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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꾸는 구둣방 - 소리 없이 세상을 바꾸는 구두 한 켤레의 기적
아지오 지음 / 다산북스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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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몇 년 전에 족저근막염 진단을 받았다. 평소에도 운동삼아 많이 

       걷기는 해도 통증은 없었다. 하지만 8년 전에 친정엄마가 병원                 에 입원하시면서 집과 병원을 매일 왕복했다. 제한된 시간 내에 

       볼일을 마치기 위해 발을 재빠르게 움직였다. 발에 무리가 간 상               태로 오래 지속된 탓이었을까. 걷지 않고 가만히 있어도 욱신거리

       는 통증에 밤잠을 설치는 지경이 되어서야 병원을 찾았다. X레이                를 찍니 발꿈치에 뿔 같은 게 삐죽 돋아난 게 보였다. 의사는 

       “너무 부지해서 생기는 병”이라며 치료와 더불어 두 가지를 당부                했다. 걷는 걸 줄이고 편한 신발을 신으라고.

가격과 착용감을 모두 만족시키는 운동화를 찾기란 어려웠다. 적당한 가격에 예쁘게 빠진 운동화는 대체로 발볼이 좁았다. 발볼에 맞추기 위해 치수를 크게 하면 오히려 발이 더 피곤하고 다리도 부었다. 엄청난 소음과 따끔따끔한 통증을 참고 체외충격파 치료를 받고 미친 듯이 가렵다는 봉침도 맞으면서 치료를 받았지만 증상은 나아지지 않았다. 지금은 거의 반포기 상태라고나 할까. 걸으면서 짬짬이 스트레칭 하고 저녁엔 아킬레스로 이어지는 종아리 근육을 풀어주면서 통증이 더 심해지지 않을 정도로만 유지하는 게 전부다.


‘아지오’를 알게 된 건 문재인 대통령의 신발을 통해서였다. 닳을대로 닳아버린 신발 밑창을 보고 저 신발은 도대체 얼마나 편하길래 저렇게 되도록 오래 신으셨나 궁금했다. 대통령의 신발은 순식간에 사람들의 주목을 끌었다. 당연히 신발을 제작한 업체 ‘아지오’에도 사람들의 이목이 쏠렸다. 시각장애인이 대표로 있는 업체에서 청각장애인들이 신발을 제작한다는 사실에 사람들은 놀라고 감탄했다. 하지만 그때 ‘아지오’는 이미, 폐업한 상태였다.

여기서 일하면 돈도 많이 벌 수 있고 사회에서 제 몫을 할 수 있을 거라고 직원들에게 호기롭게 말하지 않았던가. 결과적으로 그 약속은 희망고문이 되어버린 셈이었다. 멀쩡한 얼굴로 직원들을 볼 낯이 없었다. (……) 모든 게 자신의 탓이라는 생각에 유석영은 마음이 찢기는 고통을 느꼈다. -16쪽.

한 땀 한 땀 실과 바늘을 놀려 구두를 짓듯 제작된 책 <꿈꾸는 구둣방>. ‘아지오’가 궁금해서 선택한 책의 ‘첫인상’은 ‘정성’이었다. 아지오의 구두는 천연가죽으로 된 신발이라는 걸 드러내듯 가죽 질감의 표지에서, ‘당신이 편안했으면 좋겠습니다’ ‘열심히 산 사람 치고 발이 무사한 사람이 없다’는 속지의 문구까지. 미처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감동이란 것이 훅 치고 들어왔다. 난 정치인도 아니고 유명연예인도 아닌 평범한 50대의 전업주부일 뿐인데 이런 나에게 공감해주고 지금까지 고생 많았다며 위로해주는 느낌이 들었다.

아지오의 대표 유석영씨는 후천적 시각장애인이다. 앞을 볼 수 없다는 악조건에도 그는 굴복하지 않았다. 시각장애인에서 방송인으로, 장애인들에게 일자리를 주어 자립할 수 있는 길을 열겠다며 ‘신발만드는풍경’을 설립하기에 이른다. ‘빨리, 많이’가 아닌 ‘제대로 만든 수제 고급화’를 위해 갖은 노력을 기울인 이야기가 <꿈꾸는 구둣방>에 수록되어 있다. 첫주문으로 ‘수녀화 300켤레’를 받고 나는 듯 기뻤지만 제작과정은 험난했으며 아지오를 알리기 위해 동분서주했던 이야기, 대선후보였던 문재인과의 만남과 낙선 후 아지오가 문을 닫은 것까지.

