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카밀로의 곤경
조반니노 과레스키 지음, 이선구 옮김 / 새남 / 1994년 12월
평점 :
절판


 (돈 까밀로 책을 우리 말로 처음 옮긴 이선구 님 번역이 아직 하나 살았네...)

다시 태어나는 책과 삶과 사람
― 조반니 꽈레스끼, 《명랑한 돈 까밀로》



- 책이름 : 명랑한 돈 까밀로
- 글 : 조반니 꽈레스끼
- 옮긴이 : 이선구(李璇求)
- 펴낸곳 : 가톨릭출판사 (1969.2.20.)



 조반니노 과레스키(조반니 꽈레스키·죠반니노 과레스끼) 님 책은 1969년에 처음 우리 말로 옮겨졌으나, 이 책은 그다지 많이 안 읽혔습니다. 천주교 출판사에서 나온 터라 천주교 믿는 분들 사이에서 조금 읽혔습니다. 1979년에 ‘백제’ 출판사에서 새옷을 입고 나오면서 비로소 널리 읽히고, 나중에 백제출판사가 문을 닫은 뒤 다른 출판사에서 거듭 펴내며 많이 읽힙니다. 조반니노 과레스키 님 문학은 《신부님 우리들의 신부님》 다섯 권이 끝은 아니지만, 우리 나라에는 이 다섯 가지 책 테두리에서만 머물고, 좀처럼 다른 문학과 삶을 들여다보는 쪽으로는 이어지지 못합니다. 《비밀일기》(막내집게,2010) 같은 책이 어렵게 우리 말로 옮겨지지만, 막상 이러한 문학을 알아보거나 곰삭이거나 맞아들이는 사람은 퍽 적어요.

 다시 태어나는 책만 다시 태어나고, 다시 읽히는 책만 다시 읽히며, 다시 팔리는 책만 다시 팔립니다.

 출판사도 먹고살아야 하는 만큼, 이 나라 출판사들은 (돈이 있건 없건) 안 팔리거나 덜 팔리거나 못 팔릴 책을 좀처럼 내놓지는 않습니다. 아무리 좋거나 훌륭하거나 아름답다 싶은 책을 내놓아야 하더라도, 먹고살 수 없을 뿐더러 돈이 없다면 좋든 훌륭하든 아름답든 거들떠보기 힘듭니다.

 오늘 바로 끼니를 굶는데 무슨 책을 사서 읽는다 하겠습니까. 오늘은 끼니를 때웠어도 이듬날 밥끼니가 걱정스러운데 무슨 영화를 찾아 보겠습니까. 이듬날 밥끼니는 때울 만하더라도 글피에는 잠자리가 마땅하지 않은데 무슨 노래를 부르겠습니까.

 요즈막 우리 삶은 온통 먹기·입기·잠자기에 푹 빠집니다. 어른은 어른대로 먹고 입으며 잠자기 고단하다 하고, 아이는 아이대로 먹고 입으며 잠자기 팍팍하다 합니다. 아이들을 낳고 키우기보다는 아이들을 학교와 학원에 보내느라 등허리가 휩니다. 식구들과 살가이 얼크러지기보다는 회사나 공장에 붙들리느라 다른 데에는 마음을 쏟지 못합니다.

 갓 태어난 아이가 어느덧 일고여덟 살이 되고, 어느새 열다섯 살을 지나며, 금세 스물일곱을 지나, 서른다섯 마흔다섯 쉰다섯을 휙휙 달립니다. 이윽고 예순 일흔 여든 고개에 접어들자니, 끽 하고 꺾여 스러집니다. 한삶을 너무 바삐 아주 빨리 달리고 맙니다. 어릴 적에는 돈버는 솜씨를 기르자니 바쁘고, 나이들어서는 돈버는 살림에 매여 빠듯합니다. 참말 복닥복닥 어수선하니까 책이고 뭐고 없습니다. 참으로 고단하며 지치니까 문화이고 예술이고 나 몰라라, 아니 냇물 너머 불구경, 아니 먼 나라 다른 사람 일입니다.


.. 내가 지금부터 하려는 이야기의 주인공인 돈 까밀로 신부가 살고 있는 조그만 세계는 뽀오 강 어느 아늑한 골짜기에 박혀 있다. 그것은 저 허리띠처럼 길게 늘어진 북쪽 이태리 가운데 어느 마을이라고 생각해도 좋다. 뽀오 강과 아빼닝 산맥 사이에 있는 그 고장은 기후가 항상 똑같다. 따라서 풍경도 변화가 없다. 그러나 강냉이와 삼을 가꾸는 농촌들은 저마다 자기의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다 ..  (5쪽)


 한갓지거나 돈이 넘치는 사람이 읽는 책이 아닙니다. 한갓진 사람은 책을 읽지 않습니다. 돈이 넘치는 사람 또한 책을 가까이하지 않습니다. 한갓지지 않은 사람이 책을 읽고, 돈이 적은 사람이 책을 가까이합니다.

 이름이 있거나 이름을 날리는 사람은 책을 안 읽습니다. 이름이 없거나 이름을 드날릴 생각을 않는 사람이 책을 읽습니다.

 힘세다며 주먹을 휘두르는 사람들, 이른바 권력자는 책을 읽을 까닭이 없습니다. 힘여리기에 주먹은커녕 아무런 무기조차 들지 않는 사람들, 이를테면 수수한 여느 사람은 종이책이 아닌 사람책을 읽습니다. 종이에 직어야만 책이 아닙니다. 한 사람 몸과 마음에 아로새긴 이야기 또한 책입니다. 수수한 여느 사람들은 서로서로 이웃이나 동무가 되어 도란도란 삶책을 나눕니다.

