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거쪽지 2014.5.18.

 : 어디에서나 딸기를 먹지



- 꽃을 알아볼 수 있으면 열매를 알아볼 수 있다. 꽃이 언제 피는가를 살피면 열매를 언제 맺는지 알 수 있다. 아이들과 자전거를 타고 나들이를 다니면서 딸기꽃이 어디에 피는지 찬찬히 익혀 두었다. 우리 집 들딸기밭 말고, 자전거를 타고 돌아다닐 적에 틈틈이 들딸기를 맛볼 만한 자리를 찾아가기로 한다.


- 어느새 모내기를 했거나 모내기를 앞둔 논 사이를 지나간다. 저물녘이기에 개구리 노랫소리가 우렁차다. 바람이 싱그러운 오월이다. 이런 오월에 두 다리로 걷거나 자전거를 달리면 누구라도 시원한 바람을 맛볼 테지.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는 거의 모든 사람이 자동차로만 움직이는 탓에, 오월이 되어도 오월바람을 잘 모른다. 자동차를 타더라도 창문을 열어 바깥바람을 쐬는 사람이 적을 뿐 아니라, 바람맛을 헤아리는 사람도 드물다.


- 저 앞에서 동생을 뒷자리에 태우고 달리는 자전거를 본다. 호덕마을 이웃이지 싶다. 앞에서 이끄는 사람이 안장을 높이면 좋으련만, 안장이 너무 낮다. 이럭저럭 자전거를 타는 사람은 많으나, 자전거를 제대로 다루거나 건사할 줄 아는 사람은 너무 적다. 가르쳐 주는 사람도 적고, 배우려는 사람도 적다.


- 면소재지를 거쳐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숲자락 앞에서 자전거를 세운다. “얘들아 기다려 봐.” 하고 말하고는 들딸기를 한 줌 훑어서 두 아이한테 갖다 준다. 한참 들딸기를 훑는다. 맛있니? 먹을 만하지? 좋지? 아이들한테 주고 나도 먹는다. 오월에 타는 자전거는 들딸기를 찾아다니는 자전거도 된다.


(최종규 . 2014 - 시골에서 자전거와 함께 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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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쪽지 2014.5.12.

 : 훨훨 날고픈 자전거



- 우체국에 가자. 우체국에 갈 일이 없더라도, 이제 오월 봄 끝자락에 날마다 자전거를 한 차례쯤 타자. 슬금슬금 이웃마을을 돌고, 천천히 들길을 누비자. 시골버스가 지나가면 살며시 손을 흔들어 인사하고, 바람을 천천히 가르면서 고운 바람을 마시자. 일곱 살 큰아이는 샛자전거에 앉아 손잡이를 놓고 두 팔을 옆으로 뻗는다. 어디에서 이런 모습을 보지는 않았으나, 스스로 이렇게 논다. 손을 놓고 달리면 재미난 줄 스스로 알아챈다. 자동차가 다니지 않는 한갓진 시골길을 달리는 자전거이니, 이렇게 놀 수 있다.


- 면소재지를 찍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작은아이는 곯아떨어진다. 자전거 나들이를 하기 앞서까지 졸음을 얼마나 꾹 눌러참았는지, 꾸벅꾸벅 졸다가 뒤로 기대지도 않고 앞으로 폭 몸을 숙이면서 잔다. 참말 고단했구나. 얼른 집으로 돌아가서 두 다리 곧게 뻗으면서 자야겠네.


(최종규 . 2014 - 시골에서 자전거와 함께 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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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쪽지 2014.5.8.

 : 저물녘에



- 저물녘에 자전거를 탄다. 많이 졸린 아이들이 도무지 잠들려 하지 않으면서 서로 툭탁거리기도 하고, 곁님이 네모빵을 사 달라 하기도 해서, 자전거를 탄다. 이 아이들은 면소재지로 나들이를 가서 과자 한 봉지씩 품에 안으면 어느새 툭탁질을 잊거나 멈출 테지. 서로 과자를 나누어 먹으면서 “맛있다. 맛있지?” 하고 웃으리라.


- 시골은 저녁에 서늘하다. 오늘날 시골은 찻길이 모두 아스팔트나 시멘트요, 마을 고샅도 모조리 시멘트이다. 그렇지만 시골인 터라 흙이 많고 풀과 나무도 곳곳에 있다. 이와 같은 삶터에서는 오뉴월 더위라 하더라도 저녁에는 찬바람이 분다. 집안에서는 홑옷차림으로 뛰놀며 덥다고 외치는 아이들이지만, 저물녘 자전거를 타야 하는 만큼 두툼한 겉옷을 챙겨 입힌다.


