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만난 하나님 - 개정판
김승옥 지음 / 작가 / 200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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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책읽기 / 인문책시렁 2024.4.18.

인문책시렁 330


《내가 만난 하나님》

 김승옥

 작가

 2004.5.3.



  《내가 만난 하나님》(김승옥, 작가, 2004)을 반갑게 읽고서 한참 삭입니다. 글님이 전남 순천에서 어린날을 보냈을 뿐 아니라, 글님 어머님이 전남 순천에서 나고자랐다는 대목을 읽고서 새삼스럽습니다. 이 책이 나온 2004년 무렵에는 이런 얼거리를 모르기도 했고 딱히 눈길이 가지 않았으나, 이제는 순천 곁 고흥에서 살림을 꾸리기에, 지난날 고흥과 옆고을이 어떤 숨결이었을는지 천천히 곱씹습니다.


  순천·벌교(보성)·고흥·장흥은 서로 엎어지면 코 닿을 만큼 맞닿고, 바다를 나란히 품습니다. 네 고을 가운데 고흥은 마치 섬처럼 동떨어진 터라면, 순천·벌교(보성)·장흥은 뭍으로 트인 터입니다. 다만, 길이 아무리 새로 나더라도, 지난날에는 마을하고 마을 사이에 숲정이나 고개가 있습니다. 고을하고 고을 사이에는 재가 있습니다. 고장하고 고장 사이에는 멧줄기가 있어요. 가까우면서 먼 사이요, 먼 듯해도 가까운 이웃입니다.


  김승옥 님은 어느 날 눈앞에서 하느님(하나님)을 만났다고 합니다. 깜짝 놀랐다지요. 설마 싶은 일을 겪었고, 남들은 거의 안 겪을 만한데, 왜 이녁한테 이런 빛이 찾아오나 싶어서 어리둥절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적잖은 사람들은 눈앞에서 숱한 님을 만납니다. 눈을 감아도 만나고, 눈을 떠도 만납니다. 우리는 ‘몸눈’으로만 보지 않아요. 몸눈으로는 아주 조그마한 데만 볼 뿐이에요. ‘마음눈’을 뜨면서 둘레를 볼 적에는 눈앞을 환하게 틔웁니다. 겉으로 입은 몸이란 그저 옷인 줄 알아차릴 수 있으면, 우리가 가꿀 오늘이란 ‘겉몸을 배불리 먹이는 길’이 아니라 ‘속마음을 넉넉히 살리는 길’인 줄 느낄 만해요.


  그렇지만 우리가 굳이 ‘몸’이라는 ‘옷’을 입고서, ‘몸눈’으로 둘레를 ‘좁게’ 보는 까닭이 있겠지요. 이 뜻과 길과 까닭을 찾아나서는 하루가 바로 ‘삶’이요, 이 삶을 안팎으로 바라보는 눈썰미를 키우기에 ‘살림’이며, 이 살림을 어떻게 다스리고 북돋우느냐 하고 생각하기에 ‘사랑’으로 나아가서, 어느덧 ‘숲’한테 안기는 ‘사람’으로 섭니다.


  빛을 만난 김승옥 님은 더는 글살림을 잇지 않으셨지만, 빛줄기하고 마주한 한때를 고이 마음으로 품고서 이 조그마한 꾸러미로 여미었기에 더없이 고맙다고 여깁니다. 머잖아 흙으로 돌아갈 몸이라고 들었습니다. 마지막 삶자락을 포근히 누리시면서, 오늘 하루를 언제나 눈부신 빛살로 일으키고 사랑하는 마음이시기를 바라요.


ㅅㄴㄹ


이렇게 위대한 탄생들인데 왜 인간들은 전쟁을 벌이며 서로 죽이는 것일까? 왜 질투하고 비판하며 서로 상처를 입히는 것일까? 인간은 참으로 영원히 살아야 할 고귀한 존재들인데 왜 어느 날 갑자기 죽어 없어지는 것일까? (22쪽)


그날 밤, 아직 배탈난 손자의 배를 쓸어주고 있는 할아버지처럼 내 명치를 천천히 쓸어 주시고 계시는 하나님의 손을 나는 도둑인 줄 알고 내 오른손으로 덮치며 “누구야?” 낮게 외치며 상반신을 일으켰을 때 내 오른쪽 머리 위 방안 허공에서 들려오던 아주 굵은 남성 음성은 “하느님이다.”는 한국어였다. (39쪽)


전남 순천 출신인 어머니는 오사카에서 성장하여 여학교를 졸업한 지 1년밖에 되지 않은 한약국집 외딸이었다. 해방되던 1945년에 귀국하여 순천에 정착했으나 1948년도, 내 나이 8세에 아버지가 세상을 뜨셨다. 가족의 죽음 때문에 나는 ‘인간은 죽을 수 있는 존재’라는 사실을 심각하게 생각하기 시작했다. (77쪽)


