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운몽 책세상문고 세계문학 6
김만중 지음, 설성경 옮김 / 책세상 / 200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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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숲노래 책읽기 / 인문책시렁 2023.10.27.

인문책시렁 242


《구운몽》

 김만중

 설성경 옮김

 책세상

 2003.2.3.첫/2006.1.25.고침



  《구운몽》(김만중/설성경 옮김, 책세상, 2003)을 어린이나 푸름이한테 읽힐 만하려나 싶어 오랜만에 다시 읽었습니다. 그런데 1687년에 나온 이 꾸러미를 제대로 읽기가 어렵겠구나 싶더군요. 오늘 우리가 한글판으로 만나는 《구운몽》은 훈민정음판을 요샛말로 다듬은 판일까요, 한문판을 옮긴 판일까요? ‘요샛말’이란 또 무엇일까요? 지난날 나리(양반)가 익히 쓰던 한문 말씨를 옛글에도 그대로 옮겨야 하나요? 아니면, 지난날 한문을 모르고 ‘우리말’만 쓰던 수수한 사람들 말씨를 되살려서 옮겨야 하나요?


  어느 판으로 되읽을까 하고 한참 헤아리다가 ‘설성경 옮김판’으로 골랐는데, 썩 우리말스럽지 않습니다. 줄거리를 떠나 말결부터 어린이나 푸름이한테 못 읽히겠구나 싶어요.


  이야기책 《구운몽》에 흐르는 밑뜻하고, 어제오늘을 가로지르는 순이살림(여성생활)을 가만히 생각해 봅니다. 아이를 낳아 살림을 일군 수수한 어머니는 ‘어려운 말’도 ‘잘난 말’도 ‘먹물스러운 말(학문용어)’도 안 썼습니다. 수수한 어머니 곁에서 아이를 나란히 사랑으로 돌본 수수한 아버지도 ‘딱딱한 말’이나 ‘양반님 한문을 흉내낸 말’을 안 썼어요. ‘것’을 아무 데나 쓰지 않는 입말이요, ‘-의’도 함부로 끼워넣지 않는 입말입니다.


  한문을 한글로 옮기든, 이웃말을 한글로 옮기든, 이런 일을 하는 분들은 하나같이 ‘많이 배웠다는 먹물’이되, ‘많이 배웠다’기보다 ‘책만 많이 읽은’ 사람들입니다. 집살림을 오래오래 돌보았거나 아이를 곁에서 보살핀 일을 꾸준히 해온 사람들이 옮기기(번역)를 하지는 않더군요.


  꿈은 그저 꿈일 뿐일 수 있습니다만, 우리는 누구나 스스로 꿈꾸는 대로 이루고 누리고 마주합니다. 헛꿈을 그리면 헛꿈을 이루고 누리고 마주하지요. 사랑꿈을 그리면 사랑꿈을 이루고 누리고 마주해요. 《구운몽》은 바로 이러한 ‘꿈’을 스스로 마음에 품고 그리고 풀어내어 누리는 삶을 차근차근 보여주었다고 느낍니다. “아홉구름꿈”은 덧없기만 하지 않습니다. 덧없는 길을 그려서 누려 보았기에, 이 삶에서 그릴 꿈을 제대로 바라볼 만해요. 바람을 타는 구름이란 무엇인지, 구름이 꽃바람으로 흐르는 삶이란 무엇인지, 이 땅을 두 발로 구르면서 나아가는 길이란 무엇인지, 마음을 다스리는 생각씨앗 한 톨로 심고 가꾸고 키우게 마련입니다.


ㅅㄴㄹ


“그러나 용궁에서 술을 먹은 것은 주인의 강권을 피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고, 석교에서 선녀와 수작한 것은 길을 비켜 달라고 한 것뿐이고, 제 방에서 망상을 하기는 했으나 즉시 뉘우치고 자책했습니다. 이밖에 다른 죄는 없습니다.” (15쪽)


“세상에 귀신을 미워하는 자는 우매하고 겁 많은 사람이오. 사람이 죽으면 귀신이 되고 귀신이 변하면 사람이 되는 것인데, 귀신을 두려워하는 사람이 있다면 못난 사람이고, 사람을 피하는 귀신이 있다면 신령하지 못한 귀신일 것이오.” (84쪽)


