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난 군중으로부터 멀리
토머스 하디 지음, 서정아.우진하 옮김, 이현우 / 나무의철학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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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스,란 영화가 개봉됐을 때의 일들이 생각난다. 화제는 단연 테스 역을 맡은 나스타샤 킨스키였다. 하얀 피부에 커다란 눈망울과 붉은 입술의 테스가 자신에게 건네는 빨간 딸기를 손으로 짚으며 두려움인지 호기심인지 알 수 없는 표정을 짓던 모습은 보는 이를 단박에 사로잡았다. 다만 영화가 연령제한이 있어서 영화 관람을 하진 못했고 아쉬움을 책으로 덜어냈다. 순수한 여인 테스가 상반되는 두 남자, 알렉과 에인젤과의 사랑과 운명으로 방황하고 불합리한 인습과 편견으로 멍들고 결국 비극적인 결말로 이어지는 이야기를 읽으며 세상에서 여자로 살아간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고민하기도 했다. 연령제한 영화를 당당하게 볼 수 있는 나이가 되면 꼭 봐야할 영화로 <테스>를 꼽았지만 나와 영화 <테스>는 인연이 아니었나보다. 소설 속 테스는 나스타샤 킨스키의 사진 몇 장만 남아있을 뿐 나머지는 지금도 상상에 머물러 있다.

 

<성난 군중으로부터 멀리>란 소설이 막 출간됐을 때 띠지에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러브스토리’ ‘헐리우드 최고 기대작’이라는 문구가 있긴 했지만 그저그런 흔한 소설일거라고 생각했다. 읽어야 할 책들이 얼마나 많은데 이것까지? 해서 그냥 무심히 넘겼는데 우연히 지인에게서 이 책을 읽고 있는데 저자가 다름아닌 <테스>의 토머스 하디라는 말을 들었다. 토머스 하디 작품이라고? 그렇다면 얘기가 달라지지. 이번에야말로 원작소설도, 영화도 놓치지 않으리라.

 

<성난 군중으로부터 멀리>는 여러 면에서 <테스>를 떠올리게 했다. 순수한 여인 더버빌가의 테스에게 알렉과 에인젤이 있었다면 아름다운 여인 밧세바 에버딘에게는 가브리엘 오크와 윌리엄 볼드우드, 프랭크 트로이라는 세 명의 남자가 있다. 테스가 가난으로 모진 운명의 직격탄을 맞은데 비해 밧세바는 숙부에게 물려받은 땅과 농장이 있으며 테스가 순응하는 성격이라면 밧세바는 당당한 면모를 보여준다.

 

<성난 군중으로부터 멀리>를 한 문장으로 요약하면 지성과 미모에 당당한 매력까지 갖춘 밧세바가 자신에게 맞는 남성상, 배우자감을 찾아가는 이야기를 풀어낸 소설이다. 밧세바를 본 순간부터 매료되어 사랑을 맹세하는 가브리엘은 그녀의 주변에 머물며 사랑하는 여인을 위해 궂은일도 마다하지 않고 농장을 소유한 부유한 윌리엄은 밧세바가 장난스레 보낸 편지가 계기가 되어 밧세바에게 호감을 표시하지만 거절을 당한다. 밧세바가 이상형으로 생각한 남자가 자신의 삶과 재산을 모두 맡길 수 있는 강한 남자여서일까? 밧세바는 거칠지만 적극적이고 거부할 수 없는 위험한 매력의 소유자 프랭크에게 사로잡히고 그와 결혼을 감행한다. 하지만 ‘신혼의 달콤함은 유효기간이 고작 3개월’이란 말이 있듯이 밧세바와 프랭크의 결혼생활은 행복과는 거리가 멀었고 결국 파국을 맞이하고 마는데...

