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을 읽는 사고
사토 다쿠 지음, 이정환 옮김 / 안그라픽스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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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책읽기 2023.6.15.

인문책시렁 295


《삶을 읽는 사고》

 사토 다쿠

 이정환 옮김

 안그라픽스

 2018.6.22.



  《삶을 읽는 사고》(사토 다쿠/이정환 옮김, 안그라픽스, 2018)는 “塑する思考”를 한글로 옮깁니다. 일본말 ‘塑する’를 “삶을 읽는”으로 바꾸었는데, ‘思考’는 왜 ‘사고’로 가두었을까요? 줄거리를 곰곰이 보면 “삶을 읽는 생각”하고 맞물릴 수 있으나, 이보다는 “플라스틱을 생각한다”쯤으로 옮기는 길이 나았으리라 느낍니다. 어느 하나를 다른 무엇으로 바꾸면서 퍼져 나가는 길을 밝히는 줄거리이니, ‘플라스틱’이 그냥 플라스틱인지, 아니면 새길을 여는 실마리인지, 또는 좋거나 나쁜 틀을 벗어날 수 있는지 ‘생각’하자는 뜻입니다.


  우리말 ‘생각’을 한자 ‘思’나 ‘考’로 섣불리 옮기지 못 합니다. 왜 그럴까요? 우리말 ‘생각 = 새롭게 심어서 나아가려는 길’을 나타내는데, ‘헤아리다·살피다·가늠·가리다·따지다·보다·어림·여기다·톺다·짚다·그리다’는 모두 다른 결을 나타냅니다. ‘돌아보다·살펴보다·바라보다·내다보다·둘러보다·훑어보다’도 결이 바뀌고, ‘파다·파헤치다·파고들다’라든지 ‘들여다보다·쳐다보다’처럼 ‘보다’를 자꾸자꾸 붙이면서 잇는 말씨도 결하고 너비를 바꾸어 갑니다.


  그런데 우리말 ‘생각’을 어떻게 조금씩 다르게 추스르거나 이야기하더라도 뿌리는 매한가지예요. ‘새·새롬·새로움’입니다.


  생각이라는 빛을 씨앗으로 심기에 마음에서 자라나서 무언가 일어납니다. ‘일어나’기에 ‘일’입니다. 돈벌이 가운데 일이 있겠습니다만, 우리가 하는 모든 삶이란 ‘일어난 일’입니다. ‘삶·함·일·하루’가 맞물릴 뿐 아니라, 곰곰이 보면 ‘똑같은 모습이나 몸짓을 다르게 느끼고 받아들여서 나타내는 이름’일 뿐이라고 여겨도 됩니다.


  다 다르게 볼 줄 아는 눈이기에 손질(디자인)할 수 있습니다. 다르게 갈 수 있는 손이기에 만질(디자인) 수 있고, 이야기를 담을 수 있어요. 장사하며 사고파는 살림도 꾸밀(디자인) 수 있습니다만, 우리가 쓰는 말글도 차근차근 다독일(디자인) 수 있기를 바라요. 멋부림(디자인)에서 그치는 몸짓은 눈비음(디자인)일 뿐인데, 글은 마음소리를 그리는(디자인) 무늬이지만, 보듬는(디자인) 마음이 없으면, 터럭만큼도 새로울 수 없습니다. 흔하거나 너르거나 수수하게 쓰는 ‘삶말’이 얼마나 새롭게 일어나는 빛씨앗인 생각인 줄 느끼지 못 한다면, 글쓰기(창작)도 옮기기(번역)도 부질없는 손장난이겠지요.