+


무신론자無神論者인 내가 하나님을 믿게 된 것은 오직 하나님의 직접적인 은혜 때문이다

→ 안 믿던 내가 하나님을 믿는 까닭은 오직 하나님이 손수 사랑을 베풀었기 때문이다

→ 고개젓던 내가 하나님을 믿는 까닭은 오직 하나님이 몸소 빛을 베풀었기 때문이다

11쪽


유유상종類類相從이야말로 하늘 세계의 영원한 법칙이다

→ 가재나 개야말로 하늘나라 오래길이다

→ 나란살이야말로 하늘누리 늘빛이다

→ 한울타리야말로 하늘밭 한길이다

→ 같이 놀기야말로 하늘터 그대로이다

15쪽


훌륭한 건국 신화에 하나님 권위를 갖다붙이는 건 항다반사 아닌가

→ 훌륭한 첫이야기에 하나님 이름을 으레 갖다붙이지 않는가

→ 훌륭한 새벽노래에 하나님 이름꽃을 늘 갖다붙이지 않는가

→ 훌륭한 새날노래에 하나님 이름씨를 꼭 갖다붙이지 않는가

20쪽


아내는 이젠 나한테 전도를 시작하는 것이다

→ 곁님은 이젠 나한테 퍼뜨리려고 한다

→ 짝꿍은 이젠 나를 이끌려고 한다

29쪽


우리 민족이 써온 일종의 표준어이기 때문이 아닐까

→ 우리 겨레가 써온 두루말이기 때문이 아닐까

→ 이른바 우리 겨레한테 맞춤말이기 때문이 아닐까

39쪽


물론 성지순례라고 하는 여행의 성격이 특수한 탓도 작용했으리라

→ 다만 거룩마실이라고 하는 길이 남다른 탓도 있으리라

→ 그리고 거룩길이 두드러진 탓도 있으리라

→ 또한 거룩걸음이 유난한 탓도 있으리라

92쪽


사회 생활을 배우기 시작하는 나이인 나에게 여순 사건으로 인한 동족상잔의 경험은 참으로 충격적인 것이었다

→ 모둠살이를 배우는 나이인 나한테 여순 벼락으로 불거진 겨레싸움은 참으로 끔찍했다

→ 살림을 배우는 나이인 나한테 여순 불바다로 불거진 피비린내는 참으로 괴로웠다

→ 삶을 배우는 나이인 나한테 여순 불수렁으로 불거진 한핏줄싸움은 참으로 아팠다

133쪽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우리말꽃》,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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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 세대를 위한 건축과 국가 권력 이야기 미래 세대를 위한 인문 교양 1
서윤영 지음 / 철수와영희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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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책읽기 / 인문책시렁 2024.4.11.

인문책시렁 352


《미래 세대를 위한 건축과 국가 권력 이야기》

 서윤영

 철수와영희

 2024.1.1.



  《미래 세대를 위한 건축과 국가 권력 이야기》(서윤영, 철수와영희, 2024)는 나라마다 집을 어떻게 달리 여기면서 높거나 크게 세우려 하는가를 짚습니다. 사람들은 저마다 보금자리를 이루면서 살림을 일구려고 지붕을 이고 숲 곁에 있는 길이지만, 임금이나 벼슬아치나 글바치는 사람들을 밟고 올라서면서 휘두르려는 굴레라고 할 만합니다.


  큰일을 하자면 큰집이 있어야 할는지 곱씹을 노릇입니다. 둘레를 내려다보려고 큰집을 올린다고 여길 만하고, 콧대를 높이려고 더 크고 더 높게 세우는구나 싶습니다. 사람들 곁에 서려는 길이라면, 큰일을 하더라도 조촐히 여미는 작은집에 깃들게 마련입니다. 또한, 큰일을 어질게 하려는 길이라면, 서울 한복판에만 으리으리하게 올려세우지 않아요. 참다운 큰일이라면, 나라 곳곳에 알맞게 작은집을 지어서 고루고루 돌아가며 일꾼 노릇을 하겠지요.


  우리나라도 일본도 중국도 하늬녘도 매한가지입니다. 벼슬을 쥐거나 힘으로 부리려 하니 그저 덩치를 키웁니다. 심부름꾼을 잔뜩 두니까 큰집을 더 키우려 합니다. 으리으리한 집에는 텃밭이 없습니다. 커다란 울타리에서는 벌나비도 풀벌레도 개구리도 반기지 않습니다. 멀리 이웃나라를 안 쳐다보아도 알 만합니다. 우리나라 푸른지붕에 찾아드는 개구리나 뱀이 있을까요? 아마 보이자마자 잡아죽이겠지요? 우리나라 벼슬터(공공기관) 지붕에 새가 앉아서 둥지를 틀거나 똥을 누면 어떡하나요? 새를 쫓아내겠지요?


  봄을 맞이하면 봄맞이새가 찾아와서 노래합니다. 제비는 사람을 반기면서 처마 밑에 둥지를 짓거나 추스릅니다. 그런데 오늘날 사람집을 보면 처마가 거의 없어요. 처마가 있더라도 풀벌레나 거미나 벌나비를 잡을 만한 풀밭도 숲도 논밭도 죄 사라지는데다가, 기껏 논밭이나 풀밭이 있더라도 풀죽임물로 뒤범벅이라 몽땅 죽음수렁입니다.


  《미래 세대를 위한 건축과 국가 권력 이야기》는 온누리 모든 나라가 ‘힘(국가권력)’을 쥐거나 펴려고 하면서 얼마나 허울스럽게 몸집만 불리는지 들려줍니다. 다만, 하늬녘 이야기가 너무 길어요. 하늬녘 이야기는 확 줄이고서 우리나라 이야기에 자리를 내준다면 한결 나으리라 봅니다. 그리고 베트남이나 태국이나 몽골이나 티벳이나 네팔을 돌아보면 더욱 나을 테지요. 중국이나 대만에 깃든 작은겨레는 집살림을 어떻게 하는지 살핀다면, ‘힘’하고 ‘살림’ 사이가 얼마나 먼지 잘 짚어낼 수 있습니다.