 

소설은 19세기 영국이 배경이다. <테스>에서처럼 엄격한 윤리관과 여성에 대한 편견이 존재하던 시기의 작품이라 지금과는 사회적 분위기가 많이 다르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밧세바가 가브리엘과 윌리엄과 프랭크와 서로 얽히면서 자신의 짝, 반려자를 찾아가는 과정은 그리 낯설지 않았다. 작품 속에 등장하는 세 명의 남자가 여러 유형의 남자들을 대표하는 격이랄까. 여자의 주변을 맴돌면서 끊임없이 사랑을 표현하는 소극적인 남자와 부유하고 예의범절이 몸에 배었지만 여자를 끄는 매력이 살짝 부족한 남자와 매사에 자기 멋대로인 상남자 포스를 물씬 풍기는 남자. 이 세 유형의 남자(혹은 여자)가 실제로 주변에 있다면 아마 많은 이들이 선택하는데 어려움을 토로하지 않을까 싶다.

 

책을 덮으면서 문득 의문이 들었다. 토마스 하디가 전하고 싶었던 것은 무엇일까. 사랑과 결혼에 대한 막연한 환상에서 깨어나라? 어떤 남자든지 남자에게 기대려하지 말고 여자 스스로 능력을 갖추어 주체성을 찾아라? 사실 저자가 말하고 싶었던 것이 무엇인지 그리 중요하지 않다. 작품을 읽고 해석하는 건 오로지 독자인 내게 남겨진 몫이니까. 그나저나 영화 개봉일이 언제일까? 이번엔 놓치지 말아야 할텐데. 소설 속 등장인물들의 사랑과 삶의 모습, 풍광도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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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어 남자
칼요한 발그렌 지음, 최세진 옮김 / 현대문학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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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타지 동화는 대개 주인공이 고립된 목숨이다. 고립된 목숨들은 그 나름의 '간절한 바람'을 가지고 산다. - <판타지 동화세계(이재복, 사계절)> 중에서.

 

예전에 아동문학을 공부하면서 읽은 <판타지 동화세계>에 따르면 판타지 세계는 현실에서 온갖 고난과 역경을 겪고 철저하게 고립된 존재, 그런 인물만이 들어갈 수 있고 판타지 공간에서 구원자의 도움을 받아 어려움과 자기 자신과의 싸움을 극복하는 일종의 통과의례 과정을 거친다고 한다. 단, ‘무슨 일이 있어도 꼭 이루고 싶은 간절한 바람’이 있는 인물일 것. 전제조건이 있긴 하지만 소외되고 고독한 아이가 판타지 세계를 거치면서 내면의 힘을 길러 한층 성장하는 이야기는 그것만으로도 매력적이다. 판타지가 아이들 동화뿐만 아니라 옛이야기에서 자주 등장하는 것도 그런 이유가 아닐까 싶다. 무슨 일이 있어도 꿈과 희망을 잃지 말라는 용기를 주기 위해서 말이다.

 

칼요한 발그렌의 소설 <인어 남자>도 그런 종류가 아닐까 했다. 현실에서 부모의 보살핌이나 사랑을 받기는커녕 도리어 온갖 핍박과 슬픔과 괴로움을 받는 아이가 우연한 기회에 인어들의 세계로 들어가면서 벌어지는 모험의 환상이 어우러진 이야기일 거라고 생각했다. 결과는? 절반만 맞췄다고 해야 될까?

 

이야기는 1983년 스웨덴 팔켄베리의 변두리 작은 마을에서 벌어진다. 한 소녀가 무언가를 찾아 전력질주하고 있다. 소녀의 이름은 넬라. 넬라가 찾고 있는 것은 바로 남동생 로베르트. 아이들은 가난한데다 시력이상으로 안경을 쓰고 체격까지 작은 로베르트를 수시로 괴롭혔는데 그때마다 동생을 구해주는 건 전과를 줄줄이 달고 교도소에 수감 중인 아빠도, 술에 빠져 사는 엄마도 아니었다. 오로지 누나인 넬라 뿐이었다. 그런데 학교의 일진 패거리들이 동생 로베르트를 끌고 가 버린 것. 이유는 일진의 두목격인 예라르드가 예전에 아기고양이에게 기름을 붓고 불을 붙여서 죽이는 장면을 넬라가 목격했는데 그것을 학교에 고자질했다는 것이다.

