둠 : 재앙의 정치학 - 전 지구적 재앙은 인류에게 무엇을 남기는가 Philos 시리즈 8
니얼 퍼거슨 지음, 홍기빈 옮김 / 21세기북스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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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8, 중국의 원인불명 폐렴과 유사 증상을 보이는 의심환자가 국내에서 처음으로 확인됐다. 30대의 중국 국적의 이 여성은 201912월 중순 우한을 방문한 이력이 있다는 점에 주목했으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와는 무관하다는 결론이 내려졌다.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은 120, 한 중국인 여성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자로 확인됐다. 이에 질병관리청은 감염병 위기경보 수준을 관심에서 주의단계로 상향조정하고 항공기의 우한 노선을 취소하기에 이른다. 나흘 뒤인 124, 두 번째 확진자가 확인됐다. 중국 우한시에서 근무하던 한국인 남성이 항공기를 통해 귀국했는데 공항의 검역과정에서 발열과 인후통이 확인되어 능동감시를 받던 중 확진자로 판명되었다. 질병관리본부에서는 즉시 심층적인 역학조사에 들어갔고 두 번째 환자와 접촉한 사람들을 대상으로 검사가 실시됐다. 이때까지만 해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의 확산은 크게 우려할 정도는 아니었다.




 

하지만 218, 영남권의 첫 확진자, 국내 31번째 확진자가 양성 판정을 받아 격리되었다. 문제는 해당 확진자가 대구의 한 교회에서 한 시간 가량 머물렀는데 당시 예배에 참석한 교인들 중 다수가 확진되면서 국내 최초의 집단감염이 일어나게 된다. 잦아들던 코로나 바이러스 사태는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었고 지역사회의 감염이 심각하게 걱정해야 하는 사태가 되었다. 그리고 220, 첫 번째 사망자가 발생하였다. 해당 지역은 특별 재난지역으로 선포되었고 전국의 초중고 학교의 개학이 몇 번 연기되다가 학교 수업을 온라인으로 진행하게 된다. 치료제도 예방 백신도 없는 신종 감염병에 세계보건기구(WHO)3월 코로나19에 대해 세계적 대유행(팬데믹, pandemic)’을 공식 선언했다. 당시 110여 개국에서 12만여 명이 코로나19에 확진된 상황이었다.[출처,대한민국 정책브리핑]


 

문제는 확진자의 증가추세에 따라 사회적 거리두기가 변경되기를 수차례 반복되었는데 이로 인한 소상공인들의 영업손실은 한계상태에 이르렀다는 것. 코로나 팬데믹이 언제 끝날지 알 수 없는 상태에서 사람들의 통행을 무조건 제한할 수도, 그렇다고 완전히 해제할 수도 없는 상황에서 성인의 70%가 코로나 백신을 접종하는 것을 기준으로 단계적 일상 회복인 위드 코로나를 모색하게 된다. 집단면역이 모든 것을 해결해줄 마법의 열쇠가 되는 줄 알았고 너도나도 백신을 맞았다. 그리고 11'위드코로나'로 일상을 회복하는 줄 알았다.





 

그러나 델타 변이에 이어 오미크론 변이가 등장하면서 우리나라뿐 아니라 전세계의 상황은 급변했다. 백신접종을 했음에도 돌파 감염이 나왔고 다시 사회적 거리두기로 돌아가게 되었다. 20211230일까지 국내의 코로나 누적확진자는 399,561, 누적사망자는 3,137명에 이른다.


 

코로나 2년차, 간절하게 염원했던 위드 코로나가 속수무책으로 깨어지고 있을 때 한 권의 책을 만났다. 역사학자이자 21세기 최고의 경제사학자로 손꼽히는 니얼 퍼거슨의 <둠 재앙의 정치학>. ‘전지구적 재앙은 인류에게 무엇을 남기는가라는 부제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저자는 서방 국가마저 코로나바이러스 확산을 저지하는데 실패하고 팬데믹의 수렁에 빠져버린 사태를 보면서 인류에게 닥친 재앙과 재난의 역사가 어떠한지 살펴보고 있다.


 

어떤 것이든 재난은 그 국가의 민낯을 그대로 드러낸다고 말한 저자는 가장 먼저 종말에 대해 이야기한다. 종교적 측면에서 최후의 심판과 종말이 어떻게 말하는지 알아보고 고도로 발달된 과학 덕분에 인류의 수명은 늘었지만 인간은 누구나 죽음을 맞이하는데 현대의 원자폭탄이나 생물 무기, 혹은 지진이나 전쟁과 같은 재난으로 인해 종말을 앞당기는 위험을 맞게 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 재난은 언제, 어떻게 다가오는가. 재난이나 재앙을 어떻게 맞이하고 예견할 수 있는지 순환이론과 함께 재러드 다이아몬드의 <문명의 붕괴>를 통해 붕괴의 일곱 가지 사례를 분석한다.