  어린이하고 푸름이를 바라보는 들꽃사람은 조촐하게 살림집을 짓고 가꾸고 꾸려서 물려줍니다. 어린이도 푸름이도 안 바라보는 임금과 벼슬아치와 글바치는 우람하게 담벼락을 세워서 끼리끼리 힘자랑에 이름치레에 돈잔치를 벌입니다.


ㅅㄴㄹ


어떤 건물을 어디에 어떻게 지을지는 그 사회를 지배하는 생각 즉 지배 담론을 따르는 경우가 많습니다. (9쪽)


궁전은 산속이나 호숫가에 위치하는 대신 넓은 평지에 자리잡으며 방어적인 요새의 성격 대신 과시적인 형태로 지어집니다. (55쪽)


일제 강점기 일본은 법제, 학문, 도시 계획 등에서 프로이센의 영향을 많이 받았고 이것이 우리나라에도 그대로 전해졌습니다. (65쪽)


조선 초기에 지어진 경복궁은 320여 칸이었는데 중건된 경복궁은 모두 7000여 칸이었으니 규모로 보면 20배가 넘는 엄청난 대공사였습니다. (185쪽)


일제 강점기에는 경복궁 바로 앞에 조선 총독부를 지었습니다. 그리고 해방 후에는 조선 총독부 건물 앞에 그 일본을 패망시켰던 미국의 대사관 건물이 들어섰습니다. (202쪽)


+


어떤 건물을 어디에 어떻게 지을지는 그 사회를 지배하는 생각 즉 지배 담론을 따르는 경우가 많습니다

→ 어떤 집을 어디에 어떻게 지을지는 삶터를 다스리는 큰줄기를 따르곤 합니다

→ 어떤 집을 어디에 어떻게 지을지는 나라를 가로지르는 큰틀을 으레 따릅니다

9쪽


잔심부름부터 하면서 일을 배웠는데 이를 도제라고 했습니다

→ 잔심부름부터 하면서 일을 배웠습니다

→ 잔심부름부터 하면서 일을 따라했습니다

21쪽


혁명의 물결이 번지지 않도록

→ 들물결이 번지지 않도록

→ 새물결이 번지지 않도록

29쪽


고대 이집트까지 소급해 올라간 것인데

→ 옛 이집트까지 거슬러올랐는데

→ 예전 이집트까지 올라갔는데

49쪽


더 이상 지어지지 않게 됩니다

→ 더는 짓지 않습니다

→ 더 짓지는 않습니다

54쪽


그만큼 세수도 줄어 경제난까지 가중되었습니다

→ 그만큼 적게 거두어 돈고비까지 큽니다

→ 그만큼 나라돈도 줄어 강파르기까지 합니다

→ 그만큼 낛도 줄어 가난살림까지 이릅니다

96쪽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우리말꽃》,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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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시별 - 한국전쟁의 빛을 찾아서
손석춘 지음 / 철수와영희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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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책읽기 / 인문책시렁 2024.4.7.

인문책시렁 306


《원시별》

 손석춘

 철수와영희

 2023.6.15.



  《원시별》(손석춘, 철수와영희, 2023)은 한겨레싸움을 다룹니다. 남녘하고 북녘으로 가른 두 나라가 피를 튀기고 미워하면서 어떻게 멍들고 얼룩졌는가를 차근차근 짚습니다. 1950년 그날뿐 아니라, 2020년을 넘어선 뒤에도 “한겨레 두나라”는 다툽니다. 북녘에서 빠져나온 사람들이 남녘에 깃드는데, 남녘에서는 적잖이 돈과 쌀과 품을 들여서 북녘 벼슬판을 살려놓기도 합니다.


  우리는 어깨동무하는 “한겨레 한나라”로 나아갈 수 있을까요? 이제는 다시 한나라일 수는 없고 두나라로 가는 길이 어울릴까요?


  곰곰이 보면, 남녘·북녘만 둘로 갈린 길이 아닙니다. 전라도하고 경상도가 둘로 갈린 길이고, 서울하고 시골이 둘로 갈린 길인데, 또 서울하고 ‘서울밖’이 새삼스레 둘로 갈린 길이며, 돈·이름·힘을 거머쥔 무리와 안 거머쥔 무리가 새록새록 둘로 갈린 길입니다.


  스스로 기쁨이 우러나오면서 서울을 떠난다든지, 돈·이름·힘을 내려놓는 사람이 드문드문 나타나지만, 서울을 떠나거나 돈·이름·힘을을 내려놓으면 ‘바보’ 소리를 듣는 판입니다. 이 손가락질은 남녘·북녘이 매한가지입니다. 남녘은 ‘서울바라기’라면, 북녘은 ‘평양바라기’입니다. 남녘은 서울로 우르르 몰아놓고서 쳇바퀴라면, 북녘은 평양에 죄다 몰아세워서 쳇바퀴입니다.


  1950년 그날을 새롭게 그려낸 《원시별》은 ‘원시 + 별’입니다. 한자말 ‘원시(原始)’는 모름지기 ‘처음’을 가리키던 낱말인데, 이제는 거의 ‘원시인’을 가리키는 쪽으로만 바라봅니다. “덜떨어지거나 낡거나 까마득히 오래된” 굴레를 빗댈 적에 쓰는 ‘원시’라고 할 수 있습니다.


