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1장 365일 붓다와 마음공부 - 더럽혀지지 않는 연꽃처럼 사는 지혜
이동연 지음 / 평단(평단문화사)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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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종교가 불교라고 해도 되나? 내가 불교를 믿는 게 맞나? 불교신자 시늉만 내고 있었던 건 아닌가?


 

2021년 새해 첫날부터 매일 조금씩 필사를 하고 있다. 톨스토이가 동서양을 막론하고 세계의 지성이라 불렸던 이들의 사상과 저작에서 수집한 글을 1년의 일기형식으로 편집해놓은 책인데 필사하면서 공감 가는 부분도 많았지만 종교(기독교)와 관련한 대목은 이해하기 어려웠다. 동양사상이나 불교에서 같은 형식의 책이 있으면 정말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하루 365일 붓다와 마음공부>란 책의 출간이 반가웠다. 하지만 본문으로 들어가기도 전에 멈칫했다. 여시아문(如是我聞) 때문에. 집에서 틈틈이 108배를 하고 부처님 오신 날에 사찰에 연등을 단다고 해서 모두 불교신자인 건 아니다. 반대로 108배를 하지 않고 연등을 달지 않는다고 해서 불교신자가 아니라고 할 수도 없다. 그가 삶을 어떻게 대하는지 타인과 함께 살아가는 세상 속에서 일상을 살아가는 마음자리가 어떠한지가 중요하고 일상 속에서 자신 안의 부처를 찾아 깨달음을 얻는 것, 그것이 불교의 핵심이라고 여겼다.


 

하지만 불교경전을 제대로 읽어본 적이 없어서 여시아문(如是我聞)이 생소했기에 우선 찾아봤다. 여시는 이와 같이’, 아문은 내가 들었다의 뜻으로 들은 교법을 그대로 믿고 따라 기록한다, 붓다의 면전에서 직접 들은 가르침을 하나도 보태거나 빼지 않고 그대로 전한다는 의미라고 한다. 또한 모든 불교경전에는 첫머리에 여시아문일시불재(如是我聞一時佛在)라는 글귀가 나오는데 이는 붓다가 죽으면서 제자들에게 불경의 첫머리에 두도록 한 데 따른 것으로 경전의 내용은 붓다가 어느어느 장소에서 설교한 것으로 내가 확실히 들었으니 의심하지 말 것을 권유하는 뜻이라고 한다. 아하, 그제야 무릎을 쳤다. 그리고 집에 있는 경전의 첫머리를 찾아보니 정말 여시아문으로 시작하는 걸 확인할 수 있었다.


 

<하루 365일 붓다와 마음공부>의 구성은 달력과 유사하다. 크게 열두 달로 나누어 각 달마다 주제를 정해서 그에 해당하는 붓다의 말씀과 해설을 매일 1장씩 수록해놓았다. <붓다와 마음공부>를 만난 건 5, 주제는 [견실한 삶을 위한 고찰]이었다. 그 중에서 527, ‘나쁜 경험이 더욱 발전의 원천이 될 수 있다’‘뜻을 정해 해탈한 사람은 악마의 수렁에서도 영원히 벗어난다라는 글에 우리의 경험이 삶에 얼마나 중요한지 전해준다. 어떤 경험이든 그것을 자신의 삶을 발전하는 근거로 만들 수 있다면 좋은 경험, 나쁜 경험이 그다지 의미가 없다는 대목에서 결국 모든 일은 나 자신의 마음자리와 성찰에 있다는 걸 또한번 깨닫게 되었다.


 

앞부분엔 어떤 내용이 있을까 궁금해서 틈틈이 살펴봤다. 1월은 [삶의 주인으로 살라]는 주제로 가장 먼저 행복과 불행에 대해 이야기한다. ‘행복과 불행은 긴 시간 속에서 순간일 뿐이다며 행복과 불행을 나누는 기준은 무엇인지 묻는다. 인간은 어떤 환경에서도 자신이 어떤 사람이 될지 선택할 수 있어서 나치 수용소 같은 극한 상황 속에서도 내면의 자유를 유지할 수 있다고 말한다. 2[평탄한 삶을 위해]에서 듣기경청에 대해 말하는데 듣기는 귀로 하지만 경청은 마음으로 한다면서 듣기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철학사에 있어 중요한 궤적을 남긴 철학자의 책을 읽다 보면 종종 좌절을 겪곤 한다. 내가 분명 책을 집중해서읽고 있건만 도무지 무슨 뜻인지 이해할 수조차 없는, 귀신 씨나락까먹는 소리 같을 때, 읽는 걸 포기하고 싶어진다. 내가 무지하다는 건 알았지만 그럼에도 나의 무지를 확인하는 순간을 맞닥뜨리면 가장 먼저 나 자신에게 실망하게 된다. 그러면 안되겠지만 자존감이 뚝뚝 떨어지는 소리가 들리는 기분이랄까?


