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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니 리펜슈탈, 금지된 열정
오드리 설킬드 지음, 허진 옮김 / 마티 / 2006년 5월
평점 :
품절


- 책이름 : 레니 리펜슈탈―금지된 열정
- 글쓴이 : 오드리 설킬드
- 옮긴이 : 허진
- 펴낸곳 : 마티(2006.5.25.)
- 책값 : 20000원


..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나치 전범재판이 연달아 열렸으나 레니는 유대인 학살에 직접적 관련이 없다는 무죄 판결을 받았다. 그럼에도 그녀를 비난하는 사람들은 기어이 그녀의 작품 활동을 막았다. 레니는 결코 영화계에서 환영받지 못했다.
 반세기 동안 수많은 다큐멘터리가 레니의 다큐멘터리를 부분적으로 인용했지만 그녀의 영화가 공개적으로 상영되거나 텔레비전을 통해 무삭제로 방송된 적은 없었다. 영화사의 그 어느 부분에서도, 심지어 여성의 업적을 다루는 부분에서도 리펜슈탈은 아예 언급되지 않거나 부정적으로 언급될 뿐이었다. 리펜슈탈은 거의 전 세계적인 공모에 의해 역사의 각주로 쫓겨났다. 프로파간다와 예술을 구분할 방법이나 구분하려는 의지는 어디에도 없는 듯하다. 그것은 공평한 일이었을까? ..  〈35쪽〉


 저는 레니 리펜슈탈이라는 사람을 사진작가로만 알았습니다. 그래서 《레니 리펜슈탈-금지된 열정》이라는 책을 전주에 놀러가서 〈홍지서림〉을 구경하다가 반갑게 보고서 집을 때까지만 해도, 이이가 나치당을 선전하는 영화를 찍은 줄은 까맣게 몰랐습니다. 1936년 베를린 올림픽을 기록으로 남기되 한낱 기록이 아니라 예술작품이 되도록 긴 영화로 찍은 줄도 몰랐습니다. 레니 리펜슈탈이 없었더라면 우리가 알고 있는 손기정 님 마라톤 모습도 구경할 수 없었겠지요.

 

 이 책, 《레니 리펜슈탈-금지된 열정》이 나온 뒤 몇몇 신문에 길고 짧게 기사가 실렸고, 인터넷에서 살펴보니 이이를 놓고 여러모로 말이 많습니다. ‘나치의 핀업 걸’ 소리가 가장 많이 보이고, ‘악마한테 영혼을 판 천재’라는 말도 보입니다. 글쎄, 이런 말이 한편으로는 맞을는지 모르겠지만 102해라는 기나긴 세월을 살아온 사람을 어느 한 마디로 잘라서 말할 수 있을까요?

 

 춤꾼(발레)으로, 영화배우로, 영화감독으로, 그러다가 사진작가로, 물속헤엄까지도 두루 거치면서 자기 안에 끓어오르는 뜨거움을 펼치며 살았던 레니 리펜슈탈이라고 하는 사람, 이 사람을 짤막한 한 마디로 내치는 일이란 아주 쉽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내쳐서 무엇이 남을까요.

 

 〈조선일보〉 편집국장을 거쳐 박정희 독재 때에 외교관에 장관에 국회의원까지 두루 지낸 윤주영이라는 사람은 1979년에 정계에서 떠난 뒤 사진작가 길을 걷고 있습니다. 이분이 지난날 걸어온 발자취를 생각한다면, ‘사진작가 윤주영’이 아닌 ‘독재권력 해바라기 윤주영’이라 해야 걸맞을 텐데, 이렇게 말하는 사람은 보이지 않습니다.

 

 레니 리펜슈탈과 윤주영을 똑같이 볼 수 없고, 두 사람이 걷는 길도 다르며, 두 사람이 찍은 사진감도 다릅니다. 그렇지만 레니가 받는 것은 푸대접과 찬웃음일 뿐, 이이가 이루어내는 온갖 일과 발자취는 ‘없어야 할 것인데 지저분하게 남은 것’처럼 여기거나 아예 거들떠보지 않습니다.

