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필름이 남아 있을 때 - <스트로보> 개정판
심포 유이치 지음, 권일영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7년 9월
평점 :
품절


어린 시절 사진에 관심을 좀 가져본 사람이라면 사진작가의 삶을 자세히 꿈꿨을 겁니다.
새로운 도시를 간다던가, 자연이 펼쳐진 아프리카로 떠난다던가, 전쟁의 가장 가까운
곳에서 소식을 전하는 종군기자를 떠올린다던가. 그러나 현실은 사진으로 밥 벌어 먹기
위해 모델들의 가식적인 모습을 찍을 수 밖에 없고, 내가 원하는 피사체가 아니라 누군가
정해주는 것만을 찍을 수 밖에 없는 것이겠지요.

그래서 자신의 재능의 유무는 상관없이 그 길로 나갈 자신이 들지 않는, 험한 길인 것도
같습니다. 이 책은 '스트로보'라는 제목으로 출간했던 심포 유이치 책을 재출간한 사진
작가에 관련된 이야기입니다. '포토그래퍼'라는 단어를 요즘은 많이 쓰지만, 왠지 50대
의 주인공에게는 '사진작가'란 표현이 더 어울릴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제겐 심포 유이치의 책으론 처음 읽는 것인데 약력을 보니 꽤나 화려하네요. 에도가와
란포 상으로 대뷔하여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고 요시카와 에이지 문학 신인상, 야마모토
슈고로 상, 일본 추리작가협회 상을 수상했고 이 책으로 나오키상 최종 후보에 올랐다고
합니다만 나오키상과 인연은 아직 없는 것 같습니다. 다 읽고 그의 약력을 보니 충분히
공감이 가고 되려 나오키상을 못받은 것이 이상할 정도 였습니다.

123회 나오키상은 가네시로 카즈키의 'Go'와 국내미출간 작품인 후나토 요이치의
'무지개 골짜기의 5월'이 공동수상했는데 후자는 읽어보질 못해서 모르겠는데 'Go'
에 비하면 이 작품이 더 낫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나 'Go'가 수상한 것은 시대의
교포들의 삶을 반영하고 있는 면 때문이겠지요.

다섯 개의 장으로 구성되어 있고 배치를 거꾸로 해놨습니다. 5장 부터 시작하고 시간의
순서도 역순입니다. 50세, 42세, 37세, 31세, 22세 순입니다. 살짝 추리적인 요소도
포함하고 있습니다. 흔히 20대의 정열로부터 시작해서 테크닉이 늘고 대신 새로움은
없어지는 50대로 차근히 진행되는 성장 소설같은 패턴을 갖거나 혹은 아예 타임슬립
하듯이 회상하는 것처럼 현재와 과거를 넘나는 시간적 패턴을 갖는 소설이 많은 편일
겁니다.

이 소설은 역순으로 배열함으로써 단순히 역순 배치가 아니라 신기하게도 50세에서
이 사진 작가의 열정을 볼 수가 있습니다. 첫장부터 세번째 장까지만 이 소설이 있었다면
단순히 성공한 사진작가의 부인 속썩이는 내용이 되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몇번의 부인 이외의 여자들이 이야기에 등장하면서 너무 당연한듯 쓰여지는 것에
놀랐고, 사진계나 기자계의 현실인가 하면서 괜히 일반화의 오류를 범하기도 했지만,
그런 씁쓸한 내용이 전부인 것만 같았습니다.

정작 불륜에 대한 문제는 전혀 아무렇지도 않고 사진을 위해 애인이 떠나는 걸 참고
부인을 모른척한다는 패턴이 질릴 정도였으니까요. 그럴 땐 과감히 별을 확 빼버리며
평가를 하는 편인데 그런 기분 나쁜, 개인적 취향과 반대되는 이야기를 읽으면서도
이 소설에 별을 다섯 개 매긴 것은 다른 곳에 있습니다.

