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궐로 떠나는 문양여행 - 궁궐 건축에 숨겨진 전통 문양의 미학 인문여행 시리즈 17
이향우 지음 / 인문산책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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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달 전엔 공기청정기와 정수기를 점검 나온 직원의 휴대폰을 무심코 보게 됐다. 소박한 꽃모양을 단순하게 규칙적으로 배열해서 이루어진 그것은 문살의 문양이었다. 업무에 방해가 될까봐 평소엔 꼭 필요한 얘기가 아니면 되도록 조용히 있는 편인데 그날은 실례를 무릅쓰고 물어봤다. “죄송하지만 휴대폰에 있는 문살, 어디서 찍으신 거예요?” 뜬금없는 질문이 귀찮았을텐데 그분은 흔쾌히 알려주었다. “정말 예쁘죠. 진천 대흥사에서 찍은 거예요알고 보니 불교신자인 그분은 어쩌다 여행을 가면 꼭 주변 사찰을 둘러보는데 그때 찍은 거라고.


 

한옥의 굴뚝에 매료된 적이 있다. 큰아이가 어렸을 때 참석한 박물관 수업에서 답사로 우리의 건축양식이 잘 보존된 곳을 몇 군데 둘러 보았는데 그때 눈에 들어온 게 굴뚝의 모습과 굴뚝을 장식한 문양이었다. 음식을 만들고 보온을 위해 불을 피우고 그 연기가 나가는 곳인 굴뚝을 이렇게 아름답게 꾸몄다니. 감탄이 절로 나왔다.


 

<궁궐로 떠나는 문양여행>이 출간되었을 때 반가웠다. 우리의 문양을 본격적으로 살펴볼 수 있을거란 생각에. 무엇이든 알아두면 그제야 눈에 들어오는 것이 있는 법이니까.


 

시대에 따른 유행이나 인식의 차이는 있겠지만 고대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인간 누구에게나 아름다움에 대한 기본적인 욕구가 있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한국인의 미적 정서는 아름다움을 추구하지만, 지나치게 드러나지 않으면서도 격조 있는 검박함에 있다. - 11


 

저자 이향우님은 <문양여행>이 첫만남이다. 어떤 분인지 궁금해서 저자소개를 유심히 봤는데 우리궁궐지킴이로 활동하면서 우리 궁궐의 아름다움을 알리는 책을 힐링여행 시리즈로 여러 권 출간했다는 걸 알게 됐다. 궁궐과는 지리적으로 먼 곳에 살아서 궁궐에 대한 지식이 전무한데 저자를 통해 우리 궁궐의 사소한 것들까지 제대로 알 수 있을거란 생각이 들었다.


 

책은 [궁궐 건축에 숨겨진 전통 문양의 미학]이라는 부제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궁궐의 문양과 상징에 대해 다루고 있는데 한국인의 미학과 미의식’ ‘조선 궁궐의 상징과 의미’ ‘궁궐의 서수 조각과 장식’ ‘궁궐 꽃담의 문양와 은유’ ‘색의 언어, 단청’ ‘궁궐 편액의 전통 문양이렇게 여섯 부분으로 나누어 설명하고 있다.


 

동양인의 생활 미술 속에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동물로 신성시되어왔던 용은 황제나 왕에 비유되어 왕권을 상징하며, 각기 다른 성격과 능력을 지닌 모습으로도 나타난다. 실재하지 않으면서 오히려 인간의 끊임없는 상상력을 통해 천태만상의 모습으로 천변만화의 능력을 가진 동물이 동양문화권의 용이다. 따라서 정전 월대의 답도나 정전 내부의 소란반자 등 왕이 위치하는 곳에는 용을 두어 왕권을 상징했다. - 50


 

저자는 본격적으로 문양에 대해 이야기를 하기 전에 궁궐 건축에서 볼 수 있는 문양의 종류를 먼저 일러준다. 문양은 크게 실물이나 동물, 자연 형태의 사물을 형상화한 형상 무늬’, 직선이나 곡선의 교차로 이뤄지는 추상적인 기하 무늬’, 장수나 행복 같은 좋은 일을 상징하는 길상문자문으로 나뉘고 각각의 무늬마다 세부적으로 다시 몇 개의 문양으로 나누어진다고 한다.


 

흔히 어처구니로 알려져있는 궁궐 지붕의 추녀마루에 있는 토우는 정식명칭이 잡상이라고 한다. 악귀의 침입을 막기 위함이라는 잡상을 중국 것과 비교할 수 있도록 사진이 수록되어 있는데 팔이 안으로 굽는 것인지 모르겠으나 우리 것이 더 독특해서 좋았다.


 

광화문의 해치상에 대해서도 꼼꼼하게 설명하고 있다. 해치라는 명칭이 어떤 과정으로 불리게 되었는지, 해치의 형상이 중국과 우리가 어떻게 다른지, 해치상의 부분적인 의미는 무엇인지, 그리고 해치상이 원래 있었던 위치가 어디인지 알려주고 있다. 하지만 명칭을 해치’ ‘해태모두 사용하고 있어 혼동을 주기 쉽고 내용 연결이 자연스럽지 못한 점이 아쉬웠다.


