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봄에 아이들과 다닌 마실 사진을 보다가

봄빛이 참 고우면서 좋구나 싶어

이 겨울에 새삼스레 봄마실 자전거 이야기를 ...


..


자전거쪽지 2014.5.9.

 : 봄꽃과 보리밭



- 겨우내 찬바람을 먹고 달리던 자전거는 봄이 한껏 무르익으면서 꽃내음을 먹고 달린다. 논둑마다 봄꽃이 방긋방긋 고개를 내밀고, 볏포기만 있는 논에도 천천히 온갖 봄꽃이 올라온다. 가을에 보리를 심은 논에서는 보리가 찬찬히 익으면서 바람 따라 살랑살랑 춤을 춘다. 이 봄날에는 모두 따사롭고 보드랍다. 볕이 따사로우면서 보드랍고, 풀과 꽃이 아늑하면서 어여쁘고, 아이들 놀이와 몸짓도 살가우면서 귀엽다.


(최종규 . 2014 - 시골에서 자전거와 함께 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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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쪽지 2014.11.27.

 : 바쁜 날



- 바쁘구나 바뻐 하고 노래를 한다. 금요일에 비가 오겠구나 싶어 두꺼운 옷가지와 아이들 옷가지를 잔뜩 빨래해서 마당에 넌다. 아이들한테 밥을 차려 주고, 우체국에서 가서 부칠 소포를 싸며, 아이들을 데리고 마을 어귀 빨래터에 가서 신나게 물이끼를 치운 뒤, 도서관에 들러서 이것저것 손보고는, 다시 자전거를 달려 우체국으로 간다. 바쁘게 여러 일을 몰아치다 보니 ‘빨래터 치우기’를 할 적에 ‘물놀이를 하고프던 아이들’한테 다음에 물놀이를 하자고 이야기한다. 우리 아이들은 한겨울에도 빨래터 차가운 물에 들어 가서 물놀이를 즐긴다. 늦가을 빨래터 찬물쯤이야 대수롭지 않다.


- 우체국에 닿으니 숨을 돌릴 만하다. 아니, 숨을 돌린다. 이제 오늘 하루 바쁜 일은 다 끝냈구나 싶다. 면소재지 가게에 들러 아이들더러 과자를 한 점씩 고르라고 한다. 집으로 돌아가다가 면소재지 기름집을 흘깃 쳐다보니, ‘보일러 등유’값이 1100원이 되었다. 지난달에는 1150원이더니 50원이 내린다. 이제 겨울 문턱이니 우리 집 보일러에도 기름을 200리터는 넣어야 할 텐데, 22만 원을 모아야 하는구나.


- 볕과 구름과 하늘과 들이 사이좋게 어울리는 가을길을 달린다. 두 아이가 함께 노래하다가 작은아이는 곯아떨어진다. 큰아이와 나랑 노래를 부르면서 천천히 집으로 달린다. 구름을 보고 들을 보며 달린다. 나는 자동차를 딱히 싫어하지만 그리 좋아하지 않는데, 왜 자동차를 그리 안 좋아하는지 문득 깨닫는다. 나는 이렇게 온몸으로 바람을 쐬면서 천천히 달리기를 즐긴다. 앞으로 내가 자동차를 몰 일이 있다면, 뚜껑이 없는 자동차를 천천히 달리면서 하늘을 보고 들을 보며 바람을 실컷 쐬고 싶다.


(최종규 . 2014 - 시골에서 자전거와 함께 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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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쪽지 2014.10.25.

 : 우리 들, 이웃 들



- 시골에 살지만, 이 시골에 우리 땅은 없다. 그래서 ‘우리 들’을 누리지 못하고, 가을날 샛노란 들빛을 더 살가이 껴안지 못한다. 자전거를 달리며 ‘이웃 들’ 사이를 누비는데, 이 들이 우리 들이라면, 우리 손길을 타며 자라는 들이라면, 참말 그때에는 어떤 느낌이 될까. 아름답게 물결치는 들이 우리 들이라 한다면, 들내음을 맡으러 날마다 참 오랫동안 들녘에 서리라 느낀다. 나뿐 아니라 이 나라 사람들 누구나 ‘우리 들’이나 ‘내 들’을 누릴 수 있다면, 서로서로 더욱 따스하면서 너그러운 마음이 될 수 있으리라 느낀다. 오늘날에는 ‘내 아파트’를 누리는 사람은 많아도 ‘내 들’을 누리는 사람은 대단히 적다. 참으로 많은 사람들이 ‘내 집’이 있는 듯하지만, 정작 ‘내 땅’을 제대로 가지면서 살아가는 사람은 몇이나 될까 궁금하다. 땅바닥에 두 발을 디디지 못하는 하늘에 붕 뜬 시멘트조각을 마치 ‘내 집이나 보금자리’인 듯 가진 셈 아닐까. 우리 집도 그렇지만, 이 나라 어여쁜 이웃들이 저마다 ‘내 땅’과 ‘내 들’을 누릴 수 있다면, 사회도 문화도 교육도 정치도 경제도 아주 크게 달라지면서 아주 아름답게 거듭나리라 믿는다.


