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살아야 하는가 - 삶과 죽음이라는 문제 앞에 선 사상가 10인의 대답
미하엘 하우스켈러 지음, 김재경 옮김 / 추수밭(청림출판)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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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사는가란 질문에 단박에 대답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농담인지 진담인지 태어난 김에 그냥 산다” “죽지 못해 산다고 답하는 사람이 있긴 하지만 대부분 쉽게 말을 이어가지 못했다. 이에 비해 어떻게 살고 싶은가란 질문엔 저마다의 생각과 바램을 꺼내놓는다. 남한테 피해 주거나, 욕먹지 않고, 가족들 모두 건강하고 행복하게 살고 싶다,는 공통적인 답변에 추가로 후회하지 않고, 미리 걱정하지 않는 삶을 살고 싶다고 털어놓는다. 비슷한 듯 맥이 닿아있는 두 질문에 대한 상반된 반응을 보면서 생각해보게 된다. 삶의 철학, 삶에 대한 근원적인 질문에 대한 해답은 어디서 찾을 수 있을까.


 

<왜 살아야 하는가>삶과 죽음의 의미(The meaning of life and death)’라는 원제목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독일 철학자 미하엘 하우스켈러가 사상가와 작가 10명의 작품을 통해 삶과 죽음에 대한 의미를 풀어보는 책이다.


 

삶과 죽음의 의미를 모색하기 위해 저자는 쇼펜하우어, 키르케고르, 허먼 멜빌, 도스토옙스키, 톨스토이, 니체, 윌리엄 제임스, 프루스트, 비트겐슈타인을 불러내었다. 이름만으로도 너무나 유명한 철학자와 작가들. 그들의 저작을 모두 읽지는 않았지만 사상에 대해서는 학창시절 배웠던 것이 어렴풋이 떠올랐다. 물론 그들의 철학이나 사상의 이해 정도와는 전혀 상관이 없지만. 세부적인 내용은 조금씩 다르지만 기본 구성은 흡사하다. 철학자와 작가의 주된 주장과 사상을 소개한 다음 그의 생애를 통해 삶과 죽음에 대한 철학과 사상이 어떤 배경과 흐름을 갖게 되었는지 작품을 바탕으로 풀어내고 있다.


 

이 세계의 근본을 이루는 것은 부조리하고 맹목적인 의지라고 주장했던 쇼펜하우어는 삶을 고통과 고난 그 자체로 여겼다. 인간은 살면서 끊임없이 욕망하는 존재이기 때문에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하는 것으로도 고통을 겪는다고 주장했다. 이런 내용을 칸트, 라이프니츠의 사상과 더불어 설명하고 있는데 쇼펜하우어의 저작을 읽지 않았기에 어려웠다. 그저 인간이 죽음을 두려워하는 것은 본성에 기인한다는 걸 기억하는 정도에 그쳤다.


 

도스토옙스키의 작품에는 자살과 죽음이 주된 소재로 등장ㅡ도스토옙스키의 걸작들에는 최소한 한 번 이상의 자살 혹은 자살 시도와 한 번 이상의 살인사건이 등장한다(143)ㅡ하는데 어떤 이유에서인지 의미를 찾아본다. 허무주의에 반박하기 위해 대안으로 작품 속에 불멸인 신의 존재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는 것이다. 도스토옙스키의 작품을 일부만 읽어서 내용 모두를 이해할 순 없었으나 일부 잘못된 부분이 눈에 띄었다. 158쪽 둘째 줄,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중 셋째인 이반은이라고 되어 있으나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에서 셋째는 알로샤이고 이반은 둘째이다. 저자가 잘못 알고 있는 건 아닌가 싶다.

