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루뭄바를 죽였는가 - 콩고민주공화국 초대 총리 살해와 그 배후
에마뉘엘 제라르.브루스 쿠클릭 지음, 이인숙 옮김 / 삼천리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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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책시렁 115


《누가 루뭄바를 죽였는가》

 에마뉘엘 제라르·브루스 쿠를릭

 이인숙 옮김

 삼천리

 2018.11.16.



1880년부터 1910년까지 레오폴 2세와 그의 대리인들은 흑인을 사람이 아닌 소모품으로 보던 이들이었다. 아프리카 사람들은 광산업체의 주주를 위해서 일했다 … 유럽인들은 콩고를 노예노동으로 몰아넣었다. 죽지는 않았지만 흑인들은 실적이 기대에 미치지 못했을 때 손이 잘리거나 처자식이 총에 맞았고, 그도 아니면 끔찍한 시코트로 지독한 구타를 당해야 했다. (51쪽)


루뭄바는 합법적인 권력을 가졌지만 그걸 지탱할 힘이 없는 사람의 점점 커져 가는 괴로움을 전형적으로 보여주었다. 루뭄바에 대한 반대는 중앙정부의 적인 제국주의자와 분리주의자들의 힘을 키워 주었다. 그리고 루뭄바는 반대 세력이 외국 비밀 정보기관의 지원을 등에 업고 있다는 점을 알고 있었다. (139쪽)


권력을 좇겠다는 야심이 이들을 루뭄바에 대적하게 만들었다. 탐욕스러운 서방 외교는 이런 아프리카인들의 마음을 파고들며 공을 들였고 ……. (196쪽)


미국과 미국이 고용한 청부업자는 살인자들과 관련이 없다고 말했다. 1960년에 석 달 내내 살인을 궁리했으면서도 이 자들은 이렇게 말했다. (217쪽)


이 일을 꾸민 자들은 시신의 모든 흔적을 지워야 했다. 루뭄바의 무덤이 발견되기라도 한다면 문제가 될 게 뻔했다. 1월 26일 무농고는 다시 한 번 수터를 보내 마지막으로 한 번 더 시신들을 파냈다. 그러고는 이제 시신을 아예 사라지게 만들었다. (315쪽)



  한 사람이 다스리는 나라란 없습니다. 어느 한 사람이 우두머리가 되어 나라를 이끌어야 하지 않아요. 모든 사람이 저마다 이 별을 가꾸거나 지키거나 돌보는 일꾼이거든요. 한 사람만 잘한다고 될 일이 아닌, 모든 사람이 저마다 다른 곳에서 서로서로 즐겁게 새로운 하루를 지어서 어울릴 적에 아름다운 별이고 나라이며 마을이 된다고 느낍니다.


  뛰어난 우두머리가 한 사람 나타나서 슬기롭게 이끌 노릇이 아니라고 여깁니다. 모든 사람이 저마다 다른 일꾼이자 노래님으로 활짝활짝 웃고 춤추는 살림을 지을 노릇이지 싶어요. 나라지기나 벼슬아치가 따로 있을 까닭이 없어요. 시장이나 군수가 딱히 있어야 하지 않아요. 힘을 움켜쥐어 뭔가 맺고 풀 사람이 아닌, 사랑을 나누고 꿈을 펴며 이야기를 꽃피울 사람으로 살아갈 노릇이라고 여깁니다.


  콩고라는 나라에서 1925년에 태어났으나 1961년에 미국 비밀경찰을 등에 업은 유럽 권력자하고 콩고 권력자 틈바구니에서 총에 맞아 죽은 이를 돌아보는 《누가 루뭄바를 죽였는가》(에마뉘엘 제라르·브루스 쿠를릭/이인숙 옮김, 삼천리, 2018)라는 책이 있습니다. 이 책은 루뭄바라는 사람이 콩고 정치나 터전을 놓고서 어떻게 애썼는가를 밝히면서, 루뭄바 한 사람이 대단할 수 없고 대단하지 않기도 하다며, 그러나 루뭄바를 둘러싼 숱한 다른 정치꾼은 거의 다 그들 주머니를 채우는 길에 허덕이면서 콩고라는 나라는 민주나 평화나 복지하고 아주 멀리 떨어져야 했다는 대목을 찬찬히 들려주기도 합니다.