 

 비판할 대목은 틀림없이 비판해야 옳고, 찬찬히 돌아볼 대목은 찬찬히 돌아보아야 옳습니다. 칭찬할 일이라면 칭찬하고 꾸짖을 일이라면 꾸짖어야지요. 이도 저도 아닌 두루뭉술한 때려잡기라든지, 수박겉핥기처럼 대충 넘겨짚기를 하면서 레니 리펜슈탈을 입방아 찧는 이들은 《레니 리펜슈탈-금지된 열정》을 꼼꼼히 읽은 뒤에 자기가 한 말과 쓴 글을 돌아보면 좋겠습니다. 하지만 그런 입방아꾼이야 책도 안 읽고 뇌까리는 사람들이고, 2006년 대한민국에서 《레니 리펜슈탈-금지된 열정》이 나온 까닭, 이런 책을 살피면 좋을 대목이 있다면, ‘우리 가슴속에 잠자고 있을 뜨거움’을 느끼고 ‘이 뜨거움을 어떻게 불태우면’서 ‘누구한테나 딱 한 번 주어진 삶을 어떻게’ 꾸려나갈는지를 살피는 데에 적잖이 도움이 될 수 있기 때문이라고 믿습니다. (4339.8.24.나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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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마다 한 생각
마하트마 간디 지음, 함석헌 외 옮김 / 호미 / 2001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 책이름 : 날마다 한 생각
- 글쓴이 : 마하트마 간디
- 옮긴이 : 진영상, 함석헌
- 펴낸곳 : 호미(2001.8.10.)
- 책값 : 7500원


19.한 가지 일에 한 가지 목적으로 전념할 수 있는 사람은 결국 모든 일을 할 수 있는 능력을 얻을 것이다. (1944.12.8.)


 날마다 한 가지씩, 두 해에 걸쳐서 짤막한 생각을 펼쳤던 간디 이야기를 묶은 책이 《날마다 한 생각》입니다. 어떻게 날마다 한 가지 생각을 꼬박꼬박 뽑아낼까 싶은 마음이 없지 않지만, 날마다 마주하거나 마주치거나 겪거나 보거나 듣거나 느낀 여러 가지를 흘려보내지 않는다면, 늘 자기 마음과 몸에 되새기고 곰삭이면서 하루를 즐길 수 있다면, 날마다 한 생각뿐 아니라 두 생각이나 세 생각을 하는 일은 조금도 어렵지 않습니다.


56.우리가 진정한 삶을 살기 원한다면 정신적 게으름을 버리고 좀더 기본적인 사고를 해야 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우리 삶은 아주 단순해질 수 있다. (1945.1.14.)


 어렵게 생각할 것이 없고 어렵게 할 까닭이 없으며 어렵게 말하거나 글쓸 쓸모도 없습니다. 있는 그대로, 가장 밑바탕이 되는 마음을 생각하고 살피고 나타내고 함께할 수 있으면 됩니다. “가장 쉽게 쓰는 글이 오히려 쓰기 어렵다”고도 하지만, 글을 괜히 어떤 멋이나 품위로 덮어씌우니 어려울 뿐입니다. 자기한테 있다면 있는 대로, 없다면 없는 대로 떳떳하고 스스럼없이 나설 수 있으면 됩니다. 자기한테 조금 더 있기에 널리 이웃들과 나눕니다. 자기한테 조금 덜 있기에 거리낌없이 이웃들한테 선사받고 도움받습니다. 있으면 베풀고 없으면 얻을 뿐입니다.


143.인간의 정신의 평화는 인간 세계 속에서만 증험될 수 있는 것이지 히말라야의 산정에 홀로 있으면서 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1945.4.11.)


 사람은 사람 사이에 살아야 합니다. 하지만 사람됨을 잃은 사람들 사이에서는, 또는 저 혼자만 잘 먹고 잘 살려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사람답게 살 수 없겠지요. 사람이 사람 사이에 살아야 한다지만, 돈-이름-힘에 눈이 벌건 사람들 사이에 살라는 뜻이 아니라, 우리 사람들 스스로 사람됨을 간직하고 추스르면서 널리 어울리고 함께할 수 있는 터전에서 살아야 한다고 믿습니다.


286.죄를 ‘크다’, ‘작다’로 구분할 수 있는 것으로 생각하는 잘못을 저질러서는 안 된다. (1945.9.1.)


 저지른 죄값은 모두 똑같기 때문에, 돈 100원을 훔친 사람과 돈 100억 원을 훔친 사람 모두 똑같이 죄값을 달게 치러야 합니다. 하지만 돈 100원을 훔친 사람은 죽는 날까지 ‘도둑놈’ 딱지에서 헤어나지 못하는데, 돈 100억 원을 훔친 사람은 어느 누구도 이이가 도둑놈인 줄 모르고 넘어가기 일쑤입니다.


