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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가 기적 같은 일 - 바닷가 새 터를 만나고 사람의 마음으로 집을 짓고 자연과 어울려 살아가는
송성영 지음 / 오마이북 /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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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스로 이끄는 생각으로 살아가다
 [책읽기 삶읽기 112] 송성영, 《모두가 기적 같은 일》(오마이북,2012)

 


  마을에서 매미 우는 나무 있는 집은 우리 집뿐인가 하고 고개를 갸웃갸웃하곤 합니다. 이웃 어느 집이건 나무가 우람하거나 많은데, 이 많은 나무 가운데 매미 우는 나무는 거의 찾아보지 못합니다.


  면내나 읍내에 나가면 매미 노랫소리를 쉬 듣습니다. 도시에서도 매미 노랫소리를 곧잘 듣습니다. 이와 달리 시골 한복판에서는 매미 노랫소리를 못 들으니 좀 알쏭달쏭한데, 가만히 생각하니 시골에서 흙을 일구는 분들 누구나 풀약을 무척 자주 쳐요. 논둑에도 밭둑에도, 논에도 밭에도 틈틈이 풀약을 칩니다. 나무 밑이라고 달라지지 않아요.


  도시는 자동차가 몹시 많습니다. 도시사람은 담배를 무척 많이 피웁니다. 그렇지만 도시 길거리에 심은 나무에 풀약을 틈틈이 치는 일은 드물지 싶어요. 도시 길거리에서 자라는 나무 밑이나 둘레에는 담배꽁초이며 쓰레기이며 잔뜩 있지만, 나무뿌리 있는 땅속에는 시골처럼 풀약 기운이 스며들 일이 적으리라 느껴요.


.. 그동안 생활비를 꺼내 쓰는 통장에 있는 100만∼200만 원을 전부로 알고 살아온 제게는 분명 엄청난 거금이었습니다. 욕심이 눈앞을 가렸습니다. 세상 물정 모르는 저는 그 거금으로 농사지을 땅과 빈집을 구하는 것은 물론이고 그 옆에 작은 흙집까지 지을 수 있을 것만 같았습니다 ..  (15쪽)


  저녁에 읍내 마실을 하고 집으로 돌아옵니다. 해 떨어지고 별이 뜬 읍내 밤하늘은 까맣습니다. 까만 밤하늘에 별빛이 반짝입니다. 시골 읍내에서는 별을 꽤 많이 볼 수 있습니다. 차를 얻어 타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읍내보다 훨씬 까맣습니다. 훨씬 까만 밤하늘에는 훨씬 반짝이는 별이 더 많이 보입니다.


  밤이 까맣기에 별이 밝습니다. 밤이 까맣지 않다면 별은 밝지 않을 뿐더러, 별이 있는지 없는지 알아보기 어렵습니다. 밤이 하얗다면 별은 깜깜합니다. 밤이 하얀 곳에서는 아예 별을 잊거나 모른 채 살아가기 마련입니다.


  해가 밝기에 푸른 잎사귀 싱그러운 풀과 나무를 알아봅니다. 해가 맑기에 하늘이 파랗고 구름이 하얗습니다. 해가 곱기에 가을날 누런 들판을 바라볼 수 있고, 해가 예쁘기에 새와 꽃과 벌레와 냇물을 들여다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전기로 불을 밝혀도 집안에서 책을 읽을 수 있습니다. 해가 내리쬐는 낮에도 책을 읽을 수 있으나, 해가 떨어진 깊은 밤에도 전기불을 켜면 언제라도 책을 읽을 수 있습니다. 해가 없는 깊은 밤에도 길거리에 불빛을 드리우면 걸어다니기에 좋고 얼굴을 알아볼 수 있으며 나방 날갯짓을 살필 수 있어요.


.. 전 그저 부드러운 뒷산과 좌우 산줄기가 바람을 막아 주고 있어, 농사를 지으며 살아가는 데 큰 어려움이 없을 것 같아 좋았습니다 … 밑도 끝도 없이 터를 구하는 데 3년 가까운 세월을 보냈다고 푼수처럼 말하자 동네 어르신이 마뜩찮다는 투로 말했습니다. “뭐 그렇게 까다롭게 땅을 구하러 다녔데요이. 어디든 정 붙이고 살믄 고만이지.” ..  (26, 62쪽)


  새벽 노랫소리를 듣습니다. 나는 노랫소리라 느끼기에 새벽녘 찾아드는 소리 모두 노래라고 여깁니다. 멧새도 들새도 풀벌레도 바람도 나뭇잎도 풀잎도 모두 노랫소리를 들려준다고 생각합니다. 철마다 새롭게 찾아드는 노래이고, 아침 낮 저녁 밤으로 새롭게 울려퍼지는 노래라고 맞아들입니다.


  새끼를 깐 멧새나 들새 노랫소리는 새삼스럽습니다. 갓 깨어난 새끼가 무럭무럭 자라나며 퍼지는 노랫소리는 남다릅니다. 그러고 보면, 갓 태어난 아이들 노랫소리도 새삼스럽습니다. 하루하루 씩씩하게 자라나는 아이들 노랫소리도 남다릅니다.


  나는 늘 노랫소리에 둘러싸인 채 살아갑니다. 나를 둘러싼 노랫소리는 내 마음결에 따라 달라집니다. 내 마음결이 따사로울 때에는 노랫소리 또한 따사롭습니다. 내 마음결이 칙칙할 적에는 노랫소리 또한 칙칙합니다. 내 마음결이 보드라울 때에는 노랫소리 또한 보드랍습니다. 내 마음결이 딱딱할 적에는 노랫소리 또한 딱딱해요.


  내 마음이 생각을 이끕니다. 내 마음이 이끄는 생각이 삶을 이끕니다. 내 마음이 이끄는 생각으로 누리는 삶이 사랑을 이끕니다.


.. 산 위의 나무들은 땔감이 되기에는 너무나 중요한 몫을 하고 있었습니다. 바람을 막아 주고 산소를 공급해 주는 것은 물론이고, 푸른 빛깔에 고운 단풍까지 아낌없이 내주고 있었던 것입니다 ..  (293쪽)


  좋다고 느끼는 마음으로 좋다고 느낄 삶을 누립니다. 좋다고 느끼는 마음으로 좋다고 느낄 사랑을 나눕니다. 좋다고 느끼는 마음으로 좋다고 느낄 꿈을 이룹니다. 스스로 어떻게 느끼는가에 따라 오늘 하루 다르게 찾아옵니다. 스스로 어떻게 바라보는가에 따라 오늘 이야기는 새롭게 빛납니다.


  이 시골집에서 살아도 싱그러운 하루입니다. 저 시골마을에 깃들어도 상큼한 하루입니다. 저 골목집에서 살아도 해맑은 하루입니다. 저 아파트숲에 깃들어도 산뜻한 하루입니다.


  마음이 사랑스럽지 못하다면 삶이 사랑스럽지 못합니다. 눈빛이 사랑스럽지 못하다면 삶이 사랑스럽지 못합니다. 손길이 사랑스럽지 못하니 삶이 사랑스럽지 않습니다. 몸짓이 사랑스러울 때에 삶은 시나브로 사랑스레 거듭납니다.


  내가 걸어갈 길은 스스로 일굽니다. 내 길은 내가 닦습니다. 내 생각은 내가 예쁘게 다스리지만, 내 생각은 나 스스로 바보스레 내팽개치곤 합니다.


