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주 인사이트 - 사주는 내 삶 속에서 어떻게 작동하는가
하나사주 지음 / 혜윰터 / 202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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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책읽기 / 인문책시렁 2025.3.8.

인문책시렁 403


《사주 인사이트》

 하나사주

 혜윰터

 2025.1.25.



  책을 품고 가는 사람도, 남은 책을 쓰다듬는 사람도, 책집을 찾아가는 사람도, 책집을 지키는 사람도, 몸은 늘 같은 곳을 맴돌지만, 마음은 언제나 새롭게 춤춘다고 느낍니다. 하늘은 늘 그곳에 있고, 밤에 바라보는 별도 언제나 그곳에 있어요. 책집이 한결같이 그곳에 있기에 사람들은 책집을 길잡이와 별님과 해님으로 삼아서 돌고돌면서 만날 수 있구나 싶어요.


  머잖아 ‘엄마손 집밥’은 가뭇없이 사라지리라 봅니다. ‘엄마손 집밥’이 사라진 자리에 ‘아빠손 집밥’이 깃들 수 있을까요? 아니면 ‘집밥 시늉 시킴밥(배달요리)’이 차지할까요?


  어느 모로 보면 앞날을 알 수 없지만, 곰곰이 보면 앞날을 얼마든지 알 수 있습니다. 오늘까지 못 했기에 오늘부터 새로 해보려고 나설 만합니다. 오늘까지 뒤틀렸기에 오늘부터 하나씩 펼 만합니다. 오늘까지 무너졌기에 오늘부터 새로 세우려고 나섭니다.


  마음을 쓰는 사람이 마음을 일으킵니다. 마음을 안 쓰는 사람이 쳇바퀴를 돌다가 어느새 굴레에 갇힙니다. 마음을 기울이는 사람이 삶을 일굽니다. 마음을 안 기울이는 사람이 늘 똑같이 굴다가 어느새 늙어요.


  《사주 인사이트》를 읽었습니다. 한글로만 적은 ‘사주 인사이트’라면 어린이는 하나도 못 알아듣습니다. 시골 할매할배도 못 알아들을 테지요. 그러나 서울사람은 어렴풋이 헤아리거나 그냥그냥 알아들으리라 봅니다. 그렇다면 “四柱 insight”라 적으면 얼마나 알아들을 만할까요? 아마 ‘사주 인사이트’로 적을 때보다 훨씬 더 못 알아들으리라 봅니다.


  저는 늘 ‘밥하기·밥짓기’를 합니다. 저는 ‘요리’도 ‘조리’도 안 합니다. 저는 ‘식사’를 하지도 않습니다. ‘밥’이라는 낱말을 쓸 적에는 ‘밥’이라는 낱말을 바탕으로 얽힌 숱한 말밭이 마음으로 스미고, 이 낱말이 아이들하고 둘레에 퍼집니다. ‘하다·짓다’라는 낱말을 쓰면 ‘하다·짓다’에서 퍼지는 숱한 말살림과 말빛이 고루고루 퍼집니다.


  네 기둥이란, 네 고리이기도 하고, 네 길이기도 합니다. 이 삶을 네 갈래로 읽기도 하고, 넷을 다시 여덟 가지로 풀기도 하며, 열두 가지에 열여섯 갈래로 살필 만합니다. 다만 어느 기둥이나 길이나 골이나 고리로 읽든, 스스로 눈을 틔우면 모든 곳을 알아볼 수 있어요.


  지난날에는 누구나 손수 살림을 지으면서 바람을 읽고 해와 별을 알았어요. 예전에는 누구나 손수 아이를 낳아 돌보면서 해바람비흙과 풀꽃나무를 익히고 품었어요. 이제는 누구나 살림을 손수 안 짓고, 바람도 해도 별도 안 읽기 일쑤입니다. 아니, 서울에서는 논밭을 손수 가꾸기도 어렵고 해바람비도 풀꽃나무도 늘 마주하면서 품기 힘듭니다. 이럴 적에는 이따금 《사주 인사이트》 같은 길잡이책을 곁에 둘 수 있겠지요. 스스로 살림짓기를 잊었기에 한동안 곁에 책을 두되, 앞으로는 누구나 손수짓기로 하루를 그리면서 모든 길을 스스럼없이 읽어내고 알아볼 수 있기를 바라요. 누구나 스스로 읽어야 스스로 빛납니다.


ㅍㄹㄴ


명리학은 심리학, 철학, 인문학처럼 사람을 들여다보는 학문 중 하나입니다. (23쪽)


집에 따라 나의 활동 범위가 달라지고 어울리는 사람들도 달라지며 심리적으로도 영향을 받게 됩니다. (30쪽)


각각 휴식이 필요할 때도 있고 활동이 필요할 때가 존재하듯 놀 때는 양이, 잘 때는 음이 필요합니다. (38쪽)


서로가 다름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이야말로 명리학을 공부하는 순기능 중 하나가 아닐까요? (77쪽)


어떤 역할이든 균형이 중요할 뿐 모두가 내 사주에 필요한 역할을 하는 존재입니다. (93쪽)


+


《사주 인사이트》(하나사주, 혜윰터, 2025)