“신하가 충성을 다함은 직품이 높아지는 것과 상관이 없고, 싸움에 이기고 패함은 군사가 많고 적음에 있지 않으니, 신은 그저 한 무리의 군사를 얻어 조정의 위엄에 의지하여 나아가 도적과 죽을 각오로 힘써 싸워 천은(天恩)의 만분의 일이라도 갚고 싶습니다.” (98쪽)


“부처께서는 제자 두 사람의 심중을 굽어살피시어 세세생생 다시 여자로 태어나지 않도록 전생의 죄를 소멸하고 후세의 복을 주셔서 좋은 땅에 환생하여 기쁨을 길이 누리게 하소서.” (153쪽)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선생님, 우리말이 뭐예요?》,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밑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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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풍경 - 식물의 사색과 명상으로 만난 마음 공부
김정묘 지음 / 상상+모색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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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책읽기 / 인문책시렁 2023.10.27.

인문책시렁 235


《마음 풍경》

 김정묘

 상상+모색

 2021.10.13.



  《마음 풍경》(김정묘, 상상+모색, 2021)을 읽으면서 곰곰이 생각했습니다. 글은, 말을 담는 그릇이고, 말은 마음을 담는 그릇이기에, 글을 쓸 적에는 말을 담으려 하면 되고, 말을 할 적에는 마음을 담으려 하면 되어요. 그런데 우리는 아직 ‘글에 말을 담기’나 ‘말에 마음을 담기’가 매우 서툴어요.


  말을 하는 그대로 글을 쓰면 될 뿐이지만, 막상 말하듯이 글을 쓰는 사람은 손에 꼽을 만큼 드물어요. 글을 엄청나게 꾸미려고 합니다. 이러다가 어느새 말까지 꾸미려 들더군요.


  글은 잘 써야 할 까닭이 없습니다. 말은 잘 해야 할 까닭이 없습니다. 마음을 밝히면 되고, 마음을 쓰면 됩니다. 마음을 써야 글을 착하고 참하며 곱게 쓰게 마련입니다.


  “잘 써야 한다”는 마음이란, 얼굴이 잘생기고 옷도 잘 차려입고 쇳덩이(자동차)도 번듯하게 크고 비싼것으로 갖춰야 한다는 마음으로 기웁니다. 사람을 속마음 아닌 겉모습으로 재거나 따지거나 가리는 굴레에 스스로 갇힙니다.


  키가 크거나 몸매가 늘씬하거나 돈이 많거나 이름이 높아야 훌륭할까요? 잘생긴 사람이어야 엄마아빠이거나 아이일까요? 말을 말답게 하거나 글을 글답게 쓰려면, 먼저 우리 마음자리에서 들보부터 치울 노릇입니다. 들보는 집을 지을 적에만 쓰고, 눈이나 글에서는 치워야지요.


  한자말 ‘풍경’은 안 나쁩니다만, 글을 쓰려는 분들은 이 한자말을, 이 일본스런 한자말을 도무지 못 놓습니다. 일본은 이웃나라일 뿐입니다. 나쁜나라도 좋은나라도 아닙니다. 다만, ‘풍경’을 비롯한 숱한 한자말은 이웃나라 아닌 총칼나라 일본이 우리나라로 쳐들어와서 사람들을 마구잡이로 죽이고 밟고 괴롭히고 등골을 뽑으면서 퍼뜨린 말씨입니다.


  그들은 왜 총칼로 억누르면서 ‘어떤 말씨’를 심으려 했을까요? 우리는 마음만 밝힐 수 없습니다. 우리는 얼굴만 꾸밀 수 없습니다. 사랑을 품고 살림을 짓고 생각을 할 때라야만 비로소 마음을 밝게 가꾸면서 말빛이 싱그러이 살아납니다.


  예수님이나 부처님이 으리으리한 쇳덩이(자동차)를 몰거나 까만 하늬옷(양복)을 차려입나요? 예수님이나 부처님 돌(동상)을 세울 적에 금을 입히면 빛날까요? 돈이 남아돈다고 여기는 이들이 이웃하고 나누지 않고서 뽐내거나 자랑하거나 우쭐거리는 바보짓을 왜 우리가 흉내내거나 따라해야 하는지 돌아볼 노릇입니다.