.. 전력 소모량이 많은 대도시 주변에 핵발전소를 건설하면 구태여 자연경관을 해치고 전자파로 건강까지 해치는 송전 철탑을 세워 먼 거리까지 전기를 끌어다 쓸 필요가 없을 것입니다. 핵발전소를 대도시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설치하겠다는 것은 아무리 안정성을 강조한다 해도 그만큼 위험천만한 시설이라 여기고 있기 때문 아니겠습니까? 핵발전소 반대를 이기적인 님비 현상으로 몰아붙이고 있지만, 정작 이 위험한 시설에서 멀리 떨어져 살며 물 쓰듯 전기를 사용하는 대도시 사람들이야말로 가장 이기적인 사람들일 것입니다 ..  (322쪽)


  송성영 님이 전라남도 고흥에 새 보금자리를 얻어 살아가는 이야기를 담은 수필책 《모두가 기적 같은 일》(오마이북,2012)을 읽습니다. 송성영 님은 흙을 일구는 삶을 생각하지만, 밥벌이는 글을 써서 메꾸곤 했답니다. 송성영 님 옆지기가 ‘미술 교사’ 노릇을 하며 알뜰히 버는 돈이 있어, 시골자락에서 흙과 벗삼으며 살아갈 수 있었다고도 합니다.


  나도 시골에서 살아가고 글을 쓰는 사람입니다. 내가 시골에서 살아가며 글을 안 쓴다면 삶이 어떠할까 궁금합니다. 글쓰기에 마음과 품과 겨를을 들이는 만큼 흙이랑 풀이랑 나무한테 마음과 품과 겨를을 들이겠지요. 글을 써서 책을 빚을 수 있고 돈을 벌 수 있을 텐데, 글을 안 쓰고 흙이랑 풀이랑 나무한테 마음과 품과 겨를을 들이면, 돈벌이는 없거나 적거나 다를 수 있으나, 밥벌이는 넉넉할 수 있는 한편 새로운 ‘벌이’를 할 수 있으리라 느껴요.


  이를테면, 흙을 더 잘 알 수 있고, 풀이랑 나무를 한결 넓게 알 수 있어요. 글에 마음을 기울이는 만큼 글을 한결 잘 쓰거나 한결 잘 읽을 수 있어요. 흙에 마음을 기울이는 만큼 흙을 한결 잘 알거나 한결 잘 다룰 수 있어요. 바닷사람이 바닷물에 마음을 기울이는 만큼 물질과 고기잡이를 한결 잘 알거나 한결 잘 할 수 있어요. 자가용을 장만한 사람 또한 자가용한테 마음을 기울이는 만큼 자가용을 한결 잘 알거나 잘 몰 수 있겠지요.


  스스로 이끄는 생각으로 살아갑니다. 스스로 이끄는 생각이 삶을 이룹니다.


  그나저나, 송성영 님은 “우리 집을 포함해 달랑 집 두 채만 있는 바닷가 오지임에도 번듯한 새집에 깃들여 살며 기운이 펄펄 살아난 아내는 이사 오자마자 이력서를 챙겨 방과 후 강사 자리를 찾아나섰습니다. 큰 도시에 비해 문화적 여건이 낙후한 고흥에는 미술 전공자들이 귀한 모양입니다. 아내는 새 학기가 시작되자마다 초등학교 세 군데에서 강사 자리를 얻었습니다(226쪽).” 하는 이야기를 적바림합니다. 이 대목을 읽으며 고개를 갸우뚱합니다. ‘큰 도시에 비해 문화적 여건이 낙후한 고흥’은 어떤 모습인지 아리송합니다. ‘문화적 여건’이란 무엇이고, ‘낙후한 모습’은 무엇일까 궁금합니다.


  나 또한 전라남도 고흥군 시골마을에서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여느 시골마을 여느 시골사람으로서 곰곰이 생각합니다. 내 이웃 할머니가 백일홍을 바라보며 예쁘다 말하는 모습이란 ‘문화를 누리는 삶’이며 ‘그림 같은 그림을 알아보는 눈길’이라고 느껴요. 높고 낮은 멧자락을 낀 비탈밭 돌을 골라 돌울을 쌓아 빚은 밭이랑 논은 모두 ‘아름다운 예술품’이로구나 싶어요. 풀빛 우거진 숲이 넓게 이어진 멧자락 모두 ‘예쁜 문화예술’이로구나 싶어요. 다도해 해상 국립공원이 될 만큼 싱그럽고 해맑게 지키며 돌본 시골마을 고흥은 어디나 ‘문화요 예술이며 문명이고 사랑’이 되리라 느껴요.


  다만, 시골 분들 스스로 삶을 애틋하게 사랑하며 어깨동무하는 길을 더 씩씩하게 믿지 못한 나머지, 자꾸자꾸 풀약을 칩니다. 논에도 밭에도 자꾸자꾸 풀약을 치고 맙니다. 풀약을 안 치고 똥오줌 거름으로 지은 곡식이랑 열매가 훨씬 높은 값을 받는 요즈음이기 때문에 유기농 농사를 지어야 하지는 않아요. 풀약을 친 곡식이나 열매는 사람 몸에도 안 좋을밖에 없을 뿐더러, 내 똥오줌을 거름으로 삼아 흙을 살찌우며 거둔 곡식이나 열매는 흙일꾼인 시골사람부터 달삯쟁이인 도시사람 모두 튼튼하게 살릴 수 있어서 좋아요. 돈 때문에 짓는 유기농이 아니에요. 돈을 더 벌자고 하는 유기농이 아니에요. 삶을 사랑하고 삶을 빛내며 삶을 가꾸고픈 꿈이 있어서 유기농을 해요.

  꼭 유기농이 아니더라도, 내 보금자리와 마을을 한결 푸르게 사랑하면서 풀과 나무를 바라본다면, 모든 들풀이 모든 약초이듯, 모든 들풀을 손으로 살가이 쓰다듬으며 좋은 벗이자 밥이자 넋으로 맞아들일 만하겠지요.


  풀약을 안 친 멧자락이나 들판에서는 어느 풀을 뜯어먹어도 배가 부르면서 몸이 싱그럽게 살아나요. 풀약을 친 멧자락이나 들판에서는 어느 풀도 섣불리 뜯어먹을 수 없어요. (4345.8.5.해.ㅎㄲㅅㄱ)

 


― 모두가 기적 같은 일 (송성영 글,오마이북 펴냄,2012.6.22./13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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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시사회 - 벌거벗고 대한민국에서 살아가기
한홍구 외 지음 / 철수와영희 /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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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권력을 놓아야 할 정부와 시민
 [책읽기 삶읽기 111] 한홍구·최철웅·엄기호·홍성수·한상희, 《감시사회》(철수와영희,2012)

 


  한홍구·최철웅·엄기호·홍성수·한상희, 이렇게 다섯 사람이 펼친 강의를 담은 이야기책 《감시사회》(철수와영희,2012)를 읽으며 생각합니다. 정부가 시민을 감시하는 일은 옳지 않고, 시민이 정부를 감시해야 옳다 하는데, ‘정부’와 ‘시민’이 따로 있을까 궁금합니다. ‘시민(市民)’이라는 말은 ‘도시사람’이라기보다 자유와 권리를 누릴 수 있는 ‘공민(公民)’을 가리킨다 할 테지만, 아무래도 도시 아니고는 이 이름을 쓰지는 않는다고 느낍니다. 내가 살아가는 시골마을 어르신들 누구나 스스로 ‘농민’이라 말하지 ‘시민’이라고는 말하지 않습니다.


  왜 이런 이름을 따지느냐 하면, 정부를 이루는 공무원이고 국회의원이고 대통령이고 장관이고 누구이고를 떠나, 도시에서 태어나 중앙정부나 지역자치정부 일꾼이 되기도 하지만, 시골에서 태어나 도시로 들어가서 ‘정부 행정 일꾼’이 되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이들은 농민에서 시민이 되었다가 정부가 됩니다. 그런데, 예순 살 즈음 지나면 정년퇴직을 할 테니 다시 시민이 되거나 농민이 됩니다. 참말 ‘정부’란 얼굴이 있을까요. 정부란 무엇일까요. 시민이 감시해야 한다는 정부란 무엇인가요.


