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진오의 한국현재사 - 역사학자가 마주한 오늘이라는 순간
주진오 지음 / 추수밭(청림출판)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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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진오의 한국현재사> 제목을 보고 깜짝 놀랐다. ‘주진오’라는 이름에 한 번, ‘현대사’가 아니라 ‘현재사’라는 제목에 또 한 번. 그리고 이어서 찾아온 두 가지의 감정. 둘째 아이가 배우는 역사 교과서의 대표 집필진인 역사학자 ‘주진오’의 책이 출간되어서 반가웠고 <한국현재사>에 담겼을 현재 대한민국의 모습, 상황, 역사가 궁금했다.

‘역사학자가 마주한 오늘이라는 순간’이란 부제가 붙은 <한국현재사>를 본격적으로 읽기 전에 검색부터 했다. 현대와 현재, 비슷하지만 분명 의미의 차이가 있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현대(現代)는 ‘지금의 시대’, 현재(現在)는 ‘지금의 시간’으로 설명되어 있었다. 역시 차이는 있지만 확실하게 와닿지 않았다. ‘시대’와 ‘시간’으로 다시 검색했다. 시대(時代)는 ‘역사적으로 어떤 표준에 의하여 구분한 일정한 기간’, 시간(時間)은 ‘어떤 시각에서 어떤 시각까지의 사이’라고 한다. 두 단어의 미묘한 차이를 알아차리기엔 나의 지식이 미천하고 부족했다.

가슴 어딘가에 커다란 물음표를 남기고 마주한 [들어가는 글]에서 제목에 대한 저자의 생각과 의도를 알 수 있었다. ‘과거는 현실에서 벌어지는 문제를 올바르게 이해하기 위한 수단’이기에 역사에서 ‘행동과 실천’이 무엇보다 중요함을 깨달았다면서 역사학자는 오늘의 역사에 대해서도 이야기할 의무가 있다고 생각했다는 것이다. 인간은 누구나 오류와 실수를 하기 마련이라며 ‘공감을 기반한 역사학’을 목표로 삼은 저자는 페이스북에 한국에서 벌어지는 ‘현재적’ 문제를 일기처럼 꾸준히 기록을 남겼다. 그리고 그 기록을 모아 출간한 것이 바로 이 책 <주진오의 한국현재사>인 것이다.

이런 질문을 항상 되뇌며 스스로 반성하고자 합니다. “나는 지금, 부끄럽지 않은 역사학자인가?” 그것이 ‘현재’를 기록하고 살아가기 위한 역사학자의 기준일 것입니다. - 9쪽. [들어가는 글] 중에서.

책의 구성은 간단하다. ‘사람의 역사’ ‘만들어가는 역사’ ‘참여하는 역사’ ‘이어주는 역사’ 이렇게 네 개의 장으로 구성한 다음 각 장 마다 9편씩 모두 36편의 글을 수록해놓았다. ‘1장 사람의 역사’에서는 우리 근현대사에 자주 언급되는 인물 중 새롭게 알게 된 내용이 많았다. 안중근 의사의 이토 저격에 대해 당시 대한제국이 일제 식민지로 전락하는 걸 앞당겼다며 부정적인 시선이 있다는 것과 이봉창 의사가 처음엔 일본인으로 살고 싶어했지만 좌절했던 경험이 있으며 그의 사진도 합성된 것이라는 사실은 충격적이었다. 초대 대통령인 이승만에게는 의형제를 맺고 함께 독립운동을 했던 박용만이란 인물이 있었으나 노선이 달라 갈등을 빚고 결국 독립운동사에서 잊혀졌다는 대목은 안타까웠다. 박정희 대통령 기념관 건립 국고 지원에 있어서 당시 역사학자들이 침묵한 것에 대해 저자는 날카롭게 비판한다. 뿐만 아니라 전두환은 내란죄로 사형을 선고받은 인물임에도 불구하고 역사적 심판이 어정쩡하게 이뤄졌다며 강하게 꾸짖는다.

사실 저에게 대통령이란 국민학생 시절부터 대학생을 거쳐 군에서 제대한 직후까지 박정희밖에 없었습니다. 저는 운동권 학생도 아니었고 특별히 고난과 탄압을 받은 적도 없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친일과 좌익활동, 독재와 인권탄압 그리고 파시즘적 문화압살에 이르기까지 우리 현대사를 망가뜨린 장본인이 박정희라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텍사스에 있는 동안 박정희기념관에 200억 원의 국고를 지원한다는 기사를 보고 용납하기 어려웠습니다. - 58쪽. [박정희 대통령을 어떻게 기억할 것인가?] 중에서

얼마전에 읽은 책 <만들어진 진실>에서 어떤 것이든 ‘진실은 아흔아홉 개의 얼굴’을 가졌기 때문에 다양하게 접근할 필요가 있는데 목적에 따라 진실을 의도적으로 편집하고 그것을 퍼뜨린다는 대목이 있었다. 언론사를 통해 가짜뉴스가 생산되고 유통되는 요즘이어서 더욱 인상 깊게 와닿았는데, 저자는 역사학자도 팩트체크를 게을리해선 안된다고 강조한다. 또한 건국절의 시점에 대해서 보수 세력의 주장이 얼마나 터무니없는 것인지 조목조목 짚어주고 ‘위안부’ 문제에 있어 피해자들의 아픔과 고통을 공감하는 것은 물론 명예회복의 길이 머나멀다는 걸 인식할 수 있었다. 국가 차원이 아닌 우리 모두가 어떤 의식을 갖고 대응해야 할지 깊이 고민해야 할 것 같다.

