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거쪽지 2014.9.4.

 : 참새 무리짓는 가을



- 한가위를 앞두고 우체국에 다녀오기로 한다. 아이들은 비눗방울 놀이를 하느라 바쁘다. 자전거에 오를 적에도 비눗방울 인형을 목에 건다. 싱그러운 바람을 가르면서 천천히 달린다. 하늘을 보고 구름을 본다. 우체국에 닿아 아버지가 편지를 부치는 동안 두 아이는 우체국 안팎을 달리면서 논다. 어디에서나 달리며 노는 아이들은 우체국이고 가게이고 가리지 않는다. 그러니 우리 집안은 숲에 깃들어 살아야 한다. 숲에 깃들어야 아이들이 신나게 마음을 놓고 뛰놀 수 있으니까.


-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하늘을 가만히 살핀다. 하늘빛은 어떤 숨결로 우리한테 스며드는지 헤아린다. 저 파랑과 하양은 우리 마음에 어떻게 젖어드는가 돌아본다. 한참 하늘빛과 구름빛을 생각하는데, 우리 자전거 앞쪽으로 참새떼가 한꺼번에 움직인다. 참새떼는 가만히 있어도 될 노릇이지만, 뭔가 소리가 나면 한꺼번에 일어난다.


- 되게 많다. 참말 많다. 이쪽 논에서 저쪽 논으로 날아가는 참새들이 아주 많다. 문득 생각한다. 이 참새들은 놀라서 움직이지는 않을 수 있다. 재미 삼아서 이쪽에서 저쪽으로 날아가는구나 싶다. 가을이 새록새록 영근다. 볕이 따끈따끈하다.


(최종규 . 2014 - 시골에서 자전거와 함께 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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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쪽지 2014.8.29.

 : 항공방제와 제비



- 우체국에 가려고 자전거를 꺼낸다. 오늘도 작은아이가 먼저 알아본다. 아마 작은아이는 아버지가 움직이는 모습을 하루 내내 곰곰이 지켜보았나 보다. 작은아이는 아버지가 마당에 내려서기만 하면 곧장 뒤를 따른다. 자전거를 덮은 두꺼운 천을 벗기면 “누나야! 아버지 어디 간대! 우리 가자!” 하고 소리부터 지른다.


- 두 아이가 움직이는 결을 잘 아니까, 일찌감치 자전거 덮개부터 걷는다. 이렇게 하고 나서 길을 나설 짐을 꾸린다. 아버지가 자전거를 대문 밖으로 빼내기까지 집안에서 이십 분 남짓 보낸다. 이동안 두 아이가 마당에서 놀도록 하려는 뜻이라고 할까.


- 작은아이는 대문 앞 수챗구멍을 들여다보면서 “누나야, 저기 달팽이 있어!” 하고 부른다. 그런데 달팽이가 아니란다. 우렁이란다. 네 살 작은아이는 아직 달팽이와 우렁이를 가릴 줄 모른다.


- 천천히 자전거를 달린다. 조용한 들에 윙윙 소리가 자꾸 들린다. 그러려니 하면서 바람을 가르는데, 문득 저 앞에서 헬리콥터 하나를 본다. 아, 항공방제 헬리콥터 소리였구나. 끔찍하군.


- 여러 날 저 항공방제 헬리콥터가 온 마을 들판을 헤집으면서 농약을 뿌려대니, 이 늦여름과 이른가을 사이에 풀벌레 노랫소리가 감쪽같이 사라졌구나. 우리 집에 요새 직박구리도 박새도 콩새도 제비도 참새도 안 찾아오더니, 이 모든 까닭이 저 항공방제 헬리콥터 때문이었구나.


- 면소재지 우체국으로 가는 길을 멀리 에돈다. 그러나, 한숨을 쉬지 않는다. 농약을 뿌려야 한다고 믿는 시골 할매와 할배한테 한숨을 쉴 수 없다. 그렇게 길드셨기 때문이다.


- 작은아이는 우체국에 닿을 무렵 잠든다. 수레에서 달게 잔다. 우체국에서 편지 열일곱 통을 부친다. 가게에 들러 달걀 한 꾸러미를 장만한다. 아직도 항공방제 헬리콥터가 농약을 뿌린다. 더 멀리 에돌아 집으로 돌아가는데 눈이 따끔거린다. 꽤 멀리 떨어졌지만, 바람이 거의 안 부는 날이지만, 농약이 날아드는구나. 이런 농약바람에서 벗어나려고 다른 데로 가 보았자, 한국에서 다른 데는 자동차 때문에 시끄럽고 코가 냅다. 참으로 그악스럽다.