 

필사와 독서모임을 통해 <인생독본> <이반 일리치의 죽음> <전쟁과 평화>을 읽고 있어서 톨스토이의 부분이 기대가 됐다. 귀족 집안에서 태어나 풍족한 삶을 살았던 톨스토이가 개혁자로서의 삶을 걸었던 게 인상적이었는데 저자는 톨스토이의 <전쟁과 평화>에 죽음이라는 소재가 잘 드러나 있으며 그 작품을 통해 죽음에 대한 생각으로 절망하고 우울증에 빠지기도 했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전쟁과 평화>의 베주호프(피예르)란 인물을 통해 삶의 의미와 목적을 찾으려고 몰두했다고 짚어주었다. 어쩐지 <전쟁과 평화>를 읽으면서 피예르가 톨스토이의 내면을 투영한 인물은 아닐까 생각했는데 역시! <이반 일리치의 죽음>을 읽고 나서 죽음을 앞둔 사람의 심리, 공포가 어떠할지 짐작해보곤 했는데 여기에 톨스토이의 죽음에 대한 공포, 두려움이 녹아들어 있었던 건 아니었을까.


 

책은 삶의 목적은 무엇일까?’란 질문으로 시작한다. 인간이라면 모두 죽을 수밖에 없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무언가를 이루려 하고 의미 있는 삶을 사는 것이 가능한지 의문을 갖는다. 삶과 죽음에 의미를 다루는 의문을 저자는 가장 답하기 어려운 궁극의 의문이라고. 그러면서 아들이 자신에게 건넸던 말을 전한다. [무엇이든 결국엔 죽으니까 삶의 목적은 죽음이라고. 하지만 죽음의 의미는 삶이라고. 죽음 없이는 삶도 있을 수 없기 때문에]. 이 말에 깜짝 놀랐다. 어린 아이에게서 이런 말이 나올 수 있다는 사실에. 철학자의 자식이어서 그 영향을 받은 것일까 생각했다. 하지만 이게 해답일까? 저자는 말한다. 이 책에서 궁극의 의문에 대한 해답을 찾을 거라 기대하지 말라고. 그렇다면 어떻게 하란 말인가. 어쩌면 이 책은 저자가 깔아둔 ''일지도 모르겠다. 삶과 죽음의 의미, 삶과 죽음에 대한 해답의 언저리로 향하는 길을 저자가 안내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제 남겨진 것은 분명하다. 저자가 깔아둔 길을 걸으면서 보물찾기를 하듯 '왜 살아야 하는지' '삶의 의미와 목적은 무엇인지'에 대한 나만의 해답을 찾아야 하는 것. 쉽지 않겠지만 그래서 더 고심해볼 만한 가치가 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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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작을 읽는 기술 - 문학의 줄기를 잡다
박경서 지음 / 열린책들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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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무수히 책탑을 쌓았던 적이 있다. 하루에도 무수히 쏟아지는 신간들을 살펴보는 데서 재미를 느꼈다. 그러다 나의 책을 읽는 속도는 고려하지도 않고 호기심을 자극하는 책이나 흥미로운 책, 지적 허영을 채워줄 수 있는 책, 어쩐지 읽어야 할 것만 같은 책들을 부지런히 장바구니로 옮겨 담았다. 나름의 기준을 갖고 책을 구입했지만 모두 성공했다는 기분은 들지 않았다. 동기나 목적이 분명하지 않아서인지 많은 책들이 금방 관심에서 멀어져갔다.


 

책읽기 역시 마찬가지였다. 매일 틈나는 대로 책을 읽었지만 그럼에도 허기가 가시지 않았다. 1년에 200권이 넘는 책을 읽어도 만족스러운 느낌이 들지 않았다. 돌아서면 허물어질 모래성을 끊임없이 쌓고 또 쌓고 있는 기분이랄까. 내가 지금 뭐하는 거지, 나의 책읽기는 분명 문제가 있어, 고민해보아도 뚜렷한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다.


 

그러다 가장 먼저 시도한 것이 속도 늦추기였다. 빠른 속도로 달리는 차 속에서는 주변 풍경이나 모습을 자세히 볼 수 없듯이 책읽기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책을 한 번 잡으면 끝까지 내달리던 것에서 일정 간격을 두고 잠깐 멈춤하기도 했고 도무지 이해되지 않는 문장을 한동안 붙잡고 있기도 했다. 읽고 있는 책의 배경이나 작가의 자서전을 곁들여 읽기도 했다. 책읽는 속도가 느려지니 읽는 책의 양이 줄었다는 점은 아쉽다. 그럼에도 책읽고 나서 느껴지는 헛헛함이 예전보다 줄어든 건 확실하다. 이것만해도 어딘가.