여성의 입장에서 역사를 바라본다는 것은 역사학의 지평을 넓히는 작업이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반드시 여성이어야만 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남성이 여성사를 강의하고 연구하게 되었을 때 따르는 효과도 크다고 봅니다. 이는 가부장제에 대한 비판이 나올 때마다 단지 ‘당신이 여자이기 때문에 내세울 수 있는 논리’라는 편견으로부터 벗어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 182쪽 [인생의 패배자라고 슬퍼하지 마라] 중에서

현재 폐기되긴 했으나 지난 정권에서 추진한 ‘역사교과서 국정화’에 대해 저자는 우려의 목소리를 내었다. 정권의 이념과 입장, 정치 논리에 치우쳐서 청소년들에게 역사교과서를 통해 편향되고 잘못된 역사관을 주입하는 ‘역사 공작’이 얼마나 심각한 문제를 야기하는지 여러 편의 글을 통해 낱낱이 파헤치고 있다. 역사를 목적에 따라 왜곡하거나 축소했을 경우 일어나는 일을 우리는 가까운 일본을 통해 겪고 있는데 그런 음모를 국가가 추진하려고 했다니 아찔하기만 하다. <암살>을 비롯한 <밀정>, <사도>, <동주>처럼 역사를 배경으로 한 영화나 콘텐츠에 대해 저자는 역사물은 우선 재미가 있어야 하지만 역사가 왜곡되어도 안된다며 강조한다.

역사콘텐츠는 제작자들이 바라고 꿈꾸는 역사의 모습으로 바라볼 필요도 분명 있습니다. 역사는 결국 박제된 사실로 고정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대중과 호흡하며 해석의 변화를 낳기 마련이니까요. - 307쪽 [역사콘텐츠를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 중에서

역사를 인물과 사건, 오늘의 의미에 대해 다루었는데 포인트가 ‘현재’에 맞추어져 있어서 학창 시절 교과서에서 접하지 못했던 내용이 정말 많았다. 학창 시절 역사는 깨알 같은 글씨까지 통째로 암기해야 하는 품이 많이 드는 과목이었다. 역사와 재미는 절대 공존할 수 없는 상반된 개념이었다. 왜 그랬을까. 왜 그래야만 했을까. 어느 누구도 속시원히 대답해주지 않았다.

<주진오의 한국현재사> 이 한 권의 책으로 우리 역사에 대한 궁금증이 모두 해소되지는 않았고 또 그걸 바래서도 안된다. 책을 읽으면서 좀 더 구체적이고 자세하게 알고 싶은 부분이 이전보다 더 많아졌다. 다행인 것은 어쩌면 이후에 저자의 또 다른 책을 만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것이다. 우리의 관심에서 역사가 멀어지는 순간 우리에겐 이전보더 더욱 큰 위기가 닥칠 수도 있다는 걸 실감하는 책읽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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쎄인트saint 2021-12-09 17: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달의 리뷰 선정 축하드립니다~!!

몽당연필 2021-12-09 18:44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행복한 저녁 되세요 ^^
 
너의 말이 좋아서 밑줄을 그었다
림태주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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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 한 자락이 예전 같지 않음을 느낀다. 하루에도 몇 번씩 몸을 움츠리곤 한다. 내가 나를 끌어안듯이 양팔로 감싸 안는다. 헛헛한 속을 데워줄 온기를 가진 무언가를 끊임없이 찾게 된다. 무더운 여름이 물러가고 서늘한 가을의 한 가운데에 들어왔다는 증거다. 곧 냉기를 머금은 겨울이 다가오겠지.


 

가을은 그리움의 계절이란 생각이 든다. 예전엔 다가올 겨울을 기다리는 계절이 가을이었지만 언제부턴가 다시 돌아갈 수 없는 지난 세월을, 지난 시간을, 그리고 곧 어제가 되어버릴 오늘을 그리워하는 계절이 가을이 되어버린 것 같다. 그래서 가을엔 혼자 있으려 하고 자꾸 밖으로 나가려고 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하루가 다르게 바뀌어가는 삶의 모습을 조금이라도 더 담아두고 싶은 것일지도...


 

<너의 말이 좋아서 밑줄을 그었다>의 저자 림태주님의 책은 이번이 처음인데 제목이 눈길을 끌었다. 글이 좋아서 밑줄을 긋고 포스트 잇을 붙이고 필사를 하지만, ‘말이 좋아서 밑줄을?’ 어떤 의미인지 알 듯 모를듯했다. 혹시나 표지에서 힌트를 얻을 수 있을까 했는데. 표지엔 어떤 그림도, 사진도, 일러스트도 없다. 그저 프리즘을 통과한 빛이 무지개빛으로 비치는 모습이 전면에 드리워져 있을 뿐. 저자에게 말이란 이런 것이었을까. 하루에도 무수히 쏟아내는 말 중에서 저자가 밑줄을 긋듯이 가슴에 담아낸 말을 어떤 것일까.