385.잘못을 고백하는 것은 비와 같은 역할을 한다. 비는 더러움을 쓸어내는데, 고백도 이에 못지 않다. (1945.12.9.)


 《날마다 한 생각》은 마하트마 간디라고 하는 대단히 훌륭한 사람만이 펼쳐서 보여줄 수 있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누구든 자기 삶을 다부지고 알뜰하게 가꿀 줄 알고, 꾸려나갈 줄 안다면, 언제 어디서라도 펼칠 수 있는 이야기입니다. 다만, 간디라는 분은 자기가 날마다 했던 생각을 잊지 않고 꼼꼼하게 적어 두었을 뿐입니다. 생각해 보면, 우리 어머니나 아버지, 동네 아저씨나 아주머니, 가까운 형이나 언니나 누나 들이 우리한테 들려주는 이야기 가운데 참 마음에 와닿거나 좋다고 할 만한 이야기가 얼마나 많을까요. 따로 말로 하지 않아도 몸으로 보여주고, 마음으로 나누는 좋은 이야기는 또 얼마나 많고요. 간디란 분이 엮어낸 《날마다 한 생각》을 읽으며, 우리들은 우리 나름대로 한 해를 하루하루 알차게 보내면서 《내 나름대로 펼친 날마다 한 생각》을 써 보면 어떨까 싶습니다. (4339.7.11.불.ㅎㄲㅅㄱ)

 

*****

다만 한 가지, 번역이 그다지 좋지 않다고 느낍니다. 함석헌 선생이 다시 한 번역을, 요즘 우리 말투에 맞게, 또 쉽고 깨끗한 말에 걸맞게 다시 다듬어 주어야지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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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벳전사 - 책으로 만나는 풀꽃평화 1
쿤가 삼텐 데와창 지음, 홍성녕 옮김 / 그물코 / 2004년 2월
평점 :
절판


티벳은 관광지가 아닌 삶터이자 싸움터
- <티벳전사>를 읽고



<1> 티벳은 관광지가 아닙니다


인도나 티벳이나 몽골에 가 보고 싶다는 이야기, 가 보았다는 이야기를 흔히 듣습니다. 제 둘레에도 돈을 모아 한두 달이나 한 해 가까이까지 인도나 티벳이나 몽골 여행을 다녀오는 분들이 있어요. 이렇게 다녀온 분들은 한결같이 참 좋았다고 말합니다.

좋을 만하겠죠? 티없이 맑은 하늘, 수수하고 투박하게 살아가는 아름다움과 멋을 간직한 사람들이 어우러지는 그곳에서 보낸 하루하루가 얼마나 즐거웠겠습니까.


.. 티벳의 진실은 여행사 카달로그나 여성지의 명상 소개 코너
속이 아니라 차라리 내셔널지오그래픽 오지 리포트 속에 있지
않을까 .. <옮긴이 말, 306쪽>



지금 티벳은 중국과 싸우고 있습니다. 참 오랫동안 싸우고 있습니다. 중국은 문화혁명 깃발을 높이 치켜들고 티벳으로 쳐들어갔습니다. 오랜 세월에 걸쳐 쌓아올리고 넉넉히 즐기던 티벳 문화는 하루아침에 '반동'과 '봉건'이란 이름으로 내몰리며 무너지고 부서지고 사라졌습니다. 문화유산도 부서졌으나 깨끗하던 티벳 자연도 무너졌습니다. 들짐승 목숨을 사람 목숨과 마찬가지로 소중히 여기던 문화와 사회는 중국 인민군이 부순 건물과 함께 주저앉고 맙니다.

남아 있는 사원은 옛 자취를 보여주는 유물이 될 뿐입니다. 현재를 살아가는 '중국의 여러 성 가운데 하나가 된 티벳'의 삶이 되지 못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티벳으로 여행을 떠난다고 했을 때 볼 수 있는 것은 '지난날 유물'일 뿐 '살아 있는 역사나 문화'가 되지 못해요.

