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좋아하는 것들, 그릇 내가 좋아하는 것들 17
길정현 지음 / 스토리닷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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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칠읽기 . 숲노래 책읽기 / 인문책시렁 2025.8.24.

인문책시렁 446


《내가 좋아하는 것들, 그릇》

 길정현

 스토리닷

 2025.5.7.



  책벌레는 “오늘 읽든 나중 읽든 눈에 띄면 책을 산다”는 마음입니다. 오늘이 지나가고 나면 “눈앞에 있던 책”을 쉬 잊을 뿐 아니라, 다시 못 찾기 일쑤요, 요사이는 일찍 판끊기는 책이 수두룩합니다.


  책벌레로 살다 보니 ‘참하게 생긴 그릇’을 만나면 ‘언제 쓸는’ 지 몰라도 주섬주섬 장만하는 버릇이 붙었습니다. 이러다가 꾸지람을 듣고 꾸중을 먹었어요. 이제는 그릇을 새로 장만하지 않는다고 할 수 있습니다. 어쩌다가 깨지거나 이가 나가더라도 ‘여태 이미 쟁인 그릇’을 꺼내서 쓰면 넉넉합니다.


  《내가 좋아하는 것들, 그릇》을 읽습니다. 제가 책벌레라면, 이 책을 쓴 분은 ‘그릇벌레’일 테지요. 갖은 그릇을 눈여겨보고, 온갖 그릇을 챙기면서, 이 그릇에 담을 밥살림을 헤아리는 삶이라고 할 만합니다.


  2008년과 2011년에 아이를 낳으면서 온집안을 박박 뒤집어서 플라스틱 그릇을 치웠습니다. 알게 모르게 플라스틱 그릇이 많았습니다. 둘레에서 물려주거나 건네주면 그저 차곡차곡 쌓았습니다. 모임자리에서 한벌쓰기로 버리는 그릇도 건사해서 되쓰자고 여겼습니다.


  그렇지만 플라스틱 그릇을 모조리 치운 자리에, 두 아이하고 누릴 살림그릇만 건사하다 보니, 아이를 이끌고서 어느 모임자리에 가든 ‘집에서 그릇과 수저’를 바리바리 챙깁니다. 두 아이랑 곁님이 쓸 밥살림을 등짐과 손짐으로 수북히 챙겨서 다니면 “뭘 그리 무겁게 싸들고 다니나? 그냥 한벌쓰기(1회용품)로 하면 될걸!” 하면서 혀를 차는 분이 수두룩합니다.


  다 다른 사람이 다 다른 책을 품고서 읽듯, 다 다른 사람은 다 다른 그릇을 품고 돌보고 건사합니다. “아이 밥그릇까지 들고 다니는 사람이 어디 있어?” 하고 묻는 분한테, “네, 바로 코앞에 있네요.” 하고 대꾸하며 웃습니다. 제 어릴적을 돌아보면, 어디 나들이를 가는 날에는 ‘솥’까지 들고 다녔습니다. 예전에는 참말로 누구나 솥에 그릇을 모조리 집에서 챙겨서 다녔고, 알뜰히 추슬러서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그저 손쉽게 쓰고 버리려 하면서, 아니 땀흘려 이고 지고 나르기를 귀찮게 여기면서, 손살림을 등지고 이쁘장하게 꾸미는 옷차림에 기울면서, 물그릇 하나조차 안 챙기기 일쑤였으나, 이제는 물그릇쯤은 챙기는 사람이 다시 늘어납니다. 《내가 좋아하는 것들, 그릇》에도 나오는 말처럼, 자잘하다 싶은 살림거리를 손수 챙기고 살피고 돌보는 길이야말로 “내가 나를 살리면서, 내가 나부터 바라보는 사랑”이라고 느낍니다.


ㅍㄹㄴ


사람을 사람답게 살 수 있게 하는 것은 아주 소소한 것들임을 배우고 있는 요즘, 나는 내가 그럭저럭 괜찮게 살고 있음을 실감한다. (25쪽)


우리 엄마도 연마제가 뭔지 아예 모르는 눈치인 걸로 봐서 평생토록 우리 가족 모두가 연마제를 먹어온 듯한데, 모르면 몰랐지, 알게 된 이상 사활을 걸고 깨끗하게 닦을 수밖에 없다. (47쪽)


애당초 내 마음 자체가 미니멀하지 못하다. (75쪽)


그때의 나는 그랬다. 그때 나는 온힘을 다해, 온마음을 다해 싫어하는 사람이 있었다. 누군가를 진심으로 좋아하는 일만큼이나 싫어하는 일에도 엄청난 에너지를 써야 하는데, 나의 그런 에너지 소모에도 불구하고 상황은 전혀 달라지지 않았다. (101쪽)


유리 젖병의 특징은 명확하다. 오래 사용해도 착색이나 냄새 배임이 없고 소재 특유의 냄새도 없다. (179쪽)


+


《내가 좋아하는 것들, 그릇》(길정현, 스토리닷, 2025)


