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보, 나의 마누라, 나의 애인 - 1956-1961 윤이상이 아내에게 쓴 편지
윤이상 (Isang Yun) 지음 / 남해의봄날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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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책읽기 / 인문책시렁 2024.10.5.

인문책시렁 375


《여보, 나의 마누라, 나의 애인》

 윤이상

 남해의봄날

 2019.11.5.



  소리로 주고받는 말은 서로 마음에 남습니다. 종이에 적어서 주고받는 말은 서로 두고두고 남습니다. 입으로 내는 소리도 곰곰이 마음을 기울이고 생각한 다음에 흐르고, 종이에 담는 글도 찬찬히 마음을 쓰고 헤아린 다음에 흐릅니다.


  소리로 주고받는 말은 둘한테만 남는 이야기입니다. 종이로 주고받는 말은 둘을 넘어서 이웃이며 둘레에도 남길 수 있습니다. 《여보, 나의 마누라, 나의 애인》은 윤이상 님이 이녁 곁님한테 띄운 글월을 꾸립니다. 예전에 살던 사람들 자취를 이 글월꾸러미로 읽고, 사랑으로 만나서 마음으로 주고받아야 하던 나날을 읽으며, 무엇보다도 떠난 분이 남긴 글월을 돌아봅니다.


  함께 낳아서 함께 돌보는 아이를 어떻게 마주해야 함께 아름다울는지 생각해 봅니다. 온누리 모든 아이는 ‘대학교 졸업장’을 얻으려고 태어나지 않습니다. 아이들은 ‘의사’를 비롯한 돈을 잘 벌거나 이름을 날리는 일거리를 맡으려고 태어나지 않습니다. 온나라에 ‘필수의료’를 맡을 돌봄이가 한참 모자라다고 하지만, 돌봄이가 모자라지는 않습니다. 숱한 돌봄이는 돈을 벌려고 할 뿐입니다. 앞으로 의과대학을 늘리더라도 ‘필수의료’는 늘릴 수 없어요. 다들 돈 때문에 돌봄이라고 하는 종잇조각(자격증)을 얻으려고 할 뿐이거든요.


  이 나라 앞날을 헤아리는 어른이라면 ‘의대정원 늘리기’가 아니라 ‘시골 흙일꾼 늘리기’부터 해야 합니다. 어느새 이 나라 시골 논밭일을 ‘이 나라 젊은이’가 아닌 ‘이웃나라 젊은이’가 도맡습니다. 우리는 태어나서 죽는 날까지 돌봄터(병원)를 아예 안 갈 수 있으나, 우리는 날마다 밥을 먹어요. 우리는 어쩌다 돌봄터에 갈 수 있지만, 날마다 먹는 밥을 스스로 짓지 않으면 다 굶습니다. 정작 걱정해야 할 곳은 시골이요 논밭입니다. 몇몇 땅임자한테 뒷돈을 챙겨 주는 뒤틀린 길을 걷어치우고서, 논밭일꾼으로 지내고 싶은 누구나 ‘손수 가꿀 땅’을 장만해서 시골에 뿌리내리도록 이바지하는 길을 열 노릇입니다.


  윤이상 님이 곁님한테 띄운 글월을 묶은 《여보, 나의 마누라, 나의 애인》을 펴면 “우리는 세속적인 욕심도 명예욕도 다 버리고 우리의 자식들 기르고 공부시킬 도리만 장만합시다(39쪽)” 같은 이야기가 꾸준히 흐릅니다. 모든 벼슬아치(공무원)는 밑일삯(최저임금)에서 열 곱이 넘는 일삯은 받지 못 하도록 틀을 잡아야 할 테고, 조금이라도 뒷돈을 챙겼다면, 그들이 챙긴 뒷돈에 열 곱을 더한 값을 뱉어내는 틀을 단단히 세울 노릇입니다. 굳이 그들 잘못을 따져야(재판해야) 하지 않아요. 그들이 저지른 잘못에 따라 “열 곱 물어주기”만 시키면 되고, 열 곱을 다 뱉어낼 때까지 사슬살이(감옥살이)를 시키면 됩니다.


  그나저나 윤이상 님은 “답장이 늦다”면서 자꾸 골을 냅니다. 글월이 늦는 곁님한테 투덜대는 모습은 여러모로 사랑스럽습니다. 이 작은 골부림과 서로 아이를 바라보는 손길이 더했기에, 둘은 다르면서 하나인 살림길을 지으려고 뚜벅뚜벅 걸어갈 만했다고 느낍니다.