 

해치가 처음 제자리를 잃게 된 시점은 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 청사 건축 공사로 인해 경복궁 담이 헐리고 궁궐터에 길이 뚫리는 등 모든 것이 망가지던 때였다. - 121

 


담장이나 벽면을 무늬로 아름답게 꾸며놓은 담장을 꽃담’ ‘화초담이라고 부른다. 초기엔 아랍에서 수입한 타일을 이용해 담장을 장식하기도 했지만 성리학을 국가 통치의 이념으로 삼았던 조선시대에는 화려함을 멀리하게 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흔한 벽돌이나 깨진 기왓장을 이용해 소박하고도 아름답게 치장할 줄 알았던 옛사람들의 감각은 지금 현대인의 시각으로 봐도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만들어 진 지 100년이 넘은 경복궁 자경전 서쪽 담에 펼쳐진 꽃담 문양은 가까이 볼수록 형상을 만든 기법이 섬세하고 아름답다. 매화, 모란, 국화, 석류 등의 형상 무늬와 장, 춘 등의 길상문, 그리고 귀갑문, 만자문 등의 기하 무늬로 구성된 자경전 꽃담은 은유와 상징으로 가득 채워져 오늘날까지도 그 아름다움을 보여주고 있다. - 177.

 


일반적인 신국판보다 다소 작은 사이즈의 책에는 컬러 사진이 가득하다. 어찌 보면 글자보다 사진이 더 많다고 여겨질 정도다. 본문 곳곳에 자리한 사진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모두가 제각각 다른 문양이어서 더욱 놀랍다. 볼거리 측면에서 완전 만족감을 느낄 수 있는 책이지만 내용면에서는 조금 아쉬웠다. ‘궁궐 건축의 문양은 한국문화의 정수를 드러내는 집결체라고 하는데 여러 종류를 나열하는 것에 그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어쩌면 내가 저자의 책을 처음이어서 이전의 책과 연결짓지 못하는 것일수도 있다. 언제든 궁궐을 방문하는날 꼭 챙겨야 할 책임은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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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서오세요, 책 읽는 가게입니다
아쿠쓰 다카시 지음, 김단비 옮김 / 앨리스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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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어야 할 책은 많고, 읽고 싶은 책도 갈수록 쌓인다. 혼자서 재미 삼아 읽는 책이라면 때로 느긋하게 게으름을 피워도 되지만 누군가와 함께 읽는 책이라면 게으름은 일찌감치 멀리 내던져야 한다. 수시로, 틈나는 대로, 책을 읽어야 하는 지경에 이르면 언제, 어떤 공간, 어느 순간이든 책을 펼쳐 든다. 차를 타고 이동할 때, 쇼핑몰 앞에서 지인을 기다릴 때, 라면이나 계란을 삶기 위해 물이 끓어오르기 전에...

 


책읽기에 가장 좋은 장소는 사실 집이다. 복장에 신경쓰지 않아도 되고 책 읽다 지겨우면 간식을 챙겨먹어도 되고 컴퓨터로 세상을 돌아다닐 수도 있으니까. 하지만 이런 점들이 종종 독서의 방해요소가 되기도 한다. 편안함이 지나쳐 잠이 들기도 하며 잠깐 휴식이 장시간 딴짓이 되기가 일쑤다. 해서 난 카페에서의 독서를 좋아하고 즐긴다. 지인과의 약속이 있을땐 한두 시간 먼저 나가서 커피를 주문해서 책을 읽고, 혼자서도 자주 카페를 찾곤 한다. 적당한 조명과 적당히 구석진 최적의 자리에 앉은 날은 몇 시간 동안 몇 잔의 음료를 주문하곤 한다. 하지만 코로나 시국에 카페에서의 독서는 예전만큼 자유롭지 못하다. 어쩌다 찾은 카페 내부에 사람들이 많으면 출입조차 꺼려지니까 어쩔 수 없이 집에서 책을 읽지만 솔직히 좀 많이, 아쉽다.


 

<어서오세오, 책 읽는 가게입니다>란 책이 출간되었을 때 신기했다. ‘책 읽는 가게라면 북카페인가? 아니면 서점과 도서관 그 중간 어디쯤일까? 궁금했다. 책을 처음부터 끝까지 빠르게 주르룩 넘기며 훓어 보니 본문에 사진이 한 장도 없다. 이건 뭐지? 싶었다.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북카페나 서점이나 도서관에 대한 것이라면 당연히 사진이 있을 것 같은데, 책의 정체가 더욱 궁금해졌다.


 

조용히 혼자 책을 읽고 있다. 내게는 그 모습이 너무 아름답다.

