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거쪽지 2014.7.15.

 : 아직 파란하늘은 없지만



- 칠월로 접어든 뒤 아이들과 함께 자전거 나들이를 못 다닌다. 자꾸 비가 쏟아지기도 했지만, 칠월 첫 주에 손님들이 오셔서 아이들은 손님들이랑 노느라 바빠 자전거를 탈 생각을 내지 않았다. 손님들이 모두 이녁 집으로 돌아가신 뒤에는 치과에 가야 하느라 일산마실을 하느라 자전거를 탈 수 없었다. 고흥으로 돌아온 뒤에는 또 비가 그치지 않는다.


- 비가 그치지 않으니 골짝마실도 바다마실도 못한다. 비가 그쳐야 무언가 할 텐데. 오늘도 아침부터 하늘이 꾸물거리고 비가 오다 말다 한다. 비가 너무 잦으니 아이들도 빗놀이는 얼마 안 하고 집에만 있으려 한다. 그래도 비가 제법 오래(여러 시간) 안 오고 길바닥이 살짝 마르는구나 싶어, 이 틈에 자전거를 달려 보자고 생각한다.


- 파란하늘은 없지만 자전거를 꺼낸다. 작은아이가 자전거 나들이 가는 줄 알아차리면서 아주 좋아한다. 작은아이가 대문을 열어 준다. 작은아이는 대문을 열더니, 시멘트도랑에 흐르는 빗물을 쳐다보느라 바쁘다. 얘야, 너 자전거 타러 나오지 않았니? 갑자기 빗물에 꽂혔니?


- 천천히 천천히 달린다. 길바닥이 아직 축축하기도 하지만, 모처럼 달리는 자전거이니 천천히 천천히 달린다. 시원한 바람은 아니지만 싱그러운 여름바람이다. 풀빛을 본다. 이웃마을 논둑에서 자라는 나리꽃을 본다. 멀리 멧등성이를 바라본다. 구름이 살짝 내려앉은 멧자락이 멋스럽다. 비가 흩뿌리는 날씨에 볼 수 있는 아름다운 시골빛이다.


- 집으로 돌아온다. 이제 대문은 큰아이가 연다. 작은아이는 마당에 들어선 뒤 수레에서 내린다. 어때, 잘 다녀왔니? 모처럼 누린 자전거 나들이 즐거웠니? 비가 또 쏟아질 듯해서 더 달리지 않고 들어왔어. 날씨가 곧 풀리리라 생각해. 날씨가 맑으면 그때 오래오래 달리자.


(최종규 . 2014 - 시골에서 자전거와 함께 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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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쪽지 2014.7.8.

 : 빗줄기 오락가락



- 빗줄기가 오락가락한다. 장마라고 해야 할까. 그냥 비가 오고 싶은 날씨라고 해야 할까. 비가 안 오는 날에 해가 쨍쨍 내리쬐지 않는다. 구름이 가득하다. 비가 오는 날에도 구름이 가득하다. 언제나 구름이 가득하다. 해가 고개를 내미는 날이 얼마 안 된다. 해가 좋아 고흥이라는 시골에서 지내는데, 이렇게 해가 안 날 수 있으랴 싶도록 해를 보기 어렵다. 지난여름에는 너무 해만 쨍쨍 내리쬐더니, 올여름에는 너무 구름이 잔뜩 낀다. 왜 알맞게 섞이지 못할까. 왜 골고루 흐르는 날씨가 못 될까. 지난여름에는 이불이고 옷이고 말리기에 아주 좋았다. 올여름에는 이불이고 옷이고 말리기에 몹시 나쁘다. 도시에서는 어떻게 지낼까. 도시에서는 눅눅하거나 축축한 채 지낼까. 도시가스 난방을 돌리기만 하면 어려움이나 걱정이 없을까.


- 빗줄기가 그친다. 한동안 비가 안 내릴 듯하다. 우체국에 다녀와야 한다. 아이들과 함께 자전거마실을 할까 하고 생각하다가, 자칫 비가 퍼붓기라도 하면 아이들이 힘들겠다고 생각한다. 비가 퍼부어도 아이들은 재미난 자전거마실을 누릴 수 있지만, 오늘은 삼가자. 볕바른 날이 이어지다가 비가 한 차례 시원하게 쏟아진다면 아이들을 데리고 빗길 자전거 나들이를 할 테지만, 내내 꾸무룩한 날씨인 만큼, 집에서 놀도록 하자.


