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으며 업힌
이정임 외 지음 / 곳간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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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책읽기 / 문학읽기 2024.3.3.

인문책시렁 337


《안으며 업힌》

 이정임·박솔뫼·김비·박서련·한정현

 곳간

 2022.5.18.



  《안으며 업힌》(이정임·박솔뫼·김비·박서련·한정현, 곳간, 2022)은 부산에서 살아가고, 살아왔고, 살아내는 하루를 다섯 사람이 다섯 갈래로 다섯 눈길을 들려주는 꾸러미입니다. 골목이나 마을이나 길을 가리키는 이름을 들여다보니 부산살림을 들려주는구나 싶은데, 이런 이름을 ㄱ이나 ㄴ이나 ㄷ으로 숨기면, 부산뿐 아니라 우리나라 어느 곳에서나 으레 마주하는 살림살이라고 여길 만합니다.


  이웃을 안고 동무를 업습니다. 마음을 안고 생각을 업습니다. 하루를 안고 오늘을 업어요. 이야기를 안고 노래를 업습니다.


  품에 안기는 아이는 환하게 웃습니다. 등에 업히는 아이는 느긋이 노래하다가 꿈누리로 갑니다. 아이를 안는 어버이는 함께 포근합니다. 아이를 업고 거니는 어버이는 언제나 새록새록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비알진 기스락에 보금자리를 지은 사람들은 날마다 디딤돌을 숱하게 오르내리면서 해바라기를 합니다. 발걸음이 안 닿는 데에 꽃씨를 심고, 해가 잘 드는 데에서 푸성귀를 돌봅니다. 사람 손길이 안 닿는 데에는 개미가 풀씨를 나르고, 새가 톡 나무씨를 떨굽니다.


  살아가면서 한 발짝을 디딥니다. 살아오면서 살짝 멈추어 둘레를 봅니다. 살아내면서 서로 살림지기로 만납니다. 몸뚱이 하나를 누이는 집에서 기운을 차립니다. 두 사람이 가볍게 스칠 만한 골목을 고양이도 사뿐히 지나갑니다.


  북적북적하니 부산스러울 만하지만, 이따금 슬그머니 사람물결에서 빠져나와 구름바라기를 합니다. 가까이에 바다를 품고, 안쪽으로 마을이 넓습니다. 부릉부릉 매캐한 곁에도 새가 내려앉고, 왁자지껄한 말소리가 사그라드는 밤에 풀벌레가 살며시 나와서 어울립니다.


  이제 나라 곳곳에서 거의 사라졌지만, 예전에는 모든 고장에 책집거리나 책집골목이 있었습니다. 어느새 부산 책집골목은 꽤 수그러들었으나, 두런두런 발길이 모이고 흐르는 삶터로 잇습니다. 오늘까지 책살림을 이으며 조촐하니 어깨동무하는 책집을 품는 부산은, 서울에도 없고 다른 큰고장에 없는 삶빛이 피어난다고 할 만합니다.


  여태까지 살아낸 오랜 이야기가 있기에 새로 여미어 책 한 자락으로 꾸립니다. 이곳에서 새로 내는 이야기책은 모름지기 옛삶이게 마련입니다. 옛삶을 새책으로 엮고, 이렇게 태어난 새책은 시나브로 손길을 받아 손길책(헌책)으로 거듭납니다. 미처 손길을 못 받더라도 머잖아 손길을 받을 테고, 한참 손길을 못 타더라도 서른 해나 쉰 해 뒤에 알아볼 사람이 나타납니다.


  바로 여기에서 눈여겨볼 수 있어도 반갑습니다. 좀처럼 들여다보지 못 할 수 있습니다. 《안으며 업힌》이 속삭이는 삶노래애 귀를 기울이면서 느긋할 수 있습니다. 내 나름대로 일군 하루를 차곡차곡 갈무리해서 오붓이 말을 섞을 만합니다.


ㅅㄴㄹ


고구마를 먹고 싶은데 고구마 트럭이 오지 않는다. 배달주문을 하긴 비싸다. 어쩌면 이 불편이 마을 사람들로 하여금 채소를 키우게 한 이유일 수도 있겠다. 아니면 정착한 사람의 마음일까. (27쪽)


아무튼 옷이 없는 것도 아니고 오히려 늘 옷이 넘치는 수준인 데다가 누가 가라고 가라고 한 것도 아닌데 부산에 도착하면 왠지 발길은 국제시장으로 향하게 된다. (41쪽)


숟가락을 들고 밥덩이와 달걀프라이를 쪼개 입에 넣었다. 같이 나온 시락국 국물을 떴다. (73쪽)


한곳에서 오래 살다 보니 더 알아가는 것도 많고요. 각자의 생각이죠. 누군가는 우울할 수도 있고요. (154쪽)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우리말꽃》,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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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두환과 80년대 민주화운동 - ‘서울의봄’에서 군사정권의 종말까지 청소년과 시민을 위한 20세기 한국사 4
정해구 지음 / 역사비평사 / 201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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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책읽기 / 인문책시렁 2024.3.3.