  으리으리한 쇳덩이나 하늬옷만 바보짓이지 않아요. 섣부른 일본 한자말이나 영어를 아무렇게나 글이나 말에 섞는 버릇도 바보짓입니다. 마음을 다스리려면, 마음을 어떤 소리에 얹어서 담아내느냐를 살필 노릇입니다. 아무 말에나 마음을 담지 않아요. 숲을 푸르게 이루는 풀꽃나무한테서 배우고 익힌 수수한 숲말에 마음을 담기를 바라요. 아이를 사랑으로 낳아서 돌본 수수한 어버이가 아이 곁에서 조곤조곤 자장노래를 부르면서 물려주는 쉬운 살림말에 마음을 담는다면, 누구나 글님이요 말님이며 이야기님입니다.


ㅅㄴㄹ


언제부터인가 새소리처럼 귀가 반짝 뜨이며, 봄비 소리가 꽃소식보다 반갑게 들린다. 옛사람을 흉내내며 한밤중에 깨어 속삭이듯 지나가는 봄비 발걸음 소리를 듣는다. (24쪽)


‘꽃이란, 짓는 숨결을 나타내는 커다란 이름’이라고 《우리말 동시 사전》을 펴낸 최종규 작가는 정의한다. ‘짓는 숨결’이라는 말이 낯설다. 하지만 꽃처럼 아름답다. (85쪽)


강아지풀이나 바지랭이처럼 잡초가 되어 눈에 띄는 족족 화단에서 뽑혀 나가는 잡초들이 분류상 대부분 ‘볏과’라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도 잘 믿기지 않아 식물도감을 끼고 앉아 풀이름을 확인해 본 적도 있었다. (101쪽)


나물 캐던 처녀 시절을 보낸 아줌마들은 산책로든 관광지든 쑥이나 취 같은 산나물 있는 곳을 그냥 지나치지 못한다. (187쪽)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선생님, 우리말이 뭐예요?》,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밑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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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선화가 필 무렵 - 윤정모 역사동화 미네르바의 올빼미 28
윤정모 지음,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 그림 / 푸른나무 / 200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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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책읽기 / 인문책시렁 2023.10.6.

인문책시렁 296


《봉선화가 필 무렵》

 윤정모

 푸른나무

 2008.9.1.



  《봉선화가 필 무렵》(윤정모, 푸른나무, 2008)은 꽃이 필 무렵에 꺾여버린 꽃이 어떻게 흙으로 돌아가서 다시 싹을 틔우고 나무로 자라서 늦꽃으로 피어나는가 하는 줄거리를 들려줍니다. 꽃을 지켜보는 분은 다 알 텐데, 이른꽃은 맑고 늦꽃은 짙습니다. 일찍 피는 꽃은 밝고, 늦게 피는 꽃은 환합니다.


  어린꽃도 할매꽃도 모두 꽃입니다. 아기꽃도 할배꽃도 나란히 꽃이에요. 꽃은 모두 꽃일 뿐, 꽃이 아닌 꽃이 없습니다.


  먼먼 옛날부터, 그러니까 나라가 서서 임금님이 있고 나리가 있고 벼슬아치가 있고 글바치가 있던 무렵에, 수수하게 살림을 지으면서 글을 모르더라도 말로 모든 살림을 가르치고 물려주면서 아이를 사랑하던 사람들을 ‘들풀’이나 ‘들꽃’으로 가리키곤 했습니다.


  들풀은 들풀이고, 들꽃은 들꽃입니다. 들풀하고 들꽃은 ‘민(民)’도 ‘백성’도 ‘민초·민중’도 ‘인민·시민·국민’도 아닙니다. ‘임금·나리·벼슬아치·글바치’는 예나 이제나 ‘들풀·들꽃’이라는 이름을 좀처럼 안 쓰려 하거나 꺼리거나 내칩니다. 왜 그러겠어요? 그들은 풀도 꽃도 아니고 나무도 아니거든요. 그들은 풀꽃나무가 아니라서 들숲바다를 무서워하거나 싫어하거나 미워해서 억누르거나 밟으려고만 하거든요.