그릇에 대한 애정과 관심은 줄곧 있었지만, 그 집중도가 정점을 찍었던 건 역시

→ 그릇을 사랑하고 줄곧 바라보지만 가장 사랑하고 바라보던 때는 바로

→ 그릇을 아끼고 줄곧 들여다보지만 가장 아끼고 들여다본 때는 아무래도

23쪽


그릇계에는 킨츠기(金繼ぎ)라는 공예 기법이 있다

→ 그릇밭에는 노란땜이 있다

→ 그릇길에는 이음꽃이 있다

24쪽


우리 집 주방에도 강렬한 색감의 무언가가 생겼군

→ 우리 부엌에도 눈부신 그릇이 생겼군

→ 우리집 부엌도 알록달록 빛나는군

53쪽


사실 스님들이 발우공양 하듯 식사를 마친 후 그 밥그릇에

→ 스님이 그릇모심 하듯 밥을 먹고서 이 밥그릇에

→ 스님이 모심길을 하듯 밥을 먹고서 이 밥그릇에

63쪽


정해진 용도대로만 사용한다면 에그 스탠드는 참 쓸 일이 드문 물건이다

→ 쓰임새대로만 본다면 달걀받침은 참 쓸 일이 드물다

→ 쓸모대로만 치면 달걀놓개는 참 쓸 일이 드물다

63쪽


이 문구에 대한 좀더 구체적인 내용은 184쪽에서 자세히 논해 보기로 하자

→ 이 글월은 184쪽에서 좀더 낱낱이 짚기로 하자

→ 이 글은 184쪽에서 좀더 꼼꼼히 다루기로 하자

69쪽


이번에 해외 배송으로 전달받은 그릇 상자의 포장 상태가 심상치 않았다

→ 이참에 바깥받이로 온 그릇 꾸러미를 싼 모습이 유난했다

→ 요즈막 이웃받이로 온 그릇 꾸러미를 담은 모습이 남달랐다

79쪽


걷고 있는 음유시인의 모습이 몹시도 깜찍하게 표현된 것이 대표 이미지다

→ 나그네꽃이 걷는 모습을 몹시도 깜찍하게 담아 손꼽히는 그림이다

→ 떠돌별이 걷는 모습을 몹시도 깜찍하게 나타내 돋보이는 그림이다

79쪽


대부분 접시는 원래 원형이다

→ 그릇은 거의 동그랗다

→ 그릇은 워낙 둥그렇다

86쪽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을 쓴다. 《풀꽃나무 들숲노래 동시 따라쓰기》,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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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마다, 출판 - 작은 출판사를 꾸리면서 거지 되지 않는 법 날마다 시리즈
박지혜 지음 / 싱긋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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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책읽기 / 인문책시렁 2025.8.24.

인문책시렁 447


《날마다, 출판》

 박지혜

 싱긋

 2021.11.11.



  날마다 책을 여러 자락 읽은 지 한참 됩니다. 언제부터 하루에 여러 자락씩 읽었나 하고 어림하니 1991년입니다. 푸른배움터(고등학교) 첫걸음을 맞이하던 그해에 ‘첫 수능·본고사·면접’을 치르는 또래였고, 배움터에서는 어떻게 불굿(입시지옥)에 맞춰야 하는지 터럭만큼도 못 이끌었는데, 그저 혼자서 낱말책을 날마다 외우듯 읽고, 책도 여러 자락씩 읽으면서 스스로 가다듬었습니다. 1991∼93년에는 하루에 1.5∼2자락을 읽고, 1994∼95년에는 하루에 2.5∼3자락을 읽습니다. 1995년 11월부터 1997년 12월 31일 사이에는 싸움터(군대)에서 보내느라 스물여섯 달 동안 책을 한 자락조차 구경조차 못 하는 나날입니다. 1998년에 삶터로 돌아오고 나서 지난 이태치 책을 게걸스럽게 읽으려고 하루에 4∼5자락을 읽고, 1999년에 책마을 일꾼으로 자리를 옮기고부터 하루에 7∼10자락을 읽습니다. 제가 몸담은 펴냄터뿐 아니라 이웃 펴냄터 책을 헤아리려고 용썼어요. 2002년 무렵에는 하루 10∼15자락으로 껑충 뜁니다. 낱말책(국어사전)을 여미는 일꾼으로 지내느라 하루 15자락을 읽어도 모자랐습니다. 2008년에 큰아이를 낳고부터는 아이를 도맡아 돌보느라 하루 5자락을 가까스로 읽을 동 말 동했는데, 아이가 자라는 동안 그림책과 동화책을 새삼스레 되읽고 챙기면서 다시 하루 10∼15자락을 읽는 삶으로 잇습니다.


  곰곰이 보면 그저 책벌레입니다. 책벌레로만 살려고 하다가 2004년에 처음으로 책을 내놓았고, 이제는 시골살림과 숲살림을 헤아리면서 이러한 살림길을 낱말풀이하고 여미어서 느긋이 노래(시)를 쓰곤 합니다. 요즈막은 ‘날마다 노래 1꼭지 쓰기’를 잇습니다.