ㅅㄴㄹ


훌륭한 문장은 절대로 과장하는 데 있지 않소. 마음의 알맹이를 그대로 생생하게 기록하는 것, 그것이 남의 가슴을 찌른다오. 추상적인 문구의 되풀이는 오히려 흥미를 깨뜨리는 법이니까. 여보, 당신과 우리 자식들을 생각하는 나의 향수가 사실인즉 나의 피요, 나의 정신을 길러주는 원천이오. (30쪽)


우리는 세속적인 욕심도 명예욕도 다 버리고 우리의 자식들 기르고 공부시킬 도리만 장만합시다. 그래서 우리의 나머지 여생을 신선처럼 지내요. 아, 얼마나 아름다우냐. (39쪽)


파리에서 일본 정부의 선전은 대단하오. 대부분의 프랑스사람, 또 여기 오는 외국 사람들은 일본에 한번 가고 싶어 하오. (61쪽)


여보, 당신이 편지를 늦게 내는 바람에 내가 화가 났소. 그래서 당신이 밉소. (90쪽)


여보, 나의 마누라, 나의 애인. 당신은 지금 무엇을 하고 매일을 보내오. (109쪽)


여보, 우리 아이들에게 당신의 깊은 애정을 다하오? 절대로 나무라지 마오. 곱게 타이르고 타일러도 안 될 때는 그만 두오. 그것을 고치려는 것은 어른들의 욕심이요. 어른들의 욕심은 어른들의 주관인데 아이들은 어른과 같은 주관을 갖지 못했으니까 강요하는 것은 무리요. (138쪽)


당신의 편지는 언제든지 늦는 경향이 있어서 그럴 때는 화가 많이 나서 감당할 수가 없소. 그리고 우리 정아 쓰던 피아노는 절대로 팔지 말고 정아가 사용할 수 있도록 두고 와야 하오. 그럼, 당신에게 뜨거운 뽀뽀를 낭군이. (293쪽)


+


《여보, 나의 마누라, 나의 애인》(윤이상, 남해의봄날, 2019)


수림에 싸인 호수 안에는 밤인데도 보트를 타는 선남선녀들이 빨간 초롱을 달고

→ 숲에 싸인 못에는 밤인데도 배를 타는 사람들이 빨간 촛집을 달고

→ 너른숲에 싸인 못에는 밤에도 배를 타는 곰네가 빨간 촛불집을 달고

15


행복이란 것, 안식이란 것, 아무 걱정 없는 인생, 생활의 무풍지대를 말하는 거야

→ 기쁨이란, 아늑이란, 아무 걱정 없는 삶, 고요한 삶이야

→ 즐겁고 포근한 삶이란, 아무 걱정 없고 고요한 길이야

20


강태공의 생활도 당신과 같이 할 수 있다면

→ 낚시꾼 삶도 그대와 같이 할 수 있다면

30


달을 쳐다보니 만월이 아니겠소

→ 달을 쳐다보니 둥글지 않겠소

→ 하늘을 보니 보름달 아니겠소

34


한번 야심작으로 나의 역량을 발휘해 보고 싶고

→ 당차게 내 힘을 뽐내 보고 싶고

→ 배짱으로 나를 드러내 보고 싶고

→ 나를 힘차게 펼쳐 보고 싶고

43


그의 강의는 대단히 밀도가 있고 철저해요

→ 그는 대단히 꼼꼼하게 빈틈없이 가르치오

44


순회공연은 약 10개국의 35명이 참가하는데 내가 정식으로 그 단장을 위촉받았으니

→ 바람마당은 열 나라 서른다섯 분이 함께하는데 내가 길잡이를 맡았으니

→ 맴돌꽃은 열 나라 서른다섯 사람이 같이하는데 내가 길꽃을 맡았으니

192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숲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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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 세대를 위한 평화통일 이야기 미래 세대를 위한 인문 교양 3
정주진 지음 / 철수와영희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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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칠읽기 . 숲노래 책읽기 / 인문책시렁 2024.9.29.

인문책시렁 373


《미래 세대를 위한 평화통일 이야기》

 정주진

 철수와영희

 2024.8.30.



  일본스런 한자말 ‘평화통일’은 ‘평화 + 통일’입니다. 곰곰이 보면, 조선도 고려도 신라도 백제도 고구려도 으레 싸움질로 ‘하나’를 이루려고 했습니다. 우두머리는 늘 싸울아비를 앞세우면서 조무래기(졸병·병사)를 거느렸고, 여느때에는 시골에서 아이를 돌보며 흙살림을 짓던 사람들이 얼결에 붙잡히거나 끌려가서 ‘목숨을 빼앗길 때’까지 낯도 이름도 모를 이웃사람을 죽이는 짓에 수렁처럼 갇혀야 했습니다.