 대단할 이야기를 담는 책이 아닙니다. 참으로 하잘것없거나 보잘것없는 이야기를 담는 책입니다. 흔하디흔한 이야기가 아닌 수수한 이야기를 담는 책입니다. 하찮다 싶다고들 하는 작디작은 이야기를 담으나, 이 작디작은 이야기란 투박하면서 조촐합니다. 누구나 겪되 누구나 다르게 부대끼는 삶을 담는 이야기입니다.

 내 옆지기와 밥상을 마주하며 한 마디 두 마디 나누는 이야기가 사랑스러울 때에, 내 아이와 밥상을 마주하며 한 마디 두 마디 주고받는 이야기가 사랑스럽습니다. 오순도순 나누는 이야기를 애써 글로 갈무리해서 일기로 남기거나 책으로 엮을 수 있습니다. 도란도란 나누는 이야기로 흐뭇하기에 그저 이야기꽃 피우는 나날을 고이 이으면서 조용히 흙으로 돌아갈 수 있습니다.

 그야말로 “저 허리띠처럼 길게 늘어진 북쪽 이태리 가운데 어느 마을” 어디에서나 사랑스러운 이야기가 태어납니다. 그야말로 서울 아닌 시골자락 어느 마을 누군가한테서나 사랑스러운 이야기가 샘솟습니다.

 나날이 돈되는 종이책만 자꾸 다시 태어나지만, 나날이 돈되는 일거리만 붙잡는 사람으로 자꾸 길들여지지만, 사랑을 담은 사랑책과 삶을 담은 삶책과 사람을 담은 사람책은 언제 어디에서나 가만히 피고 지며 바람에 흩날립니다. 햇살을 받으며 방긋 웃습니다. (4343.2.11.쇠.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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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딸 - 닝 라오 타이타이의 자전적 삶의 기록
아이다 프루잇 지음, 설순봉 옮김 / 루덴스 / 2008년 8월
평점 :
품절


(스물여덟 해 만에 다시 나온 판인데, 안타깝게도 또 절판되고 마네요...) 

아이랑 옆지기랑 지내는 나날
― 아이다 프루잍·닝 라오 타이타이, 《중국의 딸》



- 책이름 : 중국의 딸
- 엮은이 : 아이다 프루잍
- 말한이 : 닝 라오 타이타이
- 옮긴이 : 설순봉
- 펴낸곳 : 청년사 (1980.4.12.)



 아이는 어머니 품에서 열 달을 무럭무럭 자란 다음 바깥으로 나옵니다. 어머니 품에서 자라는 아이는 어머니 피와 살과 뼈를 먹으면서 제 피와 살과 뼈를 이룹니다. 바깥으로 나온 아이는 처음 몇 해 동안 어머니젖을 빨아먹다가는, 이내 어머니가 마련하는 밥과 국과 물을 먹으면서 제 피와 살과 뼈를 이룹니다.

 밥과 국과 물은 어머니가 차리기도 하지만 아버지가 차리기도 합니다. 차릴 수 있는 사람이 차리는 밥과 국과 물이니, 굳이 어머니가 차려야 하지 않습니다. 아버지가 차리거나 언니나 오빠가 차리거나 다 좋은 밥과 국과 물입니다. 어머니는 어머니대로 아이를 품에 안을 때에 사랑으로 제 피와 살과 뼈를 내어줍니다. 아이한테 젖을 먹일 때에도 사랑으로 젖을 먹입니다. 아버지가 밥을 차리면 아버지는 아버지대로 사랑으로 밥을 차리고, 언니나 오빠가 밥을 차린다면 언니나 오빠도 언니대로 오빠대로 사랑을 담아 밥을 차리겠지요.

 사랑이 있지 않고서는 목숨을 품에 안지 못하고, 사랑이 가득하지 않고서야 밥을 차리지 못합니다.

 그런데 막상 밥상을 받는 사람들은 밥상을 차리는 사람들 사랑을 제대로 못 느끼기 일쑤입니다. 사랑을 못 느끼면서 밥을 먹을 뿐 아니라, 밥을 먹으며 얻은 기운을 사랑으로 나누지 못하곤 합니다.

 나락 한 알도 목숨 깃든 사랑이요, 물고기 한 점도 목숨 깃든 사랑이며, 콩 한 알도 목숨 깃든 사랑인데다가, 돼지 목살 한 점도 목숨 깃든 사랑입니다. 목숨은 이곳에서 천천히 자라 저곳으로 천천히 옮습니다. 목숨은 이곳에서 예쁘게 꽃피우다가 다른 목숨한테 넘어가고, 목숨은 저곳에서 다른 목숨을 받아먹으며 어여삐 북돋웁니다. 홀로 자라는 목숨이란 없고, 홀로 크는 목숨 또한 없습니다. 홀로 자라는 목숨이 아닌 줄 안다면 사랑을 알고, 홀로 크는 목숨일 수 없는 줄 깨달을 때에 바야흐로 새 목숨을 품에 안습니다.