 

<명작을 읽는 기술>이 처음 출간되었을 땐 제목의 기술이란 단어가 마음에 걸렸다. 책을 읽는 기술이란 게 있을 수 있나 싶다가 지난날 고생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어떤 책이든 거기엔 저자가 의도한 바가 분명 있을 것이고, 당시 배경이나 사회적인 분위기가 녹아 있을텐데 예전엔 그런 부분에 미처 신경쓰지 못했다. 그제야 눈에 들어온 것이 문학의 줄기를 잡다는 부제였다. 저자가 무엇을 전하고 싶은지 짐작할 뿐이지만 마음에 들었다.


 

수박 겉핥기식의 개론서도, 전문 독자를 위한 이론서도 아니라 깊이 있는 독서의 대중화를 지향한다는 저자는 문학의 뿌리에서부터 시작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문학의 줄기를 잡아서 명작을 제대로 읽어보기를 바란다는 의미가 아닐까 싶다. 책은 크게 세 부분으로 나누어져 있다. ‘1부 문학은 시대를 반영한다’ ‘2부 문학을 한다는 것’ ‘3부 문학은 삶에 대해 알고 있다이것만 보면 어쩐지 문학이란 무엇인가를 다루는 문학입문서 같은 느낌이 들었다.


 

저자는 서구 문화의 뿌리가 헬레니즘과 헤브라이즘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현대 문학은 그리스로마신화에서 시작된다거나 고대 그리스의 희비극에 인간이 살면서 겪을 수 있는 모든 이야기가 담겼다는 이야기는 주변에서 종종 들었지만 헤브라이즘? 학창시절 헬레니즘이나 헤브라이즘은 미술이나 건축양식을 설명할 때 들었지만 문학과 무슨 상관일까. 처음 듣는 말이었다. 나처럼 생각하는 독자가 많다는 걸 아는지 저자는 고대 그리스와 로마 문명을 뜻하는 헬레니즘과 유대교, 기독교에 바탕을 둔 문명인 헤브라이즘은 건축뿐 아니라 문학에도 영향을 미쳤기 때문에 그 두 가지를 알아야 서양 문학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다고 강조한다. 순간, ! 하고 무릎을 쳤다. 지금까지 내가 유독 종교와 관련된 부분, 특히 중세는 거의 죽음, 읽어도읽어도 무슨 말인지 알 수가 없었는데 그게 모두 헤브라이즘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기 때문이란 걸 알게 됐다.


 

문학을 이야기하는 책에서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를 만나게 될 줄이야! 특히 플라톤이 의외였다. 하지만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을 이해하려면 그의 스승인 플라톤의 철학에 대한 이해는 필수적이다. 플라톤의 서양철학에 미친 영향에 대해 영국 철학자 화이트헤드가 서양의 2000년 철학은 플라톤의 각주에 불과하다고 했듯이 수많은 작가들이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을 손꼽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토마스 모어 <유토피아>를 아직 읽지 못했는데 그 유토피아가 소설에 등장하는 섬 이름이었다는 점도 놀라웠다. 어원을 살펴보면 어디에도 없는 곳이란 뜻이어서 인간이 상상할 수 있는 최고의 이상향을 유토피아라고 했다고 한다. 더불어 3대 유토피아 소설과 3대 디스토피아 소설을 알려주고 있는데 이 중 아직 읽지 못한 작품이 있어서 곧 만나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를 다룬 부분도 인상적이었다. 사실 <노인과 바다>의 줄거리는 간단하다. 운이 없는 늙은 어부가 바다에 나가 모처럼 청새치를 잡지만 상어한테 다 뜯어먹히고 만다는 내용이다. 사실 <노인과 바다>는 헤밍웨이가 200번이 넘는 탈고를 한 끝에 탄생한 작품이고 노벨문학상과 퓰리처상을 수상한 작품이다. 하지만 막상 소설을 처음 읽을 땐 감동이란 걸 느끼기 어려웠다. 그점에 대해 저자는 ‘<노인과 바다>를 문학적으로 온전히 이해하려면 빙산 이론과 하드보일드 문체에 대한 이해가 선행되어야 한다(217)’고 짚어준다. 작품의 의미를 직접적으로 묘사하지 않았기 때문에 빙산의 일각처럼 겉으로 쉽게 드러나지 않고 문체에 감정을 배제하고 간결하게 비정한 문체로 썼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결론은 내가 책을 겉핥기로 읽었다는 거다.