 

녀석들이 동생을 죽이려는데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없다. 녀석들이 동생을 죽이려는데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없다. -19쪽.

 

예라르드 무리는 동생을 구하기 위해 숲으로 온 넬라를 잔혹하게 괴롭힌 것도 모자라서 돈을 요구한다. 남은 학기동안 로베르트를 건드리지 않는 조건이라면서. 로베르트가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넬라로서는 아무리 큰돈이라 할지라도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문제는 돈을 마련할 방법이 없다는 것. 나라에서 아동수당과 복지수당이 나왔지만 이미 엄마가 술로 날려버린 상태였기 때문에 넬라는 상점에서 물건을 훔치기로 마음먹는다. 도둑질을 할 때마다 넬라가 자신 안에서 아빠를 느끼고 아빠와 자신이 비슷한 사람일 거라고 여기는 대목은 정말 안타까웠다. 발각될 경우 경찰에 잡혀간다는 걸 알면서도 넬라가 물건을 훔쳐서 주지만 후안무치한 예라르드는 오히려 더 큰 돈을 요구한다. 넬라는 답답한 마음에 친구 토뮈와 얘기를 하기 위해 어부의 오두막으로 찾아가는데 바로 거기에 ‘그것’이 있었다. 동물이면서 동시에 인간인 존재, 인어가...

 

눈동자는 크고 새까맸고, 눈병이라도 걸린 것처럼 물기를 머금고 있었다. 하지만 그 생물의 시선은 인간 그 자체였다. 그 생물이 나를 관찰하고 있으며 내가 누구인지 궁금해한다는 게 느껴졌다. -127쪽.

 

소설 초반, 넬라와 로베르트는 말한다. 누군가가 와서 자신들을 구해줄 거라고. 로베르트는 그 누군가가 아빠일 거라고 믿지만 넬라는 결코 아빠가 아니라고, 아빠는 믿을 수 없다고 강조한다. 더 이상 앞으로 나아갈 길이 없는 벼랑 끝으로 내몰린 상황에서 맞닥뜨린 낯선 존재, 인어 남자. 그의 등장으로 인해 작은 마을에 어떤 일이 일어날지, 그리고 넬라와 로베르트에게 인어남자는 어떤 존재가 될 것인가.

 

<인어 남자>가 저자인 칼요한 발그렌과의 첫만남이다. 판타지 동화와 닮은 듯 닮지 않은 이야기는 정말 매력적이어서 몰입감 있게 빠져든다. 스웨덴 최고의 문학상으로 통하는 아우구스투스상을 수상한 그의 작품 <가면>도 조만간 꼭 만나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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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동주
안소영 지음 / 창비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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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 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에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

오늘 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 1940. 11. 20

 

 

학창시절 수업시간을 통해 윤동주의 <서시>와 <별 헤는 밤>을 배웠다. 당시의 우리들은 윤동주가 시인이자 독립 운동가였고 처참하게 죽음을 맞이했다는 역사적 사실보다 윤동주의 서정적이고 아름다운 글에 빠져들었다. 반 친구들의 대다수가 ‘별 하나에 추억과/ 별 하나에 사랑과/ 별 하나에 쓸쓸함과...’의 <별 헤는 밤>을 외웠고 나를 포함한 일부는 <서시>에 매료되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한다는 게 어떤 마음일지,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라고 읊을 수 있었던 시인의 감성을 철없는 마음에 부러워했던 기억이 난다.

 

<시인 동주>. 제목에서 알 수 있듯 윤동주의 삶을 소설로 풀어낸 작품이다. 1938년 3월 23일. 스물두 살 동갑내기에 사촌간인 윤동주와 송몽규가 연희전문학교 입학시험을 치르기 위해 북간도 용정에서 경성에 도착하는 것으로 이야기는 시작된다. 입학시험에 합격한 동주와 몽규는 연희전문학교의 신입생으로서의 생활을 보여주는데 우리말 연구자인 최현배 교수의 우리말 수업을 통해 당시의 조선어교육이 어떠했는지 확연히 드러난다. 일본경찰이 학교 안까지 들어와서 교수들을 수시로 연행해갈 뿐만 아니라 전쟁의 기운이 만주까지 번져가는 소용돌이 속에서 동주의 가슴에 서서히 그늘이 드리우게 된다.

