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워풀한 실전 과학 토론 - 39가지 논제로 ‘과학 토론, 수행 평가’ 완전 정복! 특서 청소년 인문교양 13
남숙경.이승경 지음 / 특별한서재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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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이 초등학생일 때 어린이날이 있는 5월 다음으로 4월을 좋아했다. 뭐든 조립하고 만들면서 놀기를 즐기던 녀석들은 학교에서 4월 과학의 달을 맞아 진행하는 행사를 손꼽아 기다렸다. 물대포 쏘기 대회, 글라이더 날리기 대회, 로봇경주대회, 로봇 배틀 같은 행사는 내겐 묻지도 않고 무조건 참가해야 한다던 아이. 현장에서 직접 조립하고 진행되는 행사의 특성상 그날의 컨디션이나 날씨에 따라 대회 성과가 좌우되니 부모는 애가 탈 수밖에 없는데 정작 아이들은 아예 신경도 쓰지 않았다. 중학생이 된 아이에게 친구들과 과학토론대회를 준비해보면 어떠냐고 했을 땐 아이는 단칼에 거절했다. 말을 잘 못 하는데 어떻게 토론대회에 나가냐는 거였다. 토론대회를 위해 미리 책을 읽고 준비해두면 어떠냐고 제안 했지만 결과는 똑같았다. “!” 한마디로 끝이었다.


 

토론은 찬성과 반대의 입장으로 나뉘는 주제에 대하여 각각 서로의 입장을 관철시키기 위하여 근거를 들어 자기의 주장을 논리적으로 펼치는 말하기이다. 아이는 토론의 특성 중 말하기에 초점을 맞추었지만 사실 토론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해줄 확실한 근거를 준비하는 게 아닐까. 일상에서 토론할 기회를 자주 접하지 못한 아이에게 토론은 무조건 어렵고 복잡한 것이겠지만 그래도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어떤 것이든 새롭게 도전할 수 있는 기회를 놓쳐버리는 건 아닌가 해서.

 


<파워풀한 실전 과학 토론>은 제목 그대로 토론, 그것도 주제가 과학인 토론에 대해 이야기한다. 책의 구성은 크게 과학 토론 개요서를 쓰는 방법을 알려주는 PART 1, 최근 4년 간 전국 학교에서 펼쳐진 토론 대회에서 출제된 논제를 묶어놓은 PART 2, 과학토론준비 과정을 점검해볼 수 있는수 있는 PART 3로 이루어져 있다. 그리고 PART 2에는 [생명공학, 인공지능, 온난화/에너지, 생태/환경, 지구 과학/과학 기술]처럼 영역을 나눈 다음 구체적인 논제를 소개해놓았는데 눈에 띄는 대목은 개요서 작성하는 과정을 자세하게 짚어놓은 거였다. ‘생각 열기 생각 확장하기 생각 채우기 생각 키우기 생각 정리하기 생각 적용하기 생각 구체화하기를 거친 다음 개요서 쓰기를 하라는 것이다.


 

사실 논리적인 언변을 겸비한 아주 일부의 사람을 제외한 대부분의 사람은 토론에 대해 높고 견고한 진입장벽을 느끼는데 그 이유가 어쩌면 자신의 생각을 논리적으로 풀어낼 자신이 없기 때문은 아닐까. 나 역시 마찬가지기에 충분히 이해가 되는 부분이지만 그럼에도 그것이 이유의 전부는 아니란 생각이 든다. 아마도 가장 큰 원인은 해당 주제에 대한 지식이나 정보가 부족하기 때문은 아닐까. 때문에 주제와 직간접적으로 관련있는 사항과 정보들을 꼼꼼하게 취합하다보면 자연스럽게 그에 대한 자신의 관점이 드러날 것이고. 자신의 생각을 다듬어가면서 개론서를 작성하다보면 토론에 대한 두려움을 조금이라도 털쳐낼 수 있지 않을까 한다.