인문책시렁 350


《전두환과 80년대 민주화운동》

 정해구

 역사비평사

 2011.5.16.



  《전두환과 80년대 민주화운동》(정해구, 역사비평사, 2011)을 새삼스레 읽습니다. 2024년에 〈건국전쟁〉이란 이름을 붙인 보임꽃이 마치 ‘다큐멘터리’라도 되는 듯이 나오더군요. 이런 거짓부렁은 아무런 삶그림(다큐)이 될 수 없습니다. 그저 거짓부렁에 눈속임에 길들이기일 뿐입니다.


  우리나라에서 2024년에 ‘망나니 이승만’을 ‘나라 아버지’로 치켜세우는 거짓부렁이 보임꽃으로 나온다면, 2054년 무렵에는 ‘얼간이 전두환’도 이와 비슷하게 기리는 거짓부렁이 보임꽃으로 나올 수 있을 듯합니다.


  우리가 스스로 눈뜨려 하지 않으면 거짓부렁에 놀아납니다. 우리가 스스로 눈감은 채 힘·돈·이름에 사로잡혀서 멱살질만 해댄다면, 앞으로 아이들은 우리 발자취를 잊을 뿐 아니라, 우리 앞길마저 잃어버릴 만합니다.


  망나니나 얼간이가 잘못했기에 그들을 돌로 쳐죽여야 하지 않습니다. 서정주나 고은 같은 얼치기도 매한가지입니다. 이들을 바위로 쳐죽여야 할 까닭이 없습니다. 그저 이들 민낯을 낱낱이 밝혀서 어떤 허물이었는지 남기고서, 이제부터는 망나니가 힘을 부리지 않도록, 오늘부터는 얼간이가 이름을 날리지 않도록, 앞으로는 얼치기가 돈을 거머쥐지 않도록, 나라를 아름다이 가꿀 노릇입니다.


  그런데 《전두환과 80년대 민주화운동》도 썩 잘 여민 꾸러미는 아닙니다. 이미 나온 다른 꾸러미를 간추렸을 뿐입니다. 이 꾸러미를 쓴 분도, 다른 꾸러미를 쓴 분도, 다들 입으로는 들불(민주화운동·민주화항쟁)이란 이름을 외지만, 막상 들사람 눈높이로 글을 쓰거나 여미지 않습니다. 무엇보다도 이 책 어느 곳에도 들사람 이야기는 한 줄로도 없습니다. 온통 벼슬판(정치)과 물결판(운동권)에서 맴돌 뿐입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이 땅이 이만큼 날개를 펴고 숨통을 튼 바탕은 몇몇 ‘길잡이(운동권 인사)’ 때문이 아닙니다. 이름을 안 남기고서 이 땅을 어질게 일군 숱한 순이돌이가 이 땅과 나라를 이끌었어요. 서울에서 몇 사람이 모이고, 부산에서 어느 길을 차지하고, 광주에서 어떤 일이 있었다고 하고 적바림하는 글은 온통 ‘위’일 뿐, ‘밑(사람들)’이 하나도 안 보입니다.


  앞으로 누가 이런 책을 읽어 줄까요? 게다가 글이 매우 어렵습니다. 무늬는 한글이지만 하나도 우리말이 아닙니다. 언제까지 일제찌꺼기 말씨를 붙들고서 이렇게 딱딱하고 어설피 글을 쓸 셈인지 글바치 스스로 뉘우칠 일입니다.


  중국을 섬기던 무리는 우리말을 안 쓰고 중국말과 한문을 쓰면서 우쭐거렸습니다. 일본수렁일 적에도 우리말을 안 쓰고 일본말과 일본 한자말을 쓰면서 거드럭거렸습니다. 일본총칼이 물러난 뒤에도 내도록 중국말에 일본말에 영어를 마구 뒤섞으면서 막상 우리말을 쓴 적조차 없는 글바치요 길잡이(운동권)입니다. 벼슬아치도 엉터리였지만, 벼슬아치를 나무라는 쪽도 참 얄딱구리합니다.


