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을 위한 고전 독서토론 수업
오성주 지음 / 이비락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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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책을 이야기하는 책을 즐겨 읽었다. 유명한 소설가이거나 학자이거나 혹은 서평가로 알려진 이들의 책을 보며 그들이 어떤 책을 읽는지 거기서 무엇을 느꼈는지 궁금했다. 그들이 본문에 언급한 책을 난 몇 권 읽었나 체크해보기도 했다. 그러다 언제부턴가 책을 다룬 책을 조금씩 멀리하고 있다는 걸 알게 됐다. 중년을 훌쩍 넘기면서 체력적으로 이전처럼 책을 읽을 수 없다는 걸 실감했을 때, 저자가 감명 깊게 읽었다고 얘기하는 책을 모두 읽을 순 없다는 걸 알게 되었을 때, 저자의 느낌이나 감상이 나와 다를 수밖에 없다는 걸 깨닫고 난 후부터였다. 그럼에도 간혹 호기심이 생기는 책이 있을 땐 목차를 꼼꼼하게 살펴보게 되었다. 저자가 자신만의 방식으로 요약정리하고 느낌을 털어놓은 책이 과연 내게 얼마나 도움이 될지 일단 따져보는 습관이 생겼다.


 

<청소년을 위한 고전 독서토론 수업>이 출간되었을 때 난 책을 다룬 책이 또 한 권 나왔다고 생각했다. 10년 넘게 독서 모임을 진행하면서 나름 깨달은 건 고전으로 독서 토론하는 것이 생각만큼 쉽지 않다는 거였다. 그런데 그걸 청소년을 대상으로? 무리한 시도일 거라 여겼다. 하지만 우연히 이 책의 도입부를 보고선 생각이 달라졌다. 꼭 챙겨봐야 할 것 같은 느낌적인 느낌이랄까?


 

교육이 무너졌다는 말이 공공연하게 나오는 요즘 공교육 안에서 토론 수업을 통한 교육혁신을 꿈꾸는 이가 있다. 이 책의 저자 오성주 교사이다. 그가 서울과 경기도에서 토론코치로 활동하면서 청소년들과 고전으로 나눴던 이야기와 토론을 이끌면서 느꼈던 경험들을 <청소년을 위한 고전 독서토론 수업>에 풀어놓았다.

 

 

책의 구성은 단순하다. 청소년이 토론하기에 적합한 책 16권을 선정한 다음 그 책에서 어떤 부분을 토론으로 이끌어내면 좋은지 독서 질문토론 쟁점을 정리해놓았다. 이 책이 돋보이는 것은 저자가 내용이나 분량을 고려해서 접근하기 쉬운 순서부터 어려운 순서로 배열해놓았다는 것이다. 가장 먼저 언급한 <어린왕자>에서는 어린왕자의 눈을 통해 우리가 잊고 살아가는 것이 없는지, 우리 삶에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인지 생각해보게 하고, 스탈린의 소련을 풍자한 <동물농장>에서는 혁명에 있어 핵심은 무엇이고 권력은 어떤 속성을 띄는지, 언론과 지식인의 의무와 역할에 대해 고민해보라며 조언하고 있다. 다만 각 작품마다 본문에 할애된 분량이 그리 많지 않은 점이 아쉽지만 청소년을 대상으로 고전 독서토론을 할 때 좋은 길잡이가 될 것 같다.


 

청소년 책읽기수업을 진행하면서 알게 된 건 아이들에겐 토론 이전에 자기의 생각이나 느낌을 이야기하는 것조차 힘들어한다는 거였다. 작품의 본문을 낭독하고 낯선 단어는 직접 찾아보면서 천천히 진행하는데도 작품 속 인물들의 관계나 사건들을 제대로 이해하지 경우도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자신의 주장을 논리적으로 주장하고 토론하려면 아마 그만큼 더 많은 노력과 시간이 필요하지 않을까.


 

좋은 문장이 어떤 사람의 가슴을 관통하게 되면 그 사람은 이전과는 다른 사람이 되기 마련이다그러므로 고전을 많이 읽는 사람은 필경 좋은 삶에 대해 사유할 것이고 더 나은 사람이 되려고 노력할 것이다. - 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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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믿으면 그게 사실이 되는 거야.팩트는 중요한 게 아니라고 - P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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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은 예술이 아니야. 현실 그 자체지. - P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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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택적 친화력 을유세계문학전집 127
요한 볼프강 폰 괴테 지음, 장희창 옮김 / 을유문화사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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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를 키우면서 느끼는 것 중 하나. 하지 말라는 행동을 아이는 꼭, 반드시, 기필코 하고 만다. 비단 아이뿐일까. 어른도 마찬가지다. 나이를 먹을 만큼 먹었음에도 자신에게 금지된 것을 서슴없이 행하고 만다. 무모함인지 어리석음인지 알 수 없는 이런 행동 패턴은 지금까지 무수히 많은 문학작품 속에서 갈등과 파멸을 일으키는 요소로 작용했다. 요즘 즐겨 보고 있는 TV 드라마에서도 그랬다. “문을 열어주지 마라.”는 신신당부에도 불구하고 주인공은 문을 열어주고 금지된 존재를 안으로 들이면서 다시 돌이킬 수 없는 사건에 휘말리고 만다. “문을, 열었네?”


