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대적이며 절대적인 지식의 백과사전
베르나르 베르베르 지음, 이세욱 외 옮김 / 열린책들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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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 박경리의 <토지>를 읽다가 덮었습니다. 지인들과 대하소설 읽기 프로젝트를 하자고 의기투합했습니다. 그 첫 작품으로 박경리의 <토지>를 선정하고 호기롭게 시작은 했습니다만 전 안타깝게도 마무리를 짓지 못하고 말았습니다. 철학이나 경제학처럼 난해한 인문학 서적은 읽다가 어려워서 도중에 덮기도 했지만 소설을 도중에 덮다니. 처음 있는 일이었고 그래서 충격이었습니다. 왜냐면 저를 제외한 지인들은 대부분 수월하게 책을 읽었거든요. 지인들은 제게 대체 이유가 뭐냐고 물었는데요. 저의 대답을 듣고 마구 웃더군요. 제가 했던 대답이 사투리가 무슨 말인지 도무지 모르겠어요.ㅠㅠ였거든요.



 

경남 하동을 중심으로 대지주인 최 참판댁과 그 마을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은 <토지>는 토속적인 향토 묘사와 정황이 빼어난 작품이라고 하죠. 그만큼 짙은 서부경남 사투리가 곳곳에 포진해 있는데요. 일부 사투리는 각주로 설명을 덧붙이긴 했지만 그것조차 없거나 검색해도 안 나오는 사투리가 수두룩했습니다. 경상도에서 반백 년 가까이 살아온 저였지만 그럼에도 생전 처음 마주하는 사투리는 소설의 몰입을 떨어뜨렸고 결국 도중 포기라는 불상사가 일어나고 만겁니다. 소설의 등장인물을 모아놓은 책은 있지만 저처럼 사투리로 고생하는 독자를 위한 안내책자가 있으면 정말 좋을텐데 아쉬움이 남았습니다.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상대적이며 절대적인 지식의 백과사전>을 손에 들고 있으니 가슴이 두근댔습니다. 짙은 블루 바탕에 펼쳐놓은 세계지도와 피라미드, 나비, 고래, 개미, 고양이 등이 은빛으로 반짝이는 표지는 보자마자 근사해란 말이 저절로 나오더군요.



 

지식의 백과사전이란 단어에 어떤 내용이 수록되었을지, 소설가가 쓴 백과사전이라니 호기심이 일었는데요. 프롤로그에 이렇게 밝히고 있더군요. 책에 소개된 이야기는 자신이 지어낸 것이 아니라 듣거나 보거나 읽었던 것들인데 열세 살 때부터 모으기 시작한 이야기가 어느덧 수백 개가 되었다고. 그런데 자신은 기억력이 좋은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사진과 만화 같은 그림을 더해 기록으로 남기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의 소설을 읽으면서 매우 꼼꼼하고 치밀한 사람일거라 생각했는데 역시나 였습니다. 저 역시 여러 경로로 알게 된 흥미로운 이야기나 상식, 지식을 접하지만 그것을 모아두고 이렇게 한 권의 책으로 묶어 출간한다는 건 생각지도 못한 부분이거든요. 역시 베르베르는 보통 사람을 뛰어넘는 천채, 베르베르였습니다.



 

책은 모두 12개의 주제로 구성되어 있는데요. 진행방식이 독특합니다. 사전이니까 앞뒤 내용이 논리적으로 연관성을 갖고 전개되는 것이 아니라 저자의 책을 바탕으로 했더군요. 가장 최근에 출간한 책을 제일 먼저, 출간된지 오래된 책일수록 뒤에 소개하는 방식이었습니다. 이를테면 ‘1장 죽음은 저자의 <죽음>에서 추려낸 내용이 수록되어 있는거죠. 독특한 전개방식은 흥미로웠지만 반면에 당황스러웠습니다. 그의 <죽음>은 아직 안 읽었거든요. 어쩌나 하고 잠시 망설였지만 이내 본문으로 빠져들었습니다. 신기하고 독특한 이야기가 그야말로 가득했거든요.



 

그리스의 비극 작가 아이스킬로스는 기원전 456년에 황당한 사고로 사망했다. 맹금류 새 한 마리가 그의 머리를 매끈하고 둥근 돌이라고 착각하는 바람에 등딱지를 깨서 먹으려고 살아 있는 거북이를 머리에 내리친 것이다. - 17. ‘엉뚱해서 유명한 죽음들중에서.



 

그러면 안되지만 정말 읽는 순간 웃음이 나왔습니다. 너무 황당한 상황이어서. 예전에 지인들과 <아이스킬로스 비극전집>을 읽고 토론하면서 저자가 어떤 사람일까 궁금했는데 그의 죽음에 이런 사연이 있다니... 다음에 다시 <비극전집>을 읽을 때 얘기를 나눌 화젯거리가 생겼는데요. 책에는 이렇게 기이하고 때론 믿기지 않는 이야기들로 채워져 있습니다. 어린 시절 <셜록 홈즈>에 매료된 전력이 있기에 아서 코넌 도일이 심령술에 빠졌다는 대목이나 발명왕 에디슨이 말년에 죽은 사람과 대화할 수 있는 기계를 만드는데 매진했다거나 자신의 욕망과 권력을 위해 백성들에게 잔혹하게 탄압했던 동서양의 여러 왕이 있는가하면 그와 반대로 많은 이들을 돕는 삶을 살아간 사람도 있었구요. 코로나 시국이어선지 유행성 감기와 독감에 대한 대목은 더욱 눈길을 끌었고 지인들과 조만간 <걸리버 여행기>를 읽을 예정인데 조너선 스위프트에 대한 얘기가 있어서 주의깊게 읽었습니다. 20세기에 벌어진 전쟁 중에서 대규모 살상으로 희생된 사망자 숫자를 무미건조하게 적어둔 대목은 충격적이었습니다. 가장 많은 사망자를 낸 전쟁은 제2차 세계대전으로 사망자가 무려 65백만 명이라는 기록에 더 이상 어떤 전쟁도 있어선 안되겠다는 걸 다시 느끼게 되었습니다.