 

하지만 <하루 365일 붓다와 마음공부>는 어느 한 구절도 복잡하거나 난해하지 않았다. 읽으면 쉽게 이해되는 글, 문득 생각나 다시 읽으면 그날의 상황과 마음에 따라 의미가 더 깊어지는 글이었다. 매일, 한 꼭지씩, 천천히 읽으면서 마음을 가다듬을 수 있는 책이다. 다만 살짝, 아쉬운 점을 하나 꼽자면 본문의 한자가 너무 작다. 필사를 하려면 작은 한자가 보이지 않아 사진으로 찍어 확대해야 하는 불편함이 있지만...어쩌면 이것도 내가 한자에 무지한 때문일수도 있겠다. 삶이 불안하고 앞으로 걸어가야 할 길이 짙은 안개속이라고 생각된다면 조금씩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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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한 사람들
프레드릭 배크만 지음, 이은선 옮김 / 다산책방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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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을 공유하던 아내가 세상을 떠났다. 그에게 남은 것은 오직 사랑하는 아내를 따라가는 것뿐. 마지막 단계만 거치면 그의 목적은 달성이 되는데 그것이 매번 무산되고 만다. 바로 이웃 때문에. 시도 때도 없이 들이닥치고 걸핏하면 도움을 요청하고 대중없이 친근함을 드러내며 멋대로 성큼성큼 다가서는 이웃들. 예의범절이라고는 도저히 찾아볼 수 없고 시끄럽고 제멋대로인 이웃으로 인해 닫혔던 그의 마음이 조금씩 열리기 시작한다. 고집불통에 까칠함을 더한 남자 오베의 이야기를 영화로 만났다. 스웨덴 특유의 유머와 감동이 어우러진 영화를 남편과 함께 보는 내내 웃다가 울다가를 반복했다. 사실 <오베라는 남자>의 동명원작소설이 이미 출간되었다는 걸 알았지만 읽지 않고 패스했던 터였다. “죽지 않으려면 죽을 만큼 버텨야 돼라며 오베를 위로하던 아내의 대사가 내게 결정타였다. “그래, 이건 책도 봐야겠어!”


 

책으로 만난 오베도 역시 좋았다. 영화의 감동과 여운을 책으로 이어달리기하듯 즐길 수 있는 기회는 흔치 않은데 <오베라는 남자>는 절묘하게 그 조합이 맞아떨어진 작품이었다.




 

창밖으로 화려한 불꽃놀이가 펼쳐지는 광경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는 토끼. 그 옆에 놓인 피자 박스와 와인 한 잔. ? 이 토끼, 토끼가 아닌거 아냐? <불안한 사람들>, 제목만 보고는 고집불통 까칠남 오베를 연상하지 못했다. 제목 아래 작게 적힌 작가의 이름, 프레데릭 베크만을 보고서야 오베의 작가라는 걸 알아차렸다. 프레데릭 베크만의 신간이 출간되었다는 것을.


 

은행 강도. 인질극. 아파트를 급습하려는 경찰들로 가득한 계단. 이 지경에 다다르기까지는 수월했다. 생각보다 훨씬 수월했다. 정말 한심한 발상 하나만 있으면 됐다. - 15.


 

책의 시작. 첫 문장. 첫 문단. 단 세 줄의 문장으로 단박에 호기심을 끌어당겼다. 은행 강도와 인질극, 이건 영화에서 자주 봤던 레퍼토리니까 패스. 아파트? 강도가 아파트로 도주했나? 그럴수도 있겠다 싶다. 하지만 어딘지 모르게 신경에 거슬리는 두 개의 단어. ‘한심한 발상’. 이건 또 뭐지?