.. 저는 감시는 원래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누가 누구를 감시하죠? 시민이 정부를 감시해야죠. 시민이 권력을 감시해야 합니다. 왜? 권력의 속성이 무엇입니까? 가만히 놔두면 건방져져요. 방자해집니다. 그래서 민주주의 원리 자체에 견제와 감시가 있죠. 그런데 지금 우리 사회는 거꾸로 되어 있어요. 권력이 국민을 감시합니다 … 자신감 있는 사회는 감시를 잘 안 하죠. 그런데 이북은 어때요? 소련 무너졌지, 동유럽 무너졌지, 중국은 공산당이 집권하고 있지만 사실상 자본주의 국가가 되어버렸죠. 불안합니다. 탈북자는 늘어나지, 대북전단은 계속 날아오지, 감시를 많이 할 겁니다. 그런데 여기서 한번 생각해 봅시다. 남쪽과 북쪽 중에 어느 편이 더 국민 감시를 잘할까요? ..  (13, 18쪽)


  민주주의 얼거리이기 때문에 정부가 비뚤어지거나 비틀리지 않게끔 ‘지켜보’거나 ‘살펴보’아야 한다는데, 정부에서 행정 일꾼으로 일하는 사람은 ‘어린이’가 아니에요. 적어도 스물대여섯 살은 먹었을 테며, 웬만한 간부 자리에 있다면 마흔이나 쉰 즈음 될 테지요. 한창 ‘나이를 먹은’ 사람이 정부 행정 얼거리를 이룹니다. 국회의원이나 대통령이 되는 이들도 예순이나 일흔을 넘기 일쑤입니다. ‘어린’ 사람이 아니에요. 곧, 누가 지켜보거나 살펴본대서 어느 일을 더 잘 하거나 더 못 할 만한 철부지가 아니에요.


  그렇지만, 철부지 아닌 ‘어른’이라 할 사람들이 정부 행정 얼거리에 깃들 때에는 뜻밖에도 어른다운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기 일쑤예요. 참말 어른스럽게 일하면서 참으로 어른답게 아름다운 길을 걸어야 할 텐데, 뚱딴지 같거나 어처구니없는 짓을 자꾸 일삼아요.


  이를테면, 나라돈을 빼돌리는 일도 뚱딴지 같은데, 덧없는 막개발과 막공사를 밀어붙이는 일도 뚱딴지 같습니다. 전쟁무기 만들거나 사들이는 데에 어마어마하게 돈을 퍼붓는 일도 뚱딴지 같습니다. 관공서나 공공기관 건물을 크고 우람하며 멋들어지게 짓는 일도 뚱딴지 같습니다.


  즐거이 살아갈 터전이 되도록 애쓸 어른일 때에 아름답습니다. 사이좋게 어깨동무할 터전이 되게끔 힘쓸 어른일 때에 사랑스럽습니다. 정부가 시민을 감시하든, 시민이 정부를 감시하든, 누가 누구를 감시하는 사회일 때에는 하나도 아름답지 않습니다. 서로가 서로를 못 믿으면서 지켜보거나 살펴보아야 할 때에는 조금도 사랑스럽지 않습니다.


.. 부유층이 민간경비로 보안시설을 세우고 자기들만의 주거공간을 세워요. 어쩌면 새로운 봉건사회의 출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예전 봉건시대 영주들이 자기 성에서 자급자족하며 살았듯, 이제는 부르주아들이 하층민과 더 이상 어울려 살지 않겠다는 의지를 노골적으로 천명하는 것이죠 … 유시티라는 것도 돈 많은 사람들이 가서 사는 곳이지, 하층민들이 사는 동네가 아닌 거잖아요 … 중·고등학교 때 ‘선생님이 시키는 대로 하는 아이’들은 재수 없어 했잖아요. 쟤는 선생님이 시키는 대로 다 하고 앉아 있는 ‘똘마니’, ‘꼬봉’이라고 놀렸던 이유 중 하나가 주체가 아니라는 것이었죠..  (77∼78, 97쪽)


  나는 ‘권력이 되라’는 뜻으로 만드는 정부가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오늘날 정부 행정 일꾼은 스스로 ‘권력이 되려’고 합니다. 금으로 빚은 무언가를 가슴에 차든, 법전을 다루는 일을 하든, 경찰이나 군인이 되든, 여느 교사나 여느 공무원이 되든, 모두 ‘남다른 권리(특권)’를 누립니다. 여느 사람들은 누리지 못하는 숱한 권리가 이들 공무원한테 주어져요.


  공무원이 누리는 권리는 시민한테서 나왔을까요. 아마 시민은 세금을 많이 물어야 할 테고, 작은 물건을 하나 사더라도 간접세가 따라붙으니 언제나 세금을 많이 낼 테며, 이렁저렁 모이는 돈으로 공무원 특권이 더 커지리라 봅니다. 그런데 시민이 돈을 벌어 돈을 쓰며 세금을 내자면, 시골에서 농민이 먹을거리를 일구어야 합니다. 농민이 시민을 먹여살리고, 시민이 돈벌이를 해서 정부를 뒷받침합니다. 정부는 시민 앞에서 권력을 뽐내고, 시민은 농민 앞에서 생각이 없습니다.


  보기 하나를 들자면, 한여름을 맞이해, 도시사람(시민)은 너나없이 물 좋고 시원하며 바람 좋은 데로 나들이를 떠납니다. 도시사람이 찾아가는 바다나 들이나 멧자락은 모두 시골입니다. 시민들이 농민 삶터에서 한여름 더위를 긋습니다. 시민들이 농민 일터에서 한여름 말미를 즐깁니다. 그런데, 시민들은 농민들 삶터에 쓰레기를 잔뜩 남깁니다. 먹고 마시고 쓰고 버린 쓰레기를 도로 이녁 시민들 자동차에 담아 집으로 가져가는 일이 매우 드뭅니다. 여름 휴가철이 지나면 농민들 삶터이자 일터인 들판과 바다와 멧자락은 온통 쓰레기투성이입니다. 시민들은 정부가 권력을 뽐내며 시민을 휘어잡는다고 말하지만, 막상 시민은 농민을 바보처럼 여깁니다.


.. 〈TV는 사랑을 싣고〉라는 텔레비전 프로그램 아시죠? 거기 보면 초등학교에 가서 생활기록부를 열람하는 장면이 꼭 나옵니다. 교감선생님이 나오셔서 근엄한 얼굴로 생활기록부를 펼치는 장면은 그 프로그램의 하이라이트죠. 출연자의 행동발달 상황 등을 들춰보면서 다들 깔깔거리며 웃곤 하는데, 저는 아주 섬뜩한 장면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출연자의 동의를 받겠지만, 개인의 생활기록부를 보고 싶어 하는 궁금증 자체가 문제입니다. 생활기록부는 학생에 대한 사적인 기록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선생님과 학생, 선생님과 학부모 사이에서만 교육적인 목적으로 활용되는 것이고요. 그런데 그것이 일반 대중들에게 공개된다는 것은 생활기록부의 목적에 전혀 맞지 않죠 … 저도 학교에서 종종 저소득층 학생들을 위해 장학금 추천서를 써 주는 경우가 있는데, 그들의 경제적 처지를 모르면 써 줄 수가 없습니다. 저소득층 학생을 위해 장학금을 준다는 것은 그 자체로 좋은 일이지만, 그러려면 그 학생은 민감한 개인정보를 저에게 알려줘야 합니다 ..  (138, 146쪽)


  이야기책 《감시사회》에 좋은 말이 나옵니다. “중요한 것은 정교한 데이터베이스가 아니라 인간의 삶을 보는 눈입니다(201쪽).”라고. 이 대목에 밑줄을 긋습니다. 정부는 ‘데이터베이스’, 곧 ‘숫자’로 시민을 재거나 따져서는 안 됩니다. 학교는 학생을 숫자, 곧 성적이나 시험으로 재거나 따져서는 안 됩니다. 그리고, 시민은 농민을 숫자, 곧 ‘곡식 값’이나 ‘푸성귀 값’이나 ‘열매 값’이나 ‘고기(물고기와 뭍고기 모두) 값’으로 재거나 따져서는 안 됩니다.