.. 부인은 그 사람을 데려다 쓰고 싶었던 것이다. 그때부터 부인은 내게서 많은 결함을 발견하기 시작했다. “유모, 우리 애들 봐줄 대 그렇게 더러운 옷을 입지 말아요.” “전 가난해서 옷 사입을 돈이 없으니 이거라도 입어야지요. 어린애를 보는 사람의 옷자락이 어떻게 늘 깨끗하기만 하겠어요?” 부인은 그때까지 몇 년 동안 내 옷을 가지고 잔소리를 한 적이 없었다. 나는 마침내 부인의 속마음을 알아차리고 부인의 방으로 갔다. “야들리 부인, 누군가 마음에 정한 사람이 있으신 것 같군요. 그래서 걸핏하면 나를 탓하는 것 아니겠어요? 마루에 발자국을 냈다고 공연한 탓을 하더니 이젠 멀쩡한 옷을 가지고 트집을 잡으니 말이요! 밀린 돈을 주세요. 나갈 테니까.” … 나는 집으로 돌아갔다. 나는 그동안 집안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아무것도 몰랐다. 딸이 남자를 집에 끌어들여 사람들의 입에 오른 것은 어리석은 일이라고 생각했지만 그 이상 무슨 일이 또 일어났는지는 알지 못했다. 나는 딸에게 철없는 짓을 했다고 나무랐고, 무엇 때문에 그 남자의 말을 들었느냐고 꾸짖었다. 행동이 따르지 않는 번지르르한 말이 무슨 소용이 있을까? 저쪽에서 칼자루를 쥐고 있는 마당에 좋은 말을 암만 하면 내 딸에게 무슨 이득이 있나? 남자에게는 처자식이 있었다. 열여섯 살과 열다섯 살 난 아들이 있고 또 어린애까지 딸려 있었다. 딸은 미련하게 행동한 것이다 ..  (275∼276쪽)


 중국사람 ‘닝 라오 타이타이’ 님은 할머니입니다. 중국에서 여느 살림집 딸아이로 태어나서 여느 살림집 어머니로 살다가 여느 살림집 할머니로 삶을 마감합니다. 더 잘날 구석이 없는 삶이면서 더 못날 구석이 없는 삶입니다. 여느 이웃처럼 즐거운 일 많고 여느 이웃처럼 고단한 일 많습니다. 아이들은 귀엽게 자라다가도 못나게 괘씸한 짓을 저지릅니다. 아이들은 웃음꽃을 잔뜩 선물하다가도 눈물열매를 가득 내놓습니다.

 서양사람 ‘아이다 프루잍’은 일본이 중국으로 쳐들어가며 깡그리 짓밟을 무렵 중국 할머니 한 사람한테서 당신이 살아온 이야기를 듣습니다. 이야기를 다 듣고 나서 제 나라로 돌아간 뒤로는 중국땅 여느 살림집 할머니가 어떻게 되었는지는 더 알지 못합니다. 어쩌면 일본사람 총칼에 맞아 죽었을는지 모르며, 어쩌면 일본사람 총칼에도 살아남았을는지 모릅니다.

 애꿎게 죽은 사람도 많고 용하게 산 사람도 많습니다. 슬프게 살아남은 사람도 많고 조용히 죽은 사람도 많습니다. 다들 어찌저찌 살아갑니다. 모두들 이렁저렁 돕거나 해코지하면서 살아갑니다. 《중국의 딸》에 나오는 ‘닝 라오 타이타이’ 할머님 삶이란 중국땅에서만 들을 만한 이야기일 수 있지만, 한국땅이나 일본땅에서도 들을 법한 이야기요, 중국사람이 중국땅에서만 겪을 듯한 이야기라 할 수 있으면서, 한국땅이나 일본땅 어디에서나 누구나 겪을 듯한 이야기라 할 수 있습니다.


.. 그 애는 언제 떠나는지, 어디로 가는지도 가르쳐 주지 않았다. 그 애는 식모의 옷차림이나 농사짓는 여자의 차림을 하고 가겠다고 했다. 그러면 안전할 거라고. 일본사람들은 농부를 잡아서 조사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수·데같이 교육을 많이 받고 손이 고운 여자가 어떻게 농부의 차림을 하고 발각이 되지 않을 수 있을지? 나는 손녀 때문에 두려움에 싸여 있다. 그 애 떠나는 걸 보고 싶지만 손녀는 그렇게 할 수 없다고 잘라 말했다. 아무도 그 애가 언제 떠나는지, 어디서 무얼 타고 가는지 알지 못했다. 눈물이 그 애 얼굴에, 그 애 어미 얼굴에, 내 얼굴에 흘러내렸다. 나는 손녀 때문에 걱정을 하고 있다. 나 한 몸이라면 두려울 게 없다. 나는 이미 늙은 몸이다. 무슨 일이 생긴들 겁날 게 있겠는가? 나는 어린 손주 녀석들 때문에도 걱정이 된다. 하지만 나와 내 아들이 살아 있는 한, 우리는 이 생명들을 위해 몸바쳐 일할 것이다 ..  (323∼324쪽)


 《중국의 딸》에 나오는 할머니 한 분은 당신 한삶을 이럭저럭 살아냈기에 서양사람한테든 이웃 중국사람한테든 조곤조곤 이야기꽃을 피웁니다. 즐겁든 괴롭든 한삶을 보낸 뒤에야 지난날을 가만히 곱씹으면서 내 하루하루를 들려줄 수 있습니다.

 우리 집에서도 말괄돼지 첫째랑 올망졸망 살아가기에 이 아이하고 복닥이는 하루를 나 스스로 되돌아보든 이웃한테 들려주든 합니다. 이 멧골집에서도 아픈 옆지기랑 툭탁툭탁 살 부비며 살아가니까 아픈 옆지기하고 부대끼는 나날을 나 스스로 되씹든 동무하고 이야기하든 합니다.

 죽으면 죽는 대로 흙으로 돌아가 거름이 될 테니 반드시 서운하지는 않습니다. 살면 사는 대로 이런 말꽃 저런 꿈열매 가꿀 테니까 가난하거나 고달프거나 꼭 슬프지는 않습니다.

 《중국의 딸》을 읽으며 오늘 하루 더 기운을 내면서 살자고 새삼스레 다짐합니다. 《중국의 딸》을 두고두고 곁에 놓으면서 나한테 주어진 나날 더 알뜰살뜰 일구면서 살자고 다시금 생각합니다. (4344.2.10.나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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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문학수업 - 장백총서 1
막심 고리키 / 장백 / 1989년 4월
평점 :
절판


숨막히는 서울과 숨막는 도시
― 막심 고리끼, 《나의 문학수업》


- 첵이름 : 나의 문학수업
- 글 : 막심 고리끼
- 옮긴이 : 김휴
- 펴낸곳 : 장백 (1989.4.1.)


