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희망은 노동운동 우리시대의 논리 2
하종강 지음 / 후마니타스 / 200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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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이름 : 그래도 희망은 노동운동
- 글쓴이 : 하종강
- 펴낸곳 : 후마니타스(2006.5.1.)
- 책값 : 1만 원


.. 한쪽은 막강한 자본과 권력으로 무장한 자본가들이고, 다른 한쪽은 맨몸뚱어리밖에 없는 노동자들인데, 그 사이에서 중립을 유지한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  〈17쪽〉


 우리 세상은 얼마나 평등할까요. 돈-이름-힘을 가진 사람과 돈-이름-힘을 못 가진 사람이 100미터 달리기를 할 때, 둘은 같은 자리에 서서 힘껏 첫발을 내디딜 수 있을까요. 50미터 앞에서 달리는 이가 있고, 50미터 뒤에서 달려야 하는 사람이 있지 않을까요.

 배우는 기회, 배운 것을 펼치는 자리, 펼치려는 것을 실을 매체, 매체에 실은 뒤 받는 대접들은 누구한테나 고르게 주어져 있을까요. 어렵게 살림을 꾸리며 공부도 부지런히 해서 뜻을 이루었다는 소년소녀 가장을 칭찬하는 사람들만큼, 어려운 살림을 이겨내지 못하고 아찔해 하는 훨씬 많은 사람들한테 따순 손길 내미는 이웃은 얼마나 될까요. 이들을 보듬는 제도가 우리 사회에 있을까요. 이런 사회에서 ‘중립을 지킨다’는 일은 무엇을 뜻할까요.


.. 남들이 하나도 갖기 어려운 자격증을 세 개씩이나 갖고 있으면서도 그 장애인 노동자는 아직까지 번듯한 직업을 가져 보지 못했던 것이다. 그게 ‘썩을 놈의’ 우리 사회다 ..  〈39쪽〉


 양복 착 빼입은 사람한테는 굽실거리지만, 일할 때 입던 옷차림인 사람한테는 눈을 부라리며 가는 길을 막는 우리 사회입니다. 시커멓고 큰 차를 몰면 검문을 안 하지만 값싸고 작은 차나 짐차를 몰면 어김없이 검문을 합니다. 이런 이야기는 열 해 앞서, 스무 해 앞서, 서른 해 앞서도 똑같이 나왔습니다. 아직까지 하나도 달라지지 않습니다. 앞으로 열 해가 지나고 스무 해가 지나도 마찬가지가 되리라 봅니다.

 길에서 신체장애인을 부대낄 때 보통사람들 반응을, 몽골이나 동남아시아에서 온 이주노동자를 부대낄 때 보통사람들 반응을 떠올려 보셔요. 얼굴 하얀 서양사람이 길을 물을 때와 파키스탄 이주노동자가 길을 물을 때 어떻게 달라지는가요.


.. 법대로 모든 안전설비를 하는 데에는 수십억 원의 비용이 들지만, 노동자가 산업재해로 사망했을 때에는 기껏해야 1억 남짓의 비용밖에 들지 않습니다. 그것도 대부분 산재보험에서 지불됩니다. 우리 사회와 같은 기업 경영 풍토 속에서 유능한 경영자가 어떤 선택을 할 것인지는 자명한 일입니다 ..  〈229쪽〉


 법이 있어도 빠져나갈 구멍을 찾는 사람한테는 ‘법이란 있느나 마나’ 아닐까요. 어떤 이는 불법을 저질렀어도 변호사를 잘 써서 불구속이 되거나 무죄 판결을 받습니다. 어떤 이는 멋모르고 저지른 잘못 하나로 바로 구속이 되고 오랫동안 옥살이를 합니다. 자기 양심에 따라 살아가는 사람은 국가보안법이 아직도 살아남아 있기 때문에 옥살이를 해야 합니다. 사회 부조리에 항의하는 집회를 하는 사람들은 전투경찰 쇠몽둥이 찜질과 닭장차에 몸뚱이가 들린 채 처박히는 창피를 겪어야 합니다.

 법조항을 따진다면, 지금 틀거리에서는 ‘자전거를 타고 다닐 수 있는 길’은 하나도 없다고 해도 틀리지 않습니다. 사람 다니는 ‘거님길(인도)’로도, 자동차 다니는 ‘찻길’로도 다닐 수 없습니다. 법조항으로 따진다면. 그렇다면 자전거를 파는 가게도 불법이고, 자전거를 만드는 회사도 불법 아닐까요. 툭툭 끊어지는 자전거길을 놓는 행정 당국자도 불법이요, 자전거길을 제대로 놓지 않는 정책입안자와 공무원 모두도 불법 아닐까요. 자전거를 만들어서 팔게 해 놓고 다닐 수 없게 했으니까요.

 한편, 도시나 시골 길가에 불법무단 주정차를 하고 있는 자동차가 딱지를 끊는 일이란 거의 보기 드뭅니다. 몇 군데에서 함정 단속을 할 뿐, 그 많은 경찰들은 숱한 불법무단 주정차 자동차를 못 본 척합니다.


