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봇과 일자리 - 어떻게 준비할 것인가?
나이절 캐머런 지음, 고현석 옮김 / 이음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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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으로 삶읽기 633


《로봇과 일자리》

 나이절 캐머런

 고현석 옮김

 이음

 2018.3.27.



이 문제와 관련해 나는 개인적인 경험에서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다. (9쪽)


바로 얼마 전에는 세계은행의 경제학자들로부터 초청장이 날아왔다. 나는 공포를 느끼면서 그들의 ‘소굴’로 갔다. 흥미로웠던 것은, 내가 말을 마쳤을 때 아무도 내게 ‘경제학’에 의하면 모든 것이 잘될 것이라고 말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11쪽)


우리는 대토론의 시작 선상에 서 있다. 어떻게 보면 이 문제는 간단하다. 그것은 로봇이 우리의 일자리를 빼앗을 것을 우리가 걱정해야 하는지 아닌지에 대한 것이다. (18쪽)



《로봇과 일자리》(나이절 캐머런/고현석 옮김, 이음, 2018)를 읽었다. 로봇 탓에 일자리를 걱정하는구나 싶으면서도, 로봇이 우리 삶자리에 얼마나 어떻게 깃들었는가부터 따지지 않으면 얘기가 샛길로 빠지기 쉽겠다고 느낀다. 셈틀도 손전화도 로봇 가운데 하나이다. 글붓이나 그림붓조차 로봇이곤 하다. 빨래틀은 어떤가. 요새는 비질을 맡는 로봇이 있고, 먹을거리를 채우는 로봇이 있다. 오늘날에는 ‘로봇을 만들고, 팔고, 다루고, 고치고, 알리는 일자리’가 엄청나게 많다. 씽씽이(자동차)조차 로봇이 될 뿐 아니라, 어디에서나 웬만한 일자리는 ‘로봇하고 얽힌’다. 다시 말하자면, 로봇 탓에 일자리가 사라질 일이란 없는데, 우리 스스로 ‘일’이 무엇인가를 자꾸 잊은 채 서울키우기(도시확장)에 사로잡힌다면, 머잖아 ‘로봇을 만들고 다루고 고치고 알리는 일자리’조차 로봇이 하겠지. 사람이라면 숲살림을 알아야 한다. 숲살림을 모르는 채 서울살림으로만 가면 이런 책이 자꾸자꾸 나오겠네 싶다.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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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작은 화판 - 권윤덕의 그림책 이야기
권윤덕 지음 / 돌베개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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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책시렁 141


《나의 작은 화판》

 권윤덕

 돌베개

 2020.5.29.



나는 이 책을 만들면서, 마치 이 일을 하려고 그동안 여러 사람을 만나고 도움을 받고 배운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22쪽)


《엄마, 난 이 옷이 좋아요》를 그리고 쓰면서, 지우고 싶었던 나의 어린 시절에도 아름답게 반짝거리며 빛을 내는 소중한 일상이 있었다는 걸 발견했다. (61쪽)


내가 상상했던 대로 중국집 주방은 황홀했다. 요리사가 일하는 모습은 멋졌다. 나는 이런 것들을 글과 그림에 담았다. (175쪽)


어린이들에게 전쟁이 나쁘다고 말하면서 어른들은 갖은 이유를 들어 계속 전쟁을 벌이고, 환경을 보호해야 한다고 가르치면서 자신은 더 많은 부를 위해 환경파괴를 아랑곳하지 않는다. (221쪽)


사실 어린이들은 ‘배틀그라운드’ 게임에 익숙해 있었고, 총은 이미 일상에 깊숙이 들어와 있었으며, 총에 대한 정보는 어디나 널려 있었다. (328쪽)



  2020년대로 접어든 요즈음 우리나라에서는 ‘어른끼리 즐기는 그림책’이 꽤 나옵니다. 그림책을 어린이만 즐길 까닭이 없으니 ‘어른끼리 즐기는 그림책’을 얼마든지 그려낼 만하지요. 다만 ‘그림책이 왜 그림책인가’를 조금 더 헤아린다면 ‘어린이하고 어른이 어깨동무하는 살림길을 노래하는 그림책’으로 피어나리라 봅니다.


  그림책은 그림으로 이야기를 짓는 책입니다. 삶을 읽은 눈길을 그림으로 들려주고, 삶을 읽어낼 눈빛을 그림으로 담아내는 그림책이지요.