 참 많은 사람들이 서울에서 살거나 서울 둘레에서 삽니다. 아마 우리 나라 사람 가운데 1/2은 서울이나 서울 둘레에서 살아가지 싶어요. 서울은 자꾸 커질밖에 없고, 자꾸 커지더라도 바글바글 웅성거리는 사람들로 비좁아 서로가 서로를 더 따스하거나 넉넉히 바라보거나 감싸안기 힘들 수밖에 없습니다. 왜냐하면 살아남아야 하고, 살아가야 하며, 살아숨쉬어야 하니까요.

 옛말에 열 사람이 밥 한 숟가락씩 덜어 밥 한 그릇을 마련한다고 했습니다. 열한 사람이 있을 때에 한 사람을 열 사람과 같이 먹여살릴 만하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서울이라는 곳은 너무나 많은 사람이 몰렸습니다. 열 사람이 아닌 다섯 사람이 한 숟갈을 나눈다기보다 두 사람이 한 숟가락씩 나눕니다. 열 사람이 열 숟가락을 나누면, 이 열 숟가락으로 다른 한 사람도 버틸 만할 뿐 아니라 살아갈 수 있고, 다른 열 사람도 버틸 만할 뿐 아니라 살아갈 만합니다. 그러나 다섯 사람한테서 한 숟갈을 얻으면? 다섯 숟갈 밥을 먹는 사람도 살아갈 만할까요? 한 숟갈만 나누어 준 다섯 사람이야 먹고살 만하겠지요. 딱 둘이 있는데, 한 사람한테서 한 숟가락만 얻는다면? 한 숟가락 먹는 사람이 살아갈 수 있을까요? 한 숟가락만 나누어 준 한 사람이야 먹고사는 걱정이 없겠지요.

 서울에서 살아가거나 서울 둘레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자꾸자쑤 새로운 도심으로 다시 몰립니다. 서울로 몰린 다음에 ‘또다른 새 서울’을 만들어 더 몰립니다. 더 겨루고 더 싸우며 더 복닥입니다. 서울로 가면 어떻든 일자리도 있고 먹고살 구멍이 있겠거니 여기던 사람들은 ‘그냥 서울’이 아닌 ‘새로 만드는 또다른 서울’이 있다는 소리를 듣고는 무너져 내립니다. 땅 팔고 소 팔며 집 팔아 서울로 온 사람들이 무엇을 팔아 ‘새로 만드는 또다른 비싼 서울’에 끼어들 수 있겠습니까. 게다가 일찍부터 돈과 힘과 이름으로 새 서울을 이룩한 사람들이 뭣하러 가난뱅이 다른 동네 사람을 끼워 주겠습니까.

 예전부터 서울에서 살던 사람이나 새롭게 서울로 찾아든 사람이나 똑같이 팍팍합니다. 나누기보다 지키려고 메마르면서 팍팍하고, 나누기보다 얻으려고 쓸쓸하면서 팍팍합니다. 출판사나 헌책방이 서울에 많이 몰렸기에, 볼일을 보러 서울로 마실을 다녀와야 할 때면, 지나치게 많은 사람이 몰려든 서울에서 북적이거나 치이거나 밀리느라 숨이 막히며 괴롭습니다. 볼일은 보고 책방마실도 한다지만, 살내음과 꽃내음과 흙내음과 바람내음과 햇살내음을 맡거나 나눌 수 없는 터전에서는 가슴이 시리고 속이 아픕니다.


.. 나는 내가 한 사람의 좋은 일꾼이라는 데 대해서는 좋은 평가를 받아도 무방하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나는 자신의 일과 모든 노동을 사랑하기 대문이다. 그런데 이 점에 있어서도 나는 도처에 수없이 존재하는 인간 중의 한 명에 지나지 않는다. 곳곳에서 성장하고 있는 아주 보편적인 노동자에 지나지 않는다. 나는 노동자의 위치를 대단히 높이 평가하고 있다 ..  (65∼66쪽)


 서울에서 살아가기 때문에 서울에서 손꼽히는 몇몇 대학교에 내 아이를 보내고 싶어 안달을 할밖에 없습니다. 서울에서 살아가는 터라 서울에서 손꼽히는 몇몇 대학교에 내 아이를 보내자면 고등학교와 중학교부터 잘 골라서 넣으려고 애쓸밖에 없습니다. 초등학교부터 더 빠듯하게 굴려야 하고, 이 학원 저 학원 안 넣을 수 없습니다. 돈이 있건 없건 아이는 어린 나날부터 숱한 학원에 얽매여야 하고, 어버이는 아이를 학원에 보낼 돈을 벌어들여야 합니다.

 아이들한테 대학교바라기를 하기에 아이들과 살가이 마주하면서 이야기를 나누거나 생각을 주고받기 힘듭니다. 대학교바라기를 접고는 일자리 마련하여 돈벌기를 바랄 때에도 즐거이 찾아 즐거이 붙잡을 일거리보다는 오래도록 넉넉히 돈을 벌어들일 일자리를 살필밖에 없습니다. 즐거울 일을 즐겁게 살피며 즐거이 이야기꽃을 피우기보다는, 돈이 될 일자리 이야기를 나누면서 돈이 될 일자리를 얻자면 어떠한 돈구멍을 찾아야 하느냐는 이야기에 머물고 맙니다.