복슬복슬한 털을 가지고 있는

→ 복슬복슬한 털인

→ 털이 복슬복슬한

5쪽


365가지의 질문이 실려 있습니다

→ 365가지를 묻습니다

→ 365가지를 물어봅니다

8쪽


책 안에는 일상적인 것부터 심오한 것까지 궤를 달리하는 다양한 질문들로 가득합니다

→ 책에는 수수한 곳부터 깊은 데까지 결이 다른 여러 이야기가 가득합니다

→ 책에는 여느 일부터 깊은 자리까지 테두리가 다른 여러 얘기가 가득합니다

8쪽


사주팔자란 우리에게 새겨진 자연의 기운을 뜻합니다

→ 삶길이란 우리한테 새긴 푸른기운을 뜻합니다

→ 하루길이란 우리한테 새긴 숲기운을 뜻합니다

9쪽


따라갈 수 있는 생각과 행동의 나침반이 있다는 것은 퍽이나 편한 일이지만

→ 생각과 몸짓이 따라갈 길바늘이 있으면 퍽이나 수월하지만

→ 생각하고 움직이는 길잡이가 있으면 퍽이나 거뜬하지만

10쪽


사주팔자에 관한 오해와 편견은 왜 생기게 되었는지

→ 길눈을 왜 잘못 보거나 여기는지

→ 삶꽃을 왜 엉뚱하게 바라보는지

→ 네길을 왜 넘겨짚고 뒤트는지

21쪽


우리는 왜 반대에 끌릴까

→ 우리는 왜 달라서 끌릴까

→ 우리는 왜 거꾸로 끌릴까

33쪽


색색의 꽃이 피는 봄이 오면 사람들은 설레기 시작합니다

→ 알록달록 꽃피는 봄이 오면 설렙니다

→ 온갖 꽃이 피는 봄이면 설렙니다

43쪽


다시 동심의 세계로 돌아가게 만듭니다

→ 다시 어린날로 갑니다

→ 어릴적으로 돌아갑니다

→ 어린이로 돌아갑니다

43쪽


허용과 측은지심이 성장의 시간에 필요한 것처럼

→ 베풀고 눈물을 흘리며 자라듯

→ 빗장을 열고 가엾게 여기면서 자라듯

46쪽


계절과 계절 사이를 연결해 주는 간절기가

→ 철과 철 사이인 길목이

→ 철과 철을 잇는 고비가

→ 철과 철을 잇는 고개가

→ 철과 철을 잇는 틈이

59쪽


굉장히 높은 밀도를 지니고 있어

→ 아주 빽빽해서

→ 무척 촘촘해서

66쪽


빽빽하고 조밀하게 빈틈없이 뭉쳐진 금속은

→ 빽빽하게 뭉친 쇠붙이는

66쪽


물속에서 둥둥 떠다니는 것을 무척 좋아합니다

→ 물에 둥둥 떠다니기를 무척 즐깁니다

74쪽


서로가 다름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이야말로 명리학을 공부하는 순기능 중 하나가 아닐까요

→ 삶꽃을 배우면서 서로 다른 줄 받아들일 수 있지 않을까요

→ 네걸음을 배우기에 서로 다른 줄 받아들이지 않을까요

77쪽


인의예지신 중 지는

→ 길뜻빛알꿈에서

→ 다섯길에서 앎은

→ 닷고리에서 앎꽃은

78쪽


나의 연월일시에 해당하는

→ 내 해달날때에 맞는

→ 난해달날때에 드는

88쪽


그중 첫 번째는 식신의 재능입니다

→ 여기서 첫째는 도움꾼 재주입니다

→ 첫째는 도움깨비 힘입니다

→ 첫째는 심부름꾼 솜씨입니다

118쪽


봄 초입의 시간입니다

→ 봄 어귀입니다

→ 첫봄입니다

163쪽


여름의 시작점인 입하를 기준으로 펼쳐지는 시간입니다

→ 여름맞이입니다

→ 여름 첫머리입니다

164쪽


도화가 예쁘다, 아름답다의 동의어라고 오해하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 복사꽃이 예쁘다, 아름답다와 같은말이라고 여기는 사람도 많습니다

→ 복숭아꽃이 예쁘다, 아름답다와 뜻이 같다고 넘겨짚곤 합니다

168쪽


한낮의 해가 가장 뜨거운 정오의 시간을 의미합니다

→ 한낮에 해가 가장 뜨거운 때를 가리킵니다

→ 해가 가장 뜨거운 한낮을 나타냅니다

172쪽


복습 삼아 잠깐 다시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 다시 살짝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189쪽


와인 오프너 보신 적 있나요

→ 포도술따개 보신 적 있나요

194쪽


팀워크가 맞지 않으면 능력을 제대로 발휘할 수 없듯이

→ 손발이 맞지 않으면 힘을 제대로 낼 수 없듯이

→ 한마음이 아니면 기운을 제대로 펼 수 없듯이

→ 한덩이가 아니면 재주를 제대로 보일 수 없듯이

203쪽


상담을 하다 보면 인간관계에서 상처받는 분들이 꽤 많습니다

→ 얘기를 하다 보면 사람사이에서 다치는 분이 꽤 많습니다

→ 이야기를 해보면 사람일 탓에 들볶이는 분이 꽤 많습니다

225쪽


※ 글쓴이

숲노래·파란놀(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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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주의와 현대사회이론 한길그레이트북스 94
앤서니 기든스 지음, 임영일 외 옮김 / 한길사 / 200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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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칠읽기 . 숲노래 책읽기 / 인문책시렁 2025.3.8.

인문책시렁 406


《資本主義와 現代社會理論》

 안토니 기딘스

 임영일·박노영 옮김

 한길사

 1981.2.10.



  1981년에 한글판이 나온 《資本主義와 現代社會理論》은 꾸준히 읽힙니다. 우리 삶터를 바라보는 눈길을 다스리는 줄거리가 흐르기 때문이라 할 텐데, 영국에서는 1971년에 처음 나왔다고 합니다. 요샛판은 책이름을 한글로 바꿉니다만, 옮김말씨는 좀 읽기 부드럽게 가다듬거나 손질했을까요? 아니면 1981년 옮김결 그대로일까요?


  2025년 우리나라를 보면, 한쪽에서는 이놈을 가리켜 ‘극좌’라 하고, 한쪽에서는 저놈을 가리켜 ‘극우’라 하더군요. 왜 서로 ‘극좌·극우’라는 틀(프레임)을 씌우려고 할까요? 서로 미워하면서 싸우는 틀이 서야, 사람들 눈길이 이쪽으로나 저쪽으로 몰리고 끝없이 쌈박질을 벌이면서, 막상 새길(대안·미래)은 감쪽같이 잊기 때문이지 않을까요? 


  저쪽에서 말하는 ‘극좌’란 정작 없는 그림자입니다. 이쪽에서 말하는 ‘극우’도 그야말로 없는 허깨비라고 느낍니다. 이쪽도 저쪽도 서로 ‘극좌·극우’ 타령을 하면서 온통 온나라가 싸움박질로 서로 미워하는(혐오) 벼랑길로 몰아세우는구나 하고 느낍니다. “우리 쪽”이 아니면 그저 미워해야 한다고 여기고, 어떤 자리도 차지하면 안 된다고 몰아세우는 쌈박질이로구나 싶습니다.


