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묘한 세계를 갖고 있는 우리집 어린이가 한 달 반 전쯤 뜬금없이 한자 급수 시험을 보고 싶다고 했다.
2학년이 된 후 일주일에 두 번 학교 아침 자습 시간에 8급 한자를 써본게 전부인 녀석이다.
(글씨는 엉망진창이다)
7급이나 8급이나 한자 쓰는 문제는 안 나오고, 8급은 대부분 유치원생들이 본다길래 7급을 보자고 했다.
한 달 반 정도 시간이 남았는데...7급 한자도 할 만해 보였다.
서점에서 문제집 한 권 사서 보는데....녀석은 쓰면서 외우지도, 문제를 풀지도 않았다.
눈으로 훑어 보더니 낱자들을 외웠다. 그렇게 하던 것도 며칠...곧 나 몰라라 하던 녀석.
그러나 그렇게 한자만 눈으로 보고 익혔기에 엊그제 모의고사를 풀게 해 보니 가관이었다.
서녘 서가 아니 서녁 서 라고 쓰지를 않나, 올 래가 아닌 올 레라고 쓰지를 않나...
시험 공부도, 받아쓰기도 보이콧했던 녀석과 계속 신경전 중이었기에...내 마음은 그랬다.
왜 한자 시험은 보겠다고 해 놓고 공부는 안 하는건지 싶으면서... 그렇게 몰라라 하는 태도가,
느슨한 태도가 마음에 차지 않았다.
70문제 중에 49개만 맞으면 합격인 급수시험...
아파트 바로 뒤의 중학교가 시험장이었기에 접수도, 응시도 부담이 없었다.
그 시험을 오늘 치렀다.
시험장까지 델고 들어가는데 웬 아이들과 부모들이 이리 많은지...
학교 친구 엄마들에, 교회 집사님들까지...많이도 만났다.
우리 애처럼 집에서 문제집 한 권도 제대로 안 풀고 보는 아이는 없었다.
학습지를 하고 있다던가 학원을 다닌다거나 하다못해 동사무소 한자 교육이라도 받은 아이들이었다.
사실 나는 아이에게 한자만 외우게 할 생각은 없었다. 한글이 완전히 자리잡히면 소학이나 명심보감을
집에서 가르쳐 볼 참이었다.
그러나 이번에 한자어 뜻풀이를 하는 아이를 보니 명심보감 가르치기가 그리 쉬울 것 같지는 않다.
나는 지금도 궁금하다.
뭔가에 매여 공부하는걸 싫어하는 아이가 뭐 때문에 한자 시험을 본다고 했을까.
물어봐도 "그냥. 보고 싶으니깐. 사실 난 2급 보고 싶었어"하는 엉뚱한 소리만 한다.
친구들이 한자 시험 본 것도 오늘 시험장에서 만나서 알게 된 눈치였는데...오묘한 아들의 정신 세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