말이 거창했다. 너무 멋을 부렸다. 나는 그저 독서가 즐겁고, 독서가 좋고, 독서가 취미다.그게 다다. 밥을 먹는 것처럼 해야만 하는 일이다. 깨달음이나 배움, 성장 같은 것에는 크게 관심이 없다. 즐거우면 된다. 독서는 즐거우면 즐거울수록 좋다. 왜냐하면 독서는 나에게 꼭 해야 하는 숙제가 아니라 유쾌하게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그 무엇도 대신할 수 없는, 최고의 취미이기 때문이다. 좋아하는 취미니까 더욱 즐겁게, 더욱 기쁘게, 더욱 알차게 누리고 싶다. - 5~6


 

<어서오세요., 책 읽는 가게입니다>는 한마디로 책을 읽기 위해 가게에 방문한 사람들이 책을 읽는 것에 집중할 수 있는 최적의 공간을 제공하기 위한 저자의 경험담과 노력이 녹아있는 책이다.


 

우선 저자 아쿠쓰 다카시는 책 읽기를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책만 집중해서 읽을 수 있는 장소를 찾지 못했다. 일상의 공간인 집은 산만한데다 유혹이 너무나 많았으니까. 해서 북카페를 탐색하지만 만족스럽지 않았다. 책이 있는 것과 책을 읽을 수 있는 것은 완전히 다른 차원이었다. 조용한 찻집에서도 시도해 보지만 담배가 걸림돌이었고 도서관도 의외로 책 읽기에 적합하지 않다는 걸 실감한다. 저자는 고심한다. 대체 책을 읽는 이 단순한 행위를 하는 것이 왜 이렇게 힘겨운지.


 

쾌적한 독서시간을 보장해주는 무언가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상상을 해본 사람도 적지 않을 것이다. 상상은 해도 그 영역에 손을 댈 주자가 없다. 그것이 읽다가 처한 상황이다. - 94

 

독서할 곳이 이렇게도 없는 건 회전율이나 좌석 가동률이나 객단가같은 계측 가능한 성질뿐 아니라, 독서라는 행위 자체가 내포하는 부정적인 성질 때문이 아닐까 - 115

 


영화에는 영화관이, 골프에는 골프 연습장과 필드가, 스키에는 스키장이, 요가에는 요가 스튜디오가 있듯이 독서에도 그런 곳이 있으면 좋겠다고.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책을 실컷 읽을 수 있는 곳을 고심하던 저자는 드디어 도쿄의 낡은 건물 2층에 책 읽는 사람을 위한 공간 책 읽는 가게를 오픈하게 된다. ‘후즈쿠에는 그렇게 시작되었다.


 

책 읽는 사람을 위한 장소를 다룬 책이어서 저자가 어떻게 책 읽는 가게를 열게 되었는지, 책 읽는 사람에게 책 읽을 공간이 얼마나 절실하게 필요한지 책의 절반가량 꼼꼼하게 풀어놓았다. 이후에는 책 읽는 가게를 이용하는 사람이 지켜야 할 내용에 대해 다루고 있는데 1부와 2부 사이에 수록된 [책 읽는 가게의 안내문과 메뉴]가 눈길을 끌었다.


 

책 읽는 가게이기 때문에 천천히’ ‘느긋하게시간을 보낼 수 있지만 지켜야 할 것들이 있었다. 일행과의 대화는 금지되어 있고, 사진 촬영은 셔터음에 주의해야 하며 펜 사용시 딸칵거리거나 펜을 놓거나 열정적으로 쓸 때 소음을 삼가야 하며 노트북의 키보드를 두드리거나 마우스를 클릭하는 것도 역시 자제해달라고 한다. 책 읽는 사람이 책 읽기에 집중할 수 있도록 산만해질 수 있는 것들을 모두 꼼꼼하게 짚어 놓았는데 이 정도면 너무 심하지 않은가 싶다.


 

존중은 자칫 피곤한 일이기도 하다. 신경을 쓰는 것과 종이 한 장 차이다. 내 안의 무엇인가를 내놓는 일이기도 할 것이다. 희생과 부담이 따를지도 모른다. 공공영역 내에서는 사적인 행동과 제도하에서의 행동의 균형을 맞추어야 한다. - 199


 

책 읽는 사람을 위한 책 읽는 행위에 집중할 수 있는 공간은 꼭 필요하다. 나의 꿈이 도서관과 북카페가 결합된 공간을 여는 것이어서 가까이에 후즈쿠에같은 곳이 있다면 찾아가보고 싶다. 어떤 일이든 자금 마련이 우선이지만 해당 공간을 직접 경험하면 생각이 정리되지 않을까. 책 읽는 사람을 위한 공간을 다룬 흥미로운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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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21-12-06 00: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몽당연필 님 오랜만에 보는 페이퍼 반갑습니다 ^^ 동경에 또다시 가게 되면 찾아가 보고 싶은 가게네요.
 