- 바삐 우체국에 들러 집으로 돌아오는 동안 빗줄기가 듣지 않는다. 고맙다. 아주 오랜만에 아이들을 안 데리고 혼자 자전거를 달리니, 자전거가 대단히 가볍다. 가파란 멧길을 거뜬히 올라갈 수 있겠다고까지 느낀다. 아이들을 늘 자전거에 태우고 나들이를 다니니, 내 몸에 새로운 힘살이 붙는구나 싶다. 아이들이 어버이를 살린다.


(최종규 . 2014 - 시골에서 자전거와 함께 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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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쪽지 2014.6.10.
 : 여름이로구나


- 아이들과 자전거를 달리면서 새삼스레 생각한다. 아, 여름이잖아. 여름이네. 이제 참말 여름자전거가 되는구나. 들길을 달릴 적에는 논마다 물이 그득한 모습을 본다. 낮에는 드문드문 개구리 노랫소리를 듣는다. 어스름에는 차츰 소리가 높아지는 노랫소리를 듣는다. 찻길에서는 자동차에 밟혀 죽은 개구리를 더러 본다.

- 원산마을 앞을 지나갈 무렵 군내버스를 본다. 자전거를 달리다가 멈춘다. “벼리야, 저기 버스 있네.” “어디?” 아직 아이 눈에는 버스가 안 보인다. 그러다가 저 앞에서 가까이 다가오는 버스를 느낀다. “아, 버스 있다! 보라야, 저기 버스야!” 군내버스는 우리 옆으로 가볍게 스치고 지나간다.

- 우체국에 닿아 소포를 부친다. 작은아이는 많이 졸렸는지, 우체국에 닿기 앞서 잠든다. 일어날까 싶어 살살 흔들지만 일어나지 않는다. 그래, 그럼 너는 폭 자렴. 우체국을 나와 가게를 들른 뒤 천천히, 아주 천천히 달린다. 동호덕마을 옆을 지날 무렵 큰아이가 “나 저 풀 꺾고 싶은데.” 하면서 툴툴거린다. “벼리야, 그 풀은 거기에만 있지 않아. 우리 집은 시골이야. 어디에나 있지.” 갑자기 자전거를 세울 수 없으니 천천히 빠르기를 줄여 ‘아이가 뜯고파 하는 풀’이 우거진 곳에 자전거를 세운다. 작은아이가 길게 하품을 한다. 자전거가 서니 작은아이도 잠을 깨나.

- 일곱 살 아이는 시멘트도랑을 어떻게 해야 할까 망설인다. “다리를 쭉 뻗으면 돼. 괜찮아. 안 빠지고 안 떨어져.” 큰아이는 살짝 더 망설이다가 다리를 뻗는다. 시멘트도랑 건너편에 발이 닫는다. 아무렴, 네가 못 할 만한 일을 하라고 시키겠니. 다리를 걸쳐서 풀을 한 포기 뜯는다. 하하 웃으면서 달려오더니 수레에 앉은 동생한테 먼저 건넨다. “자, 보라야, 너 가져.” 그러고는 다시 시멘트도랑에 다리를 쭉 뻗어 걸치고는 제 몫으로 하나를 뜯는다. 랄랄라 춤을 추며 샛자전거로 돌아온다. 샛자전거에 앉아 간지럼을 태우겠다면서 풀포기를 흔든다. 참말 재미난 여름이로구나. 자전거를 타기에도 놀기에도 좋은 여름이로구나.

(최종규 . 2014 - 시골에서 자전거와 함께 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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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쪽지 2014.6.22.

 : 자다가도 일어나는 자전거돌이



- 작은아이는 “자전거 타자!” 하고 부르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난다. 졸다가도 눈을 번쩍 뜬다. 작은아이 자전거는 아직 수레라, 수레에 앉아서 바람을 쐬는 마실이지만, 수레에 앉아서 이웃마을 돌아보는 즐거움을 잘 안다. 큰아이도 어릴 적부터 수레에 앉아서 바람 쐬는 즐거움을 한껏 누렸다.