  2023년 6월에 읽은 책을 2024년 4월까지 곁에 두었습니다. 섣불리 느낌글을 쓰지 못 하겠다고 여기기도 했으나, 우리 민낯과 뒷낯은 “덜떨어진 놈”일 뿐, “첫발을 떼는 님”하고는 너무 멀거든요. “낡은물에 사로잡힌 틀”을 벗으려는 사람이 아예 없지는 않으나 너무 적습니다. “들꽃이 되고 숲빛을 품는 시골살림”을 지으려는 사람은 더없이 적어요.


  예부터 “똥 묻은 개가 겨 묻은 개 나무란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이 나라 벼슬판뿐 아니라 구석구석을 보아도 “된똥범벅 놈팡이가 물똥범벅 놈팡이를 나무라”고, “물똥질 놈팡이가 된똥질 놈팡이를 꾸짖”는 얼거리입니다. 노리개질(성폭력)을 안 한 곳(정당)이 없습니다. 노리개질을 했어도 뉘우치지 않을 뿐 아니라 막질과 더럼질을 일삼고, 다시금 사람들을 홀려서 벼슬(국회의원·대통령·시도지사)을 거머쥐는 얼거리이기까지 합니다. 남녘은 이 꼬라지라면, 북녘은 김씨네 쇠사슬로 꽁꽁 가두어 총칼만 붙드는 꼬락서니입니다.


  이 별이 ‘고약별’이라면, 남이 고약한 짓을 했기 때문이 아닙니다. 우리 스스로 갈라치기를 하고 서로 미워하느라 고약별로 뒹굽니다. 이 별이 ‘들꽃별’이나 ‘처음별’이라면, 남이 아름답기 때문이 아닙니다. 우리 스스로 아름답게 꿈을 그리고 살림을 지으면서 어깨동무를 하니 들꽃별에 처음별입니다.


  그래서 저는 꽤 예전부터 뽑기날(투표일)에 뽑기를 하러 가되, 어느 누구도 안 뽑습니다. 뽑을 놈은 이쪽에도 저쪽에도 그쪽에도 없습니다. 누가 뽑히든 “똥 묻은 놈팡이”이기는 똑같습니다. 여태까지 어린이한테 이바지하거나 푸름이를 헤아리거나 들숲바다를 살리거나 시골에서 풀죽임물·비닐·죽음거름을 치워내려는 뜻을 밝힌 놈팡이는 아직 없습니다. 어린이를 사랑하지 않는 놈팡이가 벼슬을 쥔들, 아름별이나 푸름별로 걸어가지 않습니다. 참 그렇지요. 벼슬을 쥐려는 그들 가운데 쇳덩이(자동차) 없이 두다리로 걷는 놈팡이는 여태 없는걸요. 걸어다니지 않으면서 벼슬을 쥐려는 이들은 거짓말꾼이고, 우리도 쇳덩이를 버리고서 걸어다닐 때라야 비로소 멧새노래를 듣고 풀꽃내음을 맡는 들사람(민중)으로 일어설 수 있습니다. 쇳덩이를 등지고, 끈(학력·지연)을 놓는 들꽃사람이 늘어야, 비로소 뽑기날에 뽑을 만한 ‘놈팡이 아닌 님’을 만나리라 생각합니다.


ㅅㄴㄹ


진철은 공산주의에 흔쾌히 동의할 수 없었다. 일찌감치 동학의 영향을 받은 까닭이다. (53쪽)


“서울에서도 민중들이 시민대회를 열고 있소. 하지만 미국 대통령 트루먼의 초상을 들고 행진하는 일은 없소. 그런데 평양에선 어째서 스탈린 초상을 들고 만세를 외치며 행진하오?” (159쪽)


생지옥에서도 아이들은 하하거렸다. 낙동강 지천에서 피라미와 수수미꾸리를 잡았다. 감자를 구워 먹으며 딱따그르르했다. (219쪽)


“미안해요, 진철 동무. 어쩌면 오늘이 지상에서 보내는 인간 유정인의 마지막 날일 것 같아서요.” (251쪽)


“기자님보다 한참 어린 내가 그 끔찍한 시체를 보며 아무렇지도 않았던 까닭이 뭐겠어요? 이 전쟁이 터지기 전에 내 고향에서 그 이상의 주검들을 보았기 때문이지요.” (286쪽)


전쟁을 취재해 오며 ‘민중의 관점’을 되뇌었지만 정작 중요한 삶의 영역을 지금껏 놓치고 있었다. (301쪽)


“더구나 어디가 조국인가요? 둘 다 우리 조국 아닌가요?” (334쪽)