  《날마다, 출판》은 “날마다 책을 펴내는 이야기”이지는 않습니다. 날마다 책짓기를 헤아리는 작은펴냄터 작은일꾼으로서 작은수다를 펴는 꾸러미입니다. 한 해 내내 책을 들여다보고 헤아리고 짚고 살피는 삶이란 무엇인지 돌아보는 꾸러미이기도 합니다. 이 책 첫머리에 나오듯, 책은 종이에 담기에 외려 가없이 꿈을 그리는 길을 연다고 할 만합니다. “고작 종이에?”라 여길 수 있지만, “겨우 종이에?”라고 여기기에 오히려 더 새롭고 즐겁게 이야기를 꾸립니다.


  나라에서는 무시무시하구나 싶은 돈을 퍼부으면서 ‘4차산업·메타버스·한류·ai·연구개발’을 일으키겠노라 하고 외칩니다만, 다 부질없다고 느껴요. 어떤 ‘첨단 부가가치 산업’을 꾀하든, 가장 밑바닥에 있는 ‘종이책’부터 찬찬히 여밀 줄 알 노릇이거든요. 아직 한글로 못 나온 아름다운 이웃나라 책이 수두룩합니다. 아직 우리는 우리말을 우리글인 한글로 제대로 못 그립니다. 온나라가 ‘문해력·리터러시’로 떠들썩하지만, 막상 우리말이 어떤 말결에 말씨에 말빛에 말밑인지 제대로 아는 사람부터 드뭅니다. 우리말부터 안 가르치거나 못 가르치면서 한자와 영어부터 가르치려 한들, 제대로 가르칠 턱이 없습니다.


  배움터에서는 글판을 쓸 노릇입니다. 가장 투박한 길이 가장 빠르면서 가장 반짝이거든요. 배움터에서는 종이책을 쓸 노릇입니다. ‘웹툰 캐릭터 대잔치 교과서’가 아니라, ‘아주 수수하게 글과 그림만으로 엮은 배움책’을 어린이와 푸름이한테 베풀 노릇입니다. 왜 그럴까요? 우리는 갓 태어난 아기한테 엄마젖부터 물려야 하거든요. 아기는 엄마아빠 곁에서 ‘엄마말’과 ‘아빠말’부터 느긋이 천천히 익힐 노릇이거든요. 우리말과 한글을 뗀 아이는 ‘캐릭터 대단치’가 아닌 ‘말을 말답게 담은 그림책’부터 손에 쥐어야 비로소 글눈과 말눈을 틔워요. 이리하여 숱한 책마을 일꾼은 “날마다 책읽기·책쓰기·책짓기”를 하려고 땀흘립니다. 가장 투박하고 수수한 종이책을 조촐히 북돋우는 길이야말로, 아이어른을 함께 북돋우고 살리는 가장 즐겁고 아름다운 살림길이요 사랑손이요 사람빛이니까요.


ㅍㄹㄴ


종이라는 한계야말로 책이 지닌 가장 역동적인 가능성이다. (10쪽)


최근까지도 내가 기획과 편집을 잘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는데, 목 좋은 자리에서 살 사람이 줄 서 있을 때 가게 사장님이 나를 종업원으로 뽑았던 결과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26쪽)


책 한 권에 100원 단위의 배본비가 붙어 있다는 것도 창고를 계약하는 순간에야 알게 된 출판 멍청이인 나에게, (57쪽)


큰 출판사에 앉아 있다는 것은 그 자체로 큰 노력을 들이지 않고도 좋은 원고를 수급할 수 있는 위치에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67쪽)


책은 저자가 쓰기로 마음먹은 순간부터 시작된다. (90쪽)


동시에 책을 많이 읽자고 권해 본다. 건강한 출판인이 되는 데 책만 한 영양제는 없다. (155쪽)


+


《날마다, 출판》(박지혜, 싱긋, 2021)


출판은 대자유일 수가 없다는 생각에 프롤로그를 모두 지워버렸다

→ 책짓기는 큰날개일 수가 없다 싶어서 머리말을 모두 지워버렸다

6쪽


빠져나갈 수 없는 족쇄를 찼다는 말에 불과하다

→ 빠져나갈 수 없었다는 말일 뿐이다

→ 빠져나갈 수 없이 굴레를 찼다는 말이다

6쪽


이번달에 또 앵꼬 나면

→ 이달에 또 바닥나면

→ 이달에 또 다 쓰면

→ 이달에 또 떨어지면

6쪽


이 풍전등화의 세계에서 단 하나 기댈 수 있는 지표는, 독자는 현명하다는 것이다

→ 이 아슬한 나라에서 딱 하나 기대는 눈금이 있으니, 사람들은 어질다

→ 이 기우뚱한 곳에서 딱 하나 길잡이가 있으니, 사람들은 똑똑하다

12쪽


가게 사장님이 나를 종업원으로 뽑았던 결과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 가게지기님이 나를 일꾼으로 뽑았을 뿐이다

