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바꾼 질문들
김경민 지음 / 을유문화사 / 201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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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이 세상을 바꾼다. 믿겨지시나요? 최근에 출간된 <세상을 바꾼 질문들>에서는 16세기 이후부터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세상에 큰 변화를 가져온 인물들을 꼽아 그들이 어떤 질문을 품었는지, 자신의 질문에 대한 해답을 찾기 위해 어떤 노력을 기울였는지 이야기 하는데요. 평소에 무심히 지나칠 수 있는 의문과 질문들이 얼마나 큰 힘을 발휘하는지, 때로 세상을 바꾸기도 하는 과정을 보여줍니다.

 

책에는 총 열다섯 명의 인물을 소개하고 있는데요. 제일 먼저 소개되어 있는 안드레아스 베살리우스는 해부학자로서 당연한 의문을 제기한 인물로 꼽힙니다. ‘왜 인체 해부학 연구는 실제 해부를 바탕으로 하지 않는 걸까?’인데요. 지금 생각해봐도 인체해부학 연구를 실제 해부를 바탕으로 하지 않았다니 이해가 안 되지요? 그렇지만 당시엔 그것이 당연한 일이었다고 합니다. 2세기 그리스 출신의 의사 갈레노스가 남긴 방대한 양의 의학서적이 마치 성경처럼 의학 교과서로 여겨지고 있었는데요. 여기에 어렸을 때부터 해부에 관심이 많아 작은 동물들을 해부하면서 자란 베살리우스가 의문을 품습니다. 갈레노스 연구의 상당부분에 오류가 있는데다가 해부학 수업에서조차 교수가 직접 해부를 하지 않고 이발사가 시체를 해부하자 실망감을 느낍니다. 급기야 두 번째 해부학 수업에서 베살리우스는 이발사의 손에서 메스를 뺏어 직접 해부를 하게 되는데요. 이는 권위를 중요하게 여긴 당시의 의학계에 엄청난 변화를 불러옵니다.

 

인문고전도서 추천목록에서 항상 최상위를 차지하고 있는 <군주론>. 그 <군주론>을 읽으려고 몇 번이나 시도했지만 번번이 도중에 포기하고 말았던 쓰라린 기억이 있던터라 니콜로 마키아벨리가 어떤 인물인지 궁금했는데요. 피렌체 공화국의 서기관이자 외교관이었던 마키아벨리가 가진 의문은 ‘군주는 반드시 선하고 도덕적이어야만 하는가?’입니다. 이것 역시, “당연하지!”라고 말하고 싶지만 당시 이탈리아의 상황을 고려하면 결코 당연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외세의 침략과 내부 분열로 인해 오랫동안 혼란이 이어지자 그는 이탈리아가 통일하여 나라가 부강해지고 평화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지도자상이 필요하다는 것을 절실히 느끼게 됩니다. 획득한 권력을 잘 유지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보다 실제적이고 현실적인 능력에 초점을 맞춘 거죠. 때문에 그의 <군주론>은 냉혹한 정치세계의 단면을 보여주는 작품이라는 거센 비판을 받기도 하는데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21세기인 지금도 <군주론>을 읽어야 된다고 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생각해볼 여지가 있는 것 같습니다.

 

‘트로이 전쟁은 정말 책 속의 이야기일 뿐일까?’ <일리아스>를 읽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번쯤 품게 되는 의문이 아닐까 하는데요. 하인리히 슐리만은 어린 시절 역사책에서 트로이 전쟁을 읽고 그것이 사실이라고 굳게 믿게 됩니다. 트로이의 거대한 성벽이 어딘가에서 오랫동안 묻혀 있을거라 여기고 언젠가는 그것을 자신이 꼭 발견하겠노라고 다짐하는데요. 1871년 10월, 트로이 유적발굴을 시작해서 20여 년 간 일곱 차례에 걸쳐 발굴작업을 진행합니다. 그 과정에서 발견한 유적과 보물들로 인해 슐리만은 세계적으로 유명해지지만 그를 비난하는 목소리도 컸습니다. 오로지 트로이의 유적을 발견하는데만 몰두한 나머지 그 이외의 유적은 오히려 손상시켰다는 건데요. 비록 고고학적으로 과오를 남기기도 했지만 슐리만이 트로이를 발굴하려는 꿈을 이루기 위해 포기하지 않고 끊임없이 노력한 점은 오늘의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여겨집니다.

