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의 탄생 - 문자라는 기적
노마 히데키 지음, 김진아.김기연.박수진 옮김 / 돌베개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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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책으로 삶읽기 359


《한글의 탄생》

 노마 히데키

 김진아·김기연·박수진 옮김

 돌베개

 2011.10.9.



‘움직이다’의 어근인 ‘움직’을 이용하여 ‘동사’를 ‘움직씨’라고 하는 것을 그 예로 들 수 있다. 한국어 고유어의 조어력造語力은 놀라울 따름이다. (66쪽)


이러한 지식인들의 모든 ‘지知 = 앎’은 한자한문에 의해 형성되고 조직되어 움직이고 있었다. (225쪽)



  《한글의 탄생》(노마 히데키/김진아·김기연·박수진 옮김, 돌베개, 2011)을 읽었다. 한국에서 제법 읽힌 책이지 싶은데, 그리 새롭다 싶은 이야기는 흐르지 않는다. 이 만한 이야기는 그동안 한국 학자도 다 짚었다. 다만 이 만한 이야기를 짚은 국어국문학 책을 읽은 여느 사람은 드물었으리라. 거의 논문이거나 대학교재로만 나왔으니까. 여느 사람이 읽을 만하도록 한글을 다룬 책이라는 대목은 좋다고 할 만하지만, 번역은 시시하다. 일본 한자말, 일본 말씨, 일본 영어가 그득하다. 어느 모로 본다면 한국은 고작 서른여섯 해 식민지살이를 겪었으면서도 제 말씨를 감쪽같이 잊었다. 한글을 빚은 놀라운 나라이면서, 제 글살림을 잊은 놀라운 나라인 셈이다. 더 헤아린다면, 우리가 이제부터 살필 대목은 ‘글’이 아닌 ‘말’이다. 옛책을 바탕으로 글살림을 파고드는 길은 퍽 쉽다. 이와 달리 먼먼 옛날부터 ‘여느 사람 누구나 널리 쓰는 말’이 어떻게 태어나고 자라며 새로 일어설 만한가를 짚고 살피는 이야기는 거의 없다시피 하다. “태어난 한글”을 넘어 “태어난 한말”을 바라보지 못한다면 반토막조차 못 된다. ㅅㄴㄹ


(숲노래/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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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착란 - 어느 젊은 시인의 내면 투쟁기
박진성 지음 / 열림원 / 201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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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책시렁 37


《청춘착란》

 박진성

 열림원

 2012.8.16.



우리가 시라고 써 온 문장들은 우리 마음의, 감각의 어떤 우발적인 조합이 글자로 튀어나온 거고, 내가 듣고 있는 음악, 네가 듣고 있는 음악은 어떤 날들의 바람의 기록들이고. (36쪽)


여전히 병원은 들락날락하고 있지만 많이 좋아진 상태고 아픈 티를 내지 않으려고 노력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시는 좀 편안해진 것 같다. (93쪽)


아직 꽃은 보이질 않고 꽃 피는 소리가 왁자하게 거리를 기어다닌다. 이번 봄의 나의 목표는 한 사람을 용서하는 것, 그리고 나 자신도 용서하는 것. 그리하여 아무도 미워하지 않는 것. (195쪽)


대학 때 연애하던 여자아이가 말했다. 당신은 늘 열렬해. 절박해. 하지만 그 열렬함이, 절박함이, 누군가에게는 폭력이 될 거란 거, 한번쯤 생각해 봤니? (278쪽)



  고은 시인이 쓴 시나 글을 읽으면, 술 마시는 이야기가 수두룩하게 나옵니다. 술이 나쁘다고 여기지 않습니다. 다만 술힘을 빌려서 넋을 잃은 채 자잘한 짓을 일삼는다면, 이는 사내다운 길이 아닌 밉살스런 길이지 싶습니다. 그런데 고은 시인하고 술자리를 함께한 글벗이나 책벗이 참 많을 텐데 여태 이런 얘기를 쉬쉬합니다. 최영미 시인이 이 일을 널리 터뜨렸고, 박진성 시인이 이를 뒷받침했습니다.


  문득 궁금해서 박진성 시인이 쓴 책을 헤아리다가 《청춘착란》(박진성, 열림원, 2012)을 읽기로 했습니다. 이 책은 시인이라는 길을 걷기 앞서 스스로 얼마나 아픈 삶이었나를 적바림하면서, 시인이라는 길을 걷는 동안 또 얼마나 고단한 나날인가를 빼곡하게 적습니다.