 

저자는 본문에 최근 4년간 전국의 여러 학교와 제단에서 진행한 과학토론에서 제시된 논제를 수록해놓았다. 그중에서 온난화와 에너지에 대한 논제는 꼭 짚어봐야할 부분이다. 기억하고 있는 이들도 있을거라 짐작되는데, 얼마전 대선후보의 첫 TV토론에서 이와 관련한 질문이 나왔다. "RE 100을 어떻게 대응"하겠느냐는 질문에 상대후보는 '그것이 무엇이냐, 모르겠다. 가르쳐달라'고 도리어 질문자에게 되물어보는 촌극이 빚어졌다. RE 100, '리뉴어블에너지 100%'를 뜻한다. 석탄이나 천연가스 같은 화석연료 대신 태양광과 풍력 같은 재생에너지로 전기를 만들어서 이산화탄소 같은 온실가스 발생을 줄임으로써 기후위기에 대응하자는 것이다. 이에 세계적인 다국적기업은 참여를 선언했고 그 중엔 이미 RE 100을 달성한 나라도 나온 상황, 근데 우리나라는 어떤가. 재생에너지 발전 비중이 현저히 부족한 수준인데 거기에 탄소국경조정으로 인해 해외에 물건을 수출을 하려면 패널티 같은 관세를 내야 한단다. 그에 대한 준비는 어느 정도까지 진행되고 있는지 심히 우려가 되는 상황이다. 이에 저자도 태양광이나 풍력을 이용한 에너지와 신재생에너지의 필요성에 대해 언급하고 있지만 내용이 너무 부족하다는 느낌이 든다. 거기다 탈원전에 대해서 원전이 갖고 있는 위험성 보다 탈원전으로 인한 문제점을 더 비중있게 다루고 있는 점도 마음에 걸린다. 만에 하나 원전사고가 터졌을 때의 위험과 원자력업계 종사자의 실직을 동일선상에 두고 비교할 수 있는 것인지 강한 의문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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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은 미래로 흐른다 - 빅뱅부터 현재까지, 인류가 탐구한 지식의 모든 것
에른스트 페터 피셔 지음, 이승희 옮김 / 다산사이언스(다산북스)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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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과 출신에 자연과학을 전공했지만 졸업 후 과학책을 즐겨 읽지는 않았다. 사회현상과 과학이 교차하는 내용을 다룬 책이나 과학계에서 이슈가 된 몇 권의 책을 읽은 것이 고작이었다. 더 절망적인 건 그중에서도 완독한 책은 겨우 절반 정도에 그친다는 것. 호기심에 집어 들었던 많은 과학책이 읽다가 덮은 상태로 오래오래 이어졌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속에 숨겨진 과학, 물리학의 이야기를 담은 <보이는 세상은 실재가 아니다>는 조금씩 꾸준히 진도가 나가고 있지만 새해 들어 재도전한 <코스모스>는 초반에 또다시 멈춰버렸다. 아직은 포기한 게 아니니 좌절하기엔 이르지만 어느 정도는 의기소침해질 수 밖에 없다. 그런 가운데 한 권의 책을 집어들었다.


<과학은 미래로 흐른다>의 첫인상은 ‘작고 가볍다’. 한 손에 잡힐만큼 책 사이즈가 작고 본문 페이지가 260여쪽 정도로 분량면에선 부담이 적다. 하지만 [빅뱅에서 현재까지, 인류가 탐구한 지식의 모든 것]이란 부제만 보면 또 마냥 가벼운 책도 아니란 생각이 들었다. 빅뱅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인류의 문명과 과학 발달에 대해 자세히 알지는 못하지만 그럼에도 그 모든 것을 이 책에 다 담을 수 있을까? 의문이 들었다. 틀림없이 과학사의 중요한 핵심만을 추려서 담았을테고 그것은 곧 책의 모든 내용이 쉽지 않으리란 걸 간접적으로 드러내는 것일테니까 말이다.


책은 7개의 챕터로 구성되어 있는데 이는 ‘성서가 천지 창조를 7일에 걸쳐 설명’한 것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본문의 내용은 ‘빛과 에너지’ ‘우주 속의 지구’ ‘생명에 대한 시산’ ‘호모 사피엔스와 인간 게놈’ ‘역사의 변혁’ ‘인간과 기계’ ‘예술을 위한 시간, 혹은 과학에서 진리로’라는 소주제를 보면 각 챕터의 내용이 개별로 존재하면서도 서로 연관관계 속에 이어지고 있다.


부담없이 가볍게 다가선 책읽기는 몇 장 넘기지 않아서 분위기가 달라졌다. 과학상식이라고 하기엔 내용이 깊었다. 이를테면 가장 먼저 수록된 ‘빛과 에너지’에서 단순히 빅뱅을 넘어선다. 태양빛이 식물의 엽록소를 통해 흡수해서 양분과 에너지를 얻는 대목은 학창시절에 배웠지만 그냥 의심 없이 받아들였다. 가만 생각해보면 정말 이상하지 않은가. 빛이 에너지가 되고, 빛이 전기로 변하는데 단순하게 생각해봐도 신기한, 기적에 가까운 그 과정을 왜 한번도 의문을 품지 않았을까. 뿐만 아니라 물리학에 낭만주의가 등장할 줄이야!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코페르니쿠스적 전환, 혁명을 다룬 대목도 인상적이었다. 몇 년 전에 칸트의 <실천이성비판>을 읽을 때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이라는 표현을 접했는데 왜 그런지 단순히 사고의 혁신이 전부인가 했는데 본문에 그에 대한 언급이 있어서 반가웠다.