  어느 풀도 다른 풀을 미워하거나 밟지 않습니다. 어느 나무도 다른 나무를 싫어하거나 괴롭히지 않습니다. 들숲을 이룬 터전에서 모든 풀꽃나무는 푸르게 어우러져 우거집니다. 이리하여 들숲빛이 바다로 퍼지고, 바다는 바닷방울을 하늘로 띄워서 구름을 일으키고는 빗방울로 온누리를 적셔요.


  《봉선화가 필 무렵》은 조그맣고 수수한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임금과 나리가 들풀을 얼마나 어떻게 짓밟아 왔는가를 들려줍니다. 벼슬아치하고 글바치가 들꽃을 얼마나 등지면서 모르는 척했는지를 들려줍니다. 그렇다고 그들 ‘웃분’을 나무란들 이 나라가 바뀔 턱은 없습니다. 그들 ‘웃분’도 아기를 낳을 텐데, 아기를 낳았으면 젖어미를 두거나 돌봄이를 부리지 말고, 그들 스스로 아기한테 젖을 물리고 집안일을 하고 말을 물려주고 살림을 지어서 보금자리를 숲으로 바꾸면 될 뿐입니다.


  사랑을 본 적도 없기에 사랑이 아닌 총칼을 앞세웁니다. 사랑을 본 적이 없더라도 스스로 사랑을 배우고 맞이해서 바꾸려 하지 않기에, 사랑이 아닌 허수아비에 끄나풀에 종이 되어 뒹굽니다.


  꽃이 필 무렵 어디에서 어떻게 지내시겠습니까? 철마다 다 다른 풀꽃나무가 다 다르게 꽃을 피우는데 하나도 안 보는 서울(도시)에 스스로 갇혀서 앓는지요? 언제나 다르게 눈부신 들꽃을 품으면서 오늘 하루를 노래하겠습니까?


ㅅㄴㄹ


경아는 무척 실망스러웠다. 자기가 싫어하는 사람은 나쁜 사람이어야 하는데, 어쩌면 할머니가 그렇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까닭 없이 배신감마저 들었다. (23쪽)


“그대들, 정말 잘 왔다. 오는 동안 고생이 많았겠지만 황국신민은 그런 것을 고생으로 여기지 않는다. 그렇다! 그대들은 국가를 위해 몸 바치러 온 정신대다. 모쪼록 병사들을 잘 위안해 주기를 바란다.” (89쪽)


“제군들은 내일 아침에 출격한다. 여기서 몸을 푼 뒤 저녁 여섯 시까지 부대로 돌아오라. 태어나서 처음으로 보는 진수성찬이 제군들을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이상!” (106쪽)


주옥은 순이의 눈을 바라보며 말했다. “순이야, 네가 산 까닭은 네 목숨이 소중해서이지, 저런 쓰레기 같은 군표 때문이 아니야.” (126쪽)


순이는 군표에 불을 붙였다. 힘든 피란길에도 한사코 들고 왔던 군표가 그렇게 사라져 갔다. (160쪽)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선생님, 우리말이 뭐예요?》,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밑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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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에 반대한다 - 우리시대에 고하는 하워드 진의 반전 메시지
하워드 진 지음, 유강은 옮김 / 이후 / 200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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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인문책 2023.8.21.

인문책시렁 313


《전쟁에 반대한다》

 하워드 진

 유강은 옮김

 이후

 2003.2.19.



  《전쟁에 반대한다》(하워드 진/유강은 옮김, 이후, 2003)를 스무 해 앞서 읽을 적에 알쏭했던 대목을 이제서야 환하게 봅니다. 하워드 진 님이 쓴 꾸러미는 “on war”였더군요. 하워드 진 님은 “against war”가 아닌 “on war”를 보고, 짚고, 다루고, 밝히고, 이야기했어요. 무엇이 싸움이고, 싸울아비이며, 싸움판이고, 싸움돈에다가, 싸움박질인가를 하나하나 벗겨내면서 속낯을 바라보자고 이야기했습니다.