→ 가게지기님이 나를 일꾼으로 뽑았으니 마땅하다

→ 가게지기님이 나를 뽑은 셈이고 더도 덜도 아니다

→ 가게지기님이 나를 뽑은 셈이고 아무것도 아니다

26쪽


남편과 생애 첫 월급 빵꾸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며

→ 처음 겪는 달삯 구멍을 곁님과 이야기하며

→ 처음 달삯이 구멍나서 짝꿍과 이야기하며

45쪽


체면 차리느라 사기당하는 줄도 모르는 겉똑속멍 독성에 근원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 나는 낯값 차리느라 낚이는 줄도 모르는 겉똑속멍에 고약하게 물들었다고 본다

→ 나는 꽃낯 차리느라 덮어쓰는 줄도 모르는 겉똑속명에 얄궂게 찌들었다고 본다

49쪽


그야말로 혼돈의 카오스였다

→ 그야말로 어지럽다

→ 그야말로 북새통이다

→ 그야말로 널브러진다

→ 그야말로 뒤죽박죽이다

→ 그야말로 골아프다

→ 그야말로 나뒹군다

102쪽


나도 처음에는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에 근거해 다소 무리가 되더라도

→ 나도 처음에는 큰물결이라 여겨 좀 버겁더라도

→ 나도 처음에는 돌개바람이라 여겨 꽤 힘들더라도

→ 나도 처음에는 몰붓기처럼 적잖이 만만찮더라도

104쪽


밥값 1/N 하는 거야 그냥 현금으로 주고받거나 이체하면 되지

→ 밥값 추렴이야 그냥 돈으로 주고받거나 보내면 되지

→ 밥값이야 그냥 맞돈으로 주고받거나 넘겨서 나누면 되지

135쪽


꾸준히 기업 정체성을 구축한 뒤에라야 충성독자가 양산된다는 점

→ 꾸준히 이곳 밑동을 닦은 뒤에라야 따르는 사람이 나온다는

→ 꾸준히 일터 밑뿌리를 세운 뒤에라야 서로꽃이 태어난다는

142쪽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을 쓴다. 《풀꽃나무 들숲노래 동시 따라쓰기》,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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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미술사 동문선 문예신서 90
세키노 타다시 지음, 심우성 옮김 / 동문선 / 200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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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칠읽기 . 숲노래 책읽기 / 인문책시렁 2025.8.21.

인문책시렁 448


《조선미술사》

 세키노 타다시

 심우성 옮김

 동문선

 2003.10.10.



  이모저모 보면 《조선미술사》는 그야말로 하찮습니다. 글쓴이 세키노 타다시는 ‘일본’을 바탕으로 ‘중국·조선’이 어떻게 얽혔는지 읽어내려고 ‘조선 곳곳 옛터’를 파헤쳐서 옛살림(유물)을 캐내었고, 이렇게 캐낸 옛살림을 슬며시 일본으로 가져갔는데, 이러면서 ‘조선 옛자취 깎아내리기’를 일삼았습니다. 이렇게 해야 ‘일본 옛자취’가 치솟는다고 여겼을 테니까요.


  눈앞에 버젓이 나온 옛살림을 돌아보면서도 제대로 안 짚는 눈길이 얼마나 뜬금없이 헛말을 펴는지 헤아리는 길잡이로 삼을 만한 《조선미술사》인데, 일본 허수아비뿐 아니라 일본에 빌붙은 앞잡이도 이런 줄거리를 오래도록 폈습니다. 다만, 이런 글은 으레 일본글로만 나왔으니 일본글을 안 읽는 사람은 도무지 모를 만한 대목이요, 심우성 님이 애써 한글로 옮겨주었기에, 우리로서도 이 엉성한 자취를 톺아볼 만합니다.


  그런데 《조선미술사》가 들려주는 말 가운데 ‘안 틀린’ 말도 제법 있습니다. 이를테면 “또한 사대주의에 빠져 미술에도 독창성이 결여되어 있고, 시종 중국 예술의 모방에 물들어 있다(70쪽)” 같은 대목인데, 조선 500해에 걸쳐 임금·벼슬아치·나리는 그저 중국을 우러르고 모시면서 수글(중국글·한문)만 썼습니다. 게다가 조선이 무너진 뒤에도 수글(중국한자말·일본한자말)에 얽매였고, 일본이 떠난 1945년 뒤부터 2025년 오늘날까지 이 얼거리는 안 바뀝니다.


  얼토당토않은 책이라 하더라도, 우리 옛살림이나 옛자취를 조금은 더듬을 길잡이로 삼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 스스로 엉터리로 억눌린 지난 굴레를 되새길 수 있습니다. 또한 오늘날까지 우리 스스로 ‘수글’에 사로잡힌 민낯도 엿볼 수 있습니다. 이제는 ‘한글’과 ‘한말(우리말)’을 써야 하지 않을까요?