- 농약이 드세게 춤추는 들판 끝자락에 제비가 마흔 마리쯤 무리지어 춤춘다. 아, 오늘이 그날이로구나. 둘레에서 다른 제비가 한 마리씩 무리로 섞인다. 그래, 그렇구나. 우리 마을과 이웃 여러 마을에서 살던 제비가 오늘 크게 무리를 지어 모여서 밤이나 이튿날 새벽에 태평양을 건너려 하는구나. 그런데 어쩌다 날받이를 이렇게 해서 농약바람을 잔뜩 먹어야 하니. 참 애틋하구나. 너희가 올봄에 마을로 돌아왔을 적에는 이 무리보다 숫자가 훨씬 많았는데, 새끼를 너덧 마리씩 낳아서 길렀을 테지만, 너희 숫자는 거의 안 들어났구나. 외려 줄은 듯하구나. 이런 한국 시골에 너희들이 이듬해 봄에 다시 찾아올 수 있을까. 너희가 이듬해 봄에 다시 한국 시골에 찾아오면, 이 시골에서 너희를 반길 사람이 있을까.


(최종규 . 2014 - 시골에서 자전거와 함께 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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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쪽지 2014.8.21.

 : 해가 질 무렵에



- 해가 질 무렵에 자전거를 탄다. 해가 뉘엿뉘엿 기울 즈음에는 바람이 상큼하다. 여름에는 이럴 때에 자전거를 타면 무척 시원하다. 다만, 샛자전거와 수레에 탄 아이들은 시원하겠지.


- 느즈막히 자전거를 달려서 어디를 갈까. 면소재지 놀이터에 간다. 작은아이는 누나가 꾸준히 말을 거니 용케 잠들지 않고 놀이터까지 잘 버틴다. 그러고 나서, 놀이터에 닿아 둘이 한참 논다. 잘 뛰고 잘 노래한다. 얼마 앞서까지는 시소를 탈 적에 내가 거들어야 했지만, 오늘은 큰아이만 자리에 앉히면 둘이서 오르락내리락 잘 논다. 큰아이가 더 자라면 앞으로는 시소에 혼자 올라가서 둘이 놀겠지.


- 차츰 어둠이 깔린다고 느껴 집으로 돌아가기로 한다. 작은아이는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아주 곯아떨어진다. 낮잠이 없이 놀다가 놀이터에서 한참 땀을 뺐으니 기운이 모두 다 했으리라.


- 면소재지로 나오는 길에 참새 한 마리가 차에 치여 죽은 모습을 보았다. 참새는 왜 차에 치였을까. 그냥 차에 치였을까. 내가 보기로는 그냥 차에 치이지는 않았다고 느낀다. 이삭이 여물 요즈음 마을마다 농약을 또 친다. 이 가녀린 아이는 농약에 해롱거리다가 그만 차에 치였으리라 느낀다. 아니면, 쥐약을 건드렸거나 독약을 탄 쌀알을 쪼다가 넋을 잃고 차에 치였을는지 모른다.


-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자전거를 세운다. 큰아이가 “아버지 왜 세워요?” 하고 묻는다. 큰아이를 샛자전거에서 내리니, 큰아이는 스스로 알아차린다. “아버지, 여기 새 죽었어요. 불쌍하다. 새는 흙으로 옮겨 주면 좋은 데 가요?” “앞으로 아름다운 곳으로 가라는 뜻이야.” 조그마한 참새를 환삼덩쿨잎 둘을 뜯어서 감싼다. 조그마한 참새는 풀잎 두 장으로 넉넉히 감쌀 만하다.


- 다시 자전거에 오른다. 하늘을 보고 구름을 본다. 바람을 쐬고 들빛을 본다. 푸른 들빛이 차츰 누렇게 바뀌는데, 이 들빛이 얼마나 사랑스럽거나 평화로운지 잘 모르겠다. 새들이 살지 못하고 죽기만 하는데, 새소리가 차츰 사라지는데, 왜가리도 해오라기도 개구리를 찾으러 이 들이 오기가 어려운데, 이러한 들은 얼마나 아름다운 시골이라 할 수 있겠는가.


(최종규 . 2014 - 시골에서 자전거와 함께 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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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쪽지 2014.8.19.