 

부모로서 제일 끔찍한 게 뭔지 아니? 최악의 순간을 기준으로 평가받는다는 거야. 백만 번 잘해도 한 번 잘못하면 공원에서 아이가 그네에 머리를 맞았을 때 핸드폰을 들여다본 부모로 영원히 낙인이 찍히지. 며칠 동안 아이한테서 눈을 뗀 적이 없어도 문자 메시지 하나 확인한 순간 그동안의 가장 행복했던 순간들은 없던 일이 돼. 어렸을 때 그네에 머리를 맞지 않았다고 해서 상담을 받는 사람은 없잖아. 부모는 항상 실수에 의해 규정이 되지. - 45


 

사건은 그리 크지도 않고 너무 작지도 않은 조용하고 평화로운 도시에서 일어났다. 새해를 이틀 앞두고 은행에 강도가 들이닥쳤다. 손에 권총을 들고. 이쯤되면 은행 안의 모든 사람이 날카로운 비명을 지르고 은행원들은 혼비백산 하는 것이 정상적인 반응인데, 그렇지 않았다. 강도를 처음 맞닥뜨린 은행원이 그에게 장난이냐고 외칠만큼. 사실 강도가 타겟으로 삼은 은행은 앙코 없는 찐빵처럼 현금이 없는 은행이었다. 그런데 이걸 은행 강도가 몰랐던 것. ‘은행 강도가 되지 못한 은행 강도는 은행이라고 볼 수 없는 은행 안으로 들어가 권총을 들이대며 자신의 방문 목적을 선포하면서 쪽지를 내밀었다


 

나는 강도다! 65백 크로나 내놔!” 68


 

권총을 들고 은행에 침입했으면 어마어마한 돈을 쓸어가든지 65백 크로나? 우리 원화로 환산하면 고작 86만원이 넘는 돈 때문에 강도짓을 한다? 이 강도 어설퍼도 너무 어설프다.


 

어른이 되는 것이 끔찍한 이유는 아무도 우리에게 관심이 없고, 앞으로는 스스로 모든 일을 처리하고 세상이 어떤 식으로 돌아가는지 파악해야 한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이 찾아오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는 아직 어른이 될 준비가 되지 않았다. 누군가가 진작 우리를 말렸어야 했다 - 75쪽


 

은행 강도 사건이 될 이야기는 강도의 예습 부족으로 인해 전혀 다른 사건으로 이어진다. 경찰이 출동하자 강도가 놀라서 도망친다는 게 길건너 아파트로 뛰어 들어가는데. 마침 그 아파트에는 매물을 구경하러 온 사람들이 버글대고 있었는데 그 속으로 총을 든 은행 강도가 들어가면서 상황은 그 순간부터 인질극이 되어 버린다.


 

시간이 흐름에 따라 그녀는 마음속 저 깊은 곳에서는 거의 모두가 같은 질문을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나는 잘하고 있을까? 나는 누군가에게 자부심을 선사하고 있을까? 나는 사회에서 쓸모 있는 사람일까? 나는 일을 잘할까? 마음이 넓고 배려심이 있을까? 괜찮은 녀석일까? 나와 친구가 되고 싶어 하는 사람이 있을까? 나는 지금까지 좋은 부모였을까? 나는 좋은 사람일까? - 156


 

이후 상황은 인질극을 다룬 여느 영화처럼 흘러간다. 경찰이 건물을 물 샐 틈 없이 에워싸고 기자들이 출동해서 TV로 보도가 되기 시작했다. 결국 은행 강도는 항복하고 인질들을 풀어준다. 그리고 스톡홀름에서 급파된 협상전무가가 마지막으로 은행 강도와 통화를 시도하지만 연결되지 않았다. 대신 들려오는 한 발의 총성. 경찰들이 일제히 아파트를 습격했지만 안에는 아무도 없고 거실 바닥은 온통 피투성이. 모든 창문, 모든 출입구가 봉쇄되었는데 은행 강도는 도대체 어디로 도주한 것일까.