  우리는 아직도 〈파묘〉 같은 보임꽃에서 헤맵니다. 우리는 여태 〈웡카〉 같은 보임꽃은 찍을 줄도 엄두도 생각도 못 합니다. 조금이라도 날개를 펼 수 있는 나라를 이루었다면, 이제는 누구나 새롭게 눈뜨고 마음을 틔우면서 아름나라로 나아갈 길을 즐거우면서 사랑스레 들려주는 글과 말과 이야기와 살림을 펴서 씨앗으로 심어야 할 테지요. 엉터리에 망나니에 얼치기가 왜 판치는지 생각해야 합니다. 낡은 틀에 새술을 들이부은들 고린내가 날 뿐이에요. 새술은 새자루에 담아야지요. 낡은말을 버리고, 낡은틀을 버리고, 낡은길도 버리고, 낡은나라와 낡은 벼슬아치도 몽땅 버려야, 이제부터 아이들이 다시 태어날 수 있습니다.


ㅅㄴㄹ


이승만의 독재정권을 최종적으로 붕괴시킨 것은 민주당이 아니었다. 1960년 3월 15일에 치러진 제4대 정·부통령 선거에서 이승만 정권에 의한 대대적인 부정선거가 자행됨에 따라 이에 대한 항의가 학생들을 중심으로 일어났고, 마침내 그 항의는 이승만 정권의 탄압에 맞서 국민적인 항쟁으로 확산되었기 때문이다. (16쪽)


광주의 ‘해방’ 직후인 22일 오전의 시점에서 ‘해방’ 광주를 이끌 그 어떤 항쟁 지도부도 존재하지 않았다. 광주의 ‘해방’은 시민들의 자연발생적인 항쟁의 결과였을 뿐, 어느 누구의 계획적인 지도에 따라 이루어진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66쪽)


항쟁이 지방으로 확산되고 경찰력이 무력화되기 시작한 18일을 전후하여 전두환 정권은 선택의 갈림길에 놓였다. 이제 그들은 국민의 민주화 요구를 수용할 것인지, 아니면 경찰력만으로는 감당하기 어려워진 항쟁의 저지를 위해 군 투입의 비상조치를 감행할 것인지를 결정하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에 처했다. (145쪽)


독재세력의 후신은 보수적 정치세력의 집권으로 철저한 독재청산이 어려웠을지라도, 또한 대선 패배로 인해 민주화운동 세력이 분열되고 좌절감에 빠졌을지라도, 이제 과거 권위주의 방식의 지배와 통치는 더 이상 어렵게 되었다. (179쪽)


정의사회 구현을 내건 전두환 정권이었지만, 현실은 그 반대로 나타났다. 그러나 전두환의 대통령 재임 당시 밝혀진 이 같은 권력비리들은 전체 비리의 일부분이었을 뿐이다. (222쪽)


