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판적 생명철학
최종덕 지음 / 당대 /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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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기 삶읽기 338



풀포기를 읽고 말하다

― 비판적 생명 철학

 최종덕

 당대, 2016.7.20.



결국 4대강 사업을 강행해 나가려니까 행정은 조급하고 계획은 억지춘향이 되고, 급조와 변조의 계획을 맞추려고 각종 근거자료를 아전인수 격으로 사용했다. 그러다 보니 앞뒤가 안 맞는 정보를 억지 선전하게 된 것이다. (106쪽)


현대 기계문명 사회에서 산업화된 대규모 농사 자체가 이미 자연파괴를 가져왔다. 육식옹호론에서는 농사의 자연파괴 요소를 지적하면서도 축산업의 대대적인 자연파괴 규모가 농업에 의한 파괴규모와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크다는 것을 말하지 않는다. (230쪽)



  상지대 교수로 철학을 가르치는 최종덕 님은 《비판적 생명 철학》(당대, 2016)이라는 책을 써내면서 자연과 생태를 조금 더 차분히, 올바로, 깊고 넓게 바라볼 줄 알아야 하지 않겠느냐고 이야기합니다. 과학자가 실험실에만 머물면서 ‘난 실험만 했을 뿐’이라고 해서는 안 된다며, ‘실험 결과가 어떻게 쓰이는가’까지 살펴야 한다고 밝힙니다. 이러한 눈길을 바탕으로 4대강 사업이 어떻게 왜 말썽이었는가를 짤막하게 간추리기도 합니다.


  억지로 밀어붙일 적에는 거침없기 마련입니다. 지난날 새마을운동 바람이 불 적에도 이엉을 얹은 집을 한달음에 슬레트지붕으로 바꾸었어요. 지난날에는 슬레트가 무엇인지 제대로 따지지 않았고 밝히지 않았으며 알려주지 않았어요. 오늘날에도 ‘슬레트 = 석면’인 줄 모르는 시골사람이 무척 많은데, 시골 군청에서는 새마을운동을 밀어붙이던 때와는 달리, 석면 지붕을 걷는 몸짓을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한창 밀어붙일 적에는 ‘슬레트가 좋다’고 했을 뿐이지만, 이 슬레트가 말썽거리인 줄 밝혀진 뒤에도 거의 뒷짐이라고 할 만해요.


  4대강 사업을 놓고도 이런 모습을 따질 수 있어요. 엄청난 시멘트덩이를, 뒤틀린 물길을, 더러워진 냇물을, 목돈을 들인 홍보시설을, 그동안 쏟아부은 돈을, 4대강 홍보에 나선 지식인을, 왜 그토록 서둘러서 이런 삽질을 했는가를 따져 보아야지 싶습니다.



생명의 씨앗을 틔운 선구자들의 공통점은 생명의 힘을 우리 내면의 마음에서 찾을 수 있다는 점을 스스로 자각하는 데 있었다 … 이 시기에 형성된 생명사상의 중요한 관점은 풀 한 잎 한 잎의 작은 생명이 우주의 생명을 반영하고 있다는 데 있다. 한 사람 한 사람 누구나 계급이나 성별, 지식이나 재산에 관계없이 생명의 소중함을 안고 태어난다는 것이다. (240, 241쪽)



  《비판적 생명 철학》은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 ‘생명 사상’이 어떻게 싹터서 퍼졌는가를 짚기도 합니다. 목숨 하나를 바라볼 줄 알던 깨친 이는 언제나 평화로운 평등을 풀 한 포기에서 읽을 줄 알았고, 계급이나 신분이나 성별이나 지식이나 돈에 매이지 않고 어깨동무하는 길을 살폈다고 합니다.