그리고 바로 그 일이 있었던 것이다. 5.18 묘역에서 무릎 꿇고 참배하는 문재인 대통령의 낡은 구두 사진 한 장.

‘대통령의 구두’로 대박을 일으켜 승승장구하는 업체일거라 생각했던 아지오는 개업 3년 만에 폐업이라는 실패의 과거를 간직하고 있었다. ‘대통령의 구두’로 인해 경영에 대한 지식도 탄탄한 자본도 없이 출발한 아지오가 어떤 목적과 마음으로 신발을 만들었는지 사람들에게 알려지게 되었다. 이후 아지오는 기적적으로 다시 재기를 한다.

‘아지오’란 이름이 무슨 의미일까 궁금했다. 책을 읽기 전에 난 ‘아지오’가 ‘알지요’는 아닐까 생각했는데 본문에 이름에 대한 언급이 있었다. ‘아지오’란 이탈리아어로 ‘편안한’ ‘안락한’이란 뜻이라고. 아지오는 알지요. 어떤 구두가 진짜 편안한지 알지요.

      패자는 말이 없다지만 우리는 실패에 대해 이야기 하고 싶었다.                실패하고 나서야 깨닫는 것이 있다. 우리의 실패와 거기에서 얻은 

      깨달음을 나누면 누군가는 실패하지 않고도 실패의 원인을 알고 

      그것을 경계할 수 있지 않을까. 우리의 실패가 누군가에게는 교훈

      과 지혜가 될수 있지 않을까. - 22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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꼼짝도 하기 싫은 사람들을 위한 요가 - 폐허를 걸으며 위안을 얻다
제프 다이어 지음, 김현우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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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무슨, 남자가....?” “여기서 남자가 왜?”

다른 부모, 다른 환경에서 자란 두 성인이 결혼을 하고 한 가정을 이룬다는 건 지금 생각해도 예삿일이 아니다. 남편과 난 혈액형만 같을 뿐, 모든 점에서 반대였다. 야외촬영. 난 “생략하자”, 남편은 “하자!”고 했다. 신혼여행. 난 “어디든 푹 쉬다 오자”, 남편은 “해외로, 명소는 당연히 둘러보고”였다. 여느 커플과는 정반대의 반응에 난 툭하면 무슨 남자가 그래?를 연발했고 남편은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그래 내가 졌다졌어. 결국 우리는 야외촬영을 했고 해외로 신혼여행을 갔다. 하지만 야외촬영 내내 어색한 웃음을 연발하다 얼굴에 쥐가 날 정도였던 난 그 후로 카메라는 쳐다보기도 싫어졌고 우리와 다른 기후(툭하면 비가 오는), 먹거리의 나라로 떠난 신혼여행에선 가이드의 빡빡한 일정을 따라다니다가 심한 몸살감기에 걸려버렸다. 신혼여행이 끝나고 돌아오면서 난 불평을 늘어놨다. “여행가서 꼭 그렇게 바쁘게 다녀야 돼? 느긋하게 멍하니 있으면 안돼? 호텔 수영장에 수영은커녕 발 한 번 못 담그고 이게 뭐야?”

 

 

그린 올리브빛, 이불 밖으로 쑥 튀어나온 맨발. <꼼짝도 하기 싫은 사람들을 위한 요가>를 보면서 십수 년 전 티격태격 하면서 다녔던 신혼여행이 떠올랐다. 첨엔 이 책이 정말 ‘요가’책인 줄 알았다. 나처럼 게으르고 매사에 귀찮아하는 사람을 위한 요가책일 거라고 여겼다. 하지만 이 책이 나와 그냥 스쳐지나갈 인연이 아니었나보다. 우연히 표지에서 ‘여행 산문집’이란 문구를 보게 됐고 전혀 안 어울릴 것 같은 요소의 조합이 호기심을 유발했다.