 

하지만 세상은 경험이나 통계를 바탕으로 예측 가능한 일보다 예측모형의 영역 밖에 있는, 예측할 수 없는 일들이 실제로 일어나는 경우가 종종 있다. 특히 팬데믹 같은 재난은 (이미 우리가 경험했듯이) 그 여파가 정치, 경제, 사회 등에 이르기까지 폭넓게 영향을 미치게 된다. 재난이 연이어 발생하는 이런 일은 사회가 네트워크로 밀접하게 연결될수록 더욱 심각하게 나타난다. 문제는 우리 인간이 전염병에 너무나 취약하다는 것. 지구에 최초로 서식한 생명체 박테리아에서부터 각종 바이러스 등은 우리 벌거벗은 원숭이들에겐 특별히 위험한 적이라는 것이다. 그런데다가 전쟁 같은 재난이 닥치면 군인이나 정치인, 정치지도자들이 리더십을 발휘해서 사태를 제대로 수습할 수 있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다고 한다. 얼마전 톨스토이의 <전쟁과 평화>를 읽었는데 저자가 프랑스의 러시아 침공을 예로 들어 설명하고 있어 이해하기가 한결 수월했다.


 

과학이 아무리 발달하더라도 재난은 예측도 대비도 하기 어렵다고 말하는 책은 650여쪽에 이르는, 벽돌책이라 불러도 될만큼 두툼하다. 저자는 코로나 팬데믹이 마무리되지 않은 시점에서 재난과 재앙의 역사와 현재 진행중인 팬데믹이 정치, 경제, 사회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풀어내었는데 만약 코로나 이후에 책을 출간했다면 분량이 얼마나 많아졌을까 사소한 궁금증이 생겼다. 본문 중에는 곳곳에 표와 그래프, 도표가 있는데 코로나19와 다른 바이러스 질환과 비교해둔 표가 있어서 주의깊게 보았다. 특히 눈에 띄는 것은 우리나라에서 수천 명에게 코로나를 전파시킨 슈퍼전파자 31번 확진자의 사례가 도표로 수록되어 있는데 당시 우리 국민들을 충격의 도가니에 빠뜨렸던 상황이 생생하게 떠올랐다.


 

고대 로마의 폼페이 화산폭발, 중세시대의 페스트, 2차 세계대전, 에볼라...인류의 지난 역사를 살펴보면 미처 예측하지 못한 채 속수무책으로 당했던 재난과 재앙은 얼마나 많은가. 2022년 새해가 되었지만 코로나19 팬데믹이 언제 종식될지 그 누구도 예측하지 못한다. 치료약이 나왔다니 다소 기대가 되지만 그보다 먼저 근본적인 원인을 찾아야 하지 않을까. 지금과 같은 재앙을 다시 겪지 않기 위해서라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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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22-01-01 08: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리뷰 잘 읽었습니다. 올해 팬데믹이 또 어떻게 전개될지 모르지만 나빠지지 않기를 바랍니다. 몽당연필 님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퓰리처 글쓰기 수업 - 논픽션 스토리텔링의 모든 것
잭 하트 지음, 정세라 옮김 / 현대지성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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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온라인 커뮤니티에 글이 하나 올라왔습니다. 휴대폰으로 랭킹 뉴스를 보다가 너무 놀랐다면서 캡처 사진을 올려주었는데요. 그걸 보니 글쓴이가 무엇 때문에 그렇게 노발대발했는지 단박에 알 수 있었어요. 기사 제목만 보면 유명 방송진행자의 아들은 크게 사고를 쳐서 공개사과를 했고 어느 유명인은 암투병 하다 요절했으며 아이돌이 수녀가 됐다는 [공식입장]을 내놓았다는 건데요. 실제 내용은 제목과는 완전 딴판이었습니다. 과거에 있었던 일을 현재의 일처럼 관심을 끌거나 극중 배역이 수녀인 것을 [공식입장]이라는 꼬리말을 붙여 놓았다는 사실에 사람들은 비판을 늘어놓았습니다. 이것이 우리 언론의 현주소이며, 매년 언론신뢰도가 세계 주요 46개국 중에서 최하위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는 이유를 알겠다고.