 

식민지 조선은 말할 것도 없고 일본인들조차 전쟁준비에 생활을 위협받고 있다. 이러한 때 일개 젊은이가, 더구나 식민의 땅에서 태어나 노예와 다를 바 없는 처지로 앞날을 그려보고 계획해 보는 것이 무슨 소용 있을까. 무사히 공부를 마치고 세상에 나아가, 가족을 거느리고 살아갈 꿈을 꾸어도 되는 걸까. 어느 순간 자신들의 삶이 거대한 삶으로 송두리째 떠져, 다른 곳으로 휙 던져지거나 파묻히는 것은 아닐까. - 75쪽.

 

동주와 몽규는 동갑내기여서인지 여러모로 비교가 됐다. 외모도, 성격도, 학창시절 성적도 항상 몽규가 앞서 나갔다. 신춘문예도 몽규가 먼저 당선되어 한동안 동주는 마음이 복잡했지만 독립운동으로 체포되어 갇혔던 몽규가 집으로 돌아오는 것을 계기로 동주는 몽규를 더 이상 부러움이 아닌 문학을 함께 하는 벗이자 동지로서 대하게 된다. 하지만 중일전쟁이 장기화되면서 조선의 삶은 더욱 척박해진다. 그 광경을 지켜보면서 자신이 무엇을 해도 달라질 것이 없다는 두려움과 무기력함에 동주는 한때나마 시 쓰기를 멈추기에 이른다.

 

이후 졸업을 앞두고 동주는 몽규와 함께 일본으로 유학을 떠난다. 하지만 오랜 전쟁으로 인해 대학에서는 조선에서 온 학생들을 감시하고 그런 차에 동주는 특별고등경찰에 끌려가서 모진 매질과 고문을 받는다. 그리고 당시 일본군이 중국군이나 조선독립군 포로를 대상으로 자행하던 생체실험까지 당하고 1945년 2월 16일 끝내 눈을 감고 마는데...

 

동주의 장례가 있던 그다음 날, 몽규도 후쿠오카 형무소 독방에서 세상을 떠났다. 동주가 떠난 지 이십 일이 채 못 된 3월 7일이었다. 사촌 형제이자 벗이었던 두 사람은, 태어난 해도 떠난 해도 같았다. - 303쪽.

 

‘이토록 염치없는 시대, 윤동주를 다시 읽는다는 것’ 띠지에 적힌 문구이다. 사실 윤동주의 시 몇 편이 그에 대해 아는 전부였는데 <시인 동주>를 통해 윤동주의 청년 시절의 삶을 만날 수 있었다. 일제의 탄압이 극에 달하던 시기, 우리의 말과 글과 이름을 쓸 수 없었던 그 암울한 시기를 살았던 그의 삶의 여정을 따라가다 보니 시 한 편, 한 편을 어떤 심정으로 써내려갔을지 어렴풋이나마 짐작할 수 있었다. 하루가 다르게 세상이 급변하고 갈수록 삶이 팍팍하게 느껴지는 요즘, 우리가 윤동주를 다시 읽어야하는 때가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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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리의 분실물센터
브룩 데이비스 지음, 정연희 옮김 / 문학수첩 / 201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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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는 도서관 휴게실에 저를 앉혀둔 뒤, 잠깐만 앉아 있으라고 했어요. 책 좀 빌려 오겠다면서요. 그런 뒤 제 손에 껌 한 통을 쥐여줬어요. 심심하면 이거 씹으면서 놀고 있으라고. 

