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키 키린 - 그녀가 남긴 120가지 말 키키 키린의 말과 편지
키키 키린 지음, 현선 옮김 / 항해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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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책읽기 2022.12.15.

인문책시렁 269


《키키 키린》

 키키 키린

 현선 옮김

 항해

 2019.6.24.



  《키키 키린》(키키 키린/현선 옮김, 항해, 2019)을 읽었습니다. 스스로 맡은 일을 해나가는 하루를 언제나 새롭게 바라보고 배우려는 발걸음으로 삼으려 했다는 마음을 엿볼 수 있습니다. 배우려고 한다면 어디에서나 배웁니다. 배우려는 마음이 없으면 어디에서도 안 배웁니다. 배우려는 사람은 설거지를 하다가도 깨닫고, 비질을 하면서도 깨달아요. 안 배우려는 사람은 절집에 깃들어 비손을 오래오래 하더라도 못 깨닫습니다.


  따로 배움터(학교)를 드나들거나 마침종이(졸업장)·솜씨종이(자격증)를 거머쥐어야 배웠다고 할 수 있을까요? 종이란 한낱 종이입니다. 종이로 배움빛을 밝히지 않습니다.


  돈을 거머쥐어야 넉넉하다고 여길 수 있을까요? 돈은 그저 돈입니다. 돈으로는 살림을 밝히지 않아요. 돈이 많아도 마음이 가난한 나머지 살림이 메마른 사람이 수두룩합니다.


  책을 읽었기에 잘 알지 않습니다. 책읽기는 그저 책읽기입니다. 잘 알려면 몸소 맞아들여서 즐거이 누릴 노릇입니다. 풀꽃나무를 책으로 많이 들여다보았기에 풀꽃나무를 알 수 없어요. 풀꽃나무 곁에서 살아가면서 풀꽃나무를 이웃숨결로 받아들이는 하루이기에 풀꽃나무를 천천히 알아갑니다.


  넘어져 보면서 아픈 줄 알고, 아픈 줄 알면서 이웃을 보고, 이웃을 보면서 둘레를 느끼고, 둘레를 느끼다가 새삼스레 ‘나(우리)’를 다시 바라봅니다. 내가 나인 줄 알 적에 나를 새롭게 느껴서 나한테서 배웁니다. 그래요, 나는 나한테서 배웁니다. 나는 남한테서 배우지 않습니다. 그대도 매한가지예요. 그대는 그대 스스로 배웁니다. 누가 그대를 가르치지 못 해요.


  삶은 늘 오늘 여기입니다. 오늘 여기를 보려는 눈길을 틔우기에 차근차근 눈빛이 밝는 사람으로 고요히 설 수 있습니다.


ㅅㄴㄹ


그저 지금 내 상황이 어떤지에만 집중하니까, 불평할 겨를이 없습니다. (47쪽)


그때 데라우치 긴 역할을 하면서 크게 깨달은 것은, 할머니들이야말로 세상에 혁명을 일으킬 수 있는 유일한 존재라는 겁니다. 흔히들 남자는 사회적 명예나 지위 같은 게 없으면 살아갈 수 없다고 하는데, 여자에게는 그런 것 없이도 살아갈 수 있는 에너지가 있죠. (117쪽)


한 번은 자기의 밑바닥을 본 사람이 좋다는 거죠. 그런 사람은 아픔이 뭔지 알기 때문에 대화의 폭이 넓고, 동시에 넘어진 자리에서 변화할 수도 있거든요. (127쪽)


친정 엄마와 시어머니가 돌아가셨을 때 아이가 얼굴을 보고 싶다기에 보여줬어요. 그러자 딸아이가 하얀 천을 열고 시신을 쓰다듬더군요. 그걸 보면서, 실로 죽음이라는 걸 만져 보는 것도 나쁘지 않구나 하고 느꼈습니다. 제가 하는 교육이란 게 있다면 이 정도뿐입니다. (187쪽)


아이는 응석쟁이로 키우면 안 됩니다. 혼자 할 수 있는 건 스스로 하게 해야죠. 집안일도 부모가 할 때 같이 시켜야 한다고 보고요. (201쪽)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리는 사람.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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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좋아하는 것들, 명상 내가 좋아하는 것들 8
용수 지음 / 스토리닷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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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책읽기 2022.12.12.

