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은 미래로 흐른다 - 빅뱅부터 현재까지, 인류가 탐구한 지식의 모든 것
에른스트 페터 피셔 지음, 이승희 옮김 / 다산사이언스(다산북스)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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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과 출신에 자연과학을 전공했지만 졸업 후 과학책을 즐겨 읽지는 않았다. 사회현상과 과학이 교차하는 내용을 다룬 책이나 과학계에서 이슈가 된 몇 권의 책을 읽은 것이 고작이었다. 더 절망적인 건 그중에서도 완독한 책은 겨우 절반 정도에 그친다는 것. 호기심에 집어 들었던 많은 과학책이 읽다가 덮은 상태로 오래오래 이어졌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속에 숨겨진 과학, 물리학의 이야기를 담은 <보이는 세상은 실재가 아니다>는 조금씩 꾸준히 진도가 나가고 있지만 새해 들어 재도전한 <코스모스>는 초반에 또다시 멈춰버렸다. 아직은 포기한 게 아니니 좌절하기엔 이르지만 어느 정도는 의기소침해질 수 밖에 없다. 그런 가운데 한 권의 책을 집어들었다.


<과학은 미래로 흐른다>의 첫인상은 ‘작고 가볍다’. 한 손에 잡힐만큼 책 사이즈가 작고 본문 페이지가 260여쪽 정도로 분량면에선 부담이 적다. 하지만 [빅뱅에서 현재까지, 인류가 탐구한 지식의 모든 것]이란 부제만 보면 또 마냥 가벼운 책도 아니란 생각이 들었다. 빅뱅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인류의 문명과 과학 발달에 대해 자세히 알지는 못하지만 그럼에도 그 모든 것을 이 책에 다 담을 수 있을까? 의문이 들었다. 틀림없이 과학사의 중요한 핵심만을 추려서 담았을테고 그것은 곧 책의 모든 내용이 쉽지 않으리란 걸 간접적으로 드러내는 것일테니까 말이다.


책은 7개의 챕터로 구성되어 있는데 이는 ‘성서가 천지 창조를 7일에 걸쳐 설명’한 것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본문의 내용은 ‘빛과 에너지’ ‘우주 속의 지구’ ‘생명에 대한 시산’ ‘호모 사피엔스와 인간 게놈’ ‘역사의 변혁’ ‘인간과 기계’ ‘예술을 위한 시간, 혹은 과학에서 진리로’라는 소주제를 보면 각 챕터의 내용이 개별로 존재하면서도 서로 연관관계 속에 이어지고 있다.


부담없이 가볍게 다가선 책읽기는 몇 장 넘기지 않아서 분위기가 달라졌다. 과학상식이라고 하기엔 내용이 깊었다. 이를테면 가장 먼저 수록된 ‘빛과 에너지’에서 단순히 빅뱅을 넘어선다. 태양빛이 식물의 엽록소를 통해 흡수해서 양분과 에너지를 얻는 대목은 학창시절에 배웠지만 그냥 의심 없이 받아들였다. 가만 생각해보면 정말 이상하지 않은가. 빛이 에너지가 되고, 빛이 전기로 변하는데 단순하게 생각해봐도 신기한, 기적에 가까운 그 과정을 왜 한번도 의문을 품지 않았을까. 뿐만 아니라 물리학에 낭만주의가 등장할 줄이야!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코페르니쿠스적 전환, 혁명을 다룬 대목도 인상적이었다. 몇 년 전에 칸트의 <실천이성비판>을 읽을 때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이라는 표현을 접했는데 왜 그런지 단순히 사고의 혁신이 전부인가 했는데 본문에 그에 대한 언급이 있어서 반가웠다.