 

 

모든 길이 통한다는 로마에서 저자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고 자랑스럽게(?) 털어놓는다. 그냥 공통점이 있고 통하는 어떤 여행객을 만나서 그와 이야기를 나누었다고 하는데 서술방식이 독특하다. 소설로 치면 1인칭도, 2인칭도 아닌 전지적 작가시점에 가까운 느낌? 분명 두 사람이 대화를 하고 있는데 대화 내용보다는 그 순간 자신이 어떤 생각을 갖고 있고 자주 방문한 술집이 어떤 곳이며 어떤 사람들이 찾는지 말한다. 마치 저자가 여행객이 아니라 그곳에 오랫동안 살고 있고 그 곳을 찾은 여행객들을 지켜보고 관찰하면서 떠오른 생각과 느낌을 글로 풀어내는 것 같다. 심지어 명소를 찾은 자신의 행동과 느낌마저 다른 이가 관찰하는 것처럼. 여행한 지역의 역사적, 고고학적 의미에 대해 알려고 애쓰지 않는 자신을 오히려 ‘무지의 고고학’이라며 퉁치듯 넘겨버린다.

 

 

작가는 무위도식하는 순간에도 작가. 도대체 하려는 말이 정확히 무언지 알 수 없는 글을 줄줄이 늘어놓기 일쑤였지만 일순 분위기를 바꿔버리는, 단박에 사람의 시선을 빼앗고 가슴에 묵직한 무언가를 떠안겼다. 우연히 보게 된 사진에서 랩티스 마그나, 고대 유물의 폐허를 마주한 그는 당시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는 리비아로의 여정에 나섰다. 도착하자마자 시종일관 투덜대던 저자는 폐허, ‘구역’ 안에 들어서자마자 그곳의 시간과 공간에 압도되고 암스테르담에서 바지를 뒤집어 입는 황당한 액션에 폭소를 터뜨리려는 찰라 또 한 방 날린다.

 

 

바닷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모든 것이 고요해졌다. 내가 원하던 상태였다. 역사를 지리처럼 경험하는 것, 시간적인 것을 공간적인 것으로 경험하는 것 말이다. 바람은 시간의 숨결이 되어 서둘러 지나간다. 반면 고요함은, 멈춰버린 시간의 황홀감이 된다. - 71쪽.

 

마흔이 지나면 온 세상이 오리가 지나간 자리의 물결처럼 되는거야. 마흔이 지나면 인생은 원래 낭비하기 위해 있는 거라는 사실을 알게 되지. - 149쪽.

 

 

로마에서 시작해서 리비아, 태국, 암스테르담, 캄보디아, 파리, 디트로이트.... 저자는 세계 여러 곳을 찾아 머물면서 겪은 일화들, 때론 웃음이 터지고 때론 섬뜩한 일이 벌어지기도 하지만 저자는 순간 떠오르는 상념, 생각들을 놓치지 않고 풀어내고 있다. 그런 글을, 여정을 때로 고개를 젓고 때로 공감하며 읽다보니 어느새 궁금해졌다. 내 안에도 ‘폐허’가 존재하겠지. 내게 있어 ‘구역’은 어떤 걸까. 내 안으로의 여행을 떠날 시점이 다가온 걸까.

 

 

‘오, 이건 뭐지?’하며 펼쳐든 책, 마지막 책장을 덮으면서 또 다시 내뱉었다. ‘이건 뭘까?’ 여행서? 아니다. 본문에서 사진(한 챕터당 작은 흑백사진 하나)을 구경할 수 없다니. 지금까지 어떤 여행서도 이렇지 않았다. 그래서 여행 산문집인가? 했지만 자유롭게 썼다고 모두 산문집이라고 할 수는 없는 거 아닌가? 그제야 저자가 서두에 털어놓은 말이 생각났다. ‘이 책에 적은 일들은 모두 실제로 있었던 일이지만, 그중 몇몇은 내 머릿속에서만 일어났다. 마찬가지로, 이 책에서 일어나지 않은 일들 역시 내 머릿속에서만 일어나지 않았을 뿐이다.’ 뭘까. 이 책은. 암튼 정체가 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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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가 아닌 시간, 홋카이도 In the Blue 17
문지혁 글.사진 / 쉼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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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태어난 곳은 눈이 많은 고장이라고 한다. 어떤 날은 눈이 너무 많이 와서 아침에 문을 열기가 힘들 정도였다고 하는데. 아주 어렸을 때, 최초의 기억 이전의 일을 가족에게서 들은 거라 솔직히 실감나지 않는다. 지금은 그저 올해는 눈을 볼 수 있으려나? 은근히 바랄 뿐이다.

