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살아야 하는가 - 삶과 죽음이라는 문제 앞에 선 사상가 10인의 대답
미하엘 하우스켈러 지음, 김재경 옮김 / 추수밭(청림출판)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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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사는가란 질문에 단박에 대답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농담인지 진담인지 태어난 김에 그냥 산다” “죽지 못해 산다고 답하는 사람이 있긴 하지만 대부분 쉽게 말을 이어가지 못했다. 이에 비해 어떻게 살고 싶은가란 질문엔 저마다의 생각과 바램을 꺼내놓는다. 남한테 피해 주거나, 욕먹지 않고, 가족들 모두 건강하고 행복하게 살고 싶다,는 공통적인 답변에 추가로 후회하지 않고, 미리 걱정하지 않는 삶을 살고 싶다고 털어놓는다. 비슷한 듯 맥이 닿아있는 두 질문에 대한 상반된 반응을 보면서 생각해보게 된다. 삶의 철학, 삶에 대한 근원적인 질문에 대한 해답은 어디서 찾을 수 있을까.


 

<왜 살아야 하는가>삶과 죽음의 의미(The meaning of life and death)’라는 원제목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독일 철학자 미하엘 하우스켈러가 사상가와 작가 10명의 작품을 통해 삶과 죽음에 대한 의미를 풀어보는 책이다.


 

삶과 죽음의 의미를 모색하기 위해 저자는 쇼펜하우어, 키르케고르, 허먼 멜빌, 도스토옙스키, 톨스토이, 니체, 윌리엄 제임스, 프루스트, 비트겐슈타인을 불러내었다. 이름만으로도 너무나 유명한 철학자와 작가들. 그들의 저작을 모두 읽지는 않았지만 사상에 대해서는 학창시절 배웠던 것이 어렴풋이 떠올랐다. 물론 그들의 철학이나 사상의 이해 정도와는 전혀 상관이 없지만. 세부적인 내용은 조금씩 다르지만 기본 구성은 흡사하다. 철학자와 작가의 주된 주장과 사상을 소개한 다음 그의 생애를 통해 삶과 죽음에 대한 철학과 사상이 어떤 배경과 흐름을 갖게 되었는지 작품을 바탕으로 풀어내고 있다.


 

이 세계의 근본을 이루는 것은 부조리하고 맹목적인 의지라고 주장했던 쇼펜하우어는 삶을 고통과 고난 그 자체로 여겼다. 인간은 살면서 끊임없이 욕망하는 존재이기 때문에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하는 것으로도 고통을 겪는다고 주장했다. 이런 내용을 칸트, 라이프니츠의 사상과 더불어 설명하고 있는데 쇼펜하우어의 저작을 읽지 않았기에 어려웠다. 그저 인간이 죽음을 두려워하는 것은 본성에 기인한다는 걸 기억하는 정도에 그쳤다.


 

도스토옙스키의 작품에는 자살과 죽음이 주된 소재로 등장ㅡ도스토옙스키의 걸작들에는 최소한 한 번 이상의 자살 혹은 자살 시도와 한 번 이상의 살인사건이 등장한다(143)ㅡ하는데 어떤 이유에서인지 의미를 찾아본다. 허무주의에 반박하기 위해 대안으로 작품 속에 불멸인 신의 존재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는 것이다. 도스토옙스키의 작품을 일부만 읽어서 내용 모두를 이해할 순 없었으나 일부 잘못된 부분이 눈에 띄었다. 158쪽 둘째 줄,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중 셋째인 이반은이라고 되어 있으나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에서 셋째는 알로샤이고 이반은 둘째이다. 저자가 잘못 알고 있는 건 아닌가 싶다.

 

필사와 독서모임을 통해 <인생독본> <이반 일리치의 죽음> <전쟁과 평화>을 읽고 있어서 톨스토이의 부분이 기대가 됐다. 귀족 집안에서 태어나 풍족한 삶을 살았던 톨스토이가 개혁자로서의 삶을 걸었던 게 인상적이었는데 저자는 톨스토이의 <전쟁과 평화>에 죽음이라는 소재가 잘 드러나 있으며 그 작품을 통해 죽음에 대한 생각으로 절망하고 우울증에 빠지기도 했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전쟁과 평화>의 베주호프(피예르)란 인물을 통해 삶의 의미와 목적을 찾으려고 몰두했다고 짚어주었다. 어쩐지 <전쟁과 평화>를 읽으면서 피예르가 톨스토이의 내면을 투영한 인물은 아닐까 생각했는데 역시! <이반 일리치의 죽음>을 읽고 나서 죽음을 앞둔 사람의 심리, 공포가 어떠할지 짐작해보곤 했는데 여기에 톨스토이의 죽음에 대한 공포, 두려움이 녹아들어 있었던 건 아니었을까.