ㅅㄴㄹ


‘모르는 것’이라는 사실을 깨달으면 누구나 그것에 대해 알고 싶어지지 않나. 그 반복 작업을 통해서 대상을 조금씩 이해하게 된다. (37쪽)


내 목표는 결정권을 쥔 이들의 충분한 이해를 얻는 것이 아니라 나이 많은 경영진과는 전혀 다른 가치관을 가진 세대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그들이 피부로 느끼게 하는 것이었다. (46쪽)


오랜 세월 디자인에 종사하면서 일의 기본은 ‘사이로 들어가 연결하기’라는 확신을 갖게 되었다. (62쪽)


‘적당히’라는 애매한 표현 속에 사실은 디자인이 나아갈 방향에 대한 중요한 단서가 포함되어 있지 싶다. 그리고 이 ‘적당히’를 예전의 생활용품에서 엿볼 수 있다. (110쪽)


좀더 세계를 향해 나아가야 한다는 발언을 자주 듣는데 이것은 터무니없는 오해다. 화려한 디자인이 시도된 유명 디자이너의 물건보다 누가 만들었는지 알 수 없는 젓가락에야말로 전 세계에 자랑할 만한 디자인이 풍부하게 갖추어져 있다. (112쪽)


주변을 둘러보면 현대사회의 편리함 대부분은 ‘얼마나 신체를 쓰지 않을 수 있나’ 쪽으로 달려가고 있다. (229쪽)


#塑する思考 #佐藤卓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리는 사람.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선생님, 우리말이 뭐예요?》,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밑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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톨스토이 단편선 푸른숲 징검다리 클래식 43
레프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 지음, 박형규 옮김 / 푸른숲주니어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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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인문책 / 숲노래 책읽기 2023.4.21.

헌책읽기 11 사람에겐 얼마만큼의 땅이 필요한가?



  사람이 누릴 땅은 새가 내려앉고 풀벌레가 노래하고 벌나비가 춤추고 거미가 집을 짓고 뱀이랑 개구리가 사이좋게 어울리면서 이따금 들고양이가 슬슬 지나갈 만한 너비이면 넉넉합니다. 해마다 나무를 한 그루씩 심을 만하고, 철마다 들꽃씨를 한 줌씩 뿌릴 만하고, 맨발로 사뿐사뿐 오가면서 춤출 만한 풀밭을 누리는 너비이면 즐겁습니다. 비가 오는 날에는 빗방울춤으로 놀고, 바람 부는 날에는 바람맞이춤으로 노래하고, 해가 드리우는 날에는 빨래를 해바라기로 내놓으면서, 아이들이 이마에 땀을 내며 달리고 뛸 수 있을 만한 너비이면 사랑스럽습니다. 《사람에겐 얼마만큼의 땅이 필요한가?》는 톨스토이 님이 남긴 여러 글자락 가운데 ‘어린이뿐 아니라 어른이 곁에 놓고 되새길 여러 삶노래’를 갈무리합니다. 톨스토이 님은 가멸찬 집안에서 태어나고 자랐으되, 돈이나 이름이나 힘이 얼마나 덧없는가를 온몸으로 맞아들이고 깨우치려 했습니다. 스스로 뒤집어쓴 허물부터 고스란히 바라보려 했기에 스스로 마음 한복판에서 사랑을 일깨울 수 있었고, 이 사랑씨앗을 차곡차곡 심는 글밭을 일굴 만했습니다. 가난집에서 태어나야 가난을 알거나 말할 수 있지 않습니다. 가난만 말할 적에는 가난도 가멸참도 오히려 말하지 못 할 뿐 아니라, 둘 사이를 녹여내는 살림빛은 한 마디도 못 읊게 마련입니다. 왜냐하면, 돈이 있어야 살림이 넉넉하지 않거든요. ‘살림’ 가운데 ‘살림돈’도 있지만, 숱한 살림살이 가운데 아주 조그마한 부스러기인 돈입니다. 호미 한 자루에 도끼 한 자루가 살림입니다. 숯과 냉과리가 살림입니다. 작은 자루랑 이불 한 채가 살림입니다. 아이들 말소리가 살림이고, 어른들 이야기꽃이 살림입니다. 쇳덩이(자가용)를 거느리기에 살림하고 멉니다. 잿더미(아파트)를 붙잡기에 살림을 잊습니다. 풀씨랑 꽃씨랑 나무씨가 살림을 일구는 바탕이고, 온갖 씨앗을 손바닥에 얹다가 가볍게 심을 마당이랑 뒤꼍이랑 밭자락을 누린다면 스스로 사랑을 길어올릴 만합니다.



