아보고 임대료까지 냈지요. 스페이스빔이라는 문화공간도 이때에 함께 한 여러 단체 가운데 하나이지만, “아벨서점의 곽현숙 대표와 스페이스빔의 민운기 대표 등을 중심으로 동네 주민들까지 합세해”라는 말은 올바르지 않습니다. 이 배다리 산업도로 싸움에서 ‘중심’은 ‘마을 아주머니(라기보다는 할머니입니다만) 세 사람’이고, 배다리를 둘러싼 마을사람(거의 모두 할머니 할아버지였습니다)이 서로 어깨동무를 하면서 비로소 인천에 있는 시민사회단체가 모여들었고, 이 힘을 바탕으로 여러 해에 걸쳐 끈질기게 싸웠기에 공사 백지화를 이끌었습니다.


  인천문화재단에서 ‘문화의 길 총서’로 내는 책이라면 이만 한 정보를 모아서 갈무리하기는 어렵지 않을 텐데, 이 같은 대목은 부디 나중에라도 바로잡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 같은 대목을 바로잡을 수 있어야 하는 까닭을 더 든다면, ‘왕복 16차선 공사 계획’을 밝혀내고 이를 막은 밑힘은 바로 마을사람 숨결이기 때문입니다.


  마을을 살리는 힘은 언제나 마을에서 샘솟습니다. 바보스러운 공사를 가로막는 힘도, 마을을 새롭게 가꾸는 힘도, 언제나 마을에서 샘솟아요. 예술가와 지식인과 시민사회단체 힘도 고맙습니다만, 언제나 모든 일에서 중심은 마을이어야 합니다. 관도 단체도 아닌 마을이 중심이어야 하고, 마을에서 터를 닦고 오래도록 오붓하게 살면서 알뜰살뜰 살림을 가꾸는 사람이 중심이어야 한다고 느껴요. 이때에 비로소 달동네는 달을 사랑스레 누리면서 달잔치도 하고 마을잔치도 하는 아름다운 이야기 곳간으로 거듭날 테지요. 4348.11.1.해.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시골에서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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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세 말걸기 육아의 힘
김수연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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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기 삶읽기 210



즐겁게 노래하는 말을 배우고 싶은 아이들

― 0∼5세 말걸기 육아의 힘

 김수연 글

 예담프렌즈 펴냄, 2015.10.8. 13800원



  ‘아기발달연구소’를 열어서 아기가 나이에 따라 어떻게 달라지는가 하는 대목을 차근차근 알려주는 일을 하는 김수연 님이 빚은 《0∼5세 말걸기 육아의 힘》(예담프렌즈,2015)을 읽습니다. 우리 집에는 텔레비전을 들이지 않기에 김수연 님이 세운 연구소도 모르고, 방송에서 김수연 님이 들려주는 이야기도 모릅니다. 텔레비전은 누군가한테는 도움이 되리라 여기지만 우리 집에는 조금도 도움이 될 일이 없다고 여깁니다. 그래서 나는 1995년부터 텔레비전 없는 집에서 살았고(그무렵부터 우리 집에는 텔레비전을 안 두었고), 텔레비전 없는 삶이 번거롭다(불편하다)거나 힘들다고 느끼지 않습니다. 텔레비전이 없기에 아이들이 집에서 심심해 하지도 않습니다. 무엇보다도 텔레비전이 없으니, 나(어버이)와 우리 아이들은 ‘텔레비전이 들려즈는 말’을 안 듣습니다. 나는 우리 아이들이 들려주는 말을 듣고, 우리 아이들은 내가 들려주는 말을 듣습니다.



육아 예능 프로그램이 많아지면서 TV 속 아기들과 자신의 아기를 비교하는 부모들이 있습니다. 특히 방송을 통해서만 아기를 봐 온 초보 부모들은 모든 아기가 빵끗빵끗 웃고 옹알이도 많이 하는 줄 압니다. 자신의 아기도 그럴 것이라고 기대하지요. (61쪽)



  전남 고흥이라는 시골에서 살며 돌아보면, 오늘날에는 이 시골에서도 시골말을 듣기는 쉽지 않습니다. 마을 어르신은 시골말을 쓰십니다만 고흥 사투리로, 또 마을 사투리로 이야기하는 분은 매우 드물어요. 왜냐하면 오늘날에는 집집마다 모두 텔레비전이 있으며, 마을 어르신들은 모두 날마다 텔레비전을 오래도록 보거든요. 시골에서 살더라도 시골말을 텔레비전한테 빼앗기고, 시골에서 일하더라도 시골노래(들노래·일노래)를 대중노래한테 빼앗깁니다.


  그나저나 시골에는 아이가 매우 드뭅니다. 요즈음은 시골말을 늘 들으면서 배우며 자라는 아이는 아주 드뭅니다. 머잖아 한국에서는 고장말을 제대로 알면서 쓸 줄 아는 아이는 사라지리라 느낍니다. 말투나 소리결로는 고장말 티가 조금 남을 테지만, 전라도나 경상도나 강원도 작은 마을에서 쓰던 ‘참다운 사투리’를 알아듣거나 쓸 줄 아는 아이가 모두 사라지겠지요. 텔레비전을 안 보는 사람이 매우 적을 뿐 아니라, 교과서나 신문이나 책을 안 보는 사람도 아주 없다고 할 테니까요.


  이리하여, 오늘날에는 한국사람이 쓰는 말은 하나일 뿐이지 싶습니다. 바로 ‘표준 서울말’입니다. 부산말도 광주말도 없이 표준 서울말입니다. 충청말도 경기말도 없이 오로지 표준 서울말입니다.