+


무엇보다도 먼저 우리 시야에 들어오는 것은 시민혁명일 것이다

→ 우리 눈에는 무엇보다도 들너울이 보인다

→ 우리는 먼저 살림너울을 본다

12쪽


일제 식민치하에서 해방된 한반도는 새로운 독립국가 건설의 꿈에 고무되었다

→ 일본수렁에서 풀린 이 땅은 새나라를 세우는 꿈에 부풀었다

→ 일본굴레를 벗은 이 나라는 한나라를 짓는 꿈에 기뻤다

→ 일본사슬틀 털어낸 이곳은 한누리를 닦는 꿈에 들떴다

→ 일본불굿에서 나래펴는 우리는 혼누리를 일구는 꿈에 반가웠다

13쪽


한국전쟁은 국가의 지배 이데올로기로서 반공주의를 더욱 강화했고

→ 한겨레싸움으로 나라틀은 두레길을 더욱 미워했고

→ 한겨레싸움 뒤로 나라는 거꿀두레로 더욱 치달았고

15쪽


사사오입개헌으로 장기집권을 모색하면서 점차 동요했다

→ 가운올림 뒤집기로 오래임금을 꾀하면서 차츰 흔들렸다

→ 도막올림 판갈이로 오래끌기를 노리면서 이내 기울었다

15쪽


박정희 정권은 이에 일괄적으로 재갈을 물리는 방식으로 대처했다

→ 박정희 나라는 통째로 재갈을 물렸다

→ 박정희는 모조리 재갈을 물렸다

19쪽


부산에서 발생한 시위는 주변의 마산지역까지 확산되었지만

→ 부산에서 일어난 물결은 둘레 마산까지 퍼졌지만

→ 부산에서 터진 들너울은 둘레 마산까지 번졌지만

25쪽


이를 일부 학생들과 불순분자들의 난동사태라 주장했다

→ 이를 몇몇 아이들과 빨강이가 어지럽힌다고 떠들었다

→ 이를 두어 아이들과 사납이가 들쑤신다고 떠벌였다

25쪽


극악무도한 만행에 대항하여

→ 끔찍한 짓에 맞서

→ 몹쓸짓에 맞버텨 

→ 사납짓을 맞받아

67쪽


전두환을 대통령으로 추대하려는 운동에서 시작되었다

→ 전두환을 꼭두로 올리려는 물결에서 비롯하였다

→ 전두환을 높이 띄우려는 바람으로 열었다

→ 전두환을 우두머리로 모시려는 구름에서 일었다

→ 전두환을 나라님으로 높이려고 너울대면서부터이다

→ 전두환을 꼭두빛으로 세우려고 춤추면서부터이다

→ 전두환을 나라지기로 기리려고 하면서부터이다

87쪽


민주화 항쟁이란 권위주의 통치에 대한 아래로부터의 민주화 압력이 더 이상 억제되기 어려운 상황에서 일련의 계기를 통해 그 압력이 폭발함으로써 야기되는 대규모 대중 시위라 할 수 있다

→ 들꽃너울이란 힘으로 억누른 틀에 맞선 사람들이 더는 짓밟히지 않으려고 한꺼번에 일어나는 너른바다라 할 수 있다

→ 촛불바다란 모질게 짓이기는 나라에서 사람들이 더는 밟히지 않으려고 다함께 일으키는 들불이라 할 수 있다

134쪽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우리말꽃》,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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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주의, 자본주의의 최고 단계 (반양장) 레닌 전집 63
블라디미르 일리치 레닌 지음, 이정인 옮김 / 아고라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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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책읽기 / 인문책시렁 2024.3.1.

인문책시렁 348


《레닌선집 1 제국주의, 자본주의 발전의 최고 단계》

 블라디미르 일리치 레닌

 박세영 옮김

 과학과사상

 1988.6.15.



  《제국주의》(블라디미르 일리치 레닌/박세영 옮김, 과학과사상, 1988)를 읽는 내내 어느 때 이야기를 짚는가 하고 가만히 돌아봅니다. 1800해무렵 한복판을 헤아리면서 1900해무렵이 달라지기를 바라는 줄거리를 느끼고, 2000해무렵을 지나가는 오늘날은 어떤 푸른별인지 헤아려 봅니다.


  우리는 이제 일본한테 억눌린 틀이 아닙니다. 우리는 이제 중국을 우러르거나 받들 까닭이 없습니다. 그러나 아직 우리는 ‘우리말’이 아닌 ‘일본한자말’하고 ‘일본말씨’를 곳곳에서 너무 많이 씁니다. 더구나 아직 우리는 ‘중국한자말’을 털어내지 않았고, 한자를 드러내어 써야 글답다고 여기는 ‘시인·소설가’가 꽤 많습니다.


  흔히 1910년부터 일본수렁으로 여기지만, 막상 일본은 1890해무렵부터 이 땅을 억누르고 집어삼켰습니다. 옆나라 총칼꾼은 얼추 쉰∼예순 해에 걸쳐서 이 나라 들숲바다를 파헤치고 망가뜨리면서 싹싹 긁고 훑었습니다. 조선 오백 해는 중국말과 한자로 벼슬자리를 얻었다면, 일본수렁 쉰∼예순 해에는 일본말로 벼슬자리에 돈에 이름을 거머쥘 수 있었습니다.


  1945년 8월을 맞이할 적에 기쁨보다 슬픔이 북받친 한겨레가 뜻밖에 무척 많지 않을까요? 여태까지 누리던 힘·돈·이름이 하루아침에 날아갈까 두려워서 벌벌 떤 무리가 어마어마하지 않을까요? 그래서 이들 일본바라기는 서둘러 뜻을 모았고, 이 나라 첫 나라지기를 이승만으로 올렸습니다. 이승만을 앞잡이로 삼아서 모든 일본바라기는 입을 싹 씻었고, 싸울아비(군대·경찰)를 틀어쥐었고, 제주와 마산과 대구와 골골샅샅에서 죽임질(양민학살)을 일삼으면서 또아리를 단단히 틀었습니다.


  레닌이라는 사람이 아스라이 먼 옛날에 쓴 《제국주의》는 러시아한테만 들어맞을 이야기이지 않습니다. 우리도 똑같이 ‘굴레·망나니·빗장·막질’인 ‘제국주의’에 시달렸습니다. 조선 오백 해 웃사내 임금무리와 벼슬아치가 굴레가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일본수렁 쉰∼해도, 이승만·박정희·전두환·노태우·김영삼으로 잇는 새삼스레 긴 총칼나라도 망나니일밖에 없어요.