  잘못한 무리를 나무랄 적에는 ‘잘못’만 말할 노릇입니다. 왼켠이든 오른켠이든 똑같습니다. 왼켠이라서 훌륭하거나 오른켠이라서 안 훌륭하지 않습니다. 오른켠이라서 늘 틀리거나 왼켠이라서 늘 맞지 않습니다. 곰곰이 보면, ‘참답게’ 왼켠이 아니기에 저쪽을 ‘극우’라 손가락질하면서 놀리고 비아냥거립니다. 가만히 보면, ‘참다이’ 오른켠이 아니기에 이쪽을 ‘극좌’라 꾸짖으면서 괴롭히고 비웃습니다.


  이 밉질(혐오정치)을 이제 끝낼 때이지 싶습니다. “잘못한 아무개”를 말해야 할 뿐입니다. “잘한 아무개”라면 잘한 일을 손뼉쳐야겠지요. 우리 몸에 왼눈과 오른눈이 있어요. 우리 몸에 왼손·왼팔·왼다리·왼발하고 오른손·오른팔·오른다리·오른발이 있습니다. 그저 ‘왼오른’입니다. ‘왼기움(극좌)’도 ‘오른기움(극우)’도 아닙니다. 그저 ‘두몸’입니다.


  왼켠이건 오른켠이건 대수롭지 않습니다. “일하는 사람”이 일값을 제대로 누리면서 살림을 지을 새길을 바라는 목소리를 담으려고 한다면, 다른 어느 누구보다도 밉질을 한 마디도 안 쓰면서 어깨동무하는 길로 목소리를 내야 옳다고 느낍니다. 미워하고 손가락질하고 비아냥거리는 목소리로는 어떤 참길도 못 열게 마련입니다.


  《자본주의와 현대사회이론》은 왼길도 오른길도 아닌 ‘사람길’과 ‘삶길’과 ‘살림길’을 살펴야 할 ‘나라길’을 짚는다고 느낍니다. 우리가 늘 새롭게 배우면서 보금자리를 일구고 마을을 돌아보면서 나라를 헤아리는 사람이라면, 왼오른을 놓고서 싸울 까닭이 없습니다. 내가 왼이건 오른이건, 네가 오른이건 왼이건, 서로 다른 줄 고스란히 받아들여서 더 만나고 더 이야기할 노릇입니다.


  오늘날 서울이나 나라 곳곳에서 ‘왼물결’이라 여기는 무리하고 ‘오른물결’이라 여기는 무리가 함께 목소리를 높인다지요? 이렇게 한곳에 모였으면, 팔뚝질은 멈출 일이에요. 왼물결과 오른물결에서 한 사람씩 나와서 2분쯤 저희 뜻을 밝히면서 말을 주고받을 일입니다. 목소리를 가다듬고 낮추면서 부드럽게 “나는 왜 왼물결인가” 하고 밝히고, “나는 왜 오른물결인가” 하고 들려줄 노릇입니다. 이렇게 2분씩 15사람이 이야기를 하면, 딱 한 시간만 들여도 서로 제법 마음을 살피면서 어깨동무하는 길을 열 만합니다.


  우리는 “넌 왼쪽이 아니잖아?” 하고 쳐내니까 싸웁니다. 우리는 “넌 오른쪽이 아니네?” 하고 몰아세우니까 싸워요. 이른바 공놀이(축구·야구·농구·배구)에 왼오른이 어디 있습니까? 그저 공놀이입니다. 함께 배우는 터전인 배움터(학교)에서 아이들을 왼오른으로 가르지 않습니다. 배움터 길잡이도 왼오른으로 갈라서 가르치지 않습니다. 우리는 아이어른 모두 ‘왼오른’이 아닌 ‘삶길·살림길·사람길’을 귀담아들으면서 차분히 들려주며 어울리는 새길을 열 노릇입니다. 앤서니 기든스라는 사람은 우리가 ‘싸움’이 아닌 ‘사이’를 보아야 한다고 조곤조곤 글을 남겼다고 봅니다.


ㅍㄹㄴ


마르크스에 의하면, 인간적 삶을 동물적 삶과 구분짓는 것은 인간의 능력과 취향들은 사회에 의해 형성된다는 점이다. (43쪽)


마르크스에 의하면 의식은 인간의 실천(Praxis) 속에 뿌리박고 있으며, 그 실천이란 다시 사회적인 것이다. 이것이 “의식이 인간존재를 규정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사회적 존재가 그 의식을 규정한다”는 말의 의미이다. (79쪽)


자본주의 경제에서 완전에 가까운 고용의 조건이 널리 퍼져 있는 경우란 극히 드물다. 자본주의에 있어서 만성적인 실업상태에 있는 집단, 즉 산업 예비군의 존재는 필수적인 것이다. (99쪽)


억압적 법률은 그것의 위반이 ‘범죄’라는 점을 그 특징으로 한다. 범죄는 사회성원들이 ‘보편적으로 지지하는’ 감정을 침해하는 행위이다. (126쪽)


공산주의와 사회주의는 대부분의 관점에서 뚜렷한 대조를 보이는 셈이다. 그러나 양자는 한 가지의 중요한 점에 수렴하고 있다. 즉, 양자는 모두 개인의 이익이 집합체의 이익을 압도해 가고 있는 상황을 치유하는데 관심을 가지고 있다. (157쪽)


도덕적 권위와 자유가 서로 배타적인 상극이라고 믿는 것은 기본적으로 오류이다. 인간이 향유하는 모든 자유는 그가 사회의 성원임으로써 얻어지는 것이고, 따라서 그는 사회의 존재가 전제하는 도덕적 권위에 복종하여야만 한다. (183쪽)


교수의 직(職)은 ‘개인적 예언을 해도 좋다는 전문 자격’은 아니다. 그런 식으로 자기 지위를 이용하려는 교수는 성숙한 자신감을 결여한 민감한 청중들과의 관계 속에서 자기 위치를 이기적으로 이용할 수조차 있는 것이다. (220쪽)


#앤서니기든스 #자본주의와현대사회이론 #AnthonyGiddens


+


《資本主義와 現代社會理論》(안토니 기딘스/임영일·박노영 옮김, 한길사, 1981)


마르크스에 의하면, 사회발전은 인간과 자연 간의 간단 없는 생산적 상호작용의 결과이다

→ 마르크스는, 사람과 숲이 끝없이 어울리면서 삶이 피어난다고 말한다

→ 마르크스가 말하길, 사람은 숲과 늘 어우러지기에 삶이 깨어난다

71쪽


※ 글쓴이

숲노래·파란놀(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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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우리 역사 강만길 저작집 12
강만길 지음 / 창비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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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칠읽기 . 숲노래 책읽기 / 인문책시렁 2025.2.20.