 

책은 삶의 목적은 무엇일까?’란 질문으로 시작한다. 인간이라면 모두 죽을 수밖에 없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무언가를 이루려 하고 의미 있는 삶을 사는 것이 가능한지 의문을 갖는다. 삶과 죽음에 의미를 다루는 의문을 저자는 가장 답하기 어려운 궁극의 의문이라고. 그러면서 아들이 자신에게 건넸던 말을 전한다. [무엇이든 결국엔 죽으니까 삶의 목적은 죽음이라고. 하지만 죽음의 의미는 삶이라고. 죽음 없이는 삶도 있을 수 없기 때문에]. 이 말에 깜짝 놀랐다. 어린 아이에게서 이런 말이 나올 수 있다는 사실에. 철학자의 자식이어서 그 영향을 받은 것일까 생각했다. 하지만 이게 해답일까? 저자는 말한다. 이 책에서 궁극의 의문에 대한 해답을 찾을 거라 기대하지 말라고. 그렇다면 어떻게 하란 말인가. 어쩌면 이 책은 저자가 깔아둔 ''일지도 모르겠다. 삶과 죽음의 의미, 삶과 죽음에 대한 해답의 언저리로 향하는 길을 저자가 안내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제 남겨진 것은 분명하다. 저자가 깔아둔 길을 걸으면서 보물찾기를 하듯 '왜 살아야 하는지' '삶의 의미와 목적은 무엇인지'에 대한 나만의 해답을 찾아야 하는 것. 쉽지 않겠지만 그래서 더 고심해볼 만한 가치가 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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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의 부 - 인공지능 시대, 돈은 어떤 모습으로 다가오는가
이지성 지음 / 차이정원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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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이 그다지 흥미롭지 않다.
어느 책을 봐도 비슷한 얘기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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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 모두의 적 - 해적 한 명이 바꿔놓은 세계사의 결정적 장면
스티븐 존슨 지음, 강주헌 옮김 / 한국경제신문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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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적이라고 했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만화 <아스테릭스>. 우락부락한 몸집의 독특한 개성의 해적들이 바다를 누비며 벌이는 이야기를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봤던 기억이 난다. 어른이 되어서 그 만화의 역사 왜곡에 대해 알게 됐다. 그리고 그 책이 다시 출간되었다고 해서 궁금해졌다. 도대체 어떤 부분에서 왜곡이 있었는지... 그리고 해적하면 빼놓을 수 없는 것, 만화 <원피스>. 주인공 루피는 고무고무 열매를 먹고 온몸이 고무처럼 늘어나는데 초파, 상디 같은 개성있는 동료들과 전세계를 누비면서 벌어지는 이야기가 흥미로웠다. 하지만 이야기가 너무 길게 늘어져서 보다가 이제 그만! 외쳐버렸다. 지금쯤이면 100권이 출간되지 않았을까 싶다.

 

처음 <인류 모두의 적>을 봤을 때는 무심히 넘겼다. 그러다 며칠 후 다시 보았을 때 내 시선을 사로잡은 건 [해적 한 명이 바꿔놓은 세계사의 결정적 장면]이라는 부제였다. 내가 아무리 세계사에 무지하다고 해도 저런, 특별한 해적이 있었다면 모를 수가 있나? 학창시절 수업 시간에라도 배우지 않았을까? 그런데 왜, 지금까지, 아무도, 이런 얘길 하지 않았을까? 곰곰이 생각해보니 짐작가는 게 있었다. 당시 권력을 쥐고 있던 이, 나라에겐 틀림없이 이 해적의 존재가 반갑지 않을 터. 되도록 아무도 모르게 숨기고 싶지 않을까? 가까운 중국이나 일본만 봐도 자국의 이익을 위해 역사를 교묘하게 왜곡하는 일이 비일비재하지 않은가. 생각의 고리가 여기에 이르자 관심이 생겼다. 알고 싶어졌다. 세계사를 바꿔놓았다는 이 정체불명의 해적이.