ㄱ. 발병 관련 원인자들은 대부분 간접적이며 우회적이며 복합적이며 다중적이다. (228쪽)

ㄴ. 그 민감성이 상당히 높으며 누적적이어서 작용의 결과가 매우 우회적이고 중층적이다. (233쪽)



  그런데 이 책은 말씨가 무척 어렵고 딱딱합니다. 이런 어렵고 딱딱한 말씨가 아니어도 학문을 할 수 있고, 생명이나 철학을 펼 수 있습니다. 풀 한 포기에서 고운 살림을 읽은 옛사람처럼 풀포기 같은 글로 생각을 펼 수 있으면 한결 좋았지 싶어요. 꽃송이 같고 숲바람 같은 글로 생각을 여밀 수 있기를 빕니다. 2018.3.1.나무.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시골에서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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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 신드롬 - 자기계발을 부추기는 세상에서 중심 잡기
칼 세데르스트룀.앙드레 스파이서 지음, 조응주 옮김 / 민들레 / 201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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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기 삶읽기 336



잘살기 바람

― 건강 신드롬

 칼 세데르스트룀·앙드레 스파이서/조응주 옮김

 민들레, 2016.8.1.



웰니스는 이제 단지 북미권 일부 대학생들만 추구하기로 다짐하는 목표가 아니다. 오늘날 웰니스는 현대인이 끊임없이 되뇌어야 하는 도덕적 요구가 되었다. (11쪽)


몇십 년 전만 해도 잘 알려지지 않았던 라이프 코칭은 이제 꽤 흔한 직업으로 자리잡았다. 전 세계 약 4만5천 명이 라이프 코칭업에 종사하고 있고, 업계 규모는 연간 20억 달러에 이른다. (25쪽)


많은 기업들이 직원 건강에 열을 올리는 데에는 다른 이유가 있을지 모른다. 직원을 건강 프로그램에 참여시켜 인력의 체질 자체를 기업 입맛에 맞게 조정하려는 것일지도 모른다. (69쪽)


〈블랙 미러〉 속 사회는 통제사회다. 작은 걸음 하나하나, 사소한 활동 하나하나 다 기록되어 개인점수로 환산된다. (191쪽)



  ‘the wellness syndrome’이라는 책을 한국말로 옮기며 《건강 신드롬》(민들레, 2016)이라 이름을 붙이는데, 그리 와닿지 않습니다. ‘wellness’는 틀림없이 ‘health’나 ‘fitness’하고 다른 영어입니다. 다만 영어사전을 살피니 이 영어나 저 영어나 그저 ‘건강’으로만 풀이하는데, 《건강 신드롬》을 곰곰이 읽으니 ‘웰니스’는 ‘잘살기’를 가리키는구나 싶어요.


  “건강 신드롬”보다는 “잘살기 바람”이라고 할까요. 잘살고 싶다는 바람이 불거나 잘살려고 하는 물결이 인다고도 하겠지요.


  방송이나 사회나 학교에서 사람들더러 ‘잘살자’고 부추긴다고도 할 만합니다. 그런데 방송이나 사회나 학교는 사람마다 다른 모습이나 삶이나 즐거움을 짚으면서 잘살자고 부추기지는 않기 일쑤입니다. 으레 돈에 따라 움직입니다. 돈이 아니고도 잘살 만한 길은 널리 있을 텐데 이 대목은 좀처럼 안 짚어요.


  “잘살기 바람”을 짚는 책은 사람들이 너무 쉽게 휩쓸리고, 방송이나 사회나 학교가 사람들을 너무 틀에 가두려 한다는 대목을 이야기합니다. 그런데 한 가지 줄거리가 빠졌지 싶어요. 잔뜩 바람을 넣는 얄궂은 사회 얼거리를 낱낱이 짚으려 하기는 하되, ‘그렇다면 우리가 스스로 잘사는 길이란 무엇인가?’라는 대목에서는 깊게 들어가지 않는구나 싶어요.