+


사랑조차 편히 나눌 수 없다면 삶은 얼마나 비루할까

→ 사랑조차 가붓 나눌 수 없다면 삶은 얼마나 너절할까

9쪽


지혜의 갸름한 얼굴에 애수의 그늘이 더 짙어갔다

→ 지혜는 갸름한 얼굴에 슬픔빛이 더 짙다

→ 지혜는 갸름한 얼굴에 그늘이 더 짙다

9쪽


바닥 모를 심연으로 깊이깊이 가라앉고 있었다

→ 바닥 모르도록 깊이깊이 가라앉는다

→ 바다 깊이 가라앉는다

9쪽


찬찬히 석조건물에 들어섰다

→ 찬찬히 돌집에 들어섰다

16쪽


지혜에겐 재색을 겸비했다는 중론이 일었다

→ 지혜는 곱고 똑똑하다고 여겼다

→ 지혜는 두루거리라고 보았다

→ 지혜는 온꽃이라는 뭇뜻이었다

31쪽


자네의 비분 내가 왜 모르겠나

→ 자네 눈물 내가 왜 모르겠나

→ 자네 눈물꽃 내가 왜 모르겠나

41쪽


시국을 잘 모른다 했지만

→ 나라를 잘 모른다 했지만

→ 길을 잘 모른다 했지만

→ 판을 잘 모른다 했지만

46쪽


푸른 바다와 판연히 딴판이다

→ 파란바다와 똑똑히 딴판이다

→ 파란바다와 딴판이다

63쪽


진철은 부끄러움이 앞섰다

→ 진철은 부끄러웠다

→ 진철은 확 부끄러웠다

105쪽


약산의 존함을 함부로 입에 놀리는 자가 궁금했다

→ 약산 이름을 함부로 입에 놀리는 놈이 궁금했다

→ 약산 어른을 함부로 입에 놀리는 이가 궁금했다

123쪽


충심으로 보필했다

→ 꽃넋으로 따랐다

→ 고분고분 모셨다

157쪽


그게 무슨 후과를 불러올지 제가 모를 정도로 순진하진 않습니다

→ 무슨 뒤끝이 있을지 모를 만큼 어리석진 않습니다

→ 무슨 옹이가 있을지 모를 만큼 멋모르진 않습니다

→ 무슨 생채기가 날지 모를 만큼 바보이진 않습니다

169쪽


아무런 연고가 없잖은가

→ 아무런 뿌리가 없잖은가

→ 아무런 터가 없잖은가

→ 아무런 집이 없잖은가

→ 아무런 이웃이 없잖은가

→ 아무런 끈이 없잖은가

175쪽


속전속결로 통일을 이루면

→ 거침없이 하나를 이루면

→ 몰아서 한나라를 이루면

→ 대번에 한누리를 이루면

180쪽


다행히 방어선을 가까스로 구축했다. 대한민국의 마지노선이다

→ 겨우 가로막았다. 우리나라 마지막이다

→ 가까스로 맞받았다. 우리로서 끝줄이다

255쪽


보통 취중진담이라는 말이 있잖습니까

→ 으레 술김속말이라고 있잖습니까

→ 흔히 술자리속빛이라고 있잖습니까

→ 다들 곤드레속말이라고 있잖습니까

274쪽


내가 죽으면 청상과부 될 아내의 탐스런 자태를 떠올리니

→ 내가 죽으면 홀로일 곁님 흐벅진 모습을 떠올리니

→ 내가 죽으면 홀어미일 짝꿍 봉긋한 몸을 떠올리니

297쪽


기실 역사 속에서 우리 민중들의 꿈은 정말 소박하지 않았던가

→ 모름지기 그동안 우리 들사람 꿈은 수수하지 않은가

→ 여태 우리 들꽃사람 꿈은 참으로 조촐하지 않은가

301쪽


이건 동무를 위해 챙겨둔 전투식량이오

→ 여기 동무한테 챙겨줄 싸움밥이오

→ 동무한테 이 길밥을 챙겨두었오

→ 동무한테 이 도시락을 챙겨두었오

318쪽


더 좌고우면하지 않았다

→ 더 망설이지 않았다

→ 더 서성이지 않았다

→ 더 둘러보지 않았다

360쪽


우리 동무들 정말 영웅적으로 싸우지 않았는가

→ 우리 동무들 참말 대단하게 싸우지 않았는가

→ 우리 동무들 참으로 훌륭히 싸우지 않았는가

→ 우리 동무들 참 아름다이 싸우지 않았는가

374쪽


사고무친 두 청년을 구렁에 묻었다

→ 혼자인 두 젊은이를 구렁에 묻었다

→ 외로운 두 젊은이를 구렁에 묻었다

→ 쓸쓸한 두 젊은이를 구렁에 묻었다

410쪽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우리말꽃》,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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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밖에도 사람이 산다 - 서울 밖에 남겨나 남겨진 여성, 청년, 노동자이자 활동가가 말하는 ‘그럼에도 지방에 남아있는 이유’
히니 지음 / 이르비치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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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책읽기 / 인문책시렁 2024.3.22.

인문책시렁 333


《서울 밖에도 사람이 산다》

 히니

 이르비치

 2023.10.27.



  《서울 밖에도 사람이 산다》(히니, 이르비치, 2023)를 읽고서 한참 자리맡에 두었습니다. 우리나라는 어느새 ‘서울·서울곁·서울밖’ 셋으로 가르는 담벼락이 높은데, ‘서울밖’ 다음으로 ‘시골·두메·섬’으로 더 가르곤 합니다.


  곰곰이 보면 ‘서울곁’도 다 다릅니다. ‘고양’보다 ‘일산’이라는 이름이 드높은 고장은 ‘서울곁·서울밖’이어도 굳이 서울바라기를 안 한다고 느껴요. ‘성남’보다 ‘분당’이라는 이름이 높은 고장도 구태여 서울바라기를 안 할 수 있습니다.


  이와 달리, 부천과 인천은 ‘서울곁’이어도 ‘서울밖’에 가깝습니다. 남양주나 의정부나 구리는 어떨까요? 적잖은 ‘서울곁’조차 ‘서울밖’이기 일쑤요, 여러모로 보면 우리나라는 온통 ‘서울나라’인 터라, ‘서울로(인 서울)’를 이루지 못 하면 찬밥처럼 여겨요.


  그렇다면 왜 ‘서울·서울곁·서울밖’ 같은 굴레가 생길는지 생각할 노릇입니다. 서울밖에서 살아가는 사람들부터 ‘시골·두메·섬’을 밑에 깔더군요. 서울곁으로 가지 못 하더라도 시골이나 두메나 섬으로는 안 가려고 합니다. 굳이 서울을 바라보려 하지 않으면서, 멧골이나 숲이나 바다로 가려고도 안 해요.