명절을 앞두고 본가로 향하면서 <과학은 미래로 흐른다>을 가방에 챙겨 넣었다. 명절음식 장만하는 과정은 분주함과 지루함 사이를 수차례 반복하는 것이기에 틈틈이 읽을 생각이었다. 또 명절 전날 불면의 시간에 읽으려고 간이 북스탠드도 챙겼는데 이번 명절에 가장 잘한 결정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책에 언급된 과학의 역사를 극히 일부밖에 이해하지 못했지만 이후 과학서적을 읽을 때 <과학은 미래로 흐른다>는 좋은 마중물 역할이 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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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염병 인류 - 균은 어떻게 인류를 변화시켜왔나
박한선.구형찬 지음 / 창비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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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이었다. 지구의 역사 중에서 감염병으로 인한 팬데믹을 다룬 기사를 읽었다. 지구의 나이를 45억년으로 봤을 때, 박테리아는 35억년, 바이러스는 45억년과 35억년 사이쯤 생긴 것으로 추정된다고 했다. 그런 다음 고대에서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어떤 감염병이 있었는지 짚었다. <펠로폰네소스 전쟁사>에 언급된 아테네 역병(장티푸스 추정), 로마제국의 안토니우스 역병(천연두, 홍역) 같은 감염병을 비롯해서 14세기 유럽을 강타한 페스트는 인구의 절반에 가까운 최대 사망자를 냈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15세기 신대륙 정복에 나선 유럽인들에게 묻어간 천연두로 인해 북아메리카 인디언의 95%가 사라졌으며 20세기 초 스페인 독감은 1년 조금 넘는 동안 세계인구의 5천만~1억명이 희생된 역사상 최단기간에 최대 사망자를 낸 팬데믹이었다.

 

 

그리고 2020, 세계를 강타한 코로나-19 팬데믹.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현대 의학과 과학은 과거에 비해 눈부시게 발달했는데도 감염병이 수그러들지 않는 이유는 도대체 무엇 때문일까.

 

 

<감염병 인류>는 검은 옷에 날카로운 부리 모양의 마스크를 뒤집어쓴 페스트 치료사가 그려진 표지에서 까뮈의 <페스트>를 연상시켰다. 무엇보다 눈길을 끌었던 것은 균은 어떻게 인류를 변화시켜왔나란 부제와 띠지에 적힌 코로나19 팬데믹의 이정표 같은 책이라는 이재갑 교수의 문장이었다. 코로나-19 장기화로 감염병에 대한 궁금증이 생겼는데 <감염병 인류>로 그것을 해소할 수 있지 않을까 기대했다.

 

 

책은 신경인류학자 박한선과 인지종교학자 구형찬의 공동저술로 이루어졌다. 코로나-19가 시작되었을 때의 혼란을 언급하는데 202012월 말 전세계 사망자가 170만 명이라는 대목에서 놀랐다. 2021424일 현재 전세계 확진자는 14천 명을 훌쩍 넘었고 사망자는 3백만 명이 넘었다. 불과 몇 달 사이에 코로나-19는 이전보다 더욱 활발하게 기세를 떨치고 있는 게 확실해 보였다.

 

 

인류를 괴롭히는 1400여종의 병원체 대부분은 인류 스스로 불러들인 녀석들입니다. 의도한 것은 아니지만, 인류의 진화사는 곧 감염병의 진화사입니다. - 8

 

 

책은 1장에서 인류의 진화와 감염병의 진화가 어떻게 이루어졌는지 언급하는데 두 저자의 전공과 관련있는 부분이어서 쉽고 재미있게 풀어놓았다. 특히 코로나-19에 대해 너의 이름은’ ‘너의 정체는’ ‘너의 치료는으로 나누어 차분하게 코로나-19에 접근하는 방식이 흥미로웠다. 사람들은 대부분 정체를 알 수 없는 것에 대해 막연한 두려움과 공포를 갖고 있는데 그것을 조금 누그러뜨리는 느낌이 들었다.