 

주말에 느긋하게 텔레비전 앞에 있으면 세계 곳곳에서 일어난 신기한 사건이나 믿기 힘든 일화를 엮어서 제작한 프로그램을 볼 때가 있는데요. 각 장의 주제에 따라 세부적인 분위기가 조금씩 다르긴 했지만 꼭 그런 프로그램을 보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특히 미처 읽지 못했던 베르나르의 책에서 추려놓은 이야기에서 일부라도 내가 아는 내용이나 읽었던 책이 언급되면 어찌나 반갑던지요. 마구잡이식 독서가 도움이 되기도 하는구나 싶어 안심이 됐다고 할까요. 베르나르가 모아놓은 이야기, 그의 독특한 상상력의 바탕이 되었을지도 모르는 지식과 일화들은 꼭 그의 작품을 읽지 않았더라도 읽는데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전 오히려 여유가 될 때 내용을 익혀두었다가 이담에 만남이 자유로워졌을 때 하나씩 대화 소재로 활용하면 좋을 것 같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가까이 곁에 두고 틈날 때 꺼내보시길 권합니다. 쏠쏠한 재미에 단박에 빠져드실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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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21-11-16 07: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이스킬로스 ㅎㅎ 진짜 비극적인 생의 결말을. 웃으면 안 되는데 웃기네요. 토지는 저도 완독응 못해서 내년이나 시도하려고 하는데 사투리 때문에 포기하셨다니요 고민이 ^^

짜라투스트라 2021-11-16 08: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토지는 읽을 생각이 안드네요^^

뚠뚜니 2021-12-07 13: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토지는 다 봤는데 기억이 잘 안나네요ㅎㅎ
 
자본주의는 당연하지 않다 - 어쩌다 자본주의가 여기까지 온 걸까?
데이비드 하비 지음, 강윤혜 옮김 / 선순환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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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모임에서 고병권의 <자본>을 읽고 있다. 마르크스의 <자본> 1권을 고병권이 이해하기 쉽게 총 12권으로 쉽게 풀이해놓은 책인데 현재 중반을 넘어서고 있다. 이공계 출신인데다 인문학이나 경제에 관한 지식과 상식이 부족해서인지 <자본>을 제대로 이해하는 걸 기대하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그래서 <자본>의 해설서를 진도에 맞춰서 함께 보고 있는데 커리큘럼에 해당하는 책만 읽을 때와는 달리 시간이나 품은 많이 들지만 내용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고 있다. 학창 시절 자습서나 참고서를 보는 것 같은 기분이 들기도 하는데 간혹 어떤 이는 내게 꼭 그렇게까지 해서 <자본>을 읽어야 하냐고 묻곤 한다. <자본>을 읽는 이유가 무엇이냐는 것이다.


 

2000년 새해를 맞이해서 영국 BBC방송에서 인터넷으로 흥미로운 설문조사를 했다. “지난 천 년 동안 인류에게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사람이 누구라고 생각합니까라고 질문했는데 1위를 차지한 사람이 바로 카를 마르크스였다.


 

<자본>이란 제목만 보면 마르크스의 영향력은 경제학에 한정되어 있을 것 같지만 실제론 그렇지 않다. <자본>을 보면 책이 저술된 19세기는 물론이고 이전 몇 세기 전의 영국이나 유럽의 역사, 경제, 시대적 상황이 맞물려 있는데 그렇게 복잡하게 얽힌 관계를 추적해서 쓴 책이 바로 <자본>이다. 때문에 마르크스는 경제학은 물론 현대 사상 전반에 걸쳐 심대한 영향을 끼쳤다는 평가를 받을뿐 아니라 현대 자본주의를 비판적으로 분석하는데 있어 유용한 틀로 재조명되고 있다.


 

<데이비드 하비의 맑스 자본 강의><자본>의 참고서 삼아 보고 있는데 최근 그의 신간이 출간되었다. ‘어쩌다 자본주의가 여기까지 온 걸까라는 부제의 <자본주의는 당연하지 않다>이다. 눈여겨보고 있는 저자의 신간이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제목을 보고 의문이 생겼다. ‘자본자본주의는 어떻게 다를까 하는 것이다. 지금 읽고 있는 <자본>과도 관계가 있는 게 분명했다.