  온통 아픈 이야기가 흐르는 이야기를 읽기는 수월하지 않습니다. 쓴 사람뿐 아니라 읽는 사람도 함께 아프기 마련이니까요. 그러니까 말이지요, 고은이란 시인하고 함께 술자리를 했던 숱한 글벗(문인)하고 책벗(출판 관계자)은 밉살스런 짓을 일삼은 사내하고 똑같이 뒹굴면서 그런 짓이 얼마나 밉살스러운가를 하나도 못 깨달을 수 있겠구나 싶어요.


  한통속이란 말은 그냥 태어나지 않습니다. 젖어들면서 한통속이 됩니다. 끼리끼리란 말은 그냥 생기지 않습니다. 물들면서 아무 말을 하지 않으니 끼리끼리가 됩니다. 그리고 아파 보면서, 아프게 살면서 아픔을 씻는 길을 살피고, 아픈 이웃을 알아보는 눈이 트이겠지요. 어느 날 아픔을 씻어낸다면 비로소 웃는 길을 알아볼 테고, 웃는 길을 알아보는 그날은 남들을 따라 웃거나 눈치를 보며 짓는 웃음이 아닌, 마음에서 터져나오는 웃음으로 이어지리라 생각합니다.


  다만, 부러 어려운 말을 써야 글이 되지 않는다는 대목을 헤아리면 좋겠습니다. 학교나 인문책이나 오늘날 온갖 문학에서 어려운 말을 널리 쓴다고 하더라도, 그 어려운 말이란 참마음을 가리거나 감추는 허울인 줄 알아챌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글쟁이란 비평쟁이가 어려운 말이란 허울로 이름값을 키우거나 이름담을 쌓는 길이 얼마나 부질없는가를 잘 헤아려서 새로운 글길을 닦을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굳이 그들 울타리에 끼어들어 끼리끼리 노닥거려야 빛나는 글이름을 얻지 않습니다. ㅅㄴㄹ


(숲노래/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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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 소반다듬이
권오운 지음 / 문학수첩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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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책시렁 26


《우리말 소반다듬이》

 권오운 글

 문학수첩

 2011.10.20.



다만 ‘학교에서 사투리를 가르치고 사투리를 공용어에 적극 편입시키는 방안을 강구하라’는 다소 어처구니없는 요구(?)로도 한 나라의 어문정책을 흔들어 볼 수 있구나 하는 한심함이 못내 아쉬워 꺼낸 소리다. (113쪽)


‘길고양이’는 순전히 만든 말에 지나지 않는다. 길에 돌아다닌다고 ‘길고양이’인가? 그런 말은 처음 들어 본다. (142쪽)


‘물 냄새’가 허무맹랑한 소리다. 다 아는 것처럼 본디 물에는 냄새가 없다. 사전에도 ‘빛깔, 냄새, 맛이 없고 투명하다’고 되어 있다. 공기 역시 마찬가지다. 다만 물에서 냄새가 나는 것은 물 속에 녹아 있는 어떤 성분에 의한 것일 뿐이다. (241쪽)


‘짜리몽땅하다’는 일상생활에서 널리 쓰이는 말이지만 바른말은 아니다. 하다못해 방언이나 속어로도 사전에 올라 있지 않은 말이다. (249쪽)



  글만 쓸 적에는 글을 좀 알는지 모르나, 글에 담을 삶은 잘 모를 수 있습니다. 그래서 글을 쓰려는 꿈이 있다면, 글쓰기에 마음을 덜 쓰더라도 삶을 가꾸고 살림을 짓는 길에 마음을 더 쓸 수 있어야지 싶습니다. 스스로 가꾸는 삶이 고스란히 글이 되고, 스스로 짓는 살림이 하나하나 글이 됩니다.


  정치에서도 이와 같습니다. 정치하는 솜씨가 좋다고 해서 정치가 훌륭할 수 없습니다. 사람으로서 살아가는 길을 알고, 사람답게 살림을 하는 손길이 몸에 배어야 비로소 참하거나 착한 정치가 될 만하지 싶어요.


  《우리말 소반다듬이》(권오운, 문학수첩, 2011)는 한국에서 소설을 쓰는 분들이 글손질에 얼마나 마음을 못 쓰는가를 낱낱이 짚습니다. 매우 날카롭거나 따갑다고 할 수 있는 책입니다. 소설지기가 줄거리를 엮고 글멋을 부리느라 바쁜 나머지 글결을 놓치거나 글길에서 벗어나는 모습을 호되게 나무랍니다.


