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24일 거리
요시다 슈이치 지음, 김난주 옮김 / 재인 / 2005년 9월
평점 :
절판


요시다 슈이치 소설로는 '악인', '캐러멀 팝콘'에 이어 3번째로 읽었습니다.
단순히 '7월 24일 거리'라는 제목에서 흥미가 느껴져 구입한 책인데,
어떤 특별한 날짜를 지칭하는 것인가.. 생각했더니 실제로 포르투칼 리스본에
있는 거리 이름이라고 합니다.

주인공 혼다 사유리는 이쁘다고 할 수 없는 평범한 여자. 게다가 사는 곳도 작은 소도시. 그래서 무료한 일상을
탈피하기 위해 리스본의 도시들의 거리 이름을 붙이는 놀이를 합니다. 그녀는 누구나 감탄할만한 잘생긴 동생 코지가 있고,
다른 등장인물로는 같은 회사를 다니는 안도. 그는 고등학교 선배 아키코의 남편입니다. 이 아키코는 고등학교 때 선남선녀 커플
이었는데 그때만큼의 행복감을 느끼지 못하고 사유리에게 자꾸 하소연을 합니다. 그러면서 지금 행복한 것을
과시하듯 얘기하는 것도 잊지 않습니다. 사유리는 안도를 좋아하는 것처럼 그려지는데 그것이 짙은 감정 묘사
로까지 표현되지는 않고 짐작하게끔 독자에게 맡깁니다. 그러다가 고등학교 육상부 동창회가 열리게 됩니다.
내심 사토시 선배를 좋아했던 사유리는 기대를 갖고 있습니다. 그런데 아키코 선배가 나타납니다.

잘생긴 동생 코지는 사유리에게 언제나 자랑이었습니다. 항상 예쁜 여자들과만 사귀고..
그런데 그가 요즘 만나는 여자는 메구미. 전혀 예쁘지도 않고, 위축되어 있습니다.
코지에게 버림받을까봐, 그것이 자신의 모습일까봐 메구미에게 화가납니다.

우연히 만나게 된 한 남자. 그 사람과의 우연이 거듭되면서 그녀가 많은 생각을 한다는 것을 알게됩니다.
작가의 필체는 이야기를 진행하는 주인공 사유리의 생각과 얘기들 그 행간에 독자들로 하여금 생각할
거리들을 던져줍니다. 그래서 요시다 슈이치 소설을 읽고 나면, 인물들의 관계라던지.. 그런 것들에
대해서 더 생각해보게 되는 것 같습니다.

사실 순정 만화를 좋아하고, 잘생긴 남자를 좋아하고.. 그런 소녀적 감성을 가진 사유리에게
선배의 남편인 안도나 선배의 남자친구인 사토시보다 이 인물이 더욱 운명적이고 멋있는 우연의
만남이 아닐까 싶은데, 그녀는 과거에다가 남의 것에 더 연연합니다.
그것은 현재를 보지 못하고 과거에 집착하는 아키코의 모습이기도 합니다.
과거의 자신의 멋있음에 연연하여 마음이 가는 사유리보다 아키코에게 흔들리는 사토시의 모습이기도 합니다.
그러고 보면 코지가 가장 현명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마지막 선택은 아쉽기도 하고 혹은 또 다른 출발을 위한 결단의 모습 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아무래도 요시다 슈이치 소설은 조용한 편이여서 몰아서 급하게 읽게 되지는 않지만,
정말 탁월한 문체를 가진 것 같습니다. 어떻게 이렇게 여자의 감성을 잘 풀어내냐는
인터뷰에 친구들의 전화를 많이 받고 여자는 이렇게 생각하는 게 다르다는 걸 느꼈다고
합니다.