  우리는 아직 어울꽃으로 나아가지 않았습니다. 어울꽃이란, 참다운 ‘민주·평화·통일’이란, 총칼로 찍어누르거나 함부로 삿대질을 하며 갈라치기를 하는, 이런 모든 얼뜬 짓을 녹여내는 사랑이 바탕입니다. 어깨동무를 하지 못 하는 나라일 적에는 누가 힘·이름·돈을 거머쥐더라도 빗장입니다. 이쪽이 나라지기를 하건 저쪽이 나라지기를 하건, 우리는 둘 다 막질이라는 굴레에서 허덕이는 판입니다.


  저놈들이 우리를 허수아비로 세우기만 하지 않습니다. 바로 우리 스스로 허수아비가 되기로 했습니다. 저놈들이 윽박질러서 우리가 허수아비로 섰을까요? 우리가 참사람이라면 이놈이 밟건 저놈이 때리건, 우리 스스로 참사람으로 설 뿐입니다.


  이를테면, 이제 한글판은 안 나오지만, 《토리빵》이라는 그림꽃이 있습니다. 이 그림꽃은 새바라기로 조용살이를 하는 어느 아가씨 살림살이를 들려줍니다. 새 곁에서 조용히 하루를 누리고, 새를 바라보다가 ‘새가 깃드는 들숲바다’를 문득 온몸으로 맞아들여서 노래 몇 자락을 저절로 읊습니다. 조촐한 그림꽃에 나오는 이야기처럼, 새와 풀벌레와 개구리가 들려주는 소리가 늘 ‘노래’인 줄 알아차릴 줄 아는 마음으로 둘레를 바라볼 때라야, 모든 굴레와 수렁과 쳇바퀴를 털어내게 마련입니다. 목소리만으로는 빗장을 못 풉니다. 서울나라를 허물어 서울숲으로 갈아엎을 일이요, 우리 스스로 조용히 작은고을과 시골로 삶터를 옮기면서 느긋이 혼살림을 이룰 줄 아는 보금자리를 사랑할 때라야 허수아비질을 안 할 만합니다.


ㅅㄴㄹ


전체 기업체 수의 백분의 일도 안 되는 기업들이 전체 증기력과 전력의 3/4에 해당하는 양을 이용하고 있는 것이다! (26쪽)


카르텔은 경제생활의 기초 가운데 하나가 된 것이다. (31쪽)


30년 전만 해도 서로간 자유롭게 경쟁하고 있었던 경영인은 자신의 업무와 연관된 작업의 90% 정도를 직접 손으로 했었지만 현재는 이러한 정신노동의 90%는 고용인을 부려서 하고 있다. (54쪽)


급속도로 거대한 도시로 발전하고 있는 주변지역에 대한 토지투기는, 금융자본이 특히 높은 수익율을 보장받을 수 있는 일이다. (75쪽)


가능한 가장 간단한 말로 제국주의를 규정하라고 하면 제국주의란 자본주의의 독점단계라고 말할 수 있다 … 제국주의란 독점과 금융자본의 지배가 성립된 단계까지 발전한 자본주의다. 그 속에서는 자본의 수출이 특히 중요해졌으며, 국제적인 트러스트들 간에 세계분할이 이미 시작되었고, 거대한 자본주의 열강들 간에 세계의 영토분할이 완결된 것이다. (116, 117쪽)


20세기 초에 제국주의는 소수의 국가들 수중에 세계를 분할하는 작업을 완성했으며, 그들 국가들은 오늘날 전세계를, 1858년 영국이 착취했던 것과 거의 차이가 없을 정도로 착취하고 있다. (139쪽)


부르조아 학자들이나 기고가들은 대개의 경우 제국주의를 옹호하는 데 있어 어느 정도는 베일에 가려진 형태를 취한다. 그리고 그들은 제국주의의 완전한 지배상태와 제국주의의 저변을 흐르는 뿌리를 모호하게 애써 감추려 하고, 이차적이고 특수한 일부분들만을 전면에 내세워 과장하려 하며, 트러스트나 은행에 대한 경찰 감독을 하자는 식의 아주 우스꽝스러운 ‘개혁’ 계획을 통해서 제국주의의 본질에 대한 주의집중을 분산시키는 데 정열을 쏟고 있다. (142쪽)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우리말꽃》,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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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단시대의 사회학
이이효재 지음 / 이화여자대학교출판문화원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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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책읽기 / 인문책시렁 2024.2.22.

인문책시렁 349


《분단시대의 사회학》

 이효재

 한길사

 1985.10.20.



  《분단시대의 사회학》(이효재, 한길사, 1985)을 문득 되읽었습니다. 이 책이 처음 나오던 무렵에는 ‘분단시대’라는 낱말이 제법 퍼졌는데, 어느덧 잊히거나 낡은 이름이라 여기는구나 싶어요. 2100년이나 2200년 무렵에 2000년 언저리를 돌아볼 글바치가 있더라도 ‘분단시대’라는 이름을 안 쓸 수 있으리라 봅니다.