 

선배는 경찰의 가장 중요한 원칙이 옳은 일을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후배는 일을 옳게 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 35


 

이 사건의 수사를 고참과 신입 경관이 맡게 된다. 마시는 커피에서 사건을 해결하는 방식까지 모든 것이 정반대인 두 경찰. 그들은 사건이 벌어진 아파트에 있던 이들을 한명씩 불러 조사를 해나간다. 그 과정에서 밝혀진 것. 모든 것에서 정반대인 두 경관이 바로 부자간이라는 거였다.


 

어깨가 되어주는 것이 부모의 역할이니까. 어렸을 때는 그 위에 앉아서 세상을 볼 수 있게, 나이를 먹으면 그걸 밟고 서서 구름을 향해 손을 뻗을 수 있게, 그리고 가끔 휘청거리고 불안해지면 거기에 기댈 수 있게, (……) 내가 너무 빨리 걸어서 네가 달려와 내 손을 잡았다고, 그때가 내 인생을 통틀어 가장 행복했던 순간이었다고 무슨 수로 설명할 수 있을까. - 46.


 

고참 경관과 젊은 경관, 아버지와 아들. 경찰의 길을 걷고 있다는 것 외에 어쩐지 거리감이 느껴지는 저 부자간은, 애써 감추려 하지만 그들의 가족에는 대체 어떤 사연이 있는 것일까. 그리고 은행 강도는 대체 누구이고 무엇 때문에 강도를 계획하게 된 것일까.


 

누군들 모를까. 중독자들이 약물에 중독됐다면 그들의 가족은 희망에 중독됐다. 희망을 붙잡고 매달린다. 그녀의 아버지는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걸려오면 항상 그녀이길 바라지만, 그녀의 남동생은 항상 이번에야말로 누나의 부고를 알리는 전화일 거라고 확신하기 때문에 겁에 질린다. 자기 딸과 누나조차 건사하지 못하다니 무슨 경찰이 그럴까? 자기 피붙이도 건사하지 못하다니 무슨 가족이 그럴까? 목사를 병에 걸리게 하다니 무슨 하나님이 그럴까? 장례식에 불참하다니 무슨 딸이 그럴까? - 292.


 

왜 제목이 불안한 사람들일까. 현대를 살아가는 사람치고 일정 정도의 불안증은 누구나 갖고 있다. 그것을 밖으로 내비치지 않을 뿐. 저자는 사람들의 그 점에 초점을 맞추어서 이야기를 풀어간다. 특별함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평범한 사람들이 알고 보니 저마다 아픔과 상처를 갖고 살아가고 있다는 걸. 그들은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최선을 다해 노력하지만 때론 잘 풀리지 않아 실의에 빠져 실수를 하기도 한다. 그런 사람들 앞에 나타난 어리숙한 은행 강도. 그들의 이야기는 과연 어디로 어떻게 흘러갈 것인가.


 

작년부터 이어진 코로나로 우리는 자유이지만 완전한 자유가 아닌 일상을 보내고 있다. 이럴수가 있나 싶을만큼 등장인물들의 어리숙하고 엉뚱한 행동에 빠져 키득거리면서 읽다보면 생각지도 않게 가슴 한켠에서 욱신거리는 무언가를 느끼게 된다. 유머와 감동을 적절히 배합할 줄 아는, 독자와 밀당할 줄 아는 철저히 '배크만'다운 소설, <불안한 사람>이다.


 

진실. 세상에 진실은 없다. 우리가 우주의 경계에 대해 어찌어찌 알아낸 게 있다면 우주에는 경계가 없다는 것뿐이고, 신에 대해 아는 게 있다면 우리는 아무것도 모른다는 것뿐이다. 따라서 목사였던 어머니가 가족들에게 요구한 것은 간단했다. 최선을 다하라는 것. 내일 지구가 멸망하더라도 오늘 사과나무를 심으라는 것.

구할 수 있는 사람을 구하라는 것. - 4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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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질문 - 내 안의 두려움을 마주하는 인생의 지혜를 찾아서
다큐멘터리 〈Noble Asks〉 제작팀 외 지음 / 다산초당(다산북스)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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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효자는 부모님 돌아가시고 나서 운다고 하더니 딱 내가 그 형국이다. 친정엄마가 돌아가신지 몇 년이 지났건만 아직도 상실의 슬픔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부모를 여읜 자식들이 대부분 그렇지 않은가 싶지만 꼭 그렇다고 장담할 순 없다. 일상에 쫓기다가도 문득 멍하니 있거나 생각에 잠길 때 거리에서 다정한 모녀의 모습을 볼 때면 문득문득 후회가 밀려온다. 난 다른 형제에 비해 엄마의 속을 덜 썩였지만 반면에 살가운 딸은 아니었구나. 깨닫는다. 남에게 폐끼치지 않고 자기 할 일만 하면 된다는 생각을 가진 무뚝뚝한 딸. 그게 나였다고.