인문책시렁 401


《20세기 우리 역사》

 강만길

 창작과비평사

 1999.1.25.



  그동안 강만길 님이 쓴 여러 책을 두루 읽었으나, 어쩐지 요 열∼스무 해 사이에 나오는 책은 심드렁했습니다. 예전에 쓴 글에서 벗어나는 결이 없기도 했지만, ‘발걸음’을 언제나 ‘자리다툼’으로 보는 틀에서 안 빠져나오는 대목에 질리기도 합니다.


  《20세기 우리 역사》는 두즈믄(2000)이라는 해로 넘나드는 길목을 돌아보자는 뜻으로 편 이야기를 꾸렸다고 합니다. 강만길 님이 여태 편 이야기를 단출히 여민 얼거리라고 느낍니다. 여러모로 헤아릴 대목이 있되, ‘발걸음’을 어느 곳에 서서 바라보느냐에 따라서, 책으로 담아낼 이야기는 사뭇 다르게 마련입니다. 그러니까 ‘산미증식계획’이라는 지난일을 다룰 적에, 그무렵에 시골에서 논밭을 짓는 여러 사람은 어떤 살림이었는지 짚는 글을 이제야말로 쓸 때이지 않을까요?


  조선총독부가 벌이는 짓에 맞서며 나라밖에서 ‘임시정부’를 차린 어른이 많고, 만주에서 총을 쥐고 싸운 어른이 많습니다만, 거의 모든 사람들은 이 나라를 떠날 길이 없습니다. 논뙈기도 밭뙈기도 없이 빌려서 짓는 수수한 시골지기가 가장 많았던 우리나라입니다. 그런데 여태까지 ‘빌리는 땅을 지은 수수한 시골지기’가 걸어온 길을 글이나 책으로 차곡차곡 여미는 글바치는 거의 못 찾아봅니다.


  우리가 돌아볼 ‘발걸음’이라면, 바로 논밭지기 발걸음과 손길이어야 한다고 봅니다. 논밭지기는 어떤 살림집을 이루었는지, 논밭지기는 어떤 밥옷집을 꾸렸는지, 논밭지기는 아이를 어떻게 낳아 돌보았는지, 논밭지기 집안에서 태어난 아이들은 어떤 소꿉놀이를 했는지, 논밭지기 집안에서 나고자라는 아이들은 말을 어떻게 물려받았는지 같은, 수수한 논밭지기는 설거지와 밥짓기와 옷짓기를 어떻게 일구며 이어 왔는지 같은, ‘작은발걸음’을 그릴 적에 비로소 ‘역사’라고 봅니다.


  어떤 ‘그들’도 으레 윗자리에서 오가는 발걸음만 다루면서 ‘역사’라고 이름을 붙입니다. 강만길 님을 비롯한 둘레에 있는 사람들도 ‘논밭자리’나 ‘시골자리’나 ‘마을자리’ 이야기를 ‘역사’로 못 느끼는 발걸음이었다고 봅니다. 2000년과 2020년 우리 발자취를 그릴 적에 무엇을 다룰 만할요요? 2024∼25년에는 ‘계엄령·탄핵’을 둘러싼 윗자리 쌈박질을 다루려나요? 아니면, 서울에서는 서울대로 시골에서는 시골대로 수수하게 살림을 짓는 ‘작은이 발걸음’을 다룰 수 있을까요?


  예전에 정몽준이라는 이도 버스삯을 몰랐지만, 김대중·노무현·문재인도 버스삯을 모릅니다. 박근혜·이명박·윤석열도 버스삯을 모르기는 매한가지입니다. 우리나라에서 수수하게 살아가는 사람들한테 ‘발’ 노릇을 하는 버스삯이 어떻게 바뀌어 왔는지 짚는 붓(역사학자)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푼돈이라 여길 버스삯일는지 모르나, 이 버스삯조차 없어서 한나절이나 두나절을 멧숲을 넘고 걸어다닌 숱한 사람들 발걸음이 어떤 ‘역사’인지 적을 줄 아는 붓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발걸음을 굳이 ‘올바로’ 바라보아야 하지 않습니다. ‘올바로’ 바라보기 앞서, 먼저 ‘사람살이·사람살림’을 손수 일구면서 바라볼 줄 알아야지 싶습니다. 파 한 단에 값이 얼마인지, 달걀 하나에 값이 얼마인지, 라면 한 자루에 값이 얼마인지, 번데기 한 줌에 값이 얼마인지, 이러한 밑살림길을 읽지 않고 말할 줄 모른다면, 이제는 ‘역사 아닌 허울’일 뿐일 텐데 싶어요. 이제부터 우리가 바라볼 발걸음(역사)은 바로 우리가 스스로 짓는 오늘과 하루일 노릇이라고 봅니다.


