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ㄱ. 옥중기
 

 감옥에 갇힌 분들이 남긴 글이 책으로 묶이기도 합니다. 신영복 님이 보낸 짤막한 엽서를 모아 《엽서》가 나오기도 했고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이 나오기도 합니다. 박석조 님 형제가 주고받은 《옥중에서 오고간 편지》가 있으며, 서준식 님이 쓴 《서준식 옥중서한》도 있습니다. 문익환 님도 감옥에서 쓴 글과 편지를 모아 책이 여러 권 나왔고, 사회운동과 민주화운동을 하던 사람들, 이런 일 저런 일로 감옥에 갇혀서 식구들과 멀리 떨어진 사람들이 남긴 일기나 편지가 책으로 묶이기도 합니다.


 ┌ 오스카 와일드 쓴 《옥중기》
 └ 루이제 린저 쓴 《옥중기》


 나라밖에서 이름난 책이라면, 그람시 님이 남긴 《옥중수고》가 있습니다. 그리고 루이제 린저 님이 쓴 《옥중기》가, 또 오스카 와일드 님이 쓴 《옥중기》가 있어요. 


 한편, 나라안에 이름난 시인이 남긴 책이지만, 거의 알려지지 못한 김현승 시인 《옥중일기》가 있습니다. 이런저런 책들을 가만히 보면, 모두들 ‘옥중(獄中)’이라는 말을 씁니다.


 ┌ 감옥에서 쓴 글
 ├ 감옥에서 부친 편지
 └ 감옥에서 적은 일기


 어니스트 톰슨 시튼 님이 쓴 이야기는 ‘동물기’로 알려졌습니다. 장 앙리 파브르 님이 쓴 이야기는 ‘곤충기’로 알려졌습니다. 김찬삼 님이 남긴 이야기는 ‘세계여행기’로 알려졌습니다.


 ┌ -記
 └ 적음 / 남김


 시튼 님이 남긴 ‘들짐승’ 이야기인 《쫓기는 동물들의 생애》와 《회색곰 왑의 삶》과 《뒷골목 이야기》와 《위대한 늑대들》과 《표범을 사랑한 군인》과 《다시 야생으로》를 한 권 두 권 찾아서 읽습니다. 가슴찡함을 느끼면서 자연 삶터를 담아내는 문학이란 얼마나 자연 삶터를 사랑하고 아끼며 가까이하는 가운데 적어내려가야 하는가를 새삼 느낍니다. 그런데 우리는 왜 ‘-이야기’라는 말은 쓰지 못할까요.


 파브르 님이 남긴 ‘벌레’ 이야기를 읽고 ‘푸나무’ 이야기를 읽습니다. 책이름은 《파브르 곤충기》와 《파브르 식물기》이지만, 파브르 님은 크고작은 ‘벌레’들을 살펴보면서, 또 ‘풀과 꽃과 나무’를 살펴보면서 이야기를 남겼습니다. 당신 딸아들한테 읽히려는 마음으로. 그나저나 우리는 왜 ‘-이야기’라는 말은 넣지 못할까요.


 ┌ 들짐승 이야기
 ├ 벌레 이야기
 └ 푸나무(풀꽃/풀) 이야기


 옛날 옛적부터 내려온 이야기이기에 ‘옛날이야기’이건만, ‘민담’이나 ‘민화’니 하는 이름으로만, ‘설화’니 ‘신화’니 하는 이름으로만 우리들한테 읽힙니다. 알려집니다. 아이들한테 읽히는 책, 아이들과 함께 나누는 책은 ‘어린이책’이고 ‘어린이 이야기’일 테지만, 한결같이 ‘동화’라는 이름으로만 자리매깁니다. 이 땅에는 ‘이야기’가 자리잡을 수 없는가요.


ㄴ. 가톨릭 다이제스트


 새벽에 일어나 성당에 다녀옵니다. 오늘은 성당에 바깥손님 한 분이 와 있습니다. 《가톨릭 다이제스트》라는 잡지를 만드는 일꾼 가운데 한 사람. 짤막하게 잡지를 소개합니다. 앉은 자리에서 가만히 책을 넘겨 봅니다. 2007년 4월치에 박완서 님 만나보기가 있습니다.


.. 사노라면 형제 간처럼 든든한 힘이 없는데 요즘은 아이들을 하나나 둘밖에 안 낳으니 사촌끼리라도 자주 만나 정을 들이고 우애 나누라고 타이르고 그런 기회를 자주 만들어 주려고 하는데, 실은 요새 손자들을 다 모으기도 힘들어요. 누구는 고3이니까 빼 줘야 한다, 누구는 과외공부 갈 시간이다, 이런 식이거든요. 예전엔 특별한 집에서나 아이들을 공주님, 왕자님 취급하는 걸 보았는데, 요즘은 내 손자, 손녀가 다 왕자님, 공주님입니다. 세상이 그렇다니 제가 어쩌겠어요. 저는 이미 구세댄걸요 ..  〈18∼19쪽〉


 몇 꼭지를 빼고는 우리 둘레에서 흔히 만나는 사람들 이야기로 채워 놓았습니다. 퍽 수수하게 꾸미고 있구나 생각하며 판권을 보니, 잡지가 나온 지 벌써 스무 해. 2007년 4월에 206호였으니 그동안 먼길을 뚜벅뚜벅 걸어왔군요.


 ┌ 리더스 다이제스트
 └ 가톨릭 다이제스트


 잡지이름을 오래도록 들여다봅니다. 왜 ‘다이제스트’라는 말을 붙였을까? 꼭 ‘다이제스트’라는 말을 붙여야 했을까? ‘다이제스트’라는 말에 어떤 뜻이 담겨 있다고 생각할까? 이 나라 이 땅에서 ‘다이제스트’ 아니면 안 되었을까?


 ┌ 가톨릭 이야기
 ├ 작은 가톨릭
 ├ 가톨릭과 삶
 └ …


 벌써 스무 해나 《가톨릭 다이제스트》로 써 왔으니 그대로 나아가는 편이 더 낫다고 느낄 수 있습니다. 이름이야 어떻게 붙였든, 알맹이를 차근차근 다지고 추스르면서. 어쩌면 스물다섯 돌을 기리면서, 또는 서른 돌을 기리면서 새 이름으로 거듭날 수 있어요. 잡지이름 고치기란 참말 어려운 노릇이지만, 이런 어려움이란 마땅히 짊어지고 나아갈 일이라고 생각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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