- 대문을 활짝 열고 자전거를 고샅으로 내놓으면, 큰아이도 작은아이도 방방 뛴다. 둘이서 겨루기라도 하듯이 저 앞 논자락까지 달리고는, 마을 어귀까지 또 달린다. 이러고는 다시 집 쪽으로 달린다.


- 서재도서관에 들러 책을 옮겨 놓는다. 밖으로 나와 자전거를 달린다. 어디를 가면 좋을까. 어디까지 달릴까.


- 엊저녁에 고흥으로 돌아왔다. 유월 17일에 두 아이는 어금니를 갈고 쇠를 박았다. 여러 날 일산과 인천을 거쳐 할머니와 할아버지와 큰아버지하고 놀았고, 21일에 느즈막하게 고흥집에 왔다. 아이들도 퍽 고단한 티가 나지만 뛰놀면 새롭게 기운이 나는 듯하다. 면소재지에 닿으니 큰아이가 외친다. “놀이터 가요!” “배고프지 않니? 저녁 먹어야 하지 않을까?” “음, 그럼 세 개만 놀아요.” ‘세 개’는 뭔 소리일까. 집으로 가서 얼른 밥을 차릴까 하고 생각하다가 면소재지 초등학교 놀이터로 간다. 두 아이는 신난다. 미끄럼을 타고 시소를 탄다. 모래밭에서 콩콩 뛴다. 너희한테는 밥보다 놀이가 더 좋을는지 모르겠다. 아니, 너희한테는 밥보다 놀이가 더 좋겠지. 놀면 배고프지 않고, 놀면 새 힘이 솟겠지.


- 작은아이는 꽤 배고플 텐데 씩씩하게 잘 논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작은아이는 수레에서 잠든다. 큰아이도 배고플 테지만 잘 놀았는지 배고픈 티를 내지 않는다. 집에 닿아 큰아이더러 낮에 남긴 밥을 먼저 먹으라 이르고는 새 밥을 차린다. 작은아이는 안아서 방에 눕혀도 깨지 않는다. 살짝 눈을 뜨고는 “내 (장난감) 자동차.” 하고 한 마디 하더니 그대로 곯아떨어진다. 작은아이가 잠에서 깨면 바로 밥을 먹일 수 있도록 밥상을 꾸린다. 나는 땀을 훔치면서 씻고 빨래를 한다.


(최종규 . 2014 - 자전거와 함께 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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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쪽지 2014.5.24.

 : 씩씩한 이웃과 씩씩하게



- 네 식구가 람타학교 기초교육을 받으러 가기로 했는데, 배움삯을 마련하지 못한다. 작은아이 어금니가 많이 썩어서 크게 고쳐야 하는데, 아이 이를 고칠 돈도 마련하지 못한다. 이도 저도 못하면서 돈 나올 곳을 생각한다. 우리 시골집을 팔면 될까. 우리가 이 집에서 살려고 지붕을 새로 하고 천장을 고치고 전기와 부엌 시설을 고쳤으니, 시골에서 살고 싶은 사람이 있으면, 이럭저럭 우리 집을 장만해서 지낼 만하리라 본다. 이렇게 하면 숨가쁜 우리 살림을 한동안 펼 만하다. 그러면, 우리 삶터는? 이 집을 팔면 우리가 새로 살 곳을 찾아야 한다. 이 집을 사겠소 할 사람이 곧장 나올는지 알 길이 없지만, 작은아이 이를 고치며 들일 목돈을 따지려니 뾰족한 수가 없다. 아무튼 치과를 여러 날 들락거려야 할 테니, 치과가 많은 일산으로 가려고 짐을 꾸린다. 곁님 식구가 살아가는 일산에 며칠 머물러야지 싶다. 그러나 일산으로 떠났다가 돌아올 찻삯 마련하는 일도 만만하지 못해 뭉그적거린다. 여러모로 마음이 무겁다. 집에 있을 바에는 바람을 쐬야겠구나 싶어, 아이들을 자전거에 태워 마실을 해야겠다고 느낀다.