  갓 싹트는 민주·평과·자유를 지키는 길에는 뛰어난 우두머리 한 사람이 있어야 하지 않는다고, 정치일꾼이든 공공기관 벼슬아치이건, 여느 마을에서 살림을 가꾸는 사람이건, 모두 슬기로운 눈빛이 되지 않는다면, 우리는 스스로 제 머리에 총을 겨누는 셈이라는 이야기를 다룬다고 할 만합니다. 그렇지요. 누가 루뭄바를 죽였을까요? 미국 비밀경찰뿐일까요? 벨기에 권력자뿐일까요? 콩고 권력자나 군대뿐일까요? 푼돈을 거머쥐고 심부름질을 한 허수아비뿐일까요?


  박근혜 한 사람을 끌어내린다고 해서 나라가 달라지지 않습니다. 국회의원이나 시장이나 군수가 모두 매한가지인걸요. 게다가 공공기관 벼슬아치는 그때나 이제나 똑같은 사람이며, 썩 안 달라집니다. 우두머리 하나만 물갈이할 노릇이 아니라, 싹 쓸어낼 노릇이면서, 우리 모두 스스로 거듭날 노릇입니다. 새로 우두머리에 들어선 이나 그이를 둘러싼 이들은 ‘우두머리짓’을 합니다. 그러니 어느 나라에든 우두머리란 부질없습니다. 군더더기이지요. 손수 삶을 짓지 않고 살림을 가꾸지 않는 이는 정치판뿐 아니라 경제판이나 교육판이나 그 어느 판에도 함부로 깃들지 않아야 할 노릇입니다.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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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셔널 지오그래픽의 과학, 우주에서 마음까지
브루스 스터츠 외 지음, 정영목 옮김 / 지호 / 200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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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책시렁 108


《내셔널 지오그래픽의 과학, 우주에서 마음까지》

 존 랭곤·브루스 스터츠·앤드레아 지아노폴루스

 정영목 옮김

 지호

 2008.12.22.



우리에게 이런 발견이 중요해 보이는 것은 소리 같은 자연적인 대상에서도 수학적인 법칙을 찾았기 때문이다. (185쪽)


운동은 물질세계를 가능하게 해준다. 운동이 없으면 우주의 변화도 없을 것이다. 변화가 없으면 시간도 없을 것이다. (283쪽)


대부분의 바이러스는 병을 일으키지 않는다. 나아가서 어떤 바이러스에 노출되면 그 바이러스나 가까운 친척 바이러스에 면역이 생긴다. 중국인은 천 년 전에 이 사실을 깨닫고 이 지식을 활용하여 천연두에 이미 감염된 사람의 살갗으로 만든 가루를 조제해서 천연두 발생을 통제했다. (335쪽)


육천 년은 긴 시간처럼 보인다. 그러나 지구에서 인간의 역사가 기록된 기간은 지질학적 시간이라는 잣대로 보자면 눈 깜짝할 사이이다. (390쪽)


과학은 보통 빠르게 변화하기 때문에 가장 좋고 믿을 만한 자료는 대개 과학자들 자신의 기초 저작들이거나, 가장 최근에 특정 분야를 다룬 개론서와 분석들이다. (462쪽)



  이 별에서 살아가는 과학자는 여러 연장을 갈고닦아서 머나먼 별을 살핀다거나 눈앞에 있는 아주 작은 알갱이를 들여다보려고 합니다. 이렇게 여러 연장을 바탕으로 무언가 보고 느껴서 배울 만해요.


  흔히 과학은 ‘뭇눈(객관)’이라 하지만 이는 올바르지 않은 말이라고 느껴요. 왜냐하면 ‘어느 과학자가 본 눈’을 이야기할 뿐이거든요. 그리고 과학자라는 사람 스스로 ‘느끼’지 않는다면 그이가 무엇을 ‘보았’는지 모릅니다. 느끼기에 본 바를 ‘생각’할 수 있고, 이 생각을 글이나 숫자로 엮어서 풀어내지요.


  유럽하고 미국에서 과학자로 일한 사람들 발자취를 바탕으로 별하고 사람 이야기를 풀어내려고 한 《내셔널 지오그래픽의 과학, 우주에서 마음까지》(존 랭곤·브루스 스터츠·앤드레아 지아노폴루스/정영목 옮김, 지호, 2008)를 곰곰이 읽었습니다. 책이름에 ‘우주’뿐 아니라 ‘마음’을 읽어서 밝히겠노라 하고 적는데, 막상 마음 이야기는 한 줌뿐이고 갖가지 학설하고 이론하고 공식이 바탕이 됩니다.