 

기술혁신은 늘 대재앙을 불러왔습니다. 인류가 자랑하는 신석기 농업혁명이나 산업혁명은 모두 인류를 큰 어려움에 빠뜨렸습니다. 감염균은 새롭게 변화한 환경에 재빨리 적응했고, 수많은 사람과 가족이 떼죽음을 당했습니다. 사실 기술혁신은 역설적으로 인류사적 퇴보에 가깝습니다. -37

 

 

코로나-19 상황에서 벌어지는 수많은 사회적 갈등과 심리적 고통을 보면서, 역설적으로 우리 조상의 삶, 우리 조상의 마음이 어땠을지 짐작할 수 있습니다. 원시의 인류가 역병을 접했을 때 보이던 행동입니다. 바로 지금 우리가 생생하게 목도하고 있는 우리 안의 원시인입니다. - 69

 

 

인류의 역사에는 주기적으로 바이러스 유행이 있었다고 하는데 인류가 수렵과 채집활동을 하면서 쥐와 파리 같은 불청객과 함께 박테리아나 바이러스와 함께 반갑지 않은 동거를 시작했다고 한다. 그리고 지금 우리를 괴롭히고 있는 코로나-19의 첫 단추로 짐작되는 인수공통감염병이 일어났는데 그것이 갈수록 점점 지독하고 심각해진다는 게 문제였다.

 

 

우리는 늘 팬데믹 지구에서 살아왔습니다. 코로나-19 유행으로 팬데믹이 시작된 것이 아닙니다. 수많은 팬데믹에 낯선 목록이 하나 더해진 것뿐이죠. - 91.

 

 

기생체와 숙주, 면역체계에 관해서는 미생물, 기생충, 박테리아, 바이러스를 공격하는 쪽으로, 외부의 공격으로부터 자신을 지키는 면역을 수비하는 쪽으로 설명해놓았다. 인류의 역사는 불의 발견으로 획기적으로 발전했다고 하는데, 따지고 보면 그게 아니었단다. 불과 옷의 발명으로 인해 인간은 결핵과 발진티푸스 같은 신종 감염병을 만나게 되었다는 것이다. 신종 감염균은 도표로 된 병원체 피라미드을 수록해 놓아서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었다. 하지만 이에 대응하는 수비팀인 면역이 고장나거나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경우도 많아서 알레르기의 역습이 벌어지기도 한다고 하니 놀라웠다.

 

 

기생충은 기생충대로, 인간은 인간대로 끝없는 군비경쟁을 벌이면서 애매한 친구 관계를 유지해온 것으로 보입니다. (……) 오랜 세월 동안 감염균과 면역계는 공진화했습니다. 너무 약한 면역도 좋지 않지만, 너무 면역도 좋지 않습니다. (……) 그런데 우리의 마음도 그렇습니다. 마음도 감염병과 공진화했습니다. - 174.

 

 

이후부터는 인간의 면역체계가 감염병의 위험을 줄이기 위해 어떻게 행동하게 되었는지 알려준다. 놀라울 정도로 정교하지만 단점도 많아서 혐오와 회피, 두려움이라는 반응을 보이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이를테면 한센병이 유전되지 않고 치료도 가능한데도 불구하고 혐오와 편견 때문에 그들에게 인간으로서는 해선 안 되는 짓을 서슴없이 저질렀다는 대목은 충격적이었다.

 

모두가 모두를 혐오합니다. ‘말고는 다 더럽답니다. 점점 심각해지는 감염병 상황에 부닥치면 모두 불안합니다. 누가 감염자인지 아닌지 모르는 상황입니다.(……) 악순환의 고리는 점점 가속화됩니다. 고리를 끊지 않으면 끔찍한 비극이 발생합니다. 과거의 역사 속에서 이미 무수하게 겪어온 일입니다. - 261

 

<감염병 인류> 전체를 꿰뚫는 단어를 뭘까. 이 책을 한 단어로 설명하자면 무엇이라 할 수 있을까 생각했다. 어렵지 않게 단어 하나를 선택했다. 본문에서 이미 여러 번 반복해서 언급되고 있는 단어. 바로 공진화이다. 공진화는 서로 밀접한 관계를 갖는 둘 이상 혹은 여러 개의 종()이 서로 영향을 주면서 진화하여 가는 것이다. 첨단정보가 돈이 되고 권력이 되면서부터 핵심 정보를 캐내려는 해커와 막고 보완하는 화이트 해커의 경쟁이 치열한 것처럼 인류의 역사는 발전과 퇴보를 거듭하면서 앞으로 나아가듯이 감염균과 인간의 면역체계 또한 비슷한 것 같다.