  서울에 있는 어느 벼슬터나 일터를 작은고장으로 옮긴들, 서울이 바뀔 일이 없고, 작은고장이 나아질 일도 없습니다. 그저 시늉입니다. 서울이 바뀌려면, 또 작은고장이 거듭나려면, 서울에서도 작은고장에서도 잿집(아파트)과 부릉길(찻길)을 확 줄일 노릇입니다. 걸어서 다니거나 두바퀴(자전거)를 몰면서 느긋이 일하고 살림하고 어울리고 쉬고 노는 얼거리를 열 적에 비로소 서울도 작은고장도 눈부시게 피어날 만합니다.


  요즈음 온나라를 보면, 서울뿐 아니라 인천·부산·대구·광주·대전 어느 고장에도 어린이랑 푸름이가 쉴 빈터가 없습니다. 어른이라는 이름인 꼰대가 노닥거릴 술집이나 노래칸이나 찜질칸은 수두룩하지요. 온갖 찻집과 맛집도 ‘어른이라는 이름인 꼰대’한테 맞춘 곳일 뿐, 어린이나 푸름이는 아예 거들떠보지 않습니다.


  사람답게 살아가는 길이 무엇인지 바라보는 하루로 바꿀 때라야, 우리 보금자리와 마을부터 바꿉니다. 우리 보금자리와 마을을 느긋하면서 즐겁게 바꿀 때에는 서울도 바뀝니다.


  몇 해마다 나라지기에 벼슬아치를 갈아치우는 뽑기(선거)를 하지만, 뽑기에 나오는 이들치고 어린이랑 푸름이가 앞으로 이 땅에서 즐겁게 살림을 짓고 사랑을 꽃피우는 길을 헤아리는 뜻을 펴는 이는 여태 한 놈도 없습니다. 누가 어린이를 사랑하는 뜻을 폈나요? 없어요. 누가 푸름이 눈높이로 어깨동무하는 뜻을 밝히나요? 없어요.


  《서울 밖에도 사람이 산다》는 여러모로 뜻있으나, 이래저래 아쉽습니다. 불길을 푸근하게 풀어내는 길을 아직 안 찾거나 못 찾은 듯싶어요. 무엇보다도 이 책에는 짝짓기 발자취에 너무 많이 자리를 내주었습니다. 서울밖에서 짝을 찾던 허방다리 같은 나날은 따로 빼내어 다른 책으로 꾸리는 쪽이 나으리라 봅니다. 서울밖에서 안간힘을 쓰고 용을 쓰면서 새길을 찾은 삶에 오롯이 파고들어서 줄거리를 여미었다면 돋보였으리라 봅니다.


  새는 시골에도 숲에도 들에도 서울에도 작은고장에도 삽니다. 예부터 모든 곳이 숲이었어요. 서울이 잿더미처럼 바뀐 지는 기껏 온해(100년)도 안 되었습니다. 온해 앞서는 온나라 어느 곳이나 새가 둥지를 틀고 개구리가 노래하던 푸른터였습니다. 푸른터일 적에는 어린이가 꿈을 키우고 푸름이가 사랑을 그리는 아름터라고 할 수 있습니다.


ㅅㄴㄹ


그 시기, 성범죄 피해자를 의심하는 사람은 엄마뿐만이 아니었다. 같은 정치인이나 정당을 지지하는, 그러니까 나와 같은 곳을 바라본다고 생각했던 이들도 어떤 이슈에서만큼은 다른 얼굴을 하고 있었다. (21쪽)


선생님들은 어떻게 보면 성평등한 사람들이었다. 무차별적인 매질은 남학생 여학생을 가리지 않았다. (51쪽)


한편으로는 성폭력 피해자에게 ‘피해 호소인’이라는 괴상한 명칭까지 갖다 붙인 정당의 결정답다고 생각했다. (79쪽)


누가 나를 좋아하면 마냥 좋을 줄 알았던 건 순전히 내 착각이었다. (140쪽)