 

책에 대한 책, 책을 이야기하는 책을 읽을 때면 항상 본문에 언급된 책 중에 내가 읽은 건 몇 권일까 세어보게 되는데 매번 내가 읽은 책이 몇 권 되지 않아서 실망했었다. 하지만 이 번엔 읽은 책이 읽지 않은 책보다 많았다. 이런 경우는 처음이라 괜히 기분이 우쭐했지만 곧이어 든 생각은 다시 읽어야겠다는 거다. 이번에 읽을 땐 좀 제대로 짚어가며 읽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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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의 부 - 인공지능 시대, 돈은 어떤 모습으로 다가오는가
이지성 지음 / 차이정원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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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이 그다지 흥미롭지 않다.
어느 책을 봐도 비슷한 얘기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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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일파스텔, 나만의 작품 그리기 - 회화적이고 감성적인, 특별한 오일파스텔의 세계 오일파스텔, 나만의 작품
이주헌(어반포잇) 지음 / 리얼북스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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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때부터 책 읽기와 그림 그리기를 좋아했습니다. 초등학교에 입학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부득이한 사고로 두 달 남짓 병원에 입원한 적이 있었는데요. 치료가 어느 정도 이뤄져 행동이 자유로워졌을 때 엄마에게 가장 먼저 책과 스케치북, 크레파스를 부탁했습니다. 그리고 남은 기간 동안 병실에서 줄곧 했던 것이 책 읽고 그림 그리기가 전부였지요. 퇴원 무렵 제가 있던 병실의 벽에는 온통 그림이 붙여져 있었는데 나중에 들어보니 엄마가 그걸 일일이 떼느라 고생 좀 하셨다고 하더군요.


 

사실 책 읽기와 그림 그리기는 대부분의 아이들이 좋아하는 활동이지요. 특히 그림은 잘 그리는 것보다 그림을 그리는 그 자체를 즐기는데요. 자신이 지금 보고 있는 것이든 기억 속에 있는 어떤 것이든 자신이 바라는 무언가이든, 그것을 그림으로 그린다는 건 참으로 매력적입니다. 어떤 것을 꼼꼼하게 관찰하고 그것의 특징을 간단하게 혹은 세밀하게 그려내려면 일단 집중력은 기본, 거기에 그림을 완성하기까지 포기하지 않는 끈기도 필요합니다. 한마디로 그림 그리기는 그림으로 자신을 드러내고 때로 마음을 치유하는 고도의 정신활동이자 육체적인 활동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유익한 활동인 그림 그리기를 대부분의 사람들은 청소년기를 정점으로 해서 멀리하기 시작합니다. 이유가 무엇일까요. 아마 대학입시 때문이겠죠. 입시와 관련 없는 과목의 수업이 학교에서 사라지듯이 미대를 지망하거나 미술을 전공으로 하지 않는 사람은 더 이상 그림을 그리지 않더군요.


 

돌아보니 저도 그랬습니다. 여고 때 미술 선생님께서 제게 미대를 가라고 권하셨어요. 전 내가 그림을 잘 그리고 소질이 있다는 의미인가 싶어서, 괜히 기분이 들떴구요. 집에 돌아오자마자 엄마에게 말했는데요. 일언지하에 거절당했습니다. 당시 미대를 다니는 언니가 있었는데 수업에 필요한 재료비며 실습비 같은 비용이 생각보다 많이 들었나봐요. 엄마는 우리집에 미대는 한 명만. 넌 안된다고 하셨죠. 그때 들었던 생각이 , 미술을 하려면 돈이 많이 필요하구나. 그림이 좋다고, 하고 싶다고 해서 함부로 시작하면 안되겠구나였습니다.