《사람에겐 얼마만큼의 땅이 필요한가?》(L.N.톨스토이/박형규 옮김, 이성과현실, 1990.9.30.)


ㅅㄴㄹ


이제야말로 나는 깨달았다. 모두가 자신을 걱정함으로써 살아갈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다만 인간들이 그렇게 생각하는 것일 뿐, 정말은 사랑에 의해 살아가는 것이다. 사랑 속에 사는 자는 하느님 안에 살고 있다. 하느님은 사랑이시므로. (45쪽)


“공연한 짓을 해서 아이들의 버릇을 그르치지 말아요. 저런 애들은 한 주일쯤 잊어버리지 않도록 혼을 내줘야 하는데.” 할머니는 말했다. “아니에요, 할머니. 그거야 물론 우리네들의 생각이지만 주님의 뜻은 그게 아니거든요. 사과 한 알 때문에 이 아이를 때려야 한다면 이 죄 많은 우리는 도대체 어떤 벌을 받아야 하나요?” 노파는 잠자코 아무 대답이 없다. (61쪽)


“네 눈에는 지금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있어. 네 눈은 증오심 때문에 흐려졌다. 남의 잘못은 눈앞에 환히 보여도 자기의 잘못은 등 뒤에 감춰져 있다.” (74쪽)


농민들은 하느님의 힘은 악을 악으로 갚는 데에 있는 것이 아니라 착한 일 가운데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134쪽)


“당신이 원하는 것은 뭐든 다 해드리겠습니다.” “그래 뭣을 할 수 있다는 거냐?” 하고 이반이 묻자 작은 도깨비는 말했다. “저는 당신이 원하신다면 무엇으로라도 군사를 만들어 드릴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그까짓게 무슨 소용이 있지?” (146쪽)


하인은 괭이를 집어들고 빠홈의 무덤으로 머리에서 발끝까지의 치수대로 정확하게 3아르신을 팠다. 그리고 그를 묻었다. (228쪽)


어느 날 움막에 들어앉아 있던 대자에게는 이제 더 이상 모자라는 것도 두려운 것도 없었으며, 마음속은 기쁨으로 가득 찼다. 거기서 대자는 생각했다. ‘하느님께서는 얼마나 큰 행복을 인간에게 내려주셨는지 모른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공연히 자기 스스로를 괴롭히고 있다. 실상은 기쁨 속에 살아갈 수 있는데도.’ (252쪽)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리는 사람.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선생님, 우리말이 뭐예요?》,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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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만한 제국 당대총서 14
하워드 진 지음, 이아정 옮김 / 당대 / 200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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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인문책 / 숲노래 책읽기 2023.4.21.

인문책시렁 304


《오만한 제국》

 하워드 진

 이아정 옮김

 당대

 2001.1.9.



  《오만한 제국》(하워드 진/이아정 옮김, 당대, 2001)을 되읽으며 생각합니다. 요즈음 이분 책을 곁에 두는 분이 얼마나 있을는지 모르나, 이분이 싸움날개(전투폭격기)를 몰며 꽝꽝 터뜨리던 무렵 스스로 지저른 죽임짓을 밝히는 대목은 앞으로도 눈여겨볼 글줄이라고 느낍니다. 어느 쪽만 ‘때린이(가해자)’이지 않습니다. 스스로 올바르다(정의의 편)고 외치면서 끔찍하고 무시무시하게 죽임짓을 일삼은 무리가 있어요.