그래도 그런 것이나마 보고 느낄 수 있다는 것은 좋습니다. 하지만 본질은 간데없이 무너졌어요. 사람이고 짐승이고 자연이고 숨죽이고 있어야 하는 현실을 제대로 살피지 않는다면, 침략과 식민정책으로 삶터를 빼앗기고 자기 정체마저 잃어버린 사람들 현실을 돌아볼 수 없다면, 티벳을 보았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 정부 병기 창고에서 무기를 가져오기 위해 남걀강에서 라사
로 돌아갔던 일행은 목적을 달성했다. 그러나 노르불링카에서
로상 예시를 잃고 말았다. 그들은 중국군이 어떻게 라사를 포
격하고 무고한 백성들을 살상했는지 말해 주었다 .. <239쪽>


.. 1910년에 중국은 리탕의 바 지역을 침공했다. 많은 사원이
약탈당했으며 지역 책임자들은 행정권을 박탈당했다. 대사원
관을 포함한 리탕곤첸의 고위 라마 70명이 참수당했다. 중국
군은 사원을 점령했고, 승려들의 거듭된 만류에도 불구하고
여인들을 감금시켰다 .. <54쪽>



<2> 잃어버릴 수 없는 역사


<티벳전사>는 중국에게 침략을 받아 게릴라 부대로 맞선 지도자 가운데 한 사람이 지난 세월을 돌아보면서 쓴 책(회고록)입니다. 잘 조직되었으며 최신예 무기를 갖춘 중국 인민군에게 맞서기에는 참으로 보잘것없는 장비와 조직도 안 된 게릴라들이었기에 밀리고 밀렸답니다. 끝내 인도로 망명할 수밖에 없던 이들은, 지금도 잃어버린 고향을 그리워하면서 '자유 티벳'을 되찾을 날을 꿈꾸고 있습니다.


.. 물새가 알을 낳기 시작할 때도 기본적 지시 사항이 발령
된다. 이 기간 동안 그 사항들이 준수되었는지 확인하기 위
해 강과 호수로 사람이 보내진다. 사람의 방해로 새들이
알을 두고 떠나가는 일이 일어나지 않게 하기 위해서이다.
4월에는 새로 태어난 티벳 영양을 다른 동물들과 인간으로
부터 보호하기 위해 비슷한 지시 사항이 공포되었다. 물고
기도 산란기에는 같은 방식을 적용해 보호했다 .. <55쪽>



우리도 이와 비슷한 역사가 있어서 돌아볼 수 있는데, 자유로운 나라를 잃은 뒤에 오랜 세월 이어온 전통과 문화와 사회를 간직하거나 지키기 참 어렵습니다. 일제 강점기 때 우리 삶과 문화를 지키기 얼마나 어려웠습니까. 말과 글도 잃고 얼과 넋마저 빼앗겼습니다. 식민지 찌꺼기는 지금도 많이 남았습니다. 더구나 식민지 일본에게 아첨하고 아양 떨던 사람들은 큰 권력을 얻어 아직도 떵떵거리고 있어요.

티벳은 어떨까요? 티벳도 한 세대가 넘는 세월을 중국 식민지로 살고 있습니다. 갓 태어나는 아이들과 한참 자라는 젊은이들은 티벳 문화와 삶을 얼마나 자기 것으로 받아들이며 헤아리고 있을까요? "물새가 알을 낳는 때"를 알고 있을까요? "물고기가 알을 낳을 때"는 조심스럽게 지켜줘야 하는 것을 알고 있을까요?

"우리는 그들(일꾼)의 품을 결코 돈으로 보상하지 않았다.(57쪽)"고 합니다. 우리에게 품앗이와 울력이 있었듯 티벳사람도 돈으로 품을 사는 게 아니라 함께 일을 돕고 함께 어울려 놀았습니다.


.. 이렇게 소똥과 나무를 태우다가 몇 년이 지나면 부엌의 벽
과 천정은 그을음으로 새까맣게 변했다. 우리는 이 그을음으로
잉크를 만들었다. 날이 어두워지면 횃불이 켜졌다 .. <59쪽>


.. 티벳에서 여관은 '멀리 있는 집'과 같다. 손님들은 가족의
일원처럼 대접받는다. 손님은 부엌에 들어가도 되며 하고 싶
은 일은 무엇이든지 알아서 할 수 있다. 음식과 음료는 항상
바로 곁에 있다. 혼자 쓰는 방은 없지만 소지품 걱정은 할 필
요가 없었다. 모든 일에 관해 대접받는 것이다 .. <113쪽>



쓰레기가 없는 삶, 쓰레기라는 것을 모르는 삶, 도둑이 없는 삶, 도둑이라는 것을 모르는 삶이 티벳사람들이 누려온 오랜 문화이자 전통입니다. 이는 우리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이웃나라가 마구잡이로 쳐들어와 온 나라를 쑥대밭으로 만들지 않는다면, 폭압 위정자가 독재로 온 나라 사람들을 괴롭히고 짓밟으며 등처먹지 않는다면 말입니다.