  정부는 시민을 사랑과 믿음으로 바라보아야 합니다. 시민은 농민을 사랑과 믿음으로 바라보아야 합니다. 정부는 곧 시민입니다. 시민은 곧 농민입니다. 서로 다른 얼거리가 아니라, 서로 같은 사람입니다. 하늘 높은 정부가 아니요, 도시에서 돈만 벌면 되는 시민이 아닙니다. 모두들 똑같이 밥을 먹고 물을 마십니다. 모두들 똑같이 햇살을 누리고 바람을 쐽니다. 모두들 똑같이 지구별이라는 데에서 흙에 집을 짓고 흙을 밟으면서 목숨을 잇습니다.


  서로서로 “사람살이를 바라보는 따스한 눈길”일 때에 아름답습니다. 우리들 살림살이를 따스히 바라볼 때에 호젓하고 홀가분합니다. 즐겁게 살아갈 길을 찾을 노릇이지, 이웃나라에는 없는 높은 건물을 세운다거나 커다란 절집을 짓는다거나 냇둑에 시멘트를 퍼붓는다거나 하는 바보스러운 짓은 그칠 노릇이에요. 소비와 경제성장과 개발이 아니라, 자립과 독립과 공동체, 그러니까 스스로 살고 스스로 생각하며 사이좋게 어깨동무하는 두레를 깨달을 노릇이에요.


.. 일제가 왜 조선사람을 교육시켰겠어요? 충실한 일제의 군인으로 키우기 위해서였잖아요. 여러분 처음 ‘국민학교’에 들어가서 했던 것이 뭡니까? 운동장에서 ‘앞으로나란히’부터 배우잖아요. 일종의 제식 훈련을 한 거죠 ..  (22∼23쪽)


  일제강점기에는 일본제국주의에 몸과 마음을 바치라며 ‘국민학교’를 세웠습니다. 오늘날 한국은 초등교육과 중등교육과 고등교육으로 아이들을 어떤 사람이 되도록 ‘만드’는가 헤아려 봅니다. 사람다운 사람으로 이끄는 대한민국 교육이라 할 수 있을까요. 서울 고등학교, 부산 고등학교, 밀양 고등학교, 속초 고등학교, 원주 고등학교 들에서는 참말 지역빛을 살리면서 마을 일꾼이 될 만한 씩씩하고 튼튼한 아이를 가르치는가요.


  중학교 아이들은 시를 배우는가요. 중학교 아이들은 평론이나 비평이나 논술이 아니라 시를 시답게 읽고 즐기거나 누릴 수 있는가요. 초등학교 아이들은 책을 읽는가요. 독후감이나 ‘대입 논술 대비’로 여기는 독후활동 따위에 시달리지 않나요.


  삶을 다루지 않는 책이라면 어느 책이든 부질없습니다. 지식을 다루는 책이라면 인문책이든 예술책이든 부질없습니다. 네덜란드 그림쟁이 고흐는 지식이 아닌 삶을 그렸습니다. 한국 그림쟁이 박수근이든 이중섭이든 천경자이든 지식을 그림으로 그리지 않았어요. 언제나 이녁 삶을 그림으로 그렸습니다. 황순원이나 박경리나 김남주나 고정희가 지식을 문학으로 빚었을까요. 이들 또한 하나같이 삶을 문학으로 빚었을 뿐입니다.


  정부가 할 몫이란 삶을 북돋우는 일입니다. 시민이 할 몫이란 스스로 삶을 사랑하는 일입니다. 농민이 할 몫이란 한결같이 흙과 풀을 보살피는 일입니다. 아이도 어른도 지식 다루는 책이 아닌 삶을 밝히는 책을 읽을 노릇입니다. 지식을 부풀리지 말고, 삶을 살찌우면서 스스로 아름답게 꿈을 꿀 노릇입니다.


  따지고 보면, 정부에서 시민을 감시하거나 말거나 아랑곳할 까닭이 없어요. 감시하고프면 감시하라지요. 내가 텃밭 흙을 일구고 풀을 뽑는 하루살이를 지켜보라지요. 내가 아이들과 뒹굴며 밥하고 빨래하며 누리는 하루살림을 살펴보라지요. (4345.6.28.나무.ㅎㄲㅅㄱ)

 


― 감시사회 (한홍구·최철웅·엄기호·홍성수·한상희 글,철수와영희 펴냄,2012.6.30./13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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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듯 같은 듯 - 언어와 문화의 한.일 비교
사이토 아케미 지음 / 소화 / 200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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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따스한 마음으로 한국에서 살아가기
 [책읽기 삶읽기 108] 사이토 아케미, 《다른 듯 같은 듯》(소화,2006)

 


  마음을 따스하게 품으며 살아가는 사람은 내 삶과 내 이웃들 삶을 따스하게 어루만질 수 있습니다. 마음을 차갑게 내팽개치며 살아가는 사람은 내 삶이든 내 이웃들 삶이든 아무렇게나 짓밟거나 허물어뜨릴 수 있습니다.


  마음가짐에 따라 달라지는 삶입니다. 마음자리에 따라 거듭나는 삶입니다.


  나 스스로 착한 마음을 깨달아 언제라도 착한 기운이 감돌도록 힘쓰지 않는다면, 나는 언제까지나 ‘착함’이 무엇인지 알아차리지 못해요. 나 스스로 고운 삶을 깨달아 언제라도 고운 넋이 되도록 애쓰지 않는다면, 나는 언제까지나 ‘고움’이 무엇인지 알아채지 못해요.


.. 한국에서 나이는 말씨를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가 되는 것이다 … 한국인의 성씨는 286개(2002년 조사)로, 약 30만 개에 이르는 일본인의 성씨에 비하면 훨씬 적다 … 일본어라면 ‘선생’을 붙이는 것만으로 충분히 경칭이 되나 한국에서는 일반적인 대화에서도 ‘교수님’ ‘선생님’이라고 부른다 ..  (19, 44, 93쪽)


  착한 삶은 누가 가르쳐 주지 못합니다. 고운 삶은 누가 알려주지 못합니다. 참다운 삶은 누가 이끌어 주지 못합니다. 착하고 고우며 참다이 누릴 삶은 언제나 나 스스로 느끼고 익히며 꾸릴 수 있습니다.


  좋아할 만한 삶은 내가 좋다고 느낄 때에 좋아할 만한 삶입니다. 돈을 버는 일자리는 나 스스로 찾아서 얻습니다. 마음을 나눌 짝꿍은 나 스스로 만나고 사귑니다. 우리 집 아이들은 내 손으로 돌보며 사랑합니다. 내 눈으로 꽃을 바라보며 예쁘구나 하고 느낍니다. 내 손으로 풀잎을 쓰다듬으며 어여쁘구나 하고 느낍니다. 내 손으로 나무를 얼싸안으며 아리땁구나 하고 느낍니다.


  나는 내가 바라는 대로 살아갑니다. 나는 남이 바라는 대로 살지 못합니다. 나는 내가 꿈꾸는 대로 살아갑니다. 나는 남이 등떠미는 대로 살지 못합니다. 내 길은 내가 바라봅니다. 내 뜻은 내가 다스립니다. 내 말은 내 입과 손으로 읊습니다.


.. 급한 일이라도 있어 앞질러야 할 때는 마치 인파를 누비듯 지그재그로 걷는 것이 일본인의 습관이다. 그래도 어깨나 팔이 닿으면 ‘죄송합니다’ ‘미안합니다’라는 말을 한다 … (한국사람이) 사과의 말을 적게 하는 것과 더불어 또 하나 이상한 것은 ‘고맙습니다’라는 말을 아끼는 것이다 … 일본인에게는 ‘친한 사이에도 계산은 깨끗하게’라는 무언의 규칙이 있다 ..  (21∼23, 26쪽)


  착한 삶은 어떤 삶일까 생각해 봅니다. 총칼을 들지 않거나 주먹다짐을 하지 않을 때에 착한 삶이 될 만한가요. 어느 눈길로는 이만 하기만 하더라도 착한 삶이 되겠지요. 퍽 많다 싶은 돈을 혼자 차지하지 않고 내려놓을 때에 착한 삶이 될 만한가요. 어느 눈길로는 이쯤 되더라도 착한 삶이 되겠지요. 이런저런 대학교 졸업장을 앞에 드러내지 않을 때에 착한 삶이 될 수 있나요. 어느 눈길로는 이런 모습 또한 착한 삶이 되겠지요.