 

이 외에도 프랑스 혁명을 도모했던 막시밀리앙 드 로베스피에르, 여성의 권리를 세우는데 앞장섰던 메리 울스턴크래프트, 루트비히 반 베토벤, 찰스 다윈, 현대 무용의 창시자라 불리는 이사도라 던컨, 단순하고 실용적인 디자인으로 패션의 새로운 변화를 가져온 코코 샤넬, 추리소설가 애거사 크리스티, 알제리 독립운동에 헌신한 정신분석학자이자 사회철학자 프란츠 파농, 문화인류학자 마거릿 미드, 에드워드 사이드, 크레이그 벤터 를 소개하면서 그들이 어떤 질문을 던지게 되었으며 그것이 어떻게 세상을 바꾸어 놓았는지 풀어놓았는데요. ‘인간이 화성에 살 수는 없을까?’란 질문을 던진 일론 머스크가 인상적이었어요. 그는 테슬라 모터스와 스페이스엑스 CEO이자 영화 [아이언맨]의 주인공인 토니 스타크의 실제 모델로도 알려져 있는데요. 그의 화성 탐험에 대한 열정은 실로 눈부실 정도더군요. 미래의 설계자라 불리는 일론 머스크, 그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알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2010년이었죠. 서울 G20 정상회의 폐막 기자회견에서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마지막 질문을 개최국인 우리 한국의 기자들에게 주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아무도 없나요?”라며 한국 기자들에게 몇 번이나 질문해달라고 요청했지만 선뜻 손을 드는 한국 기자는 없었지요. 기자회견은 어색한 침묵이 흐르고 그때 한 기자가 일어납니다. ‘아, 이제야!’하고 생각했지만 정작 그는 한국 기자가 아니었습니다. 중국기자 한 명이 “중국인이지만 아시아를 대표해서 질문하겠다”며 나선 건데요. ‘한국 기자에게 질문권을 줬다’는 오바마와 ‘한국 기자가 괜찮다면 되지 않느냐’는 중국 기자가 실랑이 벌이는 장면을 인터넷으로 보면서 부끄럽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참, 씁쓸하더군요. 다른 나라도 아니고 우리나라, 그것도 수도인 서울에서 열린 행사에서 우리의 언론을 대표하는 기자들이 왜 아무도 질문을 하지 않았던 걸까? 아니, 못했던 건가?

 

질문에 대해선 대학생도 상황은 비슷합니다. 우리나라 대학에서 연구, 강의를 하거나 여러 기관의 요청으로 초청강연을 한 세계의 석학들이 공통적으로 하는 얘기가 바로 “질문하지 않는 한국 학생들에 놀랐다”는 겁니다. "한국의 기술 수준과 인구 규모를 생각하면 노벨 과학상 수상자가 10명은 나왔어야 한다"고 말한 노벨 화학상 수상자 아론 치에하노베르 교수는 지나치게 호기심을 억누르고 도전을 꺼리는 우리의 문화가 창의성을 저해한다고 하는군요. 학생들에게 교육할 때도 정답을 빨리 찾는 것에 중점을 두지 말고 학생들의 호기심을 자극해서 상상하고 질문을 던져서 스스로 답을 찾아낼 때까지 고민을 하도록 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했는데요. 두 아이를 기르면서 지금까지 나는 어떻게 해왔던가, 돌아보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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곁에 두고 읽는 니체 곁에 두고 읽는 시리즈 1
사이토 다카시 지음, 이정은 옮김 / 홍익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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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대학 신입생일 때였어요. 음악감상실에서 클래식을 듣다가 전주 부분에서 귀가 뻥 뚫리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귀 기울지 않으면 들리지 않을 정도의 낮은 음에서 시작해서 서서히 높은 음으로 확장되는 사운드가 마치 짙은 어둠이 가득한 곳에서 서서히 빛이 비치다가 어느새 사방이 밝은 빛으로 가득 차오르는 느낌이랄까요? 사방이 온통 어둠으로 뒤덮인 곳에서 길을 찾지 못해 헤매다가 일출을 맞이하는 것처럼, 고대의 암흑기에 수많은 사람들이 고통을 받고 있을 때 어디선가 짠~하고 영웅이 등장하는 것처럼 가슴이 벅차오르는, 웅장하고 스케일이 큰 그런 음악이었는데요. 처음 듣는 음악이지만 단박에 감동을 받은 그 곡은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교향시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중에서 제 1곡 서주부분이었습니다. 그렇게 처음 만났습니다. 차라투스트라를.