날 왜 낳았어!

어쩌면 난 알고 있을지도 모른다. 나의 슬픔의 이유를. 오래전, 사춘기도 모르고 지냈다 싶은 내가 딱 한 번 엄마의 가슴에 날카로운 대못을 박았다. 날 왜 낳았냐고. 물었다. 그때 엄마의 기분이 어땠을까, 얼마나 충격이 컸을지 지금 내가 새삼 느끼고 있다. 아들을 키우면서... 난 알고 있다. 그날의 내 무모한 행동을 생전에 엄마에게 죄송하다고 말씀드렸어야 했는데 얼렁뚱땅 넘긴 게 이렇게 한으로 남았다는 것을. 그리고 아직 모르고 있다. 난 누구이고 어떤 사람이며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그 길을 찾지 못했다는 것을.



<오래된 질문>은 생물학계의 대석학으로 알려진 과학철학자 데니스 노블 박사가 한국의 사찰을 방문해서 고승들과 나눈 대화를 정리한 책이다. 통도사의 성파 스님, 실상사의 도법스님, 백양사 천진암의 정관 스님, 땅끝 미황사의 금강 스님. 불교를 믿거나 불교에 관심있는 사람이라면 모르는 이가 없을 정도로 한국을 대표하는 큰스님들이다. 그런데 생물학자가 불교의 스님들과 대체 어떤 이야기를 나눌까. ‘내 안의 두려움을 마주하는 인생의 지혜를 찾았을까? 과학과 종교는 극과 극인데 그들의 만남이 과연 순탄했을까? 이런 궁금증이 나로 하여금 책장을 넘기게 만들었다.



중요한 건 쓸데없는 걸 많이 아는 게 아닙니다. 내가 모른다는 것을 아는 것이죠. 모르고 있다는 껄 모르는 것, 그게 가장 큰 병입니다. - 33.(성파)



책은 네 부분으로 나누어져 있다. ‘삶은 왜 괴로운가?’ ‘나는 누구인가?’ ‘마음을 어떻게 다스릴 것인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이 네 개의 대주제 아래 그것을 풀어가기 위한 스님들의 말씀과 데니스 노블의 이야기가 수록되어 있다. 한 꼭지마다 글의 길이는 짧은데 그 속에 핵심을 단번에 꿰뚫는 글이 많았다.



머리는 하늘을 향해 있고 두 발은 땅을 딛고 서 있는 모습으로 생긴 사람이 깨달은 자, 부처다. 밥이 오면 입을 열고 졸음이 오면 눈을 감으며 사는 사람이 깨달은 자, 부처다. 바꿔 말하면 이런 얘기를 하는 거죠. 나와 당신, 우리 모두가 부처다. 인간은 누구나 다 부처다 125(도법)



고통에서 벗어나거나 누가 나를 화나게 한다면 우선 원인을 알아야 하는데 그러자면 사실을 정확하게 직시해야 한다거나 세상은 많은 것이 서로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우리는 함께 살아야 하는데 그걸 잊고 따로따로 살기 때문에 인간과 인간이, 인간과 자연이, 제대로 온전히 살아가기 힘든 거라고 짚어준다.



만약 당신이 남과 비교하는 마음에서 벗어날 수 있다면, 훨씬 자유로워질 것입니다. 내가 보는 현상과 주변 환경들을 온전히,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는 지혜와 겸손한 마음가짐이 걸림 없는 삶, 자유로운 삶을 만들어줄 것입니다. - 147(정관)



과학자와 스님들의 대화가 겉돌지는 않을까 의문이 들었다. 하지만 데니스 노블이 원효의 [금강삼매경론]의 관점을 보여주는 시의 원문을 해석하기 위해 한자를 배울 만큼 동양사상에 관심이 많았기 때문인지 그들의 대화는 때론 굳이 통역을 거치지 않아도 통했다고 한다. 마치 염화미소의 부처님과 가섭처럼.