이어령의 마지막 수업 - 시대의 지성 이어령과 ‘인터스텔라’ 김지수의 ‘라스트 인터뷰’
김지수 지음, 이어령 / 열림원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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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로 생각하는 것은 1초 전의 나와 1초 후의 내가 다른 것이다

언제인지 모르겠다. 이어령 교수가 인터뷰에서 생각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학교든 어디에서든 배운 것을 모두 뺐을 때 남는 것이 바로 내 생각인데, 요즘 사람은 스스로 생각하려 하지 않는다고. 남들이 뭐라고 하면 그게 전부인 줄 알고 거기에 따라간다고. 주머니 속 지갑은 조심하면서 왜 자신의 뇌는 관리하지 않느냐며 우리 머리는 쓰레기통이 아니라고 일갈하셨다.


 

이어령 교수는 이 시대의 지성을 대표하는 석학이라고 불린다. 평론가에서 교수, 언론인에 이어 문화부 장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방면에서 누구도 생각하지 못했던, 새로운 시도를 끊임없이 시도했다. 그래서 그에게는 창의성창조란 단어가 늘 따라다녔다. 그런 그가 몇 년 전 암 투병 중임을 밝혔다. 그러면서 상태를 호전시키기 위한 항암이나 방사선 치료를 받지 않고 암을 관찰하며 지낸다는 기사를 보고 깜짝 놀랐던 기억이 난다. 손바닥과 손등을 떼어놓을 수 없듯이 죽음이 바탕에 있기에 삶이 있다는 그의 말에 삶 그 자체를 오롯이 느끼며 살아가는 건 어떤 것일까 고민했다.


 

그의 마지막 수업이 한 권의 책으로 출간됐다. 인터뷰어 김지수와 이어령 교수의 매주 화요일마다 삶과 죽음에 대한 수업을 진행했다. 루게릭을 앓는 모리 교수를 제자가 찾아가 인생이야기를 나누었던 <모리와 함께 한 화요일>처럼.


 

나는 이제부터 자네와 아주 중요한 이야기를 시작하려 하네. 이 모든 것은 내가 죽음과 죽기 살기로 팔씨름을 하며 깨달은 것들이야. 이해하겠나? 어둠의 팔뚝을 넘어뜨리고 받은 전리품 같은 것이지.” - [다시, 라스트 인터뷰] 중에서


 

저자는 이어령 교수와 16차례 만나 인터뷰를 진행했다고 한다. 사전에 주제를 정해두지 않았기에 질문 요지도 없이 진행된 만남은 열여섯 꼭지의 글로 탄생했다. 매일 밤 죽음과 팔씨름을 한다고 털어놓은 교수는 삶과 죽음을 육체와 영혼에 마음을 더해 삼원론으로 설명한다. 마음을 비워야 그 자리에 영혼이 들어갈 수 있다며 죽음과 신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신이 없다고 한 놈이 신을 보는 거라네. 신이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정작 신을 못 봐.”라며 니체를 언급한 부분이 인상적이었다.


 

저자와의 인터뷰가 교수에게도 기다려지는 시간인지 자네가 매주 화요일 날 만나러 오겠다rh 하는 건, 나를 위해 테니스 코트를 만들어주는 것과 같네. 공을 던져주면 나는 스매싱도 하고 멀리도 보낼 수 있지.”라고 말하는 대목에선 <어린왕자>에서 왕자와 여우와의 대화가 떠올랐다. 오랜 투병 생활로 매일 아침 눈을 뜰 수 있을지 장담하지 못하는 삶에서 누군가와 만나 깊이 있는 대화를 나누는 시간은 교수의 삶에 활력이 되었던 건 아닌가 싶다.


 

영화가 끝나고 ‘the end’ 마크가 찍힐 때마다 나는 생각했네. 나라면 저기에 꽃봉오리를 놓을 텐데. 그러면 끝이 난 줄 알았던 그 자리에 누군가 와서 언제든 다시 이야기가 시작될 수 있을 텐데. 그때의 라스트 인터뷰가 끝이 아니고, 다시 지금의 라스트 인터뷰로 이어지듯이. 인생이 그래.” - [큰 질문을 경계하라] 중에서


 

교수는 어릴적부터 지적 호기심이 남달랐다고 한다. 무엇 하나 그냥 넘어가는 일 없이 꼬투리를 잡는 물음표와 느낌표 사이를 오가며 살았다면서 유명한 솔로몬의 재판이 얼마나 허망한지 꼬집는다. ‘야단맞을까 두려워 딴소리 안 하고, 고분고분 둥글둥글 살면 무엇이 진실인지 평생 모르고 살게 된다. 깨달은 지식이 주는 환희, 그 앎의 기쁨을 선생님이 가르쳐주지 않았고 학교가 가르쳐주지 않았다고. 그 말에 문득 의문이 생겼다. 내가 50년 넘게 살아오면서 잘하고 있는 거라고 여겼던 것들이 정말 잘하고 있는 걸까?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 프레임에 갇혀 사는지 스스로 깨달아야 해. 어린애 눈으로 보면 직관적으로 알아. ‘, 이상하다!’ 그런데 고정관념의 눈꺼풀이 눈을 덮으면 그게 안 보여. 달콤한 거짓말만 보려고 하지.” - [고아의 감각이 우리를 나아가게 한다] 중에서

 