  한국 소설이 워낙 글솜씨가 엉성하거나 엉망이라서 호되게 나무랄 수도 있구나 싶습니다. 다만, 나무라는 대목은 나쁘지 않으나 너무 틀에 매인 나무람질이 보이기도 합니다. 사투리를 학교에서 못 쓰게 하는 얼거리가 시골살림을 얼마나 뒤트는가를 글쓴이는 잘 모르는 듯합니다. ‘길고양이’는 글쓴이 말마따나 사람들이 새로 지은 낱말입니다. 고양이한테 ‘도둑-’이라고 붙이는 이름이 걸맞지 않다고 여겨 새말을 지었어요. 물은 어디에 흐르는가에 따라 맛이 달라요. 물에 녹은 어느 성분 때문에 맛이 달라진다지만, 이는 밥이나 풀도 같겠지요. 그런데 성분을 넘어 우리 마음에 따라 물맛이 달라지기도 해요. 《물은 답을 알고 있다》 같은 책을 좀 보셔야지 싶습니다. 그리고 한국말은 결하고 맛을 살려 얼마든지 새로 가지를 칩니다. ‘짜리몽땅하다’뿐 아니라 ‘짜리몽툭하다’처럼 써도 됩니다.


  이밖에 글쓴이는 “만져지는 감촉(75쪽)”, “살갑고 정겨운(114쪽)”, “더 심하면 심했지(235쪽)”, “직접 체험해(255쪽)”, “거의 매 쪽마다(265쪽)” 같은 겹말을 쓰기도 합니다. “하고 있다” 꼴도 모두 겹말입니다. 다만 이런 잘잘못을 떠나, 사전을 곁에 두고 글을 쓰기도 해야겠으나, 사전에서도 틀린 곳이 많으니, 우리는 삶을 가꾸고 살림을 지으면서 몸으로 느끼고 익히며 글을 써야지 싶습니다. ㅅㄴㄹ


(숲노래/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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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언의 발견
정승철 지음 / 창비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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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기 삶읽기 348


제국주의·독재가 빼앗은 말 ‘사투리’
― 방언의 발견
 정승철
 창비, 2018.3.30.


  전남 고흥이란 고장에서 살며 이웃을 만나면 ‘고흥말’을 듣기 몹시 어렵습니다. 고흥 이웃님은 ‘고흥에서 나고 자란 사람’ 곁이 아니라면 고흥말을 좀처럼 안 씁니다. 나이가 지긋한 할머니나 할아버지쯤 되면 고흥 텃사람 곁이 아니어도 더러 고흥말을 쓰지만, 이분들도 되도록 고흥말 아닌 서울말을 쓰려고 애씁니다.

  광주나 대구나 부산 같은 고장에 마실을 가도 그곳에서 마주하는 분들 입에서 광주말이나 대구말이나 부산말은 좀처럼 흘러나오지 않습니다. 광주에서도 대구에서도 부산에서도 그 고장 텃사람 곁이 아니라면 웬만해서는 서울말을 쓰려고 하지요.


‘표준어’는 19세기의 제국주의 또는 국가주의 시대의 산물이다. 그것은 서양 제국주의 국가(일본 포함)에서 국민의 의사 전달 수단을 통일하여 국가적 역량을 결집하고 이를 바탕으로 타국에 대한 침탈을 도모하기 위해 제안되었다. 그러기에 종전 후 제국주의가 종식되면서 이들 나라에서는 효력이 다한 표준어 개념을 폐기 또는 유보하기에 이른다. 이로써 보면 광복 이후에 우리는 산업화를 위해 그러한 표준어를 정책적으로 수용한 것이 된다. (6쪽)


  《방언의 발견》(정승철, 창비, 2018)이라는 책을 읽으면서 사투리를 생각해 봅니다. 이 책은 한국을 비롯한 세계 여러 나라에서 ‘표준말 정책을 왜 세웠’는가를 짚으면서, 한국하고 일본을 뺀 모든 나라는 제국주의·식민지 다툼이 저문 뒤로는 나라에서 표준말 정책을 걷어냈다고 밝힙니다. 일본조차도 나중에는 표준말 정책을 모두 걷어냈다지요.

  한국은 일제강점기에 조선총독부 등쌀에 밀려 서울말을 표준으로 삼아 윽박지르는 물결이 처음 일었다고 합니다. 해방 뒤 군사독재가 선 뒤로는 낡은 제국주의마냥 사투리를 깔보고 서울말을 높이는 교육 정책까지 섰다고 해요.