광고 업계에서 어느 정도 이름이 있고 심지어 새로운 것을 찍을 줄 모르는 나이 든
사진 작가가 되어 가고 있어도 그는 피사체를 찍기 위해 달리는 사람이고 싶다는
점입니다. 안주해도 될 위치이고, 안주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지만 그는 50세의
이야기에서 비를 맞으며 뜁니다. 수많은 렌즈와 카메라들을 둘러매 힘이 들어
한 카메라만을 챙기면서 '사진작가'이고 싶은 주인공.

영정 사진을 찍어주면서 옛 동료의 사랑을 떠올리며 회상하고 부인을 그렇게
속 썩이면서 다른 사람을 만났어도, 그 부인과 헤어진다면 함께 해 온 자신의
세월을 버린다고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이 이야기의 처음에 놓여있는 에피소드
지만 책을 다 읽고 그 부분을 읽으면 이 주인공 기타카와가 얼마나 부인을
사랑하는지는 느끼게 됩니다. 마치 그 느낌이 너무 새로울 정도입니다.
그에게 사진은 단순히 찍는 행위만을 갖고 있지 않기 때문에 부인에게 영정
사진을 맡긴다는 것은 많은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그의 42세는 예전에 만났던 하루미의 죽음을 통해 전개 됩니다. 자신을 이용
했다고 생각한 제자는 자신을 버리고 또 다른 남자를 버리고 그들을 이용해서
더 넓은 세계로 갔다는 사실이 불쾌했는데 사실 그는 그것을 불쾌해한 것이
아니라 그녀의 타고난 재능과 끊임없이 도전하고자 하는 그 열망이 부러움을
인정하지 않은 부분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런 그녀에게 마지막으로 해줄 수 있는 일은 자신이 마지막 필름들을 현상
해서 책으로 낼 수 있게 도와주는 것이라고 부인의 가슴에 못을 박으면서도
그는 그것이 사랑이나 애정의 문제가 아닌 도의라고 생각하는 것 같은 이상한
동료 의식도 있습니다.

그리고 37세에는 모델과의 사진을 찍어 돈을 빌려달라고 하는 옛 스승이
등장합니다. 그의 그런 행동은 구차하거나 불쌍한 것이 아닌, 기타카와의
미래 모습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는 그토록 싫어했던 스승의 모습을 자신이
밟아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면서 42세 때의 이야기를 보면 별로 달라
진 것 같지 않지요.

31세때의 이야기는 독립을 하기 전의 모습입니다. 대형 출판사를 다니면서
이대로 안주하여 기사에 맞는 사진만을 찍을 것인가, 아니면 독립을 할
기반을 마련할 것인가에 대해 고민하던 시절. 기타카와 역시 그러했고
어떻게 찍느냐에 관해서 고심하던 때입니다. 이 때는 결혼 전으로
회사에서 만났던 선배가 있었는데 그녀가 자신을 생각해서 그토록 냉정하게
사진을 제대로 찍는 것을 밀어붙였다고 생각했는데 그것이 아니었던 뒷
이야기가 참 씁쓸했습니다.

이 때 부인을 우연히 만나게 되면서 그녀의 사진을 보며 많은 생각을
하게 되어, 둘은 결혼에 이른 것 같습니다. 어떻게 사진을 찍게 되었냐는
그녀의 질문에 마치 회상처럼 마지막 22살의 이야기가 전개 됩니다.

1969년의 이야기인데 학생운동이 강하던 시절인 것 같습니다.
기타카와는 빨리 학교를 그만두고 아르바이트로 실무를 익혔는데
친구 구즈하라는 학생 운동 사진을 찍다가 어느 샌가 그 중심에
서게되고 이상한 행동을 하다가 결국 죽고 맙니다. 그가 남긴 카메라를
받아들고 이상해서 수소문을 하다보니 그의 죽음을 접합니다. 그래서
왜 그가 죽었는지 알아보러 다니는 이야기입니다.

구즈하라에게 사진이란 정말 큰 의미였던 것 같습니다. 그는 살아온
발자취를 담고 싶어했고, 그것을 하지 못하게 되었기에 좀 더 강한
발자취를 찍고 싶어했습니다. 그리고 제대로 그것을 써 줄 친구에게
카메라를 보냈습니다.

