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업주부에게 다이어리가 있다는건 의미가 남다르다. 비밀 이야기 많았던 다이어리 절정기인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교때 잘 끼고 다니던 다이어리, 짧은 사회 생활이었긴 하지만 파트타임이었기에 필수적이었던 다이어리...그러나 결혼과 동시에 집에 들어앉으면서 다이어리는 내 인생에서 사라졌다.
가계부를 썼고 태교 일기, 육아일기를 쓰다가 아이가 서너살이 되었을 때부터 슬슬 독서노트를 시작했던 것 같다. 그래도 어린 아이를 키우는 엄마에게 그 날이 그 날이고, 어제나 오늘이나 내일이나 별다르게 약속 잡을 것도, 체크할 것도 없었기에 여전히 다이어리는 물건너갔다.
결혼 10년을 바라보면서 이제는 가계부도 안 쓴다. 그나마 작년까지 가계부를 썼으니 나만큼 오래 쓴 사람도 없는 것 같다. 육아일기도 관두었고 유치원 때 마주이야기를 쓰다가 아이가 학교 가서 자기 일기를 쓰게 된 지금은 그나마도 쓰지 않는다.
그런 내게 다이어리가 생긴 것이다. 교회 유년부 교사를 시작했기 때문이다. 가방에 들어갈 수 있게 작다. 크기 비교 겸 볼펜을 올려놓았다.
내가 좋아하는 펜이다. 마트에서 쉽게 살 수 있는 저 펜은 빨리 써지고 잘 써진다. 빨강, 파랑, 검정색으로 갖고 있는데 당근 검정색을 제일 많이 쓴다.
조그맣게 붙어있는 저 스티커는 유년부 공과 지도할 때 사용했던 겨자씨 스티커다. 겨자씨만한 믿음만 있어도 산을 들어 옮긴다고 했다. 실제로 겨자씨는 저 스티커보다 훨씬 더 더 더 작다. 때로는 겨자씨로, 때로는 한 알의 썩는 밀알로 생각하기 위해 하나 붙여 두었다.
표지를 열면 앞/뒤에 비닐 포켓이 있다. 뒷편에는 다락방, 유년부 아이들, 교사들, 제자반 주소록이 들어있다. 앞편의 내용물을 꺼내보면 이렇다.
맨 왼쪽에 이면지를 활용해 막 써내려간 것 두 장은 도서관 청구기호가 적힌 책 이름들이다. 그리고 옆의 두 장은 내가 올해 따라잡기하고 있는 프리셉트 출판사의 신앙서적 리스트다. 가운데의 신문에서 오려낸 것은 독후감 공모하면서 나온 아이 추천도서 목록이다.
교회 행사력 기입하는 연간계획표다. 1월에서 6월까지...세로 한 줄이 한 달인 것이다. 이 곳에 읽은 책 제목과 저자 이름을 적는다. 물론 어른 책만 적는다. 아이 책은 독서 노트에도 안 적는다. 칸도 작은 이 곳에 책이름을 적는 것은 내가 책을 얼마만큼 읽었나 한 눈에 확인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다음 장 넘기면 7월에서 12월까지...앞의 두 줄이 7월, 8월이다. 난리가 났다. 2006년 8월 31일까지 48권을 읽었다. 흐흐흐....그런데 7월과 8월에만 36권을 읽었다. 그 대신 이 두 달 동안은 성경을 단 한 줄도 안 읽었다는...목사님이 아시면 기절하실 일을 했다.
이건 성경책에 넣어놓는 성경 읽기표다. 읽은 부분은 형광펜으로 칠한다. 지금까지 3독했고 4독째다. 앞으로도 1년에 1독은 할 셈이다. 누구는 그랬다. 자기 나이 수만큼 통독해야 한다고...옳은 말씀이라 생각한다. 그러나 이렇게 뒤늦게 시작한 나와 같은 사람은... 믿기 시작한 그 순간부터라도 한 살먹은 만큼 한 번 더 읽고자 한다.
2006년 상반기에는 새벽기도도 있었고, 말씀으로 훈련하는 제자반 공부도 있었다. 제자반 다시 시작하면 학기 쉬는 동안 뭐 했냐고 하실텐데...거의 대부분 신앙서적을 읽었다고 해도 말씀을 도외시했으니 회개할 일이다.
자식에게 올인해서 살지 말아야 한다고, 나에 대해서도 생각하고, 시각을 조금씩 넓혀 내 주위도 돌아보며 살아야 한다는 생각은 하게 된다. 그러나 그냥 그렇게 생각만 하다 말곤 했다.
그런데 다이어리에 기록할 일이 생기고, 스케쥴이 생기면서 나는 아내나 엄마가 아닌 교사로서의 나, 믿는자로서의 나를 생각하는게 더 쉬워졌다.
전업주부가 갖는 다이어리의 의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