 

언론의 이런 행태를 일명 제목으로 장사한다고 합니다. 선정적인 제목으로 사람들의 이목을 끌어 클릭하도록 유도해서 그만큼 광고수익을 높인다는 겁니다. 이것뿐인가요? 내년 대선을 앞두고 언론들이 특정후보에게 노골적인 프로포즈 작업에 들어갔지요. 모든 후보에게 공평하고 공정하게 기사를 써달라고 요구하기가 민망하고 부끄러울 정도로 받아쓰기 기사, 편향 기사, 왜곡 기사 등이 만연합니다. 초등학생도 다 아는 기사의 6하원칙을 설마 우리 기자들이 모르는 걸까요? 아니면 글쓰기 능력이 부족한 건가요? 우리 언론, 대체 어쩌다 이 지경까지 이른 걸까요?


 

황금관을 쓴 펜촉 주위로 휘황찬란한 빛이 가득합니다. 이 펜촉은 얼마나 특별하기에? <퓰리처 글쓰기 수업>, 제목만 보면 미국에서도 가장 권위 있는 퓰리처상을 수상할 수 있을 정도로 글쓰기 수업을 시킨다는 걸까? 대체 무엇을 어떻게 가르치기에? 궁금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퓰리처 글쓰기 수업>의 가장 중요한 포인트는 논픽션 스토리텔링의 모든 것이란 바로 부제에 있습니다. 글쓰기를 다룬 많은 책이 소설창작과 관련해 문장과 구성을 이야기했다면 이 책은 논픽션(nonfiction), ‘상상으로 꾸민 이야기가 아닌, 사실에 근거하여 쓴 작품으로 수기, 자서전, 기행문과 같은 글을 쓰는 것에 대해 말합니다. 저자의 글쓰기 수업을 받은 이 중에 다수가 퓰리처상을 수상하기도 했다니 더욱 기대가 됩니다.


 

책은 총 14개의 장으로 구성되어 있구요. 각장의 주제는 [스토리, 구조, 시점, 목소리와 스타일, 캐릭터, 장면, 액션, 대화, 주제, 취재, 스토리 내러티브, 해설 내러티브, 그 밖의 내러티브, 윤리 의식]으로 구분되어 있는데요. 이것만 보면 마치 픽션 글쓰기에 관한 책 같은 느낌이 들지만 저자의 주장은 다릅니다. 논픽션의 글이라 할지라도 경직된 글을 쓰기보다 마치 소설처럼, 소설의 형식을 가미해서 글을 쓰면 독자들이 더욱 흥미를 느끼게 된다는 겁니다. 논픽션 글은 어떠해야 한다는 고정관념에서 탈피해야 한다는 의미 같아요.


 

저자가 가장 먼저 강조하는 것은 바로 스토리텔링입니다. 상대방에게 전하고 싶은 것을 이야기하듯 재미있고 생생한 이야기로 전달해야 설득력을 얻을 수 있다는 건데요. 첨단 기술로 인간의 뇌를 분석하니 스토리텔링을 담당하는 영역을 확인했다면서 인간이라면 누구나 태어날 때부터 스토리텔링 능력을 갖고 있다면서 문장력보다 더 중요한 것이 바로 스토리라고 힘주어 말합니다. 스토리의 흐름을 결정했다면 그다음 짚어야 할 것은 글의 구조를 시각화하는 작업인데요. 여기에 수학 교과서에서 자주 접하는 그래프가 동원됩니다. 글쓰기 책에서 난데없이 웬 그래프인가, 싶지만 스토리가 진행되는 과정을 포물선 그래프를 통해 설명하는데요. 소설이 발단-전개-위기-절정-결말의 단계로 진행되는 것처럼 논픽션 글도 마찬가지라는 거지요. 소설처럼 글을 세부적으로 나눈다음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캐릭터를 설정하고 그들에게 장면마다 어떤 액션과 대화를 할 것인지 꼼꼼하게 미리 설계를 해보라는 건데요. 본문에는 이런 그래프들이 곳곳이 수록되어 있고 저자의 설명대로 하면 어쩐지 글을 쓰기가 훨씬 수월할 것 같은 느낌이 듭니다. (아직 실습을 해보진 않았지만요)


 

지금까지 논픽션은 사실을 다루는 글이라는 것에 얽매어 사실 전달에만 골몰했던 것 같아요. 그러다보니 자연스레 글은 일어난 일을 순서대로 나열하는 것에 그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한마디로 재미나 흥미와는 거리가 멀고 그래서 사람들이 읽지 않는 글이 되고 마는 것이죠. 반대로 논픽션에 재미와 흥미가 도드라지는 것도 바람직한 현상은 아닙니다. 자칫 잘못하면 사실을 왜곡하고 그래서 글의 신뢰를 잃어버릴 수도 있으니까 말입니다. 책의 마지막에 글쓰는 이의 윤리 의식을 언급한 것도 그런 이유가 아닐까 싶습니다.