 

시집인가 싶을 정도로 작은 사이즈의 책, 손이 작은 내가 한 손으로 잡고 읽어도 거뜬한 크기인데다 짧은 글로 이루어진 책이어서 하루에도 몇 번씩, 외출할 때 가방에 넣어 다니며 읽기 좋았다.


 

진심의 핵심, 진정성의 요채는 무엇일까? 나는 그것을 시간이라고 생각한다. 시간을 양적으로 사용하면 진정성이 된다. () 바쁘다고 핑계를 대고 만나주지 않는 사람과 바쁘더라도 흔쾌히 시간을 내주는 사람의 차이가 관계의 진정성을 가른다. 시간이야말로 확실한 진심의 지표다. () 나는 미워하는 시간보다 사랑하는 시간을, 잊으려 하는 시간보다 그리워하는 시간을 더 늘리려고 한다. 나를 위한 유익과 즐거움을 구매하는 데 내 목숨을 지불하려고 한다. - [진심을 알아보는 법] 중에서

 


양치기나 파수꾼이나 등대지기는 별이 발명한 직업군이다. 그토록 외로울 수가 없고 그토록 사람의 말이 그리울 수가 없다. 나는 어쩌다 시인이 되어 고독에 세 들어 살고 있다.(6)’ 책의 프롤로그를 읽으면서 가슴이 설렐 수 있다는 걸 느꼈다. 살면서 겪게 되는 소소한 일상 속에서, 무수한 만남과 헤어짐 속에서, 우리는 때로 상대의 말을 공감하지 못하거나 오해하기도 하고 어떤 사정 때문에 차마 전하지 못하고 묻어버린 말들이 얼마나 많은가. 그런 말들을 저자는 하나하나 가슴에 담아 녹여내어 자신만의 프리즘을 통해 전하고 있다. 때론 아련하게 때론 따스하게 때론 냉철하게.



나는 그가 제대하는 날까지 말의 거리를 풀지 않았다. 언어를 주고받았을 뿐 그와 한 번도 대화를 나눈 적이 없다. 나는 그가 무겁게 깨닫기를 바랐다. 사람의 마음을 얻지 못하면 아무리 상대가 예의 바르고 존중하는 말을 건네더라도 그건 철저하게 외면하는 말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 상대의 마음에 1밀리미터 다가서는 건 달나라 가는 궤도를 구하는 공식 만큼 어렵다. 마음 한 줌을 얻지 못하면 백 마디 아름다운 말이 내 것이 아니다. [말의 표정] 중에서

 


어릴 때 바다로 나갔다가 다시 하천으로 돌아오는 은어(銀魚)는 포식자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서식지의 물빛과 닮은 색을 띠어 회갈색 등에 은백색의 배를 지니게 됐는데 저자는 그런 은어를 통해 우리는 무엇이든 인식할 때 분류하는 습성을 지니고 있다고 말한다. 그리고 물고기 은어가 떼를 지어 살아가는 것처럼 사람들에게도 끼리끼리의 언어인 은어(隱語)가 있다며 어떤 무리든 거기에 속하려면 그 언어를 먼저 익혀야 하는데 실상 우리는 그렇지 못함을 꼬집는다.


 

돌이켜보면 우리의 사랑이 실패한 이유는 상대방의 언어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데 원인이 있었다. 내가 쓰는 언어와 다르지 않다고 판단해 모든 것을 내 관점에서 말하고 내 언어 체계로 이해하려 들었다. 상대의 말을 그만의 은어라고 여기지 않았다. 탐구하여 배우려 하지 않았고 시간과 인내가 소요되는 일임을 고려하지 않았다. 자꾸 다른 데서 관계의 하자를 찾으려 했으므로 실패를 반복했다. 그저 말이 잘 통하는 성격 좋은 사람을 찾아 헤맸다. [은어의 세계] 중에서

 


하안거나 동안거 기간에 사찰을 찾으면 방문객들이 출입할 수 없는 구역이 있다. 자신만의 화두를 안고 깨달음을 얻기 위해 수행 중인 스님들을 위해 다른 이의 출입을 통제하는 것이어서 자연히 행동이 조심스러워지기 마련이다. 하지만 저자는 달랐다. 고요를 좋아하기 때문에 사찰에서 묵언 수행 중이란 푯말을 만나면 좋았다면서 스님들이 고요를 닮는 연습을 하는 거란 대목이 인상적이었다. 그런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기에...

 


말하지 않는 것이 말하는 것보다 어렵다. 문을 걸어 잠그고 정진을 거듭해야 할 정도니까. 내가 고요에게 배운 것이 있다면 말할 때 잠잠함을 유지하는 법이다. 말을 전하려고 애쓰지 말고 마음을 보여주라는 것이 고요의 가르침이다. [고요의 원리] 중에서

 


우리가 살아가면서 겪는 어떤 일에 대해 판단하고 행동하는 것은 모두 각자의 사고방식에 의해 이루어진다. 하지만 그 사고방식을 형성하는데 가장 크게 작용하는 것이 평소 자신이 여러 과정을 통해 습득했던 지식이라고 한다. 때문에 잘못된 지식과 정보로 인해 확증편향을 갖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고 하는데 말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당신이 타인에게 보여준 언어가 되돌아와 당신이 된다는 글에 나를 돌아보게 된다. 내가 타인에게, 아니 가까운 가족에게 어떤 언어를 구사했는지 곰곰이 생각해보게 된다.