일제강점기에 표준어가 차츰 자리를 잡아가면서 사투리(나아가 지방문화)를 무시하는 경향이 사회 표면으로 부상하기 시작하였다. 그 결과 학교교육 현장에서조차 사투리를 ‘틀린 것’이거나 심지어 ‘야만적인 것’으로 받아들이는 편견이 툭 불거져 나오기도 했다. (67쪽)

그러한 가운데 전국의 지방 사투리는 전근대적이며 국가 분열을 조장하는 말, 나아가 국어를 오염시키는 바르지 않은 말로 여겨졌고, 결국 표준어로 고쳐져야 하는 말이 되었다. 국가 주도의 산업화가 무엇보다 우선시되는 편파적 경쟁 선상에서 우세한 표준어를 마주해 열세의 사투리가 서 있게 된 것이다. 이러한 사정은 1990년대 중반까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144쪽)


  제가 하는 일이 한국말사전 짓기이다 보니, 여러 고장으로 이야기를 펴려고 마실을 곧잘 다니는데, 이때에 으레 그 고장에서든 그곳 교사하고 어른하고 푸름이한테 “왜 제 앞에서는 사투리를 안 쓰시나요? 저는 사투리를 듣고 싶어요.” 하고 여쭙니다. 이때마다 저한테 “어릴 적부터 사투리를 쓰면 촌스럽고 나쁘다는 꾸중을 들어서, 서울말 쓰는 사람하고 있을 적에는 사투리가 저절로 안 나와요” 하고 말씀합니다.

  그런데 참 재미있게도, 이분들이 저한테는 서울말을 쓰셔도 이분 옆에 있는 텃사람한테는 사투리를 써요. 한창 서울말로 얘기를 하시다가도 전화를 받으면 곧바로 사투리로 바꿉니다.

  곰곰이 돌아보면 한국에서는 부산이나 대구에 사는 분들조차 부산말하고 대구말을 서울말 밑에 두는 셈입니다. 이렇게 큰 도시에 사는 분마저 서울말을 높이 여기고, 서울말을 안 쓰면 ‘시골스럽다는 놀림을 받고 꾸중을 듣는다’고 여기니, 대구 곁에 있는 구미나 청도라든지, 광주 곁에 있는 화순이나 보성이라면 사투리 말씨 때문에 얼마나 놀림을 받았을까 어림해 볼 만합니다.

  여기에 한 가지가 더 있습니다. 전남 고흥에 살며 가만히 지켜보면, 고흥말은 고흥 곁에 있는 큰도시 순천에 밀려 ‘시골말 놀림’을 받습니다. 고흥군에서는 면소재지 사투리가 읍내 사투리에 밀려 ‘시골말 놀림’을 받아요. 다시 작은 마을(행정구역 ‘리’인 곳)은 면소재지 사투리에 밀려 ‘시골말 놀림’을 받습니다. 큰 틀에서 보면 서울말은 다른 큰도시를 내리누리고, 여러 큰도시는 군을 내리누르며, 군에서 읍은 면을 내리누르는데, 면조차 작은 마을을 내리누르는 얼개입니다.


현대의 선진국 중에 헌법에 공용어를 아예 명시하지 않은 나라는 영국과 미국뿐이다. 이 두 나라에서는 언어정책을 전담하는 국가 공식 기관도 물론 없다. 언어 규범화는 권위가 인정된 문법서나 사전 등의 출판물을 바탕으로 이루어진다. (183쪽)

한국사람들은 오랫동안 격식적 상황, 즉 공식적 자리에서는 표준어를 쓰도록 교육받아 왔다. 사투리 화자들에게 격식어로서 표준어를 강요해 온 것이다. 그런데 방송에서 사투리라니! 특히 뉴스 및 시사평론과 같은 보도 프로그램에서 일상적 사투리란 더욱더 용납되지 않는 것이었다. (212쪽)


  《방언의 발견》은 옛 신문·잡지, 방송·영화 자료를 바탕으로 한국에서 사투리가 얼마나 놀림이나 따돌림을 받았는가를 차분히 짚습니다. 이러면서 오늘날 사투리를 잘 살려서 쓴 방송이나 영화나 책을 몇 가지 보기를 들어서 이야기합니다. 그런데 이 책에서 ‘사투리를 잘 살려서 쓰는 책·잡지’ 가운데 하나를 빠뜨렸습니다. 열 몇 해째 사투리로 잡지를 엮는 《전라도닷컴》이 있습니다. 2000년에는 웹진으로 처음 나왔고, 2002년 3월부터 종이책으로 나온 잡지입니다. 저는 《전라도닷컴》을 다달이 받아보면서 전라말을 눈하고 입에 익혀 보려고 아장걸음을 걷습니다.