아기가 가장 편안함을 느끼는 소리는 엄마 배 속에서 들었던 ‘쉬쉬’ 하는 혈류 소리와 맥박 소리입니다. (23쪽)


아기가 울 때는 가능한 한 엄마 배 속과 같은 환경을 제공해 주는 것이 좋습니다. (30쪽)



  《0∼5세 말걸기 육아의 힘》을 읽을 분이라면 아무래도 ‘아이 어머니’가 되리라 느낍니다. 이 같은 책을 찬찬히 읽을 ‘아이 아버지’는 드물리라 느낍니다. 한국 사회는 아직 성평등도 남녀평등도 아닌 터라, 아이를 맡아서 가르치거나 이끄는 몫은 거의 다 어머니(여자)한테 짐을 얹지요. 아이 아버지는 으레 새벽부터 밤까지 회사에 머물거나 바깥사람하고 어울립니다. 맞벌이를 하는 집이라면 하루 내내 아이를 다른 사람 손에 맡길 텐데, ‘다른 사람 손’도 거의 다 ‘여자’예요. 어린이집 교사로 일하는 사내는 얼마 안 되고, 아이를 사랑하면서 돌보는 일에 온삶을 바치려는 사내는 그야말로 아주 드물어요.


  그러니까, 아이들은 가시내이든 사내이든 모두 ‘어머니(여자)’한테서 말을 배운다고 하겠습니다. 나중에 아이가 많이 자라서 초등학교에도 가고 학원에도 간다면, 다른 아이나 어른한테서 말을 배우기도 할 테지만, 이 나라 거의 모든 아이들은 초등학교에 들기 앞서까지 늘 ‘어머니 말을 듣고 배우면’서 자란다고 할 만합니다.



생후 5개월 정도가 되면 고개를 양옆으로 흔들면서 거부 의사를 표현하지요. 아기는 분명히 몸으로 ‘싫다’는 메시지를 전달하는데 부모는 대부분 ‘아이가 왜 이래?’ 하면서 아이의 메시지를 무시합니다. (51쪽)


아직 말을 트지 못한 아이를 둔 부모들은 혹여나 아이가 친구들과 어울리지 못할까 걱정합니다. 하지만 이 시기 또래 집단의 상호작용은 말보다 행동으로 이루어지므로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의 집단 활동에서 큰 어려움을 겪지 않습니다. (149쪽)



  집에서 아기한테 젖을 물리거나 아이를 보살피는 어머니는 어떤 말을 쓸까요? 어머니는 어머니로 살기 앞서까지 늘 듣고 배운 말을 쓰겠지요. ‘아이가 쓰는 말’은 모두 ‘어머니가 쓰는 말’이요, ‘아이가 배우는 말’은 모두 ‘어머니가 여느 때에 쓰는 말’입니다.


  아이는 ‘전문 용어’를 배우지 않아요. 아이는 언제나 ‘생활 말’을 배웁니다. 그래서, 아기를 낳을 어버이라면 여느 때에 어떤 말을 쓰는가 하는 대목을 제대로 바라볼 수 있어야 합니다. 여느 때에 늘 텔레비전을 본다면, 아이는 ‘텔레비전에 흐르는 말’을 배우는 셈입니다. 비록 어머니 입을 거치더라도 ‘텔레비전 말’을 배웁니다. 어머니가 책을 많이 읽는다면 아이는 ‘책에 적힌 글말’을 배울 테지요.


  아이를 낳는 사람은 어머니 혼자가 아니기에, 어머니뿐 아니라 아버지도 말을 늘 새롭게 가다듬을 수 있어야 합니다. 아이만 말을 배워야 하지 않아요. 어른도 말을 새로 배워야 합니다. 아이를 낳기 앞서까지 ‘아무 말이나 그냥 썼다’면, 이제부터는 ‘아이 앞에서 여느 때에 쓸 말’을 새롭게 배우고 살펴서 가다듬어야 합니다. 아이들은 ‘어버이가 여느 때에 툭툭 뱉는 말’을 모조리 빨아먹기 때문입니다.



바닥을 구르거나 장난감을 던지면서 울거나 엄마를 때리는 등의 모든 행동은 ‘싫다’는 아기의 마음을 보여주는 방법일 뿐입니다. 이러한 아기의 행동은 만 5세 전후로 사라집니다. 이 시기의 아기가 행동으로 자신의 마음을 말하는데 부모도 똑같이 소리를 지르거나 때리면 아기의 공격적인 표현이 더 오래 지속될 수 있습니다. (78쪽)



  《0∼5세 말걸기 육아의 힘》이라는 책에서 흐르는 이야기는 대단하지 않습니다. 먼먼 옛날부터 누구나 모두 알던 이야기입니다. 어버이는 아기한테 어떤 말을 걸까요? 오직 사랑으로 말을 걸지요. 아기는 어버이한테서 어떤 말을 듣고 싶을까요? 아기는 어버이한테서 오직 사랑스러운 말을 듣고 싶지요.


  아기는 때가 되면 스스로 말문을 터뜨립니다. 한두 살부터 말문을 터뜨리는 아이가 있고, 다섯 살에 말문을 터뜨리는 아이가 있으며, 열 살쯤 되어서야 비로소 말문을 터뜨리는 아이가 있어요.


  어버이는 무엇을 해야 할까요? 어버이는 오직 한 가지만 할 뿐입니다. 언제나 아이를 사랑으로 지켜보면서 사랑으로 보살피고 사랑으로 기다립니다. 달리 할 일이 없습니다. 그저 사랑 하나면 되는 어버이입니다.