 

책은 2019년 가을, 산티아고를 비롯한 세계의 고질적인 문제의 원인을 찾아가는 지구촌 곳곳이 불안하다를 시작으로 열아홉 개의 글이 수록되어 있는데 저자인 데이비드 하비가 2018년부터 격주로 진행한 팟캐스트와 온라인 강의를 바탕으로 집필되었다. 대략 20쪽 내외의 분량으로 이뤄진 글은 저자가 직접 강의하는 것처럼 구어체로 서술되어 있다. 세계 여러 나라에서 노동운동과 시위가 거세게 일어나는 이유에 대해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이들 시위의 공통된 맥락을 보자면, 현 경제 시스템이 대중들에게 보장했던 약속을 제대로 지키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는 것, 또 정치 시스템이 비정상적으로 초부유층의 편에서 돌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실감했다는 것을 들 수 있겠습니다. - 12.

 


저자의 해석이 낯익지 않은가? 해당 본문의 어디에도 우리나라에 대한 언급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분석한 내용이 우리나라의 상황과 똑같다고 할 만큼 절묘하게 닮아있다. 열심히 일하면 먹고 사는데 어려움이 없을 거라고 누구나 생각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일을 하면 할수록 노동자들의 삶이 더욱 팍팍해지는 이유가 바로 경제적 원인뿐만 아니라 정치에도 문제가 있다고 말한다. 나라의 이름만 다를 뿐 자본이 지배하는 사회는 어디든 비슷한 상황이라는 것이다. 19세기에 쓰여진 <자본>21세기인 오늘날에도 통하는 것처럼 말이다. 이는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가 <자본>을 읽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우리의 과제는 현 사회에 잠재되어 있는 문제가 무엇인지를 잘 살펴서 그 대안이 될 수 있는, 보다 사회주의적인 시대로 평화롭게 전환할 수 있도록 모색하는 것입니다. 혁명은 단발성 이벤트가 아니라 기나긴 여정입니다. - 28.

 


내년 대선을 앞두고 여야의 대통령 후보가 결정되면서 그들의 정책과 공약이 하나씩 거론되고 있다. 이전에도 그랬지만 선거에 나온 정치인들의 정책이나 공약을 살펴보면 용어나 단어의 표현만 다를 뿐 여야가 거의 동일한 공약이 있는가 하면 완전 정반대를 추구하는 것이 있다. 이를테면 사회 전반의 시스템을 정부 주도로 할 것인가, 아니면 정부는 최대한 뒤로 물러나고 시장에 맡겨둘 것인가를 두고 서로 치열하게 논쟁을 벌인다.

 


저자도 이 부분에 주목해서 다루고 있다. 자본가가 막강한 힘을 갖게 되면 그만큼 노동자들에 대한 착취가 심해지고 그것은 고스란히 자본가의 이윤을 극대화하는 상황이 될 거라면서 신자유주의의 모순에 대해 이야기한다. 자본가가 자신의 이윤을 위해 노동자의 임금을 계속 줄이면 그것은 결국 시장이 줄어드는 악순환을 불러오게 된다고. 그 해결책 중의 하나가 바로 신용카드였다고 한다. 부족한 임금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신용카드를 쓰다 보면 점점 더 많이 빚을 지게 되는데 그것을 부추기는 것이라고 말이다. 소름끼치는 대목이 아닐 수 없다.

 


사람들이 집을 압류당하도록 하는 것이 자본가의 입장에서는 매우 유리한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압류당한 주택이 시장에 엄청나게 나오면, 해지펀드와 사모펀드 등이 헐값으로 사들여 엄청난 이익을 낼 수 있었죠. 이런 식으로 주택시장이 되살아났습니다. - 51.


 

자유가 좋다는 걸 우리는 알고 있다. 사소한 것까지 주인의 명령에 따라야 하는 노예보다 자유가 백번 좋으니까. 그래서 자유란 말이 들어가면 모두 옳고 정의로운 것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정말 그럴까? 정치인들이 입버릇처럼 언급하는 말 신자유주의는 어떤가. ‘신자유주의는 과연 사회 대다수를 차지하는 서민과 대중에게 이로운 것일까?


 

신자유주의란 언제나 상류층과 자본가를 위한 것이며,...상류층의 재산과 권력을 유지하고 보강하는 것이며,..부자는 결국 더 부자가 되고 가난한 자는 계속 그 상태로 가난해지도록 작동하는 것이 신자유주의라면?...신자유주의 정책이 시행되고 있는 곳은 어디나 사회적 불평등이 심화되고 있는 것을 보면 말이죠. -77~78.


 

자본주의는 어느 꽃에 앉아야 자본이 제일 많이 증식되는지 고민하면서 끊임없이 움직이죠. 이것이 우리가 처한 현실입니다. 다시 한번 말씀드리지만, 우리 시대의 자본주의 구조와 경제, 정치권력을 다시금 영토화시키고 있는 것은 돈의 형태를 띤 자본입니다. - 144


 

각각의 글마다 언급하고 있는 상황이나 저자의 분석은 실로 놀라운 수준이다. 어느 것 하나 우리와 무관하지 않은 대목이 없었다. 한국전쟁 후 폐허가 된 우리나라를 미국이 경제적으로 지원하게 된 이유는 무엇이며 성장을 위해 우리가 어떤 희생을 치러야 했는지 이 모든 것에는 철두철미하게 힘의 논리가 작용하고 있었다는 걸 알게 됐다.