기타카와에게 이 마지막 일화가 없었다면 그는 그저 평범한 사진작가
의 이미지로 기억되었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이 구즈하라란 친구의
이야기가 있었기 때문에 그가 간혹 타성에 젖은 사진 작가 모습을
하고 있더라도 그의 사진은 좀 다르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부인에게 자신의 영정 사진을 맡긴다던 이야기도 이 부분을
읽고나니 더 중요한 의미를 지녔다고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에게 사진이란 자신의 인생을 담아온 모든 것입니다. 그래서
부족한 시절도 있었고, 큰 세계를 찍지 못한 것에 대한 질투도
있었고, 부인을 힘들게 했던 시절도, 부끄러운 짓을 했던 시절도
있었지만 비로소 자신의 삶으로 모든 것이 모아지기에 그런
사진에 더 애정을 갖고 20대와 다른 열정을 품을 수 있는 것
같습니다.

요즘은 디지털 카메라의 보급으로 인해서 사진이 너무 친숙해져 있고
예전 필름 카메라 시절만큼 비용도 많이 들지 않습니다. 그래서 더 많은
낭비되는 사진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그 순간의 장면이 모여서
한 사람의 추억을 이루는 것은 그 때와 다른 것이 없겠지요.
단지 사진을 담으려는 행위로 추억을 정리하는 것보다 좀 더 가슴에
담아두는 순간을 기억해보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원제 : 스트로보)
Sutorobo 2000
랜덤하우스코리아(주)
초판 1쇄 발행 2007년 9월 27일
권일영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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랜드마크
요시다 슈이치 지음, 오유리 옮김 / 은행나무 / 2006년 2월
평점 :
절판


그 도시를 상징하는 표식같은 건물을 가리키는 '랜드마크'.
요시다 슈이치의 '랜드마크'는 어떤 이야기일지 궁금해서 펼쳐봤는데
너무 도시적이며 너무 어른스러운 이야기였습니다.

어느 작가를 떠올릴 때 다양하게 써나가는 작가도 있지만
좀 대표되는 이미지로, 정형화된 타입도 있습니다.
저는 요시다 슈이치 소설을 '악인'을 시작으로 읽어서
선입견을 갖게 되어 노동자 계층에 대한 캐릭터를 내세우지
않는 책을 보면 좀 놀랄 때가 있어요. 그래도 잊지 않을 때쯤
한 명씩 등장하곤 하는 것 같아요.

이 소설의 주인공은 두 명입니다. '오미야 역'에 세워지는 건물의
노동자 중 한 사람인 시미즈 하야토. 다들 도호쿠 지방 사투리를 쓰지만
그 만은 규슈에서 왔기에 이름대신 '규슈'라고 불리우며 기숙사에서
함께 지냅니다.

다른 한 명은 그 건물의 디자인을 맡은 이누카이 요이치. 이 쪽
일이 그렇듯이 일중독일 정도로 열심히 합니다. 독특하게 나선형으로
건물을 만들고 싶어서 그런 느낌을 고안해냅니다. 이 부분을 봤을 때는
건물 자체가 나선형으로 올라가는건가 하고 생각을 했는데 삽화를 보고
뒷부분을 읽으니 건물 자체는 일차 형태이고 내부가 회전하며 올라가는
형태인 것 같습니다. 건물 이름은 O-miya 스파이럴.

이 책의 제목이 그렇듯이 두 주인공이 연관되어 있는 이 건물은
두 사람에게 랜드마크('상징')이고 더 나아가서는 이 도시의 랜드마크인 것 같습니다.
이런 건물의 구조는 상당히 불안정하여 고강도의 심리스 강관을
사용해서 기둥을 만들어 넣었는데 그 이야기도 이상하게 안정감을 주지 않습니다.
그래서 이 이야기의 상징이 되는 느낌입니다.

하야토는 이야기 처음부터 정조대를 외국에서 주문해서 차게됩니다.
그래서 남자들끼리 공동생활 하는 곳에서 무언가 안좋은 일이 있었나
하는 추측을 하며 읽기는 시작합니다. 그러나 그런 일이 아니라, 하야토에게는
누군가 자신에게 관심을 가져주는 문제의 표상으로 '정조대'를 선택
했던 것 같습니다.