+


나를 수식하는 키워드다

→ 나를 가리키는 말이다

→ 나를 나타내는 말이다

5


우연히 응하게 된 첫 인터뷰에서

→ 문득 처음 말을 나눈 자리에서

→ 어쩌다 한 첫 만나보기에서

5


이걸 시작으로 몇 번의 인터뷰를 더 하게 됐다

→ 이때부터 만나보기를 몇 자리 더 하였다

→ 이때부터 몇 자리 더 만나보았다

5


이 말이 속담이라는 걸 모르는 사람이 없지만

→ 이 말이 삶말인 줄 모르는 사람이 없지만

→ 이런 옛말을 모르는 사람이 없지만

→ 이 오래말을 모르는 사람이 없지만

7


서울과 가까운 수도권으로 옮겨간다

→ 서울과 가까이 옮겨간다

→ 서울곁으로 옮겨간다

8


높고 험난한 산맥을 넘지 못할 때가 많았다

→ 높고 벅찬 멧줄기를 넘지 못할 때가 잦았다

→ 높고 거친 줄기를 넘지 못하기 일쑤였다

8


시간이나 지면의 문제로 그동안 충분히 답을 하지 못했다

→ 틈이나 자리가 모자라 그동안 제대로 말을 하지 못했다

→ 짬이나 자리가 없어 그동안 찬찬히 말을 하지 못했다

9


온몸으로 지성미를 뽐내었다

→ 온몸으로 똑소리를 뽐내었다

→ 온몸으로 똑똑하게 뽐내었다

20


자취방으로 배송됐다

→ 혼살이집으로 왔다

→ 혼집으로 날아왔다

24


국과 반찬을 만들 줄 몰랐다

→ 국과 곁밥을 할 줄 몰랐다

26


10만 원의 외식비로 치환되는 엄마의 노동력의 가치가 한없이 초라해 보였다

→ 사먹는 10만 원으로 눙치는 엄마 땀방울이 그지없이 초라해 보였다

→ 마실밥 10만 원으로 갈음하는 엄마 품값이 더없이 초라해 보였다

28


임대료를 감당하려면

→ 삯을 맞추려면

→ 빌림삯을 대려면

32


잔고를 먼저 떠올리며 계산하게 됐다

→ 돈을 먼저 떠올리며 셈하였다

→ 남은돈을 먼저 떠올리며 따졌다

33


그 말들이 매번 나를 공허하게 만들었다

→ 이 말에 늘 허전했다

→ 이 말에 으레 쓸쓸했다

34


더 이상 내 외박에 관여하지 않았다

→ 내가 밖에서 자도 더는 뭐라 않는다

→ 나들잠이어도 더 뭐라 않는다

→ 마실잠이어도 더 뭐라 않는다

37


나의 먹고사니즘만으로도 충분히 고달픈 상황에

→ 나 먹고살기만으로도 이미 고달픈 판에

→ 혼자 먹고살기로도 벌써 고달픈데

37


게으름 피우는 아이를 무차별로 응징했다

→ 게으름 피우는 아이를 마구 밟았다

→ 게으름 피우는 아이를 모질게 뭉갰다

44


오랜 시간 소화되지 않아 숙변처럼 마음 어딘가에 딱딱하게 굳어버리기도

→ 오랫동안 삭지 않아 묵똥처럼 마음 어딘가에 굳어버리기도

→ 오래 꺼지지 않아 된똥처럼 마음 어딘가에 딱딱하게 있기도

47


조롱하는 추태까지 보였냐고

→ 놀리는 꼴까지 보였냐고

→ 비웃는 짓까지 보였냐고

→ 깔보는 꼬라지까지 보였냐고

50


위치는 2위로 강등되었다

→ 자리는 둘째로 내려갔다

→ 둘쨋칸으로 옮겼다

→ 버금으로 떨어졌다

53


독서보다는 사교의 목적이 강해서

→ 읽기보다는 만나는 뜻이 짙어서

→ 읽기보다는 어울리려는 뜻이라

65


문화적 궁핍이라는 연료는

→ 멋이 없다는 밑동으로

→ 놀잇감이 없다는 마음은

→ 누릴거리가 적다고 여겨

66


사회가 주요하게 다루지 않는 담론을

→ 나라가 깊이 다루지 않는 얘기를

→ 둘레에서 크게 안 다루는 목청을

67쪽


독서 모임을 할 수 있는 거점을

→ 책모임을 할 수 있는 밑동을

→ 읽기모임을 할 수 있는 밭을

77쪽


동창이자 나의 동문이었다

→ 나랑 배운 나란내기였다

→ 나랑 또래요 배움벗이다

81쪽


+


거의 모든 업장에서는

→ 거의 모든 곳에서는

→ 거의 모든 일터에서는

→ 거의 모든 데에서는

95


공실을 채우려 가격을 내린

→ 빈칸을 채우려 값을 내린

→ 빈집을 채우려 삯을 내린

→ 빈터을 채우려 싸게 낸

98


망각의 바다에서 휩쓸리지 않을 것이다

→ 깜빡질 바다에서 휩쓸리지 않겠다

→ 빠뜨리는 바다에서 안 휩쓸리겠다

107


완독까지 몇 장 남지 않았을 때

→ 다읽기까지 몇 남지 않았을 때

→ 끝까지 몇 쪽 남지 않았을 때

109


건물주는 깐깐하고 인색한 사람이었다

→ 집지기는 깐깐한 사람이었다

→ 집임자는 깍쟁이였다

110


이사하더라도 고정비용을 줄이기 수월하도록

→ 옮기더라도 늘삯을 줄이기 수월하도록

→ 떠나더라도 붙박이돈은 줄이기 수월하도록

113


주휴수당을 받아 본 적이 없었다

→ 쉼삯을 받아 본 적이 없다

→ 쉬는몫을 받아 본 적이 없다

118


일상이 무너지는 듯한 후폭풍은 없었다

→ 하루가 무너지는 듯한 뒤끝은 없었다

→ 삶이 무너지는 듯한 멍울은 없었다

129


주량이 세다는 것에 쓸데없는 자부심이 있던 때였다

→ 술배가 세다고 쓸데없이 자랑하던 때였다

→ 술이 세다고 쓸데없이 뻐기던 때였다

137


+


외시경을 들여다보니 정말로 그가 서 있었다

→ 밖눈을 들여다보니 참말로 그가 있다

→ 볼록눈을 들여다보니 참말로 그가 섰다

138쪽


나름의 충격요법을 활용했는데

→ 내 나름대로 세게 했는데

→ 나로서는 놀래켰는데

→ 나는 뒤통수를 쳤는데

169쪽


담배를 피우면서 흡연하는 여자를 비난하는 그들을 보면서도

→ 담배를 피우면서 담배순이를 헐뜯는 그들을 보면서

→ 담배를 피우면서 담배순이를 할퀴는 그들을 보면서

179쪽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우리말꽃》,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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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그리는 할머니 김두엽입니다
김두엽 지음 / 북로그컴퍼니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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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책읽기 / 인문책시렁 2024.3.4.