 

그리고 몇 년 후 또 하나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알게 되었습니다. 작곡가 리하르트 슈트라우스가 철학자 프리드리히 니체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라는 책을 읽고 그 사상에 끌리고 감동을 받아 교향시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작곡하게 되었다는 걸.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가 도대체 어떤 책이길래 그렇게 웅장한 곡을 작곡하는데 영감을 주는 원동력이 되었을까 궁금한 마음에 바로 책을 구입했는데요. 처음 시작할 때의 호기가 무색할 정도로 아직도 읽지 못하고 있답니다.

 

<곁에 두고 읽는 니체>를 보는 순간 대책 없는 열정만이 가득하던 20대 시절이 떠올랐습니다. 읽으려고 구입했지만 어느샌가 기억에서 멀어지고 책장마저 누렇게 변해버린 니체의 책 한 권이. 언젠가 읽어야지 하면서도 그 언제가 언제일지 알 수 없는 혼란과 모호함으로 기억되는 책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저자가 사이토 다카시가 아니었다면 <곁에 두고 읽는 니체>는 거들떠보지도 않았을 겁니다. 하지만 제가 믿고 보는 사이토 다카시의 책이고, ‘내 인생에 힘이 되어준 니체의 말’이라는 부제가, 작은 등불이 어둠을 밝히는 표지 사진이 저를 이 책 <곁에 두고 읽는 니체>의 곁에 다가서게 만들었습니다.

 

‘니체는 내 평생의 친구다.’

<곁에 두고 읽는 니체> 프롤로그의 첫 문장입니다. 이어서 이렇게 말합니다. ‘그것도 가벼운 관계가 아니라 힘든 일이 있을 때마다 찾게 되는 영혼의 벗’이며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는 평소에 항상 곁에 두고 보며 삶의 지표로 삼고 있는 동반자 같은 책‘이라고 털어 놓는데요. 단 몇 개의 문장을 읽으면서 저자가 얼마나 부러웠는지 모릅니다. 니체는커녕 그의 책 한 권도 제대로 읽지 못했는데 저자는 철학자 니체를 영혼의 벗이며 동반자처럼 여기면서 살아가고 있다니. 난 언제쯤 그럴 수 있을까...회의가 들기도 했는데요. 저자의 주변에는 아마 저 같은 이들이 많은가 봅니다. 매일 정신없이 살아가다보면 언제든 높은 장벽을 만나게 되고 온갖 어려움에 마주하게 되는데요. 그럴 때마다 혼란의 도가니에 빠져 허덕이지 말고 니체의 문장, 말을 되새기며 힘을 얻으라고 조언을 하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경구(警句)나 격언(格言), 금언이나 잠언(箴言) 등을 일컫는 말로써 인생의 깊은 체험과 깨달음을 통해 얻은 진리를 간결하고 압축적으로 나타낸 짧은 글을 ‘아포리즘’이라고 하는데요. 니체는 이 ‘아포리즘’과 같은 글, 사상을 많이 남긴 철학자라고 하는군요. 때문에 니체의 말과 글을 자주 접하고 그 중에서 유독 가슴에 와 닿는 문구들을 되새겨두면 공부하다 어려울 때 찾아보는 일종의 ‘참고서’ 같은 역할을 기꺼이 해 줄 거라고 말이지요.

 

책은 크게 다섯 개의 파트로 나뉘어 있는데요. 저자가 많은 이들에게 전하고 싶은 글을 니체의 사상과 더불어 서술해놓았습니다. ‘한 발의 화살이 되어라’ ‘이것이 삶이던가. 그렇다면 다시 한 번’ ‘몸의 소리를 들어라’ ‘꿀벌처럼 나누는 삶’ ‘창조적인 삶은 어디서 오는가’라는 큰 주제 아래에 몇 개의 에세이 같은 글, 이야기들을 풀어놓고 있는데요.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가장 기본으로 삼고 있는 것은 니체 사상의 엑기스라고 할 수 있는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이고 여기에 니체의 다양한 책의 글을 곁들여서 소개하고 있습니다.