그는 사람들과의 교류 속에서도 안정감을 얻지 못하고 자꾸 불안해합니다.
여자친구인지 아닌지 모를 고즈에가 있지만 다른 사람들이 바라보는
그는 또 다른 사람입니다. 그 안에서 편안함을 느끼기도 하지만 그녀와
결혼이 쉽게 이루어지지도 않습니다.

건축에 대해 관심 조차 없는 이누카이의 부인과 만나던 시절, 자신이
너무 좋아하는 건축가의 작품을 꼽은 것을 보고 그녀와 결혼하게 된
것 같습니다. 그런데 막상 집을 사서 살다보니 그 집에서 아무런 따스함도
느끼지 못하고 바람을 핍니다. 상대 여자 또한 죄의식을 갖고 있고
이누카이는 처가집으로 간 부인에게 신경이 쓰여 견딜 수가 없습니다.
 
자신이 원하던 건물을 올리면서도 만족감을 얻지 못하고 무언가 인생이
비어만 가는 것 같은 이누카이와, 자신 하나 없어져도 아무도 모를 것
같은 불안감 때문에 정조대 열쇠를 복사해서 짓고 있는 건물의 매 층에
하나씩 넣어두는 하야토.

하야토는 여기서 이렇게 일만하다가 죽지는 않을꺼라고 같이 일하는
사람들을 무시하고 그 일만하다가 자살한 사람의 일화로 이 이야기는
끝을 맺습니다.

이누카이의 꿈대로 건물은 올려지지만, 그 건물에서 자살하는 사람이
나와서 아무도 여기에 살고 싶어하지 않을 꺼라는 누군가의 말이
마치 이누카이의 마음을 대변하는 것 같습니다. 공허하고 공허한
두 사람의 마음이 완성되지 못하고 죽은 사람을 담고 있는
그런 건물과도 같은 느낌입니다.

요시다 슈이치는 이 소설을 통해서 '소통의 부재'를 그리고 있습니다.
사람과 사람이 만나서 통하는 것은 일부라고 하여도 완전히 상대를
이해할 수는 없는 것인데 그의 소설은 그 부재가 너무도 커서
사람을 잠식시키는 것만 같습니다. 그들이 바라는 것은 그저
안정감과 따스함. 그것밖에 없을텐데 말이지요.
그들이 조금은 행복해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드는 그런 이야기입니다.








Randomaaku (2004)

도서출판 은행나무

1판 2쇄 발행 2006년 2월 25일

오유리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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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너럴 루주의 개선 가이도 다케루의 메디컬 엔터테인먼트 3
가이도 다케루 지음, 권일영 옮김 / 예담 / 2008년 6월
평점 :
절판


'바티스타 수술 팀의 영광'의 다음 작품인 '나이팅게일의 침묵'과
'제너럴 루주의 개선'은 동시에 쓰여진 책인데 출판사의 권유로
분권되어 출간되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동시에 일어나는 일입니다.
두 책의 소재가 너무 다르다보니 '나이팅게일의 침묵'은 조금
홈드라마류의 따스한 느낌으로 가고, 이 '제너럴 루주의 개선'은
ICU (집중치료실, 구명병동)을 다루기 때문에 좀 더 의료 소설에 가깝습니다.

'바티스타 수술 팀의 영광'이 미스터리의 형태를 띄었기 때문인지
이후 소설들마다 흥미가 반감된다고 감상평이 많은 편입니다.
그러나 이 소설의 역자도 설명하고 있듯이 미스터리라기 보다는
엔터테인먼트 소설이라고 생각하고 읽으면 더 재밌게 느껴지는 것
같습니다.

구명구급센터의 하야미 부장은 전설적인 인물로 평가받을 만큼
의학적으로도 지도자로도 뛰어난 의사입니다. 그러나 어느날 그를 고발하는
무명의 문서가 다구치의 리스크 매니지먼트 위원회로 날라듭니다.
그래서 그 상황을 조사하려고 다구치가 조사를 하게 됩니다.
그러면서 '리베이트'라는 문제를 놓고 '에식스 커미티'도 등장합니다.