 

오래전, 30년도 훨씬 전의 일인데도 그때의 기억, 생각은 지천명을 넘긴 지금까지도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작년부터 시작된 코로나19로 인해 외부활동이 제한되고 집안에서 머무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실내에서 시간을 어떻게 보내는게 좋을까 고민하게 됐구요. 독서 외에 다른 활동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때 문득 오래전 내가 무척 좋아했던 그림이 떠오르더군요. 하지만 중년 아줌마가 돼서 그림을 시작하는 게 가능할까. 주책맞다고 흉보지는 않을까. 그림을 배우려면 학원을 다니든 해야 할 텐데 생활비에서 이런 취미생활에 비용을 지불하는 게 과연 옳은 일일까..... 온갖 생각들이 다 들었습니다. 그러다 우연히 이웃 블로그를 통해 오일파스텔이란 걸 알게 됐습니다. 그림을 그리는 과정을 몇 장의 사진으로 올려놓은 글을 보면서 오일파스텔화가 수채화보다는 비용이나 난이도 면에서 진입장벽이 낮을 것 같았어요. 학원에 다니지 않더라도 유투브에 올라온 영상을 보면서 하면 되지 않을까 싶더군요.


 

그런 가운데 만난 책이 <오일파스텔, 나만의 작품 그리기>입니다. 나뭇가지 가득 흐드러지게 핀 분홍빛 꽃과 회갈색의 벽돌집과 현관의 좌우에 놓인 초록초록한 화분들. 마치 여유롭고 평화로운 마을의 어느 집을 사진으로 담은 것 같은 표지에 순간 매료되고 말았습니다. 이 그림이 수채화도, 유화도, 아닌 오일파스텔이라는 게 놀라웠어요. 오일파스텔로 이렇게까지 표현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는 것 같았거든요.


 

다다름이라는 드로잉 스튜디오를 운영하고 있는 저자는 최근 오일파스텔이 많은 이들에게 각광을 받는 이유를 수채화처럼 얇은 그라데이션도 가능하고 유화처럼 꾸덕꾸덕한 질감도 기능한 매력적인 소재인데다가 휴대성과 가성비가 좋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면서 본문에 수록해놓은 자신의 노하우를 바탕으로 오일파스텔의 기법을 차근차근 연습하다 보면 곧 다양한 그림을 그릴 수 있다고 하네요.

 

 

책은 모두 8개의 장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오일파스텔을 처음 접하는 저같은 초보자에게는 역시 1오일파스텔 재료와 기법이 가장 중요하겠죠. 오일파스텔의 브랜드마다 어떤 특징이 있는지, 오일파스텔로 그림을 그리기 적합한 종이의 종류에 대해 사진을 첨부해서 설명해 놓았습니다. 크레파스의 한 종류로 안료를 유지로 굳혀 만든 게 오일파스텔이라서 뭉툭한 선은 물론이고 파스텔을 잘라서 사용하면 섬세한 표현도 가능하다고 하는데요. 오일파스텔을 좀 더 효과적으로, 풍부하게 표현을 하고자 할 때 필요한 보조도구와 호환재료, 블랜딩 도구 등등 오일파스텔의 가장 기본적인 ABC를 간단하게 알려주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오일파스텔의 여러 기법(점 찍기, 선 긋기, 면 채우기)과 그림을 그릴 때 주의할 점, 그림의 구도를 어떻게 잡아야 하는지 짚어주는데요. 특히 꽃을 그릴 때 가장 중요한 것은 꽃의 형태와 모양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면서 꽃이 피어있는 방향에 따라 달라지는 모습을 간단한 스케치로 전해줍니다.