"티벳에서 강과 시내에 놓은 다리는 희귀한 사치품이었다. 겨울에는 물이 단단히 얼어붙어서 두껍게 언 얼음은 짐을 가득 진 야크의 무게도 견뎌 낼 정도였다. 문제가 발생하기로 유명한 계절은 역시 얼음이 녹는 따뜻한 철이다.(132쪽)"라는 말을 곱씹어 봅니다. 따로 다리를 놓지 않아도 늘 건널 수 있는 곳에서는 다리를 놓는 일은 그야말로 '사치'가 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따뜻한 나라에서는 이와 다르겠죠? 이런 것이 나라나 겨레마다 '다른 문화이자 전통'입니다.

이처럼 다른 문화와 전통을 '반동'이라느니 '봉건'이라느니 무어라는 이름으로 짓밟거나 부수어도 좋을까요? 실제로는 석유를 노리고 전후 재건 사업을 노리는 한편 새무기를 시험하려는 목적이었지만 겉으로는 '이라크 민주와 평화'를 지키겠다며 쳐들어간 미국입니다. 일본은 우리 나라를 식민지로 삼으면서 '미개한 나라가 발전할 수 있도록 돕겠다'는 말을 했습니다. 중국도 마찬가지입니다. '인민이 평등한 세상을 만들어야 한다'며 티벳으로 쳐들어온 중국입니다.


<3> 우리가 다 함께 찾아야 할 것


지금 우리는 자유로운 나라에서 살고 있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얼마나 자유로운 나라인지는 모르겠습니다. 소말리아로, 이라크로 군사를 보내라고 하면 보내야 하는 우리들입니다. 힘없는 이를 괴롭히는 침략전쟁을 치르는 돈마저 보내야 합니다. 이 나라 농민들이 죄다 죽어갈 판인데도 쌀을 비롯한 농산물 시장을 열어야 합니다. 있는 사람 재산은 더욱 늘어나고 없는 사람은 팔 재산도 없으나, 빈부 차이는 자꾸만 더욱 벌어집니다. 한국말을 잘 못하는 일은 문제가 안 되지만, 영어를 못하면 사람 대접을 못 받고 일자리 얻기도 어렵습니다. 온통 서양 문물과 문화가 우리 얼과 넋을 다스립니다. 이런 형편을 생각했을 때, 우리가 누린다는 '자유'란 도대체 어떤 자유라고 할 수 있을까요?


.. 처음에 중국 측은 이제까지 사원이 담당해 왔던 기능을
계속 수행하도록 허가하겠다고 약속했으나, 약속은 지켜지
지 않았다. 사원들은 남김없이 모두 파괴당했고, 그 안에
보관되어 왔던 성스러운 경전, 불상들은 약탈되고 망가져
버렸다. 승려들은 치욕을 당했고 고문에 시달렸다. 종교적
수행은 금지되었다. 공산주의자들은 법의를 걸친 자는 인
민의 적이며, 인민의 형제와 같은 중국 해방군의 적이라고
선포했다 .. <211쪽>


밥 굶는 사람이 요즘도 있습니다. 하지만 지난날처럼 굶는 사람이 넘쳐서 하루에도 수십, 수백 사람이 굶어죽는 굶주림은 아닙니다. 1950~60년대 신문기사를 보면 먹을 것이 없어서 굶어죽고, 아기를 부잣집 문간에 버리는 일이 아주 흔했다고 나와 있습니다. 요즘 사람들은 '먹고살기 힘들다'는 말을 입에 붙이고 사는데, '먹고살기 힘들다'기보다 '더 많은 돈을 못 번다'고 해야 옳지 싶습니다.

알맞게 쓰고 누리고 즐기면서 버리는 것이 거의 없던 소중한 문화와 얼과 것을 잃었기에 경제 형편이 참으로 많이 나아졌음에도 이런 것을 제대로 못 느끼고 있습니다. 평화롭게 지내는 때는 평화가 어떤 것인지 모르기 마련이라는 말처럼, 우리가 누리는 자유와 평화와 민주가 무엇인지, 또 어떻게 나아가야 좋을지를 앞에 두고 망설이거나 갈팡질팡하고 있지 싶습니다.