 

마냥 어렵고 난해하게만 여겼던 니체인데, 이렇게 만나니 내가 왜 어렵게만 여겼는지 의아할 정도입니다. 그만큼 니체의 사상을 쉽고 이해하기 수월하게 전해주고 있습니다. 살다보면 기쁜 날도, 슬픈 날도 있는 것처럼 우리에겐 끊임없이 응원해주는 이가 필요한 것처럼 때론 그건 잘못된 생각이라고, 옳지 않은 행동이라며 따끔하게 일깨워주는 이도 반드시 필요합니다. 저도 더 늦기 전에 니체를 만나야겠습니다. 저자처럼 제게도 니체가 영혼의 벗이자 동반자가 될 수 있을까요?

 

 

누구나 자기 미래의 꿈에 계속 또 다른 꿈을 더해나가는 적극적인 삶을 살아야 한다. 현재의 작은 성취에 만족하거나 소소한 난관에 봉착할 때마다 다음에 이어질지 모를 장벽을 걱정하며 미래를 향한 발걸음을 멈춰서는 안된다. -26쪽.

 

우리는 친구를 얻는 행복을 칭송한다. 사람들은 사진보다 우수한, 혹은 동등한 친구와 가깝게 지내야 한다고 말한다. 이런 말에 동의했지만, 만약 그런 친구를 얻을 수 없다면 무소의 뿔처럼 혼자 살라고 말했다. - 54쪽.

 

뱀이 허물을 벗지 못하면 끝내 죽고 말듯이 인간도 낡은 사고의 허물에 갇히면 성장은커녕 안으로부터 썩기 시작해서 마침내 죽고 만다. 따라서 인간은 항상 새롭게 살아가기 위해 사고의 신진대사를 하지 않으면 안 된다. - 97쪽.

 

한 번도 춤추지 않았던 날은 잃어버린 날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좋다. 하나의 큰 웃음도 불러오지 못하는 진리는 모두 가짜라고 불러도 좋다. - 118쪽.

 

나는 단지 피를 쏟아서 쓴 것만 사랑한다. - 191쪽.

 

어떻게 살아야 할지 삶의 방법론을 담은 책은 많지만, 내게 맞는 것을 찾기는 어렵다. 타인의 방식이 내게 맞지 않는 것은 당연한 일이니 전혀 이상할 게 없다. 내가 던지는 ‘왜?’라는 물음의 내용을 나 스스로 전혀 인식하지 못하는 데 있다. 왜 그 일을 하고 싶은가? 왜 그렇게 되려고 하는가? 왜 그 길로 가려고 하는가? 내면으로부터 이런 물음에 분명한 평가 기준을 갖추지 못했기 때문에 답을 찾지 못하는 것이다. ‘왜?’라는 의문부호에 스스로 답을 제시할 수 있어야만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알게 됨으로써, 이제 그 길을 가는 일만 남게 되는 것이다. - 21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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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야모토 소위, 명성황후를 찌르다 - 120년 만에 밝혀지는 일본 군부 개입의 진상
이종각 지음 / 메디치미디어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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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말말. 요즘 일간지나 인터넷으로 보도된 기사를 보면 의미를 상실한 말들이 쏟아지고 있습니다. 하루가 멀다하고 언행불일치, 막말정치를 일삼는 정치인들을 보면 우리의 민주주의는 언제쯤 진정한 모습으로 자리매김할지 의문이 드는데요. 무엇보다 가장 심각한 것이 바로 일본의 행태지요. 우선 군함도라 불리는 일본 나가사키의 하시마섬. 수많은 조선인을 비롯해 여러 나라의 국민들이 강제로 끌려와 가혹하게 노역과 착취를 당했던, 참혹한 참상이 어린 곳입니다. 그런데 일본은 이곳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하기 위해 ‘가혹한 조건에서 강제노역 했다’는 것을 인정했다가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자마자 '강제노동이 아니'라는 궤변과 망언을 늘어놓고 있습니다. 거기다 일본의 대기업인 미쓰비시가 2차 세계대전 당시 강제노역에 동원된 미국과 중국인들에 대해서는 사과와 보상을 하겠다고 하면서도 정작 가장 큰 피해를 입은 우리에게는 어떠한 사과도 하질 않고 있는데요. 이뿐만이 아닙니다. 일본은 자국에게 불리할 수 있다면 역사를 왜곡하는 것도 서슴지 않았습니다. 우리가 미처 모르는 사이에 자행되었던 역사왜곡, 바로 명성황후의 죽음에 얽힌 의문입니다.