 

코로나-19 팬데믹이 이어지고 있는 상황이 언제 끝이 날지 결론이 내는 건 섣부르다. 하지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있다. 무조건적인 두려움과 공포, 타인을 혐오하는 것으로는 팬데믹 사태가 해결이 되지 않는다는 것. 이럴 때 가장 필요한 것은 냉철함이 아닐까. 어려움을 겪는 이들을 위한 시민사회의 노력은 물론이거니와 우리 각자가 자신의 도덕관, 윤리관을 돌아봐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절대 놓치지 말아야 할 과제가 있습니다. 우리 자신, 즉 인간에 대한 투명하고 정직한 이해를 공유하는 것입니다. 현재는 불확실하고, 미래는 아무도 모릅니다. 하지만 과거는 조금 알고 있습니다. 인간과 질병의 역사에 관한 인류학적 지혜라는 이름의 책입니다. 책의 앞부분은 대부분 떨어져 나갔고, 중간중간 비어 있으며, 찢어진 페이지도 많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의지할 수 있는 유일한 경전입니다. 그 책을 한 손에 쥐고, 우리는 이제 출발점에 섰습니다. - 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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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생존 - 세상에서 가장 오래 살아남은 나무 이야기
레이첼 서스만 지음, 김승진 옮김 / 윌북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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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 부산의 인문학 소모임에서 담양으로 워크숍을 다녀왔습니다. 남도문화의 이해를 돕는 일환으로 가사문학관을 시작으로 식영정, 소쇄원, 명옥헌 원림을 탐방했는데요. 제게 있어 이번 워크숍이 남도의 첫 방문이기 때문에 기대가 컸습니다. 여행서의 사진을 통해서만 보던 곳을 드디어 직접 눈으로 볼 수 있으니까요. 지금도 기억에 남는 건 담양의 한 초등학교 교정에 있는 느티나무였어요. 수령이 600년이나 된 이 나무는 태조 이성계가 심었다고 전하는데요. 저희 일행 9명이 두 손을 옆으로 벌려야할 만큼 크고 웅장했습니다. 자연의 위대함에 감탄한 일행들은 저마다 휴대폰과 카메라를 꺼내 추억을 남기고 있을 때 전 그저 나무기둥에 기대어 서서 머리 위로 드넓게 펼쳐진 나무를 바라보면서 영상으로 담았는데요. 바람소리인지, 빗소리인지 모를 소리와 바람에 일렁이는 푸른 나뭇잎 영상은 잠깐 보는 것만으로도 순식간에 그날의 그 곳, 느티나무가 빚어내는 웅대함 속으로 다시 돌아가게 합니다.

 

여기 한 권의 책이 있습니다. 묵직한 양장본에 가로 판형, 드넓은 평원에 우뚝 선 나무 한 그루에서 꼿꼿함과 고독함이 느껴지는 책 <위대한 생존>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오래 살아남은 나무 이야기’라는 부제에서 알 수 있듯이 이 책은 저자인 레이첼 서스만이 지구상에 존재하는 초고령 생명체들을 찾기 위해 십여 년에 걸쳐 아메리카와 유럽, 아시아, 아프리카, 호주, 남극에 이르기까지 종횡무진하며 나무를 비롯해 균류, 산호 등을 카메라에 담고 그 이야기를 전해주는데요. 기준이 최소 2,000살 이상입니다. 600년 느티나무보다 3배 이상의 수령이라, 엄청나지요?

 

세상에서 가장 오래 살아남은 생명체들은 과거의 기념이자 기록이고, 현재의 행동을 촉구하는 목소리이며, 미래를 가늠하게 해주는 지표다. - 13쪽.

 

가장 먼저 소개된 나무는 미국 켈리포니아주의 세쿼이아 국립공원의 2,150살 보초병 나무인데요. 흡사 코끼리의 발모양을 빼닮은 나무 밑둥치에서 초고령의 분위기가 물씬 배어나옵니다. 벼락을 정통으로 맞아 부서진 듯한 모습의 브리슬콘 파인은 생존을 위해 특별한 방법을 동원합니다. 극단적인 조건에서 생존하기 위해 영양분을 필수적인 것만 빼고 모두 닫아버린다고 하는데요. 마치 우리 인간이 고열에 시달릴 때 유독 손, 발이 차가운 이유가 혈액이 심장이나 뇌처럼 생존에 필수적인 곳으로 흐르는 것과 유사하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아열대 섬 야쿠시마에는 조몬 삼나무(2,180~7,000살)로 이뤄진 무성한 숲이 있는데요. 이 숲은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원령공주]에 영감을 주었다고 합니다. 표지에 소개된 나무는 큰 가문비 나무(9,550살)인데요. 이끼나 풀일거라 여겼던 것이 부분 사진으로 보니 생각보다 큰 관목이었는데요. 이것 역시 기후변화에서 살아남기 위한 생장 전략이라고 하는군요.