구명병동에서의 예산 문제, 뇌물 문제, 그것에 관련된 의료 윤리에
대한 내용을 다루는 소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분권된 '나이팅게일의 침묵'과 '제너럴 루주의 개선'.
차라리 이 두 이야기가 한권으로 나왔다면 좀 더 완성도 높은
소설이 되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나이팅게일의 침묵'은
수사의 이야기가 잠시 들어갔는데도 뭔가 수사물 같지 않고
홈드라마 같은 느낌이 듭니다. 어딘가 임팩트가 부족한 면이 있지요.
가노 경시정이라는 인물이 나왔다는 점은 수확이었습니다만.

그리고 '제너럴 루주의 개선'은 ICU 얘기를 다루고 있으면서
그 문제점을 얘기하기 위해 '에식스 커미티(윤리문제 심의위원회)'
가 등장합니다. 이것은 '하얀거탑'의 일부를 보는 것 같은,
병원 경영에 관한 이야기로 흘러갑니다. 이쪽은 너무 윤리나 병원
경영 이야기 쪽으로 흐르기 때문에 좀 말장난 하다가 끝나는 느낌
도 듭니다.

그리고 다구치적인 결말은 캐릭터상 그럴 것 같아서 마음에 들었는데
연애 소설적 결말이나서 조금 뜬금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이팅게일의 침묵' 역시 그랬기 때문에 역시 한권에서 나온 소설이구나
싶은 통일성은 있었지요. 전 편에서도 그랬지만 시라토리의 활약이 두드러지지
않아 조금 아쉬웠습니다. 그리고 히메미야가 드디어 등장해서 반가웠습니다.
다음 편인 나전미궁에서 그녀의 활약이 두드러진다니 더 기대되네요.

다구치-시라토리 콤비와 그 동안 시라토리의 불만에서만 등장했던
히메미야의 출현, 천재적인 의사 하야미, 간호사 쇼코와 하나부사
간호사장. 그들의 병원 이야기도 역시 흥미로웠습니다만 확실히
'바티스타 수술 팀의 영광'만하지는 못하는 것에는 반박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General Rouge No Gaisen

(주)위즈덤하우스

초판 1쇄 2008년 6월 20일

권일영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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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후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87
나쓰메 소세키 지음, 윤상인 옮김 / 민음사 / 2003년 9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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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쓰메 소세키. 일본에 대해서 관심이 없는 사람들도 들어봤을 소설가일 것 같습니다.
일본 소설을 많이 읽어왔는데도 정식으로 나쓰메 소세키 책을 제대로 다 읽은 건
불과 얼마 안되었습니다. '마음'을 읽었는데 역시 고전은 다르구나, 란 생각이 들어
집어든 것이 '그 후'.

이 이야기는 삼각 관계에 관한 소재를 다루었다고 해서 읽지 말까 고민도 했었습니다.
그 쪽 이야기를 싫어하는 탓에 의식적으로 거부하는 편인데, '마음'에서 그랬던 것
처럼 육체적인 관계라던가 진흙탕 속에서 뒹구는 싸움이 되지 않을 것임을 알았기에
볼 수 있게 된 것 같습니다.

주인공은 서른살의 다이스케. 영어 잡지를 보고 친구를 위해 번역 일도 맡아주는
것으로 보면 그 시대의 지식인이었던 것 같습니다. 서른 살이 되기 까지 직업 한번
가져보지 않았던 이 다이스케에게 집안이 좀 사는 편이라서 원조를 해줍니다.
그리고 지속적으로 혼담 이야기가 오고 가지만 그는 여러 변명들로 거절하게 됩니다.

이 소설은 단순히 삼각 관계를 다룬 연애 소설이라는 표현보다는 시대상을 보여주는
소설이라는 점에서 더 의미가 있을 것 같습니다. 다이스케의 아버지는 무사 출신으로
메이지 시대의 사업가로 변신했고 형은 그 시대의 사업가로 적응해 살아가며, 아무
렇지도 않게 바쁜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일종의 지식인 다이스케는 누군가를 죽였기 때문에 할복을 할 수 있는
무사 정신을 이해할 수 없고, 그런 무사가 사업가로 변신한 것도 이해할 수 없습니다.
형의 힘들게 살아가며 만나고 싶지 않은 사람들과의 관계를 유지하는 삶도 이해할
수 없습니다. 자신만은 직업에 더렵혀지지 않고 사유하는 고귀한 존재라고
자부합니다.