 

일국의 왕비가 자신의 나라 수도 한복판에서, 그것도 시위대가 지키는 왕궁 안에서 외국 군대와 폭도들에 의해 참혹하게 살해되고 불태워진 것이다. 그야말로 세계사에 유례를 찾을 수 없는 참사였다. 그런 만큼 을미사변은 우리 민족의 자존심에 커다란 생채기로 남아 있다. ㅡ 11쪽. 프롤로그 중에서.

 

‘을미사변’을 인터넷에 검색하면 이렇게 설명되어 있습니다. ‘조선 고종 32년(1895년)에 일본 자객들이 경복궁을 습격하여 명성 황후를 죽인 사건’, ‘1895년(고종 32) 일본공사 미우라 고로가 주동이 되어 명성황후를 시해하고 일본세력 강화를 획책한 정변’. 어느 사이트에서나 명성황후를 시해한 범인에 대해 거의 비슷하게 ‘자객’ ‘괴한’ ‘낭인’이란 표현을 쓰고 있는데요. 이것이 과연 정확한 것일까? 저자는 이점에 의혹을 갖습니다.

 

의혹을 풀기 위해 저자는 우선 당시의 상황이 어떠했는지 알려줍니다. 청일전쟁에서 승리한 일본은 중국으로부터 랴오둥 반도와 타이완, 엄청난 배상금을 거둔 것을 시작으로 조선에 대한 지배를 가일층 매진하기에 이르는데요. 이런 일본에 러시아, 프랑스, 독일이 제재를 가하고 나섭니다. 이른바 ‘삼국간섭’의 결과로 일본이 청나라에 랴오둥 반도를 돌려주자 조선은 ‘러시아를 끌어들여 일본을 물리친다’는 ‘인아거일’ 전략으로 나갔는데요. 이에 일본은 조선 지배의 걸림돌이 된 러시아를 끌어들이는데 앞장 선 왕비를 살해하려는 모의를 세우기에 이릅니다. 1895년 10월 8일 여명, 일본은 명성황후를 살해하기 위해 왕비와 견원지간이었던 대원군을 내세워 궁으로 들어가는데 성공합니다. 명성황후 시해작전, ‘여우사냥’은 이렇게 시작된 것입니다.

 

광화문이 활짝 열렸다. 이들은 일제히 함성을 지르며 대원군과 함께 궁궐로 진입했다. ㅡ 47쪽.

 

명성황후의 살해된 사건이 벌어진 당시의 배경과 시해사건 당일의 상황을 조목조목 짚어준 다음 저자는 말합니다. 명성황후 시해범은 결코 낭인이 아니라고. 한 나라의 왕비를 살해하는 작전에 ‘정해진 직업도 없이 여기저기 유랑하며 떠돌아다니는 부랑인’에게 맡길 수는 없다고. 상식적으로도 맞지가 않는다고. 일본 군부는 물론이거니와 천황도 알고 있었던 작전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낭인’에 의해 살해되었다고 하는 것은 그들의 억지주장일 뿐이며 일국의 왕비를 살해한 것으로 쏟아질 외교적인 비난에서 벗어나기 위해 ‘낭인설’로 조작했을 뿐이라고 말입니다.

 

우치다가 밝힌 이 ‘왕비를 먼저 칼로 친 육군사관’이 바로, 하라에게 보낸 사신에서 말한 ’우리 육군소위'이며, 그가 바로 이 책에서 검증하려는 미야모토 소위다. ㅡ 97쪽.

 

책에는 저자가 시해현장에 있었던 두 명의 군인 중 미야모토 소위가 왕비 시해범으로 주목하게 된 이유가 무엇인지, 어떤 것을 근거로 했는지 자세하게 수록되어 있습니다. 바로 우치다 영사가 외무차관에게 보낸 비밀의 서한인데요. 읽고 나서 태우라고 주의를 줄 정도였다니 그 서한이 담고 있는 진실의 무게가 어느 정도인지 충분히 짐작이 됩니다. 이후 미야모토 소위의 행적을 추적해보면 의심스러운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닌데 그 모두가 ‘명성황후 시해범은 미야모토 소위’라는 저자의 주장을 뒷받침해주고 있습니다.