이렇게 짧은 소설 속에 이렇게 많은 생각들을 쏟아내고, 아름다운 묘사들을
묻어냈다는 생각을 하니 정말 구입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앞으로 요시다 슈이치 소설을 더 관심 가져야 겠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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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홍빛 베네치아 시오노 나나미의 저작들 17
시오노 나나미 지음, 김석희 옮김 / 한길사 / 2003년 11월
평점 :
품절


주홍빛 베네치아, 시오노 나나미
시오노 나나미의 세 도시 이야기

'시오노 나나미'하면 '로마인 이야기'가 먼저 떠오릅니다. 로마에 별로 관심이 없어서
그런가 보다 했었지요. 이탈리아를 여행하면서, 피렌체의 대단한 자본금으로 역사에
대한 자료들을 모았고, 그것을 시오노 나나미가 활용하고 있다는 얘기가 흥미가 가더라구요.
역시 '로마인 이야기'를 빼어들기 보다, 좋았던 베네치아를 그리기 위해서 '주홍빛 베네치아'를
잡았습니다. ('은빛 피렌체', '황금빛 로마')

다 읽고 나서 보니 이것이 3부작으로 연결되어서 '주홍빛 베네치아'가 1부구요.
주인공인 마르코가 동일하더라구요. 우연히 잡게 되었는데 다행이다 싶네요 ㅎㅎ

베네치아에는 성 마르코(개신교에서는 '마가')의 유해가 모셔져 지어졌다는 산 마르코 성당이
있습니다. 종루와 광장 또한 유명하지요. 주인공의 이름도 '마르코' 이구요. 베네치아에서
꽤 유명한 귀족인 '단돌로' 가문의 자손입니다.

설명으로만은 서른 살에 원로원 의원에 10인위원회(Consiglio dei X-콘실리로 데이 디에치, CDX)
에 선출된 마르코의 첩보활동..정도로 봐서 상당히 빠른 전개와 미국식 블록버스터랄까요~
스파이 영화 같은거 상상했는데 어라? 너무 세세한 묘사와 차분한 진행 방식이 전혀~~~~
제가 알던 스펙타클( ^^;) 한 느낌이 아니더라구요.

그런데 이 스펙타클은 다른 의미로 엄청난 스펙타클이더라구요. 우리가 상상할 수 없는,
이 중세시대(1500년대, 1530년 전쯤으로 나옵니다.)의 인접된 국정과 나라들 간의 사투랄까..
그래서 베네치아뿐만 아니라 로마, 피렌체, 콘스탄티노플, 헝가리, 오스트리아, 독일, 에스파냐
같은 여러 나라들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특히 콘스탄티노플의 얘기가 베네치아만큼 많이
등장합니다.

작디 작은 나라, 베네치아.
그곳이 꽤 오랜 세월동안 한 공화국으로서 존속되었던 점들이 다른 저서에서 쓰여진 것 같은데
그것도 읽어봐야겠어요. 흥미로운 곳입니다. ('바다의 도시 이야기')
그런 면을 증명이라도 하듯, 정치적으로도 재미있는 면들이 많이 기술되고 있습니다.
귀족들의 정치 루틴이랄까요, 그런 방법들도 기술되어 있고, 아무래도 자원이라곤 없었던
곳이니 무역업에 관한 내용들도 있고, 사랑도 빠질 수 없겠지요.

그리고 시대를 느끼게 해줄 신분의 차이라던가, 결혼과 이혼의 이야기도 등장합니다.
주인공이 귀족이라 전혀 옛날 얘기같지 않은 점도 있는데, 적자와 서자의 얘기를 통해
시대를 느끼게 해주기도 합니다.

여러 세계를 넘나드는 미스터리. 살인자를 잡기위한 추리물이 아닌, 역사적 얘기라 조금 방대하면서도
거대한 규모에 살짝 허무감을 느끼기도 합니다. 결말 자체가요. 미스터리는 역시 진실이 아름다울수만은
없다는 점에서 비슷할 수도 있겠다 싶구요. 역사적 얘기들을 이렇게 재밌게 꾸며낼 수도 있구나 싶어서
무조껀 픽션만 좋아하던 제게 새로운 세계가 열린 기분이기도 합니다.