 

이 두 배가 인도양에서 맞닥뜨린 사건은 그런 미세한 원인들이 세계사에 큰 파급 효과를 낳은 경우였다. 역사의 넓은 관점에서 볼 때 그런 대치는 대체로 사소한 풍돌, 즉 금세 꺼져버리는 불꽃에 불과하다. 그러나 간혹 누군가가 그은 성냥불이 온 세상을 밝히기도 한다. 이 책은 그런 성냥불 중 하나에 대한 이야기다. - 20.

 

날씨는 화창했다로 시작한 책은 16959, 수라트 서쪽 인도양에서 해적선이 무굴제국의 보물선(건스웨이호)을 습격하던 날을 전한다. ‘파국적 결과는 지극히 사소한 실수로부터 시작되는 법이라며 우연의 연속인지, 운명인지 알 수 없는 일이 일어난다. 건스웨이호의 망꾼이 경종을 몇 초 늦게 울린 것을 시작으로 대포의 미세한 결함으로 대포가 폭발하면서 포수가 즉사해버리고 상대편 영국배(펜시호)에서 쏜 포탄 중 하나는 아주 정확하게 날아와 주 돛대 아래쪽을 맞춰 가장 파괴적인 타격을 입히고 만 것이다.

 

세상을 경악에 빠뜨린 악명 높은 해적에 대해, 그의 범죄에 대한 이야기를 다룬 <인류 모두의 적>5(1[원정], 2[선상반란], 3[약탈] , 4[추적], 5[재판])로 구성되어 있다. 책은 주인공, 잉글랜드 데번셔 출신의 청년이 영국 왕립 해군에 입대와 당시 해군 입대와 관련한 배경(‘부랑자 단속법에 의해 부랑자나 난민들은 채찍질이나 해군 입대 중에서 하나를 선택해야 했다), ‘헨리 에브리라는 미스터리에 싸인 그의 이름에 관해 이야기한다. 그리고 어이없이 보물선을 약탈당한 무굴제국이 오래전 어떻게 탄생하게 되었으며 조화롭게 공존하던 힌두 문화와 무슬림 문화가 어떻게 깨어졌는지 풀어낸다.

 

모든 위대한 전설적인 인물의 출생에 대해서는 몇 번이고 고쳐 써지게 마련이다. 세대를 거듭하며 전해진 이야기에 이런저런 소문과 풍문이 더해지고, 교묘하게 수정되며 다층적으로 짜인다. 한동안 헨리 에브리는 만신전에 묻힌 여느 인물만큼이나 널리 알려진 전설적인 인물이었고, 어떤 사람들에게는 영감을 주는 영웅이었고, 어떤 사람들에게는 무자비한 살인자였다. 또 폭도였고, 노동자 계급의 영웅이었으며, 국가의 적이었고, 해적왕이었다. 그러고는 유령이 되었다. - 33~34

 

1650년대 말에 두 화면으로 에브리의 탄생과 아우랑제브의 즉위를 모두 지켜본 사람이 있었더라도, 둘의 충돌 이후로 인도에서 이슬람 시대가 붕괴하고, 대영제국군이 들어서서 두 세기 이상 인도 아대륙을 지배하게 될 것이라고는 전혀 상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 61.

 

15세기부터 세계는 바야흐로 대항해시대. 바다를 주름잡던 영국은 공공연히 해적질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17세기, 엘리자베스 1세는 동인도회사의 법인설립을 인가하고 무굴제국과 손을 잡고 동인도회사를 통해 막대한 자금을 손에 넣게 된다. 하지만 그 무굴제국의 보물선을 에브리에 의해 습격을 당하고 성지 순례를 다녀오던 황제의 직계 가족이 모욕적인 일을 겪자 무굴제국의 황제는 동인도회사와의 무역을 끊어버린다. 해적들의 우두머리, 에브리가 영국인이었기 때문이다.