.. 사람들은 이들을 깔아뭉개는 일을 즐거워하지만 그들을 올바른 길로 인도하는 일에는 무관심하며, 항상 냉혹한 태도를 취하고 있다 … 레닌은 ‘바보란 있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그는 항상 필요한 것을 말해 왔다. 그에게는 탁월한 재능이 있었다. 벌써 35년 전에 ‘우리는 과거의 유산을 거부하지 않는다’고 말했으며, 그의 전 생애 속에서 부르조아 문화라 할지라도 가치가 있는 것은 조금도 부정하지 않았다. 부르조아 문화 속에 있는 가치있는 것이야말로 기술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며, 모든 노동 부문과 문학 부문에 있어서 ‘훈련’의 역할을 하는 것이라고 그는 생각했던 것이다. 그렇다! 바보도 있을 수 있다. 그러므로 문학 그룹 간의 알력과 불화는 아주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리고 만약에 ‘인정된 재능’과 문학의 수호자들이 이기심과 자만심에 의해서 그 불화를 격화시키려는 것이 아니라면, 또한 앞에서 말한 바와 같이 자신의 위치에 대한 고민을 이 논쟁 속에 나누어 싣지 않는다면, 이 불화는 훨씬 더 교휸적인 유익한 의미를 지니게 될 것이다 … 각자 한 마리씩 자신의 집을 짓고 사는 거미처럼 생활하면서, 자신의 생활방식 이외에는 다른 새로운 삶의 방식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 즉 마음의 저 밑바닥에서 생활하는 소시민들은, 생활에 대한 새로운 관계가 폭풍처럼 성장하고 있다는 사실에 대해서 불만을 느끼고 있다 ..  (69, 71, 144쪽)


 도시를 버리고 시골로 가야 사람이 사람다이 살아가지는 않습니다. 도시가 시골로 탈바꿈할 수 있을 테니까요. 서울을 떠나 작은도시나 시골로 가야 제대로 살아숨쉰다 할 수는 없습니다. 서울도 얼마든지 서로서로 사랑하며 살아숨쉴 터전으로 거듭날 수 있을 테니까요.

 그러나, 이 나라 도시가 시골다움을 사랑할 듯하지는 않습니다. 이 나라 서울이 시골스러움을 받아들일 듯하지는 않아요.

 아이들이 마음껏 뛰놀 터전이 없고, 아이들이 자동차 걱정을 하지 않고 신나게 내달릴 골목이 없으며, 아이들이 돈벌이와 대학교와 아파트 근심을 하지 않으며 배울 만한 마당이 없는 도시요 서울입니다.

 어린이가 푸름이를 거쳐 어른이 되어서 할 일이란 ‘돈버는 일’만이 아닙니다. 사람은 ‘돈버는 기계’가 아닙니다. 사람은 사람이지, 기계가 아닙니다. 어린이는 어린이여야지 시험점수 잘 따는 기계가 아닙니다.

 막심 고리끼 님은 《나의 문학수업》에서 사람다이 살아가는 한 사람으로서 문학으로 무엇을 담아 누구하고 어디에서 어떤 이야기를 왜 나눌 때에 아름답거나 즐거운가 하고 밝힙니다. 문학이란 그예 사람이 살아가는 이야기입니다. (4344.2.9.물.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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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피 2011-02-10 16:40   좋아요 0 | URL
ㅎㅎ 참 공감이 가는 글입니다.서울이란 곳은 삶이 매우 팍팍한 곳이죠.그리고 공기 역시 답답하네요ㅡ.ㅜ

숲노래 2011-02-10 19:45   좋아요 0 | URL
답답하거나 갑갑하지 않을 때에 홀가분하면서 아름다울 수 있는데,
이러한 결과 삶을 자꾸 놓거나 잃구나 싶어요...
 
껍데기를 벗고서 1 - 동녘선서 43 동녘선서 43
동녘편집부 엮음 / 동녘 / 1987년 5월
평점 :
품절


집일을 하면서 무슨 책을 읽을 수 있나
― 편집부 엮음, 《껍데기를 벗고서》



- 책이름 : 껍데기를 벗고서
- 글 : 편집부 엮음
- 펴낸곳 : 동녘 (1987.5.10.)


 아이와 함께 마당에서 눈 놀이를 하다가 들어옵니다. 아이한테 밥을 먹이고, 아이 손을 씻기며, 아이 머리를 감깁니다. 아이 옷을 갈아입히고, 아이 뒤를 닦으며, 아이 변기를 치웁니다. 아이하고 노래를 부르고, 아이를 배에 눕히며 놀다가는, 함께 이불을 뒤집어쓰고 놉니다. 아이 사진을 찍어 주고, 아이랑 이를 닦다가는, 아이 머리를 쓰다듬습니다. 아이하고 손을 잡고 멧길을 오르며, 아이랑 손을 맞잡고 아이는 아빠 발을 밟는 채 춤을 춥니다.

 아이가 태어나지 않았을 때에는 옆지기하고 무엇을 하며 지냈을까 떠올립니다. 함께 비 맞으며 걷기도 했고, 서로 헌책방마실을 했으며, 성당마실도 함께했습니다. 저잣거리 마실을 손잡고 하며, 누구하고 만나든 내내 붙어 지냈지 싶습니다. 집에서 아이를 보거나 놀 때라든지 집일을 할 때라든지 온통 도맡는데, 이러다 보니 아이가 심심하지 않도록 더 마음을 쓰고, 옆지기 아픈 몸을 주무르거나 말을 섞을 겨를이 줄어든다고 느낍니다.

 둘째가 태어나 네 식구 함께 살아가는 하루가 될 때에는 어찌 될까 헤아려 봅니다. 이때에는 가장 어리며 여린 둘째를 보살피느라 옆지기랑 첫째한테 들일 품과 땀과 겨를이 차츰 줄어들 텐데, 이때에 우리 집식구는 어떻게 받아들여 줄까 궁금합니다. 스스럼없이 받아들여 줄는지, 둘째가 무럭무럭 자라면서 서로가 서로를 한껏 깊고 넓게 살필 때까지 잘 기다리며 더욱 아껴 줄는지 궁금합니다.