  생각해 볼 노릇입니다. 학설하고 이론하고 공식이란 ‘과학자 한 사람이 보고 느낀 바를 갈무리한 길’입니다. 우리는 학설이나 이론이나 공식대로 살지 않아요. 통계대로 살지도 않습니다.


  혈액형에 따라, 별자리에 따라, 남녀에 따라, 어른아이에 따라, 겨레나 나라에 따라, 고장이나 마을에 따라, 이래저래 통계에 학설에 이론에 공식을 들이밀곤 하지만, 다 다르기에 ‘뭇눈’을 세운다는 길은 말이 되지 않아요. 다시 말해, 과학을 알자면 과학이론이나 과학학설이나 과학공식을 모두 집어치워야 합니다. 그저 과학을 뭇눈 아닌 우리 눈으로 보아야 할 뿐입니다.


  내가 너를 알려면 오직 너를 볼 뿐입니다. 다른 숱한 사람을 헤아리고서 통계를 잡거나 이론이나 학설을 세운들 내가 너를 알까요? 네가 나를 알 적에도 매한가지예요. 아저씨는 다들 어떻다는 둥, 그 나이에는 어떻다는 둥, 이런 틀을 세운다면 아무것도 알 길이 없습니다.


  과학이든 수학이든 문학이든 철학이든 ‘다 다른 눈으로 다 다른 빛을 보면서 다 다른 길을 찾아서 다 다른 삶을 맞아들이’면서 실마리를 풉니다. 우리가 세우거나 얻을 공식이나 이론이나 학설이 있다면 ‘어떤 공식이나 이론이나 학설도 쓸모없다’라는 공식이나 이론이나 학설 하나입니다.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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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일은 없다 - 위대한 사랑이 있을 뿐
문숙 지음 / 샨티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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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책시렁 105 : 학교를 하루쯤 빠져도 대수롭지 않아


《위대한 일은 없다》

 문숙

 샨티

 2019.10.18.



우리는 모두 뭔가 ‘위대한’ 일을 하기 위해서 너무나 열심히 노력한다. 그런데 그 위대한 일이라는 것이 과연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깊이 생각해 보지 않는다. (27∼28쪽)


“중학교 들어간 이후 결석한 날 하루도 없었지?” (딸) 조이가 당연하다는 듯이 그렇다고 대답했다. “엄마는 네가 특별한 경험을 한번 해봤으면 해.” “무슨?” “학교 결석.” (43쪽)


로데오라는 생뚱맞은 이름의 거리가 도시의 중심에 떡하니 들어앉은 이유가 무엇인지 …… 그렇게 이름 지은 그 누군가에게도 묻고 싶다. “그 길이 진달래 길이어서는 안 되는 이유가 무엇인가요?” (108쪽)


우리는 빛 가운데서 아름답게 빛나는 또 하나의 빛이다. 빛을 받고 자란 것으로 먹을거리를 삼고, 바람을 맞으며 춤을 추고 하늘에 떠 있는 구름을 보며 꿈을 키운다. (156쪽)


내가 할 일은 사랑이 아닌 어떤 것도 내 안으로 들어올 수 없도록 무조건 나 자신을 보호하는 것이다. (191쪽)



  머리를 감거나 몸을 씻는 김에 빨래를 하곤 합니다. 거꾸로 빨래를 하는 김에 머리를 감거나 씻기도 합니다. 물을 쓸 적에 두 가지를 나란히 하는 셈입니다. 요새는 빨래틀을 곧잘 쓰지만, 씻는그릇에 빨래감을 담가 놓고서 조물조물하기를 즐깁니다. 이렇게 손으로 주무르면 옷가지를 누린 아이들이나 곁님 숨결을 느끼기도 하고, 이 옷을 말끔히 빨고 나서 기쁘게 입을 모습이 떠오르기도 합니다.


  아이들이 무럭무럭 컸기에 오줌기저귀를 빨래하는 일은 없습니다. 아이들 기저귀랑 저고리랑 바지랑 이불을 모두 손빨래로 하면서 보냈는데요, 요즈음 가끔 돌아보면 예전에 참 씩씩하게 잘 살았구나 싶더군요. 기저귀 빨래란 대단한 일은 아니지만, 아기가 어떤 마음으로 무엇을 느끼며 자라면 즐거울까 하고 생각하니 딱히 힘들거나 고되지 않았습니다.