- 먼저 우리 도서관으로 간다. 두 통 가득 들딸기를 딴다. 아이들은 딸기밭에서 곧바로 따서 먹도록 한다. 면소재지로 간다. 면소재지에서 가게와 빵집에 들러 들딸기를 나누어 준다. 면소재지 가게 아주머니가 고맙다면서 아이들 먹으라고 얼음과자를 둘 선물로 주신다. 오월빛 머금은 빨간 열매를 함께 나누려는 생각이었는데, 뜻밖에 받는 선물이다.


- 작은아이는 수레에서 잠든다. 작은아이는 가게 아주머니가 준 얼음과자를 모른다. 다 녹겠네. 큰아이한테 하나를 주고, 내가 하나 먹기로 한다. 얼음과자를 손에 쥐고 자전거를 달린다. 집으로 돌아갈까 하다가, 자전거를 돌린다. 이웃 봉산마을 꼭대기에 빈집을 얻어 바지런히 고쳐서 지내는 분한테 찾아가기로 한다.


- 발포 바닷가에서 막공사를 한창 벌인다. 그곳으로 가는 커다란 짐차가 휭 지나간다. 먼지바람이 크게 날린다. 누렇게 익은 보리밭을 스친다. 푸른 물결이 가득한 멧자락을 바라보면서, 모내기를 앞둔 논 옆을 지나간다. 이윽고 봉산마을에 닿는다. 마을 꼭대기에서 지내는 이웃이니 꼭대기까지 자전거를 끈다. 자전거를 더 달릴 수 없어 내려서 걷는다. 땀이 줄줄 흐른다. 꼭대기집에 닿으니 작은아이가 잠에서 깬다. 잘 잤느냐.


- 마을 꼭대기에 있던 빈집을 고쳐서 지내는 이웃은 씩씩하다. 차근차근 하나씩 고친다. 서둘러야 할 일이 있겠는가. 즐겁게 지내고 싶은 집이니 즐겁게 손질하면서 지내면 넉넉하다. 풀냄새와 흙냄새를 느낀다. 두 아이는 이곳 마당과 부엌 사이를 오가면서 쉬잖고 뛰논다. 우리 집 아이들은 어디에서나 참 잘 뛰어논다. 예쁘다.


- 오늘 큰아이는 혼자서 우리 집 대문을 열었다. 대문을 잠그는 빗장은 위와 아래에 하나씩 있다. 아래쪽 빗장은 쉽게 열지만, 위쪽 빗장은 높아서 아이들이 못 여는데, 받침대를 놓고 까치발을 해서 오늘 처음으로 연다. 큰아이가 제법 자랐구나. 대문을 연 아이들은 대문 언저리에 있는 공이나 자질구레한 것을 스스로 치운다. 이제 두 아이 모두 뭔가를 ‘치울’ 줄 조금 안다.


- 신나게 뛰논 아이들은 해가 지도록 놀이를 그치지 않는다. 그런데 말야, 아이들아, 우리는 집으로 가야 한단다. 여기는 우리 집이 아니잖니. 이웃집이잖니. 시골마을 꼭대기집에서 씩씩하게 지내는 이웃들과 인사를 한다. 우리도 씩씩하게 돌아가야지. 불빛 하나 없는 시골길을 다시 씩씩하게 달려야지. 이웃집 언니들이 입던 옷을 한 꾸러미 얻었다. 수레에 옷을 싣는다. 취나물도 한 꾸러미 얻었다. 취나물도 수레에 싣는다. 작은아이는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곯아떨어진다. 큰아이는 밤길이 무서울 만할 테지만, 함께 발판을 구르며 달린다. 불빛은 없어도 달빛과 별빛이 있다. 불빛은 없으나 우리는 이 자전거를 함께 밟는다.


- 집에 닿는다. 큰아이가 대문을 연다. 고맙게 자전거를 들인다. 작은아이를 안고 자리에 눕힌다. 옷을 갈아입힌다. 졸음이 넘친 작은아이는 잠을 안 깨고 그대로 뻗는다. 큰아이는 조금 더 놀다가 잔다. 나도 아이들 사이에 드러눕는다. 하루가 저문다. 개구리 노랫소리가 우렁차다. 나도 우렁찬 목소리로 노래를 부르며 살아야겠다.


(최종규 . 2014 - 시골에서 자전거와 함께 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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