 

그러자 도리어 다급해진 건 영국이었다. 에브리와 그의 일당을 인류 모두의 적이라 하여 현상금을 내걸고 공개수배령을 내리기에 이른다. 그런 다음 모굴 제국 황제의 권력을 등에 업고 인도 지역에서 대대적인 권력을 행사하기에 이르는데 이것이 훗날 인도가 대영제국과 동인도회사에 의해 지배를 받게 되는 결정적인 시초가 된 셈이니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해적선의 우두머리에 불과한 에브리로부터 대영제국이 탄생하는 과정을 보면서 궁금했다. 에브리가 해적이 되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우연한 일이 연이어 일어나고 그것이 운명이 되었다고 하기엔 세계사적으로 미친 영향이 너무나 크다. 에브리의 기록은 생각만큼 많이 남겨져 있지 않다고 한다. 하지만 언젠가 또다른 기록을 통해 그의 숨겨진 이면이 세상에 드러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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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1장 365일 붓다와 마음공부 - 더럽혀지지 않는 연꽃처럼 사는 지혜
이동연 지음 / 평단(평단문화사)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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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종교가 불교라고 해도 되나? 내가 불교를 믿는 게 맞나? 불교신자 시늉만 내고 있었던 건 아닌가?


 

2021년 새해 첫날부터 매일 조금씩 필사를 하고 있다. 톨스토이가 동서양을 막론하고 세계의 지성이라 불렸던 이들의 사상과 저작에서 수집한 글을 1년의 일기형식으로 편집해놓은 책인데 필사하면서 공감 가는 부분도 많았지만 종교(기독교)와 관련한 대목은 이해하기 어려웠다. 동양사상이나 불교에서 같은 형식의 책이 있으면 정말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하루 365일 붓다와 마음공부>란 책의 출간이 반가웠다. 하지만 본문으로 들어가기도 전에 멈칫했다. 여시아문(如是我聞) 때문에. 집에서 틈틈이 108배를 하고 부처님 오신 날에 사찰에 연등을 단다고 해서 모두 불교신자인 건 아니다. 반대로 108배를 하지 않고 연등을 달지 않는다고 해서 불교신자가 아니라고 할 수도 없다. 그가 삶을 어떻게 대하는지 타인과 함께 살아가는 세상 속에서 일상을 살아가는 마음자리가 어떠한지가 중요하고 일상 속에서 자신 안의 부처를 찾아 깨달음을 얻는 것, 그것이 불교의 핵심이라고 여겼다.


 

하지만 불교경전을 제대로 읽어본 적이 없어서 여시아문(如是我聞)이 생소했기에 우선 찾아봤다. 여시는 이와 같이’, 아문은 내가 들었다의 뜻으로 들은 교법을 그대로 믿고 따라 기록한다, 붓다의 면전에서 직접 들은 가르침을 하나도 보태거나 빼지 않고 그대로 전한다는 의미라고 한다. 또한 모든 불교경전에는 첫머리에 여시아문일시불재(如是我聞一時佛在)라는 글귀가 나오는데 이는 붓다가 죽으면서 제자들에게 불경의 첫머리에 두도록 한 데 따른 것으로 경전의 내용은 붓다가 어느어느 장소에서 설교한 것으로 내가 확실히 들었으니 의심하지 말 것을 권유하는 뜻이라고 한다. 아하, 그제야 무릎을 쳤다. 그리고 집에 있는 경전의 첫머리를 찾아보니 정말 여시아문으로 시작하는 걸 확인할 수 있었다.


 

<하루 365일 붓다와 마음공부>의 구성은 달력과 유사하다. 크게 열두 달로 나누어 각 달마다 주제를 정해서 그에 해당하는 붓다의 말씀과 해설을 매일 1장씩 수록해놓았다. <붓다와 마음공부>를 만난 건 5, 주제는 [견실한 삶을 위한 고찰]이었다. 그 중에서 527, ‘나쁜 경험이 더욱 발전의 원천이 될 수 있다’‘뜻을 정해 해탈한 사람은 악마의 수렁에서도 영원히 벗어난다라는 글에 우리의 경험이 삶에 얼마나 중요한지 전해준다. 어떤 경험이든 그것을 자신의 삶을 발전하는 근거로 만들 수 있다면 좋은 경험, 나쁜 경험이 그다지 의미가 없다는 대목에서 결국 모든 일은 나 자신의 마음자리와 성찰에 있다는 걸 또한번 깨닫게 되었다.