 

지금은 비상 상황입니다. 우리의 사고방식을 바꾸고 정치경제적으로 해결하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입니다. 그러나 이것을 놓쳐서는 안 됩니다. 이 모든 것의 배경에는 근본적으로 자본축적이라는 커다란 문제가 도사리고 있다는 것을요. -241


 

노동자는 기계의 부속품이거나 기계를 지키는 존재로 전락했습니다....한때 노동자들의 기능이 필요했던 자본가들은 이제 이런 속박에서 벗어났습니다. 그런 기능은 이제 기계 속에 들어 있기 때문입니다. 과학기술을 통해 생산된 지식은 기계로 흘러 들어가며, 기계는 자본주의 역동성의 영혼이 되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마르크스가 서술하고 있는 당시의 상황입니다. - 321


 

강의하는 형식으로 이루어진 글이어서 내용은 그다지 어렵지 않게 읽을 수 있다. 하지만 눈으로 훑고 지나는 식으로 읽어서는 책의 핵심을 놓치기 쉽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정치와 무관한 삶을 살아간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우리의 일상은 정치와 때어놓을 수 없다. 삶이 조금이라도 나아가길 원한다면 매일 조금씩 규칙적으로 꼭꼭 씹어서 읽어나가길 권하고 싶다.

 


무엇 하나 버릴 것이 없는 책이지만 아쉬운 점이 있다. 책을 펼쳤을 때 중앙의 여백이 지나치게 좁게 제본이 되어있다. 해서 책을 읽을 때나 밑줄을 긋거나 할 때 책 중앙 부분을 힘줘 눌러주어야 하는 불편한 점이 있다. 책의 가로폭을 조금 넓이면 집중도나 가독성이 훨씬 나아지리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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짜라투스트라 2021-11-09 17: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제 데이비드 하비까지 읽으시는군요 ㅋㅋ

몽당연필 2021-11-09 20:32   좋아요 0 | URL
ㅎㅎㅎ 내가 워낙 느리고 부족함이 많은지라.... ^^;;

뒷북소녀 2021-11-10 13: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출판사 이름도 선순환...이래요.ㅋㅋㅋ

몽당연필 2021-11-10 14:52   좋아요 0 | URL
기존에 자주 접하는 출판사는 아니죠 ^^;;
 
주진오의 한국현재사 - 역사학자가 마주한 오늘이라는 순간
주진오 지음 / 추수밭(청림출판)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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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진오의 한국현재사> 제목을 보고 깜짝 놀랐다. ‘주진오’라는 이름에 한 번, ‘현대사’가 아니라 ‘현재사’라는 제목에 또 한 번. 그리고 이어서 찾아온 두 가지의 감정. 둘째 아이가 배우는 역사 교과서의 대표 집필진인 역사학자 ‘주진오’의 책이 출간되어서 반가웠고 <한국현재사>에 담겼을 현재 대한민국의 모습, 상황, 역사가 궁금했다.

‘역사학자가 마주한 오늘이라는 순간’이란 부제가 붙은 <한국현재사>를 본격적으로 읽기 전에 검색부터 했다. 현대와 현재, 비슷하지만 분명 의미의 차이가 있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현대(現代)는 ‘지금의 시대’, 현재(現在)는 ‘지금의 시간’으로 설명되어 있었다. 역시 차이는 있지만 확실하게 와닿지 않았다. ‘시대’와 ‘시간’으로 다시 검색했다. 시대(時代)는 ‘역사적으로 어떤 표준에 의하여 구분한 일정한 기간’, 시간(時間)은 ‘어떤 시각에서 어떤 시각까지의 사이’라고 한다. 두 단어의 미묘한 차이를 알아차리기엔 나의 지식이 미천하고 부족했다.

가슴 어딘가에 커다란 물음표를 남기고 마주한 [들어가는 글]에서 제목에 대한 저자의 생각과 의도를 알 수 있었다. ‘과거는 현실에서 벌어지는 문제를 올바르게 이해하기 위한 수단’이기에 역사에서 ‘행동과 실천’이 무엇보다 중요함을 깨달았다면서 역사학자는 오늘의 역사에 대해서도 이야기할 의무가 있다고 생각했다는 것이다. 인간은 누구나 오류와 실수를 하기 마련이라며 ‘공감을 기반한 역사학’을 목표로 삼은 저자는 페이스북에 한국에서 벌어지는 ‘현재적’ 문제를 일기처럼 꾸준히 기록을 남겼다. 그리고 그 기록을 모아 출간한 것이 바로 이 책 <주진오의 한국현재사>인 것이다.

이런 질문을 항상 되뇌며 스스로 반성하고자 합니다. “나는 지금, 부끄럽지 않은 역사학자인가?” 그것이 ‘현재’를 기록하고 살아가기 위한 역사학자의 기준일 것입니다. - 9쪽. [들어가는 글] 중에서.

책의 구성은 간단하다. ‘사람의 역사’ ‘만들어가는 역사’ ‘참여하는 역사’ ‘이어주는 역사’ 이렇게 네 개의 장으로 구성한 다음 각 장 마다 9편씩 모두 36편의 글을 수록해놓았다. ‘1장 사람의 역사’에서는 우리 근현대사에 자주 언급되는 인물 중 새롭게 알게 된 내용이 많았다. 안중근 의사의 이토 저격에 대해 당시 대한제국이 일제 식민지로 전락하는 걸 앞당겼다며 부정적인 시선이 있다는 것과 이봉창 의사가 처음엔 일본인으로 살고 싶어했지만 좌절했던 경험이 있으며 그의 사진도 합성된 것이라는 사실은 충격적이었다. 초대 대통령인 이승만에게는 의형제를 맺고 함께 독립운동을 했던 박용만이란 인물이 있었으나 노선이 달라 갈등을 빚고 결국 독립운동사에서 잊혀졌다는 대목은 안타까웠다. 박정희 대통령 기념관 건립 국고 지원에 있어서 당시 역사학자들이 침묵한 것에 대해 저자는 날카롭게 비판한다. 뿐만 아니라 전두환은 내란죄로 사형을 선고받은 인물임에도 불구하고 역사적 심판이 어정쩡하게 이뤄졌다며 강하게 꾸짖는다.