 

2월 14일, ‘발렌타인 데이’로 알려진 이 날이 우리에게 역사적으로 의미가 깊은 날이더군요.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한 ​안중근​ 의사에게 사형이 언도된 날이 바로 2월 14일이라는 사실을 올해가 되서야 알게 됐습니다. 이후로 해마다 2월 14일이 되면 예전과는 다르게 숙연한 마음으로 맞이하게 되겠지요. 한글날 즈음해서도 마찬가지가 될 것 같습니다. 한글날 전날인 10월 8일이 명성황후가 무참하게 살해된 날이니 말입니다. 명성황후가 서거한지 올해 120년을 맞게 됐지만 그 억울한 죽음에 대해 아직도 이렇다 할 연구가 없다는 것이 실로 안타깝습니다.

 

그럼 왜 명성황후는 우치다 영사의 말처럼 ‘역사상 일찍이 없었던 흉악한’ 사건에 휘말려 저 같은 최후를 맞이했는가? 이에 대한 답은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겠지만, 중요한 것은 그녀는 약소국의 왕비였기 때문에 그런 변을 당했다는 사실이다. ㅡ 253쪽. 에필로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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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7-26 23:4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07-27 00:0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년은 내게 무척 특별한 해인 것 같다.

우선, 반 세기에 가까운 나이가 되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게 되었고

​하고 싶은 것들을 모두 하려고 밀어붙인다는 건 무리라는 걸 알게 되었으며

눈물을 머금고 그 중의 일부를 취사선택​해야 하는 기로에 섰다.

​하지만 그동안 줄곧 ​미루고 미루던 인문고전의 세계에 발을 딛는 계기를 잡았다.

책나루 멤버들 중 몇 명과 작은 인문고전 모임을 ​시작했으며

위대한 고전 읽기 모임인 파이데이아에서 12년간의 대장정에 나섰다.​

​이 모든 것의 계기가 되어 준 것이

바로 <인문의 향연>이다.

 

아직도 기억난다.​

이 책을 서점에서 처음 보고 구입하면서

내가 인문잡지를 손에 잡게 될 줄이야...

예전엔 몰랐다...고 했었는데​

시중에서 절판된 창간호를 구하기 위해

무작정 출판사로 문의전화를 했고

다행히도 출판사의 보관용 중 일부를 지인들과 함께 

공동구매 해서야 간신히 읽을 수 있었다. ​

인문학에 막연한 두려움, 어려움을 느끼는 이들을 위해

인문학 공부를 시작하는 이들에게 적합한 잡지​,

라는 컨셉에 맞게 내용도 알찼다.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책이라

거의 포기하고 있던 단테의 <신곡>을​

조만간 읽고야 말리라. 결심하게 했으며

인류역사상 가장 빛나는, 기념비적인 대 서사시,

호메로스의 <일리아스>와 <오뒷세이아>​를 맛깔난 소개글 덕분에

고대 그리스의 문학을 수월하게 만날 수 있었다. 


 

그런데, 꽃피는 춘삼월이 되어도

3호의 출간 소식이 들리지 않았다.

계간지니까 분명 봄호가 나올텐데...​

개나리가 피고지고, 벚꽃이 ​피고 그 꽃잎마저 다 떨어져도 감감무소식...

기다리다 기다리다

늘어난 목이 판문점에 다다를 때쯤, 반가운 소식이 들렸다.

늦은봄호가 출간된 것...

그리스서적의 번역에 독보적인 천병희 교수의 인터뷰 기사를 비롯해

커다른 눈깔사탕을 조금씩 핥아먹는 심정으로

아끼고 아껴서 읽었다.

 

 

6월이 되자

또다시 심장이 두근대기 시작했다.

여름호가 나올때가 됐는데, 됐는데, 왜 안 나오지?

​혹시 그것도 메르스땜에 편집작업이 차질을 빚나?

여름의 한가운데호, 혹은 늦은여름호라도 나오겠지... ​

계속 기다리다가

목마른 사람 우물 파는 심정으로

다시 출판사에 문의를 했다

"인문의 향연 여름호는 언제 출간되나요?"

출판사로부터 하루 늦게 도착한 답변에는 ​

"여름호부터 휴간할 계획입니다. 다른 편집단체를 찾고 있습니다. 죄송합니다."​

​기대했던 것과는 정반대의 소식을 전하고 있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인문의 향연>을 기다리는 사람이 나 하나가 아닐텐데...

아쉽고아쉽고 또 아쉽다.

