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꽃그림 서문문고 321
노숙자 지음 / 서문당 / 200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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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책읽기 / 인문책시렁 2024.8.20.

인문책시렁 362


《한국의 꽃그림》

 노숙자

 서문당

 2000.10.20.



  큰아이를 낳은 2008년부터 으레 꽃마실을 다녔습니다. 그무렵에는 인천에서 지냈고, 우리 집에 따로 꽃그릇을 놓지는 않았습니다. 다만, 하늘채(옥탑방)를 나와서 몇 걸음만 디디면 골목 어디나 꽃밭이에요. 아이를 안고 업고 걸리면서 이웃마을 꽃골목을 거닐었어요. 아이는 늘 풀꽃나무를 지켜보고 벌나비와 새를 바라보면서 이러한 모습을 척척 그림으로 옮겼습니다.


  우리 보금자리를 전남 고흥으로 옮긴 뒤에는 그저 마당에서 꽃잔치입니다. 따로 안 심어도 꽃이 피고 나무가 자랍니다. 언제나 새가 심거든요. 질경이나 차조기나 들깨는 씨앗을 조금 얻어서 곳곳에 뿌렸습니다. 여러 풀이 한결 즐거이 어울리기를 바라거든요.


  《한국의 꽃그림》(노숙자, 서문당, 2000)은 곁꽃(반려식물)으로 삼는 풀꽃도 담은 그림이 있되, 사람들이 굳이 곁꽃으로 안 삼지만, 늘 우리 곁에서 푸르고 맑고 밝게 피고 지는 숱한 꽃빛을 담은 그림이 나란합니다.


  예부터 꽃과 나무는 돈으로 사고팔지 않았습니다. 사람들 스스로 숲에서 씨앗을 얻거나 어린나무를 캐서 마당 한켠에 심을 뿐입니다. 때로는 새가 포르르 날아와서 씨앗을 심습니다. 때로는 개미가 풀씨나 나무씨를 나르다가 떨구어서 심습니다.


  어디에서나 언제나 빛나는 풀씨에 나무씨입니다. 우리가 곁에 새를 이웃으로 맞이한다면, 우리 삶터는 늘 꽃잔치에 나무마당입니다. 풀이 돋고 나무가 자라기에 누구나 숨을 쉽니다. 풀이 사라지고 나무가 꺾이는 곳에서는 매캐하고 흐리멍덩하고 어지러울 뿐입니다.


  곁에 풀꽃나무를 놓으면서 이따금 풀그림과 꽃그림과 나무그림을 손수 그려 본다면, 온누리는 어느새 환하게 거듭나리라 봅니다.


ㅅㄴㄹ


김치 가운데 열무김치를 가장 좋아하는 나는 항상 텃밭에 상추 다음으로 열무를 심는다. 열무는 심으면 곧장 장다리가 올라오고 흰색이 감도는 보라빛 꽃을 터뜨린다. 흐드러지게 피어나 쓰러질 듯하면서도 자꾸만 꽃을 피운다. 유난히도 흰나비를 부르는 꽃을 피운다. (무꽃/34쪽)


언제 보아도 다정하고 따뜻하다. 귀한 것이 아니라서 쉽게 지나치게 되지만 이런 꽃에서 발견되는 아름다움은 남다르다. (제비꽃/60쪽)


상추와 같이 먹으려고 심었더니 예쁜 꽃이 피기 시작했다. (쑥갓꽃/63쪽)


어릴 적 시골에서 본 적이 있는 목화꽃을 그려 보고 싶었다. 수소문한 끝에 용인 민속촌에서 찾을 수 있었다. 목화에서는 면화도 얻고 씨로는 기름도 짜는데, 햇빛을 보아야 꽃이 피고 해가 나지 않으면 입을 다물고 있다. 요긴한 것들을 만들어내는 원동력은 햇살이던가. (목화꽃/125쪽)


시골로 피난 갔던 어린 시절, 조그마한 밭에 파랗게 자라 있는 풀을 칼로 베고 다시 며칠 후 가 보면 또다시 자라나 있던 것이 생각난다. 내게는 아련한 유년 시절의 추억이며 그때를 떠올리며 손바닥만한 부추밭을 만들고는 아까워서 베지 않았다. 어느 날 여섯 잎으로 된 하얀 꽃이 피었다. (부추꽃/167쪽)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우리말꽃》,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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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익태 케이스 - 국가상징에 대한 한 연구
이해영 지음 / 삼인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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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책읽기 / 인문책시렁 2024.8.16.

인문책시렁 364


《안익태 케이스》

 이해영

 삼인

 2019.1.15.