  내가 느끼는 착한 삶은 무엇일까 헤아려 봅니다. 내 밥을 내가 차리고, 내 밥이 될 먹을거리를 나 스스로 얻으며, 내 삶자리에서 쓰레기 아닌 거름을 내어 보금자리와 흙을 살찌울 수 있을 때에 착한 삶이리라 느낍니다. 나와 살붙이를 사랑으로 돌볼 줄 알며, 따숩고 너그러운 말로 하루하루 기쁜 웃음을 나눌 때에 착한 삶이 된다고 느낍니다. 두 다리를 좋아하고, 자전거를 누릴 때에 착한 삶이라고 느낍니다. 하늘빛을 좋아하고 풀빛을 사랑할 때에 착한 삶이라고 느낍니다. 내 삶에서 가장 빛나는 열매를 글 하나로 엮어 여럿이 즐겁게 읽도록 내놓을 수 있을 때에 착한 삶이라고 느낍니다.


.. 문득 한국인과 일본인은 대화할 때 내뱉는 단어의 수부터 다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 한편 한국인은 이야기하는 쪽도 적극적이지만 듣는 쪽도 빈틈을 두지 않고 적극적으로 말을 받는다 … 일본인은 외부인, 특히 낯선 사람이나 친밀하지 않은 사람에게는 침묵으로 대처하는 데 반해, 가정 내에서는 분노나 항의를 분명하게 표출하는 일이 많다. 그리고 한국인은 그와 반대의 패턴이 많다고 한다 ..  (48∼49, 79쪽)


  나는 내 길을 걷습니다. 나는 딴 사람 길을 걷지 않습니다. 나는 내 길을 사랑합니다. 나는 딴 사람 길을 사랑할 수 없습니다. 내 둘레 다른 사람들이 스스로 아끼며 사랑하는 길을 바라보며 이 길이 참 좋구나 하고 느낄 수 있습니다. 나 스스로 사랑하는 내 길을 마음껏 누리면서, 내 둘레 이웃들이 좋은 느낌을 받아들일 수 있으면 아름다우리라 느낍니다.


  서로 같은 사람이고 서로 같은 목숨입니다. 사람이라는 자리에서 서로 같고, 목숨이라는 넋에서 서로 같습니다. 서로 다른 사람이고 서로 다른 목숨입니다. 태어나서 일구는 삶이 다르고, 느끼거나 바라보는 삶이 다릅니다. 가장 잘할 수 있거나 가장 좋아할 만한 대목이 서로 다릅니다. 가장 빛내거나 가장 슬기로울 대목이 서로 다릅니다.


  풀은 모두 풀이지만, 미나리와 쑥은 서로 다른 풀입니다. 쑥은 모두 쑥이지만, 돋는 자리에 따라 서로 다른 쑥입니다. 감나무 한 그루에서 맺는 감은 모두 같은 감알이지만, 감나무 한 그루에서 딴 감알을 나란히 놓으면 모두 달리 생기고 모두 조금씩 다른 맛이 납니다.


  똑같이 생긴 구름은 한 번도 없고, 똑같이 태어나 똑같이 살아가는 사람은 하나도 없습니다. 다 같은 ‘한 갈래 사람’이며 ‘한 갈래 목숨’이지만, 저마다 다른 빛을 뽐내며 저마다 다른 숨을 살찌웁니다.


.. 한국인 친구 집에 놀러갔다 늦게까지 이야기에 빠지거나 하여 불가피하게 하룻밤 묵어야 할 경우가 가끔 있다. 이런 날에는 정성이 듬뿍 담긴 음식을 먹으며 이야기꽃을 피운다. 즐거운 시간을 공유하는 것 자체가 그 어떤 것보다 따뜻한 대접이라고 생각한다 … 한국이 가진 다양한 식문화의 일단은 원기 왕성한 아저씨, 아주머니가 운영하는 이런 노점(포장마차)이 짊어지고 있다는 기분이 든다 ..  (61, 134쪽)


  다르면서 좋고 같으면서 좋습니다. 다르면서 아름답고 같으면서 아름답습니다.


  다만, 제도권 틀이나 울타리를 앞세워 끼워맞출 때에는 하나도 안 좋고 하나도 안 아름답습니다. ‘유행’이란 바보짓입니다. ‘자격증’이란 덧없습니다. 사람들이 모두 한쪽 길로 쏠릴 수 없습니다. 사람들은 저마다 다른 길로 저마다 다른 아름다운 빛을 뽐내며 어깨동무를 할 뿐입니다. 유행을 만들거나 얘기하거나 보여주거나 휘둘리도록 하는 일은 모두 ‘어두운 나쁜 무리’가 벌이는 끔찍한 짓입니다. 유행에 앞서거나 유행에 뒤처진다고 말하는 일은 몽땅 ‘어두운 나쁜 무리’가 우리들을 바보스레 내몰면서 멍청한 사람이 되도록 깎아내리는 짓입니다. 자격증도 이와 같아요. 어떤 일을 할 때에 왜 자격증이 있어야 할까요. 교사가 되려면 교사 자격증이 있어야 할까요? 아니에요. 교사가 되려면 참말 교사다운 삶을 꾸려야 합니다. 밥을 잘 짓자면 요리사 자격증을 따야 하나요? 아니에요. 밥짓기를 사랑 담아 할 수 있어야 밥꾼(요리사)이에요.


  통·번역 자격증이라든지, 중장비 자격증이라든지, 운전 자격증이라든지, 무술 자격증이란 얼마나 덧없을까요. 대통령이나 아기 어버이가 되는 일도 자격증이 있어야 할까요. 아니에요. 우리가 하는 어느 일이든, 사랑이 밑받침되어야 비로소 할 수 있어요. 사랑과 믿음과 꿈, 이 세 가지를 고루 섞어 슬기와 땀과 웃음, 이 세 가지로 신나게 펼칠 때에 비로소 우리가 하는 일이 돼요.


  좋은 마음이어야 합니다. 착한 마음이어야 합니다. 고운 마음이어야 합니다. 곧, 사랑스러운 마음으로 하루하루 살아갈 때에 비로소 교사가 될 만하고, 중장비나 자동차를 다룰 만하며, 국회의원이나 대통령이 될 만할 뿐더러, 의사이든 변호사이든 작가이든 시인이든 농사꾼이든 노동자이든 될 만합니다. 가장 사랑스럽고 가장 믿음직하며 가장 좋은 넋으로 살아가야 비로소 ‘한 사람’입니다.


.. 같은 동아시아에 있는 한국에서는 자전거가 그다지 일상적인 교통수단으로 이용되고 있지 않은 게 신기하다 … 한국에서는 자전거를 타느니 다소 무리를 하거나 대출을 받아 차를 사는 게 낫다고 여겨진다 … 내 눈에는 도무지 우스운 게 없는데 무엇이 우스운지 궁금해 했더니 여학생 중 한 명이 “교수님, 일본에서는 치마를 입고도 자전거를 타나요? 속옷이 보이지 않아요?”라며 창피한 듯 말했다. “괜찮아요. 나도 일본에서는 근처에 장을 보러 갈 때 치마를 입고 자전거를 타는데요.” 내 대답에 여학생들 모두 당황스럽기도 하고 놀랍기도 한 듯 복잡한 표정을 지었다 ..  (169, 171쪽)


  사이토 아케미 님은 강원도 춘천에 있는 한림대학교에서 일본말을 가르치는 자리에 있다고 합니다. 나이가 제법 많으니 언제까지 대학교수로 일하실 수 있는지 모르겠는데, 한국에서 한국사람한테 일본말 가르치는 일을 하며 겪은 이야기를 담아 《다른 듯 같은 듯》(소화,2006)이라 하는 책을 내놓은 적 있습니다. 이 책은 일본에서 먼저 내놓고 한국에는 나중에 내놓았다는데, 이 책을 처음 쓰신 지 어느덧 열 해가 훌쩍 지난 만큼, 그 뒤 겪거나 느낀 다른 이야기를 새로 묶을 만한데, 아직 다른 책은 안 내놓으신 듯합니다. 여러모로 바쁘기에 이 같은 책을 새롭게 내놓을 겨를이 없을는지 모르는데, 따스하게 마음을 다스리며 마주한 두 나라 사람들 이야기를 꾸준히 들려줄 수 있으면 좋겠어요.