  하워드 진이라는 분은 그이 스스로 ‘미국 싸움날개’를 몰지 않았다면, 또 그 싸움날개가 무슨 뜻이었는지 스스로 돌아보지 않았다면, ‘역사’라는 이름을 내세운 온갖 거짓말을 캐내려는 마음으로 나아가지 못 했으리라 느낍니다. 바보짓을 일삼은 적이 있어도 깨우치고 거듭날 수 있습니다. 바보짓을 한 적이 없더라도 오히려 바보스러운 굴레에 스스로 갇혀서 못 헤어나오기도 합니다.


  눈을 뜨고 참길을 걸어가면서 참사람이 되려는 마음을 언제나 되새기려 하지 않는다면, 그만 나라(정부)가 시키는 대로 고분고분 휘둘리는 허수아비 노릇을 하기 일쑤입니다. 허수아비가 되면, 돈도 이름도 힘도 쉽게 얻습니다. 허수아비가 되지 않겠노라 손사래치면, 돈도 이름도 힘도 없는 맨몸이 되겠지요. 그런데 맨몸으로 설 줄 알기에 스스로 삶을 짓고 살림을 가꾸면서 ‘어른’으로 거듭날 만합니다.


  나이만 먹는 이는 늙은 꼰대입니다. 나이먹기를 멈추고서 철들려는 몸짓으로 피어나기에 비로소 어른입니다.


  둘레를 보면 ‘어른 아닌 꼰대’인 놈들이 스스로 마치 ‘어른’이라도 되는 듯이 굴거나 뽐냅니다. 그러나 그들이 참으로 ‘어른’이라면 언제나 무릎을 꿇고서 어린이 곁에 설 뿐 아니라, 어린이랑 어깨동무하는 마음과 말과 몸짓으로 사랑을 물려주게 마련이에요. ‘어른 아닌 꼰대’이기에 어려운 말을 아이들한테 윽박지르며 외우도록 시킵니다. ‘그저 꼰대인 늙은이’인 터라 우리 삶터를 갈라치기(분열·차별)로 끊고서 자꾸 싸움을 부추깁니다.


  어른일 적에만 비로소 어버이로 다시 태어납니다. 어른이 아닌 사람은 어버이로 다시 태어나지 않습니다. 어른인 넋으로 눈뜨는 마음일 때에 비로소 ‘어머니·아버지’로 서로 어깨동무하며 살림을 추스르는 보금자리를 일구어 ‘어버이’라는 이름을 새로 얻습니다.


  아기를 낳기에 ‘어버이’라 하지 않습니다. 철든 몸짓으로 아이를 사랑으로 돌볼 줄 알아서 ‘어버이’입니다. 낳기는 했어도 사랑을 물려주지 못 하는 몸짓이라면 어른도 어버이도 아닌 그냥 ‘늙은 꼰대’입니다. 말과 이름을 어질게 가려서 쓸 노릇입니다. 말과 이름을 찬찬히 짚으면서 우리 넋을 돌아보고, 우리 하루를 스스로 그릴 적에, 비로소 이 땅에서 모든 총칼을 녹여내고, 아이들을 배움수렁(입시지옥)에서 건질 뿐 아니라, 우리 누구나 참사람으로 사랑할 수 있습니다.


ㅅㄴㄹ


실제로 중립을 지킨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이미 부와 권력이 특정한 방법으로 분배되고 특정한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는 세계 속에서 중립을 지킨다는 것은 현상태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다는 것을 뜻한다. (20쪽)


정밀 폭격은 엄청난 자기기만이었다. 우리는 독일군이 도시를 폭격하여 수백 혹은 천여 명의 사람들을 죽였다고 분노했었다. 하지만 이제 영국군과 미군은 단 한 번의 공습으로 수만 명을 죽이고 있었다. (166쪽)