.. 나의 바람과 소망은 자유를 누리는 행운을 가진 사람 모두
가 자유를 소중히 여기고, 그들보다 적은 자유만을 누리는 사
람들-그 중에서도 티벳사람들도 포함될 것이다-을 돕는 데 자
유를 사용하는 것이다 .. <304쪽>



'자유 티벳'이 아닌 '중국의 여러 성 가운데 하나인 티벳'으로 바뀐 역사는 그대로 이어져 세월이 자꾸자꾸 흘러갑니다. 우리가 참답게 알아야 할 티벳 모습은 보지 못한 채 명상이니 불교 유적지니 깨끗한 자연이니 뭐니 하는 겉모습만으로 티벳을 생각하거나 바라보고 있습니다.

우리 스스로 우리에게 참된 모습이 무엇인지 잃고 놓치기 때문은 아닐까요? 우리 자신이 우리 자신을 제대로 돌아보거나 찾거나 생각하려 하지 않기 때문에 티벳이든 중국이든 북녘이든 미국이든 일본이든... 이런 다른 나라 삶과 모습과 문화도 엉뚱하거나 잘못된 모습으로 생각하거나 느끼고 있지 않을까요?

중국이 고구려 역사를 비틀고 일본이 한국 옛 역사를 비틀어도 우리는 아무것도 안 하거나 못합니다. 우리 스스로 고구려 역사가 어떠한지, 우리 옛 역사가 어떠한지를 제대로 안 배우는 한편, 배우거나 알려고 애쓰지도 않거든요.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길이 무엇인지 차분하게 돌아보면서 우리를 둘러싼 뭇사람과 자연과 목숨붙이를 헤아리지 않거든요.

<티벳전사>는 티벳사람들이 겪어야 한 슬픈 역사를 말하는 한편, '자유 티벳'일 때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왔는가를 덤덤하게 들려줍니다. 게릴라 전사가 되어 중국 인민군과 싸운 이야기도 들려주지만, "티벳사람은 이렇게 살아왔다" 하는 이야기를 더 중요하게 들려줍니다.

아버지가 들려준 이야기를 받아 적은 '도르지 왕디 데와창'은 "티벳을 직접 경험하지 못한 우리 세대(침공당한 뒤 태어나서 자란 세대)에게 그렇게 생생하게 역사를 기억한다는 것은 굉장히 중요한 자산이다.(25쪽)"고 말합니다. <티벳전사>는 티벳사람들이 자기 역사와 삶과 문화와 사회를 잊지 않고 간직하고자 남긴 기록입니다. 이 기록은 티벳 젊은이에게 참으로 소중하겠다 싶어요.

우리에게도 중요합니다. 달라이 라마가 우리 나라로 온다고 했을 때 한국 정부에게 압력을 넣어 들어오지 못하게 한 중국이고, 티벳 역사와 사회를 감춘 중국입니다. 우리들은 이런 기록을 읽으며 참된 티벳 모습이 무엇인가를 헤아리는 한편, 우리 삶과 사회와 역사에서 잃어버린 모습, 놓치거나 지나쳐 버린 소중한 모습을 돌아볼 수 있습니다. (4338.1.28.쇠.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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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약의 순간
사이토 다카시 지음, 이규원 옮김 / 가문비(어린이가문비) / 2006년 4월
평점 :
품절


- 책이름 : 도약의 순간
- 글쓴이 : 사이토 다카시
- 옮긴이 : 이규원
- 펴낸곳 : 가문비(2006.4.24.)
- 책값 : 9000원


 자전거를 타고 제주섬을 한 바퀴 돌았습니다. 제주섬 한 바퀴를 도는 데에는 그다지 힘들지 않았으나 꼬불꼬불 바닷가길을 하나씩 찾아다니면서 도느라, 또 자전거 타기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을 이끌고 다니느라 좀 고단하기도 했습니다.


.. 평소 책을 읽지 않는 사람에게 책을 한 권 읽는다는 것은 때로는 고통스럽게 느껴질 만큼 힘든 일이다. 하지만 책을 1백 권쯤 읽은 사람치고 책을 싫어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자전거 타기에 비유하자면, 타는 요령을 익히고 나면 넘어질 일이 거의 없어진다는 것이다. 나아가 5백 권, 1천 권을 읽고 나면 한 손으로 아이스크림을 핥으면서 자전거를 타는 것과 같은 경지에 오르는 것이다 ..  〈36쪽〉


 그렇게까지 힘든 자전거 나들이는 아니었으나 함부로 만만하게 볼 수 없는 나들이를 마친 뒤, 자전거 나들이가 한결 수월하고 가벼워졌습니다. 웬만한 거리는 자전거로 오갈 수 있구나 하는 자신감이 좀더 붙었고, 무거운 짐을 짊어지고 자전거를 오랫동안 타는 일도 그렇게까지 힘들다고 느끼지 않습니다. 이번 나들이에서는 ‘빨리 달릴 수 없어 아쉬운’ 한편으로, 무거운 짐을 잔뜩 짊어진 채로 하루에 여덟∼열 시간을 달렸어요.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힘이 더 늘었지 싶습니다.