  이야기책 《다른 듯 같은 듯》은 한국과 일본 두 나라를 견주는 ‘비교 문화 체험’이 아닌, 두 나라를 마음 깊이 아끼며 사랑하는 고운 꿈을 보여줍니다. 사람은 사랑으로 살아가는데, 사랑 가운데에서도 따순 사랑으로 살아갑니다. (4345.6.9.흙.ㅎㄲㅅㄱ)

 


― 다른 듯 같은 듯 (사이토 아케미 글,소화 펴냄,2006.7.15./85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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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세계 유산
문화재청 지음 / 눌와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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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 보니, 좀 삐딱한 느낌글처럼 되었지만, 책은 더없이 예쁘장하며, 글과 사진은 참말 깔끔합니다 ^^;;;;

 

 

 


 유네스코가 바라보지 않아도 보배
 [책읽기 삶읽기 107] 문화재청 엮음, 《한국의 세계유산》(눌와,2010)

 


  유네스코에서 올린 우리 나라 ‘세계유산’과 ‘인류무형유산’과 ‘세계기록유산’을 차근차근 보여주는 《한국의 세계유산》(눌와,2010)을 읽는다. 문화재청에서 엮은 책이라 하는데, 글과 사진이 퍽 깔끔하다고 느낀다. 이 나라 문화재청이 예전에도 이처럼 깔끔한 글과 사진으로 우리 나라 문화유산을 보여주는 책을 내놓은 적 있었을까 궁금하다. 돌이켜보면, 예전에는 좋은 자료가 있더라도 알차게 묶거나 어여삐 엮지 못하기 일쑤였다. 지난날 이 나라 공무원은 ‘자료집’만 내놓을 뿐이었다. ‘책’을 만들지 않았다.


  수원 화성을 다루는 자리에서 정조는 ‘튼튼하게만 쌓을 화성’이 아니라 ‘아름답게도 쌓을 화성’이라고 얘기했다고 밝힌다. 이 같은 말마따나 쓰임새를 살피는 한편, 눈썰미를 북돋우는 살림살이가 곧 문화유산이라 할 테지. 곰곰이 돌아보면, 이 나라 어머니들은 아이들 옷 한 벌을 지어도 ‘튼튼하면서 예쁜’ 옷을 지었고, 밥 한 그릇을 차려도 ‘알차며 맛나고 보기 좋게’ 밥을 차렸다. 아이들이 튼튼하게 자랄 때에 더없이 기쁜데, 튼튼하게 자라면서 어여쁜 빛을 한결 뽐내면 그지없이 사랑스럽다. 아니, 씩씩하게 뛰놀며 튼튼히 자라는 아이들은 얼마나 어여쁜 모습인가.


.. 1592년 임진왜란 때 불국사는 피해를 입었다. 이때 2000여 칸이나 되는 건물은 모두 불타 버리고 석축과 계단, 석탑과 석등, 금동불상 등만이 화를 면했다 … 정조가 죽고 나자 정조가 계획했던 개혁도 모두 없던 일이 되었다. 물론, 화성 축성 이후 우리 나라에는 뚜렷한 축성도 이루어지지 못했다. 조선 후기에 들어서 사회의 기강이 극도로 문란해지고, 사회 각층이 붕괴되어 가고 있는 형편에 막대한 재정과 인력을 필요로 하는 축성이 이루어지지 못한 것은 당연한 결과이기도 하겠다 ..  (23, 73쪽)

 


  그런데 ‘세계유산’이란 무엇일까. 유네스코는 지구별 여러 나라 세계유산으로 무엇을 손꼽을까. 깨끗하며 아름다운 자연 삶터는 세계유산이 될까. 임금님이 살던 집터는 세계유산이 될까. 우람하게 지은 절터는 세계유산이 될까.


  불국사도 해인사도 종묘도 창덕궁도 화성도 경주도 왕릉도 온통 ‘나라님’이라 하는 ‘권력자’들이 누리던 삶이지 싶다. 하회마을과 양동마을도 세계유산으로 2010년에 이름을 올렸다 하는데, 두 마을에서 흙을 일구며 살아가는 여느 사람들 때문에 세계유산이 되었다고는 느끼지 않는다. 참말, 세계유산이란 한국에서나 다른 나라에서나 ‘돈·이름·힘’을 부리는 사람들이 짓거나 누린 것 테두리에서 못 벗어나지는 않나 궁금하다.


  이를테면, 나무로 뼈대를 세우고 흙으로 벽을 바르며 돌로 바닥을 대고 풀로 지붕을 잇던 여느 살림집은 세계유산이 될 수 없을까. 아니, 세계유산에 앞서 한국유산이 될 수 없을까. 새마을운동이라는 이름으로 싹 밀어 없앤 풀집인데, 제주에 성읍마을이라든지 남녘땅 곳곳에 몇 군데 민속마을을 새로 돈을 들여 만들면서, 막상 사람들이 풀집이나 흙집이나 나무집에서 살아가도록 하지 않는다. 아직도 ‘새마을 깃발’은 전국 곳곳에서 나부낀다.


  너와집과 굴피집은 세계유산에 앞서 한국유산이 될 수 없을까. 수도물에 앞서 우물물과 냇물은 세계유산에 앞서 한국유산이 되어서는 안 되는가. 빨래기계에 앞서 냇가 빨래터는 세계유산에 앞서 한국유산이 될 수 없었는가. 고속도로와 고속철도에 앞서 오솔길이랑 고샅길이랑 골목길은 세계유산에 앞서 한국유산으로 사랑받을 수 없었나.


.. 공군 대령 김영환은 1951년 9월 지리산 공비토벌작전을 수행하면서 해인사를 폭격하라는 명령을 받았지만 이를 거부했다. 자신이 지휘하는 편대를 이끌고 출격했지만 김 대령은 가야산에 단 한 발의 폭탄도 떨어뜨릴 수 없었다. 그곳에는 바로 고려대장경판을 모셔 둔 해인사가 자리잡고 있었기 때문이다 … 법보전의 뒷벽 창의 경우에는 칸마다 창의 크기가 조금씩 다르다. 이 또한 장경판전의 기능을 극대화하기 위한 설계로 짐작하지만, 현재로서는 그 원리를 정확히 짚어내지 못하고 있다. 현대의 과학기술이 옛사람들의 경험에 의거한 과학적인 판단을 좇아가지 못하는 셈이다 ..  (32, 34쪽)

 

 


  《한국의 세계유산》은 예쁘게 잘 빚었다고 느낀다. 나라밖 사람들뿐 아니라 이 나라 사람들이 즐겁게 돌아보며 찬찬히 살필 만하다고 느낀다. 다만, 한 가지 아리송하다. 한국사람은 지구별에 손꼽힐 만한 세계유산을 여느 때에 얼마나 누리며 살아가는가. 한국사람은 나라밖으로 내세울 만큼 자랑스럽고 아름답다 여기는 세계유산을 이녁 삶터 둘레에 얼마나 가까이 두며 사랑하는가.


  박물관에 모시기에 세계유산이라고 느끼지 않는다. 언제나 누리는 삶일 때에 세계유산이라고 느낀다. 그리고, 언제나 누리는 삶일 때에는 따로 세계유산이나 한국유산 같은 이름표를 붙이지 않더라도 가없이 고운 빛과 무늬를 살가이 드러낸다고 느낀다. 세계유산이든 한국유산이든 박물관이나 미술관에 모신 유물이나 유적이 아니라, 늘 내 삶에 녹아들며 누리는 살림살이 이야기일 때에 값어치가 있다고 느낀다.