  글에 앞서 그림이 있습니다. 글이란 그림을 간추려서 수다를 피우는 무늬라고 할 만해요. 그림은 수다스럽지 않습니다. 그림 한 칸에 온갖 이야기를 품어 느긋하면서 넉넉하게 나누거든요.


  어른끼리 나누는 그림이 있습니다만, 그림책이 오늘날처럼 널리 퍼지고 읽히는 바탕은 바로 ‘이야기를 포근하게 품으면서 함께하는 길’로 그림책이 매우 좋기 때문이에요. 글은 따로 익혀야 하고 겨레나 나라마다 다릅니다. 이와 달리 그림은 글을 몰라도 누려요. 그림은 겨레나 나라를 가로지릅니다. 그림은 사람뿐 아니라 풀꽃나무랑 풀벌레랑 새랑 들짐승도 누리지요. 그야말로 울도 담도 없는 그림인 터라, 그림은 늘 ‘가장 여리거나 작지만 가장 빛나고 사랑스러운 숨결’하고 어깨동무하는 길을 걸었어요.


  《나의 작은 화판》(권윤덕, 돌베개, 2020)은 그림책을 짓는 길을 꾸준히 걸어가는 분이 이녁 발자취를 더듬는 이야기꾸러미입니다. 어떻게 처음 그림책 지음길로 접어들었는가를 밝히고, 여러 그림책을 지은 살림을 보여줍니다. 손수 지은 그림책을 둘러싼 곁이야기를 들려주고, 앞으로 새롭게 짓고 싶은 그림책 꿈을 차분히 적습니다.


  그림책을 짓는 분은 그림으로 여태 모든 말을 털어놓았어요. 먼저 그림책을 보면 그림님 마음을 환히 헤아릴 만합니다. 그런데 그림책 지음이로서 글책을 따로 썼다면, 그림책을 짓는 동안 새롭게 배운 삶이며 살림이며 사랑이 있다는 뜻이겠지요. 《나의 작은 화판》을 읽으며 바로 이 대목을 눈여겨보려 하는데, 뜻밖에 이러한 생각은 얼마 안 되지 싶습니다. 그림책이 나아갈 길, 그림책을 누리는 눈썰미, 그림책으로 가꾸는 터전, 반갑거나 아쉬운 그림책, 그림이라는 이야기로 펼 수 있는 꿈이며 사랑, 이 같은 대목을 깊고 넓게 짚지는 않는구나 싶어 살짝 아쉽기도 합니다.


  더 헤아려 보면 책이름에 ‘나의’란 일본 말씨를 넣은 대목도 아쉽습니다. ‘화판’이란 말도 썩 어린이하고 어깨동무할 만한 말씨는 아니지 싶습니다. 그림책을 그리는 길이니 ‘그림판’이란 이름이면 되는걸요. “내 작은 그림판”이지요. “이 작은 그림판”이고요. 그림책을 그림으로만 엮기도 하지만, 글을 가만히 보태어 ‘글·그림’으로 엮기도 합니다. 그림 못지않게 ‘글에 담아 마음에 씨앗으로 심을 말 한 마디’를 한결 깊고 새롭게 살피시면 좋겠습니다.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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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자와 생쥐가 한 번도 생각 못 한 것들
전김해 지음 / 지식과감성#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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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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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책시렁 142


《사자와 생쥐가 한 번도 생각 못 한 것들》

 전김해

 지식과감성

 2020.4.24.



사자는 책을 덮고 혼자 중얼거렸어요. ‘작은 생쥐가 밀림의 왕인 나를 구해 줄 수 있다니, 이것은 한 번도 생각해 보지 못한 일이야.’ (10쪽)


“바다에도 사자가 살고 있다고? 이것은 한 번도 생각해 보지 못한 일이야.” 사자는 혼자서 중얼거렸어요. (32쪽)


“천박한 땅의 세계 사람이라고요? 나무꾼님은 이 대자연의 리듬을 유지해 주는 숲속의 대장인걸요. 나무와 꽃들, 온갖 동물들이 나무꾼님의 조화로운 돌봄 아래서 만족스럽게 살아가고 있어요.” (94쪽)


“아버지! 이들이 나무꾼님을 만나도록 일부러 꾸몄을지라도, 결국 나와 나무꾼님이 사랑해서 이루어진 일이에요.” (136쪽)