인문책시렁 265


《내가 좋아하는 것들, 명상》

 용수

 스토리닷

 2022.11.2.



  《내가 좋아하는 것들, 명상》(용수, 스토리닷, 2022)을 가만히 읽었습니다. 둘레에서는 한자말 ‘명상’을 널리 쓰는 듯하지만, 저는 스스로도 아이들한테도 이웃한테도 ‘마음’을 이야기합니다. 우리는 마음을 돌보거나 다스리거나 닦거나 갈거나 세울 적에 스스로 즐겁다고 이야기해요.


  뜻으로만 보면 ‘마음닦기·마음갈이’나 ‘마음돌봄·마음보기’라 할 만합니다. 이런 말을 쓰는 이웃님이 제법 있습니다. 이대로 풀어서 써도 즐겁고, 더 마음을 기울일 수 있다면 ‘마음길·마음꽃’이라 할 만해요. 그리고 ‘고요·고요길’이라 할 수 있으며, 어린이한테는 ‘돌아보기’나 ‘바라보기’처럼 수수하게 이야기합니다.


  마음을 돌보거나 다스리는 까닭을 살펴본다면, 마음이 아무런 티끌이 없도록 하려는 뜻이 하나일 텐데, 마음에 가득한 티끌만 쓸거나 치운대서 끝나지 않습니다. 우리는 왜 집안을 쓸거나 닦거나 치우나요? 그저 아무것도 없이 휑하게 살려고 쓸거나 닦거나 치우나요? 아닙니다. 집안이건 마당이건 고이 쓸거나 닦거나 치우려는 뜻은 ‘새로 담거나 채우면서 살아가는 즐거운 하루’를 누리려는 뜻입니다.


  숱한 이웃님이 ‘명상 훈련을 하다가 실패’합니다. 마음을 닦으려다가 쓴맛을 보거나 넘어지거나 자빠져요. 왜 그러한가 하면, 마음을 텅 비우고서 그대로 끝내고 말거든요. 비운 마음에는 꿈을 심을 노릇입니다. 앞으로 나아가려는 길을 ‘생각(새로 가려는 길)’이라는 씨앗으로 심어야지요.


  이리저리 휩쓸리거나 휘둘리거나 어지러운 티끌은 ‘생각’이 아닙니다. 다시 말해서, ‘생각이 아닌 부스러기가 가득한 마음’이기에, ‘생각이 들어서서 꿈으로 나아갈 밝고 맑은 터전을 이루고자 마음씻기·마음돌봄·마음닦기’를 한다고 여길 만합니다. 생각이 없는 마음이란, 죽은 마음입니다. 생각을 세워서 스스로 새롭게 빛나려는 마음이기에 살아숨쉬는 마음입니다.


  오늘날 우리나라 사람들은 아주 흔히 쓰는 낱말인 ‘사랑’하고 ‘생각’이 어떤 참뜻인지 거의 모르거나 등돌려요. 국립국어원 낱말책도 ‘사랑’하고 ‘생각’을 어질게 뜻풀이를 해놓지 않습니다. 사람이 사람으로서 살아가려면, 사랑으로 생각을 지어서 마음에 담을 노릇입니다. 사랑이 없으면 생각이 아닙니다. 생각이 없으면 사랑이 아닙니다. 낱말뜻을 제대로 짚어야 하고, 낱말뜻을 제대로 풀이한 낱말책을 곁에 두어야 합니다. 아무 밥이나 아무렇게나 먹으면 몸이 망가지잖습니까? 아무 말이나 아무렇게나 풀이한 낱말책(사전)이나 글책(인문책)을 자꾸 읽는다면, 우리는 스스로 우리 마음을 망가뜨리는 셈입니다.