 

사는 동안 사람은 한 권의 사전이 된다. 일일이 기억하지는 못하지만 일생 동안 자신이 사용했던 어휘와 정의 내린 개념들이 빼곡히 세포에 기록된다. 기록한 페이지들을 한 번도 펼쳐보지 않고 생을 마치는 사람도 있고, 그 단어들을 간추려 자신만의 문장으로 엮고 가는 사람도 있다. 인생이란 것이 있다면 그 엮인 문장들의 줄거리와 고갱이를 이르는 것이 아닐까. [국어사전 사용법]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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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대한 가속 - 포스트 코로나 시대, 우리 앞에 다가온 역사의 변곡점
스콧 갤러웨이 지음, 박선령 옮김 / 리더스북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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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든 시기 잘 견뎠어 이젠 꽃길만"전국 '위드 코로나' 기지개 / 세계일보]

[신규확진 1,618'위드 코로나' 준비 본격화 / 연합뉴스]

['위드 코로나' 대비하는 기업들자체 방역지침 완화 잰걸음 / 한국일보]

[코로나19 확진자 1400명대 초반3주째 감소세 지속 / 프레시안]

 


언론에서 본격적으로 위드코로나를 말하고 있다. ‘코로나19의 완전한 종식을 기대하는 것보다 공존을 준비해야 한다‘With Corona’. 우리나라는 서구 선진국에 비해 코로나19 대응을 잘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일부 지역을 봉쇄하거나 셧다운 하지 않은 상태에서 확진자 동선을 추적해서 증상이 나타나기 전에 선제적으로 조치를 취했고 각 지역의 선별진료소에서는 광범위하게 코로나 검사를 시행했다. 무엇보다 돋보였던 건 바로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개인방역과 위생에 힘썼고 사회적 거리두기를 실천했다는 점이다.


 

하지만 작년부터 이어진 코로나 시국은 2년째인 지금도 잦아들 기미를 보이지 않으면서 더 이상 버티기 힘든 사람들을 벼랑 끝으로 내몰고 있다. 방역이냐, 일상 회복이냐. 이 사이에서 누구나 깊은 고민에 빠지게 된다. 그나마 다행인 건 우리나라의 백신 접종 완료자가 인구 대비 65%, 1차 접종자는 인구 대비 78%에 이른다는 것. 시민들이 지금까지 해왔던 것처럼 개인방역에 주의를 기울이면 조금씩 일상으로 회복하면서 코로나와 공존하는 것도 어쩌면 가능하지 않을까.


 

개인, 사회, 비즈니스모든 추세가 10년씩 앞당겨졌다!’고 말하는 책이 출간됐다. 미국에서 브랜드 전략이나 트렌드를 예측하는데 가장 정통한 전문가로 꼽히고 세계 최고의 비즈니스 스쿨 교수중 한 명에 선정된 스콧 갤러웨이의 <거대한 가속>이다. 원제는 <POST CORONA>. ‘코로나 후에’, ‘코로나 뒤에’, ‘코로나를 이어서우리가 어떤 시대를 맞을 것인지 저자는 데이터를 바탕으로 예측하고 있다.


 

우리가 경험하는 것은 시간이 아닌 변화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시간은 단순히 이전이후의 차이를 측정하는 것이기 때문에 변화가 없다면 시간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 시간은 잘 변하고, 변화할 때마다 속도도 달라진다. 그리고 아주 작은 일이 전례 없는 변화를 일으킬 수도 있다. 바이러스처럼 작은 것이 말이다. (4~5)


 

책은 5(‘빠르게 재편되는 비즈니스 판도’ ‘더욱 강력해진 플랫폼 제국의 미래’ ‘또 다른 시장 교란자들’ ‘위험과 확신이 기다리는 고등교육’ ‘거대한 가속이 우리에게 남긴 것들’)의 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코로나19 확산으로 전세계는 일대 혼란을 빚었지만 가장 먼저 쓰러진 건 자본이나 여건이 약한 기업이었다. 생태계의 적자생존이 우리 사회 전반으로 드러나게 된 것이다.