사실 저에게 대통령이란 국민학생 시절부터 대학생을 거쳐 군에서 제대한 직후까지 박정희밖에 없었습니다. 저는 운동권 학생도 아니었고 특별히 고난과 탄압을 받은 적도 없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친일과 좌익활동, 독재와 인권탄압 그리고 파시즘적 문화압살에 이르기까지 우리 현대사를 망가뜨린 장본인이 박정희라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텍사스에 있는 동안 박정희기념관에 200억 원의 국고를 지원한다는 기사를 보고 용납하기 어려웠습니다. - 58쪽. [박정희 대통령을 어떻게 기억할 것인가?] 중에서

얼마전에 읽은 책 <만들어진 진실>에서 어떤 것이든 ‘진실은 아흔아홉 개의 얼굴’을 가졌기 때문에 다양하게 접근할 필요가 있는데 목적에 따라 진실을 의도적으로 편집하고 그것을 퍼뜨린다는 대목이 있었다. 언론사를 통해 가짜뉴스가 생산되고 유통되는 요즘이어서 더욱 인상 깊게 와닿았는데, 저자는 역사학자도 팩트체크를 게을리해선 안된다고 강조한다. 또한 건국절의 시점에 대해서 보수 세력의 주장이 얼마나 터무니없는 것인지 조목조목 짚어주고 ‘위안부’ 문제에 있어 피해자들의 아픔과 고통을 공감하는 것은 물론 명예회복의 길이 머나멀다는 걸 인식할 수 있었다. 국가 차원이 아닌 우리 모두가 어떤 의식을 갖고 대응해야 할지 깊이 고민해야 할 것 같다.

여성의 입장에서 역사를 바라본다는 것은 역사학의 지평을 넓히는 작업이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반드시 여성이어야만 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남성이 여성사를 강의하고 연구하게 되었을 때 따르는 효과도 크다고 봅니다. 이는 가부장제에 대한 비판이 나올 때마다 단지 ‘당신이 여자이기 때문에 내세울 수 있는 논리’라는 편견으로부터 벗어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 182쪽 [인생의 패배자라고 슬퍼하지 마라] 중에서

현재 폐기되긴 했으나 지난 정권에서 추진한 ‘역사교과서 국정화’에 대해 저자는 우려의 목소리를 내었다. 정권의 이념과 입장, 정치 논리에 치우쳐서 청소년들에게 역사교과서를 통해 편향되고 잘못된 역사관을 주입하는 ‘역사 공작’이 얼마나 심각한 문제를 야기하는지 여러 편의 글을 통해 낱낱이 파헤치고 있다. 역사를 목적에 따라 왜곡하거나 축소했을 경우 일어나는 일을 우리는 가까운 일본을 통해 겪고 있는데 그런 음모를 국가가 추진하려고 했다니 아찔하기만 하다. <암살>을 비롯한 <밀정>, <사도>, <동주>처럼 역사를 배경으로 한 영화나 콘텐츠에 대해 저자는 역사물은 우선 재미가 있어야 하지만 역사가 왜곡되어도 안된다며 강조한다.

역사콘텐츠는 제작자들이 바라고 꿈꾸는 역사의 모습으로 바라볼 필요도 분명 있습니다. 역사는 결국 박제된 사실로 고정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대중과 호흡하며 해석의 변화를 낳기 마련이니까요. - 307쪽 [역사콘텐츠를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 중에서

역사를 인물과 사건, 오늘의 의미에 대해 다루었는데 포인트가 ‘현재’에 맞추어져 있어서 학창 시절 교과서에서 접하지 못했던 내용이 정말 많았다. 학창 시절 역사는 깨알 같은 글씨까지 통째로 암기해야 하는 품이 많이 드는 과목이었다. 역사와 재미는 절대 공존할 수 없는 상반된 개념이었다. 왜 그랬을까. 왜 그래야만 했을까. 어느 누구도 속시원히 대답해주지 않았다.

<주진오의 한국현재사> 이 한 권의 책으로 우리 역사에 대한 궁금증이 모두 해소되지는 않았고 또 그걸 바래서도 안된다. 책을 읽으면서 좀 더 구체적이고 자세하게 알고 싶은 부분이 이전보다 더 많아졌다. 다행인 것은 어쩌면 이후에 저자의 또 다른 책을 만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것이다. 우리의 관심에서 역사가 멀어지는 순간 우리에겐 이전보더 더욱 큰 위기가 닥칠 수도 있다는 걸 실감하는 책읽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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쎄인트saint 2021-12-09 17: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달의 리뷰 선정 축하드립니다~!!