  어느 한 사람을 훌륭하게 떠받들려고 하면 으레 곪더군요. 이를테면 박정희나 이승만을 추켜세우려고 할 적마다 고름이 물씬 배어나옵니다. 이들은 우두머리로 올라앉아서 사람들을 우려내고 윽박지르고 짓뭉개는 얼뜬 하루를 보냈어요. 우리 살림살이는 누가 이끌었기에 나아지지 않습니다. 우리 살림살이는 바로 스스로 일군 땀방울로 맺습니다. 때리고 쥐어짜고 떠밀면서 억지로 올린 돈값이란, 허울스러운 거품입니다. 이런 거품은 오래지 않아 스러져요.


  사람이 사람답게 살 수 있는 까닭을 다들 쉽게 잊습니다. 풀죽임물도 비닐도 플라스틱도 죽음거름도 없이, 그저 스스로 돋고 시들고 돌고도는 숲이 있기에 모든 사람이 숨을 쉬면서 삶을 짓습니다. 숨을 안 쉴 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잘난놈도 못난이도 숨을 쉬어야 합니다. 우두머리도 허수아비도 숨을 쉬어야 합니다. 서울내기도 시골내기도 숨을 쉬어야 하지요.


  돈을 잔뜩 벌더라도 숨을 못 쉬면 죽습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늘 엉뚱한 곳을 쳐다보면서 길을 잃거나 헤매는 굴레예요. 사람이 사람다운 까닭은, 우리가 먹고살 만한 바탕은, 이 나라가 버티는 밑동은, 바로 들숲바다와 해바람비입니다.


  《안익태 케이스》(이해영, 삼인, 2019)는 ‘안익태 이야기’를 다룹니다. 일본앞잡이나 일본노리개나 일본허수아비로 실컷 노닥거린 뒤에 슬그머니 에스파냐로 달아나서 숨다가, 슬금슬금 기어나와서 마치 예전에 아무 일이 없었다는 듯이 꺼풀을 씌워서 돈벼락을 맞고 싶던 딱하고 안쓰럽고 가엾고 안타까운 아재 한 사람이 어떤 길을 걷는 굴레였는지 차근차근 짚습니다.


  여러모로 알차고 알뜰한 줄거리입니다. 그러나 아주 크게 하나가 엇나갑니다. 일본앞잡이인 ‘에키타이 안’이었다는데, ‘에키타이 안’을 나무라는 글결이 온통 일본말씨입니다. 우리말씨가 아닌 일본말씨로 ‘에키타이 안’을 꾸짖고 타이르는 글이란, 이리 보건 저리 보건 똑같이 안타깝습니다.


  우리는 왜 우리말을 못 쓸까요? 우리는 언제쯤 우리말을 배울 셈일까요? 일본노리개를 타이를 적에 일본말씨를 써야 할까요? 일본허수아비를 다그칠 적에 일본말씨밖에 할 말이 없을까요?


  하나부터 열까지 낱낱이 가다듬거나 추스르기 어렵더라도, 하나씩 차근차근 가다듬어서 바로세울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하루에 한 낱말씩 다듬고, 한 달에 한 말씨씩 바로세우고, 한 해에 한 꾸러미씩 돌아볼 줄 알 때에, ‘에키타이 안’ 같은 부스러기쯤은 손쉽게 털어낼 만합니다. 우리가 스스로 아름답게 일어서면 보푸라기란 저절로 사라집니다.


ㅅㄴㄹ


전시의 만주국 고위 외교관이 안익태를 그저 ‘대성’시키기 위한 순수한 마음으로 자신의 사저로 불러들여 먹이고 재우고 했다면 ‘내선일체’의 참으로 눈물겨운 미담이 아닌가. (43쪽)


에키타이 안은 에하라 고이치에게 그가 기대하는 대일본제국과 나치 독일의 고급 프로파간디스트Propagandist로서 용역을 제공한 것은 분명하고, 그 대가로 여전히 그 전모를 알 수 없는 수많은 편익을 수수했다는 점은 부인하기 어렵다. 그리고 1944년 6월 6일 노르망디 상륙 작전 직전, 그의 스페인 도주는 마찬가지 일제의 유럽 첩보망과의 연관에서 보자면 어쩌면 그 자체로 잘 준비되고 기획된 일일지도 모른다. (55쪽)


지금도 우리는 〈한국 환상곡〉 피날레에서 만주국의 선율을 부르고 또 듣고 있는 셈이다. 그리고 이날 일본어로 불린 에하라의 합창 부분 텍스트는 이렇다. “1. 10년 세월 제국은 무르익었다. 부지런한 땀은 보답 받았네. 민중은 환호한다. 나라는 저 멀리 빛난다. 2. 하나의 생각으로 통일되어 사람들은, 희망에 차 번성한다. 난蘭은 환히 피었고, 새 질서의 첫 열매가. 3. 우리는 일본과 굳건히 연결되었네. 이 신성한 목표 속에 하나의 심장과도 같이, 영원한 평화를 이루기 위해서라네. 독일이여, 또한 이탈리아여, 힘을 냅시다. 4. 영원한 봄날은 이미 가까이 와 있네. 모든 족속 만족해할 그날이. 보라! 저 만주 평원 위에, 향기로운 난 환히 피었다.” (101쪽)