ㅍㄹㄴ


1920년대 조선총독부가 실시한 ‘산미증식계획’은 당초의 계획대로 추진되지 않았음에도, 일본 쪽으로서는 식민지배라는 면에서나 자국의 경제발달이라는 면에서나 나름대로 성과가 있었습니다. (92쪽)


1920년대까지도 각급 학교에서 일본어를 국어라 하여 주로 가르쳤지만, 우리말도 조선어라 하여 약간은 가르쳤습니다. 그러나 일본은 중일전쟁 도발 후 그것마저 완전히 없애버리고(1938.4.) 일본어만을 쓰도록 강요했습니다. (121쪽)


38도선을 없애고 5년간 신탁통치도 안 받을 수 있는 길이 있는가, 38도선을 없애기 위해 5년간 신탁통치를 받는 것이 옳은 일인가, 5년간의 신탁통치를 안 받으려 하다가 38도선이 그대로 민족분단선이 되게 할 것인가 등 몇 가지의 엄중한 선택이 이 시기의 민족사회 앞에 놓여 있었다고 할 수 있지요. (190쪽)


농지를 제외한 과수원·임야 등은 개혁의 대상에서 제외되었습니다. 이 때문에 일반 지주 소유지는 물론이고, 이완용·송병준 등과 같은 반민족행위자의 토지도 소유권이 그대로 인정되어 그 후손들에게 고스란히 유산으로 넘겨지게 되었습니다. (239쪽)


이승만 정권은 좌익세력은 말할 것도 없고, 김구·김규식 등 민족해방운동 우익전선의 지지도 받지 못한 채, 국내 지주세력과 손잡고 미군정에서 물려받은 친일 관료들을 기반으로 하여 수립되었습니다. (250쪽)


이 전쟁은 안으로는 민족분단을 더욱 고착시키고, 이승만 정권과 김일성 정권이 이후 독재체제로 나아가는 계기가 되었으며, 밖으로는 동서 양 진영의 냉전을 격화시키는 큰 계기가 되었습니다. (257쪽)


+


《20세기 우리 역사》(강만길, 창작과비평사, 1999)


한반도가 처한 이 지정학적 위치를 숙명론적으로 받아들여, 한반도의 역사는 어쩔 수 없이 외세의 작용에 휘둘릴 수밖에 없다는 식의

→ 이 땅이 놓인 여러 자리를 그저 받아들여, 우리 발자국은 어쩔 수 없이 바깥에 휘둘릴 수밖에 없다며

→ 우리나라를 둘러싼 길을 그냥 받아들여, 우리 삶길은 어쩔 수 없이 남한테 휘둘릴 수밖에 없다면서

14


그러나 그것이 가지는 역사적 성격은 결코 긍정적인 것이 아니었습니다

→ 그러나 그러한 삶결은 그리 밝지 않았습니다

→ 그러나 그러한 삶자취는 썩 반갑지 않았습니다

88


※ 글쓴이

숲노래·파란놀(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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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사람 권정생 - 아동문학가 권정생이 걸어간 길
이충렬 지음 / 산처럼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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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칠읽기 . 숲노래 책읽기 / 인문책시렁 2025.1.29.

인문책시렁 361


《아름다운 사람 권정생》

 이충렬

 산처럼

 2018.5.5.



  우리는 누구를 아름답다거나 안 아름답다고 말하곤 합니다. 아이라면 ‘아름아이’라 할 테고, 어른이라면 ‘아름어른’이라 할 테지요. 꽃이라면 ‘아름꽃’이요, 비라면 ‘아름비’일 테고요. ‘아름’은 ‘아름드리’로 엿보듯 “두 팔을 활짝 벌려서 넉넉하고 따스하게 안는” 결을 나타냅니다. 아무나 안지는 않되, 아무 거리낌도 스스럼도 없이 안는 ‘아름’입니다.


  많이 팔거나 널리 팔기에 ‘아름책’이지 않습니다. 알려지지 않거나 팔리지 않았어도, 사랑으로 짓고 여밀 뿐 아니라 사랑을 들려주고 심는 이야기가 흐르기에 ‘아름책’입니다. 아름다운 사람도 이와 같아요.


  《아름다운 사람 권정생》은 권정생 할배가 ‘아름답다’는 뜻으로 줄거리를 짭니다. 숱한 분이 “아름다운 권정생”이라 말하는데, 막상 권정생 할배는 이런 말을 꽤 거북하게 여겼습니다. 아니, 거북할 수밖에 없습니다. 권정생 할배처럼 앓거나 아프지 않은 이들이 “아름다운 권정생”이라 말하거든요. 권정생 할배처럼 걸어다니거나 시골버스를 타는 살림이 아닌 이들이 “아름다운 권정생”이라 말하니까요. 권정생 할배처럼 손으로 천천히 글을 쓰되 언제나 어린이 곁에서 어린이 눈길·눈높이로 이야기를 여미려 하지 않는 이들이 “아름다운 권정생”이라 말하니까 말이지요.


  《아름다운 사람 권정생》을 읽으면, “그즈음 창작과비평사에서는 권정생의 작품을 모아 단독 동화집을 만들기로 결정했다.(168쪽)”고 적지만, 옳지 않습니다. 박정희 총칼나라가 서슬퍼런 한복판인 그즈음, 이오덕 님은 누구보다 어린이가 푸른꿈과 참사랑을 품도록 어린이책이 알차게 나와야 한다고 외쳤고, 창작과비평사에서 ‘아동문고’를 내놓기를 바란다면서 밑틀을 짜고 글님을 모았습니다. 그러나 그때 창작과비평사는 시큰둥하고 심드렁했습니다. 자꾸자꾸 찾아가서 얘기하고 달랜 끝에 비로소 책을 내주기로 했습니다. 이러면서 이오덕 님이 권정생 님 동화책도 창비아동문고에 들어가도록 말을 넣고 ‘설득’을 했습니다.


  또한, 이 책은 “이오덕이 명예퇴직을 했다. 교사에서 시작해 교감, 교장까지 42년 인생을 바친 교직이었지만, 전두환 정권이 교육행정을 지나치게 간섭하자 불합리하다는 생각에 학교를 떠나는 것이었다. 이오덕은 경기도 과천으로 이사했고, 그때부터 아동문학 발전을 위한 활동과 민주화운동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다.(246쪽)”고 적는데, 안 맞습니다. 이미 이오덕 님은 박정희·전두환 총칼나라에 걸쳐서 ‘민주화운동’을 온몸으로 했고, 이 몸짓을 못마땅하게 여긴 두 우두머리는 이오덕 님을 내내 못살게 굴었습니다. 1986년에는 전두환과 교육부가 아주 막바지로 괴롭혀서 ‘불명예퇴직’을 했습니다. 이오덕 님은 “나 하나만 괴롭히면 견디겠지만, 우리 학교 모든 교사와 아이들을 괴롭히기에 내가 그만두는 길밖에 없구나” 하고 느끼면서 눈물로 떠나야 했습니다.