  북녘에서 나라를 이끄는 무리는 남녘에서 일군 열매를 아예 안 받아들입니다. 북녘은 ‘조선문학·조선문화·조선예술·조선과학’일 뿐입니다. 남녘도 매한가지라, ‘한국문학·한국문화·한국예술·한국과학’ 일 뿐입니다. 남북녘은 서로 무엇을 하는지 안 쳐다보기도 하고, 알 길이 없기도 한데, 한겨레가 숱하게 살아가는 일본이나 중국이나 러시아나 중앙아시아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일군 열매도 남북녘 모두 안 쳐다봅니다.


  중국한겨레나 일본한겨레가 여민 글을 한국문학에 넣거나 가르치는 배움터가 있을까요? 일본한겨레나 중국한겨레가 가꾼 우리글을 말글밭에서 품거나 가르치는 배움터가 있는가요?


  우리는 아직 ‘조선 봉건사대 굴레’를 벗어나지도 못 했다고 느낍니다. ‘조선 봉건사대 굴레’는 ‘역사·문화·사회·경제·과학·문학’을 모두 어느 울타리를 바탕으로 쳐다봅니다. 웃사내질이 판치기도 하지만, 웃사내가 아니어도 ‘힘꾼인 웃가시내’도 나란합니다. 힘과 이름과 돈이 있으면 담벼락을 높이 세워서 끼리끼리 추켜세우고 나눠먹는 얼거리가 단단해요.


  이효재 님은 이런 우리나라를 ‘사회학’이라는 눈으로 읽었습니다. 앞으로 태어나서 자라날 아이들은 굴레나 담벼락이나 힘이나 돈이나 이름이 아닌, 봉건사대도 아니고 끼리질도 아닌, 오롯이 아름답고 사랑스럽게 어깨동무하는 즐거운 보금자리와 마을을 바라는 뜻을 글자락에 담았어요.



한은 우리 민중 속에서 특히 그중에서도 가장 밑바닥에 깔린 아낙네들 사이에서 오랫동안 통속적으로 표현되어 왔으며 그들의 행동을 좌우하는 심리적 요인이었다. (12쪽)


우리 민중인 여성들이 오랜 역사 동안 쌓이고 쌓여온 한에서 해방되지 못하는 한 우리는 한의 노예로 계속 살 수밖에 없으며 인간적 자유와 주체성을 누리지 못할 것이다. (13쪽)


분단된 상태에서 분단을 유지하며 살아가기 위한 집권층의 정치적 노력이 우리 민중의 삶에 인간적 및 비인간적으로 영향을 미치지 않을 수 없다. (18쪽)


내수(內需) 중심이라기보다는 수출중심적이고, 따라서 국제경쟁력이 우선시되는 경제정책이 채택된다 … 권력의 실질적 근거가 조직의 상층부에 있다. 즉, 국가와 군(軍), 대기업 및 국제자본의 상호관계가 중요한 것이다. (39쪽)


가부장제도의 답습은 또한 지배층에 의해서 권력을 뒷받침하기 위한 충효교육이나 전통계승을 위한 문화정책을 뒷받침하는 사회기반으로 이용되고 있다. (58쪽)


군사쿠테타로 정권을 탈취한 기반 위에 민정을 수립한 제3공화국은 그들의 정권에 정통성이 약한 것만큼 정권안정을 위해 민간부문의 집단활동을 정권지지의 기반으로 확대하며, 각 분야 및 계층간의 이해갈등을 억제하려고 하였던 것이다. (82쪽)


즉, 대통령의 진두지휘 아래 시달된 사업이 중앙과 지방의 관료조직을 통하여 농민들에게 지침으로 시달되며 재정적 투입과 함께 마을사람들에게 설득하며 협력하도록 강력한 압력을 가했다는 것이다. (134쪽)


이름이 없고 지위가 없는 상태에서 묵묵히 살아온 여성들의 생활 자체에서, 특히 국가나 민족공동체의 경제를 위해 생산적 노동을 담당하며 가족의 생존을 지탱해 온 피지배층 여성들의 노동과 삶을 이제 새롭게 인식해야 할 것이다. (269쪽)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우리말꽃》,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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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미래 - 라다크로부터 배우다
헬레나 노르베리-호지 지음, 양희승 옮김 / 중앙books(중앙북스)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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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책읽기 / 인문책시렁 2024.1.26.

인문책시렁 345


《오래된 미래, 라다크로부터 배운다》

 헬레나 노르베리 호지

 김종철·김태언 옮김

 녹색평론사

 1996.7.15.