  수수한 낱말을 놓고서 뜻풀이부터 제대로 참답게 하는 첫자락을 열고, 마음에 가득한 티끌을 어떻게 쓸고닦아서 스스로 어떤 꿈길로 나아갈 어떤 생각을 씨앗으로 심으려는지 차근차근 바라볼 노릇입니다. 돌아보고 바라보면 됩니다. 아주 쉬워요. 쉬운말로 생각을 지으니 꿈을 스스로 펴면서 날개돋이를 합니다.


ㅅㄴㄹ


명상은 고통을 없애는 게 아니라 고통을 알아 가는 거예요. 평생 외면했던 감정을 직면하게 되면 어찌 아프지 않을 수가 있겠어요. (31쪽)


옷장에 괴물이 있는 줄 생각하면 두렵지만 열어 보면 아무도 없어요. 캄캄한 밤에 무서운 사람이 있는 것 같지만 손전등을 비추면 나무뿐이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35쪽)


명상은 뭡니까? 좋고 나쁘고 하는 마음 없이 보고 듣고 느끼는 겁니다. 일어나는 생각과 감정도 담담하게 지켜보는 겁니다. 코멘트 없이 목격하는 겁니다. (61쪽)


명상은 내가 누구인가를 알아 가는 과정입니다. 내가 누구인가를 알기 위해 내가 아닌 것을 버립니다. (85쪽)


걷기 명상은 깨어 있으면서 걷는 겁니다. 걸을 때 걷고 있다는 것을 압니다. 깨어 있겠다는 의도를 가지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180쪽)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리는 사람.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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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감한 사람들을 위한 지구별 가이드 - 자신의 민감함을 감추지 않고 세상을 위한 선물로 사용하는 법
멜 콜린스 지음, 이강혜 옮김 / 샨티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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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책읽기 2022.12.12.

인문책시렁 267


《민감한 사람들을 위한 지구별 가이드》

 멜 콜린스

 이강혜 옮김

 샨티

 2021.4.22.



  《민감한 사람들을 위한 지구별 가이드》(멜 콜린스/이강혜 옮김, 샨티, 2021)를 읽었습니다. 이 같은 책이 나오면 반갑습니다. 하나하나 느끼는 이웃이 있구나 싶고, 뼛속으로 찌르르 스미는 기운을 알아차리는 동무가 있구나 싶어요.


  이 책은 ‘Highly Sensitive’를 ‘민감한’으로 옮깁니다. 영어 낱말책도 이처럼 옮길 듯합니다. 그런데 저는 다르게 느낍니다. 우리말 ‘느끼다’나 ‘알다’로 옮길 적에 어울리겠다고 느껴요. ‘바로알다·바로느끼다’나 ‘알아보다·알아차리다’라 해도 어울릴 테지요.


  길바닥을 가득 채운 부릉이(자동차)를 보기만 해도 메스껍다고 느끼는 사람이 있으나, 멀쩡한 사람이 있습니다. 부릉이를 타면 기름하고 플라스틱하고 쇠붙이 냄새에 어지러운 사람이 있으나, 말짱한 사람이 있습니다.


  무엇을 ‘느끼는’ 사람은, 느끼기 때문에 아픕니다. 또는 느끼기 때문에 스스로 길을 찾으려 해요. 이 고약하고 괴로운 결을 스스로 씻거나 털려고 용을 쓰고 몸부림을 쳐요. ‘못 느끼는’ 사람은 못 느끼면서 안 아프기도 하고, 못 느끼는 사이에 몸이 망가지기도 합니다.


  느끼는 사람은 처음부터 느끼기 때문에 스스로 서울(도시)을 떠나거나 나중에 어떻게든 시골이나 숲으로 깃들려 합니다. 못 느끼는 사람은 처음부터 못 느끼기 때문에 그냥 서울에서 살거나 나중에 다른일 때문에 시골로 옮기곤 합니다.