.. 노동자 임금이 인상되면 기업 경영에는 당연히 부담이 됩니다. 그러나 지금까지 과도한 임금인상이 원인이 되어 도산한 기업은 거의 없습니다. 부실 경영의 원인은 대부분 다른 곳에 있습니다. 노동자의 적정 임금 수준을 유지하면서 기업의 경쟁력을 높이는 것이야말로 지금 우리 나라 기업 경영자들이 시급히 해야 할 일입니다 ..  〈75쪽〉


 우리들은 누구나 일을 하고 있습니다. 일을 하는 사람은 ‘일꾼’입니다. 한자말로 옮기면 ‘노동자’입니다. 논밭을 부치는 사람이든, 회사에서 일하는 사람이든, 공장에서 일하는 사람이든, 동사무소나 행정 관청에서 일하는 사람이든, 버스나 기차를 모는 사람이든, 누구나 ‘일하는 사람 = 일꾼 = 노동자’입니다. 그런데 우리 가운데 얼마나 많은 사람이 ‘나는 일하는 사람이야. 일하는 사람이니 일꾼이지. 일꾼이란 노동자를 가리키지.’ 하고 생각할까요. 내 이웃도 똑같은 ‘일꾼이며 노동자’라는 생각을 몇 사람이나 할까요. 노동자한테 주어진 노동3권이 무엇인지, 노동자가 받을 권리가 무엇인지, 지금 우리 나라 노동현실이 어떠한지, 노동조합이나 민주노총이 어떠한 곳인지, 노조가 없어지기를 바라는 회사 간부와 언론재벌 생각은 어떠한지, 노동운동이란 무엇을 하자는 일인지, 노동운동이 우리한테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 찬찬히 헤아리거나 살필 줄 아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요.

 웬만한 직장인들은 대학교를 나오는 오늘날, 머리속에 수많은 지식을 가득 채우고 있으나, 정작 자기 자신은 누구이며 어떠한 ‘일꾼’이고, 어떤 대접과 권리를 받고 있는 가운데, 내 이웃이자 또래이자 손위나 손아래 사람인 다른 ‘일꾼’들은 어디에서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에 무덤덤하지는 않나 모르겠어요. 내 이웃이 시달림을 받고 푸대접을 받을 때, 나 또한 시달림과 푸대접에서 벗어날 수 없음을 못 느끼지 싶어요. 그래도 노동운동에 희망이 있을까요. 아무것도 없어 보이는 우리 사회에서 희망이란 불씨 하나 꺼지지 않도록 살리면서 보듬을 수 있을까요. (4340.4.7.흙.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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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집
르 꼬르뷔제 지음, 황준 옮김 / 미건사 / 199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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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이름 : 작은 집
- 글쓴이 : 르 꼬르뷔제
- 옮긴이 : 황준
- 펴낸곳 : 미건사(1994.5.10.)
- 책값 : 5000원


 ‘르 꼬르뷔제’가 누구인지, 또 어떤 일을 한 사람인지는 잘 모릅니다. 다만, 어디에선가 이름을 익히 들었다는 생각에 《작은 집》이라는 작은 책을 덜컥 집어듭니다. 사진이 많고 글은 적은 책, 으흠, 이이 르 꼬르뷔제는 집짓는 일을 하는 사람이로군요.


.. 사람들이 말하기를 “호수에서 4m라구? 그 사람들 미쳤군! 류머티즘에 걸리고, 무엇보다 호수면의 반사 때문에.” ‘모두들’ 자세히 관찰도 하지 않고, 잘 생각해 보려고도 하지 않았다. 류머티즘이라고? 예컨대 남비에 물을 끓여 보면 된다. 수증기는 어느 쪽으로 흘러가는가. 남비 위쪽으로 올라가지, 절대로 남비 측면으로는 돌지 않는다. 통상 ‘습윤성 류머티즘 증상’은 표고 50미터 내지 100미터 전후의 구릉지에서 많이 발생한다 ..  〈13쪽〉


 온 나라 구석구석 아파트가 들쑥날쑥 들어서는 이 나라 대한민국입니다. 이 나라 대한민국에서 아파트를 짓는 사람들은 얼마나 ‘생각’을 해 보며 아파트를 지을까요. 아파트가 들어서는 땅, 기운, 햇볕, 바람을 조금이나마 헤아려 볼까요. 아파트가 들어서며 달라질 그곳 삶터, 자연, 사람 들을 헤아려 보았을까요. 아파트를 세우면 집값이 얼마가 오르고, 돈을 얼마 버는 데에만 눈길을 쏟지 않았을까요.