 

눈이 내리고 있다. 길가에도 건물에도 하얗게 눈이 쌓여있고 그 사이로 강이 유유히 흐르고 있다. 어떤 책이든 표지에선 나지막한 소리나 음악이 들리는 것 같은 느낌을 받는데 <혼자가 아닌 시간, 홋카이도> 이 책에선 어떤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일상의 소리조차 고요한 적막 속에 잠겨버린 듯하다. ‘홋카이도’ 어떤 곳일까. 이곳은.

 

“아빠, 바다는 왜 파래?” “바다는 하늘의 거울이거든”

언뜻 이 광고가 떠올랐다. 홋카이도는 막연하게 일본에서도 북쪽, 눈이 많은 ‘설국’의 이미지가 강했는데 표지를 지나 책장을 몇 장 넘기자 전혀 의외의 모습이 드러났다. 푸른 바다와 무척이나 잘 어울리는 곳이구나 싶었다.

 

책에는 홋카이도의 세 도시가 소개되어 있다. 가장 먼저 오타루. 일본 원주민인 아이누족의 언어에서 유래되었다는 ‘오타루’는 운하의 도시로 불린다고 한다. 19세기 말부터 항만의 도시, 산업과 무역의 도시로 불리다가 21세기를 앞두고 관광 중심지로 오타루의 역할은 바뀌었다. 예전의 분주함은 덜하지만 오타루의 아름다움은 퇴색되지 않았다. 세계에서 가장 큰 증기시계는 도시 곳곳을 누비고 다니는 여행자들에게 시간을 알려주고 오르골당에서는 동화의 한 장면이 펼쳐지는 것 같았다. 그리고 영화 [러브레터]. “오겡키데스까~” “와타시와 겡기데쓰” 영화 속 여주인공이 설원에서 오열하듯 외치던 대사가 한때 유행어가 되다시피 했는데 그 영화의 배경도 이 곳, 오타루였다.

 

나이를 먹는다는 건 외국을 여행하는 것과 비슷하다. 한 해, 한 해 나이를 먹을 때마다, 우리는 새로운 나라에 도착한다. - 본문 중에서

 

오타루가 낭만과 추억이 가득한 도시라면 삿포로는 ‘바쁘고 분주하면서도 단정한 비지니스맨’ 같은 느낌을 준다. 철저한 계획하에 도시화가 진행되어 도로여건이 상당히 좋아서 그만큼 여행객들이 많이 찾는다고 한다. 삿포로의 미소라멘은 일본의 3대 라멘 중 하나로 손꼽히는데 돼지 뼈 육수와 미소된장으로 맛을 낸다고 하는데 내 취향은 아니다. 하지만 라면골목 ‘라멘요코초’에선 분명 내 입맛에 꼭 맞는 라면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마지막 하코다테는 ‘에키벤’으로 이야기가 시작된다. 철도역에서 파는 도시락은 그 지역의 특산물로 만드는 경우가 많아서 ‘에키벤’을 위해 여행하는 마니아가 있을 정도란다. 그러고보니 [에키벤]이란 만화가 있던데 기회가 되면 한 번 봐야겠다고 생각했다. 하코다테에서 인상적인 장면은 청명한 하늘이 단 15분 만에 회백색으로 변해버린 도시의 모습과 하코다테산 정상의 비석 옆에 있던 눈사람 모자의 모습이었다. 눈, 눈, 눈. 사진은 온통 눈투성이었지만 그 풍경이 결코 쓸쓸하다거나 외롭게 보이진 않았다. 오히려 그 공간 속에서는 어떤 이야기들이 오고 갈까 궁금해졌다.