  오늘날 배움책(교과서)은 고구려·백제·신라·가야·부여가 서로 어떻게 윽박지르면서 땅뙈기를 넓히거나 잃었는지 짚을 뿐입니다. 고구려 흙사람이나 백제 어린이나 신라 아가씨나 가야 할머니나 부여 할아버지가 하루하루 어떤 삶을 짓거나 가꾸었는지는 한 마디조차 안 다루거나 못 짚습니다. 우두머리 이름을 외우는 짓이 ‘역사 공부’일 수 없습니다. 우리 스스로 어떤 발걸음으로 살림을 지었는지 돌아보는 일이 ‘발걸음 배우기(역사 공부)’입니다.


  이를테면, 고구려·백제·신라 세 나라가 싸움박질을 안 하면서 도란도란 어울렸다면, 저마다 다르면서 눈부시게 피어나는 살림길을 이루었을 테지요. 오늘날 ‘두나라 한겨레’인 남녘·북녘도 매한가지입니다. 두 나라는 어마어마하다 싶은 목돈을 쏟아부어서 싸움연모를 마구마구 때려짓고 늘리고 거느립니다.


  요새는 그나마 ‘여느 조무래기(일반 사병)’가 목숨삯(군인수당)을 어느 만큼 받습니다만, 고작 열 해 앞서까지만 해도 ‘여느 조무래기’는 그저 ‘총알받이’였고, 스무 해 앞서까지만 해도 ‘여느 조무래기’는 막말과 주먹질과 발길질로 시달리다가 얼결에 스무 살에 앳된 목숨을 빼앗겨야 했어요. ‘군의문사’라는 이름인 슬픈 굴레입니다.


  더럼짓 가운데 하나인 ‘군대비리’로 쇠고랑을 찬 이를 보기 어렵습니다만, 이 나라 싸움터(군대)에는 갖은 군대비리가 춤춥니다. 북녘도 매한가지예요. 그렇지만 ‘두나라 한겨레’에 어떤 군대비리가 있는지 차근차근 짚거나 따지는 글바치를 볼 수 없습니다. 글바치 가운데 싸움터(군대)에서 죽음수렁을 맛본 사람이 없거나 드문 탓일까요? 스스로 죽음수렁을 맛보지 않았어도 눈여겨보지 않는 탓일까요?


  《미래 세대를 위한 평화통일 이야기》를 읽으며 여러모로 뜻있구나 하고 느끼면서도 여러모로 아쉽습니다. ‘평화·통일·군대’를 말하기 앞서 군대비리부터 따져야 합니다. 어떤 군대비리가 언제부터 얼마나 또아리를 틀었는지 캐내야 합니다. 이 군대비리를 캐내다 보면, 왜 남녘도 북녘도 ‘평화통일’에 아무 마음이 없는지 알아차릴 수 있습니다. ‘국방과학연구소’는 해마다 돈을 얼마나 쓰는지 짚어야 하고, ‘무기 개발과 연구’에 돈을 얼마나 어떻게 썼는지 낱낱이 따져야 합니다.


  북녘에서 핵무기를 만들려고 돈을 얼마나 써댔을까요? ‘국방과학’이라는 허울로 쓰는 돈은 참말로 ‘무기개발’에 오롯이 썼을까요? 아니면 우두머리와 벼슬아치와 돈바치(재벌기업)가 슬금슬금 뒷돈을 빼돌릴까요?


  이제 우리는 ‘평화통일’이라는 이름보다는 ‘어깨동무’하고 ‘이웃사랑’을 참답게 바라보아야지 싶습니다. 어깨를 겯는 동무로 지내려면, 너도 나도 손에 총칼을 못 쥡니다. 다 내려놓아야지요. 이웃사랑을 하는 사이일 적에도, 뒤에 총칼을 못 숨깁니다.


  허울로는 좋아 보이는 ‘평화통일’이라는 이름만 높일 적에는 오히려 남녘과 북녘이 숱한 군대비리를 감추면서 무기경쟁을 끝없이 해대면서 눈가림과 눈속임으로 ‘정권유지’를 하겠지요. 지난날 고구려·백제·신라가 이렇게 했거든요. ‘군수산업’이라는 허울좋은 이름이 막상 ‘군대비리’투성이인 ‘군산복합체’인 민낯을 파헤치지 않는다면, 두나라 한겨레가 앞으로 나아갈 새길을 이야기할 적에도 뭔가 알맹이가 크게 빠진 줄거리에서 그칠 수 있습니다.