전쟁의 한복판 할우하루 고단한 삶을 견뎌야 했던 혹한 속의 비엔나 시민들이 에키타이 안의 일본어로 된 오족협화의 선율에 진정 위로를 받았을까. 그가 일본 건국 기념일에 〈만주국〉을 통해 비엔나 시민들을 위무하고 전의를 독려하던 그 시간대, 조선의 민중들은 나날이 일제의 탄압과 수탈, 그리고 강제징용으로 내몰리고 있었다고 말한다면 (109쪽)


스스로 만든 〈애국가〉를 ‘매국’의 도구로 재활용하다 그것을 다시 애국이라 주장하면서 그 중간 과정을 마치 없었던 것처럼 우긴다면 그것은 차라리 언어도단이라고 해야 할 게다. (131쪽)


만주국 건국대학 교수 최남선은 해방 후 〈자열서〉라는 어정쩡한 반성문이라도 제출해야 했지만, 안익태에겐 그런 통과의례조차 없었다. 그냥 침묵하면 될 일이었다. 그렇게 에키타이 안은 가만히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안익태로 돌아오기만 하면 되는 일이었다. 아무도 몰랐기 때문이다. (156쪽)


근 반세기가 지나 이제야 공개된 이승만에 대한 안익태의 청탁 리스트를 어떤 ‘예술적’인 의미로 해석할 수 있을 것인가. 분별없는 마구잡이 청탁에 차라리 분별 있게 대응한 건 이승만이었지 않은가. 주미 대사관 자리 청탁에서 시작해 카네기홀 콘서트 주선, 본인이 주인공인 뮤지컬 영화 지원, 한미 문화 협회, 국제 음악제 그리고 미국 내 유명 연주 단체 협조 요청까지 꽤나 긴 이 청탁 리스트에서 그래도 이승만 하야 후 그나마 성사된 건 국제 음악제뿐이 아닌가 싶다. (165쪽)