 

사막에도 초고령 생명체가 산다는 거 아세요? 모하비 사막의 모하비 유카는 수령이 자그마치 12,000살에 이르구요. 지구상에서 가장 건조한 장소로 꼽히는 칠레의 아타카마 사막에는 야레타라는 것이 있는데요. 바위에 초록의 이끼가 잔뜩 낀 것처럼 보이는데 실은 속이 단단한 나무로 이뤄진 관목이라고 합니다. 파슬리나 샐러리 같은 향긋한 향이 나는 식물과 친척 관계라는 야레타의 수령은 최대 3,000살이라고 하네요. 균류의 수명도 어마어마합니다. 미국 오리건 주 맬히어 국유림의 거대 버섯균, 꿀버섯은 2,400살, 시베리아의 방선균은 무려 40만~60만 설로 추정된다고 합니다.

 

굉장히 긴 수명을 가진 생물들은 우리가 영원이라는 거짓 감각을 믿게 만든다. 우리는 지금 여기에 있는 것이 변하지 않고 계속 그 자리에 있을 것이라고 믿으면서 장기적인 생각없이 현실의 일상에 쉽게 파묻혀버린다. 하지만 오래 살았다고 해서 불멸인 것은 아니다. 그리고 두 번째 기회가 있다 해도 그 기회가 마냥 기다려주는 것도 아니다. ㅡ 96쪽

 

담양에서 만난 수령 600년 느티나무의 까마득한 조상격인 나무들을 줄줄이 만나고 책장을 덮는데 유독 마음에 걸리는 게 있습니다. 건조하고 불이 잘 나는 곳의 나무들이 화재에 견딜 수 있도록 몸통을 땅 속으로 이동하는 지하 삼림으로 성장하는데 저자가 눈여겨 봐두었던 13,000년 된 지하삼림이 도로가 건설되는 과정에서 없어졌다고 하는데요. 다행인 것은 지하 삼림의 다른 개체는 살아있다고 하니 앞으로 연구할 가치가 높다는 생각이 듭니다. 가장 안타까웠던 것은 파머 참나무(13,000살)입니다. 저자는 본문에 파머 참나무가 있는 곳 주변이 사람들이 마구 버린 쓰레기로 어지러운 모습을 사진으로 담았는데요. 이제야 겨우 100세 시대를 맞은 인간이 인류 문명의 탄생과 역사를 지켜본 초고령 생명체 앞에서 너무 오만한 태도를 보이는 건 아닌가 싶습니다.

 

이 사진들은 현재를 살아가는 생명체가 담고 있는 과거의 이미지인 동시에 인간의 통상적인 시간 개념을 훨씬 넘어선 시간 영역으로 우리를 연결시켜주는 생물들의 초상화다. - 10쪽.

 

작년 이맘때인 것 같습니다. 일간지에서 어이없는 기사를 봤던 기억이 납니다. 한 사진작가가 산림보호구역에 무단으로 들어가 사진을 찍으면서 수령이 200년이 넘는 나무들을 잘라냈다고 하는데요. 도대체 무엇을 찍으려고 나무를 베어냈느냐? 바로 소나무 중에서도 금강석처럼 단단하다는 금강송입니다. 금강송 사진작가로 불리는 그는 대왕(금강)송을 찍기 위해 주변에 늘어선 신하송과 활엽수들을 베어내는 것도 모자라 자신이 찍는 피사체, 대왕송의 가지도 톱으로 잘라냈다고 하는군요. 더욱 어처구니없는 것은 이후에 벌어진 일입니다. 그가 무단으로 벌목하여 찍은 사진이 프랑스와 국내 여러 곳에 전시되어 고가에 거래되었을 뿐 아니라 그 사진들을 모아 사진집까지 펴냈다는 건데요. 나무를 찍으려고 나무를 찍어내다니...아마추어도 아니고 프로 예술가가 이래도 되는건지... 참, 기가 막힐 노릇입니다. <위대한 생존>의 저자 레이첼 서스만이 이 기사를 봤다면 어땠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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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7-28 07:3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07-28 07:50   URL
비밀 댓글입니다.