서평들에 주로 최근 유명한 작품들이 많이 올라오는 편이라
좀 뒷북인가 싶기도 해요. 98년 출간된 작품이라 제가 너무 늦었구나!
이렇게 재밌는 책을 이제 봤구나! 싶더라구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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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블린의 멜로디북 - Lovelyn's Melody Book
린 (Lyn) 지음 / 시드페이퍼 / 2010년 11월
평점 :
절판


서평




'가수 린'하면 가창력이나 작사 능력으로 평가받는 실력파 가수지만 저는 사실 좋아하는 가수는 아닙니다. 별 다른 이유가 있는건 아니고 그냥 취향과 다른 음악적 색깔 때문이었는데요. 어느 예능 프로에 출현한 것을 보면서 여느 평범한, 소녀이고 싶어하는 한 여자의 모습을 본 후로는 가수는 아닌 한 인간으로는 괜찮다는 평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그런 제 느낌처럼 이 책의 홍보 또한 '이삼십 대 여성이라면 공감할 수 있는 사랑이야기'로 내세우고 있습니다. 다른 분 서평을 보고 '뉴욕 여행기'쯤으로 생각했는데 뉴욕만 여행한 이야기는 아니라 전면에 내세우지 않은 것 같습니다. 예전 만났던 사람과 함께 했던 여행을 이제는 혼자 가서 추억을 기억하고 웃을 수 있는 지금에서야 떠나보낼 수 있는 그런 마음을 가진 이야기가 아닐까 싶네요.




글을 잘 쓰는 사람들은 작은 일에도 의미를 부여해서 자칫 팔자가 기구하다는 생각을 하게될런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사람 사는 것이 다 부딪혀지는 문제들이 태반이고 마음대로 되지 않는 일이 많겠지요. 글을 잘 쓴다는 것은 감성이 그만큼 발달되어 있어서 곱씹게 되는 문제 때문에 더 아파하는 것 같다는 생각도 듭니다. 빨리 털어버리고 잊어버리면 그만큼 써낼 거리도 없겠지요. 작가나 작사를 하는 사람들의 숙명같은 문제일 것 같은데요. 그래도 아파한 만큼 글이 되어 나오니 어느 정도는 값어치가 있는 아픔이기도 하겠지요.


 

식사하러 갔다가 옆 테이블에 앉은 어린 커플의 이야기가 들려왔습니다. 남자가 얼큰하게 취해서 여자의 자주 변하는 감정을 혼을 내더라구요. 제가 보기엔 둘 다 까마득히 어린 나이같은데 너무 웃기기도 하고 이 남자애는 참 여심을 모르는구나 싶기도 했습니다. 여자! 하면 작은 일에도 기뻐하고 반대로 슬퍼하고 또 행복해하는 감성이 정말 아름다운 것이 아닐까요. 그것을 귀찮아한다면 사는게 얼마나 퍽퍽할까 싶어지거든요.




이 책의 글들도 그렇습니다. 어느 날은 추억에 빠져서 외롭고 힘들 때도 있고 어떤 때는 또 행복감이 젖어서 더 행복해지기를 바라기도 합니다. 귀여운 린의 글씨가 곳곳에 포인트처럼 함께 합니다. 좀 짧은 글이나 뒤에 가사에 대한 이야기는 손글씨로 전부 만들었어도 꽤 괜찮았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다음 책에는 부록으로 손글씨 스티커나 엽서를 만들어서 배포하면 어떨까 괜시리 편집자 모드의 생각들이 들기도 했구요.