다이스케란 인물은 너무 자신의 이상을 관철하는 나머지 자신의 감정조차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사는 도리어 진실을 보지 못하는 애처로운 저능아입니다.
저능아라는 표현이 과격할 수 있지만,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면서 그렇게
경멸하는 아버지와 형의 돈으로 살아가는 그를 제대로된 지식인이라고 할 수
있겠는지요.

처음 이 소설을 읽으면서 전혀 사랑의 감정이 느껴지지 않아서 혹시 내가 예상
하는 인물이 아닌, 다른 인물과의 불륜인가 고민도 했었습니다. 그러나 다 읽고
보니 이것이 바로 '다이스케'라는 인물의 문제점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라는 인물의 부조리함은 그가 사회를 바라보는 시각과 가족이나 다른 인물을
바라보는 그런 경멸의 시각이 결국 자신에게 돌아오는 경멸임을 깨닫지 못했던
문제였습니다.

그가 경멸했던 사람들은 자신의 힘으로 돈을 벌고, 결혼해서 살아갑니다.
그 안에서 발생하는 문제로 인해 제대로 살던지 그렇지 못하던지의 문제는
접어두고 말입니다. 그러나 다이스케는 자신의 그 고고한 철학 덕분에
자신이 사랑하는 여자조차 선택하지 않고 친구를 위해 양보합니다.
그러면 그 고고한 철학을 끝까지 관철해야했습니다. 그것이 다이스케라는
인물이 원했던 삶이었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 철학을 굽히고 사랑의 감정에 친구를 배반합니다.
그리고 사랑한다고 하는 여성의 건강을 해칠 것을 생각도 못하고
결단을 내려 그녀를 구해주지 못합니다. 그가 진정으로 사랑한다면
뺏어와서라도 그녀와 함께 했어야했습니다. 이것이 비록 진흙탕 싸움이었다고
해도 그는 그녀를 위해서라도 그렇게 했어야 합니다.

그렇게 싫었던 직업을 그녀 때문에라도 구하려고 하는 그는,
결국 친구의 결정을 기다리는 것 밖에 하지 못하고 그렇다고 자신의
결정에 대해 행복해하지도 못합니다.

자신이 우유부단한 것이 아니라 어느 쪽도 볼 수 있다는 변명으로
합리화하려 합니다. 이것은 결국 친구도, 그녀도, 자신도.. 그리고
자신의 가족들 모두에게도 고통으로 몰아넣는 일이 됩니다.

그는 사랑보다 자신의 신념을 더 우선시했던 인간입니다.
그러나 그 신념을 저버릴만큼 그녀를 원했다면 더 강력하게 그녀를 뺏어야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신념을 완전히 버리지 못했기 때문에 결국 우왕좌왕 할 수
밖에 없는 상황에 놓이게 됩니다.

그리고 마지막을 읽으면서 그가 희망적인 결말을 얻을 수 있을꺼라는
생각이 들지 않음은, 그의 이런 사고들을 읽어왔기 때문일 것 같습니다.

나쓰메 소세키에게는 그 시대의 변해가는 인간상들을 다루면서
그 시대에 탄생한 지식인이 과도기적 인간상을 경멸하는 상황을 만들어,
결국 자만하는 지식인을 반대로 경멸함으로써 독자에게 생각할 수 있는
부분을 제시합니다.

그래서 이 소설은 삼각관계를 통한 연애소설이 아니라 그 시대의 인간상을
바라보며 그의 내면을 묘사함에 있어 의미가 있는 것 같습니다.

'산시로', '그 후', '문'으로 이어지는 삼부작이라고 하는데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시리즈로 다 나오려나요.