 

팬데믹발 위기에서 가장 놀라운 것 중 하나는 자본시장의 회복력이다. () 코로나로 2020년 여름까지 18만 명이 넘는 미국인이 사망했고, 실업률이 기록적으로 치솟았으며, 바이러스는 쇠퇴할 기미가 전혀 보이지 않음에도 주가는 하락 폭을 대부분 회복했다. () 팬데믹 국면에서 언론이 거대 IT 기업이나 대형주 지수 같은 화려한 부분에 정신이 필린 동안 한쪽에선 무자비한 집단 도태가 진행되고 있다. 약자는 그냥 뒤처지는 정도가 아니라 잔인하게 학살당한다. (23~24)


 

작년 초 우리의 모습을 떠올려보자. 코로나란 바이러스에 대해 어떤 것도 모르던 때 우리는 극도로 외출을 자제하고 대부분의 소비를 온라인으로 해결했다. 그 여파로 골목상권이 직격탄을 맞았다. 문화계와 공연업계 역시 올스톱되었다. 그런 가운데 거대자본을 무기로 한 대기업의 영향력은 다욱 커졌는데, 이는 세계적인 추세였다. 저자는 그 중에서도 유독 눈에 띄는 한 그룹이 있는데 바로 ‘IT 기업, 빅테크 기업들이라고 강조한다. 그 거대 IT 기업들은 이후에 자사의 주가가 2배로 뛸 가능성을 투자자들에게 알려야 하는데 그렇지 않을 경우를 식욕과 허기를 비유해서 언급한다. 영화 <뱀파이어와의 인터뷰>에서 주인공인 뱀파이어가 나중에는 쥐로는 피에 대한 갈증을 해소할 수 없어 어쩔 수 없이 인간을 공격하게 되는 것 같은 상황이 올 거라고.


 

빅테크 기업들은 자사의 제품 설계와 정책 결정이 미치는 영향을 고려하는 경우가 거의 없는 듯하다. 설령 고려하더라도 사적인 이익을 위해 공공 재산을 일부러 희생시킨다. (84)

 

도시에서는 토끼 고기를 배불리 먹을 수 없으니 사냥을 나가야 한다. 그런데 어디에서 그런 사냥감을 찾을 수 있을까? (90)


 

작년과 올해, 2년도 되지 않는 시간이지만 급격한 변화를 맞은 분야가 있으니 바로 교육이다. 학교에 출석해서 수업하던 방식에서 어쩔 수 없이, 거의 강제적으로 비대면 온라인 수업이 모든 교육기관에서 전면적으로 도입이 되었는데 이로 인한 피해는 심각한 수준이다. 기초학력에 미달하는 학생이 늘고 우수학생은 줄었으며 신입생 충원을 하지 못하는 대학이 속출했다. 이는 미국 역시 마찬가지여서 저자는 많은 사람들이 대학의 필요성에 대해 의문을 가지게 됐으며 명문대라는 특권은 물론 등록금만큼의 가치를 얻을 수 없는 대학이 사라지게 될 것이라고 예측한다. 더불어 대학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지금과는 완전히 다른 시스템으로 재정비를 해야 살아남을 수 있다며 고등교육의 혁신을 촉구하고 있다.


 

그렇다면 앞으로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우선 연방 정부와 주 정부가 협력해 4년제 대학과 전문대에 투입되는 비용을 줄이고 주립대학교 정원을 대폭 늘리는 계획은 마련해야 한다. () 마찬가지로 사립 초..고등학교에 세금을 부과해 공립교육을 보완해야 한다. 현재 고등교육은 상당 부분 카스트제도가 되어버렸다. (188)


 

코로나 시국에서 일상을 살아가면서 문득 IMF 때가 떠올랐다. 예고 없이 닥친 IMF 외환위기로 실직자가 갑자기 늘어났고 극빈층으로 떨어져 생계조차 어려움을 호소하는 이들이 많았다. 모든 사람들이 살기 위해 허리띠를 조이는 위기 속에서 오히려 곳간을 그득그득 채우는 이들도 있었다. 지금 코로나 팬데믹으로 비슷한 현상이 일어나고 있는 것 같다. 비대면과 원격근무로 실직하는 이들이 증가하고 이로 인해 소득의 불균형이 생기고 있다. 그리고 이런 가운데 일부 기업은 급속도로 자산의 가치를 높이고 있다. 갑자기 빨라진 변화의 속도에 뒤처지지 않기 위해선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작년에 입대한 큰아들이 제대를 앞두고 있다. 코로나 여파로 제대로 휴가를 나오지 못해서 조기 전역을 하게 된다고 한다. 아들은 집에 간다는 사실에 기분이 들떠있지만 난 어쩐지 걱정이 된다. 이전과 확인하게 달라진 일상에, 입대 전과 완전히 딴판이 된 대학 생활에 아들이 잘 적응할 수 있을까. 전역한 아들에게 이 책을 건네줘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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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허에 폐허에 눈이 내릴까 - 김수영 탄생 100주년 기념 시그림집
김수영 지음, 박수연 엮음 / 교보문고(단행본)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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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의 특징을 얘기해봐” “시의 3요소가 뭐지?”