참선을 하면 우리의 삶이 어떻게 달라질까요? (……) 참선은 삶을 다르게 인식하는 방법입니다. 과거의 기억과 미래의 환영에서 벗어나고, 헛된 망상들이 걷히면서, 자연스럽게 현재로 초점이 맞춰지는 거지요. (……) 비로소 내가 지금 이 순간에 존재하게 됩니다. - 186, (금강)



마음편히 사찰을 자주 찾을 수도 없는 상황이 일 년 넘게 이어져 오고 있다. 사람에게 오른팔이 있으면 왼팔이 있듯 함께 더불어 살아가야 하는 세상인데 요즘 사람과 사람과의 관계는 예전처럼 자유롭지 못한 게 사실이다. 시원하게 소통되지 못하고 어딘가 막힌 듯 답답함을 느끼는 날이 많아지면서 이렇게 살아도 되는 것일까 의문이 들곤 했다. <오래된 질문>을 틈틈이 조금씩 마음 내키는 대로 손에 집히는 대로 읽어 나갔다. 몇 번을 읽어도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아 결국 덮어버리고 마는 책보다 <오래된 질문>은 짧지만 금방 공감할 수 있고 그러면서도 몇 번이고 곱씹어서 생각해볼 수 있는 글이 많아서 좋았다. 그때그때 연필로, 형광펜으로 줄을 긋고, 포스트잇과 플래그를 붙여 가며 메모를 했다. 곳곳에 생각할 수 있는 여지를 남겨주는 책, 필사하면서 생각을 가다듬고 싶은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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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락왕생 1
고사리박사 지음 / 문학동네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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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려? 노래 불러. 체리필터의 <낭만 고양이>로…"



비가 내리는 날이면 합정에서 당산행 지하철에 나타나는 귀신이 있단다. 이름하여 '당산역 귀신'. 자신과 눈이 마주치는 인간에게 귀신은 다짜고짜 말한다. "들려?" "노래불러. 체리필터의 <낭만고양이>" 생각만 해도 소름이 끼친다. 귀신은 상상만으로도 무서우니까. 또 아주 곤란할 것 같다. <낭만고양이>란 노래를 모르기 때문에.



귀신이라면 대개 이승에서 원한이 있을때 저승으로 가지 못하고 이승을 떠돈다고 한다. 그렇다면 '당산역 귀신'은 대체 어떤 원한이 있는 걸까. 그의 행태를 보면 불쑥 나타나 인간에게 특정 노래를 불러달라고 하는 것 외에 특별히 해를 끼치진 않는다. 하지만 그럼에도 인간을 놀라게 하고 이승의 질서를 혼란을 줄수 있는 귀신은 이승에 있어선 안되는 존재이기에 지옥의 호법신 도명이 출동한다. 잡아서 지옥으로 끌고 가기 위해서.



도명이 당산역 귀신을 잡아서 끌고 가려는 찰라, 누군가 나타나 그를 가로막는다. 바로 천수천안의 관음보살. 관음은 귀신이 악귀도 아닌데 무턱대고 지옥으로 끌고 가려고 했냐며 도명을 호되게 꾸짖는다.





관음은 도명에게 묻는다. 자비의 마음을 잊었느냐고. 당산역 귀신이 왜 하필 비오는 날에만 나타나며, 합정역에서 나타나 당산역에서 사라지는지 이유를 생각해본 적이 있느냐고.





죽음을 마주하지 못해서, 윤회를 피해 귀신이 된다고 여겼던 도명은 혼란에 빠진다. 지금까지 이승을 떠도는 귀신을 잡아 지옥으로 보내는 것을 당연하다고 여겼는데 대체 어디가 잘못된 것인가...



그런 도명에게 관음은 특별한 임무를 내린다. 당산역 귀신, 박자언에게 스물여섯 해의 인생 중에서 가장 중요한 한 해를 다시 살게 해주겠다고.



"도명 당신은 그 한 해 동안 박자언의 보리심이 피어나도록 도우면서 한 해가 끝나는 날 박자언을 극락왕생 시키십시오"




박자언의 인생에 가장 중요한 해는 2011년. 당시 고3이었던 자언은 자신이 다시 태어난 시점이 왜 하필 고등학교 3학년때인지 알지 못한다. 자언을 곁에서 지켜보며 도움을 줘야하는 도명 역시 같은 학교의 학생이 된다. (교복이 어쩐지 도명에게 안 어울리는 듯하지만...)