ㅍㄹㄴ


또한 사대주의에 빠져 미술에도 독창성이 결여되어 있고, 시종 중국 예술의 모방에 물들어 있다. 그러나 그 가운데 다소 국민성을 보여주는 고유한 특질을 나타내는 것도 있다. (70쪽)


1909년 10월에 우리 일행이 구한국 정부의 촉탁을 받아 고적 조사를 하였을 때, 평양의 건너편 강가에 있는 고분을 발굴하기 시작하면서 이것이 낙랑군 시대에 속하는 것임을 알았다. (76쪽)


낙랑군 시대의 고분에서 비교적 많은 철기를 채집할 수 있었으며, 이로써 한나라 철기 기술의 발달이 얼마나 대단하였는가를 알게 되었다. (86쪽)


산의 중턱부터 기슭의 평야에 걸쳐 무려 수만 기의 고분이 산재해 있다. 통구강의 두 연안에서 산성자의 기슭과 마선구의 계곡 좌우에도 비슷한 다수의 고분이 산재해 있다. 이런 무수한 고분을 보면, 당시 고구려 문화가 얼마나 융성했으며 오랜 세월 동안 계승되었는가를 추측할 수 있다. (101쪽)


다행히 일본에는 호류사, 호키사, 호린사 등의 당탑 가람이 오늘날까지 잘 보존되어, 다른 예술품들과 함께 그 본원인 백제 예술의 놀라운 발전을 말해 주고 있다. (128쪽)


그래도 조선 500여 년간 국가의 압박과 사회의 학대를 견뎌내면서 종종 산림의 넓은 토지를 소유하고 자력으로 다수의 건물을 확보하며 수백 명의 승려를 배출한 대가람도 있었다. (298쪽)


근래에 와서 총독부가 고적 조사 사업을 수행한 결과, 낙랑·대방군 시대부터 삼국·통일신라·고려 이후의 고적·유물이 발견되어 고대 예술사에 커다란 빛을 주게 되었다. 불충분하지만 이미 앞에서 서술한 바와 같이 이들 유물은 중국·일본과의 관계를 명확하게 해주었다. (349쪽)


#關野貞 (1868∼1935)


+


《조선미술사》(세키노 타다시/심우성 옮김, 동문선, 2003)


문양이 있는 와당(瓦當 : 막새기와)은 주로

→ 무늬가 있는 막새기와는 으레

→ 그림이 있는 막새는 흔히

94쪽


이들 고분은 석총과 토총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 무덤은 돌무덤과 흙무덤 두 가지가 있다

→ 묏등은 돌뫼와 흙뫼로 나눌 수 있다

101쪽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을 쓴다. 《풀꽃나무 들숲노래 동시 따라쓰기》,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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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없이 많은 바닥을 닦으며 - 어느 여성 청소노동자의 일기
마이아 에켈뢰브 지음, 이유진 옮김 / 교유서가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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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책시렁 445


《수없이 많은 바닥을 닦으며》

 마이아 에켈뢰브

 이유진 옮김

 교유서가

 2022.8.1.



  1970년에 스웨덴에서 처음 나온 《수없이 많은 바닥을 닦으며》는 “어느 여성 청소노동자의 일기”라고 합니다. ‘청소부’라는 이름이 낮춤말이라 여기면서 ‘청소노동자’로 쓰기도 하고, ‘도시환경 담당 주임’이라든지 ‘환경미화원’이라든지 ‘미화 근로자’라든지 ‘환경실무원’으로 자꾸자꾸 바꾸기도 합니다. 그런데 ‘환경미화’라는 이름은 그야말로 ‘미화’하는 셈입니다. 겉만 꾸미는 그럴싸한 허울입니다. 집살림을 한다면 누구나 쓸고닦는 일을 할 노릇입니다. 한집을 이루는 모든 사람이 쓸고닦아야지요.


  그렇지만 이 나라는 아주 오래도록 우두머리는 빗자루나 걸레를 안 쥐었습니다. 위아래로 가르는 굴레에서는 ‘쓸고닦기(청소)’는 애들이나 밑사람이나 가시내한테만 시키는 후줄근한 ‘밑바닥일’로 삼았습니다. 살아가고 살림하는 길에 ‘청소(쓸고닦기)’를 안 할 까닭이 없어요. ‘청소’라는 한자말을 ‘환경미화’라는 한자말로 바꾼들, 더구나 ‘환경실무원’이나 ‘환경미화원’처럼 ‘-원’이라는 한자를 붙인들, 일자리는 안 바뀝니다.


  우리말로 헤아린다면 ‘말끔님’이나 ‘깔끔님’이나 ‘반짝님’으로 나타낼 만합니다. 쓸고닦은 자리는 말끔하거나 깔끔하게 거듭납니다. 쓸고닦기에 반짝반짝합니다. 말끔하게 가꾸고 깔끔하게 돌보고 반짝반짝 바꾸기에 ‘말끔님·깔끔님·반짝님’이라 할 만하고 ‘깨끗님·꽃가꿈이’라 해도 어울립니다.


  그나저나 《수없이 많은 바닥을 닦으며》는 꽤 예전에 말끔님으로 일하던 분이 하루하루 남긴 글을 그러모았다고 하는데, 옮김말씨가 너무 먹물스럽습니다. 줄거리는 찬찬히 짚으면서 돌아볼 만하되, 옮김말씨는 “일하는 사람이 쓴 말” 같지 않습니다. 옮긴이 스스로 빗자루와 걸레를 쥐고서 아침부터 저녁까지 일할 적에도 이런 말씨로 하루글을 남길는지요? “살림하는 사람이 쓰는 말”이란 ‘살림말’입니다. 말끔하게 가꾸는 살림길을 추스르는 사람은 “책상물림이 머리로 꾸미는 억지스런 말”을 안 씁니다.


