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어의 영혼 - 경이로운 의식의 세계로 떠나는 희한한 탐험
사이 몽고메리 지음, 최로미 옮김 / 글항아리 /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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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책시렁 122


《문어의 영혼》

 사이 몽고메리

 최로미 옮김

 글항아리

 2017.6.16.



“뇌 없는 동물이 무언가를 ‘원할’ 수 있을까? 더구나 자신의 욕구를 다른 종에게 전달한다는 것이 가능할까?” (42쪽)


“한낱 문어가 이처럼 영리하다면, 저 너머에 이처럼 영리할 수 있는 동물이 얼마나 많을까요? 우리가 의식과 개성과 기억 따위는 없다고 생각하는 동물들 말이에요.” (79쪽)


“될 대로 되라지. 문어가 지루해하잖아! 그러니 우리 문어랑 놀아 보자고.” (107쪽)


“문어의 생각을 읽는 어려움은 표현이 너무 풍부하다는 데 있어요.” 난 아쿠아리움으로 돌아가며 말했다. 내가 알던 어떤 종보다도 표현이 더 풍부했다. “우리에게는 시와 춤과 음악과 문학이 있죠. 하지만 우리에게 갖가지 음성과 의상과 화필과 점토와 기술이 있더라도, 문어가 자기 피부만으로 말할 수 있는 표현에 따라갈 수나 있을까요?” (112쪽)


“대개 물고기들은 당신을 관찰하며 알아봅니다. 하지만 이런 식으로 쳐다보지는 않죠. 문어들은 마치 쳐다보면서 학습하는 듯했어요.” (301쪽)



  문어를 알고 싶으면 어떻게 하면 될까요. 문어를 다룬 책을 찾아볼까요? 문어를 다루는 이야기를 들려주거나 가르치는 대학교에 가면 될까요? 문어를 사고파는 가게나 저잣거리를 찾아가면 될까요?


  아니면 스스로 바다에 뛰어들어 문어를 만나면 될까요? 바다에 뛰어들지 않더라도 우리가 살아가는 곳에서 가만히 눈을 감고 마음을 틔워서 문어를 마음소리로 부르고는 마음말을 주고받으면 될까요?


  물살이터에 잡아 놓고 기르면서 사람들한테 구경을 시키는 문어를 만난 이야기를 다룬 《문어의 영혼》(사이 몽고메리/최로미 옮김, 글항아리, 2017)을 읽다가 꽤 지쳤습니다. 첫머리에서는 ‘문어라고 하는 숨결’은 ‘사람 눈이나 생각으로 섣불리 보면 안 된다’고 하는 대목을 짚는가 싶더니, 자꾸자꾸 곁다리로 빠지고 말더군요.


  무엇보다도 곁에서 늘 마주하는 문어가 아닌, 물살이터에 갇힌 문어를 마주하는데, 돌봄이가 들려주는 말에 기대어 생각할 뿐, 글쓴이 스스로 문어한테 마음으로 말을 거는 대목이 너무 적습니다. 아니, 없다시피 합니다.


  아직도 ‘과학(생물학)’이라고 하면, 마음으로 마음을 읽어서 길을 살피고 찾아내는 이야기를 다루지 못하는 셈일까요. 또는 이 책을 쓴 분이 미처 못 짚거나 못 다룰 뿐일까요.


  인문책 《문어의 영혼》은 ‘구경한 문어’ 이야기를 ‘물살이터 돌봄이 목소리’를 따와서 엮기만 했다면 차라리 나았겠다고 생각합니다. 문어하고 동떨어진 얘기를 자꾸 끼워넣느라 막상 ‘문어가 어떤 숨결이며 넋이고 마음이자 빛인가’ 하는 대목은 뒷전이 되더군요. 문어가 온몸으로 사람을 지켜보고 마주하며 생각을 읽고 마음을 느끼듯, 우리도 문어를 온마음으로 어깨동무하면서 이 별을 처음부터 다시 돌아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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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적 마음 - 김응교 인문여행에세이, 2018 세종도서 교앙부분 타산지석S 시리즈
김응교 지음 / 책읽는고양이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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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책시렁 123


《일본적 마음》

 김응교

 책읽는고양이

 2017.11.30.