- 샛자전거에 앉은 큰아이가 묻는다. “아버지, 왜 깜깜해지는데 자전거를 타?” “저녁에는 저녁바람을 쐬고 별도 보려고 타지.” “깜깜해지면 제비들도 자?” “그럼, 제비들도 깜깜해지면 코 자고, 아침에 해가 뜨면 다시 일어나지.” 자전거에 씌운 덮개를 벗길 적에 우리 집 제비들이 마당을 빙빙 돌았다. 아이들은 제비춤을 보면서 까르르 웃고 좋아했다. 이 제비들은 왜 안 자느냐고 묻는 말이다. 그러나, 제비들은 잠들기 앞서 마지막으로 신나게 날갯짓을 하지.


- 경운기를 탈탈거리며 집으로 돌아가는 할배가 있다. 큰아이가 큰소리를 내며 인사한다. 어둑어둑한데 논에서 아직 일을 하는 할배가 있다. 큰아이는 또 큰소리를 내며 인사한다. 일곱 살 큰아이는 얼마나 인사를 잘 하는지, ‘인사순이’라고 할 만하다. 큰아이가 샛자전거에서 큰소리로 인사를 하면 작은아이는 수레에 앉아서 누나 말을 따라한다.


- 면소재지를 거쳐 집으로 돌아온다. 큰아이가 노래를 부른다. 문득, 동생을 부른다. “보라야, 너도 노래 불러 봐. 큰소리로. 보라 너는 폴리 좋아하지? 폴리 노래 불러 봐.” 노래하는 자전거가 저물녘 시골길을 달린다. 별이 하나둘 돋는 시골길을 노래자전거가 달린다.


(최종규 . 2014 - 시골에서 자전거와 함께 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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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쪽지 2014.5.2.

 : 가볍게 부는 산들바람



- 바람이 가볍게 분다. 햇볕이 따스하다. 좋은 날이다. 이 좋은 날은 무엇을 해도 즐거우리라. 아침부터 신나게 뛰논 아이들이 살짝 졸린 눈치이다. 자전거마실을 다녀오면 작은아이는 재울 수 있을까. 큰아이도 같이 재울 수 있으면 더 좋을 텐데.


- 곁님은 람타학교로 공부를 하러 아침 일찍 시골집을 나섰다. 아이들은 어머니가 집을 비우면서 서운하지만 씩씩하게 논다. 아이들을 달랠까 싶어 자전거를 끌고 들길을 달린다. 어느덧 유채꽃은 모두 졌고, 경관사업 심사가 끝나기 무섭게 논갈이를 한다. 올해에는 마을마다 경관사업비를 잘 받을 듯싶다. 경관사업이 끝났더라도 유채씨가 맺히기를 기다리면 좋으련만, 그냥 갈아엎기만 한다.


- 자전거를 꺼낸 뒤 대문을 닫으려니, 두 아이가 자전거 쓰러지지 말라며 붙잡아 준다. 참 이쁜 아이들이다.


- 오늘은 호덕마을 옆을 끼면서 천천히 달린다. 샛자전거에 앉은 큰아이가 묻는다. “아버지, 왜 여기로 가? 여기 예전에 가 봤는데.” “이쪽 길로도 달릴 때가 있지.”


- 우체국에 닿는다. 도서관 소식지를 스무 통 부친다. 면소재지 가게에 들른다. 과자를 몇 점 장만한다. 작은아이는 면소재지를 벗어날 무렵 누나 말을 흉내내며 몇 마디 떠들다가 이내 조용하다. 곯아떨어지기 앞서 마지막 노래 한 마디를 들려준 셈일까. 큰아이도 무척 졸린 얼굴이다. 그러나 큰아이는 참 꿋꿋하게 버티며 더 놀겠다고 말한다. 그러렴. 네가 하고픈 대로 하렴.


- 집에 닿는다. 작은아이를 살살 안아서 방으로 들어간다. 자리에 눕힌다. 자전거를 제자리에 놓고 덮개를 씌운다. 이제는 제비집에 제비가 깃들기에 날마다 누는 똥이 통통 떨어진다. 덮개를 안 씌우면 자전거는 제비똥으로 범벅이 되고 만다.


- 바람이 상그럽다. 꽃가루 묻는 바람이 맑다. 꽃내음 물씬 나는 산들바람이 온 마을과 집을 감돈다. 아이들도 나도 이 봄바람을 먹으면서, 이 오월바람을 마시면서 웃을 수 있다. 가벼운 바람을 맞으면서 가볍게 한 바퀴 돌았다. 자전거로 들마실 하기에 더없이 아름다운 볕이요 바람이며 날이다.


(최종규 . 2014 - 시골에서 자전거와 함께 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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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쪽지 2014.5.5.