 : 줄기찬 빗줄기 사이로



- 늦여름에 비가 너무 잦을 뿐 아니라 그치지 않는다. 해가 나지 않는다. 이런 날씨라면 덥지는 않다 할 테지만, 해가 나지 않으니 논이며 밭이며 곡식과 남새가 제대로 여물지 못한다. 곡식도 남새도 해를 받아야 자란다. 해가 없으면 곡식과 남새가 제대로 자랄 수 없다. 사람도 해를 쬐지 못할 때에는 따사로운 빛이 스러진다. 해를 적게 쬐거나 못 쬐는 사람들이 어떤 일을 하는지 헤아려 보면 쉬 알 만하리라 느낀다. 정치나 경제나 사회나 문화나 교육에서, 햇볕과 햇빛하고는 동떨어진 채 전깃불로 밝힌 등불 옆에서 일하는 사람은 무엇을 하는가.


- 빗줄기가 그친다. 해는 나지 않는다. 며칠째 우체국에 못 갔다. 비가 그쳐야 자전거를 몰아서 달릴 텐데. 혼자 비옷을 입고 우체국에 다녀올까 싶다가도 그만둔 지 여러 날. 드디어 빗줄기가 없구나 싶어 부랴부랴 짐을 꾸린다. 작은아이는 “아버지, 어디 간대! 자전거 탄대!” 하고 외친다. 얼마나 기다렸을까. 얼마나 자전거를 타고 싶었을까.


- 우체국에 들러 도서관 소식지를 열 통 부친다. 면소재지 빵집에 들른다. 두 아이가 저마다 빵봉지를 하나씩 고른다. 면소재지로 나오는 길에 빗방울이 몇 떨어졌다. 마음속으로 외쳤다. 비야 비야 오지 마라, 비야 비야 이제 그쳐라.


-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빗방울이 더 떨어지지는 않는다. 큰아이가 놀이터에 가고 싶다 말하지만, 이런 날씨에는 가기 힘들구나. 게다가 이제 집에 가서 저녁을 차려 먹어야지.


- 자전거를 천천히 달린다. 작은아이는 어느새 수레에서 잠든다. 집에 닿아 작은아이를 잠자리로 옮긴다. 작은아이는 잠에서 깨지 않는다. 저녁밥을 차려서 큰아이를 먹일 적에도 잠을 안 깬다. 이러더니 이튿날 아침까지 내처 곯아떨어진다. 산들보라야, 너한테 하루란 참으로 길면서 짧고, 느리면서 빠르구나. 잘 자는 산들보라는 앞으로 무럭무럭 씩씩하게 크겠구나.


(최종규 . 2014 - 시골에서 자전거와 함께 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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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쪽지 2014.8.12.

 : 잠든 아이 자전거



- 여름 막바지에 이르면서 더위가 한풀 수그러든다. 이런 날씨라면 면소재지 초등학교에 있는 놀이터에 가도 되겠다고 느낀다. 아버지가 하는 일이 있어 한낮에 자전거로 나오지 못했기에 골짜기에는 못 간다. 아이들은 골짜기도 놀이터도 반기니, 오랜만에 놀이터에 가려고 길을 나선다.


- 큰아이는 샛자전거에 앉아 두 손을 놓는다. 두 발로 자전거 발판을 단단히 밟은 뒤 두 손은 손잡이에서 떼어 하늘로 높이 뻗거나 옆으로 곧게 들거나 가슴으로 모은다. 팔을 마음껏 휘저으면서 논다. 재미있겠지. 참말 재미있으리라.


- 집에서 나설 적에는 흥얼흥얼 노래도 부르던 작은아이가 면소재지에 이를 무렵 곯아떨어진다. 자전거를 흔들면서 달려도 안 깨고, 불러도 못 듣는다. 이런, 놀이터에 거의 다 왔는데 잠이 드는구나. 하는 수 없지. 너는 수레에서 달게 낮잠을 자야지.


- 큰아이 혼자 놀이터에서 논다. 작은아이가 자는 수레 곁에 서서 물끄러미 지켜보다가, 큰아이가 시소를 탈 때 함께 앉는다. 아침부터 낮까지, 낮부터 다시 저녁까지, 저녁을 지나 밤이 되어도, 아이들은 그저 놀면서 하루를 누린다. 힘을 쏟아 놀고, 힘이 빠져도 놀며, 힘을 모아서 논다. 아이들이 즐겁게 놀 수 있도록 새롭게 기운을 내는 사람이 바로 어버이인가 하고 헤아려 본다.


(최종규 . 2014 - 시골에서 자전거와 함께 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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