  한국에서 고장말로 책이나 잡지를 엮는 일이 매우 드물 뿐 아니라, 고장말을 썼다가는 책이나 잡지가 안 팔린다는 소리를 듣기 일쑤인데, 《전라도닷컴》은 2002년부터 씩씩하게 ‘사투리 잡지’ 한길을 걸어요. 여러 고장에서는 이 잡지를 지켜보면서 ‘경상말 잡지’, ‘제주말 잡지’, ‘충청말 잡지’, ‘강원말 잡지’를 내자는 기운을 얻는다고 합니다. 나라나 지자체에서 안 하거나 못 하는 일을 작은 고장에서 작지만 야무진 걸음으로 일구는 만큼, 앞으로 《방언의 발견》이 2쇄를 찍는다면, 이처럼 사투리를 알뜰하며 곱게 밝히는 발자국을 더 찬찬히 살펴서 담아 주기를 바랍니다. 2018.5.1.불.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시골에서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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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홉 살 함께 사전 아홉 살 사전
박성우 지음, 김효은 그림 / 창비 / 201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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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기 삶읽기 346


80 낱말 가운데 45 낱말 뜻풀이가 얄궂다
― 아홉 살 함께 사전
 박성우·김효은
 창비, 2018.2.20.


  ‘어린이를 위한 관계와 소통 사전’이라고 하는 《아홉 살 함께 사전》(박성우·김효은, 창비, 2018)은 모두 여든 낱말을 다룹니다. 이를테면 ‘약속하다’라는 낱말은 “다른 사람과 어떤 일을 어떻게 할지 미리 정하다”로 풀이하면서 “언니보다 많∼이 읽을 거야!” 같은 보기글을 붙입니다.

  ‘가까이하다·감싸다·거절하다’부터 ‘함께하다·헤어지다·화해하다’ 같은 낱말을 다루지요. 우리 삶터를 둘러싼 온갖 일을 마주하는 아이들이 이 책에 깃든 여든 낱말을 바탕으로 서로 어떻게 어우러질 적에 좋은가를 익히도록 돕는 길잡이책이라고 여길 수 있습니다.

  글쓴이는 앞서 《아홉 살 마음 사전》(2017)을 낸 적 있고, 이때에는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 뜻풀이를 고스란히 따랐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국립국어원 사전에는 돌림풀이하고 겹말풀이가 대단히 많습니다. 한국말을 한자말로 풀거나, 한자말을 한국말로 푸는 보기도 아주 많아요. 글쓴이는 앞선 책에서는 국립국어원 뜻풀이를 고스란히 따르면서 국립국어원 사전처럼 돌림풀이·겹말풀이에 갇힌 모습을 똑같이 보여주었습니다.

  글쓴이는 앞선 책하고 달리, 《아홉 살 함께 사전》에서는 국립국어원 뜻풀이를 고스란히 따르지 않습니다.

[겨루다]
국립국어원 : 서로 버티어 승부를 다투다
박성우 : 누가 더 나은가를 다투다

[돌보다]
국립국어원 : 관심을 가지고 보살피다
박성우 : 관심을 가지고 돕거나 보살피다

[함께하다]
국립국어원 : = 같이하다 (같이하다 : 1. 경험이나 생활 따위를 얼마 동안 더불어 하다)
박성우 : 경험이나 생활을 한동안 더불어 하다


  글쓴이는 여러모로 새롭게 뜻풀이를 붙여 보려고 힘을 기울입니다. 그렇지만 이 책을 살펴보니 적어도 마흔다섯 낱말 뜻풀이가 얄궂다고 느낍니다. 이 책이 다룬 80 낱말 가운데 적어도 45 낱말 뜻풀이가 얄궂다는 소리입니다.

  이 책이 아이들한테 우리 삶터를 둘러싼 여러 모습을 찬찬히 비추면서 슬기롭고 아름답게, 무엇보다 ‘함께’ 가는 길을 밝히려 한다면, 다음부터 짚을 마흔네 군데뿐 아니라, 보기글도 다시 찬찬히 짚어서 바로잡거나 가다듬거나 손질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가까이하다] 친하게 지내다 (7쪽)
[감싸다] 약점이나 잘못을 덮어 주다 (9쪽)
[겨루다] 누가 더 나은가를 다투다 (13쪽)
[다투다] 서로 자기가 이기거나 앞서려고 싸우다 (29쪽)


  ‘가까이하다’를 ‘친하다(親-)’를 써서 풀이하는데, 그러면 ‘친하다’는 아이들한테 뭐라고 알려주어야 할까요? ‘감싸다’를 ‘덮어 주다’로 풀이하면 ‘덮어 주다’는 또 뭐라고 알려주어야 할까요? ‘겨루다’를 ‘다투다’로 풀이하고, ‘다투다’를 ‘싸우다’로 풀이합니다. 돌고 돌면서 뜻풀이가 끝나지 않습니다. ‘싸우다’란 다시 무엇일까요?