명절을 앞두고 본가로 향하면서 <과학은 미래로 흐른다>을 가방에 챙겨 넣었다. 명절음식 장만하는 과정은 분주함과 지루함 사이를 수차례 반복하는 것이기에 틈틈이 읽을 생각이었다. 또 명절 전날 불면의 시간에 읽으려고 간이 북스탠드도 챙겼는데 이번 명절에 가장 잘한 결정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책에 언급된 과학의 역사를 극히 일부밖에 이해하지 못했지만 이후 과학서적을 읽을 때 <과학은 미래로 흐른다>는 좋은 마중물 역할이 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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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일리 필로소피 - 아침을 바꾸는 철학자의 질문
라이언 홀리데이.스티븐 핸슬먼 지음, 장원철 옮김 / 다산초당(다산북스)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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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이었다. 우연히 접한 계간지에서 서양인문고전을 읽고 토론하는 모임을 알게 되어 참가하게 되었다. <일리아스> <오뒷세이아>를 시작으로 제목만 알고 있거나 이름만 익숙한 철학자들의 책을 읽기 시작했다. 어렵지 않게 읽은 책도 있었지만 도무지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 가늠하지 못해 혼동의 도가니 속을 헤맨 책들도 많았다. 햇수는 착착 진행됐지만 그만큼 제대로 이해되지 못한 철학개념도 쌓여가는 것 같았다. 언제 어느때든 다시 돌아봐야겠다고 생각했지만 언제나 생각으로 그쳤다.


 

<데일리 필로소피>가 출간되었을 때 반가웠다. 매일 조금씩, 철학의 주요한 문장, 문구를 만날 수 있을거란 생각이 들었다. 저자인 라이언 홀리데이가 <스토아 수업> <에고라는 적>이라는 책을 출간한 베스트셀러 작가이자 사상가라는 점도 눈길을 끌었다.


 

책의 구성은 단순하다. 1년을 3개월씩, 크게 네 부분으로 나누어(철학자처럼 아침을 시작하는 법, 나를 지키면서도 단단하게 관계 맺기, 지치고 불안한 마음에 용기를 더하는 말들, 매일 저녁 나의 하루를 의미 있게 만드는 질문들) 365일을 날짜별로 철학의 요점이나 명언 등을 선별해서 수록하고 그 아래에 저자가 해당 글에 설명을 더해놓았다. 분량도 하루 한 쪽이어서 읽는데 부담도 없다.


 

작년에 매일 톨스토이의 <인생독본>을 읽고 필사했는데 <데일리 필로소피>도 그와 비슷하면서도 달랐다. <데일리 필로소피>만의 독특한 점은 <인생독본>은 톨스토이가 동서양을 가리지 않고 선현들의 글을 모아놓았다면 <데일리 필로소피>는 스토아 철학자들의 글, 스토아 학파 사상가들의 정수를 뽑아서 수록해놓았다는 것이다.


 

정념과 감정, 욕망, 욕구에 휘둘리지 않고 오직 이성을 중시하고 금욕적으로 살면 자연과 조화를 이룰 수 있고 더 나아가 불안이 없는 최고의 행복을 누릴 수 있다는 스토아학파. 그 철학을 평생 일상에서 실천하며 살았던 세네카, 에픽테토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그들이 남긴 말과 글, 철학은 21세기를 살아가는 내게도 깊은 울림으로 남았다.





 

2022년엔 매일 아침 <데일리 필로소피>를 읽고 필사하고 있는데 이 책과의 만남이, 책 속 철학자들이 전하는 질문이 내 삶의 목적을, 방향을 찾아가는데 좋은 길잡이가 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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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문화탐방기 - 마을의 소년들
지현 지음 / 이프북스(IFBOOKS)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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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미, 페미니스트. 최근 우리 사회에서 끊임없이 거론되고 논란이 되고 있다. 하지만 난 여자임에도 아직 이 페미니스트가 무엇인지 정확하게 알지 못한다. 검색을 해보니 페미니즘을 따르거나 주장하는 사람. 여기서 페미니즘이란 성별로 인해 발생하는 정치·경제·사회 문화적 차별을 없애야 한다는 견해나 사상을 뜻한다.’ 차별을 없애야 한다는 견해나 사상이라는 대목에서 고개를 끄덕인다. 당연하지. 어떤 이유에서든 차별은 옳지 않은 거니까. 그런데 왜 논란이 되는 걸까.