  삶책 《위대한 일은 없다》(문숙, 샨티, 2019)를 읽고서 곰곰이 그려 보았어요. 대단하지 않은 일도, 대단한 일도 따로 없겠지요. 그렇다면 저한테 대단하지 않으면서 대단했던, 또는 대단했으나 대단하지 않은 일은 무엇이었나 하고 돌아보았습니다.


  우리 손길을 받아서 아이들이 자라고, 우리도 어버이 손길을 받으며 어른이 되었어요. 어버이가 들려준 말을 하나씩 받아들이면서 생각을 살찌웠고, 이 말은 다시 새로운 아이들한테 물려주는 말이 되어요.


  날마다 뜨고 지는 해는 날마다 다른 볕이랑 빛이랑 살을 베풉니다. 이곳저곳 어디나 드리우는 해님이면서, 누구한테는 적게 가거나 많이 가지 않는 해님입니다. 그러니 해한테 님이란 이름을 붙일 테지요. 나무도 풀도 꽃도 그렇습니다. 누구한테 더 향긋하게 퍼지지 않고, 누구한테 그늘을 더 주지 않아요.


  대단한 나무도 별이 없겠지만, 모든 나무하고 별이 대단하지 싶습니다. 대단한 새나 풀벌레가 없을 테지만, 모든 새하고 풀벌레가 들려주는 노래가 대단하지 싶습니다. 《위대한 일은 없다》를 쓴 문숙 님은 이녁 아이가 학교를 빠지는, 이른바 하루이틀쯤 빼먹고 노닥거리는 재미난 일을 누려 보기를 바랍니다. 숙제가 많다고 징징거리던 아이는 막상 하루이틀쯤 학교를 빠지자고 하는 말에 선뜻 나서지 못하더라고, ‘남들 다 학교에 있을 한낮’에 멀쩡히 집에서 뒹굴다가 어머니하고 마실을 다니는 일이 너무 멋쩍다고 이야기했다지요.


  학교도 회사도 하루이틀쯤 빠질 수 있습니다. 대단한 일이 아니에요. 몸이 아파서 빠질 수 있고, 그냥 느긋하게 오롯이 아침볕 낮볕 저녁볕을 누리려고 빠질 수 있습니다. 학교에서 치르는 시험에서 굳이 100점을 받아야 하지 않아요. 98점도 88점도 68점도 48점도 28점도 좋습니다. 대단하지도 대수롭지도 않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하나하나 새롭게 바라보는 때에 우리 눈길이 트이지 싶어요.


  쳇바퀴를 따라서 갈 까닭이 없는 하루인 줄, 늦게 가거나 일찍 가도 좋은 마실길인 줄, 하루에 책을 열 자락 읽어도 좋지만 달포 동안 책 한 자락 안 읽어도 좋은 줄 느낀다면 삶이 달라질 만하지 싶어요. 첫째로 갈 일도 막째로 갈 일도 없어요. 저마다 다른 우리는 저마다 다른 걸음으로 가면 됩니다. 이 저마다 다른 걸음이란 언제나 우리 몸이며 마음을 또렷하게 바라보는 사랑일 테지요.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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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만난 사람은 모두 다 이상했다
김해자 지음 / 아비요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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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책시렁 107 : 사람이 다 똑같다면 무시무시하겠지요


《내가 만난 사람은 모두 다 이상했다》

 김해자

 아비요

 2013.7.7.



내 친구는 개는 물론 나무와도 대화한다. 산골 길고 긴 하루 내내 말 거는 사람은 없지만 내 친구가 말 걸 친구는 무진장 많다. 언젠가 아궁이 옆에 있는 개복숭아나무에 칡넝쿨이 감겨 올라가 힘들어 하는 것 같아서 칡넝쿨에게 말했단다. “너네 날 자리가 아닌데 저렇게 개복숭아가 숨도 못 쉬고 꽃도 못 피고 하니 할 수 없이 너네를 쳐내야겠다. 미안하다.” (61쪽)