[끼어들다] 사이를 비집고 들어서거나 참견하고 나서다 (21쪽)
[돌보다] 관심을 가지고 돕거나 보살피다 (37쪽)
[돕다] 일이 잘 이루어지도록 힘을 보태다 (39쪽)
[아끼다] 소중하게 여기며 보살피다 (103쪽)


  ‘끼어들다’를 한자말 ‘참견하다(參見-)’로 풀이하는데, 아이들한테 ‘참견’은 또 뭐라고 알려주어야 할까요? ‘돌보다’를 ‘돕다 + 보살피다’로 풀이하는데, ‘보살피다’는 무엇일까요? ‘돕다’하고 맞물리는 ‘거들다’는 어떻게 아이들한테 알려줄 만할까요? ‘아끼다’도 ‘보살피다’로 풀이하면서, ‘보살피다’가 참말 무엇인지 아리송하고 맙니다. 비슷한말은 찬찬히 묶어서 결을 다르게 쓰는 대목을 보여줄 수 있어야겠습니다.


[놀리다] 짓궂게 굴거나 흉을 보다 (27쪽)
[뭉치다] 힘이나 뜻을 하나로 모으다 (53쪽)
[미루다] 일이나 시간을 늦추거나 일을 남에게 넘기다 (55쪽)
[반대하다] 다른 사람의 의견에 따르지 않고 맞서다 (63쪽)


  ‘놀리다’를 풀이하면서 쓴 ‘흉’을 아이들이 묻습니다. ‘흉’은 무엇일까요? ‘뭉치다’를 ‘모으다’로 풀이하면 ‘모으다’는 또 무엇일까요? ‘미루다’를 ‘늦추다’로 풀이하는데, ‘늦추다’를 아이들이 되물을 적에 이 책을 펴고서는 딱히 들려줄 수 있는 말이 없습니다. 한자말 ‘반대하다’는 한국말 ‘맞서다’로 풀이하는데, ‘맞서다’를 아이들이 물으면 이때에도 아이들한테 들려줄 말이 없습니다.


[떼쓰다] 들어주기 어려운 일을 해 달라고 고집하다 (47쪽)
[바라다] 어떤 일이 이루어지길 기대하다 (61쪽)
[우기다] 의견을 고집스럽게 내세우다 (119쪽)
[요구하다] 필요한 것을 달라고 하거나 어떤 행동을 해 달라고 하다 (115쪽)
[조르다] 끈덕지게 요구하다 (143쪽)


  ‘떼쓰다’를 ‘고집하다(固執-)’로 풀이하기에 ‘고집’을 또 뭐라 해야 하는지 어렵습니다. ‘바라다’를 한자말 ‘기대하다(期待-)’로 풀이하기에 이 대목에서도 헷갈립니다. ‘우기다’ 뜻풀이에 다시 ‘고집하다’가 나오니 ‘떼쓰다’ 뜻풀이하고 섞입니다. ‘요구하다’라는 한자말하고 ‘바라다’라는 한국말은 서로 어떻게 보아야 할까요? 그리고 ‘조르다’를 한자말 ‘요구하다(要求-)’로 풀이하기에 뒤죽박죽이 됩니다.


[배우다] 지식을 얻거나 기술을 익히다 (69쪽)
[부추기다] 남을 들쑤셔 어떤 일을 하게 만들다 (71쪽)
[부탁하다] 어떤 일을 해 달라고 청하다 (75쪽)
[비꼬다] 마음을 상하게 할 만큼 비웃는 태도로 놀리다 (77쪽)


  ‘배우다’를 ‘익히다’로 풀이하면, ‘익히다’란 무엇일까요? ‘부추기다’를 ‘들쑤시다’라는 낱말로 풀이하기에, 다시 ‘들쑤시다’에서 막힙니다. 그리고 “어떤 일을 하게 만들다”는 일본 번역 말씨입니다. ‘만들다’를 ‘하다’로 바로잡아야겠습니다. ‘부탁하다’라는 한자말을 다른 한자말 ‘청하다(請-)’로 풀이하니, 새롭게 꼬입니다. ‘비꼬다’를 “비웃는 태도로 놀리다”로 풀이하니, ‘놀리다’라는 말을 아이들한테 어떻게 알려주어야 할는지 아리송합니다.