 

노란색 표지에 재기발랄한 아이들의 그림이 그려진 <소년문화탐방기>, 자그마한 크기와 표지만 보면 만화책이라고 오해할 것 같다. 책의 첫인상만큼 저자의 이력도 독특했다. 페미니스트 가수(이런 유형이 있는 줄 처음 알았다)로 활동하다가 무대에서 내려와 페미니즘 교육을 하고 있다고 한다. 페미니스트로서의 길을 꾸준히 걷고 있는 저자가 청소년, 그것도 소년들에게 시선을 돌리고 그들을 대상으로 성평등 교육을 하게 되는데 <소년문화탐방기>는 바로 그 기록을 담은 책이다.


 

책은 모두 다섯 부분으로 나누어져 있다. ‘마을로 들어간 페미니스트’ ‘게임하는 소년들’ ‘미디어 세계를 유영하기’ ‘마을? 공동체?’ ‘같이 놀래각 파트의 제목만 봐도 소년들이 좋아하고 즐기는 문화인데 이것을 페미니즘과 어떻게 연결하는 걸까. 성인지 감수성이 어느때보다 중요한 사회적 이슈로 대두된 상황에서 아들 둘을 키우는 나로선 무척이나 궁금했다.


 

페미니즘은 소년들이 경험하던 평범한 일상과 평범한 행동 하나하나를 날카롭게 질문하고 판단하고 바꾸고 버릴 것을 요구했다. 그들은 이런 과정을 힘들어하고 고통스러워했다. - 13.

 


저자는 90년대 공동육아로 출발해서 이후 30여 년간 공동체를 일궈온 마을의 대안학교와 방과후수업에서 만났던 소년들과 나눈 대화와 그들의 반응을 중점적으로 서술하고 있다. 게임에 대해서라면 시간 가는 줄도 모르게 대화를 나누는 아이들은 그 나이 또래 아이들이라면 공유하고 있을 경험, PC방에 대한 느낌이나 경험을 비롯해서 유튜브나 아프리카TV 같은 인터넷 방송에 대한 생각을 털어놓았다. 부분적으로 교사와 부모를 인터뷰한 대목도 눈길을 끌었다.


 

노는 방법을 배우는 아이들과 달리 놀이가 없는 유년을 보내는 아이들은 청소년으로 성장했을 때 여전히 노는 방법을 모른다. 그러나 그들에게도 즐거움은 여전히 중요하다. 그래서 몰입하는 것이 게임, 유튜브, 소셜미디어, 온라인 커뮤니티 활동이다. 청소년들과 게임, 유튜브, 덕질 얘기를 하지 않으면 알 수 없는 것들이었다. 미디어 환경이 변하면서 스마트 미디어에 의존하는 청소년들에게는 스마트 미디어가 곧 자신이고 자신이 속한 세계이고 꿈꿀 수 있는 유일한 세계가 된 것이다. 지금이라도 청소년들에게 노는 법을 가르쳐줄 수 있을까? - 42

 


인상적인 것은 갈등 공포증 세대였다. 누군가의 싫은 행동에 대응하는 방식이나 학생들간의 갈등이 다툼으로 확대될 때, 학교폭력이 발생했을 때를 돌아보고 고민을 나누는 대목을 보면서 학교 안에서 일어나는 일들은 어딜 가나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 역시 어떤 일이 벌어졌을 때 어떻게 행동할 것인지 늘 고민하고 생각하지만 막상 일이 터지면 이전의 생각은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걸 경험했는데, 그만큼 해결이 쉽지 않다는 걸 드러내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중학생이나 고등학교 저학년 소년들은 자신이 좋아하는 유튜버가 하는 말을 그대로 따라 하거나 자신이 소속된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본 주장을 그대로 옮기기 일쑤다. 그것은 폭력과 혐오를 드러낼수록 학교 동료들과 친구집단에서 핵 인싸로 대접받고 남성에게 주어진 젠더 역할을 제대로 수행 하는 것으로 여겨지는 또래 집단 안의 경험이 그들에게 중요한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이때 소년들에게 필요한 것은 훈육이나 질타가 아니라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옆에서 동행해줄 동료 시민이다. 온라인 공간이 키워낸 민주시민에게 양육자나 교사, 어른의 권위는 더는 중요하지 않을 수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 184.