ㅅㄴㄹ


“북한은 잘못된 점이 많아도 우리의 통일 상대인데 ‘그런 말(비정상국가)’로 비하하는 건 현명하지 않습니다(84쪽).”


“인도주의 지원 물품이 지배층에게 간다는 생각 또한 오해입니다(87쪽).”


사실 남한과 북한은 통일의 구체적인 방법과 내용에 대해 한 번도 깊게 논의해 본 적이 없습니다. (20쪽)


남한과 북한은 적대 관계를 유지하면서 무력 대결과 경쟁을 해 오고 있습니다. 통일에는 매우 좋지 않은 조건입니다. 더 안 좋은 건 우리 사회에 통일에 대한 합의가 없고 정치인들과 전문가들은 서로 다른 주장을 고집하면서 대립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51쪽)


같은 민족이니 통일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면 접촉과 교류를 통해 공동의 경험과 역사를 만들어 나갈 방법을 고민해야 합니다. (65쪽)


정부의 대북 정책이 국민의 의견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보여 줍니다. 국민은 되도록 남북 관계가 좋게, 최소한 싸우지 않고 원만하게 유지되기를 바랍니다. (120쪽)


북한도 성실하게 핵무기 포기 과정을 실행하지 않았습니다. (127쪽)


핵 실험으로 마셜제도와 폴리네시아 주민 대부분이 피폭을 당했고 많은 암 환자가 생겼습니다. 바다가 심각하게 오염됐고 지금까지도 방사성 물질이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북한의 핵 실험 피해에 대해서는 알려진 정보가 없습니다. 그러나 핵 실험은 사람과 자연에 막대한 피해를 줍니다. (141쪽)


+


《미래 세대를 위한 평화통일 이야기》(정주진, 철수와영희, 2024)


평화통일과 관련된 다양한 문제들을 이해하고 고민해 봐야 합니다

→ 함께살기와 얽혀 여러 가지를 헤아리고 생각해 봐야 합니다

→ 너나우리를 놓고 여러모로 살피고 곱씹어 봐야 합니다

→ 담을 허물려면 이모저모 돌아보고 짚어 봐야 합니다

6


다른 주장도 만들어 보길 바랍니다

→ 다른 소리도 내어 보길 바랍니다

→ 다른 길도 열어 보길 바랍니다

7


통일을 당연한 것으로, 또는 당연하지 않은 것으로 생각하는 서로 다른 의견이 있는 겁니다

→ 꼭 한나라여야 한다고 여기거나, 이와 달리 아니라고 여깁니다

→ 마땅히 하나여야 한다고 보거나, 하나가 아니어도 된다고 봅니다

29


두 체제의 평화적 공존은 불가능하다고 말합니다

→ 두 얼개가 사이좋기는 어렵다고 말합니다

→ 두 나라가 손잡기는 힘들다고 말합니다

47


이 기사는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들었습니다

→ 이 글을 읽고 고개를 갸우뚱했습니다

→ 이 글에 고개를 갸우뚱했습니다

81


여러 상황을 고려하면 타당해 보입니다

→ 여러모로 헤아리면 옳아 보입니다

→ 여러 가지를 보면 맞아 보입니다

131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숲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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덴마크에서 날아온 엽서
표재명 지음, 박정원 엮음 / 드림디자인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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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숲노래 책읽기 / 인문책시렁 2024.9.5.

인문책시렁 369


《덴마크에서 날아온 엽서》

 표재명 글

 박정원 엮음

 드림디자인

 2021.11.17.



  《덴마크에서 날아온 엽서》는 덴마크에서 배움길을 닦으면서 ‘키에르케고어’를 따라서 걸어가려고 했던 발자취를 들려줍니다. 글님은 이 땅을 떠나고 없지만, 글님이 곁님하고 아이들한테 띄운 잎글(엽서)은 고스란하다지요. 덴마크 옛사람을 헤아리면서 쓴 글도 그대로이고요.


  우리는 가까운 이웃나라로도 먼 이웃나라로도 배움마실을 떠납니다. 이웃나라 옛사람이 남긴 글을 하나하나 짚으면서 우리말로 옮기기도 합니다. 그러면 거꾸로 생각해 봅니다. 이웃나라에서도 우리나라로 배움마실을 올까요? 이웃사람은 우리나라에서 어떤 옛사람을 돌아보면서 배움빛을 밝힐 만할까요?