.. 이 집의 개가 기뻐하도록(이렇게 말하는 것은 이 개도 가족의 일원이므로), 지나가는 사람들의 발밑을 볼 수 있는 높이에 울타리가 있는 구멍을 뚫고 작은 발판을 설치해 주었다. 이렇게 해 두면 개가 싫증을 내지 않고 놀게 될 것이다. 대문 울타리에서 이 발판이 있는 구멍까지 개는 계속해서 20미터나 뛸 수 있고, 또 거리낌없이 짖을 수도 있다 ..  〈27쪽〉


 요사이는 집에서 애완동물이라고 하는 짐승을 기르는 이들이 부쩍 늘었습니다. 돌이켜보면, 지난날에도 집집마다 개며 닭이며 고양이며 돼지며 소며 염소며 토끼며 온갖 짐승을 길렀습니다. 지난날 짐승기르기는 우리가 먹는 고기짐승이기도 했지만, 한식구로 여기는 살가운 동무이기도 했습니다. 한편, 지난날 우리가 기르던 짐승들은 딱히 ‘목에 줄이 매여 좁은 집구석에 갇히는 일’이 드물었습니다. 일소를 부리고 돼지를 친다고 해도 이들 집짐승이 어느 만큼 자유롭게 움직이고 돌아다닐 수 있도록 마음을 썼어요.

 오늘날 애완동물은 아파트 구석에서 눈치를 받으며 살그머니 키워야 하거나 좁은 시멘트 소굴에 갇힌 채 온삶을 마치게 되어 있습니다. 아파트를 지을 때, 집짐승이 그곳에 사람과 함께 살겠거니 생각하는 ‘건축가’란 없고, ‘아파트 회사’에서도 이런 데에는 마음을 안 쓰니까요.

 집짐승을 기를 수 없는 집이라면, 사람도 사람답게 숨구멍을 트며 살 만한 집이 아니라 할 수 있을까요. 사람이 사람답게 숨구멍을 트며 살 만한 집이라면, 어떤 집짐승도 즐겁게 어울려 살 수 있는 집이라 할 수 있을까요. 마당이 있는 집에는 개나 고양이를 키우기 좋습니다. 개나 고양이를 키우지 않아도 마당이 있는 집에 살면, 이 집에서 지내는 사람들도 한결 마음을 부드럽게 다스리고 조촐하게 지낼 수 있습니다.


.. 이제 벌써 9월 말이 되었다. 가을 화초가 피기 시작한 옥상에는 다시 푸르름으로 가득 찼다. 야생 제라늄도 빽빽히 자라서 이곳 한쪽 면을 뒤덮고 있다. 정말 아름다운 광장이다. 또 봄에는 어린 풀들이 자라고, 작은 화초가 피고 진다. 여름에는 키가 큰 잡초가 무성해 초원을 방불케 한다. 옥상 정원은 이렇게 자생하고 있다. 태양과 비와 바람과 씨앗을 날라다주는 새들 마음대로(아주 최근, 1954년 4월의 일이었는데, 이 옥상 한쪽 면은 원추리로 파랗게 뒤덮였었다. 원추리가 어떻게 해서 여기에 옮겨졌는지는 아무도 모르지만) ..  〈46∼47쪽〉


 아파트에도 뜰이 있습니다. 아파트 관리인은 틈틈이 뜰을 돌보며 ‘자기들이 심은 나무나 꽃’ 아닌 풀이 자라는가 빈틈없이 살피며 풀뽑기를 합니다. 꽃나무는 자기가 뻗고픈 대로 가지를 뻗을 수 없고, 1층과 2층, 또는 3층에 해를 가린다며, 위로 줄기를 올릴 수 없습니다. 바람을 타고 민들레 씨앗이 날아와도, 지나가는 새한테 묻어 온 들꽃이 뿌리를 내려도 어김없이 뽑힙니다.

 아파트 뜰은 겉보기로는 예쁘장하게 꾸민 푸름이 있는 듯 보이지만, 속을 살펴보면 끙끙 앓는 나무와 무서움에 벌벌 떠는 풀들이 잔뜩 옹크린 채 숨을 죽이고 있는 감옥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런 감옥 같은 데에서 자라는 풀들이 푸르다면 얼마나 푸를 수 있을까요. 이런 풀을 보며 푸름을 느끼는 아파트사람들은 얼마나 마음에 푸름을 담을 수 있을까요.


.. 1924년에 이 작은 집이 완성되어 내 양친이 이사하려고 할 무렵, 이곳 촌장은 마을 주민들을 모아 놓고 이 땅에 이런 건축물은 ‘자연에 대한 모독’이 아닌가라고 논의했다. 또 이 집이 이 땅에 세워짐으로써 앞으로 이런 종류의 건물이 (어쩌면) 몇 채나 더 지어질 것이 아니겠는가고 걱정하고, 이것이 다시는 더 모방되지 않도록 하자고 이런 건물의 건축을 금지했다 ..  〈82쪽〉