 


소년들에게 필요한 것은 놀이이고 그 놀이문화를 마음껏 즐긴 소년들은 이후 건강한 성인으로 성장한다고 저자는 말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강조하는 것은 소년들의 마음을 묻고 들어주는 것이라고 한다. 소년들에게 마음을 터놓고 이야기할 수 있는 어른의 존재가 꼭 필요하다고 하는데 나는 어떤가 돌아보게 되었다.

 


책을 읽는 내내 둘째가 떠올랐다. 3월이 되면 고등학생이 되는 둘째는 유튜브와 친구와의 게임에 빠져있다. 적당하게 즐기는 수준이 아니라 과하게 몰입하는 것이 걱정인데 책에 등장한 아이들이 게임에 과몰입하지 않으며 게임을 통해 배운다고 해서 의문이 들기도 했다. 저자가 인터뷰했던 마을의 소년들처럼 행동하는 아이들이 얼마나 되는걸까. 일부일까. 대다수에 속할까. 만약 도시의 소년들이라면?


 

아쉬운 점도 있다. 저자는 초반에 자신의 의견을 말하는 것을 꺼리고 성교육에 반감을 가지고 있던 학생들과 소통하는데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고 했다. 불만을 토해내는 학생을 향해 필요 없으면 나가!”라고 소리쳤다고 털어놓았는데 솔직히, 좀 충격이었다. ‘페미니즘을 아이들, 소년들에게 교육한다는 게 쉽지 않으리란 건 이미 예상했을 터인데, 그런데? 페미니즘이란 사회에 만연한 권력이 옳지 않고 정의롭지 않음을 제기하는 것이라고 여겼는데 그 순간 저자의 행동이 그야말로 권위적인 것은 아니었을지. 물론 부끄러웠다고 고백했지만 궁금했다. 아이들에게 자신의 실수를 사과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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둠 : 재앙의 정치학 - 전 지구적 재앙은 인류에게 무엇을 남기는가 Philos 시리즈 8
니얼 퍼거슨 지음, 홍기빈 옮김 / 21세기북스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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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8, 중국의 원인불명 폐렴과 유사 증상을 보이는 의심환자가 국내에서 처음으로 확인됐다. 30대의 중국 국적의 이 여성은 201912월 중순 우한을 방문한 이력이 있다는 점에 주목했으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와는 무관하다는 결론이 내려졌다.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은 120, 한 중국인 여성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자로 확인됐다. 이에 질병관리청은 감염병 위기경보 수준을 관심에서 주의단계로 상향조정하고 항공기의 우한 노선을 취소하기에 이른다. 나흘 뒤인 124, 두 번째 확진자가 확인됐다. 중국 우한시에서 근무하던 한국인 남성이 항공기를 통해 귀국했는데 공항의 검역과정에서 발열과 인후통이 확인되어 능동감시를 받던 중 확진자로 판명되었다. 질병관리본부에서는 즉시 심층적인 역학조사에 들어갔고 두 번째 환자와 접촉한 사람들을 대상으로 검사가 실시됐다. 이때까지만 해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의 확산은 크게 우려할 정도는 아니었다.




 

하지만 218, 영남권의 첫 확진자, 국내 31번째 확진자가 양성 판정을 받아 격리되었다. 문제는 해당 확진자가 대구의 한 교회에서 한 시간 가량 머물렀는데 당시 예배에 참석한 교인들 중 다수가 확진되면서 국내 최초의 집단감염이 일어나게 된다. 잦아들던 코로나 바이러스 사태는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었고 지역사회의 감염이 심각하게 걱정해야 하는 사태가 되었다. 그리고 220, 첫 번째 사망자가 발생하였다. 해당 지역은 특별 재난지역으로 선포되었고 전국의 초중고 학교의 개학이 몇 번 연기되다가 학교 수업을 온라인으로 진행하게 된다. 치료제도 예방 백신도 없는 신종 감염병에 세계보건기구(WHO)3월 코로나19에 대해 세계적 대유행(팬데믹, pandemic)’을 공식 선언했다. 당시 110여 개국에서 12만여 명이 코로나19에 확진된 상황이었다.[출처,대한민국 정책브리핑]