  느끼는 사람은 처음부터 느끼면서 스스로 몸이며 마음을 다스리고 달래며 아픈 데를 씻으려 하기에, 천천히 새길을 깨닫고 폅니다. 또는 처음부터 너무 아픈 나머지 일찍 쓰러지거나 숨집니다. 못 느끼는 사람은 끝까지 안 아플 수 있으나, 몸이며 마음에 꾸준히 고약한 기운이 쌓인 바람에 나중에 한꺼번에 터져서 걷잡을 수 없게 마련입니다.


  한자말 ‘민감’은 나쁜말이 아닙니다. 다만 ‘느끼다’나 ‘알다’처럼 수수한 낱말로 이러한 이야기를 풀어내어 펼 적에 어린이하고 푸름이도 알아볼 수 있습니다. 작게 느끼건 크게 느끼건 똑같은 ‘느낌’입니다. ‘Highly Sensitive’가 아니더라도 누구한테나 길잡이가 될 이야기를 서로 헤아리고 찾을 수 있을 적에 함께 나아가는 새길을 열 만합니다.


ㅅㄴㄹ


그렇게 떠맡은 역할을 의식적으로 알아차리지 못하면 성인이 되어서까지 그 역할을 계속 하고 있을 수 있다. (71쪽)


내가 쓴 가면들은 나의 연약함을 가리고 아무도 다시는 내게 상처 줄 수 없게 하려는 무의식적 방편이었다. (86쪽)


우리의 진짜 모습을 회복하는 유일한 방법은 시선을 밖이 아니라 안으로 돌려서 자기 내면에 무엇이 있는지 알아차리는 것뿐이다. (110쪽)


당신에게 상처를 준 사람의 행동이나 상황이 더 큰 배움의 일부일 수도 있지 않을까? 어쩌면 그들의 못된 행동이 그들 자신의 과거 문제로 인한 것은 아닐까? (135쪽)


우리 몸 안에는 전기가 흐르는 전기 시스템이 장착되어 있다. 전기가 가장 강하게 흐르는 곳은 심장과 뇌이다. 모든 전기 시스템은 접지接地가 되어야 한다. 안타깝게도 우리는 대부분의 시간을 신발을 신은 채 보내기 때문에 우리는 ‘어머니 지구’와의 연결이 끊어진 상태로 살고 있다. (157쪽)


비록 보거나 느낄 수 없다 하더라도 당신 안에는 더욱 높은 차원의 힘이 있다. (200쪽)


#TheHandbookforHighlySensitivePeople 

#MelCollins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리는 사람.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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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평화론 - 비판정본 독도 길을 읽다 1
안중근 지음 / 독도도서관친구들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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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책읽기 2022.12.5.

인문책시렁 260


《비판정본 동양평화론》

 안중근

 독도도서관친구들

 2019.6.15.



  《비판정본 동양평화론》(안중근, 독도도서관친구들, 2019)을 곰곰이 읽습니다. 안중근 님이 남긴 ‘한문’을 우리글로 옮긴 《동양평화론》은 진작 다른판으로 읽었는데 ‘비판정본’이 나온 줄 뒤늦게 알고서 새롭게 읽어 보았습니다.


  새삼스럽지만, 안중근(1879∼1910) 님은 우리글로 이야기를 남기지 않았습니다. 우리 겨레가 읽자면 우리글을 쓸 노릇일 텐데, 아무래도 우리글을 배울 겨를이 없었다고 여겨야 할 테지요. 주시경(1876∼1914) 님하고 엇비슷한 나낱을 살다가 떠난 안중근 님인데, 나라사랑·나라걱정을 하면서 ‘낡은 틀(한문)’을 버리고서 ‘새길(한글)’을 찾자는 마음까지 바라기는 어려울 수 있어요. 지난날에 모든 낡은 틀을 버리고서 새길을 찾고 펴면서 홀로서기(독립운동)에 나선 사람은 뜻밖에 적었거든요.