이미 대량폭격에 길들여진 미국의 대중들은 원자탄 폭격을 태연하게, 사실상 기쁨으로 받아들였다. 나는 나 자신의 반응이 어땠는지 기억한다 … 나는 원자탄의 폭발이 히로시마의 남자, 여자, 어린이 들에게 어떤 결과를 가져왔는지 전혀 알지 못했다. 그것은 내가 유럽에서 6마일 고도로 날며 떨어뜨린 폭탄에 맞아죽은 사람들의 죽음처럼, 추상적이고도 먼 것이었다 … 일단 처음에 어떤 전쟁에 대해 정당하다는 판단이 내려지고 나면, 그 뒤로는 생각을 중지한 채 승리를 위해 저지르는 모든 일 또한 도덕적으로 타당하다고 가정하는 경향이 있다. (171쪽)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리는 사람.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선생님, 우리말이 뭐예요?》,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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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근이다 - 감독으로 말할 수 없었던 못다한 인생 이야기
김성근 지음 / 다산라이프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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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책읽기 2023.3.23.

인문책시렁 299


《김성근이다》

 김성근

 다산라이프

 2011.12.5.



  《김성근이다》(김성근, 다산라이프, 2011)를 읽고 보니, 이처럼 애쓰는 지기도 있으나 이처럼 애쓰지 않는 지기가 꽤 많겠구나 싶더군요. 공놀이(야구)를 하는 지기(감독)하고 일꾼(선수) 사이에서뿐 아니라, 어버이랑 아이 사이에서도 매한가지입니다. 둘은 틀림없이 마음(정)을 나누는 사이입니다만, 틀렸을 적에는 틀린 줄 밝히고 알려줄 뿐 아니라, 아이들이 스스로 서도록 이끄는 몫을 해야 지기(감독)이자 어버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지기·일꾼’하고 ‘어버이·아이’ 사이뿐 아닙니다. 모든 곳에서 같아요. 치킴글(주례사비평)을 쓸 까닭이 없습니다. 글을 놓고도, 빛꽃(사진)을 놓고도, 이야기(강의)나 모든 일을 놓고도 다를 까닭이 없어요. 여느 자리에서는 도란도란 어울리거나 지내되, ‘일’을 바라볼 적에는 오직 ‘일’로 마주하면서 다스릴 노릇입니다.


  우리 아이가 쓴 글이나 빚은 그림이어도 틀렸으면 ‘틀렸다’고 짚을 노릇입니다. 어느 때에는 부드럽거나 상냥하게 짚겠지요. 어느 때에는 따갑거나 아프게 짚겠지요. 어느 때에는 매몰차거나 거칠어 보이겠지요. ‘오나오냐(주례사비평)’는 서로 망가지는 지름길입니다.


  《김성근이다》을 여민 글님은 쇳덩이를 안 몰고 자전거를 타거나 걷는 삶을 누린다고 합니다. 오직 스스로 그릴 하루만 바라보기 때문에, 자전거를 타다가도 곧잘 꽃밭으로 뛰어들어 엎어진다지요. 어느 하루만 이러지 않았으리라 느껴요. 걷다가 거리나무나 전봇대에도 부딪혔을 테고, 숱하게 넘어졌겠지요.


  저는 글을 쓰고 낱말책을 여미는 일을 하기에, 쇳덩이(자가용)를 안 몰 뿐더러, 자전거를 달리면서 곧잘 ‘딴생각(낱말을 어떻게 풀이하고 여미느냐 하는 생각)’을 하다가 그만 거리나무에도 박고, 자칫 냇물이나 도랑에 빠질 뻔하기도 했습니다. 걷거나 버스·전철을 타다가 그만 엉뚱한 데에서 내린다든지, 내릴 곳을 지나치기 일쑤예요.


  간추려 보자면, 한길을 오롯이 가고 싶다면 쇳덩이를 버리면 즐겁습니다. 글을 쓰려는 분이라면 제발 쇳덩이부터 버릴 노릇입니다. 쇳덩이를 모느라 글을 못 써요. 책을 읽으려는 분도 부디 쇳덩이부터 치울 노릇입니다. 쇳덩이를 건사하느라 책을 못 사요. 글을 쓰거나 책을 읽는 사람은, 버스·전철이 아무리 밀리거나 막혀도 걱정하지 않아요. 밀리거나 막히는 동안 조용히 글을 쓰거나 책을 읽거든요.