  권정생을 말하려면 이오덕을 반드시 말해야 합니다. 이오덕을 말하려면 권정생을 꼭 말해야 합니다. 둘은 따로 뗄 수 없이 한마음과 한사랑으로 한누리를 일구는 작은 시골지기로 살아가려는 마음지기였어요. 그런데 《아름다운 사람 권정생》은 ‘권정생이 남긴 책과 글과 발자국’만 너무 좇으면서, ‘권정생하고 뗄 수 없는 마음지기 이오덕’을 너무 잘못 읽거나 엉뚱하게 읽습니다.


  권정생·이오덕 두 분은 결(성격)은 다르지만 씨(성품)는 같습니다. 다르면서 같기에 그토록 오랜 나날을 어울리고 얘기하면서 지낼 수 있었습니다. 두 분을 따로 그리려 하더라도, 권정생 님은 ‘개구쟁이 권정생’으로 그려야 알맞다고 느낍니다. 이오덕 님은 ‘얌전한 이오덕’으로 그려야 알맞을 테고요. 개구쟁이하고 얌전이가 문득 만난 첫날부터 마음지기인 줄 알아보고서 오랜 길을 천천히 함께 거닐었다고 여겨야 알맞다고 느껴요.


  이제 두 분 모두 떠나고 없는 마당이기에, 이승에 없는 두 분을 추켜세우는 일은 나쁘지 않을 수 있지만, 마음결과 마음씨와 삶결과 삶씨를 다시 헤아려 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저잣거리에서 사랑하는 짝꿍하고 아이도 여럿 낳아서 시끌벅적하게 뛰놀고 싶던 권정생이고, 멧숲에서 고즈넉히 멧새랑 동무하면서 고요히 숲살림을 품고 싶던 이오덕입니다. 둘 사이를 오롯이 사랑으로 바라보고 마주할 적에라야, 비로소 두 사람이 우리한테 남긴 글씨와 말씨와 빛씨를 찬찬히 읽을 만하지 않을까요?


ㅅㄴㄹ


그는 자신의 의사를 따라 준 동생이 진심으로 고마웠다. 그리고 아플 수 있는 자유가 생긴 것에도 감사했다. 이제는 통증이 느껴질 때마다 터져나오는 신음소리를 참지 않아도 되었다. (25쪽)


권정생은 세상에 남기고 싶은 자신의 글을 동화라기보다 그냥 ‘이야기’라고 생각하며 써 나갔다. (35쪽)


이오덕은 서슬 퍼런 시대에 전쟁을 반대하는 주제의 동화를 쓰는 작가가 있다는 사실이 경이롭기까지 했다. (82쪽)


이오덕은 자리에서 일어나 겉옷을 입으며 집에 갈 채비를 했다. 그리고 가방에 있던 원고지 한 권을 꺼내 여기에다 단편동화 한 편을 쓴 뒤 보내 달라고 말했다. 주머니에 있던 돈도 원고지 사는 데 보태라며 그에게 건넸다. 권정생은 펄쩍 뛰며 사양했지만 이오덕은 억지로 그의 손에 쥐어 주었다. 권정생은 버스정류장까지 함께 걸어가려 했지만 이오덕이 한사코 못 나오게 했다. (108쪽)


7월 말, 이오덕은 서울에 갔다. 세종문화사 측에서는 8월 10일까지 책이 나오도록 노력하겠다고 했지만 지난 1년 동안 약속을 너무 많이 어겨 믿음이 가지 않았다. 그렇다고 어떻게 할 수 있는 방법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빨리 좀 부탁한다는 말이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이오덕은 세종문화사에서 나와 권정생이 편지에다 원고료를 주지 않는다고 했던 잡지사들을 방문했다. 깜빡 잊었다, 사무 처리가 잘못되었다며 그 자리에서 준 곳이 있는가 하면, 조만간 보내겠다는 곳도 있었다. 이오덕은 허탈했다. 그리고 3000원, 4000원짜리 소액환이 든 봉투가 언제 올까 매일매일 눈이 빠지도록 기다렸을 권정생의 삶이 너무 측은했다. (127쪽)


+


《아름다운 사람 권정생》(이충렬, 산처럼, 2018)