  “수없이 많은 바닥을 닦으며” 같은 책이름도 퍽 아리송합니다. 말끔지기는 “바닥을 숱하게 닦을” 뿐이거든요. “수없이 많은 바닥”을 닦지 않아요. “바닥을 + 숱하게 + 닦”습니다. 아이를 돌보는 여느 어머니가 어떤 말로 살림과 삶과 사랑을 그리는지 헤아려야지 싶습니다. ‘엄마말’이란 ‘모국어’가 아닌 ‘살림말’이자 ‘숲말’이고 ‘사랑말’입니다. 아이곁에서 나란히 어깨동무하는 아늑하며 포근한 말씨인 “일하고 살림하는 엄마가 쓰는 말”입니다.


ㅍㄹㄴ


오늘날 청년들은 많은 것을 할 수 있어야 한다. 일자리를 얻으려면 온갖 종류의 학위가 있어야 한다. (66쪽)


가난하다는 것은 가슴속에 항상 큰 응어리가 맺혀 있는 것이나 다름없다. 담배를 피우거나 다른 식으로 낭비할 때 늘 양심의 가책을 느끼는 것이다. (93쪽)


‘우리’ 택시 기사들이 셰익스피어도 읽지 않는다고 그녀는 어떻게 저리도 확신할 수 있는 것일까? 우리 저임금노동자 대부분은 고전 읽기 교육을 받지는 못했지만 알아서 책을 읽는 사람은 많을 것이다. (104쪽)


그들은 골프가 저렴한 스포츠라는 점에 관해 이야기했다. 300크루나만 있으면 골프 클럽 회원이 될 수 있고 200크루나에서 300크루나만 있으면 골프채를 구할 수 있다고. (198쪽)


스웨덴은 광고비로 20억 크루나를 쓴다. 개발도상국 지원금 액수보다 다섯 배 많다고 텔레비전에서 말했다. (227쪽)


춤을 추며 노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거의 잊었다. (247쪽)


빌리고 싶었던 것은 타자기가 아니었다. 저 공간에서 잘 지내지 못했다. 타자기는 내가 싫어하는 수석 사회복지사 자리에 있었다. 그곳을 청소할 때마다 그녀가 무시하는 말들이 떠올랐다. (295쪽)


#Rapport fran en skurhink (1970년) #MajaEkelof


+


《수없이 많은 바닥을 닦으며》(마이아 에켈뢰브/이유진 옮김, 교유서가, 2022)


쌍둥이 유아차는 끌기 무겁다

→ 나란둥이 수레는 끌기 무겁다

11쪽


지금 그날을 되씹으며 내 이웃이 스웨덴 사회의 시민들이 받을 사회적 혜택에 대해 신문에서 읽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 오늘 그날을 되씹는다. 이웃이 글로 스웨덴사람이 받을 보람을 읽은 줄 깨닫는다