  공놀이 지기(야구 감독)뿐 아니라, 길잡이(교사·교수)도 쇳덩이를 버릴 노릇입니다. 아니, 처음부터 종잇조각(면허증)이 없을 노릇입니다. 쇳덩이를 거느리는 바로 그때부터 글이랑 책하고 등지는 셈입니다. 걷지 않으면 마을을 못 보고, 바람을 못 느끼고, 별빛을 못 봅니다. 자전거를 타지 않으면, 길을 못 보고, 둘레를 모르며, 철바뀜을 못 알아챕니다.


  글이나 책하고 얽힌 삶길을 나아가고 싶다면, 치킴글(주례사비평)이란 굴레를 버릴 노릇이요, 쇳덩이를 치울 노릇이며, 걸어다닐 노릇입니다. 그리고 어버이로 살아가며 아이를 사랑하려는 보금자리에서도 치킴말을 버리고 사랑말만 들려줄 수 있으면 됩니다. 아이 손을 잡고서 걸어다녀야 아이가 사랑을 물려받습니다. 아이를 쇳덩이에 앉히는 사람이라면, 바로 이때부터 스스로 ‘어버이를 등지는 굴레’에 갇히는 셈입니다.


ㅅㄴㄹ


프로 감독이 되고 나서 선수들과 사적인 정을 끊은 이유는 선수들이 성장하는 데 방해가 될 수 있어서다. 선수를 최고로 성장시키려면 힘든 연습을 이겨내야 하는데, 감독과 선수가 사적으로 정을 나누면 정신력이 약해지게 돼 있다. (24쪽)


나는 자동차 운전면허가 없다. 야구에만 빠져 살아서 어느 순간 생각에 몰두하면 잘못 하다 사고가 날 수 있기 때문이다. SK에 있을 때 시합에서 진 날, 자전거를 타고 집에 가다가 길가 화단으로 고꾸라진 일이 있었다. 야구 생각하다가 눈앞에 길도 제대로 못 본 것이다. 나이든 남자가 갑자기 화단을 들이받았으니 사람들이 쳐다볼까 봐 얼른 일어나서 뒤도 안 돌아보고 빨리빨리 걸었다. (47쪽)


누가 나한테 휴식 시간에는 뭘 하냐고 하면, 나는 휴식 시간이 없다고 말한다. 1년 내내, 365일 야구 한다. 하루도 안 쉰다. 내 머릿속은 분리하는 게 불가능하다. (49쪽)


그 선수를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혼자 생각할 시간을 주는 것이다. 생각이 바뀔 준비가 돼 있지 않은 선수에게는 아무리 말을 해도 통하지 않는다. 입만 아플 뿐이다. (98쪽)


내가 캠프 때마다 꼭 챙겨가는 게 책이다. 두세 박스씩 담아간다. 미팅 때 선수들한테 들려주기 위해서다. 내가 읽고 좋은 내용을 다 기록해 놓았다가, 미팅 때 이야기해 준다. (145쪽)


사람은 마음먹기에 따라 사는 게 다르다. 정말 절실하게 원하면 뛰게 돼 있다. 그만큼 달리게 돼 있다. 세상에 사람으로 태어났으니 힘들고 고달퍼도 그렇게 절실한 마음으로 인생을 살아야지 싶다. (210쪽)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리는 사람.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선생님, 우리말이 뭐예요?》,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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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도 페미야? - 젠더 갈등과 세대 갈등의 소통을 위하여
강준만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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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책읽기 2023.3.23.

인문책시렁 298


《엄마도 페미야?》

 강준만

 인물과사상사

 2022.8.12.