  요즈막에 일렁이는 한바람(한류)은 거의 허울스럽다고 느낍니다. 슥 흘러가는 노래나 보임꽃(영화·연속극)은 나쁠 일이 없습니다만, 여러 노래나 보임꽃으로는 우리 살림살이나 삶이나 삶터를 드러내지는 않습니다. 아니, 우리 삶빛이나 살림꽃을 엿볼 수 없다고 여길 만합니다.


  돈을 더 버는 길에 이바지하는 한바람이라면 덧없어요. 덴마크 옛사람은 덴마크라는 나라가 어떻게 거듭나기를 바랐는지 돌아볼 수 있기를 바라요. 이 땅에서 땀흘리다가 스러진 숱한 옛사람 자취를 비롯해서, 오늘 새롭게 땀흘리면서 아이들 곁에서 살림을 짓는 숱한 살림지기 손길을 차곡차곡 담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먼마실로도 배우겠지만, 누구나 이녁 집에서 하루를 짓는 손길과 발걸음으로도 넉넉히 배웁니다. 바깥일로도 돈을 벌 테지만, 누구나 이녁 집에서 살림을 돌보고 집일을 하는 동안 스스로 깨어납니다.


ㅅㄴㄹ


악아, 그림(복사한)으로만 보아왔던 것을 직접 현물로 본다는 것은 예사로운 기분이 아니다. (91쪽)


이번에 스칸디나비아 4국을 돌면서 인간과 자연의 관계를, 특히 이모저모 생각하게 되었고, 우리 땅이 그동안 무심한 손에 의해 얼마나 상처입고 헐벗어 왔는가를, 그 가운데 인심이 얼마나 메마르고 각박해져 왔는가를 생각했다. 우리 집에도 꽃, 나무를 심을 수 있음녀 좋겠다. (120쪽)


가끔 읽고 있는 책의 저자가 그 책을 썼을 때의 나이와 내 나이를 헤아려 보고는 심한 자책과 분발을 다짐하기도 하지만, 온몸에 피곤이 일시에 몰려오고 의욕을 잃기도 한다. (165쪽)


이제 국민들은 부자나 지식인들의 명령에 따르도록 강압 받는 무지한 농민에서 그들 자신의 의견을 가지며 그 의견이 존중되기를 원할 만큼 정신 차린 국민으로 변해가고 있다. (231쪽)


+


《덴마크에서 날아온 엽서》(표재명, 드림디자인, 2021)


한 무리의 젊은이들이 기타를 튕기며

→ 한 무리 젊은이가 여섯줄고를 튕기며

→ 젊은이 한 무리가 엿줄고를 튕기며

17쪽


또 다른 보행자 도로인

→ 또 다른 거님길인

→ 또 다른 걷는길인

24쪽


확장 때 만들어진 것으로

→ 넓히며 세웠고

→ 늘릴 적에 마련했고

31쪽


덴마크 문화의 황금시대라고 하는데

→ 덴마크 살림빛에 꽃날이라고 하는데

→ 덴마크 삶꽃에 무지개길이라 하는데

35쪽


키에르케고어의 죽음은 큰 파문을 일으켰습니다

→ 키에르케고어가 죽자 너울이 일었습니다

→ 키에르케고어가 죽으며 크게 물결쳤습니다

54쪽


젊은 나이에 요절한 것을 하느님의 진노하심으로 받아들이는 사람들도

→ 젊은 나이에 죽었으니 하느님이 발칵했다고 받아들이는 사람도

→ 젊은 나이에 갔으니 하느님이 버럭했다고 받아들이는 사람도

54쪽


어느 알피니스트의 말을 따라

→ 어느 멧사람 말을 따라

155쪽


이렇듯 이론과 애국적인 행동이 실은 심리적 결함의 표현에 불과한 경우가 적지 않음을 생각할 때

→ 이렇듯 말잔치와 나라바라기는 정작 다친 마음을 적잖이 드러낼 뿐이니

→ 이렇듯 목소리와 나라사랑은 막상 흉진 속내를 적잖이 보여줄 뿐이니

174쪽


그것은 자연법칙을 알아내고 그 법칙을 이용해서 자연으로 하여금 그렇게 기능하게 할 수 있을 뿐이지

→ 이는 숲길을 알아내고 살려서 숲흐름을 북돋울 뿐이지

→ 이는 해바람비를 알아내고 살려서 숲을 북돋울 뿐이지

194쪽


물질적인 삶의 풍요와 안정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기능화되고 공동空洞화된, 다른 사람과의 연대 관계를 그 내면에 있어서 회복하고자 한다

→ 돈으로 넉넉하고 아늑한 삶을 좇다가, 쓰임새만 남고 텅빈, 이웃과 어깨동무하던 길을 마음부터 되찾고자 한다

→ 배부르고 느긋한 삶을 바라다가, 값만 남고 비어버린, 이웃과 손잡던 삶을 마음부터 되살리고자 한다

241쪽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우리말꽃》,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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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한한 하나 - 몫 없는 이들의 문서고 산지니평론선 14
김대성 지음 / 산지니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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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책읽기 / 인문책시렁 2024.8.29.