それから (1909)
세계문학전집 87
민음사
1판 22쇄 2009년 8월 10일
윤상인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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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착의 론도 오리하라 이치 도착 시리즈 1
오리하라 이치 지음, 권일영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08년 11월
평점 :
절판


'도착의 론도' 일본 추리 소설에 관심을 갖고 계신 분들이면
흔히 이 책을 추천하는 분들은 많이 접하셨을 것 같습니다.
저는 '도착'이라는 단어에 반감을 갖고 있어서 (반감이 없는 쪽이 이상하겠지만요)
미루고 있다가 서술 트릭이 궁금해서 보게 되었습니다.

'가위남'을 읽으면서 뒤통수 맞은 것 같은 느낌을 갖었었는데
그런 서술 트릭이 읽고 싶었거든요.

성도착증 같은거 얘기할 때 그 도착과 도작은 일본어 발음이 같습니다.
그래서 그걸 이용해서 설정을 했습니다. 론도는 순환을 의미합니다.
간단히 말하면 도착과 도작이 계속 순환하는 방식입니다.

주인공 야마모토 야스오는 월간 추리 신인상을 목표로 작품을 씁니다.
아무래도 서술 트릭의 스타일이다 보니 꽤 세밀하게 서술되는 느낌이
있어서 자칫 지루해질 수도 있습니다. 문체는 상당히 깔끔해서 쉽게,
빨리 읽는 편입니다.

야마모토의 작품은 지망한지 5년만의 쾌거인데, 그것을 워드로 타이핑
해준다던 친구가 잃어버립니다. 그 원고를 나가시마 이치로가 주워서
돌려주려다가 상금을 보고 욕심을 냅니다. 그래서 그 친구인 기도 아키라를
원작자로 생각하고 살해하지만, 원작자가 아닌 것을 알아냅니다.
그리고 그 작품 '환상의 여인'을 다시 쓴 야마모토 야스오를 때리고
그 작품을 훔쳐 달아납니다.

야마모토 야스오는 원본을 우체국에 가서 부칩니다. 그리고 쓰러져
병원 신세를 지게 됩니다. 재활을 하며 자신의 작품으로 1등을 한
시라토리 료에 대한 복수를 다짐합니다.

순서는 아래와 같습니다.

제1부 도작의 진행
제2부 도착의 진행
제3부 도착의 도작

추리 소설의 흥미로움은 독자가 결말을 함께 예상해보게 된다는 점에
있습니다. 그것이 자신이 예상했던 결말과 동일하다고 할지라도 그
진행 방식이나 문체에 있어서 훌륭했다면 분명 극찬을 받습니다.

그리고 반면에 전혀 예상할 수 없는 작품들도 종종 있는데 그럴 때
많은 사람들의 뇌리에 크게 박히고 극찬을 받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이런 소설의 약점은 터무니없을 수 있다는 위험성도 있습니다.
어느 정도 개연성을 갖고 있지 않은 결말을 지닌 작품도 있기 때문입니다.

전혀 범인이나 진상에 대한 설명이 없다가, 결론에서 모든 것이 나와
마무리 지어지는 조악한 느낌의 작품은 정말 시간 낭비였다는 생각
마저 들게 하지요.

그런 의미에서 서술 트릭은 과정에 충실합니다. 언어로 독자를 속이고
그 틈을 이용해서 캐릭터들은 마음대로 다른 곳에 가 있는 의심을
즐기면서 움직이거든요. 그래서 과정이 중요한 서술 트릭은 읽는
재미가 있습니다.

도착의 론도 또한 그런 의미가 있는 책입니다. 이러한 과정이지 않을까
예상했는데 좀 다른 형태로 나타나거나, 또 다른 이야기가 있었다던지
하면서 독자의 생각을 넘어섭니다.

이 책의 추리 과정을 전부 맞춘 분이 있을까 궁금하네요.
저는 일부는 예상하긴 했는데 전체적인 모습은 상상을 못했거든요.

그런데 이 책의 소재나 결말이나 그런 설정들은 단순히 제 취향이 아니라
별 2개 정도의 작품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서술 트릭의 흥미로운
점을 마음껏 활용했기 때문에 3개로 매겨봅니다. 혹시 그런 제 취향과
다른 분이라면 별 4~5개는 충분히 줄 수 있는 작품이 아닐까 생각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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