 

몇 군데에서 사진 찍고 여행기라고 홍보하는 책들보다는 이야기를 가득 담은 에세이 쪽이 더 맞는 것 같고 그래서 더 괜찮은 책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린이라는 이름으로 사는 것과 이세진이라는 본명으로 사는 것과의 괴리감도 이제는 좀 익숙해지지 않았을까 생각해봅니다. 미래의 그 어느 날이 아닌, 바로 지금을 좀 더 차분하게 자신의 삶으로 받아들여서 행복해지는 것. 그것을 린에게 얘기해주며 응원해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구요. 저 또한 그렇게 행복해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책 정보




러블린의 멜로디북 

발행처 (주)에스비에스콘텐츠허브, (주)준뮤직컴퍼니


2010년 10월 25일 초판 1쇄 인쇄

2010년 11월 1일 초판 1쇄 발행


지은이 린


사진 안주영 GRADE.


디자인 SEEDPOST 강상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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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의 밥상 - 밥상으로 본 조선왕조사
함규진 지음 / 21세기북스 / 2010년 10월
평점 :
품절


 

서평




이 책은 2010년 조선일보 논픽션대상 대상 수상작입니다. 먹는다는 것은 생존을 위해서도 중요하지만 미식의 측면도 무시될 수 없습니다. 그러나 미식과 장수가 때론 충돌을 하기 때문에 서양 근대 문명에서 비롯된 현대 문명이 아닌 우리의 옛 전통적 해답을 통해 이 책은 그 해답을 찾고자 합니다. 조선 시대의 왕의 밥상을 통해서 식(食)에 대해 알아보고 도(道) 또한 알 수 있습니다.





1장에서는 왕의 식사 장면을 재구성하고 2장은 역대 왕에 따른 음식과 치세의 관련성, 3장은 제도, 법도에 대해서 알아봅니다. 4, 5장은 심층적으로 양생이라는 문제를 통한 밥상의 의미를 알아봄으로 자연과 더불어 먹어야한다는 결론으로 이야기되어 집니다. 5장은 밥상 주변의 정치 문제를 통해 사람과 더불어 먹는 것에 도달합니다.


 

기록이 많지 않기 때문에 일부 저자의 각색이 있긴 하지만 도리어 학문적인 느낌이 아니라 쉽게 풀어주는 글로 썼기 때문에 접근이 용이한 면이 있습니다. 왠지 역사에 관한 책들은 사자성어나 한자가 난무할 것 같아서 읽기 전부터 꺼려지는데 이 책은 중학생 이상 정도의 아이들도 읽을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흔히 왕이라하면 큰 권력을 지니고 마음대로 했을 것이라는 막연한 생각을 갖고 있지만 당파 싸움이라던가 타국과의 관계 등으로 고생한 것은 알려진 일입니다. 그렇지만 이 책을 읽기 전에 막연히 밥상에서는 편안히 먹지 않았을까란 생각을 했는데 정말 먹는 것 자체도 고충이 아닐 수 없습니다.




왕으로서는 진상되어지는 지역의 상황을 파악할 수 있는 자리였기 때문이고 시중 드는 내관으로서는 식사 후에 왕의 건강 상태를 체크할 수 있는 자리이기 때문에 단순히 내 입맛에 맞다고 먹는 편안한 자리가 아니었던 것입니다. 그를 통해 지금의 나라의 상태를 점검하기도 하고 나라에 대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시간이기도 했습니다. (후기로 갈 수록 사적인 상황으로 바뀌었다고 합니다.)




왕자의 난 때에나 자식이 죽었을 때에 고기를 금한다던가 종교적 이유로 금했던 왕도 있고 비가 오지 않아 감선(반찬의 가짓수를 줄임), 철선(어느 반찬을 금함)을 행했던 왕도 있었습니다. 세종은 상사가 많은 편이라 철선을 할 때가 많았을 것으로 짐작하는데 그것때문에 철선과 폭식을 반복하여 건강에 무리가 왔음을 추측하기도 합니다.