  처음부터 목소리로만 “전쟁 반대”를 하지 않았고, 하지 않을 일이자, 할 까닭이 없어요. 싸움터 한복판에 싸울아비로 뛰어들어서 ‘숱한 독일놈을 잿더미로 죽이는 짓’을 함께하고 나서, “내가 뭘 했는가?”를 돌아보았고, “몹쓸 독일놈을 짓밟았으니 평화인가?” 하고 되물었습니다.


  우리가 사는 이 별이나 나라나 마을이 참답게 ‘민주·평등·평화·통일’이라고 한다면, ‘나랑 뜻이나 길이나 말이나 마음이 다른 저쪽’을 ‘저놈(적·적군)’이라 해서는 안 될 노릇입니다. 저놈을 모조리 몰아내거나 죽이거나 없애면 ‘민주·평등·평화·통일’인가요? 하워드 진 님도, 리영희 님도 ‘두 날개(어깨동무)’를 이야기했습니다. ‘외날개(왼날개)’로만 가서는 안 된다고 힘껏 이야기했습니다. 우리는 왼날개인 외날개여서도, 오른날개인 옳은날개여서도 안 됩니다. ‘두 날개’일 노릇입니다.


  두 다리이기에 걷습니다. 다리 하나가 없으면 나무다리를 대고서 걷습니다. ‘손잡기(악수)’란 너랑 내가 손을 하나씩 나누어 ‘둘이 하나로 함께하는 어깨동무’입니다. 그런데 나라꼴을 보면, 이쪽하고 저쪽은 서로 밉놈이나 죽일놈으로 여기면서 막말을 쏟아붓고 화살을 쏘아댑니다.


  순이랑 돌이가 서로 싸워야 할 사이일까요? 순이돌이는 먼먼 옛날부터 ‘서로 다르기에 서로 돌보면서 어깨동무하는 보금자리를 일구는 사랑을 나누는 사이’이지 않나요? 순이를 괴롭힌 이는 돌이가 아닌 ‘힘꾼(권력자)’하고 ‘힘꾼 밑에 달라붙은 허수아비’입니다. 그래서 순이를 괴롭힌 돌이뿐 아니라, 순이를 괴롭힌 순이가 있어요. 겉모습으로만 순이나 돌이를 본다면 허울에 갇혀 날마다 툭탁거리면서 서로 미워하고 괴롭히는 쳇바퀴로 허덕여요.


  그렇다면 누가 싸움을 일으키고, 우리가 서로 미워하도록 부추길까요? 바로 힘꾼(권력자)입니다. 이쪽 무리 우두머리이든, 저쪽 무리 우두머리이든 서로 같아요. 누가 우두머리로 서든 그들은 늘 힘꾼이기에 왼쪽도 오른쪽도 우리를 부추겨서 싸움을 붙이고서 뒤에서 팔짱을 끼며 구경합니다. 순이돌이는 언제나 어깨동무하는 사랑을 가꾸는 사이인데, 그들 힘꾼은 순이랑 돌이가 서로 마구 싸워대도록 불을 붙이고 불씨를 놓습니다. 순이돌이 스스로 마음을 태워서 싹이 못 틀 만큼 망가지기를 바라더군요.


  눈을 뜰 노릇입니다. 눈을 뜨고서 속빛을 볼 노릇입니다. “against war”가 아닌 “on war”를 보아야 합니다. ‘싸움’이 무엇이고, 누가 싸움을 일으키고, 누가 싸움판에서 길미를 챙기면서 히죽거리는지를 제대로 볼 노릇입니다. 순이돌이가 어깨동무 아닌 쌈박질로 갈라치기를 하면 누가 웃을까요? 어깨동무란, 돌이가 높지도 순이가 높지도 않은 사이입니다. 둘은 나란히 걸어갈 사이입니다. ‘민주정치’도 매한가지예요. 이쪽하고 저쪽 무리뿐 아니라, 그쪽이나 온갖 쪽 무리도 어우러질 적에 비로소 ‘민주정치’입니다. 힘꾼(대통령·청와대·국회의원·시도지사·장관·총리) 입김에 따라서 휘둘린다면 터럭조차도 민주가 아니고 정치가 아닙니다.


  불타오르면(분노하면·증오하면) 스스로 죽고, 동무랑 이웃까지 불태워 죽입니다. 사랑하면 스스로 살고, 이웃하고 동무랑 손을 잡고 어깨를 겯으면서 이 별을 푸른숲으로 가꿉니다.