 

문제는 확진자의 증가추세에 따라 사회적 거리두기가 변경되기를 수차례 반복되었는데 이로 인한 소상공인들의 영업손실은 한계상태에 이르렀다는 것. 코로나 팬데믹이 언제 끝날지 알 수 없는 상태에서 사람들의 통행을 무조건 제한할 수도, 그렇다고 완전히 해제할 수도 없는 상황에서 성인의 70%가 코로나 백신을 접종하는 것을 기준으로 단계적 일상 회복인 위드 코로나를 모색하게 된다. 집단면역이 모든 것을 해결해줄 마법의 열쇠가 되는 줄 알았고 너도나도 백신을 맞았다. 그리고 11'위드코로나'로 일상을 회복하는 줄 알았다.





 

그러나 델타 변이에 이어 오미크론 변이가 등장하면서 우리나라뿐 아니라 전세계의 상황은 급변했다. 백신접종을 했음에도 돌파 감염이 나왔고 다시 사회적 거리두기로 돌아가게 되었다. 20211230일까지 국내의 코로나 누적확진자는 399,561, 누적사망자는 3,137명에 이른다.


 

코로나 2년차, 간절하게 염원했던 위드 코로나가 속수무책으로 깨어지고 있을 때 한 권의 책을 만났다. 역사학자이자 21세기 최고의 경제사학자로 손꼽히는 니얼 퍼거슨의 <둠 재앙의 정치학>. ‘전지구적 재앙은 인류에게 무엇을 남기는가라는 부제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저자는 서방 국가마저 코로나바이러스 확산을 저지하는데 실패하고 팬데믹의 수렁에 빠져버린 사태를 보면서 인류에게 닥친 재앙과 재난의 역사가 어떠한지 살펴보고 있다.


 

어떤 것이든 재난은 그 국가의 민낯을 그대로 드러낸다고 말한 저자는 가장 먼저 종말에 대해 이야기한다. 종교적 측면에서 최후의 심판과 종말이 어떻게 말하는지 알아보고 고도로 발달된 과학 덕분에 인류의 수명은 늘었지만 인간은 누구나 죽음을 맞이하는데 현대의 원자폭탄이나 생물 무기, 혹은 지진이나 전쟁과 같은 재난으로 인해 종말을 앞당기는 위험을 맞게 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 재난은 언제, 어떻게 다가오는가. 재난이나 재앙을 어떻게 맞이하고 예견할 수 있는지 순환이론과 함께 재러드 다이아몬드의 <문명의 붕괴>를 통해 붕괴의 일곱 가지 사례를 분석한다.


 

하지만 세상은 경험이나 통계를 바탕으로 예측 가능한 일보다 예측모형의 영역 밖에 있는, 예측할 수 없는 일들이 실제로 일어나는 경우가 종종 있다. 특히 팬데믹 같은 재난은 (이미 우리가 경험했듯이) 그 여파가 정치, 경제, 사회 등에 이르기까지 폭넓게 영향을 미치게 된다. 재난이 연이어 발생하는 이런 일은 사회가 네트워크로 밀접하게 연결될수록 더욱 심각하게 나타난다. 문제는 우리 인간이 전염병에 너무나 취약하다는 것. 지구에 최초로 서식한 생명체 박테리아에서부터 각종 바이러스 등은 우리 벌거벗은 원숭이들에겐 특별히 위험한 적이라는 것이다. 그런데다가 전쟁 같은 재난이 닥치면 군인이나 정치인, 정치지도자들이 리더십을 발휘해서 사태를 제대로 수습할 수 있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다고 한다. 얼마전 톨스토이의 <전쟁과 평화>를 읽었는데 저자가 프랑스의 러시아 침공을 예로 들어 설명하고 있어 이해하기가 한결 수월했다.