 

훌륭한 대처를 보여주기도 하지만 야식 덕분에 살이 찌게 되는 현대의 사회와 비슷한 문제들도 있고 자신의 병을 키울 잘못된 음식 선택의 이야기도 있습니다. 사치스런 음식을 탐함으로 망신을 당한 왕도 있었습니다. 훌륭하기만한 이야기가 아니라 좋았습니다. 사람의 모습이 다양한게 당연하다는 생각도 듭니다. 이 2장이 좀 긴 편입니다.


 

다음으로는 3장에서 실제 먹었던 음식들과 상차림, 그 시대 그림을 통해 행사 같은 때의 상차림, 상차리는 사람들에 대해서도 언급됩니다. 이쪽은 조금 아는 얘기들도 있는 편입니다. 좀 더 직접적인 음식 이야기가 등장해서 배가 고파지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4장은 음양오행을 통한 접근법입니다. 이를 통해 조선의 왕등은 과연 장수를 했는가에 대해 질문을 하는데 이 답변으로 영국, 프랑스, 중국 왕조와 대조를 합니다. 중국보다 조금 앞설뿐 별 차이는 없는데 표를 만들어 목적의식, 식습관, 운동, 스트레스, 과로 같은 항목으로 대조합니다. 표에 따르면 목적의식, 좋은 식습관, 운동에 신경을 쓴 왕들이 주로 장수를 했습니다.




장수 하지 못한 원인은 이것보다 5장에서 정치적 문제에 있을 것이라고 추측합니다. 5장에서는 백성이 바친 것을 먹고, 백성과 나누어 먹고, 백성과 함께 굶주린다는 항목으로 이야기되어 집니다. 그러나 정치적 문제 때문에 장수하지 못했을 것이라는 부분에는 많은 부분이 할애되지 못한 것 같아서 안타깝습니다.




대신 이렇게 감선을 함으로 하늘이 나라를 도와줄 것이라는 사고 방식을 가진 왕들이 있었기에 조선 왕조가 500년 동안 장수할 수 있었을 것이라 끝맺습니다. 4장에서의 음양오행설을 통해 장수하는 것이 가능한가의 이야기만 뺐더라도 참 좋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거기에 대한 답이 정확치 않아서 읽은 후에 좀 찜찜한 생각이 드네요. 그것 이외는 많은 정보들이 있고 각 왕들의 이야기들이 다양해서 재밌습니다.


















책 정보




왕의 밥상


펴낸곳 (주)북이십일 21세기북스


지은이 함규진


1판 1쇄 인쇄 2010년 9월 25일


1판 1쇄 발행 2010년 10월 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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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아 있는 나날 민음사 모던 클래식 34
가즈오 이시구로 지음, 송은경 옮김 / 민음사 / 2010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서평




이 이야기는 주인공이 1950년대에 여행을 하면서 1920년대 과거를 회상하는 형태를 취하고 있습니다. 저명한 저택의 집사로 일을 하면서 황혼에 사랑을 찾아 떠난다는 류의 홍보글들이 돌아다니는데 사실은 그런 이야기가 아닙니다.





주인공은 아버지도 집사였고 자신도 그렇습니다. 오직 집사 일만을 하기 위해 살아왔기 때문에 좋은 아버지는 아니었습니다. 아버지의 마지막이 아들에 대한 연민이 가득할 정도로 자신의 일에서만은 철저했습니다. 아들 또한 아버지의 그 모습을 이어받듯 임종보다도 집사일에 더 우선시 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그는 예전 주인을 잃고 지금은 영국의 문화를 좋아하는 한 미국인에게 속한 몸입니다. 주인이 여행을 떠나있는 동안 집사에게도 여행을 권유합니다. 그는 이 여행을 오직 자신이 즐기기 위함이 아니라 이 저택에 필요한 일손을 만나기 위한 여행과 겸하려고 합니다. 미국인의 유머에 대응하지 못하는 불균형의 모습을 보이기도 합니다.