죽었다가 다시 태어난 것의 후유증일까. 자언은 자신이 이전과 달라졌음을 느낀다. 바로 귀신이 보인다는 것. 학교와 교실 여기저기에서 귀신이 출몰하는데 그들의 대화를 엿들은 자언은 오래전의 기억을 떠올린다. 학교에서 일어난 크고작은 소동으로 자신은 물론 친구들이 얼마나 혼란스러웠는지...



자언은 귀신을 무조건 잡고 쫓을 게 아니라 그들과 슬기롭게 지내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도명과 함께 방법을 찾아나간다. 특히 인상적인 대목은 자언이 엄마와의 이야기를 다룬 대목이었다.



자언의 실수로 엄마가 귀신의 소동에 휘말리자 어릴적 엄마의 주의를 무시하고 인라인을 타고 멀리까지 갔다가 넘어져서 손바닥이 다쳤을 때 얘기를 꺼낸다. 집에 돌아와서 엄마에게 혼날까봐 손을 감추었지만 엄마는 금방 알아차렸다고.


"등뒤로 깜쪽같이 손을 감춰도

엄마는 눈만 보고 알아챘다."





수시로 엄마와 티격태격 말씨름을 하지만 서로 깊이 아끼고 사랑하고 있었다는 걸 깨닫는 자언. 몇 가지의 일화만을 보면 자언이 왜 죽었는지, 고3 시절이 왜 가장 중요한 해인지 알 수가 없다. 그리고 그런 자언을 도와 1년 후 극락왕생으로 이끌게 될 도명. 그는 잊었던 자비의 마음을 다시 일깨우게 될까. 기분전환 삼아 만난 만화책에서 우리 삶을 다시 돌아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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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치, 인간과 괴물의 마음 - 나를 잃지 않고 나와 마주하는 경계의 감정
이창일 지음 / 추수밭(청림출판)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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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월이었다. 중범죄 등으로 금고 이상의 형을 받은 의사의 면허를 취소하는 법안에 대해 대한의사협회가 크게 반발하면서 급기야 코로나19 백신접종에 협력하지 않겠다고 발표하기에 이르렀다. 그들의 집단행동은 사람의 생명이나 안전보다 자신의 이권과 기득권을 놓치지 않는 데만 몰두한 듯했다. 유치원 다니는 어린아이보다 못한 이기적이고 몰상식한 행동을 일삼는 그들이 사회의 지도층이자 지식인이라 할 수 있는지 의문이 들었다. 그러고도 변함없이 존경을 받고 싶은지 묻고 싶었다. 왜 그들로 인한 창피함은 우리들의 몫인가. 그들의 행위가 왜 이토록 수치스러운가.



인간과 괴물의 마음이란 부제의 책 <수치>의 표지를 한참 바라봤다. 흑백의 사람 옆모습이 아래위로 나뉜 표지를 보면서 온라인에서 간혹 볼 수 있는 착시 이미지가 떠올랐다. 젊은 여인의 옆모습이라고 여겼던 그림이 어느새 매부리코의 노파 얼굴로 바뀌고 아리따운 여인으로 보였던 그림은 둥지로 날아드는 새였으며 가운데가 불룩하니 휘었다고 생각한 선은 알고 보면 휘어짐이 없는 직선이었다. 이런 경험을 미루어 짐작해보면 흑백의 두 얼굴이 상징하는 건 어쩌면 뇌의 착시처럼 같으면서도 다른 감정에 대해 이야기하는 건 아닐까 생각했다.



창피함과 부끄러움과 수치는 어떻게 다른가. 같은 감정인가. 늘 궁금했다. 심리학과 철학, 상담심리학의 이력을 지닌 저자는 첫 문장에 나의 궁금증에 대한 해답을 내어놓는다. ‘부끄러움수치와 같은 뜻을 가진다고. 차이점이 있다면 부끄러움보다 수치가 좀 더 부정적인 의미를 띄고 부끄러움은 순 우리말이지만 수치는 한자어라고 말한다. 좋은 감정이지만 나쁜 감정이기도 한 두 얼굴을 지닌 감정 수치. 저자는 수치의 두 가지 얼굴에 대해 세세하게 풀어놓는다.