[삐지다] 서운하거나 기분이 나빠서 토라지다 (83쪽)
[숨기다] 어떤 사물이나 사실을 남이 모르게 감추다 (101쪽)
[얕보다] 낮추어서 하찮게 보다 (109쪽)
[응원하다] 힘을 낼 수 있도록 북돋워 주거나 도와주다 (127쪽)


  ‘삐지다’를 ‘서운하다 + 토라지다’로 풀이하는데, 두 낱말 모두 알쏭합니다. 그리고 ‘삐지다·토라지다’는 돌림풀이입니다. ‘숨기다’를 ‘감추다’로 풀이하기에, 이때에도 돌림풀이입니다. ‘얕보다’를 ‘낮추다 + 하찮게 보다’로 풀이하기에 돌림풀이·겹말풀이예요. ‘응원하다’라는 한자말을 ‘북돋우다’라는 한국말로 풀이하니, 한국말 ‘북돋우다’는 다시 무어라고 해야 할까요?


[달래다] 기분이 좋아지게 어르거나 타이르다 (31쪽)
[위로하다] 따뜻한 말과 행동으로 슬픔을 달래다 (125쪽)
[전달하다] 말이나 소식을 알려 주거나 물건을 넘겨주다 (141쪽)
[참다] 애써 억누르거나 잘 견디어 내다 (151쪽)


  ‘달래다’를 ‘타이르다’로 풀이하니, ‘타이르다’에서 막힙니다. 더욱이 한자말 ‘위로하다’를 ‘달래다’로 풀이하기에 겹겹이 막힙니다. 한자말 ‘전달하다’를 ‘알려주다 + 넘겨주다’로 풀이하는데, 이럴 바에는 한국말 ‘알려주다·넘겨주다’를 알맞게 쓰도록 알려줄 적에 한결 나으리라 봅니다. ‘참다’를 ‘견디다’로 풀이하기에 새삼스레 돌림풀이입니다. ‘견디다’는 무엇일까요?


[기억하다] 머릿속에 새겨 두거나 되살려 생각해 내다 (19쪽)
[마주치다] 우연히 서로 만나다 (49쪽)
[만나다] 오가다가 또는 일부러 서로 마주 대하다 (51쪽)
[나누다] 몫을 가르거나 음식을 함께 먹다 (23쪽)


  한자말 ‘기억하다’를 한국말 ‘생각하다’로 풀이합니다. 얄궂습니다. ‘마주치다’를 “서로 만나다”로 풀이하고, ‘만나다’를 “서로 마주 대하다”로 풀이하니 겹말풀이에 돌림풀이입니다. ‘나누다’를 ‘가르다’로 풀이하는데, ‘가르다’란 또 무엇일까요?


[거절하다] 제안이나 의견을 받아들이지 않다 (11쪽)
[들어주다] 이루어질 수 있도록 받아들이다 (41쪽)
[이해하다] 남의 사정이나 마음을 너그럽게 받아들이다 (131쪽0
[설득하다] 잘 설명하거나 타일러서 따르게 하다


  한자말 ‘거절하다’를 ‘받아들이지’ 않다로 풀이하는데, ‘들어주다’를 ‘받아들이다’로 풀이하고, 또 한자말 ‘이해하다’를 ‘받아들이다’로 풀이합니다. 뜻풀이에 쓴 낱말이 여러모로 섞입니다. 한자말 ‘설득하다’를 한자말 ‘설명하다’로 풀이하는데, ‘설명’은 또 무엇일까요? 그리고 ‘타이르다’라는 낱말을 이곳에도 쓰기에 ‘달래다’라는 낱말하고도 뒤섞입니다.