 르 꼬르뷔제라는 이가 지은 집은 ‘실패’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이 부모님은 이곳에서 마지막 삶을 아늑하게 보냈지만, 마을사람들하고 어우러지지 못했으니까요. 그렇다면, 이때부터 여든 해가 훌쩍 지난 2007년 오늘 르 꼬르뷔제를 돌아본다면, 지금도 르 꼬르뷔제가 지은 이 집은 ‘실패’일까요. 오늘 이 나라에서 아파트를 꾸역꾸역 온갖 곳에 세우는 ‘건축가’들은 ‘성공한 집’을 짓고 있을까요. 이집트에서 집짓는 일을 하는 하싼 화티는 ‘의사들이 맹장수술을 한다고 할 때 똑같은 자리에 똑같은 길이로 살을 갈라 똑같은 크기대로 맹장을 덜어내지 않는다’고 말하며, ‘사람이 살 집을 그곳에 깃들 사람들 형편에 따라 다 다르게 짓지 않는 사람은 건축가라고 할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우리 나라 구석구석 들어서는 아파트는 사람이 살라고 지은 집일까요. 죽은 르 꼬르뷔제가 본다면, 이 나라 사람들이 좋아하며 너나 할 것 없이 찾아드는 그 수많은 아파트는 어떠한 집일까요. 아니, 집이라 할 수 있을까요. 사람도 집짐승도 깃들 수 없는 시멘트 소굴이거나, 사람다움과 자연스러움을 잃고 하루하루 마음이 병들고 몸은 찌들며 죽어가야 하는 시멘트 무덤은 아닐는지요. 우리가 깃들어 살아갈 집이라면, 돈으로 마련하는 집이 아니라, 그곳에서 누가 무엇을 하며 얼마 동안 어떻게 지낼까를 헤아려서 저마다 다 다르게 지을 집이 아닐는지요. (4340.3.8.나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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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수일기
목수 김씨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0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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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 책이름 : 목수일기
- 글쓴이 : 김진송(목수 김씨)
- 펴낸곳 : 웅진닷컴(2001.7.10.)
- 책값 : 8000원


 학교에서는 착한 일을 하며 살라고 가르칩니다. 하지만 이 세상을 살아가며 착한 일을 하기란 참 어렵습니다. ‘착한 일’을 권리로 누릴 수 없기 때문입니다. 땅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며 힘없는 이를 돌보며 살아가는 착한 일은 언제가 가로막힙니다. 재개발을 한다는 마을마다 ‘그곳에 있던 집보다 오래 살아온 나무’가 으레 있으나, 이런 나무를 사랑하며 돌보고 싶은 착한 마음은 언제나 포크레인 삽날에 찍혀 버립니다. 큰나무를 파서 옮기자면 500만 원도 넘게 들지만, 새로 사서 심으면 50만 원이면 넉넉하다고 하면서.

 힘없이 쫓겨나야 하는 철거민을 돕자는 착한 마음도 언제나 날벼락을 맞습니다. 철거를 맡은 깡패들은 ‘위에서 시킨 일’이라 하고, 위에서는 ‘법으로 떳떳이 하는 일’이라고 말합니다.

 나날이 줄어드는 지구자원을 걱정하면서 자전거로 거리를 오가면, 한결같이 자동차 배기가스 세례를 받고 시끄러운 빵빵거림을 받습니다. 자동차마다 자전거를 길섶으로 아슬아슬하게 밀어붙이곤 합니다. 정작 지구자원을 펑펑 써대는 자동차는 ‘석유든 석탄이든 다른 지하자원이든 바닥날 일이 있는지 없는지’ 생각조차 안 합니다. 자전거 타거나 걷는 사람만 생각할 뿐입니다. 그러나 지구를 사랑하고 걱정하는 착한 마음은 언제나 콜록콜록 아찔아찔입니다.


.. 도시계획과 도로개발 과정의 기획안에는 땅값의 배상 이외에는 주거인들에 대한 어떤 것도 고려되고 있지 않다. 다시 말하자면 전유한 공간에서 살 권리가 인정되거나 그것을 배려한 정책은 단 한 번도 이루어진 적이 없으며, 그런 법조항이 있는지도 의문이다. 개발에 관한 한 무제한의 독재가 벌어질 수 있는 공간이 농촌인 것이다. 따라서 만일 도시의 번잡스러움을 피해 산골로 숨어들었다고 해도, 그리고 그곳을 자신의 삶의 공간으로 수십 년을 가꾸었다고 해도, 어느 날 산을 뚫어버리며 쳐들어오는 도로와 갑자기 만들어지는 댐에 저항할 수 있는 권리는 시골에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남아 있지 않다 ..  〈273∼274쪽〉


 저는 아직 시골에 몸을 붙이고 있지만, 이곳에 얼마나 오래 몸을 붙일 수 있을는지 모릅니다. 땅임자는 땅을 팔아 전원주택 짓거나 인삼밭을 가꿉니다. 산임자는 산을 깎고 나무를 베어내고 공장을 들여놓습니다. 제가 사는 마을뿐 아니라 이 나라 어디를 가도 형편이 비슷합니다. 도시에 깃든들 뾰족한 수가 없고, 시골에 뿌리박는들 다른 수가 없습니다. 땅이 없으면 없는 대로, 집이 없으면 없는 대로 언제나 떠돌이 신세입니다. 찻길도 놓고 공장도 세우고 짐승우리도 갖춰야 하니 자꾸자꾸 쫓겨납니다. 전세값 높이고 재개발을 하고 뭐를 뭐를 짓는다고 하니 자꾸만 밀려납니다.