 

서두가 길었지만 에두아르크, 한창 좋은 나이 때의 한 부유한 남작을 그렇게 부르기로 하자.(9)’로 시작하는 괴테의 <선택적 친화력>을 읽는 초반의 느낌이 딱 그랬다. 무슨 일이 있어도 절대 열지 말았어야 하는 문.


 

에두아르트와 샤를로테는 젊은 시절 뜨겁게 사랑했지만 여러 사정으로 헤어지고 각자 다른 상대와 결혼한다. 하지만 사랑보다 조건을 좇은 결혼에 두 사람은 모두 실패하고 중년이 되어서야 비로소 부부의 연을 맺는다. ‘드디어 두 사람은 결혼해서 행복하게 잘 살았습니다.’로 끝나면 좋겠지만 괴테가 어떤 작가인가.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파우스트> 같은 작품으로 독일 문학의 거장에 오른 그는 등장인물의 삶을, 인생 여정을 사정없이 비틀어버린다. 놀라운 건 그런 과정이 너무나 자연스럽게 흘러간다는 것.


 

시작은 에두아르트가 아내에게 친구 대위를 집으로 데려오고 싶다고 말하면서부터였다. 처음엔 극구반대하던 샤를로테도 어느날 에두아르트에게 양녀 오틸리에를 기숙학교에서 데려오고 싶다고 털어놓는다. 그러자 에두아르트, 너무나 흔쾌히 받아들인다. “당신은 오틸리에를 데려오시오. 난 대위를 데려오리다. 신의 이름을 걸고 한번 실험해 봅시다!(25)”


 

굴러온 돌이 박힌 돌을 뺀다는데 열두 살 먹은 애도 아닌 어른이 성인 남성과 젊은 처녀를 집으로 들이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정말 모르는걸까? 너무나 어처구니없지만 실험한다고 했으니 지켜보기로 했다. 그런데 아니나다를까. 불길한 예감은 틀리는 법이 없듯이 일은 결국 벌어지고 만다. 에두아르트는 오틸리에를 보자마자 단박에 빠져들고, 대위는 샤를로테에게 이끌리게 된다. 오틸리에는 샤를로테에게 감사한 마음을 느끼면서도 에두아르트를 거절하지 못하고 샤를로테 역시 대위를 가슴에 품게 된다.


 

불빛이 어두워지자마자 마음속의 애정과 상상력이 눈앞의 현실을 넘어 자신의 권리를 주장했다. - 134


 

소설에 어울리지 않다고 여겼던 제목에 대한 궁금증은 본문에 들어가서 풀렸다. 같이 모여 있으면 얼른 붙잡아 서로 영향을 주고 받는 자연 물질이 있다는 화학자의 이론을 바탕으로 한 거였다. 인간도 물질이니 서로 끌리고 밀어내는 건 당연한 일이겠다 싶지만 금기시된 남녀 간의 불륜, 그것도 이중 불륜을 다룬 소설은 출간 당시 크게 논란이 되었다고 한다. ‘가장 난해하고 다의적인 작품이라는 <선택적 친화력>에 대해 막상 괴테는 경험하지 않은 것은 단 한 줄도 들어 있지 않다고 말했다니 그의 삶과 작품이 얼마나 밀착되어 있는지 짐작케한다.



* 본 서평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 받아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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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배는 나를 보면서 결혼할 마음이 싹 사라진다고 말하곤 했다. 너무 잡혀 산다는 의미였고, 유흥 없는 단조로운 삶이 재미없어 보인다고 했다. 그런데 나는 자기 확신으로 가득 찼던, 자존감으로 가득했던 시절보다 지금이 훨씬 풍부한 맛이 있다고 느낀다. 지금껏 세상에서 못 느껴보았던 변수와 감각이 느껴진다고 해야 할까. 원하는 맛이 무엇인지 모르겠지만, 가족들과 함께 만들어낸 시간은 나를 놀라게 하고, 슬프게 하고, 기쁘게 한다. - P1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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