  얄궂은 사회 흐름을 짚는 이야기로도 얼마든지 새로운 길을 말한다고 할 수 있을 테지만, 알맹이를 쏙 빼놓고 언저리만 툭툭 건드리는 셈이랄까요. 2018.1.26.쇠.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시골에서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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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의 온도 (100만부 돌파 기념 양장 특별판) - 말과 글에는 나름의 따뜻함과 차가움이 있다
이기주 지음 / 말글터 / 201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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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기 삶읽기 311



따뜻하고 싶은 마음이라면 거품벗기를

― 언어의 온도

 이기주 글

 말글터 펴냄, 2016.8.11. 13800원



“내가 환자라는 호칭을 사용하지 않으시던데요?”라고 묻자 그는 “그게 궁금하셨어요?” 하고 되물었다. 의사는 별걸 다 물어본다는 투로 심드렁하게 대답했지만 난 그의 설명을 몇 번이고 되씹어 음미했다. “환자에서 환이 아플 ‘환’이잖아요. 자꾸 환자라고 하면 더 아파요.” (22쪽)


칭찬과 지적이 적절히 혼재된 면담이 끝날 무렵, 선생님은 “너처럼 가능성이 있는 녀석이 그러면 안 된다” 하셨다. 난 가능성이란 낱말이 참 듣기 좋았다. (283쪽)


하릴없이 되뇐다. 살면서 내가 용서해야 하는 대상은 ‘남’이 아니라 ‘나’인지 모른다고. (302쪽)


곰곰이 따져 봤다. 아차, 꽃 축제에 아름다운 꽃이 없었을 리 없다. 그런 꽃을 알아채고 음미하려는 내 여유와 의지가 없었던 건지 모른다. (306쪽)



  어제 감자국을 끓이는데 국에서 보글보글 거품이 솟으니 곁에서 지켜보는 큰아이가 묻습니다. “그 거품 걷어내야 해?” “안 걷어도 돼. 다만 거품을 안 걷으면 흘러넘칠 수 있어. 그뿐이야.”


  국을 끓이면서 거품을 안 걷을 수 있고, 거품을 살뜰히 걷을 수 있습니다. 거품까지 먹는들 대수롭지 않지만, 거품을 걷지 않으면, 그야말로 걷잡을 수 없이 솟는 거품이 뚜껑을 밀치면서 그만 국물이 꽤 넘치고 맙니다. 이때에는 국물도 버리고 냄비에도 검댕이 생기며 불덕을 닦아내자면 꽤 품이 들어요.


  《언어의 온도》(말글터, 2016)라는 책을 마을책방을 다녀오면서 장만했는데, 이 책은 책방에 앉아서 몇 분 안 걸려서 다 읽고 말았습니다. 글쓴이 스스로 삶으로 겪은 이야기보다는 둘레에서 지켜본 모습을 옮긴 글이 가득한 터라, 마음으로 스밀 만한 대목이 드물었다고 느낍니다.


  그리고 글쓴이는 글치레를 너무 자주 합니다.


  “고언苦言을 들려주었다”, “모자母子의 모습”, “정서적 화상火傷을 입을 수 있습니다”, “내 언어의 총량總量에 관해”, “다언多言이 실언失言으로 가는”, “공백空白이란 게 필요하다”, “부재不在의 존재存在가”, “염치廉恥를 잃어버린 것 같다” 같은 대목이 끝없이 나옵니다. 글에 한자를 덧달 수도 있다지만, 쉽게 쓸 말을 버리니 이렇게 글치레만 하는구나 싶어요.


  “유머는 그렇지 않다. 익살과 해학과 삶의 희로애락이 적절히 뒤범벅된 익살스러운 농담을 의미한다”는 무슨 말인지 알 길이 없습니다. “되씹어 음미했다”나 “떠오르는 기억이 있다”나 “얼큰하게 취하고 나서는”이나 “일부 조류는 … 내가 목격한 새도”나 “부친을 … 아버지와 말을 섞지”는 겹말입니다. 따스한 말에서 따스한 마음을 찾으려 한다면, 말마다 서린 다른 결을 찬찬히 짚어야지 싶습니다.


  글에서 거품을 걷어내면 좋겠습니다. 거품을 굳이 끌어안아야 하지 않습니다. 거품맛은 오래가지 않습니다. 더구나 거품맛으로는 배부르기 어렵습니다. 우리는 맛있는 국을 먹어야 배부릅니다. 즐겁게 국을 끓이고 먹고 치우고 삶을 누릴 노릇이라고 생각해요.