몽당연필 2021-12-09 18:44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행복한 저녁 되세요 ^^
 
너의 말이 좋아서 밑줄을 그었다
림태주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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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 한 자락이 예전 같지 않음을 느낀다. 하루에도 몇 번씩 몸을 움츠리곤 한다. 내가 나를 끌어안듯이 양팔로 감싸 안는다. 헛헛한 속을 데워줄 온기를 가진 무언가를 끊임없이 찾게 된다. 무더운 여름이 물러가고 서늘한 가을의 한 가운데에 들어왔다는 증거다. 곧 냉기를 머금은 겨울이 다가오겠지.


 

가을은 그리움의 계절이란 생각이 든다. 예전엔 다가올 겨울을 기다리는 계절이 가을이었지만 언제부턴가 다시 돌아갈 수 없는 지난 세월을, 지난 시간을, 그리고 곧 어제가 되어버릴 오늘을 그리워하는 계절이 가을이 되어버린 것 같다. 그래서 가을엔 혼자 있으려 하고 자꾸 밖으로 나가려고 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하루가 다르게 바뀌어가는 삶의 모습을 조금이라도 더 담아두고 싶은 것일지도...


 

<너의 말이 좋아서 밑줄을 그었다>의 저자 림태주님의 책은 이번이 처음인데 제목이 눈길을 끌었다. 글이 좋아서 밑줄을 긋고 포스트 잇을 붙이고 필사를 하지만, ‘말이 좋아서 밑줄을?’ 어떤 의미인지 알 듯 모를듯했다. 혹시나 표지에서 힌트를 얻을 수 있을까 했는데. 표지엔 어떤 그림도, 사진도, 일러스트도 없다. 그저 프리즘을 통과한 빛이 무지개빛으로 비치는 모습이 전면에 드리워져 있을 뿐. 저자에게 말이란 이런 것이었을까. 하루에도 무수히 쏟아내는 말 중에서 저자가 밑줄을 긋듯이 가슴에 담아낸 말을 어떤 것일까.


 

시집인가 싶을 정도로 작은 사이즈의 책, 손이 작은 내가 한 손으로 잡고 읽어도 거뜬한 크기인데다 짧은 글로 이루어진 책이어서 하루에도 몇 번씩, 외출할 때 가방에 넣어 다니며 읽기 좋았다.


 

진심의 핵심, 진정성의 요채는 무엇일까? 나는 그것을 시간이라고 생각한다. 시간을 양적으로 사용하면 진정성이 된다. () 바쁘다고 핑계를 대고 만나주지 않는 사람과 바쁘더라도 흔쾌히 시간을 내주는 사람의 차이가 관계의 진정성을 가른다. 시간이야말로 확실한 진심의 지표다. () 나는 미워하는 시간보다 사랑하는 시간을, 잊으려 하는 시간보다 그리워하는 시간을 더 늘리려고 한다. 나를 위한 유익과 즐거움을 구매하는 데 내 목숨을 지불하려고 한다. - [진심을 알아보는 법] 중에서

 


양치기나 파수꾼이나 등대지기는 별이 발명한 직업군이다. 그토록 외로울 수가 없고 그토록 사람의 말이 그리울 수가 없다. 나는 어쩌다 시인이 되어 고독에 세 들어 살고 있다.(6)’ 책의 프롤로그를 읽으면서 가슴이 설렐 수 있다는 걸 느꼈다. 살면서 겪게 되는 소소한 일상 속에서, 무수한 만남과 헤어짐 속에서, 우리는 때로 상대의 말을 공감하지 못하거나 오해하기도 하고 어떤 사정 때문에 차마 전하지 못하고 묻어버린 말들이 얼마나 많은가. 그런 말들을 저자는 하나하나 가슴에 담아 녹여내어 자신만의 프리즘을 통해 전하고 있다. 때론 아련하게 때론 따스하게 때론 냉철하게.



나는 그가 제대하는 날까지 말의 거리를 풀지 않았다. 언어를 주고받았을 뿐 그와 한 번도 대화를 나눈 적이 없다. 나는 그가 무겁게 깨닫기를 바랐다. 사람의 마음을 얻지 못하면 아무리 상대가 예의 바르고 존중하는 말을 건네더라도 그건 철저하게 외면하는 말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 상대의 마음에 1밀리미터 다가서는 건 달나라 가는 궤도를 구하는 공식 만큼 어렵다. 마음 한 줌을 얻지 못하면 백 마디 아름다운 말이 내 것이 아니다. [말의 표정] 중에서

 


어릴 때 바다로 나갔다가 다시 하천으로 돌아오는 은어(銀魚)는 포식자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서식지의 물빛과 닮은 색을 띠어 회갈색 등에 은백색의 배를 지니게 됐는데 저자는 그런 은어를 통해 우리는 무엇이든 인식할 때 분류하는 습성을 지니고 있다고 말한다. 그리고 물고기 은어가 떼를 지어 살아가는 것처럼 사람들에게도 끼리끼리의 언어인 은어(隱語)가 있다며 어떤 무리든 거기에 속하려면 그 언어를 먼저 익혀야 하는데 실상 우리는 그렇지 못함을 꼬집는다.