작년 여름 제가 중학생 아들의 국어 공부를 봐줬는데요. 아이가 제일 힘들어한 것이 바로 였습니다. 아들만 그런건지 요즘 아이들 대부분이 그런건지 알 수 없지만 깊은 생각이란 걸 하지 않는 모습에 그야말로 제 머리의 뚜껑이 열릴 정도였지요. 맘 같아선 그래, 시는 읽어서 느끼면 되는 거지 그냥 되는대로’ ‘니가 느끼는대로’ ‘니 맘대로 해봐!’ 외치고 싶지만 막상 시험, 점수로 연결되니 생각처럼 되질 않더군요.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습니다. 20세기에 학창 시절을 보내면서 국어 시간에 주제, 제제, 소재, 시의 운율이 어쩌구, 이 시에 드러난 심상이 무엇인가...등등 시를 완전히 분해한 다음 씹어먹듯이 외우고 시험까지 쳤는데요. 성인이 되고 보니 무엇 하나 남는 게 없다는 걸 뼈저리게 느꼈답니다. 하지만 이제 그걸 다시 아들에게 강요해야 하다니... “제일 중요한 게 뭔지 아니? 작가의 생각? 작가의 의도? 물론 중요하지. 하지만 그것보다 더 중요한 건 출제자가 이 문제를 왜 냈는지 생각해봐야 해, 학습목표를 니 머리에 빡! 넣어두고 유추를 해봐. 그래야 문제가 풀려”...이러고 있다니. 참으로 안타까울 따름입니다.

 


<폐허에 폐허에 눈이 내릴까>를 보고 제일 먼저 떠올랐던 건 김수영은 제목에 왜 폐허에를 두 번 넣었을까였습니다. 분명 이유가 있을텐데 말이죠. 김수영의 시를 모두(아니 솔직히 거의 모른다는 게 맞을 겁니다. 예전에 김수영 시집을 구입했지만 읽다가 도중에 덮어버렸습니다. 무슨 의미인지 모르겠더라구요) 알지 못하는지라 짐작만 했지요. 강조하는건가? 하고요.

 


김수영 탄생 100주년 기념으로 출간된 시그림집 <폐허에 폐허에 눈이 내릴까>를 손에 들고 이번엔 예전과 다를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내가 아무리 무심하고 둔해도 세월을 그냥 날로 먹지는 않았을테니 이전처럼 김수영 시 한 편 읽으면서 머리 싸매는 일은 없을 거라고. 그런데 웬걸요, 그다지 달라진 게 없는 거예요. 이만저만 실망이 아니었습니다. 이번에도 덮어버려? 하지만 이번엔 정말 그냥 덮고 싶지 않더라구요. 그래서 인터넷에서 김수영의 생애에 대한 정보를 입력한 다음 시를 읽으니 그나마 조금 낫더군요.

 


음악은 흐르는 대로 내버려 두자

저무는 해와 같이

나의 앞에는 회색이 뭉치고

응결되고

또 주먹을 쥐어도 모자라는

이날 또 어느 날에

나는 춤을 추고 있었나 보다 - [음악 /1950.2]

 


서울에서 지주인 아버지에게서 태어나 유복한 어린 시절을 보냈지만 식민지 조선에서 집안은 결국 몰락했고 일본 유학길에 오릅니다. 일본에서 김수영은 학문보다 시와 연극에 몰두하는데요. 일본에서 학병 징집을 피해 만주로 이주했다가 광복을 계기로 귀국합니다. 그러다 6.25 전쟁으로 때 서울을 점령한 북한국에 징집되었다가 탈출에 성공하지만 경찰에 체포되어 거제 포로수용소에 갇히고 마는데요. 당시 수용소는 반공 포로와 공산주의 포로들이 매일 패싸움을 벌이고 수시로 유혈사태가 일어났다고 합니다. 그런 공포 분위기 속에서 고초를 겪던 김수영은 3년 후 민간인 억류자로 석방되는데요. 이후로도 그의 삶은 여전히 고달픔의 연속이었습니다.

 


팽이가 돈다

팽이가 돌면서 나를 울린다

제트기 벽화 밑의 나보다 더 뚱뚱한 주인 앞에서

나는 결코 울어야 할 사람은 아니며

영원히 나 자신을 고쳐 가야 할 운명과 사명이 놓여 있는 이 방에

나는 한사코 방심조차 하여서는 아니 될 터인데

팽이는 나를 비웃는 듯이 돌고 있다. - [달나라의 장난 / 1953]

 


식민지-전쟁-독재로 이어지는 역사의 흐름은 김수영에게 무척 힘겨운 나날이었습니다. 시대를 이끌어가는 지식인이자 예술가로서 사회에서 일어나는 부조리함, 무자비한 권력의 압박을 무심히 넘길 수 없었던 그는 당시 사회를 날카롭게 비판하면서 민주주의와 자유를 끊임없이 추구하게 되는데요. 어렵사리 4.19 혁명이 일어났음에도 불구하고 이전 이승만 독재 정권처럼 인간의 자유를 무시한 채 반공법 기조를 그대로 유지하자 [“김일성 만세”]라는 시를 써서 신문사에 보냅니다. 북한과 남한 따로 정부가 꾸려졌으니 진정한 언론의 자유를 외친다면 김일성 만세를 인정하면 되는데 그것을 인정하지 않는 걸 비판하는 시인데 당시 문단이 시의 문맥이 아니라 시의 김일성이란 단어에 치중한 탓인지 그의 사후에야 발표되었습니다.

 


김일성 만세

한국의 언론 자유의 출발은 이것을

인정하는 데 있는데 /

이것만 인정하면 되는데 /

이것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 한국

정치의 자유라고 장면이란

관리가 우겨대니 /

나는 잠이 깰 수밖에 - [“김일성 만세”/ 1960.10,6]

 


4.19 혁명이 어떤 것도 변혁하지 못하고 그래서 사회를, 사람들의 생각을 바꾸지 못하는 한계를 드러내자 안타까운 마음을 시에 풀어내기에 이릅니다. 마치 혁명의 실패를 예감하기라도 한 것처럼.