.. 땡볕에 군인들 몇 중대가 동원되고 포크레인이며 트럭이 오르내리는 것을 보았는데, 그들이 일하는 모습을 보고는 한편 고맙기도 하고, 한편 일하는 모양새가 영 마뜩찮던 중이었다. 개울물이 도로를 휘돌아서 아스팔트가 다 벗겨지고 콘크리트 밑의 흙도 다 휩쓸려 내려가, 공중에 콘크리트만 덜렁 들려 있는 곳이 그들의 작업터였다. 그런데 아무리 긴급 복구공사지만, 공중에 떠 있는 콘크리트를 무너뜨리고 흙을 다져넣는 게 아니라 동굴처럼 보이는 앞부분만 흙으로 메우고 있었다. 마침 어제는 흙을 가득 실은 복구차량이 그 위를 지나다 콘크리트가 무너져내려 전복되어 버렸다. 그런 일을 당하면서도 그저 흙더미만 대충 메우는 일품새를 보니, 차라리 수해복군지 뭔지 집어치우라고 말하고 싶을 지경이었다 ..  〈44∼45쪽〉


 학교에서 우리들한테 가르친 ‘착한 일’이란 무엇이었을까요. 다른 데 눈길 두지 말고 시험공부 잘해서 일류대학에 붙은 다음, 자격증 몇 가지와 운전면허증 따서 큰기업에 일자리 얻고, 좋은 신랑신부감 만나 하루빨리 시집장가 가서 애 쑥쑥 낳고 세금 잘 내는 일등시민 되라는 것? ‘어떤 사람을 찍을지는 알 수 없어’도 투표하는 날은 빠짐없이 투표하라는 것? 무엇이 쓰레기로 버려지는지는 따질 것 없이 ‘쓰레기 잘 줍는 일’? 아직까지도 서울 지하철에서 흘러나오는 ‘수상한 사람은 신고하라’는 안내방송에 따라 간첩신고 알뜰히 하는 일?

 우리가 사회살이를 하며 할 수 있는 ‘착한 일’이란 무엇일까요. 나라에서 시키는 일 군말 없이 받아들이기? 행정관청에서 하라는 일은 두말 없이 받아들이기? 나이 많이 잡수신 어르신 말씀 고개숙여 잘 듣기? 신문과 방송에서 수없이 흘려보내는 소식을 비판없이 그대로 새겨듣기? 먹고살기 어려운 세상에 월급 주고 일 시키는 회사가 얼마나 고마웁냐고, 이런 회사에 반기를 들며 교통정체 일으키는 데모하지 말고 야근이나 잘하기?


.. 도무지 엄나무를 제대로 자라게 놔두는 법이 없다. 몸에 좋다고 껍질을 벗겨 약으로 쓰거나, 엄나무닭 백숙이라고 하여 닭국에 넣어 삶아먹는지라 남아나는 게 없다. 큰 엄나무가 방골내미 뒷산에도 자라고 있었는데, 그것도 한 해 전에 누군가가 뎅겅 잘라가 버렸다 ..  〈78∼79쪽〉


 목수 김씨(김진송)가 쓴 《목수일기》를 읽습니다. 처음에는 나무쟁이 이야기만 쓰는 줄 알고 너무 어려운 책이 아닐까 싶었으나, 가만가만 읽노라니 나무질하는 이야기는 거의 없습니다. 자기가 만난 나무 이야기, 자기가 만난 나무가 어떻게 시달리고 있으며 괴롭게 살아가는지 하는 이야기가 중심입니다. 또한 자기가 나무를 만지며 살아가는 터전이 얼마나 팍팍해지고 있는지, 자기 또한 나무를 만지며 살 수 있는 시골땅에서 사람다움을 간직하기 얼마나 어려운가를 숨김없이 털어놓습니다. 반갑군요. 이렇게 나무를 있는 그대로 바라볼 수 있는 눈을 간직하고 있으니. 하지만 슬프군요. 나무며 사람이며 우리 삶터며 된통 뒤죽박죽이 된 채 어둡고 슬프게 살아가야 하니까요. (4340.2.20.불.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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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뿌리
서숙 지음 / 녹색평론사 / 200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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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 책이름 : 따뜻한 뿌리
- 글쓴이 : 서숙
- 펴낸곳 : 녹색평론사(2003.5.10.)
- 책값 : 8000원

 
 새벽을 좋아합니다. 시골에 있든 도시에 있든 새벽이 참 좋습니다. 시골에서는 시골 나름대로 고요하고 으슬으슬 추운 새벽이 좋습니다. 도시에서는 도시 나름대로 시끄러운 소리 모두 잠든 새벽이 좋습니다. 지난날 서울에 살며 신문돌리기를 하던 때, 이 새벽이 참 좋아서 누구보다 일찍 일어나서 다른 딸배보다 먼저 일을 끝마치고 지국으로 돌아오려고 했습니다.