+


저자 誌

→ 글쓴이

→ 지은이

7


특히 애국가, 혹은 국가國歌는 가장 고도한 음악적 정치 현상이나 행위 중 하나다

→ 그런데 나라사랑노래나 나라노래는 나라를 노래로 몹시 내세운다

15쪽


에키타이 안의 행적에는 여전히 너무나 많은 의문부호가 달려 있다

→ 에키타이 안이 걸은 길은 아직 너무나 많이 물음꽃이 달린다

→ 에키타이 안은 그야말로 너무나 알쏭달쏭한 발자국이다

→ 에키타이 안이 무엇을 했는지는 늘 너무나 궁금하다

54쪽


나치 독일의 고급 프로파간디스트Propagandist로서 용역을 제공한 것은 분명하고

→ 나치 독일에 대단한 떠벌쟁이로서 틀림없이 땀을 바쳤고

→ 나치 독일에 빛나는 알림꾼으로서 뚜렷하게 일을 했고

→ 나치 독일에 높직한 나불꾼으로서 똑똑히 품을 팔았고

55쪽


그 대가로 여전히 그 전모를 알 수 없는 수많은 편익을 수수했다는 점은 부인하기 어렵다

→ 이 값으로 아직도 다 알 수 없는 숱한 돈을 빼먹은 대목은 아니라 하기 어렵다

→ 이 몫으로 오늘도 모두 알 수 없는 온갖 길미를 누렸으니 숨기기 어렵다

55쪽


그의 사저에서 기식하던 중이었다

→ 그이 홑채에서 묻어살았다

→ 그이 혼채에서 얹혀살았다

75쪽


비엔나 시민들이 에키타이 안의 일본어로 된 오족협화의 선율에 진정 위로를 받았을까

→ 비엔나사람이 에키타이 안이 일본말로 지은 한닷겨레 가락에 참말로 마음을 달랬을까

→ 비엔나사람이 에키타이 안이 일본말로 쓴 온닷겨레 노랫가락에 참말 마음을 녹였을까

109쪽


강제징용으로 내몰리고 있었다고 말한다면 그저 다른 나라 얘기라고 할 것인가

→ 종살이에 내몰렸다고 말한다면 그저 다른나라 얘기라고 할 텐가

→ 들볶이며 고달팠다고 말한다면 그저 다른나라 얘기라고 할 셈인가

109쪽


그 중간 과정을 마치 없었던 것처럼 우긴다면 그것은 차라리 언어도단이라고 해야 할 게다

→ 이 사이를 마치 없었다고 우긴다면 차라리 말장난이라고 해야 한다

→ 이 틈새를 마치 없었다고 우긴다면 차라리 바보라고 해야 한다

→ 이 사잇길을 마치 없었다고 우긴다면 아주 웃기지도 않는다

131쪽


친일 부역의 형태와 경로도 처해 있는 구체적인 조건에 의해서 규정되기 마련이다

→ 일본따라지도 모습과 길이 어떠한가에 따라서 다르게 마련이다

→ 일본앞잡이도 몸짓과 걸음에 따라서 다르게 마련이다

132쪽


여기에는 약간의 이설도 있다

→ 좀 딴얘기도 있다

→ 조금 엉뚱한 말도 있다

→ 퍽 엇갈리는 말도 있다

141쪽


안익태에겐 그런 통과의례조차 없었다

→ 안익태한텐 그런 디딤길조차 없었다

→ 안익태한텐 그런 들머리조차 없었다

→ 안익태한텐 그런 너울목조차 없었다

156쪽


에키타이 안과 안익태 간의 ‘해리적解離的’(dissociative) 정체성 간격이 확장될수록 거대 서사, 과잉 서사의 편향은 심해지기 마련이다

→ 에키타이 안과 안익태가 갈라질수록 더 외곬로 부풀리고 덧입히게 마련이다

→ 에키타이 안과 안익태가 엇갈릴수록 자꾸 기울면서 부풀리고 꾸미게 마련이다

173쪽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우리말꽃》,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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못다 핀 꽃 - 일본군 성노예제 피해자 할머니들의 끝나지 않은 미술 수업
이경신 지음 / 휴머니스트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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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책읽기 / 인문책시렁

인문책시렁 359


《못다 핀 꽃》

 이경신

 휴머니스트

 2018.8.13.



  《못다 핀 꽃》(이경신, 휴머니스트, 2018)을 진작 읽고도 자리맡에 한참 놓았습니다. 글님이 이 꾸러미를 여미기까지 한참 삭이고 다독였듯, 이 이야기를 읽은 마음도 곰곰이 짚으면서 되새깁니다.


  일본에서는 ‘군함도’와 ‘사도광산’을 살림빛(세계유산)으로 올리고 싶어서 애썼고, 둘 가운데 ‘사도광산’은 살림빛으로 올린다고 합니다. 그곳으로 끌려가서 시달리다가 죽은 가녀린 넋은 일본도 우리나라도 못 본 척하거나 숨겼습니다. 그런데 두 나라는 돌밭(광산)으로 끌려간 가녀린 넋만 못 본 척하거나 숨기지 않아요. 싸울아비(군인)로 끌려간 숱한 사람을 못 본 척했고 숨겼으며, 때로는 내몰았습니다. 일본 나가사키하고 히로시마에 불벼락(핵폭탄)이 떨어졌을 적에 애꿎게 끌려간 조선사람이 얼마나 죽었는지 아직도 알 길이 없을 뿐 아니라, 두 나라 모두 쉬쉬하거나 조용히 지나갈 뿐입니다.


  어느 하나만 슬그머니 눙치지 않습니다. 모든 곳에서 눙쳐요. 어느 하나만 빠뜨리지 않습니다. 모든 수수한 사람들 살림살이를 등돌립니다.


  《못다 핀 꽃》은 “못다 핀 꽃”으로 오래오래 곪고 아프며 지친 여러 할머니가 스스로 붓을 쥐고서 이녁 삶을 담아내기까지 어떤 하루를 살았는지 들려줍니다. 우리 발자취를 잘 모르고, 할머니 발걸음도 잘 모르지만, 할머니하고 가까이 지내면서 우리 발자취를 되새기려던 이경신 님이 어떻게 다가섰는지 들려주고, 할머니가 어떻게 마음을 틔우면서 새길을 열려고 했는지 보여줍니다.


  ‘꽃할머니’는 ‘지는꽃’이면서 ‘못다 핀 꽃’이고, ‘새롭게 피는 꽃’입니다. 할머니라는 고개는 ‘꽃씨’로 남는 길이요, 이다음에 태어나서 자랄 어린이한테 “푸른숲을 이룰 작은씨”를 물려주는 삶입니다. 꽃할머니는 미움이나 주먹질이나 손가락질을 바라지 않습니다. 꽃할머니는 사랑과 어깨동무와 새길을 바랍니다. 두 나라 우두머리를 비롯해서 벼슬아치·글바치·붓바치 모두 지난날을 뉘우치면서 이제는 살림꽃을 어질면서 참하고 곱게 가꿀 수 있기를 바라요.