 

과학이 아무리 발달하더라도 재난은 예측도 대비도 하기 어렵다고 말하는 책은 650여쪽에 이르는, 벽돌책이라 불러도 될만큼 두툼하다. 저자는 코로나 팬데믹이 마무리되지 않은 시점에서 재난과 재앙의 역사와 현재 진행중인 팬데믹이 정치, 경제, 사회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풀어내었는데 만약 코로나 이후에 책을 출간했다면 분량이 얼마나 많아졌을까 사소한 궁금증이 생겼다. 본문 중에는 곳곳에 표와 그래프, 도표가 있는데 코로나19와 다른 바이러스 질환과 비교해둔 표가 있어서 주의깊게 보았다. 특히 눈에 띄는 것은 우리나라에서 수천 명에게 코로나를 전파시킨 슈퍼전파자 31번 확진자의 사례가 도표로 수록되어 있는데 당시 우리 국민들을 충격의 도가니에 빠뜨렸던 상황이 생생하게 떠올랐다.


 

고대 로마의 폼페이 화산폭발, 중세시대의 페스트, 2차 세계대전, 에볼라...인류의 지난 역사를 살펴보면 미처 예측하지 못한 채 속수무책으로 당했던 재난과 재앙은 얼마나 많은가. 2022년 새해가 되었지만 코로나19 팬데믹이 언제 종식될지 그 누구도 예측하지 못한다. 치료약이 나왔다니 다소 기대가 되지만 그보다 먼저 근본적인 원인을 찾아야 하지 않을까. 지금과 같은 재앙을 다시 겪지 않기 위해서라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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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22-01-01 08: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리뷰 잘 읽었습니다. 올해 팬데믹이 또 어떻게 전개될지 모르지만 나빠지지 않기를 바랍니다. 몽당연필 님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퓰리처 글쓰기 수업 - 논픽션 스토리텔링의 모든 것
잭 하트 지음, 정세라 옮김 / 현대지성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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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온라인 커뮤니티에 글이 하나 올라왔습니다. 휴대폰으로 랭킹 뉴스를 보다가 너무 놀랐다면서 캡처 사진을 올려주었는데요. 그걸 보니 글쓴이가 무엇 때문에 그렇게 노발대발했는지 단박에 알 수 있었어요. 기사 제목만 보면 유명 방송진행자의 아들은 크게 사고를 쳐서 공개사과를 했고 어느 유명인은 암투병 하다 요절했으며 아이돌이 수녀가 됐다는 [공식입장]을 내놓았다는 건데요. 실제 내용은 제목과는 완전 딴판이었습니다. 과거에 있었던 일을 현재의 일처럼 관심을 끌거나 극중 배역이 수녀인 것을 [공식입장]이라는 꼬리말을 붙여 놓았다는 사실에 사람들은 비판을 늘어놓았습니다. 이것이 우리 언론의 현주소이며, 매년 언론신뢰도가 세계 주요 46개국 중에서 최하위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는 이유를 알겠다고.


 

언론의 이런 행태를 일명 제목으로 장사한다고 합니다. 선정적인 제목으로 사람들의 이목을 끌어 클릭하도록 유도해서 그만큼 광고수익을 높인다는 겁니다. 이것뿐인가요? 내년 대선을 앞두고 언론들이 특정후보에게 노골적인 프로포즈 작업에 들어갔지요. 모든 후보에게 공평하고 공정하게 기사를 써달라고 요구하기가 민망하고 부끄러울 정도로 받아쓰기 기사, 편향 기사, 왜곡 기사 등이 만연합니다. 초등학생도 다 아는 기사의 6하원칙을 설마 우리 기자들이 모르는 걸까요? 아니면 글쓰기 능력이 부족한 건가요? 우리 언론, 대체 어쩌다 이 지경까지 이른 걸까요?