.. 점심으로 국수를 해먹고 맥주를 마셨다. 오랜 시간이 흐른 듯했는데, 충일한 기운이 몸안에 쌓인 듯했는데 여전히 정오였다. 학교에서는 전화 두어 번 하면 점심시간인데, 어떻게 시간이 이렇게 마디지요? 시골에서는 그럼 돈도 이렇게 마딜까요? 그럴 수도 있지요. 이렇게 눈에 보이는 것이 없으니 사고 싶은 욕망이 생길 틈이 없고, 생활이 그래서 단순해지고 ..  〈12∼13쪽〉


 술이 거나해서 비틀거리는 사람을 빼놓고는 새벽에 볼 수 있는 사람이 드뭅니다. 도시 골목길을 치우며 손수레 끌고 다니는 청소부를 빼놓고는 새벽에 길거리에서 일하는 사람이 없습니다. 저는 새벽 두 시쯤 일어나 신문 부수를 헤아려 챙긴 뒤 자전거 앞뒤에 가득 싣고 달렸습니다. 신문돌리기로만 먹고사는 다른 신문사 총무도 비슷한 즈음 일어나서 새벽을 엽니다. 우유돌리기로 살림을 꾸리는 다부진 아저씨 아주머니 들도 비슷한 즈음 일어나서 새벽을 엽니다. 새벽길에 이분들 자전거나 오토바이를 마주치면, 서로 아는 사이가 아니라도 꾸벅 인사를 하거나 ‘안녕하셔요’, ‘수고하셔요’ 하고 인사말을 주고받습니다.

 때때로 노래를 부르면서 돌립니다. 무언가 울컥하는 것이 있는 날은 큰소리를 질러 보며 신문을 돌립니다. 빗길에는 신문 젖을까 걱정스러운 마음이 앞서고, 눈길에는 언덕길을 못 올라갈까 근심스러운 마음이 앞섭니다. 이른새벽 골목길을 지나가는 차는 사람이 아무도 없으리라 생각하는지 불쑥불쑥 튀어나오기도 하고 엄청난 빠르기로 쌩하고 지나갑니다. 이런 차를 부대끼면 차 뒤에 대고 주먹을 휘두릅니다.


.. 두 손으로 하던, 두 손 끝에 정성과 마음을 모아 하던 일들이 사라진 지금, 그 손들은 무엇을 하는가. 무슨 일을 하여서 잃어버린 집중과 긴장의 순간들을 되찾을 수 있을 것인가. 손을 쓰지 않으면서부터, 우리의 생각과 감정도 생기를 잃게 되고, 우리의 삶은 그만큼 나른해지는 것이 아닌가. 우리의 삶은 손을 통해 연결되는 현장성과 멀어지는 만큼 막연해지고 추상적이 되는 것이다 ..  〈114쪽〉


 새벽 신문돌리기에서 몹시 짜증스러운 사람이 여럿 있습니다. 이 가운데 하나는 순찰을 돈다는 경찰. 새벽 순찰을 돈다는 경찰은 신문배달부 자전거나 오토바이에 꽂힌 신문을 으레 슬쩍합니다. 그러고는 시치미를 뚝 떼지요. 골목길 안쪽 집에 신문을 넣고 헐레벌떡 돌아오면 저 앞쪽에 순찰차가 슥 지나가는 게 보입니다. 바구니에 꽂은 신문 부수를 세어 봅니다. ‘저 자식들 또 훔쳐가네’ 언젠가 코앞에서 슬쩍하는 모습을 보고 ‘야, 뭐 하는 거야!’ 하고 소리를 지르니 ‘어, 죄송해요. 그냥 뭐가 났나 보려고요.’ 하며 꼬리를 내리고, 언젠가는 ‘아저씨 오면 돈 주려고 기다리고 있었어요.’ 하면서 알량한 웃음을 짓고, 언젠가는 ‘우리들이 이 새벽에 이렇게 고생하는데 한 부쯤 주면 안 돼요?’ 하고 외려 큰소리입니다. 그러면 저도 한 마디 하지요. ‘저도 이 새벽에 이렇게 고생하면서 돌리는데 한 부쯤 사 주면 안 돼요?’


.. 가령, 쌀 한 톨이라도 애껴야 한다는 것은, 그것이 알뜰이나 절약의 차원을 넘어서는 일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일 것이다. 밥상에 밥 한 공기가 오르기까지, 곡식알들은 벌레로부터 비바람으로부터 새들로부터 오가는 사람들의 손길로부터 수확기의 뜻밖의 폭우에 이르기까지 많은 위기들을 넘기고 살아남았다. 그러니 설거지통에 쌀 한 톨이 떨어진들, 그걸 무심히 그냥 버리지 못할 것이다. 거기까지 살아서 온 그의 존재를 그런 식으로 허방을 치게 해서는 안 될 것이다. 설거지 물에서 건져내어 잘 씻어 향긋한 밥을 지어 먹을 때, 비로소 쌀 한 톨의 삶은, 거기 연결된 생명의 손길들은 완성되는 것이다 ..  〈217∼218쪽〉


 우유상자를 여섯 통 자전거 앞뒤로 매달고 이른새벽부터 아침까지 돌리는 아주머니를 보았습니다. 앞에 하나, 짐받이에 셋, 짐받이 옆으로 하나씩. 아주머니는 저렇게 돌리고 한 달에 얼마를 벌 수 있었을까요.