 

앞부분엔 어떤 내용이 있을까 궁금해서 틈틈이 살펴봤다. 1월은 [삶의 주인으로 살라]는 주제로 가장 먼저 행복과 불행에 대해 이야기한다. ‘행복과 불행은 긴 시간 속에서 순간일 뿐이다며 행복과 불행을 나누는 기준은 무엇인지 묻는다. 인간은 어떤 환경에서도 자신이 어떤 사람이 될지 선택할 수 있어서 나치 수용소 같은 극한 상황 속에서도 내면의 자유를 유지할 수 있다고 말한다. 2[평탄한 삶을 위해]에서 듣기경청에 대해 말하는데 듣기는 귀로 하지만 경청은 마음으로 한다면서 듣기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철학사에 있어 중요한 궤적을 남긴 철학자의 책을 읽다 보면 종종 좌절을 겪곤 한다. 내가 분명 책을 집중해서읽고 있건만 도무지 무슨 뜻인지 이해할 수조차 없는, 귀신 씨나락까먹는 소리 같을 때, 읽는 걸 포기하고 싶어진다. 내가 무지하다는 건 알았지만 그럼에도 나의 무지를 확인하는 순간을 맞닥뜨리면 가장 먼저 나 자신에게 실망하게 된다. 그러면 안되겠지만 자존감이 뚝뚝 떨어지는 소리가 들리는 기분이랄까?


 

하지만 <하루 365일 붓다와 마음공부>는 어느 한 구절도 복잡하거나 난해하지 않았다. 읽으면 쉽게 이해되는 글, 문득 생각나 다시 읽으면 그날의 상황과 마음에 따라 의미가 더 깊어지는 글이었다. 매일, 한 꼭지씩, 천천히 읽으면서 마음을 가다듬을 수 있는 책이다. 다만 살짝, 아쉬운 점을 하나 꼽자면 본문의 한자가 너무 작다. 필사를 하려면 작은 한자가 보이지 않아 사진으로 찍어 확대해야 하는 불편함이 있지만...어쩌면 이것도 내가 한자에 무지한 때문일수도 있겠다. 삶이 불안하고 앞으로 걸어가야 할 길이 짙은 안개속이라고 생각된다면 조금씩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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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질문 - 내 안의 두려움을 마주하는 인생의 지혜를 찾아서
다큐멘터리 〈Noble Asks〉 제작팀 외 지음 / 다산초당(다산북스)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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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효자는 부모님 돌아가시고 나서 운다고 하더니 딱 내가 그 형국이다. 친정엄마가 돌아가신지 몇 년이 지났건만 아직도 상실의 슬픔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부모를 여읜 자식들이 대부분 그렇지 않은가 싶지만 꼭 그렇다고 장담할 순 없다. 일상에 쫓기다가도 문득 멍하니 있거나 생각에 잠길 때 거리에서 다정한 모녀의 모습을 볼 때면 문득문득 후회가 밀려온다. 난 다른 형제에 비해 엄마의 속을 덜 썩였지만 반면에 살가운 딸은 아니었구나. 깨닫는다. 남에게 폐끼치지 않고 자기 할 일만 하면 된다는 생각을 가진 무뚝뚝한 딸. 그게 나였다고.



날 왜 낳았어!

어쩌면 난 알고 있을지도 모른다. 나의 슬픔의 이유를. 오래전, 사춘기도 모르고 지냈다 싶은 내가 딱 한 번 엄마의 가슴에 날카로운 대못을 박았다. 날 왜 낳았냐고. 물었다. 그때 엄마의 기분이 어땠을까, 얼마나 충격이 컸을지 지금 내가 새삼 느끼고 있다. 아들을 키우면서... 난 알고 있다. 그날의 내 무모한 행동을 생전에 엄마에게 죄송하다고 말씀드렸어야 했는데 얼렁뚱땅 넘긴 게 이렇게 한으로 남았다는 것을. 그리고 아직 모르고 있다. 난 누구이고 어떤 사람이며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그 길을 찾지 못했다는 것을.