  갓난쟁이를 돌보며 아기한테 대던 천기저귀 한 장이 나로서는 한국유산이나 세계유산이라 느끼지만, 따로 아무런 유산이 안 되어도 즐겁다. 아이들과 복닥이며 읽어 주고 읽던 그림책 하나가 나한테는 한국유산이나 세계유산이라 느끼지만, 굳이 어떠한 유산이 안 되어도 좋다. 시골집 감나무 한 그루, 뽕나무 한 그루, 후박나무 한 그루, 모과나무 한 그루, 동백나무 한 그루가, 여러모로 사랑스러운 문화유산이 될 만하지만, 어떤 유산이라 이름 붙이기 앞서 늘 바라보며 쓰다듬는 좋은 벗님이기에 반갑다.


  밥그릇 하나 수저 한 벌 같은 살림살이가 문화유산이라 할 테지. 빗자루 하나 호미 한 자루 같은 연장붙이가 문화유산이라 할 테지. 일하며 부르는 노래, 아이들 재우며 부르는 노래, 식구들이 나누는 이야기 한 보따리가 문화유산이라 할 테지.


.. 우리 나라에는 실로 ‘고인돌 왕국’이라는 표현을 쓸 만큼 많은 수의 고인돌이 발견되었다. 지금까지 남한에서 약 3만여 기, 북한에서 약 1만 기에서 1만5천 기에 가까운 고인돌이 발견되었는데, 이는 세계 고인돌의 40퍼센트 이상에 해당하는 수이다 ..  (87쪽)

 

 


  식구들 저녁 밥상에 올리려고 당근이랑 연뿌리랑 무를 가늘게 썰고 달걀 석 알을 풀어 달걀말이를 부친다. 당근이랑 연뿌리랑 무를 가늘게 썰면서, 이 달걀말이를 식구들이 맛나게 먹을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예쁘게 썰자고 생각한다. 석석 썰리는 당근이랑 연뿌리랑 무 빛깔이 좋다. 좋게 느끼는 빛깔이니 좋게 섞일 테고 좋게 부칠 수 있겠지. 쌀을 씻어 밥물을 안친다. 푸성귀를 갈고 짜서 풀물을 마련한다. 얕은 멧자락에 올라 멧딸을 딴다. 모든 먹을거리가 좋은 먹을거리요, 좋은 삶을 북돋우고, 좋은 사랑으로 이어진다. 좋은 밥을 먹으며 좋은 꿈을 꾼다. 좋은 하루를 누리며 좋은 이야기가 태어난다.


.. 남사당놀이는 일반 서민에게는 환영을 받았지만, 양반들에게는 크게 멸시를 받았다. 그래서 남사당패는 함부로 마을에 출입할 수가 없었다. 공연을 하기 위해서는 먼저 마을에서 가장 잘 보이는 언덕을 골라 온갖 재주를 보여주는 한편 마을로 들어가 마을의 양반이나 이장 등에게 놀이판을 벌여도 좋다는 승낙을 얻어야 했다 … 남사당놀이는 일반 서민을 상대로 일반 서민들의 시름을 달래 주는 놀이였다는 데 의의가 있다. 일반 서민들은 남사당놀이에서 나타나는 여러 가지 사회 풍자를 통해 그들의 답답한 마음을 풀 수 있었고, 농사일로 지친 몸과 마음을 달래고 쉴 수 있었다 ..  (144∼145쪽)

 


  유네스코가 바라보지 않아도 삶은 보배이다. 문화재청이 다스리지 않아도 사람은 사랑이다. 작은 시골마을 논개구리 소리를 즐기면서 살아가는 하루가 보배라고 느낀다. 작은 시골집 처마에서 둥지를 틀며 한식구로 지내는 제비들이 보배라고 느낀다. 시원스레 부는 바람에 따라 흐르는 구름 빛깔이 하얗고 맑다. 바람은 모내기를 마친 들판에 사름빛을 뽐내며 분다. 바람은 고운 햇살을 온누리 구석구석 따사로이 퍼뜨린다.


  내가 바라보는 보배가 저녁을 맞이해 천천히 곯아떨어진다. 나와 한삶을 누리는 보배가 곁에서 뜨개질을 한다. 나 스스로 아낄 보배인 내 손으로 식구들 옷가지를 빨래하고 개며 추스른다. 달빛과 별빛이 고르게 내려와 내 마음으로 스며든다. (4345.6.7.나무.ㅎㄲㅅㄱ)

 


― 한국의 세계유산 (문화재청 글·그림,눌와 펴냄,2010.12.27./16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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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친 밥 한 그릇이면 족하지 않은가 - 세상이 쓸쓸하고 가난할 때 빛나는 그들에게, 삶을 물었다
이승환 지음, 최수연 외 사진 / 이가서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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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밥 한 그릇 함께 나눌 이웃
 [책읽기 삶읽기 105] 이승환·최수연, 《거친 밥 한 그릇이면 족하지 않은가》(이가서,2009)

 


  《거친 밥 한 그릇이면 족하지 않은가》(이가서,2009)라는 책을 읽고 나서 생각합니다. 사람들이 ‘돈 버는 걱정’에 목매달며 살아간다 하지만, 막상 스스로 ‘돈 버는 걱정’에 목매달고픈 사람은 없구나 하고. 사람들 누구나 ‘돈 버는 걱정’이 아니라 ‘즐겁게 누리고픈 삶’을 생각하는구나 하고.


.. 아지매들에게는 유명한 사진가보다는 생선 한 마리 더 파는 것이 중요하다. 그에게는 알은체하지 않고 ‘니 맘대로 찍어라’며 가만히 놔두는 것이 고맙다 ..  (12쪽/최민식)


  사람들은 돈을 벌려고 합니다. 왜 돈을 벌려고 할까요? 아주 마땅한 얘기지만, 사람들은 돈을 쓰려고 돈을 법니다. 돈을 쓸 생각이 없다면 돈을 벌지 않아요. 이를테면, 어느 재벌회사 우두머리라 하더라도 돈을 쓰려고 돈을 벌지, 그저 쟁이기만 하려고 돈을 벌지 않아요. 1억을 쓰고 싶으니 1억을 벌고, 100억을 쓰고 싶으니 100억을 벌어요.


  곰곰이 따지면, 시골에서 살아가는 우리 식구도 돈을 법니다. 돈을 써야 할 곳이 있으니 돈을 법니다. 돈 버는 걱정 때문에 돈을 벌지는 않아요. 이모저모 돈을 써야 할 곳이 있다고 여겨 돈을 법니다.


  그런데, 돈 쓸 곳을 여러모로 많이 만들지 않으니까 굳이 돈을 많이 벌려고 애쓰지 않습니다. 하루하루 살아가는 좋은 나날을 더 기쁘게 여기기에, 돈을 벌려고 애쓸 품보다 하루하루 마음껏 누릴 품에 더 마음을 기울입니다. 홀가분하게 누릴 삶이 좋지, 돈을 버느라 보낼 나날이 좋을 수 없어요.


  곧, 나는 나대로 생각하며 살아갑니다. 나는 나대로 내가 가장 좋다고 여기는 대로 살아갑니다. 사람들은 사람들대로 생각하며 살아갑니다. 사람들은 사람들대로 스스로 가장 좋다고 여기는 대로 살아갑니다.


.. 이철수는 겨울에만 판화 일을 한다. 봄·여름·가을에는 들일만 한다. 겨울 동안 꼬박 판화에 매달려 100여 점을 만든다. 1년에 100점이라는 이야기에 ‘기계’라고 말하는 이들도 있다. 그러면 이철수는 ‘밥 먹고 하는 일이 이건데 도대체 그대들은 뭐 하는가’라고 되묻는다 ..  (30쪽/이철수)


  우리 식구는 자동차 없이 살아갑니다. 우리 식구는 자전거 누리며 살아갑니다. 그러나, 우리 식구는 자전거에 앞서 두 다리로 살아갑니다. 두 다리로 걷다가, 버스를 얻어타거나 택시를 잡아탑니다. 때로는 기차를 타 보고, 두 번쯤 비행기도 타 보았으며, 이렁저렁 배도 타 봅니다.