인디언밥 2015-07-28 10: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이건 봐야해..

몽당연필 2015-07-31 12:40   좋아요 0 | URL
네, 글보다 사진이 더 많은 책이지만 욕심내어 꼭 소장하면 좋을 책이랍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백미러 속의 우주 - 대칭으로 읽는 현대 물리학
데이브 골드버그 지음, 박병철 옮김 / 해나무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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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미러 속의 우주> 표지를 보는 순간 배시시 웃음이 났다. 하얀 표지를 가득 채운 검은선으로 이뤄진 삼각형들을 보니 문득 어린 시절의 놀이가 생각났다. 종이에 점을 아무렇게나 마구잡이로 가~득 찍은 다음 친구와 서로 번갈아가며 점과 점을 선으로 이어 삼각형을 만들었다. 하얀 종이에 삼각형이 하나씩 생기다가 한참 후엔 더 이상 연결할 수 없을 정도로 종이가 메워지면 삼각형을 누가 더 많이 만들었는지 개수를 새어보곤 했다. 단순한 게임이지만 이웃한 세 개의 선분으로 둘러싸인 도형이 삼각형이라는 개념을 가장 쉽고, 확실하게 각인하게 된 놀이가 아니었나 싶다. 그렇게 작은 삼각형들로 가득한 표지 한가운데에 떡하니 자리 잡은 백미러. 무의식중에 뒤를 흘깃 돌아보고선 내뱉은 한마디. “엇, 뭐야?”

 

 

책은 의문으로 시작된다. ‘우주는 왜 텅 비어 있지 않고 무언가가 존재하는가? 미래는 왜 과거와 다른가?’ 세상에 태어나 주변의 사물과 자연을 조금씩 인지하게 되면서 누구나 한 번은 바로 이런 의문을 품게 된다. 특히 우주는 무중력 상태인데, 어떻게 수많은 행성들이 서로 간격을 유지하고 움직이는지...는 아무리 생각해도 미스터리가 아닐 수 없다. 내가 물리학에 대한 관심을 갖고 재미를 느끼게 된 계기도 바로 이것이었다. 다만 하나 짚고 넘어가야할 게 ‘물리학의 관심과 재미의 정도’가 ‘물리학의 완전 이해’와 반드시 비례하는 것이 아니어서 내게 있어 물리학은 가까이 하고 싶으나 가까이 할 수 없는 그런 학문이다. 슬프지만 사실이다.

 

 

하지만, 드디어, 희미하나마 희망을 맞게 된 것 같은 기분이 든다. 그 전환점의 중심이자 계기가 된 것이 바로 <백미러 속의 우주>이다. ‘대칭으로 읽는 현대 물리학’이라는 부제에서 알 수 있듯이 책은 ‘대칭’에 대해 이야기한다. 대칭이 뭐 별건가? 뻔한 거 아냐? ‘점이나 직선 또는 평면의 양쪽에 있는 부분이 꼭 같은 형으로 배치’된 것이 대칭아냐? 특별한 것도 없는데 괜히 호들갑이네...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말은 절반만 맞고 볼 수 있다. 저자가 말하는 대칭은 좀 더 많은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수학이나 과학적 측면을 비롯해서 체스 게임의 규칙이나 상대성이론, DNA의 이중나선, 중력과 블랙홀의 원리 등 자연의 모든 것에서 대칭성을 가지고 있다고 말한다.

 

 

조금, 아주 조금 과장해서 말하자면 물리학은 대칭을 연구하는 학문이다. 더 이상의 잔소리는 필요 없다. - 17쪽. 머리말 중에서

 

 

댄 브라운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 [천사와 악마]에는 바티칸을 폭파하려는 무리들이 ‘반물질’을 이용하는 대목이 있다. 반물질 0.5그램을 훔쳐서 일종의 핵폭탄을 만드는데 이 영화로 인해 한동안 ‘반물질’에 대해 관심이 일었는데 저자는 ‘반물질’에 대해 오해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반’이라는 접두어가 붙어 있을 뿐 ‘반물질은 무해하다’면서 물질과 반물질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거울을 들여다보라고 권한다. 오른손잡이인 내가 거울 속에서는 왼손잡이로 보이지만 거울 속 세계는 단순히 ‘반전’되는 이상의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는 것이다.

 

 

물질과 반물질의 궁극적인 차이는 여전히 미지로 남는다.……우주의 탄생 초기에 정확하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 답을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우리가 아는 것이라곤 우주 탄생 직후에 모종의 대칭 붕괴가 일어나서 우리가 존재하게 되었다는 사실 뿐이다.- 75~76쪽.