  책이 한때 잘 팔리는 책이 될 수 있겠지요. 잘 팔리는 책이라는 이름을 얻어도 나쁘지 않을 테고요. 그러나 한때 잘 팔린다는 거품에 매인다면 삶을 가로지르는 기쁨이나 보람이나 노래나 놀이하고는 동떨어지기 마련입니다. ‘사랑받는 책’에는 거품맛이 없다는 대목을 글쓴이가 헤아려 보기를 바랍니다. 2017.12.28.나무.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시골에서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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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치 앞도 모르면서
남덕현 지음 / 빨간소금 / 201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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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책읽기 삶읽기 300



술푸념 같은 수다마당

― 한 치 앞도 모르면서

 남덕현 엮음

 빨간소금 펴냄, 2017.1.23. 13000원



“글 쓰신다니께 여쭤봐야 쓰겄네. 왜 장화홍련 안 있유? 갸들 중이 어떤 년이 죽일 년이랴? 우덜이 읽어서 아는 출신덜이 아니구 맬깡 들어서 아는 출신덜이라 줏어들은 가락이 지각각이다 보니께 합이를 못 보겄네?” (10쪽)


“경제 워쩌구 따질 만헌 전답이 죄다 누구 거간디? 당장 우덜만 혀두 조상님이 물려준 전답 다 워쨌댜? 자석새끼덜 갤친다구 팔아잡숴, 사업헌다믄 공장 뒷구녕에 쑤셔 느줘, 남은 전답두 워디 우덜 꺼여? 맬깡 농협이다 잽혀먹었지?” (71쪽)


“사램두 늙어서 속이 텅 비야 시방 맹키루 허깨비 같은 연기가 스쳐두 속이 올믄서 눈물을 수월헉 떨구는 거니께. 그눔의 거 얼렁 떨구구 가야지 원제까장 그 무거운 놈의 걸 달구 댕기믄서 용을 쓸겨, 안 그려?” (249쪽)



  오늘날 시골자락에서 할배가 쓰는 말은 방송이나 농협에서 쓰는 말에 젖어들었습니다. ‘민중자서전’ 같은 책에서 엿볼 수 있는 삶하고 살림이 녹아든 슬기로운 말을 오늘날 시골자락 할배한테서 듣기란 쉽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우리가 시골자락 할배한테 ‘껄렁한 말놀이’ 아닌 ‘흙을 만지면서 살림을 가꾼 이야기’를 바란다면 틀림없이 이러한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으리라 봅니다. 비록 요즈음 어르신은 새마을운동이 한창이던 무렵 흙일을 배운 터라 기계하고 농약하고 비닐하고 비료 없이는 땅을 만지지 못하시는 얼개가 되었으나, 이분들이 더 어릴 적에 마음껏 들하고 숲하고 바다를 가로지르며 놀던 이야기하고 그무렵 둘레 어른 곁에서 심부름을 하면서 삶을 돌아본 이야기를 여쭌다면 자근자근 삶꽃을 나누어 줄 만하리라 생각해요.


  《한 치 앞도 모르면서》(빨간소금, 2017)라는 책을 집을 적에는 시골에서 흙을 만지고, 집을 짓고, 숲을 보듬으며, 아이들을 사랑하는 손길이나 눈길이 말길에 어떻게 녹아드는가 하는 대목을 느낄 수 있으려나 하고 생각했습니다. 그렇지만 이 책에 흐르는 충청도 시골 할배 이야기는 ‘슬기로운 사투리’라기보다는 ‘껄렁한 사투리’입니다. 사회나 정치나 살부빔을 둘러싼 수다라면 저로서는 달갑지 않습니다. 읽는 내내 거북합니다. 재미도 못 느끼겠습니다.


  다만 저는 연속극을 아예 안 봅니다. 집에 텔레비전을 들이지 않고 삽니다. 흔한 한국영화조차 안 봅니다. 연속극도 텔레비전도 그때그때 떠도는 한국영화도 즐겨보는 분이라면 이 책이 제법 재미있을 수 있으리라 여깁니다.