가령 ‘안녕하세요’는 일본어로 ‘곤니찌와(今日は)’인데, 우리말로 직역하면 그저 ‘오늘은……’ 하고 여운을 둔 말에 불과하다. 뒷말이 어떻든 인사가 되는 것이다. 일종의 생략과 여운을 즐기는 것이다. (21쪽)


일본에서 살다 보면 나도 모르게 ‘숙명’이라는 단어에 익숙해진다. (58쪽)


거대한 권력의 폭력은 모든 사회에 스며들어 폭력을 행사하고, 그 폭력은 질서라는 이름으로 합리화된다. (85쪽)


아름답게 미화된 죽음, 큰 것을 위해서는 죽어도 된다는 생각이 문화물 곳곳에 스며 있다. 이런 생각 때문에 일본이란 나라의 큰 거짓말은 미화된 죽음올 감추어져 유지되어 오고 있다는 것을 몇몇 일본 지성인이 솔직히 인정하기도 한다. (146쪽)


곳곳에 전쟁패배로 우는 아이들 모습, 미군의 폭격으로 파괴된 사진들이 여기저기 붙어 있다. 내가 만일 일본 아이였다면, 저런 사진을 보면서 복수심에 불긋불긋 치솟았을 법하다. 아닌 게 아니라 제2차 세계대전 때는 청년이 모자라, 나중에는 소학교 학생들까지 동원하기까지 했다. 폭탄을 안고 적진을 뚫고 들어간 소년특공대는 유명했다. 그때 죽은 아이들이 신으로 등록되어 있고 ……. (191쪽)



  일본하고 한국은 참으로 가깝습니다. 오늘은 두 덩이로 나뉜 나라이지만, 지난날에는 하나로 있던 터전이었을는지 모릅니다. 일본만이 아니라 이 별에 있는 모든 나라가 처음에는 하나였을 테지요. 하나로 흐르던 터전이 조금씩 골골샅샅 흩어지면서 다 다른 날씨에 다 다른 살림에 다 다른 말이며 이야기로 흘러가지 싶습니다.


  이 일본은 한국으로 숱하게 쳐들어왔다고 하지만, 한국에서도 곧잘 일본을 치러 갔습니다. 한쪽에서만 쳐들어가지 않았습니다. 여느 사람들 사이에서는 마음이며 살림을 나누는 길이 있되, 나라지기나 우두머리쯤 되면 싸울아비를 거느리면서 힘자랑을 하기 일쑤였어요. 일본이 더 죽음을 곱게 꾸민다거나 우러른다고는 느끼지 않아요. 한국도 ‘싸우다 죽은 이’를 받들거나 섬깁니다.


  우리는 역사나 사회나 문화를 어느 자리에서 어느 눈으로 읽을 마음일까요? 《일본적 마음》(김응교, 책읽는고양이, 2017)은 일본답거나 일본스러운 마음을 이루는 바탕은 무엇일까 하고 헤아린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책을 찬찬히 읽노라면 ‘오늘 일본은 이러하구나.’ 싶으면서 ‘오늘 한국도 이러한데?’ 싶습니다. 두 나라는 얼핏 달라 보여도 속으로는 한 갈래라고 할까요.


  한자말 ‘평화’는 “밥을 나누는 길”을 말한다고 합니다만, ‘밥나눔’은 아무하고나 하지 않습니다. 사이가 좋아야 비로소 나눕니다. 사이좋을 적에는 밥뿐 아니라 말도 나누고 생각도 나누지요. 무엇이든 나누는 둘 사이에는 이야기가 흐르면서 시나브로 사랑이 피어나요. 다시 말해, 참다운 평화라면 사랑으로 가는 길이라고 여겨요. 그저 다투지 않는 모습이라면 ‘안 다툼’일 뿐, ‘평화도 사랑도’ 되지 못한다고 느낍니다.