“더 이상 줄 수가 없다. 천 번 만 번 기회를 주어 다시 하늘 세계로 돌아오게 하여도 너는 모자라서 다시 땅의 세계로 돌아가게 될 뿐이다.” (160쪽)



  뚜벅뚜벅 걸어다니는 오늘, 어떻게 두 다리를 놀려 걸을 수 있었나 하고 생각하지 않습니다만, 다리를 절거나 다칠 적에 새삼스레 돌아보지요. 갓 태어나 어버이 품에서 천천히 자라는 동안 ‘나만 빼고 다 걸어다니네?’ 하고 생각하면서 ‘나는 언제 저렇게 걸으려나?’ 하는 생각을 잇고 ‘저 사람들(어른)이 걷는 몸짓을 잘 보자. 잘 보면서 그 몸짓을 마음에 새기고 이 몸에 기운을 끌어올리면 걷는 날이 오겠지?’ 하면서 하루를 보내었지 싶습니다.


  우리가 아기였을 적을 떠올릴 수 있을까요. 어머니 몸에서 천천히 자라다가 어머니 몸에서 나와 ‘다른 몸’으로 살아가려고 마음을 다진 날을 되새길 수 있을까요? 우리는 어떻게 어머니 몸에서 자라다가 바깥으로 나와서 새롭게 이 삶을 누리는 ‘어버이하고 다른 넋’이 될 수 있었을까요?


  생쥐를 생쥐로만 바라보던, 아니 ‘늘 아는 대로’만 생각하던 사자가 있었다고 해요. 이 사자가 어느 날 ‘여태 생각하지 못한 길’을 처음으로 마주하면서 하루를 새롭게 살아간다는 줄거리를 들려주는 《사자와 생쥐가 한 번도 생각 못 한 것들》(전김해, 지식과감성, 2020)을 읽습니다. 사자뿐 아니라 생쥐로서도 여태 생각하지 못한 일이 많겠지요. 처음 보고, 처음 느끼고, 처음 맞닥뜨리면서, 처음으로 해보는 일도 많을 테고요.


  낯설기에 고개를 저을 수 있습니다. 낯설기에 선뜻 나서면서 해볼 만합니다. 아직 모르니 섣불리 안 다가설 만합니다. 아직 모르니 기꺼이 다가서면서 즐길 수 있어요. 뭔가 자꾸 어긋나니 고개를 떨구면서 손사래치곤 합니다. 뭔가 자꾸 어긋나기에 더욱 기운을 내어 ‘자, 그러면 이다음에는 어떻게 새로 해볼까?’ 하는 마음으로 활짝 웃기도 합니다.


  두 갈래 가운데 어느 쪽으로 가든 우리 삶입니다. ‘잘’이나 ‘안’이 아닌, 잘되고나 안되고가 아닌, 언제나 새로 맞이하는 살림이지요. 그나저나 《사자와 생쥐가 한 번도 생각 못 한 것들》은 사자하고 생쥐에다가 나무꾼 이야기를 곁들이면서 틀을 넓히는데요, 조금 가볍게 살을 덜어 단출히 엮으면 어떠했을까 싶습니다. 그림책 《생쥐와 고래》가 있어요. 아모스와 보리스 둘이 얼크러지는 깊고 너른 이야기처럼 사자하고 생쥐 사이에서도 생각날개를 활짝 펼치면서 이야기꽃을 엮는다면 한결 좋겠다고 봅니다.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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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경의 깊이 - 강요배 예술 산문
강요배 지음 / 돌베개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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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으로 삶읽기 620


《풍경의 깊이》

 강요배

 돌베개

 2020.9.11.



가슴 한복판에 변치 않는 그 무엇이 똬리를 틀고 있었다. 그 똬리에서 울리는 소리를 따라 방황해 온 궤적의 흔적이 바로 내 그림들이다. (12쪽)


오늘의 삶은 더욱 복잡하고 혼란스럽게 흘러간다. 예각화된 자극이 도처에 넘쳐나고 무한대의 정보가 교차하고 명멸한다. 우리네 삶을 외부로부터 규정한 거대한 계획들이 쉼없이 세워지고 집행된다. (24쪽)


고난의 땅을 온 육신으로 일구어 흙과 하나된 저 제주의 할머니, 저분이 스러지면 누가 이 대지를 어루만질 것인가? (34쪽)