 

그런 다음 2장부터는 변화무쌍한 구름의 모습, 평안과 안식을 주는 바다 풍경(3), 설렘을 주는 꽃밭 풍경(4), 환상적인 분위기를 자아내는 노을풍경(5), 마음을 움직이는 감성 풍경(6), 설렘과 화사함이 가득한 꽃 그림(7), 작품 같은 인물 그림(8)으로 이어지는데요. 그림 하나하나마다 구도를 잡거나 오일파스텔로 선을 긋거나 점을 찍고 면을 채워나가고 손이나 다른 도구를 이용해 터치하면서 완성해나가는 과정을 일일이 사진으로 수록해놓아서 실제로 연습할 때 보면서 그대로 따라그리기 하면 크게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어떤 도구로든 그림을 그린다는 건 역시 몸을, 손을 쓰는 활동이라 옆에서 직접 지도를 받는 게 가장 좋겠지요, 하지만 그렇게 할 수 없는 상황이라면 이렇게 책 한 권으로 시작해보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대신 마음을 조급하면 먹으면 안되겠죠. 첨엔 틀림없이 본문에 수록된 사진을 그대로 따라그리기조차 힘들 게 뻔하니까요. 지금의 제 목표는 우선 바다를 그리는 거예요. 조금만 걸어가면 금방 바다에 닿으면서도 그 바다를 제대로 그려본 적이 없거든요. 오일파스텔과의 첫만남으로 인해 제가 어떤 풍경에 가 닿을지 두군두군 기대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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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21-08-02 00: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림 그리는 몽당연필님 멋있어요. 부디 조만간 몽당연필님만의 풍경을 가지시기를.....

몽당연필 2021-09-11 22:50   좋아요 0 | URL
응원 감사합니다. ^^

초딩 2021-09-11 13: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달의 리뷰 당선 축하드립니다~

몽당연필 2021-09-11 22:50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
 
인류 모두의 적 - 해적 한 명이 바꿔놓은 세계사의 결정적 장면
스티븐 존슨 지음, 강주헌 옮김 / 한국경제신문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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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적이라고 했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만화 <아스테릭스>. 우락부락한 몸집의 독특한 개성의 해적들이 바다를 누비며 벌이는 이야기를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봤던 기억이 난다. 어른이 되어서 그 만화의 역사 왜곡에 대해 알게 됐다. 그리고 그 책이 다시 출간되었다고 해서 궁금해졌다. 도대체 어떤 부분에서 왜곡이 있었는지... 그리고 해적하면 빼놓을 수 없는 것, 만화 <원피스>. 주인공 루피는 고무고무 열매를 먹고 온몸이 고무처럼 늘어나는데 초파, 상디 같은 개성있는 동료들과 전세계를 누비면서 벌어지는 이야기가 흥미로웠다. 하지만 이야기가 너무 길게 늘어져서 보다가 이제 그만! 외쳐버렸다. 지금쯤이면 100권이 출간되지 않았을까 싶다.

 

처음 <인류 모두의 적>을 봤을 때는 무심히 넘겼다. 그러다 며칠 후 다시 보았을 때 내 시선을 사로잡은 건 [해적 한 명이 바꿔놓은 세계사의 결정적 장면]이라는 부제였다. 내가 아무리 세계사에 무지하다고 해도 저런, 특별한 해적이 있었다면 모를 수가 있나? 학창시절 수업 시간에라도 배우지 않았을까? 그런데 왜, 지금까지, 아무도, 이런 얘길 하지 않았을까? 곰곰이 생각해보니 짐작가는 게 있었다. 당시 권력을 쥐고 있던 이, 나라에겐 틀림없이 이 해적의 존재가 반갑지 않을 터. 되도록 아무도 모르게 숨기고 싶지 않을까? 가까운 중국이나 일본만 봐도 자국의 이익을 위해 역사를 교묘하게 왜곡하는 일이 비일비재하지 않은가. 생각의 고리가 여기에 이르자 관심이 생겼다. 알고 싶어졌다. 세계사를 바꿔놓았다는 이 정체불명의 해적이.

 

이 두 배가 인도양에서 맞닥뜨린 사건은 그런 미세한 원인들이 세계사에 큰 파급 효과를 낳은 경우였다. 역사의 넓은 관점에서 볼 때 그런 대치는 대체로 사소한 풍돌, 즉 금세 꺼져버리는 불꽃에 불과하다. 그러나 간혹 누군가가 그은 성냥불이 온 세상을 밝히기도 한다. 이 책은 그런 성냥불 중 하나에 대한 이야기다. - 20.