  《오래된 미래》(헬레나 노르베리 호지/김종철·김태언 옮김, 녹색평론사, 1996)가 처음 나올 즈음에는 강원 양구 멧골짝에서 총을 들고서 볼볼 기었습니다. 저는 가시울타리에서 여덟 달 즈음 살고서 ‘펀치볼’을 내려다보는 멧자락 싸움터로 내려왔는데, 그무렵에 한창 북녘 자맥배가 넘어온 탓에, 한 달 동안 움을 파고서 옴짝달싹 못 하는 나날이었어요. 얼추 쉰 날 즈음에 이르러서야 우리 싸움터로 돌아갔고, 지친 몸으로 발버둥(군사훈련)을 쳤습니다.


  땅개라는 이름을 받은 ‘육군 보병’은 늘 걷습니다. 발버둥을 쳐야 할 적에는 300킬로미터를 큰짐(완전군장)을 지고서 밤낮으로 걷습니다. 새벽부터 걷다가 한밤에 이르러 겨우 숲에 천막을 친 뒤 곯아떨어지는데, 밤에도 별지기 노릇을 합니다. 새벽에는 서리가 앉은 채 깨어나고, 숱한 멧등성이를 날마다 끝없이 오르내리다다 보면, 드디어 이레째 이른 걷기를 마치고, 우리 싸움터가 깃든 또다른 멧꼭대기로 꾸역꾸역 걸어갑니다. 다만 300킬로미터를 이레 사이에 못 채우면 며칠 더 걸어서 채워야 합니다.


  날마다 죽살이를 갈마드는 곳에서 1997년 12월 31일에 눈밭을 헤치면서 빠져나왔습니다. 다시는 강원도 양구도 안 쳐다보겠노라 다짐한 이튿날부터 책집과 책숲에 파묻혔어요. 이태 남짓 바깥얘기를 하나도 들은 바 없으니, 책숲에서는 묵은 새뜸을 뒤적이고, 책집에서는 몇 해 사이에 나온 책을 들추었습니다. 이무렵에 《오래된 미래》를 처음 만납니다.


  갓 싸움터에서 벗어난 젊은이는 피식 웃었습니다. 라다크하고 우리나라는 다르거든요. 라다크 젊은이는 우리나라 젊은이처럼 ‘총알받이 땅개’로 끌려가지는 않습니다. 다만, 사내로 태어나더라도 돈이나 이름이나 힘이 있으면 다 샛길로 빠져요. 돈도 이름도 힘도 없는 밑바닥 사내가 바로 쇠가시울타리 코앞으로 끌려가서 뒹굽니다.


  몇 해 지나서 다시 《오래된 미래》를 읽어 보았습니다. 이 책이 들려주는 줄거리를 속속들이 짚거나 느낄 이웃이 얼마나 될는지 가늠하기 어렵다고 느낍니다. 무엇보다도 옮김말부터 엉성합니다. 우리나라가 얼마나 곪거나 시들거나 앓는지 안다면, 얄궂은 일본말씨로 안 옮겼으리라 생각합니다. 스웨덴 아줌마는 “스웨덴 어린이가 알아듣고 생각을 펼 만한 눈썰미로 글을 썼을” 텐데, 한글판은 “웬만큼 머리에 먹물이 깃들지 않고서야 알아먹을 수조차 없도록 망가뜨렸”습니다.


  라다크‘로부터’ 배우지 않습니다. 라다크‘에서’ 배웁니다. 사람이라면 “아무개한테서 배운다”라 말하고, 어느 곳이라면 “시골에서 배운다”라 말합니다. 책이름을 “오래된 미래”라 했으나, 이 대목에서 ‘-된’은 군더더기입니다. “오랜 앞날”이나 “오랜 모레”쯤으로 붙여야 어울립니다.


  이러구러 《오래된 미래》에서도 다루는데, 우리가 스스로 ‘어른’이라고 말하고 싶다면, 어린이한테 높임말을 쓰게 마련입니다. 어린이한테 함부로 말을 놓는 이는 꼰대입니다. 나이가 적다고 여겨 말을 놓는 이들도 고약합니다. 우리가 어른이라면 언제 어디에서나 “말을 놓을 일도 까닭도 없”습니다. 어른은 누구한테나 말을 높입니다. 그리고 어른이라면, 나랑 믿음이 다르대서 손가락질을 안 합니다. 어른이라면, 내가 미는 이가 우두머리로 안 뽑혀도 저쪽을 삿대질하지 않습니다.