 

글쓰기를 다룬 책으로서는 분량이 400쪽 훌쩍 넘습니다. 다소 부담을 느낄 수 있지만 픽션이든 논픽션이든 자신의 글을 좀 더 풍성하고 알차게 업그레이드 하고자 한다면 읽어볼만한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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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궐로 떠나는 문양여행 - 궁궐 건축에 숨겨진 전통 문양의 미학 인문여행 시리즈 17
이향우 지음 / 인문산책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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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달 전엔 공기청정기와 정수기를 점검 나온 직원의 휴대폰을 무심코 보게 됐다. 소박한 꽃모양을 단순하게 규칙적으로 배열해서 이루어진 그것은 문살의 문양이었다. 업무에 방해가 될까봐 평소엔 꼭 필요한 얘기가 아니면 되도록 조용히 있는 편인데 그날은 실례를 무릅쓰고 물어봤다. “죄송하지만 휴대폰에 있는 문살, 어디서 찍으신 거예요?” 뜬금없는 질문이 귀찮았을텐데 그분은 흔쾌히 알려주었다. “정말 예쁘죠. 진천 대흥사에서 찍은 거예요알고 보니 불교신자인 그분은 어쩌다 여행을 가면 꼭 주변 사찰을 둘러보는데 그때 찍은 거라고.


 

한옥의 굴뚝에 매료된 적이 있다. 큰아이가 어렸을 때 참석한 박물관 수업에서 답사로 우리의 건축양식이 잘 보존된 곳을 몇 군데 둘러 보았는데 그때 눈에 들어온 게 굴뚝의 모습과 굴뚝을 장식한 문양이었다. 음식을 만들고 보온을 위해 불을 피우고 그 연기가 나가는 곳인 굴뚝을 이렇게 아름답게 꾸몄다니. 감탄이 절로 나왔다.


 

<궁궐로 떠나는 문양여행>이 출간되었을 때 반가웠다. 우리의 문양을 본격적으로 살펴볼 수 있을거란 생각에. 무엇이든 알아두면 그제야 눈에 들어오는 것이 있는 법이니까.


 

시대에 따른 유행이나 인식의 차이는 있겠지만 고대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인간 누구에게나 아름다움에 대한 기본적인 욕구가 있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한국인의 미적 정서는 아름다움을 추구하지만, 지나치게 드러나지 않으면서도 격조 있는 검박함에 있다. - 11


 

저자 이향우님은 <문양여행>이 첫만남이다. 어떤 분인지 궁금해서 저자소개를 유심히 봤는데 우리궁궐지킴이로 활동하면서 우리 궁궐의 아름다움을 알리는 책을 힐링여행 시리즈로 여러 권 출간했다는 걸 알게 됐다. 궁궐과는 지리적으로 먼 곳에 살아서 궁궐에 대한 지식이 전무한데 저자를 통해 우리 궁궐의 사소한 것들까지 제대로 알 수 있을거란 생각이 들었다.


 

책은 [궁궐 건축에 숨겨진 전통 문양의 미학]이라는 부제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궁궐의 문양과 상징에 대해 다루고 있는데 한국인의 미학과 미의식’ ‘조선 궁궐의 상징과 의미’ ‘궁궐의 서수 조각과 장식’ ‘궁궐 꽃담의 문양와 은유’ ‘색의 언어, 단청’ ‘궁궐 편액의 전통 문양이렇게 여섯 부분으로 나누어 설명하고 있다.


 

동양인의 생활 미술 속에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동물로 신성시되어왔던 용은 황제나 왕에 비유되어 왕권을 상징하며, 각기 다른 성격과 능력을 지닌 모습으로도 나타난다. 실재하지 않으면서 오히려 인간의 끊임없는 상상력을 통해 천태만상의 모습으로 천변만화의 능력을 가진 동물이 동양문화권의 용이다. 따라서 정전 월대의 답도나 정전 내부의 소란반자 등 왕이 위치하는 곳에는 용을 두어 왕권을 상징했다. - 50


 

저자는 본격적으로 문양에 대해 이야기를 하기 전에 궁궐 건축에서 볼 수 있는 문양의 종류를 먼저 일러준다. 문양은 크게 실물이나 동물, 자연 형태의 사물을 형상화한 형상 무늬’, 직선이나 곡선의 교차로 이뤄지는 추상적인 기하 무늬’, 장수나 행복 같은 좋은 일을 상징하는 길상문자문으로 나뉘고 각각의 무늬마다 세부적으로 다시 몇 개의 문양으로 나누어진다고 한다.