 

날씨는 화창했다로 시작한 책은 16959, 수라트 서쪽 인도양에서 해적선이 무굴제국의 보물선(건스웨이호)을 습격하던 날을 전한다. ‘파국적 결과는 지극히 사소한 실수로부터 시작되는 법이라며 우연의 연속인지, 운명인지 알 수 없는 일이 일어난다. 건스웨이호의 망꾼이 경종을 몇 초 늦게 울린 것을 시작으로 대포의 미세한 결함으로 대포가 폭발하면서 포수가 즉사해버리고 상대편 영국배(펜시호)에서 쏜 포탄 중 하나는 아주 정확하게 날아와 주 돛대 아래쪽을 맞춰 가장 파괴적인 타격을 입히고 만 것이다.

 

세상을 경악에 빠뜨린 악명 높은 해적에 대해, 그의 범죄에 대한 이야기를 다룬 <인류 모두의 적>5(1[원정], 2[선상반란], 3[약탈] , 4[추적], 5[재판])로 구성되어 있다. 책은 주인공, 잉글랜드 데번셔 출신의 청년이 영국 왕립 해군에 입대와 당시 해군 입대와 관련한 배경(‘부랑자 단속법에 의해 부랑자나 난민들은 채찍질이나 해군 입대 중에서 하나를 선택해야 했다), ‘헨리 에브리라는 미스터리에 싸인 그의 이름에 관해 이야기한다. 그리고 어이없이 보물선을 약탈당한 무굴제국이 오래전 어떻게 탄생하게 되었으며 조화롭게 공존하던 힌두 문화와 무슬림 문화가 어떻게 깨어졌는지 풀어낸다.

 

모든 위대한 전설적인 인물의 출생에 대해서는 몇 번이고 고쳐 써지게 마련이다. 세대를 거듭하며 전해진 이야기에 이런저런 소문과 풍문이 더해지고, 교묘하게 수정되며 다층적으로 짜인다. 한동안 헨리 에브리는 만신전에 묻힌 여느 인물만큼이나 널리 알려진 전설적인 인물이었고, 어떤 사람들에게는 영감을 주는 영웅이었고, 어떤 사람들에게는 무자비한 살인자였다. 또 폭도였고, 노동자 계급의 영웅이었으며, 국가의 적이었고, 해적왕이었다. 그러고는 유령이 되었다. - 33~34

 

1650년대 말에 두 화면으로 에브리의 탄생과 아우랑제브의 즉위를 모두 지켜본 사람이 있었더라도, 둘의 충돌 이후로 인도에서 이슬람 시대가 붕괴하고, 대영제국군이 들어서서 두 세기 이상 인도 아대륙을 지배하게 될 것이라고는 전혀 상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 61.

 

15세기부터 세계는 바야흐로 대항해시대. 바다를 주름잡던 영국은 공공연히 해적질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17세기, 엘리자베스 1세는 동인도회사의 법인설립을 인가하고 무굴제국과 손을 잡고 동인도회사를 통해 막대한 자금을 손에 넣게 된다. 하지만 그 무굴제국의 보물선을 에브리에 의해 습격을 당하고 성지 순례를 다녀오던 황제의 직계 가족이 모욕적인 일을 겪자 무굴제국의 황제는 동인도회사와의 무역을 끊어버린다. 해적들의 우두머리, 에브리가 영국인이었기 때문이다.

 

그러자 도리어 다급해진 건 영국이었다. 에브리와 그의 일당을 인류 모두의 적이라 하여 현상금을 내걸고 공개수배령을 내리기에 이른다. 그런 다음 모굴 제국 황제의 권력을 등에 업고 인도 지역에서 대대적인 권력을 행사하기에 이르는데 이것이 훗날 인도가 대영제국과 동인도회사에 의해 지배를 받게 되는 결정적인 시초가 된 셈이니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해적선의 우두머리에 불과한 에브리로부터 대영제국이 탄생하는 과정을 보면서 궁금했다. 에브리가 해적이 되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우연한 일이 연이어 일어나고 그것이 운명이 되었다고 하기엔 세계사적으로 미친 영향이 너무나 크다. 에브리의 기록은 생각만큼 많이 남겨져 있지 않다고 한다. 하지만 언젠가 또다른 기록을 통해 그의 숨겨진 이면이 세상에 드러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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