  다만, 사랑이 무엇인지는 제대로 알아야겠지요. 사랑이 무엇인지 제대로 모르는 채 입으로만 ‘사랑해’ 하고 말한들 덧없습니다. 사랑은 집착이 아니고 강요가 아닙니다. 사랑은 훈육이 아니며 길들이기가 아닙니다. 사랑은 언제나 사랑일 뿐입니다. 사랑은 사탕발림이나 선물꾸러미가 아니에요. 사랑은 그저 따사로운 손길과 너그러운 품입니다.



물론 기저귀를 가는 일은 부모에게도 썩 유쾌한 일입니다. 당연히 기저귀를 가는 도중에 “참아!”라며 강하게 말하게 될 때도 있습니다. (31쪽)



  나는 우리 집 두 아이를 거의 혼자 도맡아서 돌보며 살아오는 동안 ‘똥오줌 기저귀’ 가는 일이 ‘안 유쾌하다’고 느낀 적이 없습니다. 두 아이를 오직 천기저귀만 대면서 날마다 마흔일곱 장을 빨아야 하던 날에도 씩씩하게 웃고 노래하면서 손빨래를 하고, 해바라기를 시켜서 말린 뒤, 다림질을 하여 곱게 갰어요. 아이가 오 분 만에 쉬를 찔끔찔끔 지리더라도 새 기저귀로 갈아 주면서 ‘요 녀석, 네 아버지가 더 기운내라고 하는구나’ 하면서 궁둥이랑 볼을 살살 쓰다듬었습니다.


  그렇지만, 가만히 돌아보면 나는 어릴 적부터 ‘아이키우기’를 제대로 배운 적이 없습니다. 곁님이 여러모로 미리 살펴서 차근차근 알려주지 않았으면 하나도 제대로 못 했으리라 느낍니다. 한국 사회에서는 초·중·고등학교 어디에서도 ‘육아 교육’조차 하지 않고, ‘성교육’조차 슬기롭게 하지 않아요. 나라에서는 젊은 부부더러 아기를 낳으라고는 하지만, 정작 아기를 어떻게 낳아서 돌볼 때에 아름다운 사랑과 삶이 되는가 하는 대목은 들려주지 못합니다.


  김수연 님이 쓴 《0∼5세 말걸기 육아의 힘》은 재미있습니다. 이제 우리 집 큰아이는 여덟 살이고 작은아이는 다섯 살입니다. 다섯 살 막바지를 지나가는 작은아이를 헤아리며 이 책을 읽으니, ‘아이를 키우는 힘’이나 ‘아이한테 말을 걸며 키우는 힘’은 딱히 없습니다. 그저 어버이로서 내가 스스로 즐겁게 노래하는 하루가 되면 됩니다. 아이한테 말을 입으로도 걸지만 마음으로도 걸지요. 아이한테 들려주는 노래는 ‘유치한 동요’가 아니라 ‘어버이인 내 마음을 함께 달래며 보듬는 사랑노래’입니다. 나는 우리 아이들한테 네 시간 동안 쉬지 않고 다 다른 노래를 불러 줄 수 있습니다. 아이들하고 하루 내내 붙어서 여덟 해를 살고 보니, 그야말로 스스로 노래꾼이 되고 춤꾼이 됩니다. 새삼스레 이야기꾼도 됩니다.



부모가 기분이 좋을 때는 아이가 조리에 맞지 않는 말을 하더라도 끝까지 잘 들어줄 수 있습니다. 부모가 피곤하지 않을 때는 친절하다가 피곤할 때 갑자기 화를 심하게 내면, 아이도 부모와 똑같이 기분이 좋을 때만 말을 하고 기분이 좋지 않을 때는 아예 말을 하지 않거나 화를 내게 됩니다. (179쪽)



  아이를 천재나 영재로 키우려고 하면 아이도 어버이도 고단합니다. 나한테 온 아름답고 사랑스러운 아이를 기뻐하면서 함께 놀고 어우러지면서 심부름도 차근차근 시키는 삶이 된다면, 아이는 어버이가 들려주는 말을 기쁨과 즐거움으로 받아먹습니다.


  아이한테는 대단한 말을 들려주지 않아도 됩니다. 아이한테는 사랑스러운 마음으로 노래하듯이 말을 들려주면 됩니다. 아이한테 더 일찍 영어를 가르쳐야 하지도 않아요. 아이하고 멋지거나 훌륭하거나 재미난 외국 영화를 ‘그냥 영어로 자막 없이’ 함께 보면 됩니다. 영어를 가르치려고 보는 외국 영화가 아니라, ‘아름다운 영화’이기 때문에 외국말을 말투와 말결까지 그대로 느껴 보면서 함께 봅니다.


  아기한테 그저 사랑으로 말을 걸어요. 그러면 됩니다. 아기하고 그저 사랑으로 함께 놀아요. 그러면 돼요. 아기하고 보내는 0살∼5살은 그야말로 하늘이 내린 어마어마한 선물입니다. 아기가 다섯 살이 될 때까지 어버이로서 ‘회사 일은 그만두’더라도 ‘아이키우기는 그만둘 수 없다’고 느낍니다. 그리고, 아이가 열 살이 될 때까지도 ‘회사 일은 안 하’더라도 ‘아이와 함께 놀고 배우기를 멈출 수 없다’고 느껴요.