 

저녁을 지나 밤이 되면 이 도시는 우리를 압도하지도 윽박지르지도 않은 채 그저 나지막이 속삭인다. 숨겨진 밤의 이야기들을 한 번 들어보지 않겠냐고. 우리는 너의 이야기를, 기다리고 있다고. - 269쪽.

 

번짐시리즈는 항상 출간하자마자 읽었다. 하지만 이번 <홋카이도>만은 책 읽는 시기를 한껏 늦추었다. 무르익은 가을보다 스산한 찬바람이 이는 초겨울에 홋카이도를 만나고 싶어서였다. 그러면 느낌이 배가되지 않을까 했는데 적중했다. 겨울의 홋카이도를 만나고 싶은 후유증이 생길 거라는 건 예상 밖이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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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우리는 행복하다 - 톤도, 가장 낮은 곳에서 발견한 가장 큰 행복
김종원 지음 / 넥서스BOOKS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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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인 것 같습니다. 내전이 끊이지 않는 아프리카 남수단의 톤즈에서 봉사활동을 펼치다 운명한 이태석 신부에 대해 알게 됐습니다. 촉망받는 의사로서의 명예와 부를 누릴 수 있었지만 그는 성직자의 신분으로 톤즈로 향했습니다. 어둡고 낮은 곳에서 가난하고 약한 사람들과 함께 하는 삶을 택한 그를 사람들은 '한국의 슈바이처'라고 불렀는데요. 우연히 알게 되었지만 무척 감동적이었습니다. 그리고 얼마 후 톤도를 알게 됐어요. 마을 이름이 톤즈와 비슷해서 눈길을 끌었습니다. 필리핀에서 봉사하고 있는 분에 관한 기사였는데요. 톤도라는 마을이 쓰레기 더미 위에 지어졌다는 것과 전기공급이 제대로 되지 않는 열악한 곳이라는 대목이 충격적이었구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의 행복보다는 남의 행복을 위한 삶을 살아가는 봉사자의 모습이 아름답게 느껴졌습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행복하다>의 첫 느낌은 솔직히 그닥 별로...였습니다. 아이들이 수줍게 미소 짓고 있는 표지사진을 보니 지구변방의 개발도상국 혹은 빈민국을 다녀온 이의 체험담을 사진과 함께 엮은 거라고 생각했어요. 비슷한 유형의 책은 이미 여러 차례 만난 터라 굳이 읽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습니다. 읽어야 할 책, 읽고 싶은 책이 얼마나 많은데요. ‘이어령...추천도서’라는 문구도 눈길을 끌지 못했구요. 하지만 어쩌다, 정말 우연히 표지 귀퉁이에 적힌 글을 보게 됐습니다. ‘톤도, 가장 늦은 곳에서 발견한 가장 큰 행복’. 그렇습니다. ‘톤도’. 두 글자로 된 이 마을의 이야기가 갑자기 궁금해졌습니다.

 

 

쓰레기 더미 위에 지어졌다지만 설마 그럴까! 서울의 난지도처럼 쓰레기를 매립한 곳 위에 마을이 형성되었겠지. 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아뿔싸! 표지를 넘기고 처음 맞닥뜨린 사진은 정말 쓰레기 천지였습니다. 무언지 형체조차 알 수 없는 쓰레기가 바닥에 넓게 평평하게 깔려있는 그 위에 아이들이 있었습니다. 어딘가를 향해 분주히 움직이는 듯한 아이들의 모습. 뒤를 이어 성인 두 명이 어깨를 나란히 하고 걸어갈 수 없을 정도로 좁은 골목길에서 활짝 웃고 있는 아이들. 충격이었습니다. 두 장의 사진에서 드러난 마을의 열악하고 처참함과 그 속에서 살아가는 아이들의 밝은 모습. 이 두 가지가 매치가 되지 않더군요. 전혀 다른 곳의 모습을 담았다고 할만큼...

 

 

예뻐서, 황홀할 정도로 예뻐서, 너의 모습이 가슴 아프구나.

가난은 그저 그들의 풍경일 뿐이다. 중요한 것은 삶이다.

아이들의 행복은 결코 풍경에 영향을 받지 않았다.

가난과 행복은 전혀 상관이 없다.