 

흔히 어처구니로 알려져있는 궁궐 지붕의 추녀마루에 있는 토우는 정식명칭이 잡상이라고 한다. 악귀의 침입을 막기 위함이라는 잡상을 중국 것과 비교할 수 있도록 사진이 수록되어 있는데 팔이 안으로 굽는 것인지 모르겠으나 우리 것이 더 독특해서 좋았다.


 

광화문의 해치상에 대해서도 꼼꼼하게 설명하고 있다. 해치라는 명칭이 어떤 과정으로 불리게 되었는지, 해치의 형상이 중국과 우리가 어떻게 다른지, 해치상의 부분적인 의미는 무엇인지, 그리고 해치상이 원래 있었던 위치가 어디인지 알려주고 있다. 하지만 명칭을 해치’ ‘해태모두 사용하고 있어 혼동을 주기 쉽고 내용 연결이 자연스럽지 못한 점이 아쉬웠다.


 

해치가 처음 제자리를 잃게 된 시점은 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 청사 건축 공사로 인해 경복궁 담이 헐리고 궁궐터에 길이 뚫리는 등 모든 것이 망가지던 때였다. - 121

 


담장이나 벽면을 무늬로 아름답게 꾸며놓은 담장을 꽃담’ ‘화초담이라고 부른다. 초기엔 아랍에서 수입한 타일을 이용해 담장을 장식하기도 했지만 성리학을 국가 통치의 이념으로 삼았던 조선시대에는 화려함을 멀리하게 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흔한 벽돌이나 깨진 기왓장을 이용해 소박하고도 아름답게 치장할 줄 알았던 옛사람들의 감각은 지금 현대인의 시각으로 봐도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만들어 진 지 100년이 넘은 경복궁 자경전 서쪽 담에 펼쳐진 꽃담 문양은 가까이 볼수록 형상을 만든 기법이 섬세하고 아름답다. 매화, 모란, 국화, 석류 등의 형상 무늬와 장, 춘 등의 길상문, 그리고 귀갑문, 만자문 등의 기하 무늬로 구성된 자경전 꽃담은 은유와 상징으로 가득 채워져 오늘날까지도 그 아름다움을 보여주고 있다. - 177.

 


일반적인 신국판보다 다소 작은 사이즈의 책에는 컬러 사진이 가득하다. 어찌 보면 글자보다 사진이 더 많다고 여겨질 정도다. 본문 곳곳에 자리한 사진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모두가 제각각 다른 문양이어서 더욱 놀랍다. 볼거리 측면에서 완전 만족감을 느낄 수 있는 책이지만 내용면에서는 조금 아쉬웠다. ‘궁궐 건축의 문양은 한국문화의 정수를 드러내는 집결체라고 하는데 여러 종류를 나열하는 것에 그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어쩌면 내가 저자의 책을 처음이어서 이전의 책과 연결짓지 못하는 것일수도 있다. 언제든 궁궐을 방문하는날 꼭 챙겨야 할 책임은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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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서오세요, 책 읽는 가게입니다
아쿠쓰 다카시 지음, 김단비 옮김 / 앨리스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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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어야 할 책은 많고, 읽고 싶은 책도 갈수록 쌓인다. 혼자서 재미 삼아 읽는 책이라면 때로 느긋하게 게으름을 피워도 되지만 누군가와 함께 읽는 책이라면 게으름은 일찌감치 멀리 내던져야 한다. 수시로, 틈나는 대로, 책을 읽어야 하는 지경에 이르면 언제, 어떤 공간, 어느 순간이든 책을 펼쳐 든다. 차를 타고 이동할 때, 쇼핑몰 앞에서 지인을 기다릴 때, 라면이나 계란을 삶기 위해 물이 끓어오르기 전에...