 

돌이켜보면 우리의 사랑이 실패한 이유는 상대방의 언어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데 원인이 있었다. 내가 쓰는 언어와 다르지 않다고 판단해 모든 것을 내 관점에서 말하고 내 언어 체계로 이해하려 들었다. 상대의 말을 그만의 은어라고 여기지 않았다. 탐구하여 배우려 하지 않았고 시간과 인내가 소요되는 일임을 고려하지 않았다. 자꾸 다른 데서 관계의 하자를 찾으려 했으므로 실패를 반복했다. 그저 말이 잘 통하는 성격 좋은 사람을 찾아 헤맸다. [은어의 세계] 중에서

 


하안거나 동안거 기간에 사찰을 찾으면 방문객들이 출입할 수 없는 구역이 있다. 자신만의 화두를 안고 깨달음을 얻기 위해 수행 중인 스님들을 위해 다른 이의 출입을 통제하는 것이어서 자연히 행동이 조심스러워지기 마련이다. 하지만 저자는 달랐다. 고요를 좋아하기 때문에 사찰에서 묵언 수행 중이란 푯말을 만나면 좋았다면서 스님들이 고요를 닮는 연습을 하는 거란 대목이 인상적이었다. 그런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기에...

 


말하지 않는 것이 말하는 것보다 어렵다. 문을 걸어 잠그고 정진을 거듭해야 할 정도니까. 내가 고요에게 배운 것이 있다면 말할 때 잠잠함을 유지하는 법이다. 말을 전하려고 애쓰지 말고 마음을 보여주라는 것이 고요의 가르침이다. [고요의 원리] 중에서

 


우리가 살아가면서 겪는 어떤 일에 대해 판단하고 행동하는 것은 모두 각자의 사고방식에 의해 이루어진다. 하지만 그 사고방식을 형성하는데 가장 크게 작용하는 것이 평소 자신이 여러 과정을 통해 습득했던 지식이라고 한다. 때문에 잘못된 지식과 정보로 인해 확증편향을 갖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고 하는데 말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당신이 타인에게 보여준 언어가 되돌아와 당신이 된다는 글에 나를 돌아보게 된다. 내가 타인에게, 아니 가까운 가족에게 어떤 언어를 구사했는지 곰곰이 생각해보게 된다.


 

사는 동안 사람은 한 권의 사전이 된다. 일일이 기억하지는 못하지만 일생 동안 자신이 사용했던 어휘와 정의 내린 개념들이 빼곡히 세포에 기록된다. 기록한 페이지들을 한 번도 펼쳐보지 않고 생을 마치는 사람도 있고, 그 단어들을 간추려 자신만의 문장으로 엮고 가는 사람도 있다. 인생이란 것이 있다면 그 엮인 문장들의 줄거리와 고갱이를 이르는 것이 아닐까. [국어사전 사용법]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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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대한 가속 - 포스트 코로나 시대, 우리 앞에 다가온 역사의 변곡점
스콧 갤러웨이 지음, 박선령 옮김 / 리더스북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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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든 시기 잘 견뎠어 이젠 꽃길만"전국 '위드 코로나' 기지개 / 세계일보]

[신규확진 1,618'위드 코로나' 준비 본격화 / 연합뉴스]

['위드 코로나' 대비하는 기업들자체 방역지침 완화 잰걸음 / 한국일보]

[코로나19 확진자 1400명대 초반3주째 감소세 지속 / 프레시안]

 


언론에서 본격적으로 위드코로나를 말하고 있다. ‘코로나19의 완전한 종식을 기대하는 것보다 공존을 준비해야 한다‘With Corona’. 우리나라는 서구 선진국에 비해 코로나19 대응을 잘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일부 지역을 봉쇄하거나 셧다운 하지 않은 상태에서 확진자 동선을 추적해서 증상이 나타나기 전에 선제적으로 조치를 취했고 각 지역의 선별진료소에서는 광범위하게 코로나 검사를 시행했다. 무엇보다 돋보였던 건 바로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개인방역과 위생에 힘썼고 사회적 거리두기를 실천했다는 점이다.


 

하지만 작년부터 이어진 코로나 시국은 2년째인 지금도 잦아들 기미를 보이지 않으면서 더 이상 버티기 힘든 사람들을 벼랑 끝으로 내몰고 있다. 방역이냐, 일상 회복이냐. 이 사이에서 누구나 깊은 고민에 빠지게 된다. 그나마 다행인 건 우리나라의 백신 접종 완료자가 인구 대비 65%, 1차 접종자는 인구 대비 78%에 이른다는 것. 시민들이 지금까지 해왔던 것처럼 개인방역에 주의를 기울이면 조금씩 일상으로 회복하면서 코로나와 공존하는 것도 어쩌면 가능하지 않을까.


 

개인, 사회, 비즈니스모든 추세가 10년씩 앞당겨졌다!’고 말하는 책이 출간됐다. 미국에서 브랜드 전략이나 트렌드를 예측하는데 가장 정통한 전문가로 꼽히고 세계 최고의 비즈니스 스쿨 교수중 한 명에 선정된 스콧 갤러웨이의 <거대한 가속>이다. 원제는 <POST CORONA>. ‘코로나 후에’, ‘코로나 뒤에’, ‘코로나를 이어서우리가 어떤 시대를 맞을 것인지 저자는 데이터를 바탕으로 예측하고 있다.


 

우리가 경험하는 것은 시간이 아닌 변화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시간은 단순히 이전이후의 차이를 측정하는 것이기 때문에 변화가 없다면 시간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 시간은 잘 변하고, 변화할 때마다 속도도 달라진다. 그리고 아주 작은 일이 전례 없는 변화를 일으킬 수도 있다. 바이러스처럼 작은 것이 말이다. (4~5)


 

책은 5(‘빠르게 재편되는 비즈니스 판도’ ‘더욱 강력해진 플랫폼 제국의 미래’ ‘또 다른 시장 교란자들’ ‘위험과 확신이 기다리는 고등교육’ ‘거대한 가속이 우리에게 남긴 것들’)의 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코로나19 확산으로 전세계는 일대 혼란을 빚었지만 가장 먼저 쓰러진 건 자본이나 여건이 약한 기업이었다. 생태계의 적자생존이 우리 사회 전반으로 드러나게 된 것이다.