11쪽


아이들에게 필요한 옷의 목록을 작성하라고 말한다

→ 아이들이 입을 옷을 죽 적으라고 말한다

→ 아이들이 입을 옷을 적어 보라고 말한다

→ 아이한테 챙길 옷을 써 보라고 말한다

14쪽


야간학교 가을학기 소집이 있었다

→ 밤배움터 가을마당으로 모였다

→ 별밤배움 가을자리로 모였다

32쪽


이 화려한 테이블에서 좋은 시간을 보낼 수 있었던 것은

→ 이 눈부신 자리에서 즐겁게 보낼 수 있었으니

→ 이 빛나는 자리에서 신나게 보낼 수 있었는데

39쪽


시청 청사로 향했다

→ 고을터로 갔다

→ 고장터로 갔다

40쪽


내가 과잉보호하는 엄마가 아니었다면 더 좋았을 텐데

→ 내가 감싸는 엄마가 아니라면 나을 텐데

→ 내가 두남두는 엄마가 아니라면 될 텐데

58쪽


크리스마스 햄이 삶아지고 있고

→ 섣달 고기떡을 삶고

→ 섣달잔치 함박고기를 삶고

61쪽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따금씩 계속 글을 쓸 것 같다

→ 그러나 이따금 글을 쓸 듯하다

→ 그래도 이따금 글을 이을 듯하다

68쪽


우측통행은 아직 실행되지 않고 있다

→ 오른쪽은 아직 펴지 않는다

→ 오른걷기는 아직 하지 않는다

→ 오른길은 아직 가지 않는다

81쪽


왜냐하면 즐거움을 너무 급작스럽게 느끼기보다는 나들이를 기다리는 설렘의 즐거움이 있기 때문이다

→ 너무 급작스러울 때보다 설레며 기다릴 때에 나들이가 즐겁다

→ 너무 급작스러울 때보다 기다리며 설렐 때에 나들이가 즐겁다

110쪽


그후 아이들에게 줄 음식을 만들었고

→ 이러고 아이들한테 밥을 차려줬고

→ 이런 뒤 아이들 밥을 지었고

165쪽


농장에 갈 수는 없어도 주말에 날씨가 좋으면 좋다

→ 숲밭에 못 가도 이레끝 날씨가 맑으면 즐겁다

→ 한밭에 못 가도 이레끝 날씨가 개면 개운하다

190쪽


이 세상에는 협잡질이 너무 많다

→ 온누리에는 거짓질이 너무 많다

→ 이 땅에는 뻥질이 너무 많다

→ 이곳에는 노가리가 너무 많다

207쪽


내가 쓴 무언가를 본 누군가가 있을 수 있다고

→ 내가 쓴 무엇을 본 누가 있을 수 있다고

→ 내가 무엇을 쓰면 누가 볼 수 있다고

226쪽


분수를 영리하게 바꾸는 법을 배우지 못하고

→ 나눔값을 똘똘하게 바꾸는 길을 못 배우고

→ 나눔치를 밝게 바꾸는 길을 배우지 못하고

229쪽


이곳에 와서 담소를 나누었다

→ 이곳에 와서 얘기를 했다

→ 이곳에 와서 도란도란했다

255쪽


이 광경은 나에게 어린 시절 기억을 떠오르게 한다

→ 이 모습을 보니 어릴적이 떠오른다

→ 이 모습에 어린날이 떠오른다

259쪽


모든 슬픔의 한가운데에서 즐거운 시간이었다

→ 모두 슬프지만 즐거운 한때였다

→ 모두 슬픈 날이지만 즐거웠다

→ 모두 슬픈데 즐겁게 보냈다

265쪽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을 쓴다. 《풀꽃나무 들숲노래 동시 따라쓰기》,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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뉘앙스 - 성동혁 산문집
성동혁 지음 / 수오서재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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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책읽기 / 인문책시렁 2025.8.7.

인문책시렁 438


《뉘앙스》

 성동혁

 수오서재

 2021.12.3.



  시인이나 소설가가 되려고 태어나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태어난’ 누구나 노래님이자 수다꾼이거든요. 태어난 사람은 모두 이녁 삶을 노래하는 하루를 살면서, 스스로 이 하루를 도란도란 재잘재잘 이야기꽃으로 피웁니다.


  우리는 저마다 삶지기요 살림꾼입니다. 다 다르게 태어난 하루를 배웁니다. 언제나 다르게 흐르는 오늘을 사랑합니다. 늘 새롭게 마주하는 이 삶을 차곡차곡 가꾸고 돌봅니다.


  《뉘앙스》는 글님이 보낸 아픈날을 차곡차곡 여민 꾸러미입니다. 아프고 앓기에 으레 드러눕습니다. 드러누워서 기다리는 몸이지만, 숱한 이웃과 동무가 손길을 나누면서 예전에는 알 길이 없던 나날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웃는 하루는 웃음길입니다. 우는 하루는 울음길입니다. 이 삶에는 꽃길과 가싯길이 나란합니다. 꽃길이기에 늘 웃지 않고, 가싯길이라서 늘 울지 않아요. 어느 길에서건 스스로 노래님인 줄 알아보기에 웃고, 어느 곳에서나 스스로 수다꾼인 줄 알아채기에 울음꽃을 피웁니다.


  바깥말 ‘뉘앙스’는 우리말로 ‘말결’이나 ‘말가락’이나 ‘말느낌’이나 ‘말씨’나 ‘말품새’를 가리킵니다. 낱말 한 마디에 흐르는 숨결을 읽으면서 물결처럼 노래가 번집니다. 낱말 두 마디에 감도는 가락을 헤아리면서 바람처럼 노래가 피어납니다. 낱말 석 마디를 가만히 느끼면서 스스로 노래씨앗을 낳고, 낱말 넉 마디를 짚는 동안 둘레를 고루 품는 푸른길을 걷습니다.


  걷기에 읽습니다. 안 걸으면 못 읽습니다. 아프고 앓기에 잇습니다. 아프거나 앓는 곳이 없으면 몸과 마음을 잇는 길을 모릅니다.


ㅍㄹㄴ


어쩌면 나는 정말 시인이 되기 위해 여전히 걷는 사람일 수도 있다. (114쪽)


이제 꽃을 사지 않는다. 꽃을 사지 않은 지 꽤 된 듯하다. 꽃을 사는 일은 원고료로 할 수 있는 가장 값진 일이었다. (148쪽)


출판사는 편당 15만 원, 10만 원, 5만 원으로 시의 가치를 책정했다. 선생님, 선생님이라고 존칭을 쓰지만 그들이 나의 노동을 존중하지 않는다는 것을 느낄 때가 있다. 나는 선생님이라는 칭호를 듣고 싶은 게 아니다. (152쪽)


하지만 저는 이제 조금 지쳤고 그저 조용히, 누군가를 보기 위해서가 아니라 오로지 책을 읽기 위해 서점을 들르고 싶었어요. 작가의 말을 직접 듣는 것이 아니라 작가가 쓴 문장을 조용히 읽고 싶었어요. (158쪽)