 이제 둘째하고 이 집에서 살아갈 때에는 아버지가 책을 들출 짬이란 아주 줄어들겠지요. 아니, 집살림 꾸리면서 어린 두 아이랑 아픈 옆지기를 건사할 일꾼이 책을 들추려 한다면 참 배부른 소리가 되겠지요. 둘째가 조금 큰다면 밥을 차릴 때에 손이 덜 가겠으나, 둘재가 한창 어릴 때에는 둘째 먹을 죽 끓이랴 첫째 먹을 밥을 하랴 옆지기 먹을 밥을 내랴 손에 물이 마르지 않을 텐데, 밥은 밥대로 먹이고 옷은 옷대로 갈아입히며 이불은 또 이불대로 빨고 널고 털고 개고 펼쳐야 합니다. 첫 아이 오줌 가리기 하는 동안 이불 빨래를 그토록 해야 했는데, 둘째 아이 오줌 가리기까지 이불은 또 얼마나 많이 빨아야 할까요.


.. 국어의 생활화에서 나아가 생활국어가 이루어져야 그 바탕 위에서 국어교육은 어학교육은 물론 문예교육·민족교육·민주교육에 도달될 수 있을 터인데, 현행 국어교과서는 그것이 거꾸로 되어 있는 듯 보인다. 두괄식 문장·미괄식 문장·양괄식 문장이라는 것을 학생들이 배우고 있다. 문학인의 한 사람으로 글을 쓰는 필자이지만 ‘무식하기 짝이 없어서인지’ 이런 문장들이 있다는 것을 미처 몰랐다. 추보식 문장이 어떠한 것인지 아는 시인이 얼마나 있을까. 필자는 덧붙여 출제해 본다. 풍유법·대유법·제유법·환유법·활유법·중의법 등을 학생들은 배우고 있다. 그러나 이런 각종 법을 그들이 어떻게 언어생활에 써먹고 있는지 모르겠다. ‘법’은 갈수록 휘황찬란해진다. 점강법·설의법·돈호법 등과 같은 ‘법’에 이르게 되면 국어문장이란 사람이 쓰라고 있는 게 아니라 이런 법망에 걸리지 않으면 천만다행이다 싶게 ‘무서운 것’으로 느끼게 되지 않을 수 없다. 우리의 국어 문장은 이처럼 ‘난해한’ 것이 되고 있다. 그렇다면 문체는 어떤가. 만연체·강건체·우유체·건조체·화려체 등을 암기하느라 고통스러워했던 고교 시절(필자의 경우에는 1950년대였다)을 기억하고 있는 사람으로서는 ..  (231쪽)


 예부터 집일 하는 사람은 책을 읽지 못했습니다. 집일 하는 사람은 글을 배울 수 없으니, 책을 읽으라 책을 내어준다든지 집일을 누가 맡아 해 준다더라도 책을 읽지 못합니다. 집일을 하느라 하루 해로도 모자란 판이니, 글이니 책이니 돌아볼 틈이 없습니다. 집일을 익히느라 몇 해로도 모자란 삶이니, 쉬운 한글로 된 책조차 없이 어려운 한문으로 된 책을 읽도록 글을 살필 수 없습니다.

 오늘날에도 집일 하는 사람은 책을 읽기 힘듭니다. 아이를 돌보든 아이가 다 커서 홀로 살아가든 집일 하는 사람은 집일을 건사하느라 하루 해가 금세 기웁니다. 그런데, 바깥일 하는 사람도 책을 읽기 힘듭니다. 바깥에서 돈을 벌랴 바깥에서 사람 만나랴 바깥에서 놀랴 책을 마주할 수 없습니다.

 따지고 보면, 예나 이제나 글을 쓰는 사람은 ‘집일도 바깥일도’ 그닥 마음 안 써도 되는 사람인지 모릅니다. 어찌 보면, 옛날이나 오늘날이나 책을 읽는 사람은 ‘집일이건 바깥일이건’ 그리 마음 기울이지 않아도 괜찮은 사람일 수 있습니다.

 누군가는 고된 집일을 하면서도 몰래 글을 익혀 책을 읽겠지요. 누군가는 바쁜 바깥일에 얽매이면서도 애써 말미를 마련하여 힘껏 글을 쓰고 책을 읽겠지요.

 그러면, 예나 이제나 글이란 누가 써서 누가 읽는 글이었을까요. 옛날이나 오늘날이나 글쓰기란 누가 어떻게 누구한테 가르치며, 책읽기란 누가 어디에서 어떻게 하면서 누구 삶을 일구는 일이 되나요.

 누구나 학교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시험성적 웬만큼 나오면 대학생이 될 수 있습니다. 누구나 들어가서 다니는 학교에서는 무엇을 가르칠까요. 시험성적에 따라 대학생이 되면, 이곳에서는 무엇을 배워 어떤 사람으로 살아가나요. 학교를 오래오래 다닌 사람들은 집일을 건사하는 솜씨를 얼마나 익히며, 집일에 매인 사람들 삶은 어느 만큼 헤아리거나 어깨동무를 하는가요. (4344.1.28.쇠.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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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물네 개의 눈동자
쓰보이 사카에 지음, 김난주 옮김 / 문예출판사 / 2004년 7월
평점 :
절판


교사가 되고픈 사람이라면
― 쯔보이 사까에, 《스물네 개의 눈동자》



- 책이름 : 스물네 개의 눈동자
- 글 : 쯔보이 사까에 (쓰보이 사카에)
- 옮긴이 : 추식
- 펴낸곳 : 한일출판사 (1961.9.5.)