  어버이부터 즐거운 마음이어야 합니다. 어버이가 바로 기쁜 넋이어야 합니다. 즐겁게 꿈꾸고 기쁘게 노래하는 삶이 되기를 빌어요. 이 땅 모든 어버이가 아이하고 아름다운 하루를 누릴 수 있기를 빕니다. 4348.10.22.나무.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시골에서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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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anca 2015-10-22 23:04   좋아요 0 | URL
저한테 너무 많은 도움이 되는 글이네요. 때로 아이 둘을 돌보는 게 지친다고 느낄 때면 다시 숲노래님의 글을 읽어야겠어요.

숲노래 2015-10-22 23:21   좋아요 0 | URL
저는... 아이 둘을 돌보다가 지치면...
그냥 누워서 잡니다 ^^;;;;

제 몸이 지치면 아이들한테 아무것도 못해 주면서
뭔가 트집을 잡아서 꾸지람만 하려고 드는구나 하고 느껴서
몸을 한 시간 즈음 푹 쉬어 주면
다시 새 기운이 돋아서 씩씩하게 함께 놀 수 있어요.

아이들도 마당에서건 방에서건 마음껏 놀면서
스스로 재미있고요.

어른들은 좀 쉴 때가 있어야 합니다.
눈치 보지 말고 쉬어야겠더군요.

저는 마흔 살이 될 무렵까지 `눈치가 보여서 제대로 못 쉬었`는데
이제는 그래서는 안 되는구나 하고 뼈저리게 느낍니다 ^^
내 몸이 무거우면 그야말로 아무것도 못해요
 
만화왕국 일본의 알려지지 않은 진실 만화규장각지식총서 3
이현석 지음 / 부천만화정보센터 / 200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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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책읽기 삶읽기 183



‘일본만화’가 아닌 ‘만화’를 보아야

― 만화왕국 일본의 알려지지 않은 진실

 이현석 글

 부천만화정보센터 펴냄, 2007.11.30.



  이현석 님이 쓴 《만화왕국 일본의 알려지지 않은 진실》(부천만화정보센터,2007)을 읽으며 곰곰이 생각합니다. 이 책은 퍽 얇습니다. 얇은 책 한 권으로 ‘만화왕국 일본’을 어느 만큼 보여줄는지 궁금한 노릇이고, 이 얇은 책으로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는 어떻게 들려줄는지 궁금한 노릇입니다. 두께가 얇기에 모든 이야기를 못 담지는 않습니다. 작은 책이기에 수수께끼를 못 풀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 책을 다 읽고 보니, ‘만화왕국 일본을 버티는 뼈대’와 ‘만화왕국 일본이 서는 바탕’을 다루는구나 싶습니다. ‘알려지지 않은 진실’이 아니라 ‘다 알려진 이야기’를 다루고, 굳이 이 책이 아니더라도 여러모로 퍼진 정보를 그러모았다고 느낍니다.



.. 주간 연재를 중심으로 짜인 일본의 만화 체제에 맞추려면 어시스턴트라 불리는 제작 스태프가 3∼4명 정도는 기본적으로 필요하다. 우선 이런 인력을 수용할 일정한 넓이의 사무실이 필수인데, 전세 등의 주택 임대 개념이 없는 일본이다 보니 대부분 8∼9만 엔 이상 하는 비싼 월세를 내고 사무실을 임대해서 사용한다 … 작가들은 이 짧은 작가 수명 안에 만화를 그만둔 뒤의 생활을 유지하기 위한 이익을 최대치로 만들어 둬야 하는 부담을 안는다 ..  (21, 24쪽)



  ‘만화왕국 일본’ 이야기는, 만화가 스스로 낱권책 뒤에 붙이는 ‘뒷이야기’나 ‘끝말’을 보아도 어렵지 않게 읽을 수 있습니다. 만화가 스스로 ‘도쿄에서 방을 얻을 때에 얼마나 힘든지’를 밝힙니다. ‘도쿄 아닌 시골에서 만화 그리는 삶’을 스스럼없이 밝혀 주기도 합니다. 시골에서 도쿄로 와서 만화를 그리면서 월세나 물건값이나 시끄러운 도시나 이런저런 것들을 어떻게 느끼는가 하는 대목도 만화가 스스로 다 밝힙니다. 이런 이야기는 ‘신인 작가’뿐 아니라 ‘인기 작가’인 분들도 곧잘 털어놓습니다.



.. 하류 사람들이 즐겨보는 매체에 무슨 표현이 어떻게 실리든 관심 없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말해서 일본만화·애니메이션에서 폭력이나 성 묘사가 자유로운 것은 표현의 자유를 보장해서라기보다는, 사회를 움직이는 권력층의 무관심에서 나오는 방치의 결과라는 설명도 가능하다 … 우익적 색채의 만화들은 아주 넓고 다양한 일본만화 독자층 중에서 이런 만화를 좋아하는 일부 고정 계층 독자들을 노리고 만든 것으로, 결코 폭넓은 대중적인 지지를 얻는 만화들은 아니다 ..  (40, 65쪽)



  일본만화는 ‘표현 자유’를 거리낌없이 펼친다고 볼 수 있을까요? 아마 ‘동인지’라면 그야말로 거리낌없이 펼치겠지요. ‘동인지’가 아닌 ‘잡지 연재’에서는 ‘표현 자유’를 모두 드러낸다고는 느끼지 않습니다. 그리고, 일본만화는 ‘표현 자유’가 아니라 ‘표현 한계를 찾으려고 애쓰는 몸짓’으로 바라보아야 옳지 싶습니다. ‘자유롭게 그리는 만화’라기보다 ‘한계가 없이 그리는 만화’라고 하겠습니다.