.. 또 만화 세계에서 확고한 지위를 쌓고 있던 데즈카 오사무는 만화상 심사위원을 의뢰받는 일이 많았는데, 어느 때부턴가 심사위원 의뢰를 받으면 거절하기 시작했다. 후배 만화가의 작품을 평가하기보다는 후배들과 같은 자리에 서서 평가를 받고 싶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  〈44쪽〉


 제주섬 나들이를 하기 이틀 앞서 《도약의 순간》이란 책을 선물받았습니다. 자전거 나들이를 할 때면 짐은 되도록 줄여야 하는데, 꼭 이때 맞추어 책을 선물한 선배가 얄궂다고 느낍니다. 더욱이 책겉을 보면 ‘천재처럼 열망하고 도약하라!’는 글월이 적혀 있습니다. 책이름 “도약의 순간”이란 말도 썩 달갑지 않습니다. “뛰어오르는 때”, “펄쩍 뛰는 그때”쯤으로도 붙일 수 있을 텐데, 일본책이라서 일본사람이 쓰는 한자말 그대로 붙였구나 싶습니다. 그래도 애써 선사해 준 책인데 어느 만큼 읽어야지요.

 “단순한 공상으로는 리얼리티가 나오지 않는 법이다. 자신이 예전에 맛본 적이 있는 현실이어야 관객에게 설득력 있게 전달할 수 있다.(29쪽)”는 대목을 읽으며, ‘그저 가볍게 성공학을 말하는 책은 아니구나’ 하고 느낍니다. 지금 우리들이 느끼기에는 천재처럼 보이는 이들이지만, 이들이 자기가 바라는 일을 찾고 즐기고 애써 밀고나갈 때에는 어느 누구도 천재라고 쉬 말하지 않았던 이들, 그러나 누가 천재라 하건 말건, 바보라 하건 말건 꿋꿋하게 자기 세계를 열고 가꾸어 나간 이들 이야기를 다룬 책이구나 느낍니다.

 구로사와 아키라, 데즈카 오사무, 빌 게이츠, 미켈란젤로, 니체, 기타노 다케시, 톨스토이, 로뎅, 고흐, 괴테와 고갱, 미야자키 하야오, 이렇게 열두 사람 이야기를 다룹니다. 일본사람이 쓴 책이라 그렇겠지만 ‘우리가 돌아볼 만한 사람’으로 일본사람이 넷이 들어갑니다. 그렇다면 한국사람이 이런 책을 쓴다고 할 때에도 1/3쯤을 한국사람 이야기로 채울 수 있을까요?

 잠깐 책을 덮습니다. 바깥에는 바람이 세게 붑니다. 여름을 앞둔 날 부는 센 바람이라, 햇볕을 쬐면서 밖에 서 있으면 참 시원하게 느껴집니다. 방에 앉아 창문으로 나뭇잎이 휘날리는 모습을 보기만 해도 시원합니다. 나무마다 헐벗고 있던 때가 그다지 오래된 일이 아니라고 떠오르는데, 어느덧 나무마다 푸른 잎사귀가 가득합니다. 어제는 길거리 은행나무에 은행잎이 가득 달린 모습을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저 잎이 언제 저렇게 달렸는가 하고요.