 헌책방에서 ‘쓰보이 사카에(쯔보이 사까에)’ 님 책을 처음 만났습니다. 2001년이었나 2002년이었나, 서울 대방동에 자리한 〈대방헌책방〉에서 만나지 않았나 떠올립니다. 이럭저럭 책을 다 골랐다 싶어 책값을 셈하고 나올 즈음, 셈대 앞쪽에 꽂힌 퍽 조그마하면서 낡은 책 하나 눈에 뜨였습니다. 책이름 《스물네 개의 눈동자》를 보면서, ‘이 책이름은 뭐냐? 어째 스물네 개의 눈동자 따위로 이름을 붙였담. 토씨 ‘-의’를 이렇게 엉터리로 붙여도 되나?’ 하고 생각했습니다. 언제 적 책인지 구경이나 해 보자 싶어 들춥니다. 1961년에 나온 책입니다. 다시금 생각합니다. ‘우와, 1961년에도 사람들은 토씨 ‘-의’를 이렇게 엉터리로 썼구나.’

 글쓴이나 옮긴이를 잘 모르는 주제에, 또 글쓴이나 옮긴이를 보기 앞서, 책이름을 놓고 혼자 궁시렁댑니다. 이때로서는 낯선 글쓴이요 낯선 일본문학인 만큼, 다시 제자리에 꽂을까 하다가, 애써 집은 만큼 책장을 넘기자 생각합니다. 머리말을 읽고 몸글을 조금 읽습니다. 시골 섬마을 아이들 열둘을 가르친 교사 한 사람 이야기가 주르르 흐릅니다. 옮긴이가 ‘한국땅 꽤 외진 시골 사투리’로 적바림해 줍니다.

 번역글이 참 좋다고 느끼는 한편, 창작글 또한 무척 좋다고 느낍니다. 어, 어, 이런 놀라운 문학이 있었네, 생각하며 집으로 돌아갈 일은 그만 잊습니다. 헌책방 문간에 서서 꽤 오래 책을 읽습니다.

 나중에 인터넷으로 ‘쯔보이 사까에’를 찾아보지만, 이런 이름은 찾아볼 길이 없습니다. 이때에는 이분 문학책이 1961년을 끝으로 다시 못 나왔다고 여깁니다. 아는 사람은 다 아는데, 1965년 한일협정 때문에, 1960년대 첫머리까지 아주 많이 옮겨지던 일본 문학이며 철학이며 사상이며 책이, 1965년을 고빗사위로 거의 옮겨지지 않습니다. 1980년대로 접어들어야 비로소 일본문학이 차츰차츰 고개를 내밉니다.

 1961년판 《스물네 개의 눈동자》를 읽고 한참 뒤인 어느 날, 다른 헌책방에서 1997년판 번역책을 만납니다. 응? 이렇게 다시 나왔나? 곰곰이 돌이켜보니, 예전에 인터넷으로 찾아보기를 할 때에 ‘쯔보이 사까에’로만 찾아보았기에 알아볼 수 없었고, 책이름으로 찾아보기를 하지 않았습니다. 나도 참 바보로군, 하고 생각합니다. 1997년에 비로소 다시 옮겨졌으니, 자그마치 서른여섯 해 만에 다시 나온 셈인데, 서른여섯 해 만에 새로 빛을 본 책은 거의 사랑받지 못하다가는 2004년에 거듭 나오기는 했으나 이내 사라집니다. 그래도 츠보이 사카에 님 다른 문학 《엄마 없는 아이와 아이 없는 엄마와》(우리교육,2003)라는 책은 판이 끊어지지 않습니다. 이 한 가지나마 만날 수 있으니 반갑습니다. 게다가 헌책방에서 퍽 오래 다리품을 팔며 눈을 밝히면 1997년과 2004년에 찍은 판을 만날 수 있으니 고마운 노릇입니다.


.. “선상님!” 이번에는 색다른 이야기나 할 것처럼 불렀다. “엉, 마쓰에는 재미있는 일이 있나 부지? 뭔지 말해 봐.” “저라우, 어무니가 일어나먼이라우 잉, 앙철 벤또 사 준다고 했어라우. 뚜껑에 백합꽃 무늬가 있는 거…….” 푸욱 한숨을 들이키더니 마쓰에는 얼굴에 희열을 띤다. “아이 좋기도 하겠다. 애기 이름도 그렇게 지었니?” 마쓰에는 부끄러움과 기쁨이 뒤섞인 표정을 짓고는, 그것을 몸짓으로 나타내기나 하듯 어깨를 움추려 보인다. “아직 안 지었구나. 그럼 이렇게 지으렴. 백합꽃처럼 고운 이름을 찾아봐.” 마쓰에는 크게 숨을 들이켜, 얼굴을 벙글거렸다. “유리꼬? 유리에? 선상님, 유리에로 하면 좋겄지라우. 유리꼬는 너무 흔해빠즌 이름이지라우.” 마쓰에는 즐거운듯, 선생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마쓰에의 눈이 이렇게도 상냥스러웠던가, 처음 보기라도 하는듯 선생은 그 검은 눈썹에 쌓인 검은 눈동자 속에 자신의 감정을 퍼부었다 ..  (110∼111쪽)


 언제였던가, 일본에서 문학박사라 하던 어느 분이 한국으로 한국문학을 배우러 와서 한글학회 사람들하고 어울리던 자리에 함께한 적 있습니다. 한국말을 곧잘 하기에 일본말을 못하면서도 이분하고 몇 마디 말을 섞었습니다. 이때 《스물네 개의 눈동자》하고 《엄마 없는 아이와 아이 없는 엄마와》라는 책을 떠올리며 “일본에서 쓰보이 사카에 님 문학은 어떤가요? 요즈음에도 사람들이 즐겨 읽는가요?” 하고 여쭙니다. 그런데 일본에서 문학박사라 하는 이분은 쓰보이 사카에라는 이름을 모릅니다. 이름을 모르니 작품을 읽은 적이 없겠지요. 《스물네 개의 눈동자》는 1954년에 영화로도 만들어 꽤 사랑받았다고 덧붙이는데, 도무지 모릅니다.