  왜 그러한가 하면, ‘자유’라고 할 적에는 이웃을 괴롭히거나 옭아매지 않습니다. 《만화왕국 일본의 알려지지 않은 진실》에서도 다루는 ‘우익 색채 만화’는 ‘자유로운 표현’으로 그리는 만화가 아니라 ‘한계가 없는 표현’으로 그리는 만화입니다. ‘우익 색채 만화’는 일본에서도 다른 이웃을 괴롭히려는 뜻이 깃들고, 이웃 여러 나라를 깎아내리는 뜻이 깃듭니다.


  일본만화를 읽을 적에는 ‘한계가 없이 그리려는 손길’을 살필 수 있어야 한다고 느낍니다. 참말 일본만화는 ‘줄거리’와 ‘이야기’가 끝이 없습니다. 한국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놀라운 줄거리와 이야기가 아주 많습니다.


  시골에서 농사짓는 이야기, 골프 이야기, 도시락 이야기, 전통술 이야기, 높은 봉우리를 타는 이야기, 소방관 이야기, 온갖 짐승 이야기, 먼 옛날 공룡 이야기, 새와 함께 사는 이야기, 인류 발자국 이야기, 연금술 이야기, 삶과 죽음 이야기, 미래 지구 이야기, 우주와 양자역학 이야기, 흙과 풀과 꽃 이야기, 바다 이야기, 어버이한테서 아픔을 물려받은 아이가 씩씩하게 서는 이야기, 고전 동화를 되살리는 이야기, 책과 책방과 헌책방과 도서관 이야기, …… 그야말로 끝이 없습니다.


  《만화왕국 일본의 알려지지 않은 진실》을 쓴 이현석 님이 일본만화를 더 넓고 깊게 읽었다면, 이 작은 책도 더 넓고 깊게 엮을 만하리라 생각합니다. 온갖 갈래 여러 일본만화를 두루 읽지는 못했다는 느낌이 짙습니다. 수천 가지도 아닌 수만 가지도 아닌 수십만 가지가 나오는 일본만화입니다. 이러한 갈래를 찬찬히 살피면서 ‘즐기는’ 눈길이 될 때에, 비로소 ‘어디에도 알려지지 않은 수수께끼’를 짚으리라 봅니다.



.. 애니메이션을 통해서 가장 쉽게 많은 이윤을 올리는 쪽은 따로 있다. 바로 콘텐츠를 받아서 송출하기만 하면 되는 방송국이다. 이들은 전파 사용료 등의 명목으로 대가를 받는데, 이 액수가 상당하다 … 굳이 왜 일본식의 만화, 일본의 시스템으로 그들과 경쟁을 하여야 하는가? 한국에만 존재하는 시스템, 우리가 만들어낸 규칙으로 게임을 한다면 우리네 만화는 일본과는 전혀 다르게 좋은 결과물을 양산할 수 있을 것이다 ..  (102, 123∼124쪽)



  《만화왕국 일본의 알려지지 않은 진실》을 읽으면서 ‘다카하시 신’ 만나보기 하나가 눈에 뜨입니다. 다른 이야기는 그동안 한국에도 ‘다 알려진’ 이야기이기 때문에 하나도 새롭지 않았습니다. ‘다카하시 신’이라는 만화가와 나눈 이야기에서 비로소 생생한 목소리를 들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애써 이렇게 일본 만화가 한 사람하고 만났어도 더 깊이 파고들어서 건져올릴 만한 이야기까지 나아가지는 못했구나 싶습니다. 여러모로 아쉽습니다.



- “만화가를 하는 이상에는 어떤 일이든지 필요없는 경험이란 건 없다고 생각합니다.” (다카하시 신/27쪽)

- “제가 좋아하는 작품이라고 고집 부려서 실었는데, 결과적으로 인기도 전혀 없고 단행본도 팔리지 않게 되면, 그것도 물론 문제이거니와, 독자 무시하고 자기가 좋아하는 작품만 실어서 될 리가 없잖아요? 그래서 독자는 정말로 소중하다고 생각하고 있고, 매달 애독자 앙케이트도 열심히 하고 있죠. 그런 의미에서 보면 역시 ‘독자가 가르쳐 주는 것’이지요.” (유리 고이치/83쪽)



  애써 책 한 권을 내놓으려 한다면, 알맹이를 더 튼튼히 채워서 북돋울 수 있기를 빕니다. 일본 만화가 만나보기도 더 많은 작가하고 만나보면서 더 깊고 너른 이야기를 들을 수 있으면 한결 나았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리고, 책을 끝맺으면서 ‘일본 시스템’과 다른 ‘한국 시스템’이 있다고 한 줄로 짤막하게 말하는데, ‘한국 시스템’이 있고 이 틀거리가 ‘좋은 결과물’을 낳는다면, 이 틀거리가 무엇인지 따로 다루어야 하지 않을는지요? 한국에서 만화를 그리는 멋진 틀거리가 있다는 말을 고작 한 줄로 슬쩍 읊고 지나간다면, 일본만화와 한국만화가 어떻게 다른가를 알 길이 없습니다.