그는 결국 6일의 여행 끝에 예전에 일을 하면서 총무로 지냈던 켄턴 양을 만나게 되기 까지 지속적으로 회상을 하게됩니다. 이 이야기가 끝없이 자신만의 일을 위해 달려왔던 한 집사의 인생 이야기는 맞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위해 자신의 사랑을 포기한 것은 아닙니다. 켄턴양은 그를 사랑했을지 몰라도 그는 아니었습니다. 그에게는 그런 일보다도 집사라는 일을 해야한다는 의식이 유일하게 자리잡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 소설은 단순히 한 남성의 황혼에 느끼는 무력감만을 보여주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바로 시대상 때문입니다. 1920년대의 영국. 그 때는 세계 1차 대전 이후의 유럽의 모습을 보여줄 수 있는 시기입니다. 이야기 속에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의 저명한 인사들이 영국 인사들과 함께 이 집사가 일하는 달링턴 홀에 모여 세계 정세를 의논했습니다. 그래서 이 주인공은 단순히 '집사'라는 직함 뿐 아니라 자신이 세계가 돌아가는 것에 일조를 하고 있다는 자랑스러움을 지니게 만든다는 점 또한 보여줍니다.




여행을 하면서 만나는 사람들마다 영국인의 모습을 보여주는 장치를 해둔 것 같습니다. 달링턴 나리는 자신이 세계를 움직이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는 인물이라고 자만하고 그 아래 사람들은 - 집사도 마찮가지로 - 그런 일은 이해할 수 없다고 생각했던 오만함을 가진 인물입니다. 실제 그의 성격은 소심하고 유능하지 않았던 것으로보입니다. 그리고 그의 삶의 마지막은 비참했습니다.




주인공 스티븐스는 굉장히 부지런하고 똑똑했던 사람으로 보입니다. 그의 회상들만 놓고 봤을 때도 그는 세계의 돌아가는 흐름을 제대로 파악하고 있었으며 이해하지 못한 것도 없었고 주인의 기대에 부응하는 답변들도 내놓았습니다. 그의 문제점은 자신의 그런 능력을 '집사'라는 직업의 틀 안에 가두어 자신보다 현명치 못한 주인에게 충성했다는 점입니다.




켄턴 양은 현대의 부조리함을 제대로 보고 있지만 자신이 그것을 넘어설 자신이 없어서 결국 타협하고 말고, 가장 좋아하는 것을 가지지 못하고 부차적인 것에 만족을 하면서 살아가는 모습을 대변합니다.




데번 주에서 만났던 해리 스미스는 영국의 변화에 발맞추는 사람의 한명으로 민주주의를 제대로 이해하고 있고 한 사람, 한 사람의 목소리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인물입니다.





칼라일 박사는 지식층이며 사회주의 지지자이지만 그것으로 시대를 바꿀 힘이 없는 지식층으로써 해리 스미스 같은 평범한 인물을 제대로 알지 못한다고 폄하하지만 결국 그들의 사회에서 조용히 살아갈 수 밖에 없는 인물입니다.





이것은 당시 영국의 시대적 변화에 따른 모습들을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것 같습니다. 열강에 속했던 대영제국이라는 이름 하에 거둬들였던 수많은 자산들을 민주주의나 인본주의라는 이름 하에 용서해야만 하는 시대에 직면했던 모습.




대단한 주인을 모시면서 자신의 능력도 그것으로 인정받는다는 생각을 했던 스티븐스는 주인의 끔찍한 오명 아래 죽음을 털어버리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시대는 변화하여 영국인 주인을 모실 때의 그 상식과 전혀 다른 미국인 주인을 모실 수 밖에 없고 자신도 자유라는 이름 하에 인생을 즐겨야하는 숙제 또한 주어졌습니다. 경치를 즐기고 과거를 회상하면서 목적지에 닿습니다.