그의 작품에는 치열한 작가정신이 담겨 있다

→ 그분 글에는 붓넋이 불타오른다

→ 그분은 북받치는 넋으로 글을 썼다

7쪽


배달 일을 하면서도 열심히 글을 쓴 문학청년 시절이 있었던 것이다

→ 나르는 일을 하면서도 힘껏 글을 쓴 글벌레 나날이 있다

→ 나름이로 일하면서도 바지런히 글을 쓴 푸른글꽃 무렵이 있다

8쪽


그날 밤부터 노숙露宿을 하면서

→ 그날 밤부터 길에서 자며

→ 그날 밤부터 이슬잠으로

28쪽


마을을 어슬렁어슬렁 돌아다니는 토종개뿐 아니라

→ 마을을 어슬렁어슬렁 다니는 마을개뿐 아니라

→ 마을을 돌아다니는 개뿐 아니라

71쪽


방천防川에 우거진 아카시아나무와

→ 둑에 우거진 아카시아나무와

→ 물둑에 우거진 아카시아나무와

71쪽


한 달 후면 과월호가 되어 묻히지만

→ 한 달 뒤면 지난책이 되어 묻히지만

→ 한 달 뒤면 묵은책이 되어 묻히지만

→ 한 달 뒤면 예전책이 되어 묻히지만

73쪽


자신의 시가 전달하려는 의미를 정확히 이해한 권정생에게 흐뭇한 표정을 지어 보이며 대화를 이어갔다

→ 노래로 들려주려는 뜻을 잘 읽은 권정생이 반가워 말을 이어갔다

→ 노래로 밝히려는 속내를 잘 짚은 권정생이 반가워 더 이야기했다

104쪽


가끔씩 보내 주는 돈으로

→ 가끔 보내 주는 돈으로

126쪽


책을 압수당한 적도 있다고 말하며 동병상련同病相憐을 느꼈다

→ 책을 빼앗긴 적도 있다고 말하며 함께 울었다

→ 책을 빼앗긴 적도 있다고 말하며 아픔을 나누었다

144쪽


존재론적 슬픔 속에서 만난 인연

→ 타고난 슬픔으로 만난 끈

→ 처음부터 슬프게 만난 사이

150쪽


막상 이사를 오니 그리움보다 쓸쓸함과 외로움이 그를 감쌌다

→ 막상 옮겨 오니 그립기보다 쓸쓸하고 외롭다

→ 막상 새터로 가니 그립기보다 쓸쓸하고 외롭다

150쪽


괴짜라고 한 말이 자신이 생각한 의미와는 다르다는 것을 깨달았다

→ 다르다고 한 말이 저가 생각한 뜻과는 다른 줄 깨달았다

→ 뜬금없다고 한 말이 제 생각과는 다른 줄 깨달았다

156쪽


전통 문화가 파괴된 경우도 많이 봤습니다

→ 삶길이 망가진 모습도 많이 봤습니다

→ 살림꽃이 무너진 꼴도 많이 봤습니다

167쪽


산상수훈 첫 번째 복음이 바로 ‘가난한 자의 복’입니다. 저는 이 말씀이 첫 번째인 이유가 인간에게 가장 중요한 메시지이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 멧숲말씀 첫째가 바로 ‘가난한 기쁨’입니다. 저는 이 말씀이 첫째인 까닭이 사람한테 가장 빛나는 말씀이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 멧빛말씀 첫째가 바로 ‘가난한 노래’입니다. 저는 이 말씀이 첫째인 까닭이 사람한테 가장 눈부신 말씀이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171쪽


※ 글쓴이

숲노래·파란놀(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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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비심장
김숨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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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칠읽기 . 숲노래 책읽기 / 인문책시렁 2025.1.28.

인문책시렁 394


《제비심장》

 김숨

 문학과지성사

 2021.9.23.



  미워하지 않으려고 하면 언제나 미워하는 길로 달려가는구나 싶습니다. 안 싫어하려는 마음을 품을 적에는 으레 싫어하는 쪽으로 훅훅 달린다고 느낍니다. 좋아하는 대로 하려니 늘 좁고 조바심에 갇히고, 안 나쁜 대로 하려니 노상 가장 나쁘구나 싶은 굴레에 스스로 갇히고요.


  미워하지 않으려 하기에 미워한다면, 왜 이렇게 미움수렁인지 돌아보면서 배울 일입니다. 안 싫어하려고 하지만 정작 싫어하는 마음만 깊어갈 적에는, 왜 이렇게 싫은나로 내딛는지 곱씹으면서 배울 노릇입니다. 좋은길과 나쁜길을 가르려 하기에 스스로 사람을 가르거나 나누는 줄 알아봐야겠지요.


  사랑을 안 하려 하기에 미워하거나 싫어합니다. 사랑을 안 배우려 하기에 좋거나 나쁜 틀을 자꾸 세우면서 가릅니다. 사랑은 ‘살섞기’가 아닙니다. 사랑하며 살을 섞을 수 있되, 살섞기는 그저 살섞기입니다. 사랑은, 사람으로서 서로 사이를 느껴 숲을 푸르게 품고서 살림을 스스로 짓는 숨빛입니다.


  《제비심장》은 배무이터 한켠을 그린 줄거리라고 합니다. ‘조선·조선소’는 일본말입니다. 우리 삶터 어느 곳에 일본말이 안 깃들었느냐고 할 텐데, 곰곰이 보면 ‘문학·소설’ 같은 한자말도 일본말이라고 해야 맞습니다. 우리는 예부터 ‘이야기’를 지어서 나누었고, ‘글’을 써서 남기고 읽었어요.


  그냥그냥 받아들여서 쓰는 낱말이라면, 우리 마음에도 언제나 ‘그냥그냥’이 또아리를 틉니다. 왜 먼먼 옛날 옛적부터 ‘이야기·말·글’ 셋이 어울렸는지 생각하고 곱씹고 되새긴다면, 우리가 오늘 하루를 어떻게 갈무리하고 담아서 나누려 할 적에 어깨동무를 하는 사랑으로 나아갈 만한지 스스로 깨닫습니다.


  우리는 우리 스스로 살아가는 터전에서 우리 이야기를 말로 펴고 글로 담아야 아름답고 즐거워서 사랑으로 나아갑니다. 우리 스스로 안 살아가는 터전에서 ‘보고 듣기(취재·청쥐·자료조사)’만 한다면, 여러모로 그럴듯하게 문학과 소설이라는 이름을 얻을 테지만, 늘 허울로 그치다가 허물로 나아가는구나 싶습니다.


  이를테면, 꾸밈머리(AI)는 온갖 부스러기를 잔뜩 모아서 길 하나를 뽑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꾸밈머리는 스스로 들놀이(야구)를 하지는 않아요. 아무리 꾸밈머리로 아슬아슬하게 들놀이 줄거리를 짜서 들려준들, 꾸밈머리 스스로 겪지도 보지도 하지도 않은 일을 ‘삶으로 풀어서 말하거나 글쓸’ 수 없습니다.


  예전에 글을 쓰던 사람은 누구나 이녁 삶을 적었습니다. 비록 임금바라기에 벼슬바라기에 중국바라기로 뒤덮인 글을 썼어도, 그들은 임금과 벼슬과 중국만 바라보던 삶이었으니 그들이 쓴 글은 ‘거짓’이 아닌 ‘그들 삶과 하루’였어요. 그런데 얼음나라(일제강점기)를 거치고 난 뒤부터 숱한 글바치는 스스로 살아내지 않는 하루를 글로 옮깁니다. 삶이 없는 채 ‘구경(취재)’만으로 ‘글감(소재·모티브)’을 짜고 엮어 ‘문학을 만들어’내는 나날입니다.