 어느 날, ㅈ일보를 돌리는 총무가 우리 지국으로 찾아와 울면서 하소연을 합니다. ‘제 오토바이 못 보셨어요? 일을 마치고 쇠사슬로 묶어 놓았는데 누가 그걸 끊고 훔쳐갔어요. 그런데 지국에서는 오토바이 도둑맞은 건 제 과실이라면서 제 돈으로 그걸 물어내라고 해요. 아내하고 저하고 둘이서 1500부를 돌리는데 한 달에 70만 원 받아요. 오토바이 값은 80만 원이래요. 어떻게 하면 좋아요?’


.. 정말 그러네. 배낭들을 삐딱하게 걸치고 운동화를 신고 여기도 기웃, 저기도 기웃거리네. 이기, 우리가 차가 없어서 이럴 수 있는 기지요. 그건 그렇다. 서울에서 여기까지, 비행기 택시 버스를 타고 걷고. 자가운전을 하지 않아서 가능한 일이다. 전국의 도로 위를 달려가는 차들, 목적지를 향해 달리며 운전석에서 뒷자석에서 옹색하게 내다보는 풍경들 …… 물어서 버스표 사고 기다리고 그곳 사람들과 함께 타고 가며, 익숙하면서도 낯선 삶 속으로 잠시라도 들어가는, 그  홀가분하고 긴장된 순간들은 사라진다. 파스텔 색조가 사라지는 세계. 삶은 획일을 향해 질주한다 ..  〈136쪽〉


 새벽바람이 찹니다. 마당에 나가 새벽에도 아직 밝게 빛나는 별을 올려다봅니다. 이제는 밤하늘 별은 시골사람들만 누릴 수 있는(아니 예전부터 그랬는지 모르겠는데) 고마운 선물입니다. 하지만 요즈음 시골사람들은 이 고마운 선물을 누릴 만큼 느긋함이나 아늑함이 없습니다. 그만큼 힘듭니다. 삶이, 사회가 팍팍해지니까요. 그렇다면 도시에 사는 사람들은 밤하늘이 선사하는 고마운 별빛을 손사래치고 무엇을 얻거나 누리며 살아가는가요. 우리를 먹여살리는 따뜻한 뿌리는 무엇일까요. 언제나 새힘을 내도록 하고, 저마다 다른 열매를 맺도록 북돋워 주는 따뜻한 뿌리는 무엇일는지요. (4340.2.13.불.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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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유목민, 바람처럼 떠나고 햇살처럼 머문다
리타 골든 겔만 지음, 강수정 옮김 / 눌와 / 2005년 4월
평점 :
절판


- 책이름 : 나는 유목민, 바람처럼 떠나고 햇살처럼 머문다
- 글쓴이 : 리타 골든 겔만
- 옮긴이 : 강수정
- 펴낸곳 : 눌와(2005.4.30.)
- 책값 : 14000원


 재미있는 삶이라고 생각합니다. 딱히 잡혀 있는 일이 없기 때문에 재미있다고 느낍니다. 꼭 이래야 하거나 저래야 하는 법이 없으니 재미있지 싶어요. 시험을 치를 때 꼭 100점을 맞아야 하지 않아요. 99점만 맞아도 좋아요. 뭐, 80점으로 흐뭇할 수 있고, 50점만으로도 기쁠 수 있습니다. 10점이나 5점 맞고 웃을 수 있어요. 제 고등학교 때 성적표를 보면, 영어 94점, 한문 97점, 수학 24점, 윤리 51점, …… 이랬습니다. 수학점수가 10점대였던 적도 있지 싶고 골치아픈 서양철학만 외우게 하는 윤리는 30∼40점에 머문 적도 있지 싶습니다. 그래도 나쁘지 않았어요. 아니, 좋았습니다. ‘난 내가 좋아하는 공부를 더 많이 할 테야’ 하고 생각했거든요.


.. 나는 누군가 다른 이의 삶을 살고 있다. 근사한 레스토랑과 유쾌한 사람들, 아카데미니 그래미니 하는 각종 행사들로 채워진 그리 나쁘지 않은 삶이다. 24년을 함께 산 남편과 나는 유명 인사들과 어울려 저녁을 먹고, 최근 영화들을 시사회에서 감상한다. 로스앤젤레스의 도서 관련 모임에도 빠지지 않고 초대된다. 남편이 유명한 잡지의 편집자문 일을 하는 덕분에 우리는 남들이 흔히 누리지 못하는 특권과 화려함으로 채워진 삶을 구가한다. 하지만 이젠 그런 자리에 가더라도 특권을 향유한다는 뿌듯함 대신 눈부신 화려함이 왠지 불편하게만 느껴진다. 나는 더 이상은 나라고 할 수 없는 다른 누군가를 위한 명품의 세계에 살고 있다 ..  〈13쪽〉


 지금도 그때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난 내가 살고픈 대로 살 테야’ 하고 마음먹으면서 살고 있고, ‘난 내가 읽고 싶은 대로 읽을 테야’ 하면서 제 마음에 드는 책을 골라서 읽습니다. 충주에서 서울로 자전거를 타고 오가기를 즐기는데, 올겨울에는 손발이 많이 시려워서 때때로 고속버스를 타고 1시간쯤 따뜻하게 가곤 했습니다. 얼어붙는 손발을 부여잡고 낑낑대며 달릴 때에는 ‘참 괴롭구나’ 싶었지만, 글쎄, 괴롭기는 해도 즐겁더군요. 더우면 더운 대로 ‘이게 바로 더위구나’ 하고 느꼈고, 추우면 추운 대로 ‘이게 바로 추위구나’ 하고 뼛속 깊이 느꼈습니다.