산에 올라가다 아이들이 내 IQ를 물었다 … 그 아이가 초콜릿 하나를 내 손에 꼭 쥐어주며 귀에 대고 속삭였다. “쌤, IQ 나빠도 괜찮아요. 마음씨만 좋으면 되죠 뭐.” 웃음을 참다 그 아이를 꼭 껴안고 말았다. (65쪽)


도토리 한 알에는 미래의 떡갈나무가 이미 다 들어 있다. 그 작은 한 알에 들어 있는 미래의 나무가 그를 올려주고 밀어주고 당겨주면서 도토리에 뿌리가 뻗고 줄기가 솟고 잎이 생겨 피어난다. (165쪽)


우리 자랄 때만 해도 대부분의 부모들은 먹이고 재워 주기만 했다. 소처럼 방목했다고나 할까. 산과 들, 논과 밭, 풀과 나무, 돼지와 소 닭 등 열거하기 불가능할 정도의 무변광대한 동물과 식물과 흙과 돌과 바람이 우리를 키웠다. (290쪽)


아침이 밝으면 늘 새로운 날이듯 정신은 늘 초짜여야 한다. (328쪽)



  이제는 어떠할까 모르겠습니다만, 나무나 풀하고 말을 섞는 사람을 돌았다고 여기는 눈은 좀 수그러들었지 싶습니다. 돌이나 집하고 말을 주고받는다든지, 새나 벌레하고 말을 나누는 사람을 미쳤다고 여기는 눈도 좀 잦아들었지 싶어요. 그러나 아직 사람 아닌 숨결하고 말을 하는 사람을 얄궂게 바라보는 눈길은 있다고 느낍니다.


  우리는 언제부터 나무랑 말을 못하는 사람이 되었을까요? 어쩌면 고작 백 해가 안 된 일일는지 모릅니다. 신문도 책도 없던, 아니 흙을 만지며 씨앗을 심어 가꾸는 사람이 가득하던 무렵에는, 으레 누구나 흙이랑 말을 하고 풀잎이며 바람하고도 얘기를 했지 싶어요. 고작 백 해 앞서까지만 해도, 그때에는 벼슬아치나 나리가 아니라면 마땅히 나무랑 말할 줄 알던 삶이었다고 느껴요.


  시인 아주머니가 만난 사람들 이야기를 담은 《내가 만난 사람은 모두 다 이상했다》(김해자, 아비요, 2013)를 펴면 재미난 사람들 모습이 잇달아 흐릅니다. 나무하고 이야기하는 벗님, 시인 아주머니가 아이큐 낮다는 말을 듣고는 걱정하지 않아도 좋다고 달래는 어린이, 그리고 시인 아주머니 스스로 떠올리는 숱한 이웃이 새삼스럽습니다.


  아무래도 시인 아주머니부터 ‘아리송한’ 사람일 수 있어요. 시인 아주머니가 만나는 사람이 하나같이 아리송하다기보다 아리송한 사람이 아리송한 사람을 만난달까요. 그리고 아리송한 사람은 저마다 다르게 아름답다지요. 알 수 없는 깊이하고 너비로 사랑을 나누는 그들 숨결은 더없이 알차면서 알뜰하다지요.


  그러고 보면 그렇습니다. 다 똑같아 보이는 곳은 재미가 없어요. 모든 사람이 똑같은 차림새에, 키에, 몸매에, 얼굴에, 목소리에, 생김새에, 몸짓에, 또 똑같은 자가용을 몰고 똑같은 아파트에 살며 똑같은 일을 하고 똑같은 집안 모습이라면, 그야말로 무시무시하지 않을까요?


  우리는 다 다른 집에서 다 다른 사랑을 받으며 태어난 숨결인 만큼, 언제나 다 다른 빛으로 자라서 다 다른 어른으로 설 적에 아름답지 싶습니다. 모두 다른 사람이니 어디로 튈지 알 수 없어요. 참으로 아리송한 우리들입니다. 그래서 이 아리송한 맛으로 아름다운 길을 걷고, 그 아름다운 길에서 알뜰살뜰 오순도순 어깨동무를 하면서 즐거운 하루가 될 만하지 싶습니다.


  새해에 올려다보는 별빛은 지난해와 다르게 눈부십니다. 아하, 그렇지요. 밤하늘에 바라보는 별 가운데 똑같은 별이란 하나도 없습니다. 아리송한 노릇이지만, 이렇게 다 다른 별빛이 새삼스레 어우러져 빛나니, 밤도 낮도 언제나 아름답겠지요.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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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농의 공부 - 소설가 농부가 텃밭에서 배운 작고 서툰 손의 힘
조두진 지음 / 유유 / 201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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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책시렁 111 : 도시야말로 텃밭이 꼭 있어야


《소농의 공부》

 조두진

 유유

 2017.10.14.