 

팬데믹발 위기에서 가장 놀라운 것 중 하나는 자본시장의 회복력이다. () 코로나로 2020년 여름까지 18만 명이 넘는 미국인이 사망했고, 실업률이 기록적으로 치솟았으며, 바이러스는 쇠퇴할 기미가 전혀 보이지 않음에도 주가는 하락 폭을 대부분 회복했다. () 팬데믹 국면에서 언론이 거대 IT 기업이나 대형주 지수 같은 화려한 부분에 정신이 필린 동안 한쪽에선 무자비한 집단 도태가 진행되고 있다. 약자는 그냥 뒤처지는 정도가 아니라 잔인하게 학살당한다. (23~24)


 

작년 초 우리의 모습을 떠올려보자. 코로나란 바이러스에 대해 어떤 것도 모르던 때 우리는 극도로 외출을 자제하고 대부분의 소비를 온라인으로 해결했다. 그 여파로 골목상권이 직격탄을 맞았다. 문화계와 공연업계 역시 올스톱되었다. 그런 가운데 거대자본을 무기로 한 대기업의 영향력은 다욱 커졌는데, 이는 세계적인 추세였다. 저자는 그 중에서도 유독 눈에 띄는 한 그룹이 있는데 바로 ‘IT 기업, 빅테크 기업들이라고 강조한다. 그 거대 IT 기업들은 이후에 자사의 주가가 2배로 뛸 가능성을 투자자들에게 알려야 하는데 그렇지 않을 경우를 식욕과 허기를 비유해서 언급한다. 영화 <뱀파이어와의 인터뷰>에서 주인공인 뱀파이어가 나중에는 쥐로는 피에 대한 갈증을 해소할 수 없어 어쩔 수 없이 인간을 공격하게 되는 것 같은 상황이 올 거라고.


 

빅테크 기업들은 자사의 제품 설계와 정책 결정이 미치는 영향을 고려하는 경우가 거의 없는 듯하다. 설령 고려하더라도 사적인 이익을 위해 공공 재산을 일부러 희생시킨다. (84)

 

도시에서는 토끼 고기를 배불리 먹을 수 없으니 사냥을 나가야 한다. 그런데 어디에서 그런 사냥감을 찾을 수 있을까? (90)


 

작년과 올해, 2년도 되지 않는 시간이지만 급격한 변화를 맞은 분야가 있으니 바로 교육이다. 학교에 출석해서 수업하던 방식에서 어쩔 수 없이, 거의 강제적으로 비대면 온라인 수업이 모든 교육기관에서 전면적으로 도입이 되었는데 이로 인한 피해는 심각한 수준이다. 기초학력에 미달하는 학생이 늘고 우수학생은 줄었으며 신입생 충원을 하지 못하는 대학이 속출했다. 이는 미국 역시 마찬가지여서 저자는 많은 사람들이 대학의 필요성에 대해 의문을 가지게 됐으며 명문대라는 특권은 물론 등록금만큼의 가치를 얻을 수 없는 대학이 사라지게 될 것이라고 예측한다. 더불어 대학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지금과는 완전히 다른 시스템으로 재정비를 해야 살아남을 수 있다며 고등교육의 혁신을 촉구하고 있다.


 

그렇다면 앞으로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우선 연방 정부와 주 정부가 협력해 4년제 대학과 전문대에 투입되는 비용을 줄이고 주립대학교 정원을 대폭 늘리는 계획은 마련해야 한다. () 마찬가지로 사립 초..고등학교에 세금을 부과해 공립교육을 보완해야 한다. 현재 고등교육은 상당 부분 카스트제도가 되어버렸다. (188)


 

코로나 시국에서 일상을 살아가면서 문득 IMF 때가 떠올랐다. 예고 없이 닥친 IMF 외환위기로 실직자가 갑자기 늘어났고 극빈층으로 떨어져 생계조차 어려움을 호소하는 이들이 많았다. 모든 사람들이 살기 위해 허리띠를 조이는 위기 속에서 오히려 곳간을 그득그득 채우는 이들도 있었다. 지금 코로나 팬데믹으로 비슷한 현상이 일어나고 있는 것 같다. 비대면과 원격근무로 실직하는 이들이 증가하고 이로 인해 소득의 불균형이 생기고 있다. 그리고 이런 가운데 일부 기업은 급속도로 자산의 가치를 높이고 있다. 갑자기 빨라진 변화의 속도에 뒤처지지 않기 위해선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작년에 입대한 큰아들이 제대를 앞두고 있다. 코로나 여파로 제대로 휴가를 나오지 못해서 조기 전역을 하게 된다고 한다. 아들은 집에 간다는 사실에 기분이 들떠있지만 난 어쩐지 걱정이 된다. 이전과 확인하게 달라진 일상에, 입대 전과 완전히 딴판이 된 대학 생활에 아들이 잘 적응할 수 있을까. 전역한 아들에게 이 책을 건네줘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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