 


혁명은 안 되고 나는 방만 바꾸어 버렸다

나는 인제 녹슬은 펜과 뼈와 광기

실망의 가벼움을 재산으로 삼을 줄 안다

이 가벼운 혹시나 역사일지도 모르는

이 가벼움을 나는 나의 재산으로 삼았다. - [그 방을 생각하며/ 1960.10.30.]

 


권력으로 사람들을 짓누르는 현실에 좌절한 그에게 마지막 해방구는 술이었다고 합니다. 술에 취해 쓰러져있는 그는 종종 경찰서 신세를 지기도 했다고 하는데요. 술에 취해 인사불성이 되어서라도 잊고 싶었던 것은 무엇일까, 그가 꿈꾸었던 건 어떤 세상일까. 생각해봅니다. 어쩌면 그가 남긴 마지막 시에서 그가 염원했던 것, 그가 끝까지 놓치고 싶지 않았던 것을 엿볼 수 있지 않을까요. 아무리 세찬 바람이 불어도, 제아무리 권력이 억압을 가해도 결코 그들 의도대로 움직이지 않겠다는, 약하고 힘없는 풀일지언정 언제나 그들보다 먼저 움직이고 말겠노라고.

 


풀이 눕는다

바람보다도 더 빨리 눕는다

바람보다도 더 빨리 울고

바람보다 먼저 일어난다 - [/ 1968.5.29.]

 


우리 역사의 칠흑 같은 어두운 시대를 걸으면서 길을 잃지 않으려 안간힘을 썼던 시인 김수영. 날카롭고 거칠고 힘찬 그의 언어를 제대로 이해하기엔 아직 소양이 부족함을 느낍니다. 언제든 펼쳐볼 수 있도록 가까이에 두고서 시간과 정성을 들여 천천히, 소리 내어 읽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 ‘제목에 왜 폐허에를 두 번 넣었을까하는 의문은 책의 마지막에 풀렸습니다. 궁금하시다면 꼭 읽어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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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이스 2021-11-05 16:3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리뷰 당선작 축하드려요

초딩 2021-11-07 11: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달의 당선 축하드립니다~
즐거운 일요일 되세요~
 
단 하나의 이론 - 인류 역사를 관통하는 거대한 유산
윤성철 외 지음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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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협찬 #단하나의이론 #독서모임 #인문학 #책스타그램 #책추천 #알에이치코리아

 



요즘 들어 부쩍 집이 좁게 느껴진다. 작년 2천여 권의 책을 정리한 이후로 빈 공간이 제법 보였는데 어느새 그 자리에 다시 책이 탑처럼 쌓이기 시작했다. 산을 오르는 길에 만나게 되는 돌탑엔 작은 돌 하나마다 저마다의 소망과 염원이 깃들어 있는데. 저 책탑은 어떨까. 무언가에 대한 염원이 녹아있는 것일까. 아니면 그저 나의 욕망이 드러난 것에 불과한 것일까.

 


현재 상황이 알려주는 것, 그 해결책은 간단하다. 또다시 책을 정리할 시점이 돌아왔다. 거실과 방마다 벽면을 가득 채운 책장에서 책을 솎아내야 한다. 어떤 책을, 어떻게, 얼마나, 정리할 것인가. 지금까지 나의 기준은 딱 두 가지. 내가 이 책을 언제라도 다시 읽을 것인가. 이 책은 과연 아이들에게 추천할 만한가. 아이들의 가슴과 지적 욕구를 채워줄 수 있는 책인가. 조건에 충족한다면 보관, 아니라면 정리. 말은 간단하지만 엄청난 갈등의 시간을 맞아야 한다는 얘기다.

 


<단 하나의 이론>, 책 제목만 봤을 땐 그냥 스치고 지나치고 말았을 것이다. 하지만 인류 역사를 관통하는 거대한 유산이라는 부제와 표지 그림이 나를 붙잡았다. 다크블루 바탕에 거대한 산맥, 그 위의 둥근달. 그런데 그림의 방향이 왜 세로일까?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땅(산맥)이 가로가 되어야 할 것 같은데. 아주 먼 곳에서 지구를 바라봤을 때 지구의 옆면 일부만을 그린 걸까. 아니면 가로를 세로로 돌리는 데서 발상의 전환을 나타낸 걸까?

 


만일 기존의 모든 과학 지식을 송두리째 와해시키는 일대 혁명이 일어나, 다음 세대에 물려줄 지식이 단 한 문장밖에 남지 않는다면, 그 문장은 어떤 내용을 담고 있을까?” - 7

 


20세기 최고의 물리학자이자 노벨물리학상 수상자인 리처드 파인만이 남긴 질문이다. 이 책은 이 하나의 질문에서 출발했다. 그리고 이 질문에 답을 하기 위해 천체물리학자, 사회학자, 미생물학자. 신경심리학자, 통계물리학자, 인지심리학자, 신경인류학자들이 모였다. 저술이나 강연 등의 방식으로 지식의 대중화에 앞장서고 있는 전문지식인들이 팔을 걷어붙이고 나섰다. 이런 기회는 흔치 않다. 열 일을 제치고서 두 눈을 부릅떠야 할 때다.