 

김애란의 소설 <침이 고인다>의 한 대목이다. 도서관에 아이를 데려다놓고 엄마는 돌아섰다. 아이는 엄마가 건넨 껌을 단물이 다 빠질 때까지 씹으면서 기다렸지만 엄마는 끝내 오지 않았다. 후배가 나직하게 건네는 이야기를 들으며 주인공은 생각한다. ‘대체 아이를 시장이나 기차역이 아닌 도서관에 버리는 엄마가 어디 있단 말인가?’ <밀리의 분실물센터>를 읽으며 나 역시 이런 의문이 들었다. ‘대체 아이를 여성 속옷 매장에 버리는 엄마가 어디 있지?’

 

소설의 주인공은 밀리. 일곱 살 소녀다. 이것만 보면 특별한 것이 없다. 하지만 밀리에겐 여느 일곱 살 소녀와 다른 점이 있다. 목격한 죽음을 기록한다는 것. 제일 처음이 키우던 개 람보였고 두 번째가 길을 건너는 노인이었다. 밀리는 이내 모든 것이 죽어간다는 걸 알아차리고 ‘죽은 것들의 기록장’에 하나씩 적어나가기 시작한다. 그리고 스물여덟번째에 ‘우리 아빠’라고 써 넣는다. 이후 밀리는 엄마와 함께 백화점에 갔다가 속옷매장에 남겨진다. 기다리라고, 금방 온다고 했던 엄마는 돌아오지 않고 사라져버린다. 이것을 알 리 없는 밀리는 하염없이 엄마를 기다리다가 두 사람을 만난다.

 

먼저 나무껍질 같은 얼굴의 칼. 그는 사랑하는 아내를 잃었다. 아내와의 기억, 추억을 잃고 싶지 않은 칼은 아내의 장례식조차 받아들이려 하지 않았다. 자신이 말하는 전부를 손가락으로 타이핑하는 ‘터치 타이피스트’ 칼은 한밤에 요양원에서 탈출한다. 밀리네 집 길건너에 사는 애거서. 그녀는 남편을 잃고 집안에 틀어박힌다. 자그마치 7년간 집 밖으로 한 발짝도 나가지 않고 창으로 밖을 내다보면서 지나다니는 사람들과 심지어 새들에게도 크게 호통을 치며 일상을 보낸다.

 

아빠는 암으로 잃고 이어 엄마마저 자신을 버리고 달아난 밀리는 팔십대의 두 노인 칼과 애거서와 함께 엄마를 찾아 길을 떠난다. 그런데 그들이 나이도, 성별도 다르고 어떤 혈연관계나 이해관계도 없다면? 거기다 각자 성격마저 평범하지 않은 ‘독특함’을 지닌 이들이라면? 그들의 여정이 결코 평탄하지 않으리라는 건 불 보듯 뻔한 일이 아닐까?

 

밀리와 칼, 애거서의 이야기가 번갈아가듯 이어지는 이야기에 초반엔 다소 산만한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주요 등장인물들이 모두 전면에 나선 이후부터는 그들의 동선을 따라서, 그들이 벌이는 한판 대소동을 지켜보는 사이에 어느새 소설은 막바지로 치닫고 있었다. 책을 읽는 내내 떨칠 수 없었던 것이 있었다. 밀리에게 있어 죽음은 무엇이었을까. 사랑하는 누군가를 떠나보낸다는 것, 상실의 경험은 정녕 그 어떤 것으로도 치유되지 않는 것인가. 책장을 덮는 순간에도 밀리가 엄마에게, 칼이 아내에게 건네려던 “나 여기 있어!”란 말이 떠올라 마음이 무거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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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의 책 - 파블로 네루다 시집
파블로 네루다 지음, 정현종 옮김 / 문학동네 / 201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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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짧은 많은 질문으로 이뤄진 책

읽는 건 순식간이지만
질문에 대한 답을 찾으려면 오랜 시간이 걸리는 책

자신의 내면 깊숙한 곳으로 여행을 떠나야
그제야 해답을 떠올릴 수 있는 독특한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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