ㅅㄴㄹ


주장이 아무리 ‘정당’하거나 ‘인도적’일지라도, 모든 전쟁의 변치 않는 고갱이는 국가 지도자들의 거짓말을 동반한 무고한 이들에 대한 계획적인 살육이기 때문이다. (17쪽)


이라크 폭격에 사용된 크루즈미사일은 모두 한 기당 가격이 백만 달러에 달하는 것이었는데, 국방부는 약 2백50기를 사용했다. 크루즈미사일에만 2억5천만 달러가 들어간 것이다. (40쪽)


베트남 참전군인들에게 물어보라. 죽은 이의 가족들에게 물어보라. 수족이 잘린 사람들과 걸어다니는 부상자들에게 물어보라. 그렇다. 누군가는 그것이 훌륭한 대의였다고 주장할 것이다. 누군들 많은 생명이 헛되이 낭비됐다고 생각하고 싶겠는가? 그러나 대다수의 사람들은 증오와 분노에 가득 차 있다. (118쪽)


오늘날 드러난 증거들은 전쟁을 끝내기 위해 일본 침공이 필요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쪽이 압도적으로 많다. (184쪽)


전쟁이 끝난 뒤 의구심은 커져갔다. 나는 역사책을 읽었다. 미국이 제2차 세계대전에서 여러 민족의 독립과 자결권을 위해 싸운 것일까? 그렇다면 전쟁과 정복을 통해 팽창해 온 미국 자신의 역사는 도대체 무엇일까? (242쪽)


#OnWar #HowardZinn


우리는 누락된 정보를 제공할 책임이 있다

→ 우리는 빠진 이야기를 들려줘야 한다

→ 우리는 사라진 얘기를 해야 한다

16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선생님, 우리말이 뭐예요?》,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밑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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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름나그네 1 - 제주의 영혼, 오름을 거닐다 오름나그네 1
김종철 지음, 고길홍 사진 / 다빈치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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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책읽기 2023.7.26.

인문책시렁 311


《오름나그네 1》

 김종철

 다빈치

 2020.4.15.



  《오름나그네 1》(김종철, 다빈치, 2020)를 읽었습니다. 두 다리로 걷고, 온몸으로 부대끼고, 두 팔로 품은 제주 오름을 하나하나 풀어낸 꾸러미 가운데 첫걸음입니다. 오름을 둘러싼 마을에 깃들지 않고서는 오름을 알 길이 없습니다. 마을이 안긴 오름을 돌아보지 않고서야 제주라는 고장을 알 턱이 없어요.


  다 다른 사람은 다 다르게 집을 짓고, 다 다른 집은 어깨동무를 하며 마을을 이루고, 여러 마을이 오순도순 어우러져 고을을 이룹니다. 이 고을은 커다랗게 하나를 이루기도 합니다.


  스스로 바라보려고 하면 스스로 느껴서 알아차립니다. 누가 남긴 자취만 좇으려 하면 어느새 ‘우리 눈’이 아닌 ‘길든 눈’으로 헤맵니다. 잘 알려고 걷지 않습니다. 똑바로 배우려고 걸어다니지 않습니다. 스스로 마음을 읽고, 이웃하고 만나는 자리를 보면서, 우리가 함께 인 하늘을 누리려고 하기에 즐거이 걸어요.


  뜻있게 여민 책이되, 글멋을 자꾸 부린 대목은 아쉽습니다. 제주사람뿐 아니라, 온누리 사람들은 ‘어려운 말씨’나 ‘한자로 엮은 말씨’에 갇힌 삶이 아닙니다. 스스로 삶자리에서 길어올린 말인 ‘삶말’은 ‘살림말 = 사투리’입니다. 흙을 돌보고 바다를 품고 오름을 안은 수수한 제주사람이 구태여 한자를 배워서 마을이름이나 오름이름을 붙인 일이 없겠지요.