인문책시렁 341


《무한한 하나》

 김대성

 산지니

 2016.10.28.



  사랑으로 바라보려는 마음이라면, 이름 그대로 ‘사랑’이 무엇일까 하고 가만히 지켜보고 바라보고 헤아리면서 하루를 보냅니다. 비록 아직 사랑을 모르고 못 알아채고 못 느낄 수 있어도, 사랑을 품는 길로 한 발짝씩 다가섭니다.


  사랑이 아닌 채 시늉이나 흉내나 허울로 꾸미려는 마음이라면, 이 몸짓 그대로 ‘시늉·흉내·허울’로 온통 감싸면서 스스로 물들이거나 망가뜨리는 하루를 쳇바퀴처럼 되풀이합니다.


  누구나 태어날 수 있고, 누구나 살아갈 수 있습니다. 누구나 생각하고 사랑하며 살림할 수 있으며, 누구나 이 삶을 말과 글로 담을 수 있습니다.


  사랑을 오롯이 사랑으로 담는 말과 글이라면, 누구보다도 말님과 글님부터 홀가분하면서 환합니다. 시늉과 흉내와 허울로 감싼 말과 글이라면, 바로 말꾼과 글꾼부더 수렁에 잠긴 채 쳇바퀴에 갇힙니다.


  《무한한 하나》(김대성, 산지니, 2016)를 읽으면서 ‘말씀’과 ‘목소리’를 돌아봅니다. 우리는 굳이 일본스런 한자말인 ‘비평·평론’을 들추지 않아도 됩니다. 아니, 일본스런 한자말인 ‘비평·평론’을 자꾸 들추는 사이에 우리 삶길과 살림길과 사랑길하고는 동떨어진 겉치레와 겉발림과 겉글에 붙들리는구나 싶습니다.


  글을 읽을 적에는 “누가 쓴 글”인지 짚되 “누가 쓴 글”이더라도 오직 속빛을 읽어낼 노릇입니다. “누가 쓴 글”이기 때문에 속빛읽기를 안 하면서 겉훑기만 하기에 으레 ‘주례사비평’이 불거질 뿐 아니라 ‘일본 한자말과 영어를 뒤섞은 뜬금없는 빈글잔치’가 넘치게 마련입니다.


  우리가 좋아하는 ‘누가 쓴 글’이라서 훌륭하거나 아름답지 않습니다. 우리가 싫어하는 ‘누가 쓴 글’이라서 꾀죄죄하거나 추레하지 않습니다. 속빛이 알뜰하기에 알뜰할 뿐이고, 속빛이 후줄근하니까 후줄근할 뿐입니다.


  어린이는 어느 글을 읽든 ‘누가 쓴 글’인지 안 따져요. ‘읽을 만한 글’인지 ‘즐거운 글’인지 ‘아름다운 글’인지 가려낼 뿐입니다. 우리나라에서 ‘어린이 비평가·평론가’가 있다면, 주례사비평이란 처음부터 없었겠지요. 어린이 눈길로 글과 그림과 빛꽃(사진)을 읽는 터전이 자리잡았다면, 어렵게 꼬거나 뒤틀어 놓은 얄궂은 말글은 아예 얼씬조차 못 했으리라 봅니다.


  하늘은 가없이 하나입니다. 바다는 끝없이 하나입니다. 별도 바람도 빗방울도 이슬도 그지없이 하나입니다. 마음도 오롯이 하나요, 숨결도 언제나 하나예요. 어떻게 왜 어디에서 무엇이 누구랑 하나인지 들여다보려고 다가갈 적에는 누구나 스스로 눈길을 틔우고 귀를 열어서 환하게 알아봅니다. 가없이 하나인 수수께끼를 마주하려고 하지 않으니 귀를 닫고 눈을 감고 말아요.


  꾼(전문가)으로 서야 글읽기(문학비평)를 하지 않습니다. 그저 사람으로서 삶글을 밝힐 적에 아름답습니다. 꾼(교수·작가)이라는 이름을 얻어야 글쓰기(문학창작·비평)를 하지 않습니다. 언제나 사랑을 품으면서 살림글을 나누려는 눈빛이기에 즐겁게 글길을 폅니다.