  저는 이 책이 나쁘다거나 얄궂다고는 여기지 않습니다. 그저 삶을 짓고 살림을 가꾸며 사랑을 노래하는 슬기로운 이야기를 엿볼 수 없기에, 첫 쪽부터 마지막 쪽을 읽어내기까지 매우 고되었습니다. 시골 할배는 어쩌다가 노래를 스스로 잊거나 잃으면서 푸념만 가득한 하루가 되고 말까요. 2017.12.28.나무.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시골에서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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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사의 삶
최준영 지음 / 푸른영토 / 201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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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기 삶읽기 331


‘것·-적·-의’ 털라면서도 정작 털지 못하네요
― 동사의 삶
 최준영 글
 푸른영토, 2017.11.5. 14800원


  《동사의 삶》(푸른영토, 2017)이라는 책은 글쓴이가 어느 자리에 ‘명사’로 왔으면 하고 부른 일 때문에 태어났다고 합니다. 글쓴이 최준영 님은 ‘명사(名士)’가 아닌 ‘동사(動士)’이기 때문에 그런 이름이 붙은 자리는 갈 수 없다고 밝혔다고 합니다. 그러니 《동사의 삶》은 이름값이나 머무르거나 고인 삶이 아닌 ‘움직이는 낮은 자리’에서 짓는 이야기를 다루려는 책이라고 밝혀요.


좋은 문장이란 흔히 발로 쓴 문장이거나 진심이 담긴 문장이라고 하죠. 얼핏 그럴듯하게 들리지만 상투성의 함의를 벗기 힘든 말이죠. 내 생각에 좋은 문장이란 깊은 사유 혹은 의식의 심연에서 길어올린 문장이에요 … 결국 좋은 문장이란 여러 사람이 좋다고 하는 문장이 아니라 바로 지금 내 마음을 움직이는 문장이에요. (30쪽)


  움직이는 삶이란 어떤 모습일까 하고 궁금하게 여기며 책을 폅니다. 그런데 글쓴이는 “발로 쓴 글은 좋은 글”이라는 말은 뻔한(상투성) 말이라면서, 이녁한테 내키지 않는다고 밝힙니다. 움직이는 삶을 말하려 하면서 ‘움직임(발로 쓴)’으로 펼치는 글이 좋은 글이 아니라면?

  최준영 님은 ‘깊은 생각(사유)’이나 ‘깊은 마음(의식의 심연)’에서 길어올린 글이 좋은 글이라고 밝힙니다. 이 대목을 읽으며 고개를 갸우뚱합니다. 우리가 발로 삶을 디디지 않고서 깊은 생각이나 마음을 길어올릴 수 있을까요. 깊은 생각이나 마음은 어느 자리에서 길어올릴까요. 훌륭하다는 책을 많이 읽으면 생각이나 마음이 깊어질까요. 책만 읽고 안 움직이는 삶에서 참으로 깊은 생각이나 마음을 길어올릴 만할까요.

  최준영 님은 곧 말을 바꾸어 ‘오늘(지금) 내 마음을 움직이는 글(문장)’이 좋은 글이라고 밝힙니다. 아무튼 ‘움직이다’라는 말로 돌아옵니다. 다만, 글쓴이가 스스로 움직여서 삶을 지어낸 글이 아닌, 읽는이가 스스로 마음을 움직이면 좋은 글이라고 밝힌 셈입니다.

  이 말은 틀리지는 않다고 느껴요. 널리 알려지거나 훌륭하다는 글도 오늘 내 마음에 끌리지 않다면 나로서는 좋다고 느끼기 어렵거든요. 어설프거나 엉성한 글이라 하더라도 오늘 내 마음에 닿는 어떤 결이나 느낌이 있으면 좋다고 느낄 테고요. 그렇지만 최준영 님이 밝히는 ‘좋은 글’ 이야기에서는 글을 쓰는 사람이 머리가 아닌 온몸으로 삶을 지으면서 한 올 두 올 길어올린 깊은 생각이나 마음을 담는 몸짓을 살짝 업신여기거나 밀치는 느낌이 깃드는구나 싶습니다.