  그러면 오름을 들려주는 책에 글결을 어떻게 가다듬을 적에 빛날까요? 비록 예전에 나온 책을 되살린 판이기는 하되, 어제 오늘 모레를 잇는 길을 어떤 숨길·글길·삶길·눈길로 추스르는 사랑길로 노래할 적에 스스로 아름다운가 하는 대목을 돌아볼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ㅅㄴㄹ


이 샘이 속칭 거슨세미다. 물의 흘러나옴이 바다 쪽이 아니라 한라산 쪽으로 거스른 방향이란 뜻으로, 섬에서 몇 안 되는 이른바 역천逆泉 또는 역수逆水의 하나다. (25∼26쪽)


결국 다랑쉬는 높은 봉우리란 뜻이며, 원어 ‘달수리’의 변화된 형태로 남아 있는 고구려어라는 이야기다. (45쪽)


‘북오름’ 하면 산이라는 뜻이 중복된 표현이어서 어색한 느낌이 들기는 하나 ‘높다’의 뜻 쪽으로 본다면 ‘북오름’은 ‘높은오름’으로 해석해 부자연스러울 게 없을 것 같다. (67쪽)


잣(잣성)이란 옛날 목마장과 목마장을 구획하는 경계에 쌓던 담장을 이르며 (175쪽)


어느 것이 제 이름인지는 분명치 않고 한 오름에 별칭 한둘은 흔한 일이나, 한자명은 뒤에 생긴 것이라는 원칙에서 따진다면 아무래도 전설 어린 ‘각시바우오름’이 본디의 이름인 듯싶다. (238쪽)


한편 ‘색다리’라는 지명에 대하여는 어원상 ‘색’은 사이(間)의 뜻인 ‘삿’의 변화이며 ‘다리’는 들(野)을 뜻하기도 하는 ‘달’에서 온 것으로 삿달→샛달→색달→색다리의 변화를 거친, ‘가운데의 들’이란 뜻의 이름이라고 보는 견해도 있다. (311쪽)


+


이 샘이 속칭 거슨세미다

→ 이 샘을 거슨세미라 한다

→ 이 샘이 거슨세미이다

25쪽


물의 흘러나옴이 바다 쪽이 아니라

→ 물이 바다 쪽으로 흘러나오지 않고

25쪽


섬에서 몇 안 되는 이른바 역천逆泉 또는 역수逆水의 하나다

→ 섬에서 몇 안 되는 거스름물이다

→ 섬에서 몇 안 되는 거스름샘이다

26쪽


뜻이 중복된 표현이어서 어색한 느낌이 들기는 하나

→ 뜻이 겹쳐 어설프기는 하나

→ 뜻이 겹치니 엉성하기는 하나

67쪽


‘북오름’은 ‘높은오름’으로 해석해 부자연스러울 게 없을 것 같다

→ ‘북오름’은 ‘높은오름’으로 풀이할 만하다

→ ‘북오름’은 ‘높은오름’으로 풀어도 엉성하지 않다

67쪽


흔치 않은 오름 위의 옹달샘으로서는 적은 수량이 아니다. 물줄기는 가늘어도

→ 흔치 않은 오름 옹달샘으로 물이 적게 솟지 않는다. 물줄기는 가늘어도

83쪽


긴 다리로 물 위를 유유히 걸어다니는 의젓함이며

→ 긴 다리로 물낯을 가볍고 의젓이 걸어다니며

→ 긴 다리로 물낯을 가만가만 의젓이 걸어다니며

123쪽


마음에 감치는 소박함을 지니고 있다

→ 마음에 감치며 수수하다

→ 마음에 감치도록 꾸밈없다

130쪽


서너 개의 작은 봉우리가

→ 작은 봉우리 서넛이

→ 작은 서너 봉우리가

228쪽


본디의 이름인 듯싶다

→ 옛이름인 듯싶다

→ 첫이름인 듯싶다

238쪽


한편 ‘색다리’라는 지명에 대하여는 어원상 ‘색’은 사이(間)의 뜻인 ‘삿’의 변화이며

→ 그리고 ‘색다리’라는 이름은 말밑으로 ‘색’은 사이를 뜻하는 ‘삿’이 바뀌었으며

311쪽


‘가운데의 들’이란 뜻의 이름이라고 보는 견해도 있다

→ ‘가운데 들’을 뜻하는 이름이라고 여기기도 한다

311쪽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선생님, 우리말이 뭐예요?》,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밑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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