 


신을 관하여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호기롭게 책장을 펼치자마자 마주한 문장에서 머리가 띵해졌다. 신을 어떻게 생각하냐니. 독서모임에서 중세를 다룬 책을 읽을 때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은 내게 이해불가의 영역이었다. 그런데 그 을 과학자, 그것도 천체물리학자가 얘기하고 있다. 불시에 허를 찔렸지만 대체 무슨 얘길하려고 신을 들먹이시나 싶어 더 궁금해졌다.

 


사람들은 항상 우주라는 말에서 신을 떠올린다(17)’며 강연회에서 자주 접하는 질문으로 말문을 연 윤성철님은 영화 <두 교황>의 한 대목을 언급하면서 신과 종교에 일어나는 미세한 변화를 언급하면서 그 변화를 설명하기 위해 원자를 데려온다. 물질을 구성하는 기본 입자이자 가장 작은 단위인 원자는 일정한 궤도를 따라 규칙적으로 움직인다. 그런데 그 원자가 어떻게 세상의 변화를 설명한다는 거지?

 


변함없는 공간이라던 우주가 현대에 와서는 팽창한다는 것이 밝혀졌다. 물론 이것 역시 이후 언제든 바뀔 수 있지만 고정되지 않고 변화의 가능성을 품고 있다는 것이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우주를 가리켜 명사가 아니라 동사라고 했던 이유를 알 것 같았다.

 


모든 원자가 한 치의 오차도 없이 규칙성을 보인다면, 이 세상은 시계와 같이 기계적이고 반복적인 모습만 하고 있을 것이다. 변화를 설명하기 위해서는 규칙에서 벗어나는 일탈이 필요하다. () , 일탈은 창조의 근원이다. - 26.

 


사회학자 노명우님은 지구와 인류의 역사를 말한다. 45억 년의 지구에서 인류가 남긴 최초의 기록은 알타미라와 라스코의 동굴벽화라고 알고 있었다. 하지만 프랑스의 한 동굴에서 그보다 더 이른 3만 년 전 호모 사피엔스가 남긴 그림을 발견하게 된다. 탐험가의 이름을 붙인 쇼베 동굴 벽에 단순한 선으로 그린 동물들의 생생한 모습에 사람들은 할 말을 잊는다. 그리고 이내 충격적인 사실을 깨닫게 된다. 그곳이 빛 한줄기 비치지 않는 어두운 동굴이라는 것. 전기도 없던 3만 년 전, 그림을 그린 이는 울퉁불퉁한 동굴 벽에 어떻게 그림을 그릴 수 있었을까 의문을 갖는다. 그림을 그리는 이의 곁에는 틀림없이 불을 비춰준 동료가 함께했을거란 추론이 가능해진다.

 


이뿐만이 아니다. 참혹한 전쟁 중에 극단의 굶주림 속에서도 사람들이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은 바로 고통을 함께 나누는 이가 있었다고 말한다. 그리고 코로나19 시대를 겪는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도 3만 년 전 호모 사피엔스가 혼자가 아니었듯 코로나 바이러스라는 공동의 위험에는 우리는 하나의 공동체라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우리가 바이러스가 아닌 이상, 바이러스는 우리에게 단 하나의 문장으로 표현될 수 있는 인간의 본질을 일깨운다. 바이러스는 말한다. 당신은 혼자가 아니라고. - 72

 


리처드 파인만의 질문에 대표 학자들의 답변이 수록된 <단 하나의 이론>은 이후 미생물학자 김응빈님의 유전자를 통해 읽을 수 있는 [생명이란 우주의 메모리 반도체이다], 신경심리학자 김학진님의 인간의 감정과 공감에 대한 [마음은 신체와 환경의 소통에 기원한다], 통계물리학자 김범준님은 물리학 이론인 열역학을 다루는 [인류 지식의 원전은 엔트로피다], 인지심리학자 김경일님의 [인간의 욕구는 전염된다], 신경인류학자 박한선님의 진화론을 영혼과 마음으로 확장시킨 [인간 정신은 진화의 결과다]로 이어지는데 흥미로운 내용이 제법 눈에 띄었다. 과학지식을 다룬 부분은 다소 이해하기 어려워 한참 제자리에서 맴돌기도 했지만 대중을 상대로 강연을 하듯 여러 도표와 그림, 사진이 본문 곳곳에 배치되어 있어 도움이 되었다.

 


책의 마지막 부분에는 학자들이 본문에 참고문헌으로 사용한 책이나 논문의 목록이 수록되어 있다. 본문 내용의 근거와 이해를 돕는 것이기도 하지만 일반 독자들에게는 실제적으로 도움이 될 수 있을까 의문이 든다. 일곱 명의 학자들이 저마다 독자들이 읽어보면 좋을 책을 추천하는 부분을 수록했으면 어떨까, 아쉬운 마음이 든다.




* 알에이치코리아로부터 도서 협찬을 받았지만, 본인의 주관적인 견해에 의해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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