  그리고, 일본만화와 한국만화가 ‘경쟁’해야 할 까닭이 없습니다. 일본에서 만화를 그리고 책을 빚는 문화와 삶이 놀랍거나 대단하다면, 이러한 문화와 삶을 기쁘게 바라보면서 즐겁게 배울 수 있으면 됩니다. ‘만화왕국’이니 ‘만화대국’이니 하면서 괜히 멀리할 까닭이 없습니다. 만화로 보여줄 수 있는 ‘끝없는(한계 없는)’ 꿈과 노래와 사랑이 무엇인가를 바라볼 수 있으면 되리라 생각합니다. 4348.4.15.물.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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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가 사라지면 인류는 어떻게 될까? 청소년 지식수다 4
실비 보시에 지음, 안느 루케트 그림, 배형은 옮김, 이기용 감수 / 내인생의책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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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기 삶읽기 179



말은 늘 움직인다

― 언어가 사라지면 인류는 어떻게 될까?

 실비 보시에 글

 배형은 옮김

 내인생의책 펴냄, 2014.11.30.



  실비 보시에 님이 쓴 《언어가 사라지면 인류는 어떻게 될까?》(내인생의책,2014)를 읽습니다. 지구별 푸름이가 이 책을 읽고서 ‘말’이 무엇인지 살필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았구나 싶습니다. 그런데 이 책은 ‘말’이 무엇인지 다루지 못합니다. ‘말에 얽힌 역사’라든지 ‘말에 얽힌 문화’라든지 ‘말을 둘러싼 전쟁이나 정치권력’을 다룹니다.



.. 어느 날, 자연과 조화를 이루어 살아가던 평화로운 애버리지니의 삶에 갑자기 유럽인들이 끼어들었다. 유럽인들은 애버리지니를 “한마디로 미개인이다.”라고 단정 지었다 ..  (17쪽)



  ‘말에 얽힌 역사’는 ‘말’이 아닙니다. 그렇지요. ‘말에 얽힌 문화’는 ‘말’이 아닙니다. ‘말을 둘러싼 전쟁이나 정치권력’은 무엇일까요? 이 또한 ‘말’이 아닙니다. 말은 오로지 말입니다. 말을 보아야 말을 알 텐데, 《언어가 사라지면 인류는 어떻게 될까?》라는 책은 아주 뜻깊은 이야깃거리를 건드리려 했으나, 미처 뜻깊은 대목을 살피거나 느끼지 못합니다.


  그러면 어느 대목이 뜻깊지 못할까요? 처음부터 끝까지 이 책에서는 ‘말’을 한 번도 건드리지 못하는데, 꼭 세 가지만 꼽겠습니다.



ㄱ. 어떻게 보면 언어의 분화는 오히려 축복이기도 하다. 언어가 나뉜 덕분에 인류의 문화적 자산이 더욱 풍요로워졌다. 인류는 다양한 언어 덕분에 더 많은 것들을 표현할 수 있게 되었다.  (33쪽)



  말이 여러 갈래로 나뉜 일은 선물(축복)이 아닙니다. 끔찍한 ‘무덤(재앙)’입니다. 다만, 끔찍한 무덤이라고 해서 나쁘지는 않습니다. 재미난 일(경험)이지요. 그러면, 말이 여러 갈래로 나뉘어 나라나 겨레마다 말이 다른 일은 어떤 모습일까요?


  말이 여러 갈래로 나뉘었기 때문에 여러모로(다양하게) 말할(표현)할 수 있을까요? 아닙니다. 말이 여러 갈래로 나뉘었기 때문에, 우리는 어느 한 가지를 놓고 여러 가지 말을 쓰지만, 막상 깊이 파고들지 못합니다. 여러 갈래로 나뉜 말 때문에 정작 ‘말로 다루어야 할 모습’을 못 다룹니다.


  무슨 뜻인지 알겠습니까? 어느 나라나 겨레에서는 ‘눈’을 나타내는 낱말이 아주 많지만, 어느 나라나 겨레에서는 ‘눈’을 아예 모릅니다. 그리고, 말이 여러 갈래로 나뉜 탓에, 오늘날 사람들은 서로 이야기(의사소통)를 나누려면 ‘다른 갈래 말’을 자꾸 배워야 합니다. 한국사람은 영어나 프랑스말이나 독일말이나 일본말이나 중국말을 배워야 해요. 이때에 어느 누구도 ‘표현 다양성’을 드러내지 못합니다. ‘똑같은 것을 가리키는 다 다른 말’을 익히느라, 막상 ‘한 가지’에 얽매여, 다른 수많은 삶을 놓칩니다.


  ‘표현 다양성’이란 ‘곱다·아름답다·아리땁다·어여쁘다·예쁘다’가 어떻게 다른가를 깨달아, 이를 제대로 바라보면서 제대로 쓰는 일을 가리킵니다. ‘표현 다양성’이란 ‘퍽·꽤·무척·몹시·매우·아주·대단히·엄청나게·어마어마하게’ 같은 낱말이 어떻게 다른가를 알아차려, 이를 맑게 바라보면서 밝게 쓰는 일을 가리킵니다. 그러니까, 보셔요. 이런 ‘참다운 표현 다양성’을 몇 사람이나 누리는지요?



ㄴ. 한국어는 오랜 역사를 가진 언어다. 1443년 세종대왕이 훈민정음을 반포한 뒤 50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이어져 내려왔으며, 한글이 창제되기 이전에 한자를 차용해 표기한 시절까지 따지면 그 역사는 훨씬 더 옛날로 올라간다. (100쪽)



  조선 무렵에 생긴 일은 ‘글자 만들기’입니다. 글자가 있기 앞서 말이 있었습니다. 세종대왕이라는 사람은 ‘말’을 만들지 않았습니다. ‘한자 차용’이 있기 앞서 ‘말’이 있었습니다.