 


책읽기에 가장 좋은 장소는 사실 집이다. 복장에 신경쓰지 않아도 되고 책 읽다 지겨우면 간식을 챙겨먹어도 되고 컴퓨터로 세상을 돌아다닐 수도 있으니까. 하지만 이런 점들이 종종 독서의 방해요소가 되기도 한다. 편안함이 지나쳐 잠이 들기도 하며 잠깐 휴식이 장시간 딴짓이 되기가 일쑤다. 해서 난 카페에서의 독서를 좋아하고 즐긴다. 지인과의 약속이 있을땐 한두 시간 먼저 나가서 커피를 주문해서 책을 읽고, 혼자서도 자주 카페를 찾곤 한다. 적당한 조명과 적당히 구석진 최적의 자리에 앉은 날은 몇 시간 동안 몇 잔의 음료를 주문하곤 한다. 하지만 코로나 시국에 카페에서의 독서는 예전만큼 자유롭지 못하다. 어쩌다 찾은 카페 내부에 사람들이 많으면 출입조차 꺼려지니까 어쩔 수 없이 집에서 책을 읽지만 솔직히 좀 많이, 아쉽다.


 

<어서오세오, 책 읽는 가게입니다>란 책이 출간되었을 때 신기했다. ‘책 읽는 가게라면 북카페인가? 아니면 서점과 도서관 그 중간 어디쯤일까? 궁금했다. 책을 처음부터 끝까지 빠르게 주르룩 넘기며 훓어 보니 본문에 사진이 한 장도 없다. 이건 뭐지? 싶었다.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북카페나 서점이나 도서관에 대한 것이라면 당연히 사진이 있을 것 같은데, 책의 정체가 더욱 궁금해졌다.


 

조용히 혼자 책을 읽고 있다. 내게는 그 모습이 너무 아름답다.

말이 거창했다. 너무 멋을 부렸다. 나는 그저 독서가 즐겁고, 독서가 좋고, 독서가 취미다.그게 다다. 밥을 먹는 것처럼 해야만 하는 일이다. 깨달음이나 배움, 성장 같은 것에는 크게 관심이 없다. 즐거우면 된다. 독서는 즐거우면 즐거울수록 좋다. 왜냐하면 독서는 나에게 꼭 해야 하는 숙제가 아니라 유쾌하게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그 무엇도 대신할 수 없는, 최고의 취미이기 때문이다. 좋아하는 취미니까 더욱 즐겁게, 더욱 기쁘게, 더욱 알차게 누리고 싶다. - 5~6


 

<어서오세요., 책 읽는 가게입니다>는 한마디로 책을 읽기 위해 가게에 방문한 사람들이 책을 읽는 것에 집중할 수 있는 최적의 공간을 제공하기 위한 저자의 경험담과 노력이 녹아있는 책이다.


 

우선 저자 아쿠쓰 다카시는 책 읽기를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책만 집중해서 읽을 수 있는 장소를 찾지 못했다. 일상의 공간인 집은 산만한데다 유혹이 너무나 많았으니까. 해서 북카페를 탐색하지만 만족스럽지 않았다. 책이 있는 것과 책을 읽을 수 있는 것은 완전히 다른 차원이었다. 조용한 찻집에서도 시도해 보지만 담배가 걸림돌이었고 도서관도 의외로 책 읽기에 적합하지 않다는 걸 실감한다. 저자는 고심한다. 대체 책을 읽는 이 단순한 행위를 하는 것이 왜 이렇게 힘겨운지.


 

쾌적한 독서시간을 보장해주는 무언가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상상을 해본 사람도 적지 않을 것이다. 상상은 해도 그 영역에 손을 댈 주자가 없다. 그것이 읽다가 처한 상황이다. - 94

 

독서할 곳이 이렇게도 없는 건 회전율이나 좌석 가동률이나 객단가같은 계측 가능한 성질뿐 아니라, 독서라는 행위 자체가 내포하는 부정적인 성질 때문이 아닐까 - 115

 


영화에는 영화관이, 골프에는 골프 연습장과 필드가, 스키에는 스키장이, 요가에는 요가 스튜디오가 있듯이 독서에도 그런 곳이 있으면 좋겠다고.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책을 실컷 읽을 수 있는 곳을 고심하던 저자는 드디어 도쿄의 낡은 건물 2층에 책 읽는 사람을 위한 공간 책 읽는 가게를 오픈하게 된다. ‘후즈쿠에는 그렇게 시작되었다.


 

책 읽는 사람을 위한 장소를 다룬 책이어서 저자가 어떻게 책 읽는 가게를 열게 되었는지, 책 읽는 사람에게 책 읽을 공간이 얼마나 절실하게 필요한지 책의 절반가량 꼼꼼하게 풀어놓았다. 이후에는 책 읽는 가게를 이용하는 사람이 지켜야 할 내용에 대해 다루고 있는데 1부와 2부 사이에 수록된 [책 읽는 가게의 안내문과 메뉴]가 눈길을 끌었다.