  꾼말과 꾼글이 온누리를 휘감는 꾸밈말과 꾸밈글 울타리는 그놈이나 저놈이 세우지 않습니다. 바로 우리가 세우지요. 스스로 살펴야 스스로 알아보고, 스스로 걸어야 스스로 마을과 집과 나라를 가꿉니다. 잘하는 사람한테 맡길 일이 아닙니다. 누구나 저마다 즐거우면서 새롭게 나날이 차근차근 하면 될 일입니다.


ㅅㄴㄹ


학연과 지연으로 촘촘하게 얽혀 있어 결코 ‘남이 될 수 없는’ 세계에서, 애와 연대라는 허울 좋은 이름으로 서로를 밀어주고 끌어준다지만 위계화되어 있는 그 힘이 언제라도 서로를 옭아매는 ‘개미지옥’이 될 수도 있다는 섬뜩한 진실과 마주해야 했고, (8쪽)


이 두 작가의 소설들이 구체적 현실을 너무나 손쉽게 뒤섞어 버림으로써 현실 세계가 직면한 여러 문제를 간과해버릴 수도 있다는 위험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것도 사실이다. (83쪽)


갑작스레 나타나 삶을 뭉텅뭉텅 잘라가 버리는 날카로운 이빨은 특정한 장소에 잠복해 있는 위험이 아니라 차라리 다른 것과 접속할 수 있는 접촉면이자 다른 것이 될 수 있는 가능성이기도 하다. (200쪽)


쓴다는 것 또한 구덩이에 빠지는 것과 같다. 쓰기란 ‘삶의 자리’에서 이루어지며 어딘가에 ‘빠져야’ 글쓰기가 가능하다. (209쪽)


일상에서 낯선 것들을 발견하는 데 집중하는 시인 또한 공동체의 (문)법을 따르지 않는 이임에 틀림없다. (319쪽)


우리가 지금껏 ‘귀’로 했던 일들을 어떤 이는 ‘손’으로 해왔다. (367쪽)


+


만나기 위한 애씀의 노동이다

→ 만나려고 애쓰는 일이다

→ 만나고 싶어 애쓰는 일이다

9


부산으로 내려와 막노동으로 생계를 꾸리다

→ 부산으로 와 막일로 살림을 꾸리다

→ 부산으로 와서 삽일로 집안을 꾸리다

15


위성도시에 파견된

→ 이웃마을로 보낸

→ 달고을로 맡긴

51


철 지난 유행어가 영속하고 있는 시대를 주관하는 새로운 강령임을 알고 있는

→ 철지난 뜬말이 그대로인 나날을 다스리는 새로운 금인 줄 아는

→ 철지난 바람말이 늘 있는 오늘을 다루는 새로운 길눈인 줄 아는

58


환형동물인 지렁이는 온몸으로 감각한다는 점에서

→ 마디살이인 지렁이는 온몸으로 느끼기에

→ 마디짐승인 지렁이는 온몸으로 느끼기에

188


이 꾸준함의 행보가 내겐

→ 나한텐 이 꾸준한 걸음이

→ 나한텐 이 꾸준한 길이

196


브레이크, 커브, 요철이라는 문턱을 넘어갈 때마다

→ 멈추고, 돌고, 고랑이라는 턱을 넘어갈 때마다

205


부단히 들썩거리는 존재의 울림이기도 하다

→ 끝없이 들썩거리며 울리기도 한다

→ 자꾸 들썩거리며 울리기도 한다

205


힘없고 약한 것들은 그렇게 발아래서

→ 힘없으면 그렇게 발밑에서

210


이선형이 직조하는 시적 공간의 특징을 분명하게 보여준다

→ 이선형이 땋는 노래터를 또렷이 보여준다

→ 이선형이 낳는 노래뜨락을 환히 보여준다

→ 이선형이 여미는 노래자리를 잘 보여준다

217


사회적 결속이 노정하고 있는 행위를 환기시킨다

→ 이웃과 맺으며 걸어가는 일을 돌아본다

→ 둘레와 맞물려 나아가는 모습을 곱새긴다

226


문자라는 형틀은 사물을 구획하고 절단하며

→ 글씨라는 틀은 모두 나누고 뜯으며

→ 글이란 거푸집은 다 가르고 자르며

230


사물(대상)에 음각(陰刻)되어 있는 흔적들을 세심하게 좇는 행위와 다르지 않다

→ 그곳에 오목새김을 한 자국을 찬찬히 좇는 길하고 다르지 않다

231


시의 음악성이라는 범박한 틀로

→ 노랫가락이라는 겉도는 틀로

→ 노랫결이라는 두루뭉술한 틀로

234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우리말꽃》,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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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꽃그림 서문문고 321
노숙자 지음 / 서문당 / 200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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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책읽기 / 인문책시렁 2024.8.20.