  이웃나라 마음을 읽는 길이란, 우락부락한 나라지기나 벼슬아치나 우두머리가 휘두르는 정치·사회·문화가 아닌, 여느 자리에서 살림을 짓는 사람들이 어깨동무하는 사랑을 찾으려는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따사로운 일본 마음을 찾고, 포근한 한국 마음을 찾아야지 싶습니다. 넉넉한 일본 마음을 아끼고, 푸짐한 한국 마음을 보듬어야지 싶습니다. 바야흐로 사랑길로, 참길로, 살림길로 가기를 바라요.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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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랫동안 내가 싫었습니다 - 자기혐오를 벗어나는 7개의 스위치 자기만의 방
오카 에리 지음, 다키나미 유카리 그림, 황국영 옮김 / 휴머니스트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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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책시렁 119


《오랫동안 내가 싫었습니다》

 오카 에리 글

 D.유카리 그림

 황국영 옮김

 자기만의방

 2020.1.7.



한 곳을 깨끗이 치우자 다른 공간의 지저분함이 선명하게 눈에 들어오는 체험을 이때 했습니다. (35쪽)


병원에서는 약으로 증상을 억제시켜 주었지만, 행복해지는 방법까지 가르쳐 주지는 않았습니다. (61쪽)


‘설령 나를 버리려 했던 사람이 있었다 하더라도 그건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야. 나는 나일 뿐. 그 사람이 나를 업신여기거나 부정해도 내 가치는 떨어지지 않아.’ (123쪽)


“쓰레기 더미 한가운데서 몸을 일으켜 페트병을 치운 네가 참 대견해. 그날부터 인생이 즐거워졌어. 고마워.” (170쪽)



  아무리 뛰어난 국회나 시청·군청이나 병원이나 학교나 연구실이나 절집이 있더라도 우리 삶을 즐겁거나 아름답게 가꾸어 주지 않습니다. 저마다 전문이라고 하는 자리에 있을 적에는 ‘처방·행정·치료·복지’란 이름이 있을 뿐이거든요. 사랑이라는 손길로 다스려서 짓는 밥이 아닌, 솜씨로만 뛰어나게 지은 밥으로는 즐겁거나 넉넉하게 누리는 살림으로 나아가지 않아요.


  뛰어난 솜씨를 뽐낸 글이나 그림이나 사진으로는 가슴을 적시지 못합니다. 가슴을 적시는 글이나 그림이나 사진이라면, 언제나 오롯이 사랑일 때입니다. 그저 즐겁게 노래하는 사랑을 담아서 쓰기에 마음을 찡 울리는 글이며 그림이며 사진이 됩니다.


  쓰레기로 가득한 밑바닥에서 뒹굴던 사람이 이 쓰레기를 어떻게 하나둘 걷어냈는가 하는 이야기를 담은 《오랫동안 내가 싫었습니다》(오카 에리/황국영 옮김, 자기만의방, 2020)는 ‘싫은 모습’을 아주 신물이 나도록 지켜보면서 조금씩 나아간 발자취를 그립니다. ‘오랫동안’이라 했는데, 얼마나 긴 나날이었을까요. 그리고 신물나도록 지켜본 ‘싫은 나’를 걷어내고 나니, 그 나날이 뜻밖에도 얼마나 안 긴 발자취였을까요.


  하기까지는 언제나 더디거나 오래 걸리는 듯합니다. 하고 나면 아무것이 아닐 뿐더러 그리 힘들지도 않습니다. 다만, 한꺼번에 하자면 벅차겠지요. 하루아침에 하늘을 훨훨 날 수 있을 테지만, 서두를 까닭이란 없어요. 하나씩 하면 되거든요.


  한 땀 두 땀 모여 이루는 뜨개옷이에요. 마름하는 천도 실이 한 올씩 씨줄날줄로 모입니다. 멀디멀어 보이기에 첫발을 뗄 뿐이에요. 아주 조그마한 일을 하고서 스스로 빙그레 웃음짓습니다. 아이를 바라보셔요. 그 삐뚤빼뚤한 글씨를 하나 그리기까지 얼마나 오랜 나날을 손가락에 손목에 힘을 주고서 바들바들 떠는가요.