  아무래도 우리글 아닌 한문으로 남은 글인 터라, 게다가 손글씨로 남은 글을 되옮긴 터라, 옮겨쓴 이가 잘못 적는다든지, 뜻을 새길 적에 엉뚱하게 새길 수 있다지요. 이리하여 ‘비판정본’을 내놓는데, ‘비판하는 정본’이라는 낡은 말씨를 쓰기보다는 ‘되새김’이나 ‘바른고침’처럼 우리말로 쉽게 쓰는 길을 헤아리면 한결 나았으리라 봅니다.


  한문을 옮기다 보니 한문처럼 예스런(낡은) 말씨를 일부러 쓰기도 하는데, 굳이 예스런(낡은) 말씨를 쓰기보다는 오늘말에 맞게 더욱 쉽고 부드럽게 풀어서 어린이도 스스로 읽을 만한 글로 가다듬으면 훨씬 낫겠다고 여겨요. 그러니까 ‘어른이 읽도록 새긴 우리글’에다가 ‘어린이가 읽도록 손질한 우리글’로 두 가지 판을 한다면 더 뜻있겠지요.


  이러구러 안중근 님은 아름길(평화)을 바라는 뜻이 그윽하면서 단단합니다만, ‘하늬녘(서양)·새녘(동양)’이 다투는 얼개에 머무른 듯싶습니다. 하늬녘에도 들꽃사람이 있고, 일본에도 들꽃사람이 있습니다. 우리나라에도 괘씸꾼이 있고, 하늬녘이며 일본에도 괘씸꾼이 있어요. 아름길은 온누리 들꽃사람을 헤아리면서 손잡는 길을 바라보아야 이루리라 봅니다. 곧 ‘동양평화’ 아닌 ‘세계평화’를, 그러니까 ‘온아름’을 바라볼 수 있기를 바라요. 바른고침으로 나온 《동양평화론》인 만큼, 풀이를 할 적에 이런 이야기를 곁들이면 돋보였을 텐데, 이 대목까지는 나아가지 못 하는구나 싶습니다.


ㅅㄴㄹ


농사짓고 장사하는 일보다 예리한 무기를 연구하는 일에 더 열중하여 전기포·비행선·잠수정을 새롭게 발명하니, 이것들은 모두 사람을 해치고 사물을 손상시키는 기계이다. (85쪽)


오늘날 서세동점西勢東漸의 환난을 동양 인종이 일치단결하고 힘을 다해 방어하는 것이 가장 좋은 계책이다. 비록 어린아이라도 이를 알 것이다. 그런데 무슨 이유로 일본은 이런 순조로운 형세를 둘러보지 않고, 같은 인종인 이웃나라를 착취하고 우의友誼를 갑자기 끊어버려 스스로 방휼지세蚌鷸之勢를 취하여 어부를 기다리는 것처럼 하는가? 한국과 청국 두 나라 사람들의 소망이 크게 꺾이고 말았다. (93쪽)


지난 갑오년(1894년), 일본과 청국의 전쟁을 따져 보면, 그때 조선국에서는 좀도둑인 동학東學 무리의 소요騷擾로 말미암아 청국과 일본 두 나라가 군사를 일으켜 바다를 건너왔고, 허락 없이 전쟁을 시작하여 서로 충돌하였다. (97쪽)


안타깝다! 그러므로 자연의 형세를 돌보지 않고 같은 인종과 이웃 나라를 착취하는 자는 끝내 독부獨夫의 우환을 반드시 면치 못할 것이다. (118쪽)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리는 사람.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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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물일기 - 존재하는 모든 것들을 존경해
진고로호 지음 / 어크로스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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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책읽기 2022.12.4.

인문책시렁 253


《미물일기》

 진고로호

 어크로스

 2022.7.11.