  《엄마도 페미야?》(강준만, 인물과사상사, 2022)를 읽었습니다. 강준만 님은 ‘후벼파기·까기’가 아니라 ‘되새기기·돌아보기·깨닫기’를 하기를 바라면서 ‘이야기’를 펴자는 뜻으로 이 책을 여미었구나 싶습니다. 다만 ‘페미’ 이야기하고 동떨어진 뜬금없는 글 몇 꼭지를 끝자락에 끼워넣은 대목은 아쉽습니다. 책 한 자락을 오롯이 ‘페미’ 이야기로 안 엮은 뜻이 알쏭합니다.


  《엄마도 페미야?》를 읽으면 뒤쪽에 ‘문재인 실패 + 광주 정신’을 짚는 꼭지가 있습니다. 강준만 님은 전북 전주에서 살아가기에 ‘전라도 민낯’을 여러모로 느끼고 지켜보았으며, 이 엇가락(모순)을 고스란히 글로 담아냅니다. 그런데 전라도에서 살아가는 글꾼 가운데 이런 ‘전라도 엇가락 민낯’을 글로 옮기거나 말로 펴는 이는 아예 없다시피 합니다.


  저는 전남 고흥에서 살아가며 전남·북과 광주 민낯을 요모조모 들여다봅니다. 전남과 광주는 언제나 ‘허수아비(거수기·손뼉부대)’를 바라더군요. 들꽃으로 살아가는 작은이가 말할 틈을 내주지 않습니다. 힘·이름·돈을 거머쥔 이들끼리 잔치판을 벌여 스스로 치켜세울 뿐이고, 이런 자리에 ‘들꽃(시민·농어민)’은 손뼉만 쳐야 합니다. 언제나 90% 안팎으로 ‘한놈밀기’만 하는 이 고장에는 참빛(자유·민주)이 없다고 할 만합니다. 새길(대안)이 없어요. 그저 ‘한놈밀기’일 뿐이고, ‘한놈밀기’만 있다 보니, 그 ‘한놈 무리’에 들어가서 ‘돌라먹기’를 하려는 떼거리가 득실거립니다.


  《엄마도 페미야?》라는 책이 짚으려는 ‘엇가락 민낯’이란, ‘참빛(자유·민주)’을 이루고자 땀흘리던 이들이 어느새 힘꾼(권력자)으로 바뀌면서 외려 참빛을 억누르거나 주리를 트는 굴레요, 이 굴레(엇가락 민낯)를 털어내지 않거나 바로보려 하지 않을 적에는 바로 우리 스스로 엉뚱하거나 뜬금없는 ‘다른 힘꾼’이 싹트는 빌미가 될밖에 없다는 뜻이라고 여길 만합니다.


  페미니즘은 ‘순이 혼자 살아야 한다’는 길은 아닐 테지요? 페미니즘은 ‘모든 돌이를 짓밟아 죽이자’는 목청은 아닐 테지요? 꼰대·고린틀(가부장권력)을 걷어내자는 길일 테지요? 총칼(전쟁무기)을 걷어내고, 모든 돌이가 싸움터(군대)에 얽매이지 않도록 아름길(평화)을 바라는 목소리일 테지요?


  이 땅은, 돌이만 살아남을 수도 없고, 순이만 살아갈 수도 없습니다. 돌이만 있거나 순이만 있으면 그냥 다 죽음길입니다. 순이돌이는 어깨동무를 할 노릇입니다. 높낮이(신분·계급·위계·질서)를 모조리 걷어치우고서, 손을 잡고 노래하면서, 오롯이 사랑으로 살림을 짓는 보금자리를 이룰 노릇입니다.


  우리가 할 일은 일나눔(가사분담)이 아니라, ‘함께 일하고 함께 놀고 함께 노래하고 함께 쉬고 함께 사랑을 속삭여 함께 빛나는 길’일 적에 비로소 아름답고 즐겁게 마련입니다. 사랑은, 살섞기가 아닙니다. 사랑은, 사랑입니다. 사랑은, 좋아함이 아니고, 마음끌림도 아닙니다. 사랑은, 한결같이 햇빛이자 숲빛이자 꽃빛인 마음빛으로 함께 살림을 지으면서 도란도란 이야기를 지피는 즐거운 길입니다.