  우두머리나 벼슬아치만 꽃할머니를 모르쇠하지 않았습니다. 우리 모두 꽃할머니를 모르쇠했습니다. 옆나라만 꽃할머니한테 등돌리지 않았습니다. 우리부터 꽃할머니한테 등돌린 나날이 깁니다. 무엇보다도 “총칼을 거머쥔 싸울아비”가 있는 모든 나라에서는 순이가 노리개로 구르고, 돌이는 꼭두각시 노릇에 매입니다. 어떤 총칼로도 어깨동무를 못 해요. 살림을 짓는 호미 한 자루에, 살림을 담는 붓 한 자루를 왼손과 오른손에 하나씩 쥘 적에 비로소 살림을 열면서 손을 맞잡게 마련입니다.


  돈벌이(경제성장)에 바쁜 우두머리·벼슬아치뿐 아니라, 우리 스스로 그동안 어떤 짓을 했고, 오늘 어떤 굴레를 들쓰는지 돌아볼 노릇입니다. 참사랑을 누가 어떻게 잊었는지 곱씹을 일입니다. 우리가 먼저 품고 풀어야, 이웃하고도 품고 풀 수 있어요. 그나저나 《못다 핀 꽃》을 읽노라면, ‘십분이해’ 같은 일본말씨가 자주 보이고, ‘개선장군’ 같은 싸움말씨도 자꾸 나옵니다. 글결을 좀 가다듬을 수는 없을까요? 총칼로 뭇나라를 윽박지르고 짓밟은 ‘싸움나라 말씨(군국주의 일본말씨)’를 그대로 둔 채 꽃할머니 이야기를 적으려고 한다면, 어쩐지 맞갖지 않구나 싶습니다.


ㅅㄴㄹ


“할머니, 이 두 처녀 이야기 좀 해주세요. 둘이 친구예요?” “아니, 둘 다 나지.” “형님, 그런데 왜 뒷모습이요?” 강덕경 할머니가 한마디 건넸다. “그냥 멀리 떠났으니까 그렇고, 집에 아직 안 들어갔으니까 이렇게 그렸지.” (127쪽)


그림이라고는 하나 일본 병사가 끌려간 처녀들을 발가벗기거나 욕보이는 장면을 다시 보는 것만으로도 할머니들은 또다시 상처를 받았던 것이다. 급기야 전시에 참여했던 화가가 할머니들을 찾아와 사과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지금껏 우리가 얼마나 고생하고 살아왔는데, 우리 할머니들을 어떻게 또다시 그렇게 욕보일 수 있나?” 할머니들은 한목소리를 냈다. “할머니들을 욕보이려고 한 것이 절대 아니에요.” “그런데 왜 그래요. 왜 우리를 발가벗기고, 그게 욕보이는 거지 뭐예요?” (133쪽)


“우리를 도와주려고 그랬다는 것은 알지. 그래도 좀 심하게 한 것은 아직도 약간 창피해.” “어떻게 표현한 부분이 마음에 들지 않으세요?” “화가들의 그림이 진짜처럼 너무 독해 보여.” …… “그럼 할머니라면 그 문제를 어떻게 그리고 싶으세요?” “내가?” (135쪽)


할머니는 입가에 미소를 지으며 금세 다시 밝은 얼굴이 되었다. “미술 선생, 그럼 이 그림의 제목을 ‘짓밟힌 꽃’이나 ‘못다 핀 꽃’으로 하면 어때?” “‘짓밟힌 꽃’은 다시 못 피지만 ‘못다 핀 꽃’은 다시 필 희망이 있으니 ‘못다 핀 꽃’이 어떨까요?” (197쪽)