공부에는 끝이 없어요. 다만 계속 이어감으로써 비로소 머릿속에 작은 공간 하나를 만들어 내는 것이에요. (36쪽)

아이에게 책을 읽어 주는 것은 단순히 언어를 가르치거나 이야기를 들려주는 행위가 아니에요. 그것을 통해 아이의 시간의식, 역사의식, 자기의식과 같은 고차적 의식 내지 고등정신 기능을 일깨우고 아이의 뇌가 정신적 문법을 재생산하도록 하는 매우 중요한 작업이죠. (47쪽)


  《동사의 삶》이라는 책은 글쓴이가 머리말부터 마지막 쪽까지 ‘움직이는 삶’을 담은 책인 듯 보였지만, 정작 처음부터 끝까지 퍽 어려운 말이 줄곧 흐릅니다. 움직이기보다는 고인 글이라고 할까요.

  아이한테 책을 읽히는 살림을 놓고서 쓰는 말도 퍽 어렵지요. 우리가 ‘움직이는 삶’일 적에 이렇게 말할 만한지 아리송해요. 아이한테 책을 읽으면서 아이가 스스로 오늘과 어제와 나를 새롭게 돌아보면서 생각을 슬기롭게 살찌우면서 말을 새롭게 배울 수 있다, 이렇게 이야기를 풀어내면 좋을 텐데요.

  글쓴이는 글을 쓸 적에 세 가지 몹쓸 녀석을 털어내야 한다면서 ‘것·-적·-의’를 손꼽습니다. 그렇지만 막상 ‘것·-적·-의’를 털어내자고 밝힌 글에 ‘것·-적·-의’가 버젓이 나와요.


문장에서 ‘것’이라는 지시어를 남발하는 습관은 좋아 보이지 않아요. 서술어에서도 그렇거니와 그 외 문장성분에서도 마찬가지고요. 가능하면 ‘것’은 생략하거나, 바꿀 필요가 있는 거죠. (173쪽)

습관적으로 명사 뒤에 ‘적’을 붙이게 되죠. 강의 중 안 붙여도 된다고 했더니 항의까지 하네요. (182쪽)

3번, 6번, 7번의 경우 ‘와의, 와의, 에서의’ 등의 이중조사를 쓰고 있는데요, 이건 정말 지양하면 좋겠어요. (183쪽)

조사 ‘-의’의 반복을 피하라. (184쪽)


  “‘것’은 생략하거나, 바꿀 필요가 있는 거죠”는 “‘것’은 빼거나, 바꾸어야지요”로 손볼 만합니다. “습관적으로 명사 뒤에 ‘적’을 붙이게 되죠”는 “버릇처럼 ‘적’을 붙이지요”로 손볼 만해요. “7번의 경우 ‘와의, 와의, 에서의’ 등의 이중조사를 쓰고 있는데요”는 “7번은 ‘와의, 와의, 에서의’ 같은 이중조사를 쓰는데요”로 손볼 만하고요. “조사 ‘-의’의 반복을 피하라”는 “토씨 ‘-의’를 되풀이하지 마라”로 손보고요.

  글쓴이 최준영 님이 《동사의 삶》이라는 책을 쓰기로 하셨다면 조금 더 움직이는 삶을 드러내 주면 좋으리라 봅니다. 가만히 보면 책이름에도 ‘-의’를 넣어 “동사의 삶”이라 했어요. 글에서 ‘-의’를 털어야 알맞다면 “동사라는 삶”이나 “동사 살림”이나 “동사로 살다”처럼 적을 만합니다.

  그리고 이 책은 글쓴이 삶보다는 다른 책에서 따온 글이 대단히 깁니다. 어느 꼭지는 아예 다른 책에서 따온 글로만 채웁니다. 아무래도 ‘움직이는’ 삶이 아닌, ‘읽고 따온’ 삶이로구나 싶어요.

  조금 덜 읽어도 좋으니 조금 더 움직여 본다면 좋겠어요. 조금 덜 따와도 좋으니 스스로 기쁘게 움직이며 지은 삶을 수수하게 담아내 본다면 한결 나으리라 생각합니다. 이때에 비로소 움직이며 살아가는 즐거운 이야기가 꽃을 피우리라 생각해요. 2017.11.23.나무.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시골에서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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