- 쓰레기봉투를 마을 어귀에 내려놓느라 두 아이더러 자전거를 붙잡고 기다리라고 말한다. 커다란 쓰레기봉투를 영차 들어서 내려놓은 뒤 자전거로 돌아가다가 문득 걸음을 멈춘다. 가을볕이 아주 곱다. 자전거를 붙잡고 아버지를 기다리는 두 아이 모습이 더없이 이쁘다. 이런 모습이 나오기를 바라면서 아이들더러 자전거를 붙잡으라 말하지 않았다. 아주 뜻밖에 새삼스러운 빛물결을 느낀다. 빛이 눈부시게 쏟아진다.


- 논둑길 한복판에 선 짐차를 본다. 저 짐차는 왜 이 길에 설까. 이 길에 경운기가 지나가려 하면 어쩌려고 이렇게 세웠을까. 어떤 마음으로 논둑길 한복판에 저 혼자 차를 세우고 어디론가 볼일을 보러 갔을까. 외길에 차를 세우고 사람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아, 한참 돌아서 간다.


- 가을들을 옆에 끼고 달리는 군내버스를 구경하려고 자전거를 세운다. 한두 시간에 한 대 지나가는 군내버스를 가끔 만난다. 한두 시간에 한 차례 어쩌다 지나가는 군내버스를 만나는 일도 여러모로 재미나다. 우리는 서로 어떤 끈으로 이어졌기에 이렇게 만날 수 있을까. 천천히 천천히 자전거를 달린다.


(최종규 . 2014 - 시골에서 자전거와 함께 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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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쪽지 2014.11.18.

 : 늦가을 그림자



- 우체국에 가려고 자전거를 꺼낸다. 두 아이 모두 두툼한 겉옷을 입는다. 작은아이는 아직 겉옷을 입혀 주어야 하지만 머잖아 혼자서 입을 수 있겠지. 여름이 끝나고 막 가을로 접어들었을 적에는 가을바람이 제법 쌀쌀하다 싶더니, 가을이 깊은 요즈음은 이럭저럭 가을바람도 맞을 만하다고 느낀다. 몸이 찬찬히 달라진다. 가을이 있은 뒤에 겨울이 오기에 우리 몸은 겨울을 맞이하도록 다시금 달라지지 싶다.


- 논둑길 흙이 딱딱하다. 자전거가 덜컹거린다. 첫가을까지만 해도 논둑길에 떨어진 흙을 밟으면 흙이 보드랍게 퍼졌으나, 이제는 논둑길 흙이 퍼지지 않는다. 딱딱한 돌덩이 같다. 아이들은 자전거가 쿵쿵거리니 재미있다. 논도랑에서 자라는 억새를 살피고, 도랑물이 흐르는 곳에서 자라는 갈대를 살핀다. 일곱 살 시골순이는 억새와 갈대가 어떻게 다른지 눈으로도 차근차근 익히겠지.


- 늦가을 그림자가 길다. 해를 마주보고 달릴 적에는 그림자가 얼마나 긴지 못 느끼다가, 해를 등지고 달릴 적에 늦가을 그림자를 또렷하게 느낀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작은아이가 드디어 잠든다. 새근새근 달게 잔다. 이제는 좀 춥다고 느끼는 듯하다. 며칠 앞서까지 작은아이는 옷자락을 치우더니 오늘은 고개만 빼꼼 내민 채 옷자락을 덮고 잔다. 다음부터는 두꺼운 옷자락으로 덮어야겠네.


(최종규 . 2014 - 시골에서 자전거와 함께 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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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쪽지 2014.11.12.

 : 골이 띵한 늦가을



- 해질 무렵이다. 아이들을 데리고 우체국에 다녀올까 하다가, 혼자 가기로 한다. 저녁바람이 꽤 드세다. 아이들한테 늦가을 추위를 맛보게 해도 재미있으리라 생각하지만, 자칫 찬바람 잔뜩 먹고 앓을는지 모른다. 그러면, 어른인 나는? 나는 이런 추위쯤 익숙하니 괜찮다. 아직 장갑을 끼지 않고 다니는 자전거 아닌가.


- 이웃 원산마을 앞을 지날 무렵 어마어마한 까마귀떼를 만난다. 그야말로 어마어마하다. 얼추 보아도 삼백 마리는 훨씬 넘을 듯하다. 빈들에 내려앉은 까마귀떼도 많지만, 전깃줄에 내려앉은 까마귀떼도 많다. 전깃줄이 새까맣도록 내려앉았다. 어디에서 이 많은 까마귀가 한데 모였을까. 겨울을 앞두고 까마귀가 이렇게 무리를 지어서 다니는데, 이듬해 봄이 되면 어느새 뿔뿔이 흩어진다. 네 철 내내 지내던 까치는 갑작스레 나타난 까마귀떼에 질리는지 꽁지를 빼며 날아간다. 아마 까치도 떼를 지으려고 하겠지. 까마귀떼와 까치떼는 서로 먹이를 차지하려고 실랑이를 벌일 테지.


- 면소재지에서 볼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군내버스를 본다. 저녁 다섯 시가 넘는구나. 내 옆을 스친 군내버스가 한참 앞서 달리다가 봉서마을 쪽으로 사라지는 모습을 멀거니 바라본다.


- 맞바람을 잔뜩 받으며 달린다. 손은 그리 안 시리지만 골이 띵하다. 겨울바람이 멀지 않다. 올겨울에는 꼭 모자를 챙겨서 써야겠다.


(최종규 . 2014 - 시골에서 자전거와 함께 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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