  아이들은 ‘페미니즘’이 아닌 ‘사랑’을 듣고 배우면서 품을 줄 알아야 합니다. 어른들은 ‘페미니즘’이 아닌 ‘사랑’을 속삭이고 보여주고 나누면서 물려줄 줄 알아야 합니다. ‘페미니즘’은 안 나쁩니다. 그리고 좋지도 않습니다. 나쁨과 좋음이 아닌, 모든 꼰대·고린틀을 걷어내려고 땀흘린 길이 페미니즘일 뿐입니다.


  꼰대랑 고린틀을 걷어낸 자리에 사랑을 심지 않으면, 그만 또다른 꼰대랑 고린틀이 들어앉고 맙니다. 우리가 스스로 어진 넋이라면 민낯을 들여다보고 말하고 가다듬고 녹여내고 바로잡을 줄 알겠지요. 외곬은 죽음구렁입니다. 새가 왜 두 날개로 날까요? 나비도 벌도 왜 두 날개로 날까요? 암컷과 수컷이 나란히 있는 까닭을 생각해야 하지 않을까요? 우리말은 ‘암수·어버이·가시버시’처럼 언제나 순이를 앞에 놓고 돌이를 뒤에 놓습니다. 우리 스스로 먼먼 옛날부터 어질게 일구던 어깨동무와 사랑을 되새기면서, 오늘 이곳부터 참빛으로 거듭날 수 있기를 바랄 뿐입니다.


ㅅㄴㄹ


변호사 김재련은 중2 아들이 이런 질문을 던졌다고 털어놓는다. “엄마 페미니스트야? 페미들은 왜 남자를 조롱하고 미워해? 심지어 길에 쓰러진 여자를 도와줘도 성희롱 했다고 고소한다잖아. 엄마도 남자들 싫어해?” (27쪽)


일부 초등학생들은 자기들 사이에서도 “너 페미야?”라는 말을 자주 쓴다는데, 그들이 생각하는 ‘페미’의 의미는 자기가 좋은 것만 하겠다는 ‘얌체’나 ‘거짓말쟁이’라고 한다. 어쩌다 ‘페미’의 의미가 이렇게까지 부정적인 의미로 사용되게 된 걸까? 개탄과 분노만 할 게 아니라 이에 대한 성찰부터 해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29쪽)


물론 조남주의 선의는 이해한다. 사회적 약자를 옹호하는 글을 쓰는 사람들은 독자들의 공감과 지지를 끌어내기 위해 그 약자를 비참하게 보이게 하려고 애를 쓰는 법이니까 말이다. 나 역시도 그런 식의 글을 많이 써왔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그런 ‘피해 서사’의 한계를 절감하게 되었다. (80쪽)


여성과 페미니즘에 대한 발언도 마찬가지다. 일단 남자는 말하지 않는 게 좋다. 비판도 안 되고 제언도 안 된다. 무슨 말을 하건 몹쓸 ‘맨스플레인’이 되니까 말이다. 그냥 지지의 뜻만 밝히거나 박수만 쳐야 한다. (84쪽)


나는 그분들께 이런 질문을 드리고 싶다. “광주에서 성역이 없는 내부 비판의 자유는 보장되고 있나요? 다른 의견에 대한 관용의 문화가 살아 있나요? 지난 대선에서 특정 정당 후보에게 84.4퍼센트의 표를 몰아준 ‘몰표의 전통’을 계속 지켜나가는 게 ‘광주 정신’일까요? 문재인 정권이 어이없는 실정을 저질렀을 때엔 여론조사를 통해서나마 따끔한 회초리를 들어 성찰과 자기 교정을 압박했어야 하지 않나요? 어떤 일이 벌어지건 문재인 정권에 맹목적 지지를 보낸 게 정녕 잘한 일이었을까요?” (164쪽)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리는 사람.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선생님, 우리말이 뭐예요?》,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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