  어른이라는 자리는, 어린이가 스스로 깨우칠 때까지 상냥하게 나긋나긋 풀어내어 사랑으로 이야기를 들려주는 길입니다. 비아냥이나 비웃음을 치는 무리는 그저 꼰대에 멍텅구리입니다. 이러면서 생각해 보아야지요. 모름지기 모든 집안은 엄마아빠랑 아이들 나이가 다 달라요. 다 다른 사람이 한집을 이루면서 사랑을 나누고 새롭게 배워요. 그런데 배움터나 일터는 거의 나이로 함부로 끊습니다. 오늘날 어린이는 어린이집이라는 데에 발을 딛자마자 ‘어울림’을 빼앗깁니다. 모든 나이가 함께 배우고, 모든 나이가 함께 이야기하고, 나아가 나이를 내려놓고서 마음으로 얼크러질 적에 비로소 ‘마을’이란 이름을 붙일 수 있습니다.


  숲을 보셔요. ‘자연’이 아닌 숲을 보셔요. 바다를 보셔요. 하늘을 보셔요. 들을 보셔요. 들숲바다에서는 “크기도 나이도 힘도 이름도 돈도 안 따지는 어울림”만 있습니다. 크고작은 나무가 어우러집니다. 크고작은 풀꽃이 갈마들면서 피고 집니다. 오랜 앞날은 먼발치에 없습니다. 바로 우리 누구나 스스로 오래빛이요 오래꽃입니다. 스스로 잊은 씨앗을 돌아볼 노릇입니다. 순이돌이가 어깨동무하는 사랑으로 살림빛을 짓도록, 어리석은 싸움터(군대·전쟁)를 몽땅 걷어치울 노릇입니다. 총칼을 때려짓느라 애먼 돈을 들이붓는 바보짓을 멈출 일입니다. 아름다운 책을 읽으면 배울 수 있기는 하되, 머리에 먹물만 집어넣을 적에는 오히려 시커멓게 갇히더군요.


ㅅㄴㄹ


나는 논쟁을 해결하는 사람이 관련된 당사자들과 잘 알고 있을 때에는 그들의 판단이 편견에 치우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도리어 이 친밀함이 그들이 더 공정하고 건전한 결정을 하도록 돕는다. (56쪽)


누구라도 아이들에게 화를 내지 않는다. 아이가 조르고 보채도 … 아이는 쉬지도 않고 계속해서 똑같은 것을 물어대었다. 우리가 하려는 일에 집중을 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했다. 그런데도 예쉬는 전혀 화를 내지 않았다. 아이가 책을 움켜잡을 때마다 부드럽게 그의 손을 떼어내며 “그건 책이야, 그건 책이야, 그건 책이야.” 하고 대답을 했다. 그는 계속 똑같이 조용한 어조로 그 말을 백 번은 했을 것이고, 나와는 달리 우리의 일에 정신을 집중하는 데 아무런 어려움이 없는 것이었다! (72쪽)


물질문화에 대해서 관광이 끼치는 영향은 광범위하고 파괴적이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그것이 사람들의 마음에 끼치는 영향이다. (99쪽)


나이별 집단으로 나누어지는 일은 학교에서 그치지 않는다. 이제 사람들은 자기의 동년배들끼리만 같이 지내는 경향이 있다. 그 결과로 젊은이와 늙은이들 사이에 상호관용이 줄어든다 … 새로운 중앙집중의 구조속에서 일자리와 정치적 대표자를 위한 경쟁이 갈수록 라다크를 분열시키고 있다. 종족과 종교의 차이가 정치적 차원을 갖게 되었고, 전례없는 규모로 불행과 반목을 일으키고 있다. (134쪽)


개발과정이 라다크를 변화시키는 것을 지켜보면서, 나는 사람들이 자신들의 삶을 변화시키고 있는 힘에 대하여 얼마나 무지한지를 깨닫기 시작했다. (162쪽)


라다크의 언어를 통해서 나는 그들의 사고방식을 이해하게 되었고, 그 사회에 통합되었다. (176쪽)


문화적 다양성을 진정으로 존중한다는 것은 우리의 문화를 남들에게 강요하는 것도 아니고, 이국적인 문화를 우리의 소비를 위해 꾸러미로 만들어 이용하고 상업화하는 것도 아니다. (188쪽)


눈에 띄지는 않지만 오늘날의 중앙집중체제가 더 많은 공간을 차지한다. (189쪽)


+


생태적 마을(에코빌리지)를 건설하려는 움직임이 스웨덴을 휩쓸고 있다

→ 스웨덴은 푸른마을을 지으려는 바람이 분다

→ 스웨덴은 숲마을을 가꾸려는 바람이 불어댄다

196


사람들은 자연과의 보다 나은 균형을 추구하고 있다

→ 사람들은 숲과 얼크러지려고 한다

→ 사람들은 푸르게 어울리려고 한다

196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우리말꽃》,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밑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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