그리고 그는 노을녘을 보면서 달링턴 나리에 대한 일을 이제는 털어버릴 수 있게 된 거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저 해가 넘어간 후에 켜지는 불빛에 환호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단순히 삶을 즐기는 모습에 감명을 받고 다시 일어설 수 있는 시점을 찾은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이 시대의 가장 주목받고 있는 작가라는 가즈오 이시구로. 일본인으로 일본에서 태어나 영국으로 이주하여 지금은 런던에서 영어로 소설을 써내면서 영국, 이탈리아, 미국, 독일에서 상을 받고 영국과 프랑스에서 훈장을 받은 작가. 자신의 일대기를 써 내려가듯 조곤조곤하게 담담히 한 집사의 인생을 써낸 것이 확실히 범상치 않은 작가라는 생각이 드는 작품이었습니다.


 

 


 








책 정보




The Remains of the Day by Kazuo Ishiguro (1989)


남아 있는 나날


지은이 가즈오 이시구로


펴낸곳 (주)민음사, 모던 클래식 034


1판 1쇄 펴냄 2009년 7월 13일


2판 1쇄 펴냄 2010년 9월 17일


옮긴이 송은경


 





   p. 95


   "내가 이번 전쟁에서 싸운 것은 이 세계의 정의를 지키기 위함이었소. 게르만족을 상대로 하는 복수전에 가담하고 있다고 생각한 적은 결코 없었소."


  


   p. 134


   "당신이 말하는 '프로페셔널리즘'이란 것에 대해선 나도 꽤 안다고 믿습니다. 그것은 속임수와 조작으로 자신의 목적을 달성하는 것을 뜻한다고 생각됩니다. 다시 말해, 세상에서 선과 정의의 승리를 희구하기보다 탐욕과 이익을 우선 순위에 두는 것이지요. 선생이 말하는 '프로페셔널리즘'이 그런 것이라면 나는 관심도 없을뿐더러 굳이 갖추고 싶은 생각도 없습니다."


  


   p. 147


   우리에게 직업적 권위를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는 주인의 도덕적 진가에 있었기 때문이라고 말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p. 149


   자신이 봉사해 온 세월을 돌아보며, 나는 위대한 신사에게 내 재능을 바쳤노라고, 그래서 그 신사를 통해 인류를 봉사했노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 그런 사람만이 '위대한' 집사가 될 수 있다.


  


   p. 159


   "송구하기 그지 없습니다만 나리, 이건 우리 나라의 방식입니다."

   "그건 또 무슨 소리요?"

   "제 말씀은, 고용인이 옛 주인에 대해 논하는 것은 영국의 관습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나리."

  


   p. 294


   사람이 과거의 가능성에만 매달려 살 수는 없는 겁니다. 지금 가진 것도 그 못지않게 좋다, 아니 어쩌면 더 나을 수도 있다는 걸 깨닫고 감사해야 하는 거죠."


  


   p. 299


   "달링턴 나리는 나쁜 분이 아니셨어요. 전혀 그런 분이 아니었습니다. 그리고 그분에게는 생을 마감하면서 당신께서 실수했다고 말씀하실 수 있는 특권이라도 있었지요. 나리는 용기 있는 분이셨어요. 인생에서 어떤 길을 택하셨고 그것이 잘못된 길로 판명되긴 했지만 최소한 그 길을 택했노라는 말씀은 하실 수 있습니다. 나로 말하자면 그런 말조차 할 수가 없어요. 알겠습니까? 나는 '믿었어요.' 나리의 지혜를. 긴 세월 그분을 모셔 오면서 내가 뭔가 가치 있는 일을 하고 있다고 믿었지요. 나는 실수를 저질렀다는 말조차 할 수 없습니다. 여기에 정녕 무슨 품위가 있단 말인가 하고 나는 자문하지 않을 수 없어요."


  


   p. 300


   "즐기며 살아야 합니다. 저녁은 하루 중에 가장 좋은 때요. 당신은 하루의 일을 끝냈어요. 이제는 다리를 쭉 뻗고 즐길 수 있어요. 내 생각은 그래요. 아니, 누구를 잡고 물어봐도 그렇게 말할 거요. 하루 중 가장 좋은 때는 저녁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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