인문책시렁 342


《그림 그리는 할머니 김두엽입니다》

 김두엽

 북로그컴퍼니

 2021.5.4.



  《그림 그리는 할머니 김두엽입니다》(김두엽, 북로그컴퍼니, 2021)를 읽었습니다. 누구나 붓을 쥐어 삶을 담아낼 수 있으면 즐겁고 아름답습니다. 어린이는 어린이로서 붓놀이를 하고, 어른은 어른으로서 붓살림을 합니다. 아이는 척척 붓을 놀리고, 어른은 착착 붓결을 살립니다.


  붓은 마음이 가는 대로 흐르게 마련입니다. 마음이 안 가는 곳에 붓질을 한다면 어쩐지 꾸미는구나 싶어요. 그렇다면 어떤 마음으로 가는 붓인지 바라볼 노릇이고, 마음을 어떻게 일구는지 들여다볼 일입니다.


  무엇이든 마음에 담고, 무엇이든 말로 옮기니, 무엇이든 붓으로 그릴 수 있어요. 하루를 곰곰이 새긴다면 곱게 그릴 만합니다. 하루를 가만히 돌아본다면 가볍게 그릴 만합니다. 하루를 새록새록 헤아린다면 반짝반짝 그릴 만합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이제는 여러 할머니가 느즈막이 붓을 쥐고서 그림빛을 선보입니다. 붓을 쥐는 할머니는 다들 오래도록 살림님으로 지내셨고, 꾸준하면서 기운차게 그림살림도 펴더군요. 집살림을 여민 손끝이 야무니, 그림살림을 다스리는 손빛도 야물게 마련입니다.


  김두엽 할머니 그림을 보다가, 수수한 글붓(연필)으로 그리면 한결 나을 텐데 하고 느꼈습니다. 늦깎이로 그림을 배우고서 책을 펴내거나 보임마당을 여는 분을 볼 적에도 비슷하게 느껴요. 다들 너무 일찍 물감이나 빛붓을 손에 쥐더군요.


  글붓은 한 가지 빛결만 나타내지 않습니다. 살림을 살뜰히 여민 분이라면 잘 알겠지요. 날마다 밥을 똑같이 짓는 일이란 없습니다. 날마다 밥을 짓더라도 늘 새롭고 언제나 든든해요. 수수한 글붓일수록 그림빛을 오히려 살립니다. 이를테면 《플랜더스의 개》에 나오는 아이 ‘네로’는 값싼 종이에 숯으로 그림을 담았을 뿐입니다. 네로는 물감도 빛붓도 쓴 적이 없고, 종이조차 몇 자락 없어서 으레 땅바닥에 나뭇가지로 그렸습니다.


  할머니나 할아버지한테 그림을 가르치는 분이 계시다면, 부디 글붓 하나로 온갖 빛과 빛결과 빛살과 빛줄기를 수수하게 담아내어, 스스로 여태 살아온 나날을 펼치도록 북돋우기를 바라요. 빛붓이 나쁠 까닭은 없되, 빛붓부터 너무 일찍 손에 쥐면 “무엇을 그릴까”보다 “어떻게 그릴까”에 기울더군요. 아이도 어른도, 젊은이도 늙은이도, 순이도 돌이도, 이이도 저이도, ‘무엇’이라 할 삶이라는 이여기를 들여다볼 적에 비로소 꽃을 피웁니다. 그리고 이 책에 흐르는 글은 너무 서툴어요. 뭔가 글멋을 부리려 하는 티가 납니다.


ㅅㄴㄹ


아들은 그림을 그린다며 몇 날 며칠을 작업실에서 두문불출했고 저는 식사 때가 되면 “현영아, 밥 먹자∼” 하며 아들을 불러냈어요. (27쪽)


완성된 그림의 수가 많아지고, 내 눈에도 어제보다 오늘 그린 그림이 더 멋져 보이기 시작할 즈음, 아들은 수채화 물감을 건네주었고, 그다음으로 아크릴 물감을 주었어요. (42쪽)


지금 전라남도 광양 우리 집에는 세 식구가 살고 있어요. 오늘은 흰 도화지에 우리 집을 그리고 토방 아래 신발 세 켤레를 그려 넣었어요. (70쪽)


그림이 주는 행복이 매우 크기에, 힘들어도 오랫동안 그림을 그리고 싶어요. (124쪽)


+


며칠을 작업실에서 두문불출했고

→ 며칠을 일터에 박혔고

→ 며칠을 일터에서 꼼짝않고

→ 며칠을 일터에 틀어박히고

→ 며칠을 일터에 들어앉고

→ 며칠을 일터에 또아리 틀고

27쪽


식사 때가 되면 “현영아, 밥 먹자∼” 하며

→ 밥때가 되면 “현영아, 밥 먹자!” 하며

27쪽


완성된 그림의 수가 많아지고

→ 마무리한 그림이 늘고

→ 마감한 그림이 늘어나고

42쪽


오늘 그린 그림이 더 멋져 보이기 시작할 즈음

→ 오늘 그림이 더 멋져 보일 즈음

42쪽


흰 도화지에 우리 집을 그리고

→ 흰종이에 우리 집을 그리고

70쪽


그림이 주는 행복이 매우 크기에

→ 그리면 매우 즐겁기에

124쪽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우리말꽃》,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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