그리고 안타깝다.

모쪼록, 되도록 빠른 시일 내에,

이 여름이 가기 전에

<인문의 향연> 4호를 만날 수 있길...

​고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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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7-02 08:01   URL
비밀 댓글입니다.

몽당연필 2015-07-02 07:37   좋아요 0 | URL
파이데이아..라고 있어요
위대한 서양인문고전을 매주 일정 분량 읽고 토론하는 건데요 그 커리큘럼이 12년짜리에요
전 1학년...^ㅈ^

몽당연필 2015-07-02 07:41   좋아요 0 | URL
http://m.blog.naver.com/hkyoung68/220329924466

프레이야 2015-07-02 08:01   좋아요 0 | URL
와우 정보 고마워요.

몽당연필 2015-07-02 12:45   좋아요 0 | URL
혹시 책모임 하시나요?

네이버 카페의 오프모임이 있는데...제법 오래 됐답니다. ^^
http://cafe.naver.com/bookishman/452958

2015-07-02 18:33   URL
비밀 댓글입니다.

몽당연필 2015-07-02 12:52   좋아요 0 | URL
넵, 도움이 되셨길...^^

2015-07-02 18:44   URL
비밀 댓글입니다.

몽당연필 2015-07-02 20:01   좋아요 0 | URL
휑하지 않던가요?
딱히 가꾸지 않아서 주로 아는 지인들이 찾는 숨은 블로그라서...^^;;

2015-07-02 20:0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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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서 - 삶의 근원은 무엇인가 인문플러스 동양고전 100선
황석공 지음, 문이원 엮음, 신연우 감수 / 동아일보사 / 2015년 5월
평점 :
품절


중년을 훌쩍 넘긴, 불혹보다 지천명에 가까운 나이가 되고 나니 여러 면에서 이전과는 다른 것을 느끼곤 한다. 사람과 사물을 바라보는 시선이 예전과는 달라졌음을 느끼고 일상 속에서 난관을 만나더라도 이전처럼 안절부절 하기보다는 우선 깊이 생각하는 숙고의 시간을 가지려고 노력하고 있다. 변하지 않은 점이 있다면 사람과의 만남을 즐기고 책을 가까이 하는 즐기는 것인데 그것 역시 추구하는 방향, 노선의 수정단계에 접어들었다는 걸 문득 깨닫게 된다. 나의 시간은 미래로 나아가는데 비해 나의 시선과 관심은 어느새 과거로 향해 있었다. 새로운 지식, 흥미진진하고 감성을 충족시키는 책보다는 오래전 역사 속의 고전, 인문서적에서 삶의 방향을 찾고 있었다. ‘지천명(知天命)’의 의미를 새삼 깨닫는 순간이다.

 

 

<소서>가 출간됐을 때 처음엔 관심을 두지 않았다. 하지만 표지의 절반을 차지하는 ‘素書’ 이외의 글귀에 시선이 머물면서 생각이 달라졌다. ‘황석공’이 누군지도 몰랐지만 ‘삶의 근원은 무엇인가’란 부제와 표지 한 귀퉁이에 적힌 ‘인문플러스 동양고전 100선’이 나로 하여금 책장을 넘기게 했다.

 

 

본문에 들어가기에 앞서 황석공의 <소서>가 어떻게 전해지게 되었는지 말해준다. 장량이 진시황을 암살하려다 실패하고 은둔하고 있을 때, 어느 다리를 지나다가 한 노인을 만난다. 노인은 신고 있던 신발을 다짜고짜 던지더니 장량에게 주워오라 시키더니 자신에게 신겨주기까지 하라는 게 아닌가. 노인의 기이한 행동은 계속된다. 약속장소에 맞춰 나온 장량을 특별한 이유없이 연거푸 꾸짖더니 세 번째 만나서야 노인(황석공으로 알려진)은 한 권의 책을 내미는데 그게 바로 <소서>라는 것이다. 근본을 제시하는 비밀의 책이란 의미의 <소서>를 손에 넣은 장량. 그는 이후 소하, 한신과 유방이 한나라를 건국하는데 크게 공헌했다. 당시 장량은 책의 일부만을 활용했다는데 그렇다면 이 책 <소서(素書)>는 대체 어떤 것을 담고 있는 걸까.