  어른이 보기에 글씨야 슥슥 그리면 될 뿐인지 모르나, 아이는 글쓰기라는 밭으로 들어서기까지 엄청나게 땀흘리고 마음쓰면서 온사랑으로 하루를 살았습니다. 잘하지 못한다면 잘하지 못할 뿐이에요. 오늘부터 다시 한 발짝을 내딛으면서 차근차근 가면 됩니다. 가다가 넘어지면? 넘어지면 툭툭 털어도 되고, 으앙 울어도 되어요. 뒤돌아가도 좋고요. 구태여 빨리 가야 하지도, 얼른 가야 하지도 않습니다. 언제라도 환하게 노래하면서 가면 되어요. ㅅㄴㄹ



  느낌글을 마치면서 뭔가 찜찜해서 글쓴이 이름 ‘岡映里’으로 일본 아마존을 찾아보았습니다다. 일본에서 나온 글쓴이 책은 “I Love The Way You Be Yourself Depression by Changed Flattering Come with 7 Switch”이거나 “自分を好きになろう”라는 책이름입니다. 게다가 겉그림이 확 다르군요. 가벼운 차림으로 노래를 들으며 바람을 쐬며 걷는 아가씨가 나옵니다. 일본 책이름을 한국말로 풀면 “나를 좋아하자”입니다. 그래요, 책을 읽으면서도 어쩐지 책이름이 찜찜했는데, ‘싫은 나를 바닥까지 드러내는 줄거리’가 아니라 ‘어떻게 하면 나를 스스로 좋아할 수 있지? 나를 좋아하고 싶어!’ 하는 가느다란 목소리였어요. “오랫동안 내가 싫었습니다”란 책이름이 나쁘지 않지만, 글쓴이 뜻인 “나를 좋아하자”하고는 확 다릅니다. 일본 글쓴이한테 여쭈고서 책이름을 한글판에서 바꿀 수도 있습니다만, 이래서야 처음 들려주려고 했던 뜻하고는 아주 엇나가기 쉽습니다.


책이름을 엉뚱하게 바꾼 출판사가 짜증스러워서 별점을 4->3으로 바꿉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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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이 사람을 죽였습니다 - 가장 연약하고 고독한 이름, 가해자가족
아베 교코 지음, 이경림 옮김 / 이너북스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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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책시렁 117


《아들이 사람을 죽였습니다》

 아베 교코

 이경림 옮김

 이너북스

 2019.7.20.



아들은 왜, 어떻게 사람을 죽일 수 있었을까? 부모로서 적어도 그 이유를 알 수 있을 때까지는 살아야 되지 않을까? 죽는 것은 그다음에 죽어도 된다. 다케오는 그런 생각이 들었다. (32쪽)


가해자가족이 되고 난 후 마리는 세상의 부조리에 익숙해졌다. 말도 안 되는 소리를 들어야 하고 사과할 필요가 없는 상황에서도 머리를 숙여야만 했다 … 자신의 범죄만으로도 버거운 오빠는 아직까지 가해자가족이 겪었던 사회적 비난과 어려움을 알 수 없다. (56쪽)


가해자가족은 누구에게, 언제까지, 어떠한 책임을 져야 하는 것일까? 사례에 따라 다르겠지만 가족이 져야 하는 책임에 대해서 명확히 하는 것이 가해자가족지원의 중요 역할이기도 하다. (91쪽)


가해자가족이 범죄자가족이라는 낙인을 주지 않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 왜냐하면 필자의 이제까지의 지원 경험상 범죄의 배경에는 반드시 어떠한 차별이 존재했기 때문이다. (185쪽)


“저 아이도 아버지와 똑같이 될 수도 있지만 그렇지 않을 수도 있어.” 그 순간 이상하게도 공포심이 없어졌다. K선생님은 사람에 대한 차별은 그 사람의 가능성을 빼앗는 것이라고 말해 주었다. (197쪽)



  서로 때려서 누가 이기는가를 겨루는 운동경기가 있습니다. 이른바 ‘권투’라 합니다. 이 운동경기는 맨주먹으로 겨루지 않습니다. 부드럽고 폭신한 천으로 두껍게 주먹을 감싸지요. 그러나 사람들은 맨주먹에 가까운 채 겨루는 판을 바랍니다. 주먹뿐 아니라 다리를 써서 서로 때리고 막으면서 누가 센가를 겨루도록 붙이지요. 이러한 다툼판은 큰돈이 오갑니다. 더 잘 때려서 더 빨리 때려눕히는 자리에 서면 돈을 잘 법니다.