평소 존경하던 스승이 죽음을 목전에 두고 있다면? 생전에 스승을 조금이라도 더 만나 그에게 삶과 죽음에 대해, 인간이란 존재에 대해, 어쩌면 유언이 될 수도 있는 대화를 나누면서 스승의 모습과 말씀을 간직하고 싶은 마음이 드는 건 당연한 일이다. 수많은 이를 만나 인터뷰를 진행했던 저자는 늘 수첩에 메모를 했다고 한다. 하지만 어느날 교수와 대화 도중 녹음 스위치를 누르게 된다. 스승과의 대화를, 그의 마지막 수업을 하나라도 놓치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마지막이라는 단어가 지닌 무게는 어느 정도일까. 더이상 앞으로 나아갈 수도, 더이상 어찌할 수도 없는, ‘다음을 기약할 수 없음을 인식하기란 쉽지 않다. 죽음을 향해 나아가는 게 삶인데도 마치 영생을 누릴 것처럼 살아가는 건 아닌지.


 

저자와 이어령 교수가 열여섯 번의 화요일에 마주 앉아 진행한 대화를 조금씩 읽었다. 어려운 얘기도 쉽게 단칼에 베듯 풀어내는 교수의 어투가 그대로 녹아든 글은 읽다 보면 속도가 붙어 책장 넘김이 빨라졌다. 막무가내로 달리기보다 억지로라도 속도를 늦춰야 했다. 어떤 날은 한 꼭지씩, 어떨땐 몇 일 간격을 두고 한두 꼭지를, 천천히 읽었다. 배우기만 한 것은 내 생각이 아니라고 했기에, 티끌만큼이라도 내 것인 생각을 쌓아보려 했지만 어느 것이 내 것인지 구분하기조차 어려웠다. 내게도 스승이 있었으면 좋겠다.


 

지금 이 순간, 스승이 필요한 당신에게 이 특별한 수업의 초대장을 건넨다. 위로하는 목소리, 꾸짖는 목소리, 어진 목소리…… 부디 내가 들었던 스승 이어령의 목소리가 갈피마다 당신의 귓전에도 청량하게 들리기를. - [프롤로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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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대적이며 절대적인 지식의 백과사전
베르나르 베르베르 지음, 이세욱 외 옮김 / 열린책들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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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 박경리의 <토지>를 읽다가 덮었습니다. 지인들과 대하소설 읽기 프로젝트를 하자고 의기투합했습니다. 그 첫 작품으로 박경리의 <토지>를 선정하고 호기롭게 시작은 했습니다만 전 안타깝게도 마무리를 짓지 못하고 말았습니다. 철학이나 경제학처럼 난해한 인문학 서적은 읽다가 어려워서 도중에 덮기도 했지만 소설을 도중에 덮다니. 처음 있는 일이었고 그래서 충격이었습니다. 왜냐면 저를 제외한 지인들은 대부분 수월하게 책을 읽었거든요. 지인들은 제게 대체 이유가 뭐냐고 물었는데요. 저의 대답을 듣고 마구 웃더군요. 제가 했던 대답이 사투리가 무슨 말인지 도무지 모르겠어요.ㅠㅠ였거든요.



 

경남 하동을 중심으로 대지주인 최 참판댁과 그 마을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은 <토지>는 토속적인 향토 묘사와 정황이 빼어난 작품이라고 하죠. 그만큼 짙은 서부경남 사투리가 곳곳에 포진해 있는데요. 일부 사투리는 각주로 설명을 덧붙이긴 했지만 그것조차 없거나 검색해도 안 나오는 사투리가 수두룩했습니다. 경상도에서 반백 년 가까이 살아온 저였지만 그럼에도 생전 처음 마주하는 사투리는 소설의 몰입을 떨어뜨렸고 결국 도중 포기라는 불상사가 일어나고 만겁니다. 소설의 등장인물을 모아놓은 책은 있지만 저처럼 사투리로 고생하는 독자를 위한 안내책자가 있으면 정말 좋을텐데 아쉬움이 남았습니다.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상대적이며 절대적인 지식의 백과사전>을 손에 들고 있으니 가슴이 두근댔습니다. 짙은 블루 바탕에 펼쳐놓은 세계지도와 피라미드, 나비, 고래, 개미, 고양이 등이 은빛으로 반짝이는 표지는 보자마자 근사해란 말이 저절로 나오더군요.



 

지식의 백과사전이란 단어에 어떤 내용이 수록되었을지, 소설가가 쓴 백과사전이라니 호기심이 일었는데요. 프롤로그에 이렇게 밝히고 있더군요. 책에 소개된 이야기는 자신이 지어낸 것이 아니라 듣거나 보거나 읽었던 것들인데 열세 살 때부터 모으기 시작한 이야기가 어느덧 수백 개가 되었다고. 그런데 자신은 기억력이 좋은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사진과 만화 같은 그림을 더해 기록으로 남기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의 소설을 읽으면서 매우 꼼꼼하고 치밀한 사람일거라 생각했는데 역시나 였습니다. 저 역시 여러 경로로 알게 된 흥미로운 이야기나 상식, 지식을 접하지만 그것을 모아두고 이렇게 한 권의 책으로 묶어 출간한다는 건 생각지도 못한 부분이거든요. 역시 베르베르는 보통 사람을 뛰어넘는 천채, 베르베르였습니다.