인문책시렁 362


《한국의 꽃그림》

 노숙자

 서문당

 2000.10.20.



  큰아이를 낳은 2008년부터 으레 꽃마실을 다녔습니다. 그무렵에는 인천에서 지냈고, 우리 집에 따로 꽃그릇을 놓지는 않았습니다. 다만, 하늘채(옥탑방)를 나와서 몇 걸음만 디디면 골목 어디나 꽃밭이에요. 아이를 안고 업고 걸리면서 이웃마을 꽃골목을 거닐었어요. 아이는 늘 풀꽃나무를 지켜보고 벌나비와 새를 바라보면서 이러한 모습을 척척 그림으로 옮겼습니다.


  우리 보금자리를 전남 고흥으로 옮긴 뒤에는 그저 마당에서 꽃잔치입니다. 따로 안 심어도 꽃이 피고 나무가 자랍니다. 언제나 새가 심거든요. 질경이나 차조기나 들깨는 씨앗을 조금 얻어서 곳곳에 뿌렸습니다. 여러 풀이 한결 즐거이 어울리기를 바라거든요.


  《한국의 꽃그림》(노숙자, 서문당, 2000)은 곁꽃(반려식물)으로 삼는 풀꽃도 담은 그림이 있되, 사람들이 굳이 곁꽃으로 안 삼지만, 늘 우리 곁에서 푸르고 맑고 밝게 피고 지는 숱한 꽃빛을 담은 그림이 나란합니다.


  예부터 꽃과 나무는 돈으로 사고팔지 않았습니다. 사람들 스스로 숲에서 씨앗을 얻거나 어린나무를 캐서 마당 한켠에 심을 뿐입니다. 때로는 새가 포르르 날아와서 씨앗을 심습니다. 때로는 개미가 풀씨나 나무씨를 나르다가 떨구어서 심습니다.


  어디에서나 언제나 빛나는 풀씨에 나무씨입니다. 우리가 곁에 새를 이웃으로 맞이한다면, 우리 삶터는 늘 꽃잔치에 나무마당입니다. 풀이 돋고 나무가 자라기에 누구나 숨을 쉽니다. 풀이 사라지고 나무가 꺾이는 곳에서는 매캐하고 흐리멍덩하고 어지러울 뿐입니다.


  곁에 풀꽃나무를 놓으면서 이따금 풀그림과 꽃그림과 나무그림을 손수 그려 본다면, 온누리는 어느새 환하게 거듭나리라 봅니다.


ㅅㄴㄹ


김치 가운데 열무김치를 가장 좋아하는 나는 항상 텃밭에 상추 다음으로 열무를 심는다. 열무는 심으면 곧장 장다리가 올라오고 흰색이 감도는 보라빛 꽃을 터뜨린다. 흐드러지게 피어나 쓰러질 듯하면서도 자꾸만 꽃을 피운다. 유난히도 흰나비를 부르는 꽃을 피운다. (무꽃/34쪽)


언제 보아도 다정하고 따뜻하다. 귀한 것이 아니라서 쉽게 지나치게 되지만 이런 꽃에서 발견되는 아름다움은 남다르다. (제비꽃/60쪽)


상추와 같이 먹으려고 심었더니 예쁜 꽃이 피기 시작했다. (쑥갓꽃/63쪽)


어릴 적 시골에서 본 적이 있는 목화꽃을 그려 보고 싶었다. 수소문한 끝에 용인 민속촌에서 찾을 수 있었다. 목화에서는 면화도 얻고 씨로는 기름도 짜는데, 햇빛을 보아야 꽃이 피고 해가 나지 않으면 입을 다물고 있다. 요긴한 것들을 만들어내는 원동력은 햇살이던가. (목화꽃/125쪽)


시골로 피난 갔던 어린 시절, 조그마한 밭에 파랗게 자라 있는 풀을 칼로 베고 다시 며칠 후 가 보면 또다시 자라나 있던 것이 생각난다. 내게는 아련한 유년 시절의 추억이며 그때를 떠올리며 손바닥만한 부추밭을 만들고는 아까워서 베지 않았다. 어느 날 여섯 잎으로 된 하얀 꽃이 피었다. (부추꽃/167쪽)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우리말꽃》,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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