  시골에서 살아가며 자동차 없으면 퍽 힘들겠다고 여겨 버릇하지만, 젊은이도 늙은이도 꼭 자동차가 있어야 하지 않습니다. 스스로 좋아하는 삶을 잘 헤아릴 수 있으면 가장 즐겁습니다.


  곧, 무엇이 있어야 좋은 삶이 아닙니다. 무엇이 없으면 나쁜 삶이 아닙니다. 즐길 줄 아는 삶이 좋은 삶입니다. 누릴 줄 아는 삶이 예쁜 삶입니다. 생각할 줄 알고 사랑할 줄 알 때에 빛나는 삶입니다.


  더 있으니 좋을 수 없습니다. 덜 있어서 나쁠 수 없습니다. 하나를 누리든 둘을 누리든, 하나도 못 누리든 둘은 엄두도 못 내든 스스로 홀가분하게 생각하며 사랑할 때에 아름다운 삶입니다.


  자동차를 얘기했지만, 멀리멀리 자주 나다녀야 한다면 자동차가 있으면 홀가분하겠지요. 그런데, 혼자 나다닌다 하면 자전거로 넉넉해요. 둘이나 셋이 나다닐 때에는 자전거에 수레를 달거나 저마다 자전거를 몰면 돼요. 꼭 빨리 움직여야 하지 않고, 어느 때에 맞추어야 하면 더 일찍 길을 나서면 됩니다. 정 안 되겠다 싶으면 택시를 불러 짐을 싣고 달리면 돼요.


.. 먹을 것 아껴서 필름과 인화지 사는 처지를 빤히 알기에 극구 사양했으나, ‘손님 대접할 정도는 버니 걱정 말라’며 검지로 헛총을 놓고는 낡은 르망을 몰고 총총히 사라졌다. 그는 따뜻한 삐딱이였다 ..  (45쪽/김영갑)


  밥 한 그릇 나누는 삶이란 남한테 밥 한 그릇을 내어주는 삶이 아닙니다. 나부터 내 몸을 살찌우는 밥 한 그릇이면 넉넉하다고 느끼는 삶입니다. 나 스스로 밥 한 그릇으로 내 삶이 넉넉하기에 내 이웃과 동무한테 밥 한 그릇 나눌 수 있습니다. 나 스스로 밥 한 그릇으로 내 삶이 넉넉하다고 여기지 못하면, 내 이웃이나 동무한테 밥 한 그릇 내밀지 못해요.


  내 마음속에 사랑이 예쁘게 피어날 때에 내 이웃과 동무와 살붙이한테 두루 사랑을 나누어 줘요. 내 마음속에 사랑이 피어나지 못한다면 내 이웃은커녕 바로 나 스스로를 사랑으로 돌보지 못해요.


  그러니까, 《거친 밥 한 그릇이면 족하지 않은가》에 나오는 이 땅 사람들은 스스로를 사랑하는 사람들입니다. 스스로 밥 한 그릇 넉넉히 누릴 줄 알면서 사랑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돈으로 살아가는 사람들 이야기라면 《거친 밥 한 그릇이면 족하지 않은가》 같은 책에 나오지 않습니다. 이름값이나 가방끈으로 살아가는 사람들 또한 이러한 책에 실릴 수 없습니다.


  그렇지만, 참 얄궂다 해야 할 텐데, 오늘날 한국땅 사람들은 《거친 밥 한 그릇이면 족하지 않은가》 같은 책을 사다 읽으면서, 막상 이녁 삶은 ‘밥 한 그릇으로 넉넉히 살찌울 사랑’이 되도록 건사하지 않습니다. 삶을 살찌우는 길은 오직 사랑인 줄 머리로 안다 하지만, 몸으로 느끼지 않고, 마음으로 헤아리지 않아요.


.. 세상을 따뜻하게 만드는 시인들은 다 위대하며, 심지어 문학의 열병을 앓고 있는 문청들에게는 시인은 곧 하느님이다 ..  (117쪽/김용택)


  도시사람들이 아파트를 버릴 수 있기를 빕니다. 아파트를 버리고, 아파트를 빌리거나 장만하느라 들인 돈으로 ‘마당과 텃밭 있는 작은 집’을 마련해 오붓하게 살아갈 수 있기를 빕니다. 호젓하게 햇볕을 누리는 마당이 집마다 있으면 좋겠습니다. 즐겁게 햇살을 머금으며 돌볼 텃밭이 집마다 있으면 기쁘겠습니다.


  참말 예쁘게 살아갈 수 있기를 빕니다. 도시에서든 시골에서든 사람들 누구나 예쁘게 살아갈 수 있기를 빕니다. 좁은 틈바구니에서 시멘트랑 아스팔트에 둘러싸이지 말고, 숲과 그늘과 나무와 흙과 햇살과 바람과 냇물이 시원한 터전에서 어깨동무할 수 있기를 빕니다.


.. “늘 내 운동의 마지막은 땅과 생명이라고 생각해 왔어요. 예전에는 남녀평등, 노사평등을 외쳤으나 이제는 사람과 자연의 평등을 외쳐 나가야지. 이것도 지난날의 치열한 운동 못지않게 중요한 운동이거든. 이러한 소박하고 잔잔한 움직임이 계속 번져 나가 큰 물결이 됐으면 해요.” ..  (243쪽/조화순)


  도시사람들 가운데 어떤 이들은 ‘4대강 반대’를 외칩니다. 그런데, 스스로 살아내지 않는 이야기를 목청 높이 외친다 한들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게다가 ‘4대강 반대’를 하자면, 참말 이 같은 정책을 밀어붙이는 정치집권자 정책하고 맞설 만한 삶을 꾸려야 마땅합니다. 무슨 소리인가 하면, ‘4대강 반대’를 하고 싶으면, ‘4대강 언저리에 작은 집을 얻어 작은 시골살림 누리면’ 돼요. ‘4대강 둘레 작은 땅뙈기를 장만해서 작은 살림 즐기면’ 돼요.


  시골 땅값은 도시 집값하고 견주면 매우 싸요. 시골에서 내 밭과 땅을 누릴 때에는 먹고 입으며 자는 품은 아주 적어요.


  사람들 스스로 누릴 줄 알고, 가꿀 줄 알며, 사랑할 줄 알면 돼요. 사람들 스스로 누리지 못하고 가꾸지 못하는데다 사랑하지 않으니까, 정치집권자는 ‘4대강 사업’을 밀어붙여요. 사람들이 온통 도시로만 몰려드는데, 아주 마땅히 이런 토목공사를 밀어붙이겠지요. 사람들은 온통 도시로만 몰려들었으니까, 시골에서 살아가며 참말 온몸 부딪혀 ‘4대강 사업 얼마나 나쁜 줄 알아?’ 하고 따질 사람이 없어요.


  통계나 숫자나 이론이나 비평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어요. 오직 내 몸뚱이로 움직이는 삶으로만 어떤 일이든 할 수 있어요. 밥 한 그릇을 나누자면, 내 몸을 움직여 밥 한 그릇을 지어야지요. 밥을 하고 밥을 푸고 밥그릇을 내밀어야지요. 머리로만, 입으로만, 말로만 외친다 해서 어느 하나 이룰 수 없어요. 밥 한 그릇 나눌 이웃이 누구요, 밥 한 그릇 내밀 내 모습이 어떠한가를 슬기롭게 살펴야 해요. (4345.6.4.달.ㅎㄲㅅㄱ)


― 거친 밥 한 그릇이면 족하지 않은가 (이승환 글,최수연·임승수·방상운·장기훈 사진,이가서 펴냄,2009.11.25./12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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