+


미술 수업은 일상의 소소한 즐거움으로 자리잡아 갔다

→ 그림마당은 하루하루 즐겁게 자리잡아 갔다

→ 그림자리는 어느새 조촐히 자리잡아 갔다

4쪽


강덕경 할머니께 깊은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 강덕경 할머니가 무척 고맙다

→ 강덕경 할머니 참으로 고맙습니다

7쪽


내가 할머니들을 처음 만난 것은

→ 내가 할머니를 처음 만난 때는

11쪽


미술용품을 받아든 할머니들은 처음 갖게 된 물건에 대한 기쁨이나 호기심보다는

→ 붓종이를 받아든 할머니는 처음 받아서 기쁘거나 궁금하기보다는

→ 그림살림을 받아든 할머니는 처음 받아 기쁘거나 궁금하기보다는

26쪽


저마다 개선장군처럼 꽃을 한 아름씩 들고

→ 저마다 의젓하게 꽃을 한 아름씩 들고

→ 저마다 씩씩하게 꽃을 한 아름씩 들고

→ 저마다 기운차게 꽃을 한 아름씩 들고

54쪽


해일은 바닷속 어두운 심연을 헤집어 모든 것을 수면 위로 끌어올려놓았다

→ 너울은 깊고 어두운 바다를 헤집어 모두 물낯으로 끌어올렸다

→ 벼락놀은 어둡고 깊은 바다를 헤집어 모두 물낯으로 올려놓았다

64쪽


자신들의 박복함 탓으로 돌리곤 했다

→ 스스로 변변찮았다고 탓하곤 했다

→ 스스로 볼품없었다고 탓하곤 했다

→ 스스로 서푼이었다고 탓하곤 했다

84쪽


그 마음이 십분 이해가 되었기에

→ 이 마음을 잘 알았기에

→ 이 마음을 헤아렸기에

→ 이 마음을 느꼈기에

93쪽


사람은 누구나 어머니를 통한 생물학적 탄생 이후 고향이라는 지리적 바탕 위에서 성장한다

→ 사람은 누구나 어머니가 낳고 보금자리에서 자란다

→ 사람은 누구나 어머니한테서 나고 둥지에서 자란다

100쪽


사람들에게 온몸을 바치는 닭의 희생에 측은지심을 느끼는 듯했다

→ 사람한테 온몸을 바치는 닭을 딱하게 느끼는 듯했다

→ 사람한테 온몸을 바치는 닭을 가엾게 느끼는 듯했다

110쪽


시간과 비용이 들고 할머니들이 다루기도 쉽지 않아 약식으로 진행하기로 한 것이다

→ 품과 돈이 들고 할머니가 다루기도 쉽지 않아 가볍게 하기로 했다

→ 짬과 돈이 들고 할머니가 다루기도 쉽지 않아 단출히 하기로 했다

177쪽


누누이 말씀드려도 소귀에 경 읽기였다

→ 거듭 여쭈어도 소귀에 글읽기였다

→ 다시금 말해도 소귀에 읽기였다

234쪽


50년이 흘렀는데도 잘못된 제국주의적 사고를 하는 사람들이 아직도 있다는 사실을 새삼 확인할 수 있었다

→ 쉰 해가 흘러도 마구잡이로 잘못 바라보는 사람이 아직도 있는 줄 새삼 느낀다

→ 쉰 해가 흘러도 만무방으로 잘못 보는 사람이 아직도 있는 줄 새삼 돌아본다

→ 쉰 해가 흘러도 마구잡이로 잘못 바라보는 사람이 아직도 있는 줄 새삼 느꼈다

263쪽


69세를 일기로 생을 마쳤다

→ 69살로 삶을 마쳤다

→ 69고개로 마쳤다

→ 69나이로 돌아가셨다

279쪽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우리말꽃》,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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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엄마야 - 발달장애인 자녀를 둔 엄마들의 이야기 대한민국을 생각한다 27
인권기록활동네트워크 ‘소리’ / 오월의봄 / 201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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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책읽기 / 인문책시렁 2024.5.26.

인문책시렁 357


《그래, 엄마야》

 인권기록활동네트워크 소리

 오월의봄

 2016.4.22.



  《그래, 엄마야》(인권기록활동네트워크 소리, 오월의봄, 2016)를 읽는 내내 ‘장애·비장애’라는 이름을 곱씹습니다. 아니, 두 이름은 예전부터 늘 곱씹었습니다. 어린이한테 그저 ‘어린이’라 하고, 어른한테 그냥 ‘어른’이라 하듯, 서로 바라보는 이름을 이제는 다시 살펴서 처음부터 새롭게 붙일 일이라고 느낍니다.


  이쪽을 ‘장애’로 볼 까닭이 없습니다. 저쪽을 ‘비장애’로 볼 까닭이 없습니다. 이쪽이 ‘여성’이라면 저쪽이 ‘비여성’이지 않습니다. 이쪽이 ‘남성’이라면 저쪽이 ‘비남성’이지 않습니다. 한쪽을 ‘장애’라는 이름을 자꾸 붙이면서 가른다면, 또다른 곳에서는 ‘비장애’라는 이름을 자꾸 붙이면서 스스로 가르는 굴레라고 느낍니다.


  ‘발달장애’나 ‘언어장애’나 ‘시각장애’나 ‘청각장애’나 ‘지체장애’ 같은 이름은 오히려 아이도 어른도 굴레에 가둡니다. 수수하게 ‘어리다’고 할 일이라고 느낍니다. ‘더듬는다’고, ‘눈으로 보지 않는다’고, ‘귀로 듣지 않는다’고, ‘몸을 쓰기 힘들다’고 말하는 길부터 다시 살필 노릇이라고 느낍니다.