 

 

<소서>는 총 1,336자로 이뤄진 책인데 ‘근원을 밝히다.-원시’,‘도를 바로 세우다.-정도’,‘사람의 뜻을 구하다.-구인지지’,‘덕을 근본으로 삼고 도를 높이 받든다.-본덕종도’,‘의를 좇는다.-준의’,‘예를 즐기다.-안례’해서 모두 여섯 개의 장으로 이뤄져 있다. 각각의 장에는 제일 먼저 원문을 수록하고 아래에 번역, 해설해 놓는 글을 실었는데 그 내용이 ‘놀랍다.’ 잠깐 놀라움의 의미를 짚어보자면 여태껏 어디서도 접하지 못했던 것이어서 ‘놀랍다’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세상을 살아가면서 알게 모르게 접했던 얘기들, 어찌 보면 익숙하다고 할 수도 있는 글이라는 점이다. 마치 공자의 <논어>를 직접 읽지 않았지만 ‘배우고 때 맞추어 익히니, 또한 기쁘지 아니한가! (學而時習之 不亦說乎)’라는 <논어>의 첫 구절을 살면서 저절로 알게 되는 것처럼 말이다.

 

 

이를테면 <소서>의 첫 문장이 ‘夫道, 德, 仁, 義, 禮, 五者一體也’, ‘도, 덕, 인, 의, 예, 이 다섯 가지는 한 몸이다’인데 이는 사람의 근본 소양이라고 한다. 다만 본래는 하나인 다섯 가지가 때론 각각 분리되기도 하기 때문에 도, 덕, 인, 의, 예를 모두 갖춘 사람이 크게 이름을 떨친다면서 황석공이 장량에게 <소서>를 건넨 것도 여러 번 시험을 통해 장량이 크게 될 인물이라는 걸 확신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좋아하는 것을 끊고 욕심을 이겨내야 누가 되는 것을 제거할 수 있다’는 대목 역시 인간이 기본적인 본능은 생존과 직결되기에 당연한 것이지만 그렇다 해도 욕구를 지나치게 추구하고 집착하게 되면 그것이 아무리 사소한 것이라 엉킨 실타래처럼 걷잡을 수 없게 된다면서 지나친 욕심을 과감하게 끊어내라며 일침을 가한다.

 

 

황석공의 까다로운 테스트를 통과하고 나서야 장량이 손에 넣을 수 있었던 <소서>는 어서 ‘비서(秘書)’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어서일까. 장량은 다섯 가지의 근본을 갖추지 못하는 사람이 그 책을 손에 넣을 것을 두려워했던 모양이다. 자신의 무덤에 <소서>가 함께 묻히게 되는데...그후 5백여 년이 흘러 도굴꾼이 장량의 무덤을 파헤치면서 <소서>는 다시금 세상에 모습을 드러낼 수 있었다. 자, 여기에 5백여 년의 세월을 견딘 비서, <소서>가 앞에 놓여있다. 나는 과연 이 책을 손에 넣어도 될 만한, 그런 부족함이 없는 인물인가. 부끄럽지만 ‘그렇다!’고 자신 있게 대답할 수 없다. 그게 현실임을 인정하자. 지금은.

 

 

[덧]

 

한자의 표기에 있어 의문 나는 점이 있다. (한자에 무지하기 때문에 생긴 의문이다)

책의 첫 대목 [夫道, 德, 仁, 義, 禮, 五者一體也]. 여기의 ‘夫’는 오자인가 아닌가. 원문에 이어지는 해설의 내용을 보면 ‘夫’는 ‘天’의 오자로 ‘夫道’가 아니라 ‘天道’가 맞다.

허나 ‘夫’가 이 글에서 ‘무릇’, ‘대저’의 부사적 의미를 지닌다면 얘기가 달라진다. ‘대저 도,덕,인,의,예 다섯 가지는 한 몸이다’고 해석이 된다. 다만 이 경우에는 [夫道, 德, 仁, 義, 禮, 五者一體也]ㅡㅡ> [夫 道德仁義禮, 五者一體也] 이렇게 해야 정확하게 의미가 전달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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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6-29 00:0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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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6-29 00:4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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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6-29 00:4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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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6-29 00:5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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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6-29 08:5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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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6-29 16:3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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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6-29 19:0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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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당연필 2015-06-29 19:35   좋아요 0 | URL
먼저 만나고 계시면 제가 합류할게요 ^^

2015-06-29 20:0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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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당연필 2015-06-29 20: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넵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