창작기금을 탄 기념으로 엄마에게 선물을 해 준다고 했더니 엄마는 그 돈 아껴 일 년 동안 잘 쓰라며 됐다고 했다. 그러던 엄마가 핸드폰 케이스가 고장 났다며 선물로 케이스 하나 사 달라고 했다. (200쪽)


+


《뉘앙스》(성동혁, 수오서재, 2021)


주인분께서 제게 한 말이었습니다

→ 지기님이 제게 한 말입니다

4쪽


많은 것이 피곤했고 쌓이는 자극들이 불편했습니다

→ 여러모로 지치고 쌓인다고 느껴 힘들었습니다

→ 이래저래 고단하고 쌓이네 싶어 거북했습니다

4쪽


지상이 가을을 담는 커다란 그릇이 될 것이다

→ 땅이 가을을 담는 커다란 그릇이 된다

15쪽


우는 슬픔보다 울지 않는 슬픔이 더 슬프게 느껴질 때가 있다

→ 우는 슬픔보다 울지 않는 슬픔이 더 슬플 때가 있다

→ 울 때보다 울지 않을 때 더 슬프다고 느끼기도 한다

16쪽


누구에게나 친구는 특별한 존재겠지만

→ 누구한테나 동무는 남다르겠지만

→ 누구한테나 벗은 대단하겠지만

→ 누구한테나 동무는 다르겠지만

18쪽


많은 불가능 속에서 살고 있다

→ 거의 못 하며 산다

→ 못 하는 일에 싸여 산다

→ 할 수 없는 일이 많다

20쪽


원고지에 편지를 쓰는 게 나를 평온케 했다

→ 글종이에 글월을 쓰면 따사롭다

→ 종이에 글월을 쓰면 고즈넉하다

→ 종이에 글을 쓰면 차분하다

22쪽


누군가와 같은 공간을 쓴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

→ 누구랑 같은 곳을 쓰는 뜻은 무엇일까

→ 누구하고 같은 곳을 쓰는 삶은 어떠할까

25쪽


투고한 날에는 근사한 식당에 가서

→ 글보낸 날에는 멋진 밥집에 가서

31쪽


마비가 왔고, 숨이 점점 안 쉬어지다가 기절을 했어

→ 굳었고, 숨을 차츰 못 쉬다가 뻗었어

→ 뻣뻣했고, 숨을 더 못 쉬다가 쓰러졌어

38쪽


나름의 방법으로 하루하루를 잘 지내려 하고 있다

→ 이럭저럭 하루하루를 잘 지내려 한다

→ 그냥그냥 하루하루를 잘 지내려 한다

57쪽


많은 배려 속에서 살고 있다

→ 곁에서 늘 돌봐준다

→ 둘레에서 많이 봐준다

→ 헤아려 주는 분이 많다

59쪽


상대를 감싼 모든 것이 그의 언어임을 알고 풍경을 눈여겨볼 때가 있다

→ 그를 감싼 모두가 그이 말이기에 둘레를 눈여겨볼 때가 있다

→ 그대를 감싼 모두가 그대 말이라서 빛을 눈여겨볼 때가 있다

67쪽


여전히 슈트가 어울리지 않고 직장도 없어

→ 아직 갖춘옷이 안 어울리고 일터도 없어

→ 아직 차린옷이 안 어울리고 일자리도 없어

124쪽


쓰레기는 시간을 갖기 마련이다

→ 쓰레기는 하루를 담게 마련이다

→ 쓰레기는 삶을 품게 마련이다

164쪽


비성수기의 텅 빈 바다를 혼자만의 것처럼 누렸었다

→ 뜸한철에 텅빈 바다를 혼자만 누렸다

→ 쉬는철에 텅빈 바다를 혼자만 누렸다

171쪽


기저질환을 가진 어린이들과 보호자들 또한 긴장 속에서 지내고 있다

→ 밑앓이인 어린이와 어버이도 애태우며 지낸다

→ 속앓이인 어린이와 엄마아빠도 떨면서 지낸다

189쪽


미니멀리스트를 꿈꾸지만 호더에 더 가깝다

→ 작은이를 꿈꾸지만 자꾸 긁어모은다

→ 단출하기를 꿈꾸지만 또 쌓고 만다

→ 조촐하기를 꿈꾸지만 쟁여놓고 만다

195쪽


슬픈 일이 많았지만 감사 헌금을 낸다

→ 슬픈 일이 많았지만 꽃돈을 낸다

→ 슬픈 일이 많았지만 꽃바침돈을 낸다

206쪽


누군가에게 문학은 액세서리이고, 누군가에겐 지금 여기의 좌표이며

→ 누구한테 글은 노리개이고, 누구한텐 오늘 여기 눈금이며

→ 누구한테 글은 겉멋이고, 누구한텐 오늘 여기 길눈이며

219쪽


기억이 안 날 만큼 휘발된 얼굴 또한 많다

→ 안 떠오를 만큼 사라진 얼굴 또한 많다

→ 생각 안 날 만큼 스러진 얼굴 또한 많다

223쪽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을 쓴다. 《풀꽃나무 들숲노래 동시 따라쓰기》,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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