  꼭 “일하는 삶”을 써야 하지 않습니다. 굳이 “아픈 이웃”을 글감으로 다뤄야 하지 않습니다. 집에서 빈둥거리는 나날을 글로 담더라도, 나 스스로 내 하루를 고스란히 담는다면, 바로 이 “내 삶을 손수 옮긴 글”이 “아픈 이웃하고 어깨동무하는 이야기”로 뻗게 마련입니다. 구경(취재)만 하고서 삶(현실)이 아닌 글감을 덕지덕지 짜맞춘다고 할 적에는 언제나 그럴듯한 문학(수사법·표현법·작법·기법)과 줄거리(정의로운 주장)는 있되 알맹이가 없어요. 그저 쭉정이입니다.


  시골에서 살지 않으면서 시골을 글감으로 쓰는 글이 있다면, 시골사람 눈에는 모조리 헛짓으로 보입니다. 시골에서 아이를 낳아 살지 않으면서 ‘시골 육아일기’를 쓴다든지, 아기한테 천기저귀를 댄 적조차 없으면서 섣불리 ‘육아일기’를 쓸 적에도 얼마나 허방다리인지 환하게 알아볼 수 있습니다. 가난해 본 적이 없는 사람이 쓰는 ‘가난글’은 너무 티가 납니다.


  가난하지 않은 살림이라면 그냥 가난하지 않은 대로 쓰면 됩니다. ‘요네하라 마리’ 같은 사람은 ‘안 가난한 살림’을 아무렇지 않게 씁니다. ‘사노 요코’ 같은 사람은 스스로 못생겼으면 못생겼다고 쓰고, 가난하던 때에는 가난을 뚝뚝 제대로 쓰고, 가멸찬 살림일 적에는 가멸찬 하루를 숨기지 않고서 씁니다. 우리나라 글바치는 너무 숨기고 너무 목소리(정의로은 표현)만 외친다고 느껴요. 왜 삶을 안 쓰지요? 왜 삶을 안 바라보지요? 스스로 이녁 삶을 안 바라보기에 이웃이 어떻게 살아가는지 뼛속은커녕 살갗으로도 못 느끼고 맙니다.


ㅅㄴㄹ


“투덜거리지 말고 얼른!” “저 위는 너무 멀단 말이에요.” “멀어도 어쩔 수 없지. 말을 안 하면 종일 바람 한 점 넣어줄 생각을 안 하니까.” “페인트 젓는 것은 어쩌고요?” “그건 나중에 하고 어서!” (106쪽)


“꼭 만져야 해? 그냥 바라보기만 하면 안 돼?” “넌 사랑 같은 거 못 해봤지?” “그게 뭐야?” “인생 헛살았네. 쉰아홉 살 먹도록 사랑도 못 해보고.” “난 스물두 살에 처음 손 잡아본 남자와 결혼해 자식 셋을 낳고 하루도 떨어지지 않고 붙어 살았어. 그럼 됐지. 사랑 같은 걸 꼭 해야 해?” (156쪽)


미애도 공중그네를 탄다. 그녀는 마흔아홉 살로 도장공들 중 나이가 가장 어리다. 그리고 그녀는 우즈베키스탄 남자와 살고 있다. 배구 선수만큼이나 키가 큰 그의 얼굴은 밀가루를 바른 듯 희고, 눈동자는 회색이다. (263쪽)


“넌 왜 크림빵 안 먹어?” “꽃님이 가져다주려고.” “꽃님이? 내 딸 이름하고 같네.” “내 손녀. 여섯 살인데 종일 크림빵 기다려. 꽃님이는 내가 크림빵 사러간 줄 알아. 아들이 이혼해서 내가 데려다 키우고 있어. 딸이 키우던 시추 두 마리도 같이. 내가 조선소에서 일하는 동안 시추들이 꽃님이를 돌봐.” (333쪽)


+


《제비심장》(김숨, 문학과지성사, 2021)


발판 위에 두 남자가 엉거주춤히 서 있다

→ 두 사내가 발판에 엉거주춤히 선다

→ 사내 둘이 발판에 엉거주춤히 있다

9쪽


하지만 뭔가가 날아가는 게 느껴지니까

→ 그런데 뭐가 날아간다고 느끼니까

15쪽


그건 네가 예쁜 눈을 가져서야

→ 네가 눈이 예쁘거든

→ 네 눈이 예쁘거든

25쪽


사내는 한 글자 한 글자 플래시 불빛으로 집요하게 비춰가며

→ 사내는 불빛으로 하나하나 비춰가며

→ 사내는 불빛으로 글씨를 낱낱이 비춰가며

50쪽


이 안에 있는 우리 전부 질식해 죽을 거라고 해

→ 여기 있는 우리 모두 숨막혀 죽는다고 해

→ 여기서 우리 다 숨막혀 죽겠다고 해

106쪽


백설기. 일하다 배고프면 먹으려고 출근하며 잠바 주머니에 한 덩이 넣어왔어

→ 흰설기. 일하다 배고프면 먹으려고 아침에 겉옷 주머니에 한 덩이 넣어왔어

113쪽


월급 들어오면 시장에 가서 새 스카프를 살 거야

→ 일삯 들어오면 가게에 가서 새 목도리를 살래

113쪽


쓰러지지 않고 걷고 있는 걸 보면 잠을 자긴 잤을 거야

→ 쓰러지지 않고 걸으니 자긴 잤어

→ 안 쓰러지고 걸어가니 자긴 잤지

133쪽


난 대관람차를 타고 돌고도는 꿈을 꿀 거야

→ 난 큰고리를 타고 돌고도는 꿈을 꿀래

→ 난 큰바퀴를 타고 돌고도는 꿈을 꾸겠어

201쪽


미애도 공중그네를 탄다. 그녀는 마흔아홉 살로 도장공들 중 나이가 가장 어리다

→ 미애도 높그네를 탄다. 미애는 마흔아홉 살로 붓지기 가운데 가장 어리다

→ 미애도 하늘그네를 탄다. 미애는 마흔아홉 살로 붓꾼 가운데 가장 어리다

263쪽


흰 태양 아래 철상자들이 이글이글 끓고 있다

→ 하얗게 내리쬐어 쇠꾸러미가 끓는다

→ 한낮볕에 쇠바구니가 지글지글 끓는다

307쪽


내가 조선소에서 일하는 동안

→ 내가 무이터에서 일하는 동안

→ 내가 뭇기터에서 일하는 동안

333쪽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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