 고속버스를 타면 몸은 느긋했지만, 마음은 무겁습디다. ‘이거 너무 몸이 느긋하게 다니는 셈 아닌가’ 싶었고, 돈 몇 푼(찻삯)으로 자꾸만 손쉬운 길을 가면 마음까지 흐물흐물 늘어지지 않을까 걱정스럽더군요. 그래서, 고속버스에서 내린 뒤 다시 추위를 와락 껴안으며 달릴 때면 참 시원하데요. 그 짜릿한 추위와 칼바람이란! 하하!


.. 지금은 내가 선택한 삶의 자유와 독립을 구가하는 중이다. 만약 누군가의 허락을 받아야 했다면 니카라과에는 결코 가지 못했을 것이다 ..  〈117쪽〉


 곧 설 명절이 다가옵니다. 설 명절에 부모님 집에 갈까 말까 망설입니다. 저는 제가 살고픈 대로 살기 때문에, 저 한 사람한테는 좋다고 하겠지만 이웃사람, 이 가운데 집안식구들한테는 썩 좋지 못합니다. 혼인과 이혼도 멋대로 했으니 집안식구들로서는 달가웁지 않겠지요. 제 둘레에 있는 다른 분도 비슷하리라 봅니다. 저는 아무렇지 않다고 느끼는 일이지만, ‘야, 니가 고생하며 사는 걸 너 빼고 누가 좋아하겠냐?’ 하고 말하는 선배들 말을 들으면, ‘그렇구나. 나는 고생이라고 생각하지 않지만, 다른 사람들은 구질구질하게 뭐 하는 짓이냐고 느끼겠구나’ 싶습니다. 그러고 보니, 제가 지내는 시골집을 슥 둘러보시더니 ‘무슨 피난민 수용소 같네’ 하던 부모님 말씀이 떠오르는군요.


.. 코네티컷의 부모님 댁에서 일주일을 머문다. 두 분은 내 인생에 대해 무척 조심스럽게 말씀을 하신다. 딸이 결혼해서 안정된 삶을 꾸리길 원하신다는 걸, 내가 아무리 행복하다고 말해도 믿지 않으신다는 걸 나는 잘 안다. 인생에 대해서는 아무리 그래도 당신들이 더 잘 안다. 여자는 남편이 있어야 행복하다는 걸. 그게 인생이라는 걸. 엄마는 딸과 이혼한 옛 사위에게 얼마 전에 생일 선물을 보냈다고 얘기하신다. 말씀은 안 하시지만 내심 우리가 다시 화해하기를 바라신다 ..  〈89쪽〉


 그렇다면 어떻게 살아야 잘사는 삶이라 할 수 있을까요. 우리들은 어떻게 살아야 잘사는 셈일까요? 남들이 말하는 잘사는 삶을 꾸려야 할는지, 집안식구들이 말하는 잘사는 삶을 꾸려야 할는지, 아니면 자기가 생각하는 잘사는 삶을 꾸려야 할는지요? 이 모두가 하나로 모일 수 있는 삶을 꾸려야 잘사는 삶일까요?


.. “의료 교육을 받으셨나요?” 내가 묻는다. “아니오.” 그녀가 대답한다. “그렇지만 엄마들이라면 다 아는 일들인걸요.” 그녀는 자식이 다섯에, 손자는 열다섯 명을 두었다 ..  〈106쪽〉


 《나는 유목민, 바람처럼 떠나고 햇살처럼 머문다》라는 책을 읽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잘난 미국여자 한 사람이 세계 여러 곳을 두루 다닌 이야기를 끄적였나 싶어 따분할지 모르겠구나 하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글쓴이가 ‘남 보란 듯이 꾸리는 삶’이 아니라 ‘내가 즐겁게 꾸리는 삶’을 찾고자 위자료 한 푼 안 받고 이혼을 마음먹은 뒤, 제3세계를 중심으로 홀몸으로 낯선 세상과 사람들을 부대끼는 이야기임을 깨달은 뒤에는 책장이 술술 넘어가는군요.

 남들 따라 살지 않고 나 따라 살아가니까 그럴까요. 한 번 살고 떠나는 이 세상에서 굳이 미련이나 아쉬움을 남기지 말고 깨끗하게, 자유롭게, 모든 것을 훌훌 털어버리고 살아가니까 그럴까요. 더 많이 움켜쥐거나 가지려는 삶이 아니라, 더 많이 부대끼고 즐기려는 삶이라서 그럴까요. 떠날 때는 바람, 머물 때는 햇살. 그래, 그렇군요. 가볍게 살되, 한 자리에 머물 때는 따순 마음을 펼칠 수 있어야겠군요. 저는 바람처럼 살는지 모르나 햇살처럼 못 머물고 있었습니다. (4340.2.7.물.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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