 

책 읽는 가게이기 때문에 천천히’ ‘느긋하게시간을 보낼 수 있지만 지켜야 할 것들이 있었다. 일행과의 대화는 금지되어 있고, 사진 촬영은 셔터음에 주의해야 하며 펜 사용시 딸칵거리거나 펜을 놓거나 열정적으로 쓸 때 소음을 삼가야 하며 노트북의 키보드를 두드리거나 마우스를 클릭하는 것도 역시 자제해달라고 한다. 책 읽는 사람이 책 읽기에 집중할 수 있도록 산만해질 수 있는 것들을 모두 꼼꼼하게 짚어 놓았는데 이 정도면 너무 심하지 않은가 싶다.


 

존중은 자칫 피곤한 일이기도 하다. 신경을 쓰는 것과 종이 한 장 차이다. 내 안의 무엇인가를 내놓는 일이기도 할 것이다. 희생과 부담이 따를지도 모른다. 공공영역 내에서는 사적인 행동과 제도하에서의 행동의 균형을 맞추어야 한다. - 199


 

책 읽는 사람을 위한 책 읽는 행위에 집중할 수 있는 공간은 꼭 필요하다. 나의 꿈이 도서관과 북카페가 결합된 공간을 여는 것이어서 가까이에 후즈쿠에같은 곳이 있다면 찾아가보고 싶다. 어떤 일이든 자금 마련이 우선이지만 해당 공간을 직접 경험하면 생각이 정리되지 않을까. 책 읽는 사람을 위한 공간을 다룬 흥미로운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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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21-12-06 00: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몽당연필 님 오랜만에 보는 페이퍼 반갑습니다 ^^ 동경에 또다시 가게 되면 찾아가 보고 싶은 가게네요.
 
이어령의 마지막 수업 - 시대의 지성 이어령과 ‘인터스텔라’ 김지수의 ‘라스트 인터뷰’
김지수 지음, 이어령 / 열림원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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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로 생각하는 것은 1초 전의 나와 1초 후의 내가 다른 것이다

언제인지 모르겠다. 이어령 교수가 인터뷰에서 생각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학교든 어디에서든 배운 것을 모두 뺐을 때 남는 것이 바로 내 생각인데, 요즘 사람은 스스로 생각하려 하지 않는다고. 남들이 뭐라고 하면 그게 전부인 줄 알고 거기에 따라간다고. 주머니 속 지갑은 조심하면서 왜 자신의 뇌는 관리하지 않느냐며 우리 머리는 쓰레기통이 아니라고 일갈하셨다.


 

이어령 교수는 이 시대의 지성을 대표하는 석학이라고 불린다. 평론가에서 교수, 언론인에 이어 문화부 장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방면에서 누구도 생각하지 못했던, 새로운 시도를 끊임없이 시도했다. 그래서 그에게는 창의성창조란 단어가 늘 따라다녔다. 그런 그가 몇 년 전 암 투병 중임을 밝혔다. 그러면서 상태를 호전시키기 위한 항암이나 방사선 치료를 받지 않고 암을 관찰하며 지낸다는 기사를 보고 깜짝 놀랐던 기억이 난다. 손바닥과 손등을 떼어놓을 수 없듯이 죽음이 바탕에 있기에 삶이 있다는 그의 말에 삶 그 자체를 오롯이 느끼며 살아가는 건 어떤 것일까 고민했다.


 

그의 마지막 수업이 한 권의 책으로 출간됐다. 인터뷰어 김지수와 이어령 교수의 매주 화요일마다 삶과 죽음에 대한 수업을 진행했다. 루게릭을 앓는 모리 교수를 제자가 찾아가 인생이야기를 나누었던 <모리와 함께 한 화요일>처럼.


 

나는 이제부터 자네와 아주 중요한 이야기를 시작하려 하네. 이 모든 것은 내가 죽음과 죽기 살기로 팔씨름을 하며 깨달은 것들이야. 이해하겠나? 어둠의 팔뚝을 넘어뜨리고 받은 전리품 같은 것이지.” - [다시, 라스트 인터뷰] 중에서


 

저자는 이어령 교수와 16차례 만나 인터뷰를 진행했다고 한다. 사전에 주제를 정해두지 않았기에 질문 요지도 없이 진행된 만남은 열여섯 꼭지의 글로 탄생했다. 매일 밤 죽음과 팔씨름을 한다고 털어놓은 교수는 삶과 죽음을 육체와 영혼에 마음을 더해 삼원론으로 설명한다. 마음을 비워야 그 자리에 영혼이 들어갈 수 있다며 죽음과 신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신이 없다고 한 놈이 신을 보는 거라네. 신이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정작 신을 못 봐.”라며 니체를 언급한 부분이 인상적이었다.