  참으로 어리석은 책입니다. 기껏 500년밖에 안 되는 말이라고요? 아니지요. 한국사람이 한국말을 쓴 햇수는 500만 해라고 해야지요. 이러한 해가 흐르는 동안 말은 어떻게 흘렀을까요? 글이 없이 말만 있던 기나긴 나날 동안 한국사람은 한국말을 하나도 안 잊고 아주 아끼면서 즐겁게 썼어요. 그런데, 말을 담는 글을 만든 뒤로, 자꾸 말이 바뀝니다. 글을 만든 사람은 권력자였기 때문입니다. 권력자와 지식인은 글을 잣대로 삼아 말을 재거나 따졌습니다.


  말은 삶을 짓는 사람이 지었습니다. 시골에서 흙을 지어 밥과 옷과 집을 지은 사람이 말을 지었습니다. 세종대왕이나 지식인은 글자(훈민정음)를 지었을는지 모르나, 글자에 담을 생각과 삶은 모두 시골사람이 흙을 가꾸어 삶을 짓는 동안 지었습니다.


  ‘말’이란 ‘해·별·달·밥·사랑’ 같은 낱말입니다. ‘ㄱ·ㄴ·ㅏ·ㅓ’는 말이 아니라 ‘글자(글)’입니다.



ㄷ. 인간이 남긴 기록 중에는 신에 대한 내용이 압도적으로 많다. 인간은 신이 어떤 존재인지, 신을 어떻게 섬겨야 하는지를 기록해 더 많은 사람들에게 전하고자 했다. 권력에 대한 기록도 적지 않다. 왕과 왕조의 이름과 통치 기간을 기록함에 따라 왕들의 이야기가 전설 속에서만 떠돌지 않게 되었다, 끝으로 행정·경제에 관한 기록은 나라의 곳간에 밀이 얼마나 있는지, 농부들에게 부과한 세금이 얼마인지 등 옛 시대의 모습을 짐작할 수 있게 도와준다. (114쪽)



  권력자와 지식인은 왜 글을 만들었을까요? 글을 만든 까닭은 말을 가두려는 뜻이었기 때문입니다. 글을 만들어서 정치권력 이야기만 역사로 적어서, 사람들을 종(노예)으루 부리려 했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학교교육은 아이들한테 ‘말’을 안 가르쳐요. 오직 ‘말과 얽힌 정치’와 ‘말과 얽힌 문화’와 ‘말과 얽힌 역사’만 가르치지요. 그래서, 오늘날 학교에서는 시험공부만 시키고, 모든 아이들은 학교에서 시험지옥에 휩쓸리면서 ‘창조하기(삶짓기)’하고 동떨어집니다.


  《언어가 사라지면 인류는 어떻게 될까?》라는 책은 무척 뜻깊은 이야기를 다룰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어느 한 가지도 뜻깊게 나아가지 못했습니다. 그렇다고 안타깝거나 아쉽다고는 여기지 않습니다. 이 책은 오늘날 입시지옥 얼거리 학교교육 틀에서는 쓸모가 많기 때문입니다. 시험공부에는 도움이 될 책이고, 시사상식을 늘리는 데에는 도움이 됩니다.


  그러나, ‘말’을 바르게 보거나, 깨닫거나, 알아차리거나, 배워서, 삶을 짓는 길로 나아가는 실마리를 알고자 한다면, 책을 덮으시기 바랍니다. 4348.1.24.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5 - 시골에서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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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 위 인공섬, 시토피아 - 사람이 만드는 미래의 해양 도시 미래를 꿈꾸는 해양문고 20
권오순.안희도 지음 / 지성사 / 201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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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기 삶읽기 178



숲과 바다는 언제나 한몸

― 바다 위 인공섬 시토피아

 권오순·안희도 글

 지성사 펴냄, 2012.1.4.



  숲과 바다는 언제나 한몸입니다. 숲이 망가지면 바다가 망가집니다. 바다가 망가지면 숲도 되살아나지 못합니다. 왜 그러할까요? 숲에 우거진 풀과 나무는 흙을 새로 짓고, 이 흙은 냇물을 타고 흘러서 갯흙이 되며, 물결이 치면서 바다로 갯흙이 살살 퍼집니다. 이리하여 바닷속 수많은 목숨은 숲을 먹으면서 살아요. 그리고, 너른 바다에서 자라는 목숨은 숲을 살리는 숨결로 거듭납니다. 숲과 바다는 떼어놓을 수 없습니다.


  그렇지만 사람들은 개발과 관광과 문화라는 이름을 내걸면서 숲을 망가뜨렸고, 바닷가를 따라 시멘트를 채웁니다. 숲흙이 깨끗하지 못하도록 망가뜨릴 뿐 아니라, 숲흙이 바다로 못 가도록 막습니다. 이러면서 물결은 늘 치는데, 물결은 바닷가 시멘트벽이나 찻길로 들이치니, 다시금 시멘트둑을 쌓고, 아스팔트 찻길을 늘리기만 합니다. 바닷가 모래는 차츰 사라질밖에 없고, 이러면서 바다도 뭍도 서로 일그러지지요.