우리가 앞으로 탐구할 낯붉힘의 감정인 수치는 조금 특별한 감정이다. 수치는 넓이와 깊이를 모두 가진 감정이기 때문이다. - 6.



책은 크게 다섯 부로 나누어져 있다. 그리고 각 부는 다시 주제에 따라 2~4개의 장으로 나누어 설명하고 있다. 이를테면 1수치, 감정과 문화부끄러움의 감정부끄러움의 언어문화라는 장에서 부끄러움이 어떤 감정인지 알기 위해 감정이 일어나는 마음의 상태가 어떠한지, 사람의 감정 변화와 관련해서는 뇌의 어느 부위가 영향을 미치는지를 실험을 통해 살펴본다. 부끄러움의 옛말이 붓그럽다붓그리다란 것과 부끄러움이 일차 감정이 아니라 사회감정인 이차감정이라는 걸 처음 알게 됐다. 인간이 감정을 느낄 때 신체적으로 변화가 나타나는데 그동안 여러 문학작품을 통해 접했던 대목이 많아서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그림에 표시해 놓은 부분이 특히 인상적이었고 수치의 의미를 표로 나타내놓아서 일목요연하게 정리하기에 좋았다.



이차 감정이 없는 짐승들은 부끄러움을 느낄 수 없지만, 인간은 부끄러움을 느낄 수 있다. 그런데 지각만 한다면 이 또한 인간이 아니다. 그것을 내면에서 다시 불러일으켜서 느껴야 한다. 그래야 인간이다. - 75.



2수치, 아래쪽 얼굴부터 본격적으로 수치를 탐색하기 시작한다. 수치란 감정의 탄생을 이야기하기 위해 저자는 에덴동산의 아담과 이브에게로 포커스를 맞춘다. 너무나 자연스럽게 알몸으로 지내던 그들이 뱀의 유혹과 부추김에 선악과를 먹은 이후 갑자기 수치, 그것도 부정적인 감정을 알게 되는데 그 순간을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역설적으로 인간이 되는 순간 생겨난 감정이 바로 수치다라고.



수치는 인간으로 살아가는 일이 쉽지 않다는 것을 알려주며, 그 길은 이전처럼 거저 주어진 것이 아니라는 엄혹한 현실을 알려주는 신호이기도 하다. - 125.



얼마전에 읽었던 <실낙원>이 바로 이 아담과 이브의 이야기인데, 기독교를 믿지 않는 내게 인상적이었던 부분은 하느님을 불복종한 벌로 에덴에서 쫓겨나게 되자 그들이 서로에게 취했던 행동이었다. 신의 완전함을 추구하고자 했던 인간의 의도가 어떠한 것이었는지보다 서로가 서로를 원망하고 책임을 전가하고 질책하는 장면, 수치스러운 모습이었다.



이후부터 프로이트가 등장한다.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적인 해석이 동원되고 리비도라는 낯선 용어를 통해 인간의 수치가 신화와 어떤 관련이 있는지 하나하나 살펴보는데 이전만큼 술술 읽히지는 않는다. 브래드쇼는 수치가 인간에게 가장 위협이 되는 악마적인 존재로 일컬었는데 수치로 인한 질병을 언급하는 대목은 아무래도 마음이 무거웠다.



요즘 뉴스를 보면 우리가 수치심에 둔감한 사회가 되어버린 건 아닐까 걱정이 되기도 한다. 부모가 아이에게 폭행을 가하고 젊은 청년의 안타까운 죽음을 가십거리로 생각하고 정치인은 어제 했던 말을 오늘 뒤집기 일쑤다. 부끄러움, 수치란 감정이 없는 사회는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인간에게 부끄러움을 아는 것은 부정적인 의미만 있는 것은 아니다. 부정적인 부분을 갖고 있지만 그 역시도 인간다움을 찾는 과정이 아닐까. 부끄러운 말과 행동을 했을 때 그걸 재빨리 알아차리고 수정하려고 노력하는 자세, 용기가 그 어느때보다도 필요하다. 인간의 감정의 숨은 이면을 알고자 하는 이가 읽어봄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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