  《그래, 엄마야》는 “나이가 들어도 어린” 아이를 돌보는 엄마들 목소리를 귀담아듣는데, 여러 엄마가 들려준 말처럼 ‘아빠도 아이 곁에 있고 싶’습니다. 그런데 엄마아빠 둘이 아이 곁에 있으면 그 집안은 돈이 없습니다. 한 사람은 집밖에 나가야 하고, 더구나 ‘집밖에서 더 오래 일하면서 돈도 더 벌어’야 합니다. “나이가 들어도 어린” 아이를 돌보는 집은 돈이 더 들 뿐 아니라, 두 엄마아빠가 늙은 다음에도 아이가 스스로 돈을 못 벌리라 여기기 때문에, 그야말로 “있는 힘껏 돈을 벌어서 모아 놓아야 한다는 짐과 굴레”를 뒤집어씁니다.


  책을 엮은 분들은 이런 대목을 알면서도 지나쳤는지 너무 가볍게 스쳤는지 모르겠습니다만, ‘아빠(남성)가 아이한테 너무 등돌린다’고 여기는 쪽으로 자꾸 몰아가려 한다고 느꼈습니다.


  책에도 나오는 대목인데, ‘배움(교육)’은 오히려 배움터(학교)가 아닌 집에서 함께 펴고 누리고 나누게 마련입니다. 아이들한테 ‘졸업장’이 있어야 할 까닭이 없어요. 졸업장은 잔뜩 땄지만, 집안일을 할 줄 모르는 젊은이가 수두룩하고, 아기를 어떻게 낳아서 돌보아야 어버이다운지 모르는 사람도 많습니다. “나이가 들어도 어린” 아이들이 나중에 아기를 배면 어떡하나 걱정할 일이 아닌, 이 아이들한테 ‘아기’란 무엇이고 ‘어른·어버이’는 어떤 자리이며, ‘사랑’과 ‘살림’과 ‘삶’이 무엇인지 차분히 짚고 가르치고 새롭게 배우면서, 함께 보금자리를 도란도란 일구는 길을 바라볼 수 있어야지 싶어요. 그리고 이런 눈길과 이야기를 더 넓게 펴면서, 이런 이야기를 엄마아빠 모두 듣고 돌아볼 노릇이어야지 싶습니다.


ㅅㄴㄹ


실없지만 이런 질문을 해봅니다. 동물세계에도 발달장애가 있을까? (14쪽)


발달장애인이 있는 가정은 가족 간 불화를 겪거나 아예 해체되는 일도 많습니다. 누군가는 장애 아이에게 매달려 있어야 하는데 대개는 엄마가 그 역할을 맡습니다. (23쪽)


아이를 어디로 보낼 것인가 하는 문제는 결국 어떻게 남겨놓을 것인가 하는 문제와 닿아 있습니다. (25쪽)


내가 오롯이 짊어지는 이 짐을 사회가 나눠 들었으면 좋겠습니다. (26쪽)


그이가 자책하며 힘겨운 싸움을 하는 동안 ‘네 탓’이 아니라고 편이 되어준 사람이 있었다면 어땠을까 … 자녀의 장애를 마주한 엄마들이 자책의 늪에서 조금은 헤어날 수 있도록 ‘완벽한 모성’은 실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문화를 우리가 함께 만들어가면 어떨까. (52쪽)


장애아를 둔 부부의 이야기는 비장애아를 키우는 부부와 크게 다르지 않다. 아이를 돌보는 일을 평등하게 나누기보다 온전히 아내에게 맡긴 탓에 부부는 싸운다. (103쪽)


남편을 배려한다고 그녀 혼자 다했는데, 그게 아빠가 설 자리를 뺏은 거 아닐까 싶었다. 남편도 내가 손 내밀어주기를 기다린 게 아니었을까? (104쪽)


승윤이한테는 일상이 곧 교육이에요. (124쪽)


전화 끊고 우리 남편을 봤지. 이 사람도 많이 상하고 늙었더라. 남편이 올해로 대리운전 딱 10년째야. 낮밤 바꾼 지 10년. 내년부턴 당신도 당신 인생을 살라고 했더니 남편이 자기는 괜찮대. 다만 내가 요즘 너무 내 일에만 빠져 있는 것 같다고. 뭘 하든 애와 가정이 먼저지 않겠냐고 하는데, 한 방 먹었지. 남편도 너무 지쳤나 봐. (155쪽)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우리말꽃》,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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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군대를 거부한다 -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자 53인의 소견서
전쟁없는세상 엮음 / 포도밭출판사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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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책읽기 / 인문책시렁 2024.5.23.

인문책시렁 356


《우리는 군대를 거부한다》

 전쟁없는세상 엮음

 포도밭

 2014.5.15.