  《미물일기》(진고로호, 어크로스, 2022)를 읽었습니다. ‘미물(微物)’은 “1. 작고 변변치 않은 물건 2. 인간에 비하여 보잘것없는 것이라는 뜻으로, ‘동물’을 이르는 말 3. 변변치 못한 사람을 낮잡아 이르는 말”을 뜻하는 한자말입니다. 이 한자말을 써도 나쁘지 않을 테지만 ‘작은하루’나 ‘작은이웃’처럼 책이름을 붙이면 한결 부드러이 이야기를 펼 만했으리라 느낍니다. 글쓴이 둘레에 있는 작은숨결을 노래하는 꾸러미이니 ‘작은삶’이나 ‘작은노래’나 ‘작은얘기’처럼 이름을 붙여도 어울려요.


  글감은 먼발치에서 안 찾아도 됩니다. 글감은 대단하거나 훌륭하거나 엄청나야 하지 않습니다. 삶자리 어디에나 흐르는 글감을 알아보거나 기꺼이 품으면 됩니다. 작은이웃을 눈여겨볼 수 있기에 뭇이웃을 아우를 수 있어요. 작은하루를 돌아볼 수 있기에 온삶을 어우를 만합니다.


  하늘을 가르는 새는 크지도 작지도 않습니다. 모두 새입니다. 아무리 커다란 새라 하더라도 하늘 높이 뜬 모습은 깨알 크기로 보입니다.


  땅바닥을 기는 개미는 작지도 크지도 않습니다. 모두 개미입니다. 아무리 작은 개미라 하더라도 땅바닥에 엎드려서 하루 내내 들여다보노라면 개미살림을 차근차근 헤아릴 수 있습니다.


  사람은 지렁이나 파리더러 ‘작다’고 말할는지 모르나, 무엇이 작다는 뜻일까요? 사람은 코끼리나 고래더러 ‘크다’고 말하기 일쑤인데, 무엇이 크다는 뜻인가요? 크기란 무엇이고, 몸집은 무엇일까요? 우리는 이웃을 마주할 적에 몸집부터 보는지요? 동무를 사귈 적에 겉모습부터 살피는가요?


  흙을 만진 적이 없는 사람은 씨앗을 알 길이 없습니다. 씨앗을 손바닥에 얹고서 따스히 감도는 숨빛을 느낀 적이 없는 사람은 흙을 알 길이 없습니다. 작은이웃도 큰이웃도 우리가 마음을 기울여 바라보고 만나고 생각하기에 비로소 이웃입니다. 눈을 감거나 등을 돌리면 이웃이 아니고, 동무로 사귀지 못 해요.


  이 푸른별에는 사람만 안 삽니다. 이 푸른별에 사람만 살아남는다면 사람부터 다 죽습니다. 오늘 무엇을 보는지 스스로 물어봐요. 오늘 어디에 선 다리인지 스스로 되새겨요. 오늘 누구랑 말을 섞으면서 마음을 나누는지 스스로 곱씹어요. 겨울은 찬바람이 불어 겨울답고, 여름은 나무를 스치는 푸른바람이 불어 여름답습니다.


ㅅㄴㄹ


죽어가는 지렁이를 안타깝게만 여겼지 지렁이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은 자웅동체, 눈과 코는 없고 입만 있으며, 토양을 비옥하게 하는 역할을 한다는 정도였다. (22쪽)


파리는 해충으로 알려져 있지만 내가 살면서 가장 많이 본 곤충이기도 하다. (58쪽)


작은 생명에 대한 배려를 보여주는 사람의 인격이 훌륭하다는 보장은 없다. 인간은 평면적이지 않다. 자신의 반려동물은 소중히 여기면서도 다른 생명에게는 시니컬할 수도 있고, 벌레 한 마리도 죽이지 않은 사람이지만 인간을 혐오할 수도 있다. (97쪽)


물고기를 함부로 대하는 것이 당연한 세상에서 살았다. 뒤늦게 이런 생각이 든다. 어릴 적, 횟감 물고기와 눈이 마주쳤을 때 들었던 목소리가 진실은 아니었을까. (120쪽)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리는 사람.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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