 

책은 모두 12개의 주제로 구성되어 있는데요. 진행방식이 독특합니다. 사전이니까 앞뒤 내용이 논리적으로 연관성을 갖고 전개되는 것이 아니라 저자의 책을 바탕으로 했더군요. 가장 최근에 출간한 책을 제일 먼저, 출간된지 오래된 책일수록 뒤에 소개하는 방식이었습니다. 이를테면 ‘1장 죽음은 저자의 <죽음>에서 추려낸 내용이 수록되어 있는거죠. 독특한 전개방식은 흥미로웠지만 반면에 당황스러웠습니다. 그의 <죽음>은 아직 안 읽었거든요. 어쩌나 하고 잠시 망설였지만 이내 본문으로 빠져들었습니다. 신기하고 독특한 이야기가 그야말로 가득했거든요.



 

그리스의 비극 작가 아이스킬로스는 기원전 456년에 황당한 사고로 사망했다. 맹금류 새 한 마리가 그의 머리를 매끈하고 둥근 돌이라고 착각하는 바람에 등딱지를 깨서 먹으려고 살아 있는 거북이를 머리에 내리친 것이다. - 17. ‘엉뚱해서 유명한 죽음들중에서.



 

그러면 안되지만 정말 읽는 순간 웃음이 나왔습니다. 너무 황당한 상황이어서. 예전에 지인들과 <아이스킬로스 비극전집>을 읽고 토론하면서 저자가 어떤 사람일까 궁금했는데 그의 죽음에 이런 사연이 있다니... 다음에 다시 <비극전집>을 읽을 때 얘기를 나눌 화젯거리가 생겼는데요. 책에는 이렇게 기이하고 때론 믿기지 않는 이야기들로 채워져 있습니다. 어린 시절 <셜록 홈즈>에 매료된 전력이 있기에 아서 코넌 도일이 심령술에 빠졌다는 대목이나 발명왕 에디슨이 말년에 죽은 사람과 대화할 수 있는 기계를 만드는데 매진했다거나 자신의 욕망과 권력을 위해 백성들에게 잔혹하게 탄압했던 동서양의 여러 왕이 있는가하면 그와 반대로 많은 이들을 돕는 삶을 살아간 사람도 있었구요. 코로나 시국이어선지 유행성 감기와 독감에 대한 대목은 더욱 눈길을 끌었고 지인들과 조만간 <걸리버 여행기>를 읽을 예정인데 조너선 스위프트에 대한 얘기가 있어서 주의깊게 읽었습니다. 20세기에 벌어진 전쟁 중에서 대규모 살상으로 희생된 사망자 숫자를 무미건조하게 적어둔 대목은 충격적이었습니다. 가장 많은 사망자를 낸 전쟁은 제2차 세계대전으로 사망자가 무려 65백만 명이라는 기록에 더 이상 어떤 전쟁도 있어선 안되겠다는 걸 다시 느끼게 되었습니다.



 

주말에 느긋하게 텔레비전 앞에 있으면 세계 곳곳에서 일어난 신기한 사건이나 믿기 힘든 일화를 엮어서 제작한 프로그램을 볼 때가 있는데요. 각 장의 주제에 따라 세부적인 분위기가 조금씩 다르긴 했지만 꼭 그런 프로그램을 보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특히 미처 읽지 못했던 베르나르의 책에서 추려놓은 이야기에서 일부라도 내가 아는 내용이나 읽었던 책이 언급되면 어찌나 반갑던지요. 마구잡이식 독서가 도움이 되기도 하는구나 싶어 안심이 됐다고 할까요. 베르나르가 모아놓은 이야기, 그의 독특한 상상력의 바탕이 되었을지도 모르는 지식과 일화들은 꼭 그의 작품을 읽지 않았더라도 읽는데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전 오히려 여유가 될 때 내용을 익혀두었다가 이담에 만남이 자유로워졌을 때 하나씩 대화 소재로 활용하면 좋을 것 같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가까이 곁에 두고 틈날 때 꺼내보시길 권합니다. 쏠쏠한 재미에 단박에 빠져드실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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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21-11-16 07: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이스킬로스 ㅎㅎ 진짜 비극적인 생의 결말을. 웃으면 안 되는데 웃기네요. 토지는 저도 완독응 못해서 내년이나 시도하려고 하는데 사투리 때문에 포기하셨다니요 고민이 ^^

짜라투스트라 2021-11-16 08: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토지는 읽을 생각이 안드네요^^

뚠뚜니 2021-12-07 13: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토지는 다 봤는데 기억이 잘 안나네요ㅎㅎ
 