  《우리는 군대를 거부한다》(전쟁없는세상 엮음, 포도밭, 2014)는 싸울아비로 서지 않겠다는 뜻을 밝힌 여러 목소리를 고루 담아내는 터라 뜻깊습니다. 다만, ‘말’이 너무 어렵습니다. 다들 ‘말’이 아닌 ‘선언’을 하느라, 대단히 딱딱합니다. 왜 이렇게 딱딱하게 말하는가 하고 돌아보니, “나는 총을 안 쥡니다”라 말하지 않고서 “군대거부선언”을 하는 분들은 하나같이 ‘대학생’이거나 ‘대졸자’이더군요. 푸른배움터만 마친 채 “총을 안 쥘래” 하고 말하는 사람은 아주 드물거나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어깨동무를 헤아리거나 바라는 일도 으레 ‘대학교 울타리’에서 합니다. 푸른배움터만 마쳤거나, 모든 배움터를 안 다닌 사람하고 손을 맞잡는 ‘전쟁없는세상’이라고는 느끼기 어렵습니다.


  열린배움터로 나아가는 푸름이가 많기도 하지만, 푸른배움터까지만 마치고서 일자리를 찾는 푸름이도 매우 많습니다. 모르는 사람은 모르는데, 푸른배움터만 마치고서 일자리를 찾을 적에는 곧장 싸움터에 끌려갑니다. ‘대학교 입학증서’는 싸움터에 늦게 들어갈 수 있는 또다른 힘(권력)입니다. 때로는 네 해나 여덟 해 사이에 “싸움터에 안 들어가도 될 실마리”를 찾아볼 틈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군대를 거부한다》는 2001년부터 2014년 사이에 바깥에 드러낸 목소리를 그러모읍니다. 이 목소리를 날것으로 담아도 뜻있되, 어린이와 푸름이도 읽을 만하게 새로 쓰거나 손질한다면 더 뜻있으리라 봅니다. 모든 어려운 말을 털어내고서 “왜 안 싸우려 하는가”를 수수하고 쉽게 다시 밝힌다면 훨씬 나으리라 봅니다.


  오늘날 우리가 ‘어렵게’ 꼬는 모든 말은 일본말씨이면서 ‘싸움말씨(군대용어)’입니다. ‘일본말씨 + 싸움말씨’는 ‘인문용어 + 전문용어’이기까지 합니다. 그러니까, “안 싸우겠다는 말”조차 ‘일본 싸움말씨’로 외친 셈입니다. 우리나라를 비롯해서 모든 곳에서 “싸움이 없는 길”을 바라고, “어깨동무하는 푸른 살림”을 바란다면, 이제는 ‘푸른말’로 ‘푸른뜻’을 밝히면서 ‘푸른길’을 속삭일 노릇이라고 봅니다.


  그리고 “싸움터에서 시달린 사람들” 목소리를 한켠에 나란히 담을 수 있을 테지요. 목소리를 낼 짬이 없이 싸움터에서 젊은날을 보내야 한 사람이 수두룩합니다. 싸움터란 어떤 곳인지 민낯을 고스란히 들여다보고 겪고 부대껴야 한 사람들 목소리가 나란히 있을 적에 “왜 안 싸우려 하는가”라는 뜻을 제대로 들려줄 만하리라 봅니다.


ㅅㄴㄹ


수십 년 동안 1만 명이 넘는 병역거부자가 계속해서 감옥에 갔지만, 이 문제가 한국사회에서 공론화되기 시작한 것은 2000년이 지나서부터였습니다. (9쪽)


매일같이 불특정 다수를 대상화하여 총과 칼을 휘둘러야 하는 행위는 그 목적과 방법, 모든 면에서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15쪽)


저는 제 양심상의 이유로 군사훈련을 거부하는 것이지, 국방의 의무와 군대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18쪽)


살인은 모두가 범죄라고 말하지만, 전쟁을 범죄로 생각하는 사람은 소수입니다. (63쪽)


누군가는 먼저 총을 내려놓아야 합니다. (67쪽)


‘군대’와 관계 맺기 시작하면서 누군가 ‘남자’나 ‘여자’로 분류되는 순간들이 거북합니다. ‘군대’를 가고 안 가고의 문제는 그 ‘누군가’가 ‘여자’는 아니거나 ‘남자’다울 수 있을 때 가능했습니다. (112쪽)


군대는 바로 국가가 권력을 유지하기 위한 하나의 도구에 불과합니다. 전쟁이라는 것으로 약자를 비참히 짓밟고 그것으로 잡은 권력을 계속해서 지켜나가기 위한 도구, 그것을 위해 수많은 남성들을 권위주의적이며 전체주의적 사고를 주입해 양성하고 있는 것이 바로 지금의 군대 문화입니다. (132쪽)


모든 이들이 너처럼 총을 들지 않는다면, 누가 나라를 지키느냐고 묻곤 한다. 그럴 때마다, 모든 이들이 총을 들지 않으면 전쟁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답한다. (256쪽)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우리말꽃》,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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