《풍경의 깊이》(강요배, 돌베개, 2020)를 읽었다. 강요배 님 그림은 어린이책 샛그림으로 처음 만났고, 길거리에서 으레 보았으며,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으로 일하던 무렵 둘레에서 여러 그림을 보여주었다. 모든 글은 삶에서 비롯하듯, 모든 그림도 삶에서 비롯한다. 잘 쓴 글이 없듯 잘 그린 그림은 없다. 삶을 어떻게 담아내려는 눈길인가 하는 대목만 다르다. 스스로 어떻게 살며 어떻게 바라보느냐 하는 이야기가 글·그림에 녹아든다. 강요배 님 그림을 서른 해 즈음 보았는데, 늘 한켠이 쓸쓸하다. 그저 사랑하기보다는 으레 이 목소리가 불거져야 한다는 생각이 그림에 흐르니 쓸쓸하다. 제주 할머니는 제주 흙하고만 하나될까? 제주 풀꽃나무에 제주 하늘에 제주 바람하늘에 제주 물결에 제주 풀벌레랑 새하고 하나된 길이지 않을까? 할머니가 어루만지는 ‘흙’이듯, 이 흙을 이룬 데는 ‘땅’이다. ‘大地’가 아니다. 붓끝에서 힘을 녹이거나 풀어내면서 맨손으로 아이들 소꿉놀이처럼 풀꽃나무하고 흙알갱이를 더 신나게 쓰다듬으면 좋겠다. 글에도 흙내음 풀내음 바람내음 바다내음 풀벌레 노랫가락 내음을 담아낼 수 있기를.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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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염병 전쟁 - 한국전쟁과 전염병 그리고 동아시아 냉전 위생 지도
이임하 지음 / 철수와영희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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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책시렁 138


《전염병 전쟁》

 이임하

 철수와영희

 2020.6.10.



지금까지 국민방위군 사망자는 대개 얼어죽거나 굶어죽은 것으로 알려져 왔다. 그런데 상당수의 국민방위군이 전염병인 발진티푸스로 사망한 사실은 잘 알려지지 않았다. (14쪽)


위생은 경찰의 강압이 아닌 마음에서 우러나와야 하며 한 사람의 마음이 아닌 시민 또는 국민의 모든 마음을 움직여야 한다. (20쪽)


국민방위군으로 동원된 청장년들은 모두 교육대에 도착하면 군복을 배급받으리라 예상했다. 그 때문에 여분의 옷을 챙기지 않았다. 그리고 이동할 때나 교육대에서도 그들은 작은 공간에서 20∼30명씩 함께 지냈다. (91쪽)


미국에서 가장 문제가 된 지점은 바로 DDT의 항공살포였다. 하늘에서 하얀 가루 비가 내렸던 항공살포였다. 그리고 생태계를 변화시켰던 것도 항공살포였다. (144쪽)


1780년 이후부터 의사들이 작성하는 조사서에는 서민은 청결하지 못한 반면 안락한 삶을 영위하는 부르주아는 상대적으로 청결하다는 이분법이 점점 더 강조되었다. (257쪽)


엄청난 화학적 공격에도 견뎌내는 것뿐만 아니라, 시간이 흐르면서, 심지어 번성할 수 있었다. 사실, 굴복했다기보다 학질(말라리아) 모기들은 한때 강력했던 화학물질에 대한 저항력을 발달시켰고, 엄청난 양의 번식을 계속했고, 인간들에게 질병을 퍼트렸다. (325쪽)


공포심은 지금까지 지켜온 가치를 한순간에 무너뜨린다. 공포심의 조장은 정치적 의도를 갖고 있다는 점도 잊지 말아야 한다. 그리고 공포심은 곧 공격성을 드러내고 공격은 항상 약한 대상을 향한다. (333쪽)



  사랑하는 사람은 사랑으로 살아갑니다. 미워하는 사람은 미움으로 살아가요. 두려워하는 사람은 두려운 눈빛으로 살고, 꺼리는 사람은 꺼리는 몸짓으로 삽니다. 노래하는 사람이기에 노래하는 살림입니다. 놀이하는 사람이라서 놀이하는 살림이지요.


  사랑살림에는 미움도 두려움도 없어요. 미움살림에는 미움이 있을 뿐, 사랑이 없어요. 노래살림에는 노래가 바탕이면서 사랑하고 놀이가 찾아들 만합니다. 꺼림살림에는 사랑이며 노래이며 놀이를 꺼리기 일쑤이면서 자꾸자꾸 미움이나 두려움을 끌어들여요.