풍경은 행복의 조건이나 불행의 조건이 아니다. - 50쪽.

 

 

세계 3대 빈민 도시 톤도. 시선을 어디로 향하더라도 쓰레기 무더기가 보이고 금방이라도 무너질 것처럼 낡은 넝마로 가득한 곳이지만, 갓 버려진 쓰레기 더미에서 먹을 것을 찾아서 주린 배를 채우기 일쑤지만 아이들은 자신들이 불행하다고 여기지 않았습니다. 찌들린 가난 속에 꿈이나 희망, 동심이 자랄 수 있을까 싶지만 아이들은 카메라를 향해 너무나 밝게 웃었고 락커의 심볼을 손으로 만들어 보이면서 의기양양한 표정을 짓기도 했습니다. 자신에게 주어진 빵을 가족에게 내밀었고 친구들과 나눠먹을 줄 알았으며 거리에 돈과 쓰레기가 떨어져 있을 때 모두의 행복을 위해 쓰레기를 주워야한다고 말했습니다. 아이들의 천진난만하고 밝은 표정을 보면 순간순간 잊게 됩니다. 톤도, 그곳이 필리핀의 최빈곤층이 사는 마을이라는 것도 온갖 벌레와 거대한 쥐가 들끓고 흉악범들이 넘쳐나서 총을 휴대하지 않으면 생명의 위협을 받을 정도로 위험한 곳이라는 것을요. 하지만 이내 알게 되죠. 일상의 모든 것이 위태로운 처참한 곳에서 태어나서 줄곧, 지금 이 순간에도 살아가고 있는 아이들의 삶을 떠올리면 수시로 코끝이 시큰해지곤 했답니다.

 

 

가난하지만 진짜 행복이 무엇인지 삶을 통해 체득한 아이들을 만나고 있을 무렵 이런 기사를 봤어요. 우리나라 아이들의 삶의 만족도가 OECD 국가들 중에서 최하위를 차지했다는 기사인데요. 문제는 이런 결과가 나온 게 처음이 아니라는 거지요. 수년째 최하위를 기록하고 있는데다 점수가 점점 더 떨어지고 있다는 겁니다. 매일같이 쏟아지는 숙제와 각종 시험, 성적 스트레스가 아이들의 삶을 점점 우울하게 만들고 있었는데요. 아이들에게 행복을 느끼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아이들을 괴롭히는 요인들을 줄이거나 없애면 될까요? 그것으로 행복해질까요? 전 아닌 거 같아요. 다른 사람에게 아이들에게 행복을 느끼게 하려면 가장 먼저 자신이 행복을 느낄 줄 알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난 지금 행복한가? 여러분은요? 행복하십니까?

 

 

톤도에서 지내면서 많은 아이와 친구가 되었다.

그러다 문득, 행복에도 특유의 향기가 있는 것을 알게 되었다.

톤도의 아이들에게 가까이 다가서면 행복 냄새가 물씬 풍겼다.

동남아 특유의 뜨거운 햇살이 나를 힘들게 했지만,

아이들 덕분에 내 가슴은 봄날처럼 향기로웠다. - 2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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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가가 사는 집
나카무라 요시후미 지음, 정영희 옮김 / 디자인하우스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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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 언니에게서 몇 장의 사진이 톡으로 날아왔습니다. 중장비를 동원해서 땅을 파고 수도관을 묻는 사진에 ‘웬 공사장?’하고 의아했는데 언니 가족이 살 집을 짓기 시작한 거였습니다. 십여 년이 넘게 인도에서 생활한 언니 가족은 귀국하자마자 거창에 자리를 잡더군요.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라 처음엔 조금 걱정이 됐습니다. 일 년에 몇 번 한국을 드나들긴 했지만 최근 국내의 상황에 대해서는 잘 모를텐데 아무 연고도 없는 곳에 새로이 뿌리를 내리겠노라고, 귀농을 하겠다고 했으니까 말입니다. 하지만 형부의 소원은 농부가 되는 것이었고 언니는 그 뜻을 따라 농부의 아내가 되어 인생이모작을 시작했는데요. 그런 언니 가족에게 집을 짓는다는 것이 어떤 의미일지 충분히 알 것 같았구요. 나도 언젠가는 우리 가족을 위한 집을 짓고 싶다는 생각이 더 간절해졌습니다.