 그래, 저 나무들은 잎을 한꺼번에 틔우려고 겨우내 숨을 죽이고 힘을 모으고 있다가 봄이 되어 조금씩 눈을 틔우다가 날이 확 풀린 그날부터 ‘이제 때는 왔다!’ 하고서 한껏 잎사귀를 터뜨렸겠지요. 《도약의 순간》에서 말하는 사람들도 고단하고 어려운 동안을 거치면서도 자기 담금질을 잊지 않았겠구나 싶고, 다른 사람들이 느끼거나 눈치채지 못하는 일을 꿋꿋하고 다부지게 이어왔겠다 싶습니다. 중요한 것은 남이 알아주느냐 마느냐가 아니거든요. 자기 스스로 느끼기에 얼마나 알뜰하느냐, 올바르느냐, 고웁냐, 속이 꽉 찼느냐이지 싶어요. 자기 스스로 느끼기에 ‘이제 됐다’ 싶을 때까지, 또는 ‘아직 모자라니 더 하자’는 마음이 사라질 때까지 꾸준하게 자신을 지켜 나가는 일이 중요하다고 느껴요. 선배가 저한테 이 책을 선물한 뜻을 어렴풋이 알겠습니다. (4339.5.14.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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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마전선 일본군 위안부 문옥주 - 문옥주 할머니 일대기, 역사의 증언 2
모리카와 마치코 지음, 김정성 옮김, 정신대할머니와 함께하는 시민모임 펴냄 / 아름다운사람들 / 2005년 8월
평점 :
품절


- 책이름 : 버마전선 일본군 ‘위안부’ 문옥주
- 글쓴이 : 모리카와 마치코
- 옮긴이 : 김정성
- 펴낸곳 : 아름다운사람들(2005.8.8.)
- 책값 : 12000원

 ‘한일 청구권’ 문제, 그러니까 1965년에 박정희와 김종필이 ‘한일협정’이라는 걸 맺은 문제가 2005년인 지금까지도 발목을 잡습니다. 전쟁과 식민지로 온갖 괴로움을 받아야 한 사람들이 배상을 받아야 하는 일은 둘째치고, 일본 정부와 한국 정부는 피해자가 된 사람들한테 아직까지 제대로 된 사과를 하지 않았거든요. 그런데,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는 까닭이 있어요. 바로 우리들이 모르기 때문입니다. 알려고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모르는 일은 잘못이 아니에요. 하지만 알려고도 하지 않는 일은 잘못입니다.


.. 한국의 경우, 일본 정부는 한일 청구권 협정을 근거로 어떤 일이 있어도 지급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버리지 않고 있습니다. 정말 유감스럽고 부끄러운 일입니다 .. <22쪽>


 해마다 어김없이 3.1절과 광복절을 치르면서도 이때 죽어 간 사람들, 아파한 사람들이 누구였고, 어떻게 고달팠는지를 말하는 이가 없는 게 현실입니다. 그렇다면 ‘말하는 이가 없다’고 하더라도 ‘왜 누구 아파야 했지?’ 하고 물으면서 이런 까닭을 살피려 하지 않아도 좋을까요?

 《버마전선 일본군 ‘위안부’ 문옥주》는 어느 일본사람이 종군위안부로 아픔과 슬픔을 겪어야 했던 할머니 한 분을 여러 해에 걸쳐서 만나서 이야기를 들은 뒤 자서전 틀을 빌려서 담아낸 책입니다. 책을 읽으며 참 어이없는 일이 많구나, 어째 이랬을까 싶은 한편, 왜 이런 이야기를 한국사람들이 가까이에서 받아 적고 함께 눈물을 흘리고 아파하면서 사람들이 이런 속이야기를 널리 알도록 해 주지 못했을까 싶었습니다.

 어쩌면… 그러니까, 한국사람들은 이런 책이 나와도 읽거나 소개도 하지 않는데, 바로 그런 마음이 아주 깊은 곳까지 또아리를 틀고 있어서 이런 할머니들 이야기를 뭣하러 책으로 담느냐 하고 생각하지 싶습니다. 글을 쓰는 사람도, 사진을 찍는 사람도, 그림을 그리는 사람도, 기사를 쓰는 사람도, 책을 만드는 사람도, 방송을 찍는 사람도 눈길을 안 둬요. 이런 현실을, 역사를, 삶을 담아내려 하지 않고 보려고도 않습니다. 그러면서 무슨 이야기를 펼치고 나누고 있나요? 책에, 신문에, 방송에 나오는 이야기는 도대체 무엇일까요?

 문옥주 할머니는 벌써 세상을 떠났습니다. 앞으로 열 해쯤 뒤면 문 할머니 이름도 거의 잊혀져 버릴 테고, 이 책도 판이 끊겨서 사라져 버리겠지요. 자, 그러면 그때, 앞으로 열 해나 스무 해쯤 뒤에는 종군위안부로 애먹어야 했고 죽도록 괴로와야 했던 사람들 삶과 역사도 사라지는가요? (4338.9.12.달.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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