 

 

우주는 물론 자연에서 일어나는 모든 현상을 설명하는 핵심인 ‘대칭’은 천재 수학자 에미 뇌터의 연구에 의해 가능했다. 에미 뇌터. 이 책을 통해 처음 알게 된 인물인데 저자는 ‘이 뇌터야말로 20세기 과학에 가장 큰 공헌을 한 사람’이라고 강조하면서 물리학자 에미 뇌터를 이야기한다. 어린 시절부터 수학자를 꿈꿨지만 당시의 학계가 뇌터를 여자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뇌터를 인정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녀는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파고들었고 그 결과 ‘모든 대칭에는 그에 대응되는 불변량이 존재한다.’는 ‘뇌터의 정리’를 발견하기에 이른다.

 

 

1915년에 아인슈타인이 발표한 일반상대성이론은 시간과 공간 그리고 중력에 관한 기존의 생각을 완전히 뒤엎은 혁명적인 이론이었다. 여기에는 대칭이 아름답고도 심오한 방식으로 깊이 개입되어 있는데, 당시에는 그 누구도 이 사실을 간파하지 못했다. - 188쪽.

 

 

반물질, 엔트로피, 상대성이론, 중력과 블랙홀, 힉스입자...단어만 봐도 왠지 숨이 턱하니 막히고 소화가 안되는 듯 갑갑해짐을 느낀다. 이렇게 어렵고 난해하기 짝이 없는 물리학적 법칙도 저자의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니 한결 쉽게 와닿는다. 우주의 미스터리함, 대칭과 비대칭, 자연의 크기 변화를 저자는 [맨 인 블랙],[스파이더맨],[스타트렉]과 같은 영화와 [걸리버 여행기],[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빌어 설명하고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어려운 대목은 있었는데 그럴 때마다 넉살 좋고 언제나 여유가 넘치는 저자는 아유, 그래도 되유. 괜찮어유. 이 정도로 끝! 해주니 무지한 나로선 얼마나 고마운지...이를테면 ‘물리학계의 슈가보이, 백주부, 백종원’이라고 할까? 그렇다고 이 책의 모든 내용을 완벽하게 이해한 것은 아니다. 이미 얘기했지 않은가. ‘물리학의 관심과 재미의 정도’가 ‘물리학의 완전 이해’와 반드시 비례하는 것이 아니라고. 얼마간의 시간이 지나서 다시 이 책을 들여다보면 틀림없이 많은 부분은 망각하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럼 뭐, 어떤가? 인간은 바닷가에 뒹구는 한 조각 모래알처럼 지극히 평범하고 하찮은 존재라지 않은가. 그러니 주눅 들 필요가 없다.

 

 

“지구가 있는 곳은 우주에서 전혀 특별한 장소가 아니다!” 코페르니쿠스는 이 엄청난 사실을 제일 먼저 간파한 사람이었다. 그 후로 천문학에서 새로운 사실이 발견될 때마다 인간은 점점 더 변방으로 밀려났다. 인간은 우주의 주인은커녕, 바닷가에 뒹구는 한 조각 모래알처럼 지극히 평범하고 하찮은 존재였던 것이다. -141쪽

 

 

우연인지 필연인지 모르겠지만 작은애가 조만간 학교에서 기말고사를 친다. 요며칠 과학공부를 하는데 시험범위에 ‘우리 생활과 물질/물체와 물질’이 있는 게 아닌가. 3학년이 되어 과학을 처음 배우는 아이에게 물체와 물질이 무엇인지, 물질의 성질과 상태의 차이는 어려운 개념일수도 있다. 다만 아이의 공부하는 모습을 보니 ‘엄마는 물질과 반물질, 대칭과 비대칭에서 헤매는데 아들은 물질과 물체 속에서 방황하는구나’ 싶어서 괜시리 웃음이 나왔다. 아들아. 까짓거, 쉽게 생각해. 우리는 우주를 개척하는 탐험대가 아니라 관광객이야. 재밌고 즐겨보자구.

 

 

백미러를 통해 보이는 우주는 실제보다 가까이 있으며, 그로부터 이 세계의 모든 차이점이 발생한다. 그러나 사실을 확인하기 위해 굳이 뒤를 돌아볼 필요는 없다. 지금 우리는 우주관광을 떠나기 위해 출발지에 모인 관광객들이다. - 23쪽. 머리말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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