 

<건축가가 사는 집>은 제목에서 끌린 책입니다. 다른 이를 위해 집과 건물을 설계하고 짓는 건축가가 자신이 살 집은 짓는다면 어떻게 할까 궁금했거든요. 거기다 저자가 주택전문 건축가로 알려진 나카무리 요시후미. 집을 순례하고 집을 짓는 것에 대해 그가 쓴 몇 권의 책이 예전에 국내에서도 출간됐고 눈도장도 찍어둔 책이었기에 망설일 이유가 없었습니다. 건축가가 집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지 절호의 기회가 왔구나 싶었습니다.

 

한창 젊은 무렵부터 주택 건축에 빠져서 살았던 저자가 쉰을 앞둔 나이에 문득 뒤를 돌아보게 됩니다. 자신이 진정 원했던 것이 무엇인지, 자신의 심장을 두근대게 했고 가슴이 벅차오를 정도로 동경했던 것이 어떤 것이었는지. 그것을 찾아내기 위해 저자는 여행을 떠납니다. 20세기 주택의 역사에 오래도록 남을 기념비적인 주택을 찾아 일본은 물론 미국과 대만, 네덜란드 등을 하나하나 순례해 나갑니다.

 

그래서 책의 구성도 정말 단순합니다. 모두 스물네 채의 집이 소개되어 있는데요. 저자는 그 곳의 거주자이자 설계를 했던 건축가를 만나 이야기를 나눕니다. 건축가가 갖고 있는 집에 대한 생각, 신념은 무엇인지 자신이 살 집을 지을 때 어떤 것에 가장 중점을 두었는지를 풀어내는데요. 집의 설계도면과 내부 모습을 알 수 있는 사진과 함께 수록되어 있어서 건축가의 생각이나 인생관을 더욱 잘 느끼게 해줍니다.

 

스물네 채의 집을 둘러보는 것은 실로 순식간이었습니다. 건축가의 개성을 그대로 빼닮은 듯 스물네 채의 집은 모두 하나같이 독특했고 아름다웠습니다. 그 중에서도 벽면과 더블 엑스 형태의 계단이 인상적이었던 ‘적층의 집’, 폐선 직전의 낡은 페리가 주택과 스튜디오로 탈바꿈한 ‘닐스의 페리보트 하우스’, 울창한 숲으로 전면 창을 내고 지그재그로 집을 펼쳐놓은 듯한 ‘지그하우스/재그하우스’, 둥근 지붕을 얹어 아늑한 분위기를 자아냈던 ‘카사ㅡK’, 외관이 독특한 ‘도그하우스’. 급경사인 대지의 특징을 살려서 폭이 좁고 아래로 내려가는 계단을 놓고 그 끝에 한순간에 열리는 공간과 아름다운 정경을 배치한 ‘보통의 집’이 인상에 남았습니다.

 

하야시 선생은 자신의 책을 통해 “설계는 내가 앉을 곳을 결정하는 것부터 시작한다”라고 했지요. 그리고 그 코너를 ‘주방 겸 식당 겸 서재 겸 난로가 있는 라운지’라 칭하며 ‘옛 농가의 주인장이 머무는 화롯가 자리를 연상하면 딱 맞을 장소’라고 했지요. 그러니 이 집의 거주자가 될 하야시 쇼지 씨가 이 집의 설계자인 본인 스스로에게 ‘긴장을 풀고 릴렉스 할 수 있는 내가 좋아하는 장소’를 의뢰해 탄생한 공간이라 말해도 좋을 겁니다. -243쪽.

 

도심의 아파트가 아닌 나의 집을 갖고 싶다고 생각은 했지만 생각에서 머물 뿐 더 이상 발전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책을 읽으면서 무언가 조금씩 변한다는 걸 느낄 수 있었어요. ‘어떤 집을 지을까’ 보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장소는 어딜까’를 찾는 것부터 해야된다면....전 아마 답을 알고 있는 게 아닐까 싶네요. 갑자기 가슴이 설레기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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