내 아들은 나보다 100배 이상 돼지고기를 먹었지만, 나만큼 돼지고기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할 기회는 없었다. (18쪽)


사람은 겨울에 수박이나 딸기를 먹지 않아도 탈이 나지 않는다. 그런데도 우리는 겨울에도 여름철 과일을 먹기 위해 수많은 오염원을 가동하고, 이를 비용으로 지불한다. (37쪽)


사과 재배 농가에서는 추석 대목시장을 겨냥해 사과를 출하하기 위해 성장촉진제를 살포한다. (55쪽)


농산물 유통 담당 공무원과 술자리에 마주앉아 어지간히 취한 뒤에 물었다. “진짜 전수 조사합니까?” “잔류농약 검사비용이 얼만데 전수 조사합니까? 하나하나 다 조사하면 친환경 농산물 값이 지금보다 훨씬 비싸져야 합니다.” (110쪽)


자연 속에서 성장하는 동안 아이들은 자연과 친숙해지고, 계절을 잘 느끼고, 자연을 관찰하는 능력이 확실히 발달한다. (206쪽)



  서울에서 사는 아이라면 서울에 있는 살림을 늘 바라보고 느끼면서 잘 알아보기 마련입니다. 숲을 품고서 사는 아이라면 숲을 둘러싼 살림을 언제나 마주보고 받아들이면서 잘 알아차리기 마련이에요. 어느 아이는 날씨를 알리는 방송을 들어야 날씨를 압니다. 어느 아이는 바람을 맛보거나 읽으면서 날씨를 알아요. 어느 아이는 씽 달리는 자동차가 어느 이름인지 알고, 어느 아이는 자동차가 지나가거나 말거나 안 쳐다봅니다.


  슥 스치고 지나가는 나무가 무슨 나무인지 알아보는 아이가 있다면, 살짝 나무를 스치고 지나갔는지 아닌지 못 느끼는 아이가 있어요. 꽃내음을 물씬 느끼며 알아보는 아이가 있고, 꽃내음이 나는지 안 나는지 안 쳐다보는 아이가 있어요.


  조그마한 책 《소농의 공부》(조두진, 유유, 2017)는 도시란 터전에서 살아가면서도 텃밭을 누리고 싶은 마음을 들려줍니다. 도시이기에 더더욱 텃밭이 대수롭다는 뜻을 밝히고, 도시라면 더더구나 스스로 앞장서서 곳곳에 텃밭을 돌보면서 숨통이 트이는 길을 찾아야 한다고 얘기해요.


  텃밭은 어떤 곳일까요? 집 곁에 있는 땅뙈기입니다. 푸성귀를 심어서 거두기도 하는 땅이자, 온갖 풀을 만나는 땅이에요. 푸성귀 아닌 나무를 심을 수 있는 땅이면서, 맨손이며 맨발로 흙을 만질 만한 땅입니다.


  서울에 공원만 있다면 심심하겠지요. 보기좋게 가꾸는 나무하고 거님길만 있는 공원에서라면 스스로 살아서 숨쉬는 노래가 흐르기 어렵겠지요. 철마다 다른 빛을 느끼고, 살림마다 새로운 풀빛을 먹는 곳이 텃밭이지 싶습니다.


  작은 책 《소농의 공부》는 도시에서 텃밭이 늘어나기를 바라면서 글쓴님 스스로 살펴서 알아낸 이야기를 찬찬히 보탭니다. 어떤 과일에 어떤 성장촉진제가 얼마나 쓰였는가를 알려줍니다. 밥상머리 살림을 지킬 공무원이 막상 ‘잔류농약 검사’를 허술하게 한다는 대목도 슬며시 곁들입니다.


  굳이 너른 땅을 누리지 않아도 되겠지요. 푸성귀를 거두는 밭 한 자락을, 아이들이 흙놀이를 할 풀밭 한 자락을, 나무그늘을 누리며 나무열매도 맛볼 한 자락을, 이웃하고 어우러져서 도란도란 수다꽃을 피우려고 걸상을 놓을 한 자락을 다같이 누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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