  지구에서 몇 나라를 빼고는 모두 군대를 거느립니다. 이웃나라가 쳐들어오지 못하도록 막는다는 군대라고 내세우지만, 정작 이 군대를 앞세워 이웃나라로 쳐들어가는 나라가 많을 뿐 아니라, 이 군대를 내세워 옆나라를 윽박지르는 나라가 많아요.


  이 삶터가 아름답다면 주먹다툼이 돈벌이판이 되도록 굴러가지 않으리라 생각합니다. 이 터전이 어깨동무하는 길로 간다면 전쟁무기랑 군대는 바로 없애리라 생각해요. 《아들이 사람을 죽였습니다》(아베 교코/이경림 옮김, 이너북스, 2019)를 곰곰이 읽습니다. 얼결에 사람을 죽인 이가 있을 테고, 오래도록 시달리거나 들볶이다 못해 성풀이로 주먹을 휘둘러 사람을 죽인 이가 있을 테지요. 가난이나 돈 때문에 사람을 죽인다든지, 다른 사람이 죽였으나 뒤집어쓴 이가 있을 테고요.


  사람을 죽인 이는 ‘잘못’했습니다. 그렇다면 이 잘못값은 어느 만큼 얼마나 치르거나 물어야 할까요? 또 ‘사람을 죽인 이 곁에 있는 사람들’은 어떤 화살이나 손가락질을 받아야 할까요?


  괴로운 나머지 남을 죽이고야 마는 사람이 있고, 괴롭다 못해 스스로 죽는 사람이 있습니다. 남을 죽이는 사람이 있어도 멀쩡한 삶터가 아니요, 스스로 죽는 사람이 나와서 아름다운 터전이 아닙니다.


  잘못값을 치르도록 하더라도 사람을 죽이는 일은 사그라들지 않으리라 느껴요. 우리 삶터가 아름답거나 착하거나 즐겁거나 사랑스러운 길로 가지 않는다면 말이지요. 잘못값을 얼마나 어떻게 치러야 하는가를 놓고도 제대로 틀을 세울 노릇이면서, 우리 삶터부터 누구나 살기 좋도록 가꾸고, 따돌림이나 들볶임이나 괴롭힘질이나 막짓이 모두 사라지도록 바꾸어 내야지 싶습니다. 애꿎게 죽는 이뿐 아니라, 슬프게 마음이 다치는 이가 모두 사라질 나라에 마을이 되어야지 싶어요.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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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노 요코 돼지 - 이쪽 돼지 저쪽 돼지 / 여윈 새끼 돼지의 하루 사노 요코 판타스틱 이야기
사노 요코 지음, 이지수 옮김 / 마음산책 / 201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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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책시렁 121 - ‘집’에 사는가 ‘우리’에 갇혔는가


《사노 요코 돼지》

 사노 요쿄

 이지수 옮김

 마음산책

 2018.2.25.



어느 날 트럭이 왔습니다. 많은 동물이 돼지에게 낯선 기계를 들고 와서 숲속의 나무를 베어 넘겼습니다. 동물들은 그곳에 붉은 지붕과 녹색 지붕을 가진 예쁜 집을 수십 채나 지었습니다. 돼지는 돼지우리에서 집이 지어지는 광경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쿨쿨 잤습니다. (17쪽)


“여긴 누구 땅입니까?” 여우 신사가 물었습니다. 돼지는 멀뚱히 있었습니다. “난 내내 여기서 살았는데요.” 돼지가 대답했습니다. “누구 땅에서요?” “누구라니 …….” 돼지는 열심히 떠올려 보았습니다. (27쪽)