<오래된 질문>은 생물학계의 대석학으로 알려진 과학철학자 데니스 노블 박사가 한국의 사찰을 방문해서 고승들과 나눈 대화를 정리한 책이다. 통도사의 성파 스님, 실상사의 도법스님, 백양사 천진암의 정관 스님, 땅끝 미황사의 금강 스님. 불교를 믿거나 불교에 관심있는 사람이라면 모르는 이가 없을 정도로 한국을 대표하는 큰스님들이다. 그런데 생물학자가 불교의 스님들과 대체 어떤 이야기를 나눌까. ‘내 안의 두려움을 마주하는 인생의 지혜를 찾았을까? 과학과 종교는 극과 극인데 그들의 만남이 과연 순탄했을까? 이런 궁금증이 나로 하여금 책장을 넘기게 만들었다.



중요한 건 쓸데없는 걸 많이 아는 게 아닙니다. 내가 모른다는 것을 아는 것이죠. 모르고 있다는 껄 모르는 것, 그게 가장 큰 병입니다. - 33.(성파)



책은 네 부분으로 나누어져 있다. ‘삶은 왜 괴로운가?’ ‘나는 누구인가?’ ‘마음을 어떻게 다스릴 것인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이 네 개의 대주제 아래 그것을 풀어가기 위한 스님들의 말씀과 데니스 노블의 이야기가 수록되어 있다. 한 꼭지마다 글의 길이는 짧은데 그 속에 핵심을 단번에 꿰뚫는 글이 많았다.



머리는 하늘을 향해 있고 두 발은 땅을 딛고 서 있는 모습으로 생긴 사람이 깨달은 자, 부처다. 밥이 오면 입을 열고 졸음이 오면 눈을 감으며 사는 사람이 깨달은 자, 부처다. 바꿔 말하면 이런 얘기를 하는 거죠. 나와 당신, 우리 모두가 부처다. 인간은 누구나 다 부처다 125(도법)



고통에서 벗어나거나 누가 나를 화나게 한다면 우선 원인을 알아야 하는데 그러자면 사실을 정확하게 직시해야 한다거나 세상은 많은 것이 서로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우리는 함께 살아야 하는데 그걸 잊고 따로따로 살기 때문에 인간과 인간이, 인간과 자연이, 제대로 온전히 살아가기 힘든 거라고 짚어준다.



만약 당신이 남과 비교하는 마음에서 벗어날 수 있다면, 훨씬 자유로워질 것입니다. 내가 보는 현상과 주변 환경들을 온전히,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는 지혜와 겸손한 마음가짐이 걸림 없는 삶, 자유로운 삶을 만들어줄 것입니다. - 147(정관)



과학자와 스님들의 대화가 겉돌지는 않을까 의문이 들었다. 하지만 데니스 노블이 원효의 [금강삼매경론]의 관점을 보여주는 시의 원문을 해석하기 위해 한자를 배울 만큼 동양사상에 관심이 많았기 때문인지 그들의 대화는 때론 굳이 통역을 거치지 않아도 통했다고 한다. 마치 염화미소의 부처님과 가섭처럼.



참선을 하면 우리의 삶이 어떻게 달라질까요? (……) 참선은 삶을 다르게 인식하는 방법입니다. 과거의 기억과 미래의 환영에서 벗어나고, 헛된 망상들이 걷히면서, 자연스럽게 현재로 초점이 맞춰지는 거지요. (……) 비로소 내가 지금 이 순간에 존재하게 됩니다. - 186, (금강)



마음편히 사찰을 자주 찾을 수도 없는 상황이 일 년 넘게 이어져 오고 있다. 사람에게 오른팔이 있으면 왼팔이 있듯 함께 더불어 살아가야 하는 세상인데 요즘 사람과 사람과의 관계는 예전처럼 자유롭지 못한 게 사실이다. 시원하게 소통되지 못하고 어딘가 막힌 듯 답답함을 느끼는 날이 많아지면서 이렇게 살아도 되는 것일까 의문이 들곤 했다. <오래된 질문>을 틈틈이 조금씩 마음 내키는 대로 손에 집히는 대로 읽어 나갔다. 몇 번을 읽어도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아 결국 덮어버리고 마는 책보다 <오래된 질문>은 짧지만 금방 공감할 수 있고 그러면서도 몇 번이고 곱씹어서 생각해볼 수 있는 글이 많아서 좋았다. 그때그때 연필로, 형광펜으로 줄을 긋고, 포스트잇과 플래그를 붙여 가며 메모를 했다. 곳곳에 생각할 수 있는 여지를 남겨주는 책, 필사하면서 생각을 가다듬고 싶은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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