자본주의는 당연하지 않다 - 어쩌다 자본주의가 여기까지 온 걸까?
데이비드 하비 지음, 강윤혜 옮김 / 선순환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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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모임에서 고병권의 <자본>을 읽고 있다. 마르크스의 <자본> 1권을 고병권이 이해하기 쉽게 총 12권으로 쉽게 풀이해놓은 책인데 현재 중반을 넘어서고 있다. 이공계 출신인데다 인문학이나 경제에 관한 지식과 상식이 부족해서인지 <자본>을 제대로 이해하는 걸 기대하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그래서 <자본>의 해설서를 진도에 맞춰서 함께 보고 있는데 커리큘럼에 해당하는 책만 읽을 때와는 달리 시간이나 품은 많이 들지만 내용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고 있다. 학창 시절 자습서나 참고서를 보는 것 같은 기분이 들기도 하는데 간혹 어떤 이는 내게 꼭 그렇게까지 해서 <자본>을 읽어야 하냐고 묻곤 한다. <자본>을 읽는 이유가 무엇이냐는 것이다.


 

2000년 새해를 맞이해서 영국 BBC방송에서 인터넷으로 흥미로운 설문조사를 했다. “지난 천 년 동안 인류에게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사람이 누구라고 생각합니까라고 질문했는데 1위를 차지한 사람이 바로 카를 마르크스였다.


 

<자본>이란 제목만 보면 마르크스의 영향력은 경제학에 한정되어 있을 것 같지만 실제론 그렇지 않다. <자본>을 보면 책이 저술된 19세기는 물론이고 이전 몇 세기 전의 영국이나 유럽의 역사, 경제, 시대적 상황이 맞물려 있는데 그렇게 복잡하게 얽힌 관계를 추적해서 쓴 책이 바로 <자본>이다. 때문에 마르크스는 경제학은 물론 현대 사상 전반에 걸쳐 심대한 영향을 끼쳤다는 평가를 받을뿐 아니라 현대 자본주의를 비판적으로 분석하는데 있어 유용한 틀로 재조명되고 있다.


 

<데이비드 하비의 맑스 자본 강의><자본>의 참고서 삼아 보고 있는데 최근 그의 신간이 출간되었다. ‘어쩌다 자본주의가 여기까지 온 걸까라는 부제의 <자본주의는 당연하지 않다>이다. 눈여겨보고 있는 저자의 신간이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제목을 보고 의문이 생겼다. ‘자본자본주의는 어떻게 다를까 하는 것이다. 지금 읽고 있는 <자본>과도 관계가 있는 게 분명했다.


 

책은 2019년 가을, 산티아고를 비롯한 세계의 고질적인 문제의 원인을 찾아가는 지구촌 곳곳이 불안하다를 시작으로 열아홉 개의 글이 수록되어 있는데 저자인 데이비드 하비가 2018년부터 격주로 진행한 팟캐스트와 온라인 강의를 바탕으로 집필되었다. 대략 20쪽 내외의 분량으로 이뤄진 글은 저자가 직접 강의하는 것처럼 구어체로 서술되어 있다. 세계 여러 나라에서 노동운동과 시위가 거세게 일어나는 이유에 대해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이들 시위의 공통된 맥락을 보자면, 현 경제 시스템이 대중들에게 보장했던 약속을 제대로 지키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는 것, 또 정치 시스템이 비정상적으로 초부유층의 편에서 돌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실감했다는 것을 들 수 있겠습니다. - 12.

 


저자의 해석이 낯익지 않은가? 해당 본문의 어디에도 우리나라에 대한 언급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분석한 내용이 우리나라의 상황과 똑같다고 할 만큼 절묘하게 닮아있다. 열심히 일하면 먹고 사는데 어려움이 없을 거라고 누구나 생각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일을 하면 할수록 노동자들의 삶이 더욱 팍팍해지는 이유가 바로 경제적 원인뿐만 아니라 정치에도 문제가 있다고 말한다. 나라의 이름만 다를 뿐 자본이 지배하는 사회는 어디든 비슷한 상황이라는 것이다. 19세기에 쓰여진 <자본>21세기인 오늘날에도 통하는 것처럼 말이다. 이는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가 <자본>을 읽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우리의 과제는 현 사회에 잠재되어 있는 문제가 무엇인지를 잘 살펴서 그 대안이 될 수 있는, 보다 사회주의적인 시대로 평화롭게 전환할 수 있도록 모색하는 것입니다. 혁명은 단발성 이벤트가 아니라 기나긴 여정입니다. - 28.

 


내년 대선을 앞두고 여야의 대통령 후보가 결정되면서 그들의 정책과 공약이 하나씩 거론되고 있다. 이전에도 그랬지만 선거에 나온 정치인들의 정책이나 공약을 살펴보면 용어나 단어의 표현만 다를 뿐 여야가 거의 동일한 공약이 있는가 하면 완전 정반대를 추구하는 것이 있다. 이를테면 사회 전반의 시스템을 정부 주도로 할 것인가, 아니면 정부는 최대한 뒤로 물러나고 시장에 맡겨둘 것인가를 두고 서로 치열하게 논쟁을 벌인다.