 

황금관을 쓴 펜촉 주위로 휘황찬란한 빛이 가득합니다. 이 펜촉은 얼마나 특별하기에? <퓰리처 글쓰기 수업>, 제목만 보면 미국에서도 가장 권위 있는 퓰리처상을 수상할 수 있을 정도로 글쓰기 수업을 시킨다는 걸까? 대체 무엇을 어떻게 가르치기에? 궁금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퓰리처 글쓰기 수업>의 가장 중요한 포인트는 논픽션 스토리텔링의 모든 것이란 바로 부제에 있습니다. 글쓰기를 다룬 많은 책이 소설창작과 관련해 문장과 구성을 이야기했다면 이 책은 논픽션(nonfiction), ‘상상으로 꾸민 이야기가 아닌, 사실에 근거하여 쓴 작품으로 수기, 자서전, 기행문과 같은 글을 쓰는 것에 대해 말합니다. 저자의 글쓰기 수업을 받은 이 중에 다수가 퓰리처상을 수상하기도 했다니 더욱 기대가 됩니다.


 

책은 총 14개의 장으로 구성되어 있구요. 각장의 주제는 [스토리, 구조, 시점, 목소리와 스타일, 캐릭터, 장면, 액션, 대화, 주제, 취재, 스토리 내러티브, 해설 내러티브, 그 밖의 내러티브, 윤리 의식]으로 구분되어 있는데요. 이것만 보면 마치 픽션 글쓰기에 관한 책 같은 느낌이 들지만 저자의 주장은 다릅니다. 논픽션의 글이라 할지라도 경직된 글을 쓰기보다 마치 소설처럼, 소설의 형식을 가미해서 글을 쓰면 독자들이 더욱 흥미를 느끼게 된다는 겁니다. 논픽션 글은 어떠해야 한다는 고정관념에서 탈피해야 한다는 의미 같아요.


 

저자가 가장 먼저 강조하는 것은 바로 스토리텔링입니다. 상대방에게 전하고 싶은 것을 이야기하듯 재미있고 생생한 이야기로 전달해야 설득력을 얻을 수 있다는 건데요. 첨단 기술로 인간의 뇌를 분석하니 스토리텔링을 담당하는 영역을 확인했다면서 인간이라면 누구나 태어날 때부터 스토리텔링 능력을 갖고 있다면서 문장력보다 더 중요한 것이 바로 스토리라고 힘주어 말합니다. 스토리의 흐름을 결정했다면 그다음 짚어야 할 것은 글의 구조를 시각화하는 작업인데요. 여기에 수학 교과서에서 자주 접하는 그래프가 동원됩니다. 글쓰기 책에서 난데없이 웬 그래프인가, 싶지만 스토리가 진행되는 과정을 포물선 그래프를 통해 설명하는데요. 소설이 발단-전개-위기-절정-결말의 단계로 진행되는 것처럼 논픽션 글도 마찬가지라는 거지요. 소설처럼 글을 세부적으로 나눈다음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캐릭터를 설정하고 그들에게 장면마다 어떤 액션과 대화를 할 것인지 꼼꼼하게 미리 설계를 해보라는 건데요. 본문에는 이런 그래프들이 곳곳이 수록되어 있고 저자의 설명대로 하면 어쩐지 글을 쓰기가 훨씬 수월할 것 같은 느낌이 듭니다. (아직 실습을 해보진 않았지만요)


 

지금까지 논픽션은 사실을 다루는 글이라는 것에 얽매어 사실 전달에만 골몰했던 것 같아요. 그러다보니 자연스레 글은 일어난 일을 순서대로 나열하는 것에 그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한마디로 재미나 흥미와는 거리가 멀고 그래서 사람들이 읽지 않는 글이 되고 마는 것이죠. 반대로 논픽션에 재미와 흥미가 도드라지는 것도 바람직한 현상은 아닙니다. 자칫 잘못하면 사실을 왜곡하고 그래서 글의 신뢰를 잃어버릴 수도 있으니까 말입니다. 책의 마지막에 글쓰는 이의 윤리 의식을 언급한 것도 그런 이유가 아닐까 싶습니다.


 

글쓰기를 다룬 책으로서는 분량이 400쪽 훌쩍 넘습니다. 다소 부담을 느낄 수 있지만 픽션이든 논픽션이든 자신의 글을 좀 더 풍성하고 알차게 업그레이드 하고자 한다면 읽어볼만한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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