  돌림앓이판이 또아리를 틀 뿐 아니라 뿌리를 내리는 2020년 한복판에 태어난 《전염병 전쟁》(이임하, 철수와영희, 2020)입니다. 오늘 우리는 돌림앓이판이 되면서 사랑도 노래도 놀이도 아닌, 미움이며 두려움이며 꺼림이라는 길로 자꾸 치달으려 합니다.


  둘레를 봐요. 아픈이를 돌보거나 아끼려는 눈빛이란 어디에도 없습니다. 아픈이를 미워하거나 손가락질하거나 나무라거나 꺼리거나 두려워합니다. 아프지 않은 사람이라면 아픈이한테 ‘앞으로 한결 튼튼하게 일어서려고 몸이 바뀐단다. 이럴 적에는 느긋이 쉬렴. 풀꽃나무를 마주하는 숲에서 푸른바람하고 파란하늘을 누리면 곧 나아.’ 하고 속삭이지 않습니다. 오늘 우리는 아픈이를 외톨이로 내몰고, 모든 곳에서 가로막으면서 어떤 풀밭도 숲도 하늘도 꽃내음도 멀리하게끔 닦달합니다.


  항생제가 나타난 뒤부터 ‘항생제 중독’이란 말이 같이 불거졌습니다. 처음에는 항생제가 잘 듣는가 싶지만, 어느덧 항생제에 길들거나 버티면서 끝끝내 처음보다 사납거나 모진 판이 된다지요. 농약으로 밉벌레를 없앨 수 있을까요? 아니지요. 농약으로는 그저 우리 목숨줄을 끊을 뿐입니다. ‘약을 먹어서 낫는 삶’에 길들면 약이 없으면 못 견디는 몸이 되고, 약발이 떨어질 적에 끔찍하도록 두려운 맛을 보기 마련입니다.


  돌림앓이가 번질 적에는 왜 돌림앓이가 번지는가를 읽을 노릇입니다. 이 푸른별이 푸른별 아닌 ‘삽질별’에 ‘시멘트별’에 ‘아파트별’에 ‘싸움별’로 내몰고 말아 마침내 ‘미친별’로 치닫거든요. 예부터 우리나라뿐 아니라 어느 나라이든 마을은 서로 알맞게 떨어졌고, 집도 서로 알맞게 떨어졌습니다. 이러면서 사이에 마당이며 텃밭이며 꽃밭을 가꾸었고, 나무가 우거지도록 돌보면서 숲정이를 건사했어요. 그런데 우리나라뿐 아니라 숱한 나라를 들여다보면 큰고장은 온통 시멘트밭입니다. 찻길이 빼곡하고 자동차가 넘쳐요. 이런 판에 안 아픈 사람이 있을까요? 멀쩡하던 사람도 픽픽 쓰러질 판입니다.


  곧 죽어가려는 사람이 있기에 약도 마련해야겠습니다만, 약이 으뜸길이 될 수 없어요. 으뜸길은 숲입니다. 첫길은 풀꽃나무입니다. 이제는 아파트를 그만 지어야 하고, 앞으로는 찻길을 더 안 늘려야 합니다. 하늘나루를 줄이고, 저마다 조촐히 마을살림이며 집살림을 숲살림답게 가꾸도록 북돋울 노릇입니다. 학교는 입시지옥 아닌 배움터로 달라져야지요. 대학입시를 없애고, 고등학교를 마친 채로도 즐겁고 씩씩하게 마을일꾼이 되도록 이끄는 배움터로 거듭나야지 싶어요. 군대랑 전쟁무기가 아니라, 마을빛을 살찌우는 데에 힘을 쏟아야 할 테고요.


  다만, 이 모든 길은 푸른별 모든 나라가 같이 나아갈 노릇입니다. 남북녘도 일본도 중국도 미국도 전쟁무기를 확 줄이거나 없애면서 푸른길로 거듭나기를 빌어요. 《전염병 전쟁》은 우리나라에서 싸움판하고 얽혀 얼마나 스스로 못난 짓을 일삼았는가를 낱낱이 드러냅니다. 이 못난 짓이 사람들을 길들이거나 바보로 몰아세운 짓도 꼼꼼히 밝힙니다. 우리는 살아야 합니다. ‘우리에 갇혀 먹이만 받아먹는 고기짐승살이’가 아닌 ‘너른들에서 손수 하루를 짓는 푸른넋살이’로 가야 합니다.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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