돼지는 버스에서 내리자 빌딩을 올려다보며 “허어” 하고 놀란 뒤 “에취” 재채기를 했습니다. 거리에서는 숲과 다른 냄새가 났습니다. (39쪽)


돼지는 돼지우리 앞에 벌렁 드러누워 가만히 하늘을 바라봅니다. 하늘에는 별이 한가득 빛나고 있습니다. 돼지는 별을 보며 잠들었습니다. (93쪽)


여윈 새끼 돼지는 하루 종일 할 일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할 일이 아무것도 없다는 건 뭐든 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139쪽)



  오늘 우리는 발전소를 세워서 전기를 얻습니다. 발전소는 석탄이나 석유나 우라늄을 때어 전기를 일으키고, 이 전기는 송전탑을 거쳐서 도시로 가며, 도시에서는 전봇대를 거쳐서 집집으로 갑니다. 발전소는 백 해나 이백 해를 가지 않습니다. 아니, 쉰 해쯤 되면 낡아서 아슬하다 하지요. 더구나 석탄·석유·우라늄을 때면서 쓰레기가 나오고, 이 쓰레기를 건사할 쓰레기터를 마련해야 하며, 이 쓰레기를 다스려서 걸러내기까지 오래디오랜 나날이 흘러야 합니다.


  백 해는커녕 쉰 해쯤 잘 굴러가는 자동차는 없다시피 합니다. 자동차 바퀴뿐 아니라 자동차를 이룬 이 몸통이나 저 톱니를 꾸준히 갈아야 합니다. 낡은 자동차는 어디로 갈까요. 자동차 몸통을 이룬 플라스틱은 어떻게 될까요. 낡은 바퀴는 어디로 가나요.


  마치 북중미 텃사람이 들려주는 이야기 같은 줄거리가 흐르는 《사노 요코 돼지》(사노 요쿄/이지수 옮김, 마음산책, 2018)입니다. 돼지는 처음에 그냥 돼지였다지만, 숲에서 조용히 살던, 내 땅도 네 땅도 아닌 저마다 알맞게 보금자리를 누리고 하루를 지으며 삶을 사랑하던 돼지는, 이 숲을 갈아엎어 도시 물질문명으로 바꾼 이들한테 밀려나야 합니다. 이러다가 도시 한켠에서 회사원 노릇을 해야 합니다.

  무엇이 삶일까요? 무엇이 사랑일까요? 무엇이 사람 또는 목숨 또는 숨결일까요?


  중국 우한에서 비롯했다는 돌림앓이가 지구를 뒤덮습니다. 그런데 여태 지구를 뒤덮은 돌림앓이는 하나같이 ‘사람들이 좁은 곳에 잔뜩 모여서 물질문명을 이룬 큰고장’에서 비롯하기 일쑤였습니다. 또는 물질문명을 이루도록 공장이나 발전소를 크게 올린 곳에서 비롯했습니다.


  앞으로 이 별을 어떻게 바꾸어야 서로 아늑하면서 튼튼히 지낼 만할까요. 아스팔트하고 시멘트를 덮은 땅에는 씨앗 한 톨 못 묻을 뿐 아니라, 감자 한 알도 못 캡니다. 손전화를 누르기만 해도 된다는 ‘스마트폰 수경재배 온실(스마트팜)’이라지만, 이런 길로 자꾸 치닫는 끝에는 무엇이 있을까요. 별을 바라보지 않는 길 끝자락에는, 들꽃이 나누어 주는 숨결이 없는 길 끄트머리에는 무엇이 있나요.


  사노 요코 할머니는 ‘돼지’가 돼지답도록 살아가는 길이, 사람이 사람답도록 살림하는 길이며, 서로서로 사랑이 되는 길이라고 넌저시 노래했구나 싶어요. 그런데, 이 책 《사노 요코 돼지》에서 바로잡을 곳이 있습니다. 숲에서 돼지가 깃드는 집을 ‘돼지우리’로 옮겼는데, ‘우리’는 가두어서 고기로 삼으려는 짐승을 둔 데입니다. 돼지가 사는 숲집은 ‘돼지집’이라 해야겠지요.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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