 속으로 생각합니다. ‘아차, 내가 잘못했나? 아무리 한국에서 한국문학 박사라 할지라도 손창섭 문학이라든지 장용학 문학까지 다 읽었으리라 여길 수는 없잖아. 김학철이나 김석범 문학까지 다 읽어야 한국땅 한국문학 박사이지는 않을 테니까. 문학박사 논문을 내면 박사가 되지, 모든 문학을 두루 꿰거나 읽어야 문학박사가 되지는 않잖아.’


.. “저넌 맏아들이지만, 그래도 군인 되넌 것이 쌀장사버덤은 …….” “엉 그럴가. 잘들 생각해 봐요.” 함부로 말할 수 없는 괴로움을 느끼자, 다음 말을 못 잇고 말없이 남자 어린이들의 얼굴을 바라보고 있었다. 다다시가 무엇을 느꼈는지, “선상님은 군인얼 싫어하지라우?”라고 묻는다. “그래, 고기잡이나 쌀장수를 선생님은 더 좋아해.” “우메에. 으째서라우?” “죽는 것이, 억울하니까.” “그라문 선상님은 겁보게라우.” “그래 겁보야.” 그때 일을 생각하면, 지금도 뒤숭숭해진다. 그쯤 말을 주고받은 것으로 교감선생님한테서 주의를 받았다. “오오이시 선생, 빨갱이라는 소문이 떠돌고 있는 거 아시는지? 조심해야 합니다.” (도대체 빨갱이라고,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나 같은, 사람을 어디를 보고 빨갱이란 말인가?) 잠자리에 누운 채 생각을 하던 오오이시 선생은 건너방 쪽으로 크게 외쳤다. “어머니! 계세요?” “왜 그러니?” 오지는 않고 미닫이만 바라보고 대답하는 품이 화로불가에 쭈그리고 앉아 있는 것 같았다. “이리 좀 빨리 오세요. 의논 드릴 게 있어요.” 발자욱 소리와 함께 미닫이가 열리자, 어머니의 골무 낀 손을 바라보면서 들이대듯 했다. “어머니 아무리 생각해도 선생질 싫어졌어요. 삼월부터 그만둘가 봐요.” “그만두다니, 왜 무슨 일이라도 생겼니?” “그만두고, 푼돈 줍는 과자장수를 하는 편이 나을까 봐요. 날이 날마다 충국애국 따위, 이제 정말이지 진저리가 나요.” “무슨?” ..  (151∼153쪽)


 1990년대 번역판도 장만해서 조금 읽었으나 번역글이 영 가슴으로 스미지 않았습니다. 너무 반듯한 번역글이라 할까요. 《스물네 개의 눈동자》에 나오는 열두 아이를 비롯한 시골사람들은 ‘여 선생이 자전거를 타고 달리는’ 모습을 보면서 깜짝 놀라 하며, 도시 문명이나 문화란 거의 생각해 보지 못합니다. 그야말로 깊디깊은 시골마을 사람들입니다. 표준말이라든지 표준말하고 가까운 사투리를 쓸 턱이 없습니다. 1990년대 번역판은 사투리 맛이 하나도 안 납니다.

 이제 와 다시금 헤아린다면, 오늘날 사람치고 깊디깊은 시골마을 사투리를 쓰는 사람은 거의 없다 해도 틀리지 않습니다. 아마, 깊디깊은 시골마을 사투리로 문학을 창작하거나 번역한다면, 이런 글을 읽어 줄 만한 사람은 아예 없다시피 하다고 할 만합니다. 쓸 사람도 없고 읽을 사람도 없어요.

 더욱이, 시골마을 삶자락을 글로 쓰는 사람부터 없고, 시골마을 삶자락이 책이나 글로 나왔을 때에 기쁘고 반갑게 읽어 줄 사람이 없습니다. 시골마을 삶자락을 헤아리는 사람이 적고, 시골마을 삶자락이란 신문이나 방송이나 인터넷 따위에 거의 나타나지 않습니다. 시골마을 삶자락이란 ‘세상에 이런 일이?’ 같은 풀그림에나 나올 테지요.

 1928년을 무대로 한 작품이라는데, 1928년에 “군인이 싫어.” 하고 말하면서 “충국애국 교육 거부”를 하던 시골 교사란, 게다가 남자 교사도 아닌 여자 교사가 이렇게 가르치며 보낸 삶이란, 온통 전쟁으로 미쳐 돌아가던 일본 제국주의요 군국주의 소용돌이에서 어떻게 살아남을 수 있었으랴 궁금합니다. 생각해 보면, 일본에서는 총칼을 내세운 바보가 많았던 한편, 총칼을 뿌리친 착한이 또한 많았습니다. 한국땅에는 독립을 외친 아름다운 사람도 많았으나, 식민지땅에서 부역을 일삼으며 돈과 이름과 힘을 거머쥔 사람 또한 많았어요.

 교사라 한다면, 참말 교사라는 자리에 서려는 사람이라 한다면, 아이들 앞에서 무엇을 가르쳐야 할까 헤아려 봅니다. 교사가 되고픈 꿈을 꾸는 사람이라면, 교사가 되어 아이들하고 함께 배우며 가르칠 마음이 있는 사람이라면, 스스로 무엇을 익히거나 받아들이거나 살피면서 아이들 앞에 서야 할까 곱씹어 봅니다.

 지식을 가르친대서 교사라 할 만한지요. 시험점수 잘 나오게 할 뿐 아니라 서울대학교 많이 보내면 훌륭한 교사라 할는지요. 교사는 어디에서 누구랑 무엇을 하는 사람인가요. (4344.1.22.흙.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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