 

저자와의 인터뷰가 교수에게도 기다려지는 시간인지 자네가 매주 화요일 날 만나러 오겠다rh 하는 건, 나를 위해 테니스 코트를 만들어주는 것과 같네. 공을 던져주면 나는 스매싱도 하고 멀리도 보낼 수 있지.”라고 말하는 대목에선 <어린왕자>에서 왕자와 여우와의 대화가 떠올랐다. 오랜 투병 생활로 매일 아침 눈을 뜰 수 있을지 장담하지 못하는 삶에서 누군가와 만나 깊이 있는 대화를 나누는 시간은 교수의 삶에 활력이 되었던 건 아닌가 싶다.


 

영화가 끝나고 ‘the end’ 마크가 찍힐 때마다 나는 생각했네. 나라면 저기에 꽃봉오리를 놓을 텐데. 그러면 끝이 난 줄 알았던 그 자리에 누군가 와서 언제든 다시 이야기가 시작될 수 있을 텐데. 그때의 라스트 인터뷰가 끝이 아니고, 다시 지금의 라스트 인터뷰로 이어지듯이. 인생이 그래.” - [큰 질문을 경계하라] 중에서


 

교수는 어릴적부터 지적 호기심이 남달랐다고 한다. 무엇 하나 그냥 넘어가는 일 없이 꼬투리를 잡는 물음표와 느낌표 사이를 오가며 살았다면서 유명한 솔로몬의 재판이 얼마나 허망한지 꼬집는다. ‘야단맞을까 두려워 딴소리 안 하고, 고분고분 둥글둥글 살면 무엇이 진실인지 평생 모르고 살게 된다. 깨달은 지식이 주는 환희, 그 앎의 기쁨을 선생님이 가르쳐주지 않았고 학교가 가르쳐주지 않았다고. 그 말에 문득 의문이 생겼다. 내가 50년 넘게 살아오면서 잘하고 있는 거라고 여겼던 것들이 정말 잘하고 있는 걸까?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 프레임에 갇혀 사는지 스스로 깨달아야 해. 어린애 눈으로 보면 직관적으로 알아. ‘, 이상하다!’ 그런데 고정관념의 눈꺼풀이 눈을 덮으면 그게 안 보여. 달콤한 거짓말만 보려고 하지.” - [고아의 감각이 우리를 나아가게 한다] 중에서

 


평소 존경하던 스승이 죽음을 목전에 두고 있다면? 생전에 스승을 조금이라도 더 만나 그에게 삶과 죽음에 대해, 인간이란 존재에 대해, 어쩌면 유언이 될 수도 있는 대화를 나누면서 스승의 모습과 말씀을 간직하고 싶은 마음이 드는 건 당연한 일이다. 수많은 이를 만나 인터뷰를 진행했던 저자는 늘 수첩에 메모를 했다고 한다. 하지만 어느날 교수와 대화 도중 녹음 스위치를 누르게 된다. 스승과의 대화를, 그의 마지막 수업을 하나라도 놓치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마지막이라는 단어가 지닌 무게는 어느 정도일까. 더이상 앞으로 나아갈 수도, 더이상 어찌할 수도 없는, ‘다음을 기약할 수 없음을 인식하기란 쉽지 않다. 죽음을 향해 나아가는 게 삶인데도 마치 영생을 누릴 것처럼 살아가는 건 아닌지.


 

저자와 이어령 교수가 열여섯 번의 화요일에 마주 앉아 진행한 대화를 조금씩 읽었다. 어려운 얘기도 쉽게 단칼에 베듯 풀어내는 교수의 어투가 그대로 녹아든 글은 읽다 보면 속도가 붙어 책장 넘김이 빨라졌다. 막무가내로 달리기보다 억지로라도 속도를 늦춰야 했다. 어떤 날은 한 꼭지씩, 어떨땐 몇 일 간격을 두고 한두 꼭지를, 천천히 읽었다. 배우기만 한 것은 내 생각이 아니라고 했기에, 티끌만큼이라도 내 것인 생각을 쌓아보려 했지만 어느 것이 내 것인지 구분하기조차 어려웠다. 내게도 스승이 있었으면 좋겠다.


 

지금 이 순간, 스승이 필요한 당신에게 이 특별한 수업의 초대장을 건넨다. 위로하는 목소리, 꾸짖는 목소리, 어진 목소리…… 부디 내가 들었던 스승 이어령의 목소리가 갈피마다 당신의 귓전에도 청량하게 들리기를. - [프롤로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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