[미워하다] 다른 사람을 밉게 여기다 (57쪽)
[샘내다] 부러워하거나 괜히 미워하다 (91족)
[반하다] 마음이 홀린 듯이 이끌리다 (65쪽)
[상의하다] 서로 생각을 주고받다 (89쪽)


  ‘미워하다’는 “밉게 여기다”로 풀이할 수밖에 없을 테지만, ‘밉다’가 어떤 결인가를 먼저 알려주지 않으면 아이들은 이 책을 읽으며 고개를 갸우뚱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샘내다’를 ‘부러워하다 + 미워하다’로 풀이하면서 뜻풀이가 섞이기도 하는데요, ‘샘’하고 ‘미움’은 다른 낱말입니다. 풀이가 이처럼 겹치면 말뜻을 알 수 없습니다. ‘반하다’를 ‘홀리다’를 써서 풀이하는데, ‘홀리다’는 또 무엇일까요? 한자말 ‘상의하다’를 “생각을 주고받다”로 풀이하는데, ‘주고받다’라는 낱말을 더 깊이 파고드는 쪽이 나으리라 여깁니다. 쉬운 말 ‘주고받다’를 두고 굳이 ‘상의(相議)’를 아이들한테 쓸 까닭은 없다고 봅니다.


[함께하다] 경험이나 생활을 한동안 더불어 하다 (161쪽)
[뽐내다] 우쭐거리면서 자랑하다 (81쪽)
[고마워하다] 남의 도움이나 친절에 대해 흐뭇하고 즐겁게 여기다 (15쪽)
[탓하다] 꾸짖어 나무라거나 원망하다 (155쪽)


  이 책에 붙은 이름인 ‘함께’를 ‘더불어’로 풀이합니다. 그러면 ‘더불어’란 무엇일까요? ‘뽐내다’를 ‘우쭐거리다 + 자랑하다’로 풀이하면서 돌림풀이+겹겹말풀이가 됩니다. 겹말풀이도 아닌 겹겹말풀이입니다. 반드시 바로잡을 대목입니다. ‘고마워하다’를 “흐뭇하고 즐겁게”로 풀이하는데, 이 대목도 겹말풀이예요. ‘흐뭇하다·즐겁다’가 비슷하면서 다른 결이 있는데, 두 낱말을 뜻풀이에 함께 써도 될까요? ‘탓하다’를 ‘꾸짖다+나무라다+원망하다’로 풀이하기에 세 겹으로 맞물리는 뜻풀이입니다. 이런 뜻풀이로는 아이들은 ‘탓하다’를 비롯해서 ‘꾸짖다·나무라다·원망하다’까지 알 길이 없습니다.


풍선껌 크게 불기 시합을 했어 (12쪽) → 풍선껌 크게 불기 내기를 했어
생일 파티에 초대하지 않기 (56쪽) → 생일 잔치에 부르지 않기
아빠의 에 올라 (67쪽) → 아빠 등에 올라
윷놀이를 할 줄 알게 되었어 (68쪽) → 윷놀이를 할 수 있어
책장 에 있는 스케치북 (74쪽) → 책장에 얹힌 스케치북
매번 칭찬받는 친구 (91쪽) →  칭찬받는 친구
언니보다 많∼이 읽을 거야! (104쪽) → 언니보다 마안히(많이많이)) 읽을 거야!


  이밖에 이런 글월은 조금 더 가다듬을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시합’은 일본 한자말입니다. ‘생일 파티’는 ‘생일 잔치’로 손질하고, “아빠의 등”에 넣은 ‘-의’는 군더더기 일본 말씨입니다. “책장 위”는 하늘이에요. ‘위’를 덜고 알맞게 손봅니다. ‘매번’은 ‘늘·언제나’처럼 쉬운 말로 손봅니다. “많∼이”처럼 쓸 적에도 일본 말씨입니다. 일본말은 긴소리를 ‘∼’나 ‘―’를 넣어서 나타내요. 한국 말씨로는 ‘마안히’나 ‘마아안히’처럼 소리값을 밝혀서 적습니다.


  이렇게 마흔다섯 낱말을 글쓴이가 새로 풀이한 글이 어떻게 얄궂거나 아리송하거나 겹말풀이·돌림풀이가 되는지, 또 한국말을 한자말로 풀이하거나 한자말을 한국말로 풀이하면서 뒤죽박죽이 된 대목을 짚어 보았습니다. 국립국어원 사전도 앞으로 고치거나 바로잡을 곳이 많습니다만, 어린이가 삶을 찬찬히 읽으며 마음을 새롭게 가꾸는 길에 벗님이 될 책을 엮는 우리 어른들은 더욱 마음을 기울이고, 낱말 하나하나를 매우 깊이 살필 수 있어야지 싶습니다.

  참말로 아이들은 말에서 삶을 배우고, 삶에 흐르는 말을 다시 돌아보면서 마음을 가꿉니다. 말을 말답게 가꾸는 몫을 이 나라 어른들이 슬기롭게 다스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 2018.4.12.나무.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말넋/시골에서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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