 


저자도 이 부분에 주목해서 다루고 있다. 자본가가 막강한 힘을 갖게 되면 그만큼 노동자들에 대한 착취가 심해지고 그것은 고스란히 자본가의 이윤을 극대화하는 상황이 될 거라면서 신자유주의의 모순에 대해 이야기한다. 자본가가 자신의 이윤을 위해 노동자의 임금을 계속 줄이면 그것은 결국 시장이 줄어드는 악순환을 불러오게 된다고. 그 해결책 중의 하나가 바로 신용카드였다고 한다. 부족한 임금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신용카드를 쓰다 보면 점점 더 많이 빚을 지게 되는데 그것을 부추기는 것이라고 말이다. 소름끼치는 대목이 아닐 수 없다.

 


사람들이 집을 압류당하도록 하는 것이 자본가의 입장에서는 매우 유리한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압류당한 주택이 시장에 엄청나게 나오면, 해지펀드와 사모펀드 등이 헐값으로 사들여 엄청난 이익을 낼 수 있었죠. 이런 식으로 주택시장이 되살아났습니다. - 51.


 

자유가 좋다는 걸 우리는 알고 있다. 사소한 것까지 주인의 명령에 따라야 하는 노예보다 자유가 백번 좋으니까. 그래서 자유란 말이 들어가면 모두 옳고 정의로운 것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정말 그럴까? 정치인들이 입버릇처럼 언급하는 말 신자유주의는 어떤가. ‘신자유주의는 과연 사회 대다수를 차지하는 서민과 대중에게 이로운 것일까?


 

신자유주의란 언제나 상류층과 자본가를 위한 것이며,...상류층의 재산과 권력을 유지하고 보강하는 것이며,..부자는 결국 더 부자가 되고 가난한 자는 계속 그 상태로 가난해지도록 작동하는 것이 신자유주의라면?...신자유주의 정책이 시행되고 있는 곳은 어디나 사회적 불평등이 심화되고 있는 것을 보면 말이죠. -77~78.


 

자본주의는 어느 꽃에 앉아야 자본이 제일 많이 증식되는지 고민하면서 끊임없이 움직이죠. 이것이 우리가 처한 현실입니다. 다시 한번 말씀드리지만, 우리 시대의 자본주의 구조와 경제, 정치권력을 다시금 영토화시키고 있는 것은 돈의 형태를 띤 자본입니다. - 144


 

각각의 글마다 언급하고 있는 상황이나 저자의 분석은 실로 놀라운 수준이다. 어느 것 하나 우리와 무관하지 않은 대목이 없었다. 한국전쟁 후 폐허가 된 우리나라를 미국이 경제적으로 지원하게 된 이유는 무엇이며 성장을 위해 우리가 어떤 희생을 치러야 했는지 이 모든 것에는 철두철미하게 힘의 논리가 작용하고 있었다는 걸 알게 됐다.


 

지금은 비상 상황입니다. 우리의 사고방식을 바꾸고 정치경제적으로 해결하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입니다. 그러나 이것을 놓쳐서는 안 됩니다. 이 모든 것의 배경에는 근본적으로 자본축적이라는 커다란 문제가 도사리고 있다는 것을요. -241


 

노동자는 기계의 부속품이거나 기계를 지키는 존재로 전락했습니다....한때 노동자들의 기능이 필요했던 자본가들은 이제 이런 속박에서 벗어났습니다. 그런 기능은 이제 기계 속에 들어 있기 때문입니다. 과학기술을 통해 생산된 지식은 기계로 흘러 들어가며, 기계는 자본주의 역동성의 영혼이 되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마르크스가 서술하고 있는 당시의 상황입니다. - 321


 

강의하는 형식으로 이루어진 글이어서 내용은 그다지 어렵지 않게 읽을 수 있다. 하지만 눈으로 훑고 지나는 식으로 읽어서는 책의 핵심을 놓치기 쉽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정치와 무관한 삶을 살아간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우리의 일상은 정치와 때어놓을 수 없다. 삶이 조금이라도 나아가길 원한다면 매일 조금씩 규칙적으로 꼭꼭 씹어서 읽어나가길 권하고 싶다.

 


무엇 하나 버릴 것이 없는 책이지만 아쉬운 점이 있다. 책을 펼쳤을 때 중앙의 여백이 지나치게 좁게 제본이 되어있다. 해서 책을 읽을 때나 밑줄을 긋거나 할 때 책 중앙 부분을 힘줘 눌러주어야 하는 불편한 점이 있다. 책의 가로폭을 조금 넓이면 집중도나 가독성이 훨씬 나아지리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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짜라투스트라 2021-11-09 17: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제 데이비드 하비까지 읽으시는군요 ㅋㅋ

몽당연필 2021-11-09 20:32   좋아요 0 | URL
ㅎㅎㅎ 내가 워낙 느리고 부족함이 많은지라.... ^^;;

뒷북소녀 2021-11-10 13: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출판사 이름도 선순환...이래요.ㅋㅋㅋ

몽당연필 2021-11-10 14:52   좋아요 0 | URL
기존에 자주 접하는 출판사는 아니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