 : 놀이터 가는 자전거



- 오늘 두 아이를 데리고 바닷가 마실을 할까 생각하다가, 막상 자전거를 몰고 집을 나서니 바람이 되게 불어서 그만둔다. 드세게 부는 바람을 맞으면서 한 시간 반 즈음 자전거를 달리면 아무래도 힘이 많이 빠져 저녁밥을 제대로 못 챙겨 주겠구나 싶다. 바닷가 마실은 이튿날이나 모레로 미루기로 하고, 면소재지 놀이터까지만 간다.


- 아이들도 바람이 드센 줄 알 테지. 면소재지 빵집에 들러 빵을 사고 나서 큰아이한테 묻는다. “어떻게 할까? 빵 먹고 싶니?” “응.” “그러면 가까운 데로 가자.” “어디로?” “음, 가면 알지.” 자전거를 슬슬 몬다. 면소재지 골목을 살살 돌면서 도화초등학교 쪽으로 간다. 초등학교 어귀 길이 무너졌다. 크고 무거운 자동차가 지나가다가 무너진 듯하다. 초등학교 어귀에 무너진 길은 곧바로 고쳐야 하지 않을까. 아이들이 날마다 드나드는 길인데. 자전거를 학교 안으로 몬다. 그런데 놀이터가 있을 자리에 놀이터가 없다. 뭐지? 두리번거리니, 놀이터 자리가 바뀌었다. 나무그늘에 있던 놀이터를 땡볕이 내리쬐는 자리로 옮겼다. 왜 옮겼을까. 아이들이 땡볕에서 놀아야 좋다고 여기는가? 아이들이 땡볕에서 조금만 놀고 ‘더우니 얼른 집에 가도록 하려’는 뜻인가? 참 너무한다. 나무그늘을 누리면서 흙을 밟는 놀이터가 얼마나 좋은데, 나무그늘 하나 없는 땡볕 운동장 한켠에 잔돌을 새로 깔아 억지스레 놀이터를 만드는 짓을 왜 할까.


- 땡볕 놀이터에 면소재지 고등학생 여럿이 앉아서 논다. 우리 집 두 아이는 초등학교 놀이터로 못 가고 유치원 놀이터 쪽으로 간다. 그런데 유치원 놀이기구에도 면소재지 고등학생 여럿이 앉아서 논다. 두 아이는 살짝 망설이다가 그냥 놀기로 한다. 고등학교 아이들이 예서 무엇을 하나 싶다가도, 시골 면소재지에서 이 아이들이 가서 쉬거나 놀 만한 데가 따로 없겠구나 싶으니, 이 아이들도 딱하다. 참말 갈 곳이 없어 초등학교 놀이터와 유치원 놀이터 사이에서 어정거리니까. 시골 푸름이인데 바다에 간다거나 숲에 갈 생각을 못한다.


- 오래된 시소를 치우고 새 시소를 놓았다. 빙글빙글 돌아가는 놀이기구는 아예 없앴다. 놀이터에 그네가 없는 모습도 참 서운한데, 애먼 놀이기구 하나를 없앴을 뿐 아니라 땡볕 자리로 옮기다니. 아이들이 못 놀게 하려는 뜻으로만 보인다. 어른들이 하루아침에 바꾼 놀이터를 아이들은 고스란히 따라야 하지 않는가. 땡볕에서 놀아야 하는 두 아이가 고단하다. 얼마 놀지 않았으니 힘든 티가 물씬 난다. 땡볕을 받으며 시소를 타고 뼈다귀집을 오르내리니 얼굴이 곧 빨갛게 탄다. 안 되겠다. 얼른 집으로 가야겠구나.


- 운동장 한쪽 끝에 끈을 잇고는 노란 천을 묶었다. 세월호 사고 때문에 매달았구나 싶다. 노란 끈은 몇 없다. 그만큼 이 작은 시골학교 아이들 숫자가 적다는 뜻이지. 앞으로는 도화면에 있는 초등학교 놀이터에는 갈 일이 드물겠다고 느낀다. 나무그늘에 걸상도 없고, 나무그늘 놀이터도 사라졌으니 재미없다. 맞바람을 맞으며 천천히 천천히 달린다. 집으로 가는 길에 수레에서 잠든 작은아이는 집에 닿아 잠자리에 눕히니 눈을 번쩍 뜬다. 보라야, 낮잠을 자면 좋으련만, 기껏 살살 안아서 자리에 눕히고 이불을 여미는데 이렇게 눈을 번쩍 뜨고 일어나면 네 아버지는 허리가 너무 결리는구나.


(최종규 . 2014 - 시골에서 자전거와 함께 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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