.. 세계의 인구는 나날이 늘어 가는 데 비해 환경오염으로 사막의 면적이 점점 넓어지는 등 황폐해지는 땅이 늘어나면서 사람이 생활할 수 있는 육지는 점점 줄어들고 있다 … 이런 토지 부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사람들은 바다로 눈을 돌리게 되었다 … 우리 역사 속에 등장하는 인공섬들은, 주로 지배층이 인공섬이 있는 넓고 아름다운 정원을 꾸며 자신의 부와 권력을 과시하기 위해 만들었기 때문에 많은 비판을 받아 왔다. 목적이 적절하지는 않았지만 아름다운 자연환경을 가까이에 두고자 했던 마음만은 과학 기술과 관광 산업의 발달과 연결되어 오늘날 새롭게 평가를 받고 있다 ..  (22, 35∼36쪽)



  지구별에서 뭍은 모자랄까요. 지구별에서 바다는 ‘쓸데없이 있는 곳’일까요. 지구별 나라마다 왜 자꾸 도시를 늘리려 할까요. 도시를 끝없이 늘리고 다시 늘리면 무엇이 좋을까요. 모든 사람이 ‘땅에서 난 것’을 먹는데, ‘땅에서 자랄 틈’을 주지 않고 도시를 늘리기만 하는 오늘날 토목산업은 무슨 짓을 하는 셈일까요.


  한국 정부가 밀어붙인 4대강사업만 무시무시하지 않습니다. 한국 정부가 꾀하는 핵발전소와 송전탑만 무섭지 않습니다. 여느 도시를 넓히는 일도 무시무시합니다. 여느 도시에 아파트를 올리고 고속도로와 새 찻길을 늘리는 일도 무섭습니다. 이 모든 토목개발은 뭍과 바다와 숲과 지구별을 아름답게 살찌우는 길하고는 사뭇 동떨어지니까요.


  권오순·안희도 두 분이 쓴 《바다 위 인공섬 시토피아》(지성사,2012)를 읽습니다. 두 분은 대학교에서 토목공학을 배웠고, 꾸준히 토목공학을 학문과 이론과 정책으로 갈고닦는다 합니다. 이제 ‘뭍에서 할 만한’ 토목건설이 끝으로 치닫는다고 여겨 ‘바다에서 새로 할 만한’ 토목건설을 헤아린다고 합니다.



.. 최근에는 바다의 친환경적 가치를 생각하면서 무분별한 해안 매립은 환경 문제뿐만 아니라 경제적인 면에서도 결코 이익이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되어, 바다 인접 지역의 매립 공사가 급격히 줄어들게 되었다. 그러나 토지는 여전히 부족한 상태이므로 토지 부족을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했다 … 인공섬의 전체 면적은 400만 제곱미터이며, 아라비아와 지중해, 유럽 문화의 조화를 주제로 해서 1만 5000명이 거주할 수 있는 고급 빌라와 아파트, 호텔, 각종 상점과 음식점, 공연장 들을 건설할 예정이다 ..  (40, 78쪽)



  땅이 모자랄 일은 없습니다. 토건마피아가 춤을 추니 땅이 모자란 듯 보일 뿐입니다. 축구장이나 야구장을 왜 새로 지어야 할까요? 골프장이나 호텔이나 관광단지는 왜 지어야 할까요? ‘인공섬’에 호텔과 ‘고급 빌라와 아파트’ 따위를 짓는다는데, 이런 시설은 누가 쓸까요? 이런 시설이 있어야 지구별이 아름다울까요?



.. 육지에서 처리하기 힘든 쓰레기나 폐기물을 바다에 매립하기 위해 인공섬을 만들기도 한다 … 한 가지 목적에 매달리는 것이 아니라 여러 가지 역할을 하는 해양 도시를 건설하게 되면 새로 건설해야 하는 도시 수가 줄어 그만큼 탄소의 배출량을 줄일 수 있어서 친환경적 개발이 될 것이다. 뿐만 아니라 새로운 도시를 건설하려면 일자리도 만들어 내게 되어 국가 경제에도 도움이 된다 ..  (87, 112쪽)



  토건마피아는 바다에까지 손길을 뻗습니다. 토건마피아는 바다에서까지 ‘일자리 만들기’를 하겠다면서 ‘좋은 마음(선심)’을 쓰는 듯이 내세웁니다. “국가 경제에도 도움이 되”는 일이란 무엇일까요? 돈 몇 푼을 벌어들이려고 숲과 바다를 망가뜨리는 짓이 “국가 경제 살리기”와 “일자리 만들기”인가요?


  일자리를 만들거나 돈을 벌어야 사람이 살 만하지 않습니다. 깨끗한 밥을 먹고, 깨끗한 바람을 마시며, 깨끗한 보금자리를 누릴 때에 사람이 살 만합니다. 손수 흙을 가꾸어 밥과 옷과 집을 짓는다면, 경제개발을 해야 할 까닭이 없습니다.


  뭣 하러 인공섬을 지을까요? 한국에 많은 섬을 알뜰히 아끼고 돌보면 됩니다. 기껏해야 백 해조차 못 가는 시멘트와 쇠붙이와 아스팔트를 써서 뚝딱뚝딱 뭔가를 지은들 어디에 쓸까요? 백 해가 지나면, 아니 쉰 해밖에 안 되어도 모두 ‘건축폐기물’이 될 텐데, 이 건축폐기물을 버릴 땅이 모자라서 바다에 묻고 인공섬을 만들자는 소리인가요? 그러면, 앞으로 쉰 해나 백 해 뒤에 ‘인공섬 재개발’을 해야 하면, 그 ‘인공섬 건축폐기물’은 어디에 버려야 할까요?


  시멘트나 아스팔트나 쇠붙이가 천 해 만 해 가는 줄 알고 토목건설로 ‘돈벌이’와 ‘일자리’를 외치는 토건마피아는 제발 사라질 수 있기를 바랍니다. 지구별을 똑바로 바라보고, 삶을 똑바로 사랑하며, 숲과 바다를 똑바로 깨달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4348.1.3.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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